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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아버지인 대위를 따라 전쟁터 한가운데서 생활하게 된 오필리아. 엄마는 병악하며 만삭의 몸이고, 대위는 잔인하기 그지없는 남자다. 동화책을 손에 꼭 쥐고 엄마를 따라 이곳까지 온 오필리아에게만 요정이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현실은 오필리아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들고, 어려우니까. 요정을 따라가 만난 판에게서, 오필리아는 자신이 고통 없는 지하세상의 공주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판이 어느 편에 서 있나 그것이 궁금했는데, 돌이켜보면 판이란 캐릭터가 원래 그렇다. 패닉이라는 단어의 어원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자연의 신이기도 하고, 따라서 판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 선과 악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 오필리아는 판에게 기대어 미션을 쉽게 해나갈 수가 없다. 오필리아의 미션은 고통도 슬픔도 없는 지하의 세상. 한번 떠나온 그곳으로 다시 찾아가는 문을 열 세 개의 열쇠를 찾는 것이다. 그러려고 하면 당연히 용기와 인내와 희생이 필요하다. 가장 고독한 용기, 가장 힘든 인내, 가장 슬픈 희생이 필요한데 그 일을 할 사람이 어린 소녀 오필리아다. 가엾은 아이. 고통도 슬픔도 없는 곳이라...결국 오필리아는 살아 있는 몸으로는 그곳으로 가지 못한다. 어떤 면에서 매우 슬픈 영화다. 마지막 부분의 오필리아의 눈이 잊혀지지 않는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이 영화를 어디서 보고 와, 너무 무섭더라며 치를 떨기에 지레 겁에 질려 그저 공포영화이려니 여겨 멀리하다가, 뒤늦게 DVD로 보았다. 그리고 기분이 많이 가라앉았다. 그 영화의 몇 장면은 매우 잔인하지만, 사실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무서운 짓을 벌여왔고, 그러고 있다. 어쨌든 부분을 떼어놓고 보면 아이에게는 그저 무서운 영화일 수 있겠다 싶고, 내게는 참 슬픈 영화이다. 그리고 참 잘 만들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