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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가인 디오도어 루빈이 쓴 [ 절망이 아닌 선택 ]은 그가 여러 환자들을 상담 내용들이 모티브가 되어 책으로 옮겨놓았다. 그래서일까?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온갖 감정들이 소개되어 있다. 가끔 계획한 일이 틀어지거나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이런 내가 싫다'라는 자조 섞인 생각을 하곤 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남의 탓으로 돌리기 보다는 내 탓을 한다든지, 그런 과정에서 내가 싫어진다는 표현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래서 이 [ 절망이 아닌 선택]의 첫 부분부터 관심반 걱정반으로 읽기 시작했다. 혹여 내가 가지고 있는 자기증오가 극복될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이면 어쩌지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런 걱정이라도 알고 있던 것인지, 책의 첫 부분부터 자기 증오에 대한 내용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또한 직접적인 자기증오 형태와 간접적인 자기증오 형태로 나누어 그 동안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던 감정들이 어떤 형태이며 어떻게 인지해야 하고 극복해야 하는지 소개되어 있다. 결정을 뒤로 미루거나, 기쁨이라고 자신을 속이는 형태가 직접적인 자기 증오 형태였다니 놀라울 뿐이다. 쉽게 책에 집중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속 인물들의 고민과 행동들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사례들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극단적인 상황에 관한 사례들도 있지만 대부분 한번 쯤 고민했던 부분들을 잘 다루고 있다. 또하나 마음에 들었던 것은 자기증오를 막아줄 관용이라는 부분도 좋았지만 제4부 인간적인 조건은 두고 두고 읽어 보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내용들이다. 우리가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의 종류라든지 벗어나고 싶은 감정들의 종류가 거의 모두 소개되어 있다. 작가는 제4부 인간적인 조건을 소개함에 있어 가장 흔한 관념과 상징 몇가지를 서술하고, 보다 정서적으로 부담스러운 몇가지 중요한 대표적 유형을 검토하고, 그것에 관해 논평할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 흔히 은둔성과 사교성에 대한 정의를 해 놓은 부분으로 어느 눈구도 순전히 은둔적이거나 사교적이지만 하지는 않아서, 우리들은 특정한 순간에 우리들이 어떤 기분을 느끼느냐에 따라 어느 한 쪽이나 또는 양쪽이 모두 될 수 있도록 우리들 자신을 용납해야만 한다. - 395페이지] 은둔적 사고나 태도를 지녔다고 해서 부정적인 것이 아니며, 사교성을 지녔다고 해서 무조건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사람들과 같이 지내고 싶어하는 성향으로 해석될 경우 심한 의존심의 증거일지도 모른다고 해석하기도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단 나는 너무 은둔형이야라고 본인을 질책할 필요가 없다고 보면 될까? 책을 읽으면서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다방면으로 혹은 그렇게 생각해 볼 수 도 있겠구나 하는 전환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된 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부족한 시간을 내어 쫓기듯이 책을 읽은 것이 후회될 정도로 다시 한번 정독을 할 예정이다. 그만큼 활자를 통해 저자가 말하는 바를 독자로 하여금 수용하게 하는 힘이 대단하다. 책을 읽으며 '아 그래, 그런가?' 라는 식의 짧은 탄식이 나오기도 했으니 말이다. 심적으로 지칠 때 읽거나 마음이 복잡할 때 꺼내 읽기에 고마운 도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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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이 아닌 선택'은 "크나큰 개인적인 실패와 그에 따른 심각한 자존심의 상처로 인해" 아주 고통스러운 우울증을 겪고 자기 증오에 빠졌던 미국의 정신분석가 디오도어 루빈이 정신분석가의 도움으로 고통에서 벗어난 기록이자 한 사람을 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지침이 될 조언을 담은 책이다. 루빈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장된 견해들은 물론 자신의 능력을 극소화시키거나 무시하는 것도 자기증오와 마찬가지로 정의한다.
자기 증오는 그 희생자의 완전한 인식을 수반하며 의식적으로 진행된다.(51 페이지) 자기 증오는 심각한 우울증을 계기로 나타난다. 물론 그에 미치지 못하지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심하게 자신을 비하시키고 혐오하고 스스로 실망한다. 대부분의 자기 증오는 무의식중에 이루어져서 의식적인 인식의 테두리 바깥에서만 벌어진다.(53 페이지) 특이한 점은 저자가 한 가지 감정을 억제하면 다른 여러 긍정적인 감정도 상실되게 된다는 말을 한다는 점이다. 저자에 의하면 과장된 억제는 자기 거부의 한 형태이고 이는 자기 증오로 간주되어야 한다, 주의할 것은 의식적인 자기 증오보다 무의식적인 자기 증오가 더 파괴적이고 삶 전면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저자는 정신분석이 무의식적인 부분을 의식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지만 최대한의 공감 속에서 이루어져야 소기의 목적을 이룬다는 말을 한다. 자기 조소, 자기 비하, 폭력 행위 등이 자기 증오의 주요 사항들이다. 우울증은 자기 증오의 두드러진 요인이다. "자기 증오가 없다면 우울증은 불가능하다."(82 페이지) 자살은 자기 증오의 궁극적인 방편이다.(저자는 자살을 끔찍한 자기 증오 행위로 규정한다.: 321 페이지) 여러 사례자들 중 고통의 양면성을 지닌 여자 환자의 경우가 눈길을 끈다. 아니 그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 눈길을 끈다 하겠다. 저자에 의하면 그 여자 환자는 끊임 없이 쑤시고 가려운 박탈성 피부염이란 고통을 싫어해 자신을 혐오하는 한편 두드러진 고통을 받는다는 데 대해서 일종의 순교자적인 영광을 맛보았다. "무의식적으로 천천히 이루어지는 자살"이란 말이 공감을 자아내는 가운데 저자는 술, 마약, 담배, 음식에의 탐닉도 자기 증오의 한 형태로 정의한다. 무절제한 성관계 역시 싫다는 의사를 표하지 못하는 무능함을 미워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저자에 의하면 갖가지 형태의 피해망상증에서는 세계를 파괴한다는 공상도 하나의 특성으로 나타난다. 자기 증오의 감정이 너무 대단한 나머지 세계를 아예 파괴해야 한다는 공상을 필요로 하는 상황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살인이란 빗나가고 객관화한 자기 증오의 궁극적 형태이다.(109 페이지) 자기 증오는 인지 왜곡을 동반한다. 지나친 경쟁과 완벽주의는 사람들과 우정을 쌓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지만 더 나쁜 것은 자기 자신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이다.(115 페이지) 프로이트가 광적으로 도박에 빠져들어 재산을 탕진한 후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자기 채찍질을 하고 다시 작품 활동을 한 악순환을 반복한 도스토예프스키를 정신적으로 자기 체벌 행위를 한 것으로 해석한 것은 유명한데 저자는 충동적인 도박은 희생자로 하여금 만성적인 자기 혐오와 상실감의 상태에 빠져 살아가게 만든다고 말한다. 모든 증후군에서 일차적인 중독은 자기 증오에 의해 이루어진다.(115 페이지) 결정을 뒤로 미루기, 기쁨이라고 자신을 속이기, 자기를 증오하는 자기를 증오하기 등은 의식적인 자기 증오의 형태들이다. 저자에 의하면 간접적인 자기 증오는 만성적이고 널리 침투하고 전체적이고 악성적이고 전이(轉移)적이며 파악하기 어렵다. 환상을 자기 기만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설명하는 저자는 우리들은 거의 언제나 실질적인 자아로부터 괴리된 채 내재하는 자기 증오와, 환상 속에 내재하는 자아에 대한 부수적인 피해를 의식하지 못한다고 덧붙인다.(129 페이지) 전지, 전능, 위대한 천재성, 무적(無敵)의 경지,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아낀다는 착각 등의 환상을 보이다 그 꼭대기에서 불가피하게 떨어질 때 자기 증오에 빠지게 된다. 저자는 절정의 오르가슴 같은 경험이 깊고도 황홀하게 지속되는 경지가 행복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그것은 행복이 아니다. 그런 황홀한 상태는 거의 언제나 우울증이 그 뒤를 따른다.(160 페이지)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다. 환상은 흔히 우리들 자신의 중요한 여러 가지 양상 뿐 아니라 현실을 그냥 지워버리려고 하는 강박관념적인 생활 방식을 이루어놓는다.(178 페이지) 불가능한 기준, 비현실적인 목표, 과도한 기대도 자기 증오와 관계가 있다. 삶에 대한 극단적 흑백 가리기도 자기 증오를 낳는다. 저자는 관용을 자기 증오에 대한 하나 뿐인 해독제로 본다. 관용은 실질적인 자아의 이익을 도모하는 모든 생각과 느낌과 기분과 통찰과 행동이다. 저자는 인간이란 본성이 자비롭기 때문에 그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관용은 언제라도 잠에서 깨어 활동을 시작할 잠재성을 지닌다고 설명한다. 한 환자는 자기 증오로 인해 마구 음식을 먹어치우다 180kg(2미터)이나 체중이 나가게 되었는데 체중관리가 관용의 한 형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관용을 위한 행동에서 본질은 환상을 파괴하는 것이다.(245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우리들이 환상을 얼마나 잘 포기하는지를 시험하는 한 가지 방법은 늙어서 죽는다는 현실에 대해 우리들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253 페이지) 저자는 기준을 낮추고 목표를 제한하고 기대치를 줄이라고 조언한다. 증오란 크나큰 기대, 그리고 그 좌절로부터 비롯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저자는 "나는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한다(I am because I am)"는 말을 한다. 이는 나는 존재하며, 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어떤 이유도 필요 없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뜻으로 저자는 이를 자비심과 동일한 것으로 보며 허식을 배제하고 존엄성과 진지함과 성실함을 보이며 자신을 대하는 자세를 의미한다고 설명한다.(266, 269 페이지) 자기 관용은 자신에 대한 보살핌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자신의 욕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파악하는 것이다. 저자는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할까, 하는 두려움과 '자책감의 두려움'에 바탕을 둔 선택은 가짜 선택이며 자기 증오로부터 생겨나고 자기 증오를 뒷받침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내가 존재하는 곳에 나는 존재한다."는 말을 한다. 저자에 의하면 이는 과대망상적인 관점이 아니다. 이는 자기 도취의 반대이고 우리들이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라고 생각하게 된 관점과, 공포증과 주관을 객관화하는 행위의 반대이다. 저자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지금 현재라 말한다. 저자는 인생은 하나의 과정으로 자신이 살아가는 삶 자체가 하나의 결실이라 설명한다. 과정을 중시하는 저자의 의도는 책을 집필하는 과정 자체가 집필 결과 완성된 책 자체보다 한없이 더 중요하다는 말로 설명된다. "결실보다는 오히려 과정에 대한 투자가 결과적으로 항상 더 자비로우며, 자기 증오를 막아준다."(299 페이지) 목표를 지향하는 삶으로부터 벗어나야 자기 증오를 막을 수 있다. 다만 항상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자는 싫다고 말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연기(演技)를 거부한다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연기에는 자아의식과 자아의 판단과 자기 증오에 대한 두려움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듣게 될 조롱에 대한 두려움이 뒤따른다.(317 페이지) 이 진단은 어빙 고프먼의 책 '자아연출의 사회학'과의 비교를 이끈다. 저자는 어떤 사람이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할 때 아주 중요한 질문 즉 그가 파괴하고자 하는 대상은 누구이며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인생이 고달프다는 사실을 깨우치는 것은 지극히 가치 있는 관용의 과정이다.(335 페이지) 관용은 삶의 과정이다. 저자가 말했듯 우리들은 개방성과 신뢰, 솔직함, 심지어는 순진성을 무척 높이 평가하고 찬양하면서 단순성과 정직성, 개방성, 순진성을 어린애 같고 어리석다고 경멸하며 조작과 이율배반성, 교활함, 의심스러움을 은근히 찬양한다.(348, 349 페이지) 저자는 이런 저런 불합리와 모순 등을 관용할 것을 요구한다. 그들 중 하나가 '바보들'이란 항목이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들은 바보들을 경멸하지만 때로 우리가 어리석고 우매하고 멍청하고 바보가 되며, 살아가는 동안 자주 현명하지 못하거나 아예 우스꽝스러운 존재가 되는 인간적인 권리를 필요로 한다.(371 페이지) 상당히 인상적인 말이다. 우리 사회는 우울증을 혐오하는 눈으로 본다. 여러 면에서 슬픔은 전염되고 더러운 상태인 것처럼 취급된다.(379 페이지) 슬픔과 우울증의 감정들은 무척 인간적이며 기쁨과 행복의 감정 못지 않게 깊이 존중해야 한다.(380 페이지) 저자는 시와 예술의 가치를 적극 옹호하고, 건강과 병은 거리가 먼 별개의 과정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 지적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는 굴복을 역겹게 생각하고 그것을 인간의 어휘록에서 삭제하고 싶어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굴복할 수 없는 힘이 우리를 파괴하는 힘이 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우리가 가진 숱한 편견과 오류 등을 진심으로 걱정해 그 대안적 지침을 전하는 사람이라 해도 좋을 듯 하다. 특히 이 부분이 눈에 띈다. 사람들은 성적으로 부정맥적(不整脈的)이라 정의하며 저자는 아무리 깊은 사랑에 빠졌다고 해도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성욕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보통이기에 서로 상대방의 욕구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항상 필요하다고 주장한다.(411 페이지) 저자의 성 관념은 개방적이고 포용적이고 진보적이다. 이런 점이 바로 관용이 아닌지? 저자는 자유롭고 긍정적이고 포용적이고 낙관적이다. 저자는 사회의 이중성과 모순에 대한 개탄 내지 안타까움을 표하는 데 능하다. 저자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감정이 기쁨이다. 저자는 기쁨을 느끼는 능력보다 우리들을 더 인간적으로 만드는 요소는 별로 없다고 믿는다고 말한다.(443 페이지) 이 부분은 스피노자를 떠올리게 한다. 저자에 의하면 기쁨은 창조적이고 삶의 이유이다. "참된 기쁨이 꽃피는 곳에서라면 죄의식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449 페이지) 본질적으로 기쁨은 단 한 사람이라도 남을 희생시켜서는 결코 생겨나지도 않고 존재하지도 않는다. 다소 많은 분량과, 시대적 거리 때문에 일정 부분 현 정서와 괴리가 느껴지는 면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진지하고 유효하다는 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깊은 성찰이 돋보이는 책임을 말하게 된다. 강조된 기쁨과 진지함의 대비는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해야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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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여 페이지의 분량에 그렇게 쉽다고만 말할 수 없는 내용의 책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말 그대로 절망에서 행복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준 책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자기증오와 관용, 그리고 기쁨이다.
자기증오라는 말에 처음에는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름 매일의 삶을 열심히 살면서 스스로 만족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자기증오라는 말이 그렇게 선뜻 다가오지는 않았다. 한 때 사업에 실패해 절망에 빠져 있던 적도 있지만 그때조차 나 자신에 실망하지는 않았기에 자기증오라는 말에 공감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저자의 설명을 들어보니 어느 정도 공감이 된다. 자기증오는 내가 생각한 의미 외에도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다. 저자는 자기증오의 형태를 직접적인 자기증오와 간접적인 자기증오로 분류한다. 직접적인 자기증오에는 자기조소, 자기비하, 완벽주의 등이 있고, 간접적인 자기증오에는 환상, 권태 등의 형태가 포함된다.
이런 분류를 놓고 생각해보니 내 모습 중에 자기증오라고 할 만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 환상이라는 측면도, 권태라는 측면도, 무엇보다 직접적인 자기증오의 완벽주의라는 측면은 내게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자기증오의 변형된 모습이었다.
나 자신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절망 속에서 지난날들을 보내왔다고 생각하니 순간적으로 당황스러웠다. 진짜 그랬던 걸까? 스스로도 알지 못할 정도로 마음 속 깊은 곳에 아픔과 슬픔과 절망을 꽁꽁 숨겨놓고 있었던 걸까? 정말 그랬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런 생각에 빠져 있는 순간 저자는 자기증오라는 부정적 요소가 아니라 우리에게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가능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자기수용의 긍정적 요소를 설명한다. 바로 관용이다.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능이자 습성인 관용이 모든 사람들에게서 바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충분한 의욕과 동기만 부여된다면 관용이 어느 순간 깊은 잠에서 깨어나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 순간이 바로 절망에서 행복으로 가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관용은 또한 기쁨으로 가는 관문이다. 관용을 통한 참된 기쁨과 즐거움은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의미가 된다.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절망이 아닌 기쁨의 길, 행복의 길로 모두가 함께 나아가기를 바라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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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무게에 짓눌려 의식도 영혼도 해체되어버린 것 같은 시절에 나는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의 웃음의 거의 전부는 조커의 입꼬리 같은 것이었다. 더이상 그런 분장마저 못견디게 되자 나는 산산히 해체되어버리고만 싶었다. 하지만 내안 깊은 곳에서는 삶에 대한 바람이 아직 남아 불어대고 있었던지 자의와는 상관도 없이 놓여진 낯선 책장에서 (두번의 개정이 거치기전인 당시의 )이 책을 꺼내들게 되었다. 나는 내가 지금 많이 아픈 상태인 것을 새삼 실감했고 죽음으로 향하기 전에 이 아픈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여린 희망을 품었더랬다. 그리고 내가 바라던 마지막 하나의 소망을 완성시키고자 나 자신의 죽음을 유예했다. 그리고 미치기에 적절했던 시기만큼의 깊은 수행과 방황을 교차했고 그 이후 병자가 되어 나태한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지금 이 책을 다시 한번 접하게 되었다. 개정을 몇차례나 지나면서도 김유정문학상 수상자이자 제1회 한국번역상 수상자인 역자의 번역에 손을 대는 것이 누라고 생각한건지 직역투의 이해가 쉽지 않은 번역체는 여전했다. 하지만 역자가 원저자의 의도를 훼손하지 않는 최선의 번역이라고 이리 번역한 것인지 어떤 대목들은 깊은 일깨움이 있는 책이다. 과거에 이 책은 내게 내 상태가 자기증오 상태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고 세상과 나, 사람들과 나에게 있어 내가 품는 좌절감을 다소 포용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지금 이 책은 내게 내가 하던 타인들이 나를 비웃도록 나 스스로가 자처하는 행동을 반사적으로 하는 것이 자기증오의 늪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해서라고 이야기 해주고 있다. 나는 아직 저주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젠 그만 저주가 그쳐 주어도 괜찮지 않을까? 일생의 태반이 저주받은 상태였는데... 천형과도 다를 바 없던 생이었는데... 이젠 그쳐도 되는게 아닐까? 내가 나를 수긍하고 인정한다. 버텨내지 못하던 삶이지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장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인정은 한다. 관용... 그런 건 너무 오래 뒀다 쓰는데 우선 자기에게 써보아야겠다. 오래 전 이 책이 내게 한줌의 물이었다면 이젠 한모금의 물은 되어주는구나 싶다. "비하를 시키든 이상화를 하든 어떤식으로든 자아를 왜곡시키는 행위는 실질적인 자아를 거부하는, 즉 결과적으로 자기를 증오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자신의 능력을 극소화시키거나 무시하는 행위도 그보다 덜 심하지도 않고 더 심하지도 않은 자기증오다. 자아에 관련된 현실을 거부하면 그 형태가 어떠하거나 간에, 그것은 항상 자기증오다. 그 왜곡이 어떤 형태를 취하거나 간에, 현실을 왜곡시키는 행위는 항상 실질적인 자아를 파괴하는 반사작용을 일으킨다." "자신에 대한 참되고 실질적인 요소를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어떤 방법으로 해치거나 훼손하거나 소모시키거나 분리시키는 그릇된 믿음을 바탕으로 삼은 모든 생각이나 느낌이나 행동은 자기를 증오하는 과정의 한부분으로 간주해야만 한다." "억제된 분노는 심한 우울증으로, 그리고는 극단적으로 병적인 생각들과 환상들로 바뀌기도 한다. 억제된 분노는 또한 다른 감정들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분노했으면서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을 느끼거나 또는 정情을 느끼고 표현할 능력이 결여되는 경우가 아주 많다. 어쨋건 과장된 억제는 자기거부의 한 형태고, 이러한 과정 자체는 자기증오로 간주되어야만 한다." "의식적인 자기증오하고는 달리, 무의식적인 자기증오는 전체적인 성격을 띠어서, 인격의 전부와, 생활양식과, 인간관계의 모든 양상에 영향을 끼친다." "자기증오는 어떤 형태를 취하거나 간에 자아에 대한 공격들로 이루어진다." "자신을 증오하는 강렬한 감정에 빠진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존재했었다는 모든 흔적을 모조리 없애버리려고 시도한다." "우리들이 자신을 가혹하게 처벌하는 강렬함과 깊이는 거의 제한이 없을 정도다." "간접적 및 직접적 자기증오는 항상 결합된 상태로 존재한다. 그것들은 서로 보충하고 보완해가면서 희생자를 종속 상태로 유지한다." "간접적 및 직접적인 자기증오는 개체성을 파괴하는 상호 보완 효과를 가져와서, 전반적으로 자신을 증오한다고 흔히 인식되는 그런 인간형을 만들어 놓는다." "자기증오를 촉진시키고 확대시키는 작용을 전면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깊이 이해하려는 시도가 때로는 보다 깊은 우울증과 심지어는 자살을 유발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중요한 사람들에 대한 환상은, 조금 과장할 경우, 그 속에 쓰라린 실망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증오와 자기증오를 침전시키는 거대한 저수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인간이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가 없게 마련이고,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완벽'해질 가능성은 없으리라. 우리는 다만 삶을 계속할 따름이다." "우리들이 기억하는 어린시절의 어떤 특정한 '사건'은 그 사건에 대한 우리들의 '감정', 그리고 그 감정으로부터 자라나게 되는 기분과 시각만큼은 중요하지가 않다." "물론 중대한 정서적인 고민거리의 해결을 위해서는 발견 이상의 투쟁이 필요하지만, 발견 자체도 대단히 강력한 치료 수단이다." "어떤 형태거나 간에 자기증오를 잘라내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서 당장 개선되는 상황을 나타낸다." "참된 선택이란 항상 내적 및 외적인 강요로부터의 자유를 기본으로 삼는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생각을 할까 하는 두려움과 자책감의 두려움에 바탕을 둔 선택은 가짜 선택이며, 자기증오로부터 생겨나고 자기증오를 뒷받침한다." "그들 자신의 존재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과 하나의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그들을 휩쓸어버린 자기증오와 하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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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누가 자신에게 잔인하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리라고 기대하겠는가? - 하스다이 벤 하멜레크 베하나제- 위의 문장이 책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다.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저자가 어떤 의도로 '선택'이란 단어를 사용할 것인지 짐작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책은 저자의 경험을 담아냄과 동시에 의사이자 치료자로서 환자를 대하면서 얻은 경험과 방법을 함께 녹여낸 책으로 개정판이라는 것을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안정효 역자는 저자로서도 유명한 분인데 맨 마지막 역자후기에 적은 것처럼 처음 번역을 할 때 만하더라도 이 책에 열광하는 독자들이 많다는 사실이 와닿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개정판 출간 소식을 듣고 다시 읽었을 때 비로소 이 책의 진가를 알았다고 한 만큼 어쩌면 이 책은 나이가 너무 어리거나, 이유는 분명하게 존재하지만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구렁텅이이 빠져든 경험이 없어본 사람들이라면 뻔한 이야기라고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책제목처럼 '절망'에 빠졌거나 그런 경험에서 제대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들에게 다른 '선택'이 있음을 알려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얼마전 읽었던 [지금과 다르게 살고 싶다]의 저자 안셀름 그륀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책에 적었다. - 내 주변에는 수십년 째 변신할 거라 떠들어대지만 여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변신은 상당히 공격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나와 싸워 이겨야 달성되기 때문이다. 12쪽- 두 저자 모두 공통적으로 자신을 파괴하고 싸워야 하는 대상으로 만들려고 하면 결코 행복할 수 없고 벗어나고 싶은 현재의 자신으로부터 조금도 달라질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절망에 빠지는 '자기증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것은 물론 과소평가하는 것도 좋지 못하다고 한다. 자신의 모습을 왜곡하는 것 자체가 결국은 자기증오라는 것이다. 우리가 동물과 구별되는 특징 중 한가지는 스스로 관찰하고 내적비판을 가하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인데 바로 그것이 독이 되어 자기증오 형태로 나타나면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되는 것이다. 관용적 심리철학이라고 저자가 부르는 해결방법은 자신의 한계와 현재의 상태를 은총의 상태로 보고 스스로 내적 자비심을 이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기독교 교리와 유사하다고 느껴지는 데 종교와 가장 큰 차이점은 중심이 신에게 있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점이다. 이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원하치 않는 일을 꾹 참아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억지로 참아내다보면 결국 그것이 자기증오로 연결되기 때문인데 이부분은 또 아들러의 심리학과 맞닿아있다.
위의 문장을 보더라도 보살핌과 친절 즉 자비를 베푼다는 의미에서는 기독교 교리와 유사하지만 뒤에 문장, '나'라는 존재가 절대에 놓여있다는 점이 분명하게 차이점을 보여준다. 반면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와는 점점 더 유사한 내용을 보여준다. 저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기증오에서 벗어나는 길은 세상의 중심, 선택의 중심, 존재의 이유가 모두 '나'에 근거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이 자칫 잘못되어 방탕과 오만 혹은 타인에게 위협이나 폭력을 가하는 상태까지를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 자신을 중심으로 할 뿐 아니라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를 중요시 한다는 점에서 역시나 기독교 교리와 유사한 부분을 발견하게 되기도 했다. 다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라고 까지 미치는 오늘의 강력함에서는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이론과 방법론을 벗어나 구체적으로 실생활에서 가족, 친구, 연인 등과의 관계속에서 직면하게 되는 절망에 대해 대처방안도 함께 알려주는 데 이전까지의 내용이 전부 수용할 수 있었다면 후반부에서는 나와는 조금 견해가 다르다고 느껴졌다. 종교적 성향일 수도 있겠지만 상당히 위태위태하게 설명해놓은 부분이 더러 보였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의존하려고 하는 부분이 젊은 시절 자녀에게 헌신했기 때문이며 나이들어 경제력이 상실하였으므로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애초에 자식에게 지나치게 헌신했다는 잘못된 출발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반면 아이들에게도 각자 가지고 있는 관계와 사정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아이의 문제가 부모 혹은 부모와 자식관계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해준 부분은 크게 공감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부모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에 지적한 것처럼 무조건 적인 헌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20대를 지나 30~50대의 고민은 크게 둘로 나뉜다. 결혼을 해서 자녀와 배우자 때문에 하게 되는 고민, 혹은 하지 못해서 부모와 주변사람들로 부터 듣게 되는 걱정과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지는 고민이라고 볼 때 저자가 '선택'을 위해 제시해준 근거와 자기경험은 큰 도움이 된다. 자녀에게 너무 의지하려 한다거나, 주변사람들의 이야기에 너무 마음을 쏟지마라. 저자의 말처럼 우리 문화는 사랑을 받는다는 것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 사랑은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 부터가 시작이고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말자.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 '절망'이 아닌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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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으로 관용이란 자비심이 가장 높은 곳에서 다스리는 마음의 상태며, 우리들자신에 대한 은총의 경지가 이룩된 상태다. 은총의 경지란 자기증오의 촉진과 상반되는 상태다. 은총의 경지에서는 모든 상황하에서 자아에 대한 충실함이 인간의 가치체계에서 가장 손꼽히는 중요성을 지닌다. 죄의식이나 어떤 다른 자기증오의 형태가 배제된 가운데, 우리들 자신을 잘돌보고 우리들 자신에 대해서 책임감을 느끼는 상태는 다른 모든 활동보다도 우선한다..."
나는 디오도어 루빈님께서 저술하시고 <나무생각출판사> 에서 펴낸 이책 <절망이 아닌 선택>을 찬찬히 읽어나가다가 바로 윗글에 이 관용이라는 것이 이렇게나 위대하고 중요한 것이구나 바로 그걸 느꼈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어떤 때는 자기증오의 상태에 빠지게 되는 때도 있다.
자신의 용모에 컴플렉스를 느낄 수도 있고 자신이 가장 무능력하고 또 무기력해지는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이러한 자기증오의 함정에 빠져있다면 그사람은 발전을 기약하기 힘들고 계속 정체 내지는 퇴보에 빠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들 자신을 잘돌보고 우리들 자신에 대해서 책임감을 느끼는 상태>인 관용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고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관용의 미덕을 갖기위해 부단히 노력 해야겠다 바로 그걸 느꼈다.
"사람이란 완전할 필요가 없다!
나는 디오도어 루빈님께서 저술하시고 <나무생각출판사>에서 펴낸 이책 <절망이 아닌 선택>을 꼼꼼히 읽어나가다가 바로 윗글에 작으나마 깊은 울림을 받았다. 이 세상을 살면서 때론 대인관계에서 힘들때도 있는데 그러한때에 자기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을 좀더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인생을 좀더 활기차게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회도 주었던 참으로 좋은 책이었다...
그런데, 이책 <절망이 아닌 선택>은 유대계 미국인 정신분석가인 디오도어 루빈님께서 1975년에 저술하시고 안정효작가께서 1989년에 1차 번역된 것을 이번에 다시 새롭게 펴내신 개정판이다.
그래서, 이책의 제목이 그리 낯설지않았다. 아니 오히려 옛친구를 만난듯한 반가움에 나는 이책을 손에 쥐자마자 벅찬 마음을 안고 읽어나갔다. 사실 그당시엔 이책을 정독못했는데 이번에 이렇게 새로이 개정판으로 나온 책으로 산뜻하게 만날 수 있어 넘넘 좋았다.
1989년 출간된 이책을 읽고 자살을 포기했다는 어느 화가분의 이야기라든지 순천형무소에서 복역중이던 지식인도 이책이 자신에게 너무나도 큰힘이 되었다는 후일담은 왠지 모르게 나의 마음도 훈훈하게 해주었다.
따라서, 이책은 지금 다소 실의에 빠져계신 분들은 물론 삶의 전환점에서 어떻게 살아야할까 고민중이신 분들께서도 꼭한번 읽어보실 것을 권유드리고싶다...
그리하여 나는 이책을 나의 서가에 꽂아놓고 수시로 펴읽어볼 것이다. 글고 거기서 자신감과 신념을 다시금 다지게할 것이다.
절망이 아닌 희망을 선택하라! 꿋꿋이 일어나 저넓은 들판을 향해 계속 전진하라!
이책을 읽고나니 이러한 메시지들이 나의 귓가에 들려옮을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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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누가 자신에게 잔인하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리라고 기대하겠는가? -하스다이 벤 하멜레크 베하나제
목차를 넘기고 나면 위의 글이 나온다. 저 한줄의 문장이 이 책의 내용을 함축 하고 있다. 이 책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자신에 대한 무의식적 증오와 적대감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내가 의식 하든 못하든.. 우리 내면에 있는 자신을 향한 증오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무의식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우리의 무의식속에 숨어있는 자기 증오가 자신의 삶을 망치고 힘들게 하는 것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이 책에서는 자기 증오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 이후 자비로운 삶에 대한 정의에 대해 풀어내가고 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자.. 어찌 남을 사랑하며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책을 읽어보면 자신에 대한 성찰과 함께 내 안에 뿌리 깊게 자리잡았던 증오의 정체에 대해 알게 될것이며 그걸 극복하고 풀어나가는 방법에 대해 나와있다. 궁극적인 자아의 수용과 성장에 대한 깊은 성찰을 주는 책이다.
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진정한 자아를 생각해 보게 하는 유익한 책이다. 성찰의 세계로 깊숙히 빠져들어 보면 좋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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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이 아닌 선택은 총 4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 절망을 뿌리치는 선택, 2부 자기증오, 3부 관용, 4부 인간적인 조건 어찌보면 심리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보기엔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용어적인 측면과 학술적인 측면을 제외하고 본다면 우리내가 가장 좋아하는 '남'의 이야기, 즉 사례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느낀것이 사람은 누구나 알게 모르게 자기비하하는 모습이 있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는 내가 손해를 보는 상황에 대해 ‘난 약하니까’ , ‘난 안돼니까’하고 쉽게 포기하고 당한걸 당연시 하는 모습이 있었다. 특히 잘생긴 연예인의 얼굴을 이야기하며 넌 잘생겼어, 마치 연예인 누구 닮은 것 같아 라고 이야기를 들으면 화가 났다. 스스로를 잘생기지 않았다고 자기 비하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든 사람은 무한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언제 발현되는 가의 차이일 뿐이지 영원한 루저는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에 의기소침하고 약해보이는 인간이라도 다른 남보다 다른 특출한 면이 있다. 책에서는 여러 사례가 소개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자기증오에서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육체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약으로도, 전기충격으로도 고쳐지지 않는 피부질환이 알고보니 심리적인 자기처벌과 관계가 있더라 라는 이야기였다. 즉 거꾸로 건강한 육체는 건강한 정신을 가진다는 의미로도 일맥상통한다. 디어도어 루빈이 정신분석학을 토대로 심리상담을 한 사례를 토대로 이론과 사례가 복합되어진 도서이기에 어려운 부분들도 있고 흥미를 끄는 부분도 이다. 어려운 점을 감수하고서라도 인간에 대한, 정신에 대한 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지 겉핥기로나마 알게 된다면 '나'에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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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모순적이다. 행복을 갈망하지만, 반면에 자기증오와 파괴성이 내면에 도사리고 있다. 상당수 신경증과 정신질환은 살기 위한 원초적 방편이자 몸부림이지만, 그것들은 오히려 삶의 의욕을 꺾어버리고 자살 같은 극단적인 선택의 동인으로 작용한다. 마치 활로를 찾아서 필사적으로 헤매었으나 깨어보니 가시밭길 지옥도를 걷고 있었다고나 할까. <절망이 아닌 선택>은 자기증오와 관용을 다룬다. 자기증오는 단순히 지나치게 높은 기준과 잣대로 자기를 재단하거나, 스스로를 비난하고 평가절하하는 의식적인 행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조소, 고통스러운 기억 되씹기, 자해, 자살과 같이 결과적으로 드러나는 영역뿐 아니라, 우울증, 불면증, 완벽주의, 우유부단함, 죄의식 등 알게 모르게 삶 전반에 영향을 주는 상태들을 포함한다. 나아가 자아와 현실 인식을 왜곡하는 환상, 기대, 권태 등도 자기 증오의 양상들이다. 반면에 관용이란, "실질적인 자아의 이익을 도모하는 모든 생각과, 느낌과, 기분과, 통찰과, 행동이다.""자기증오에 대한 하나뿐인 해독제이며, 신경증적인 절망이 아닌 인간의 유일한 선택이요 특권이다."(p. 205) 이는 자기합리화 같은 방어기제나, 혹은 나르시즘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것들은 현실의 자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왜곡하는 자기증오이고, 관용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자기이해능력을 키우는 과정이다. 인간에게 가장 강력한 치료 효과를 내는 요소는 관용이다. 건설적인 성장과 인간의 창조적인 가능성으로서 그것이 지닌 잠재력은 거의 무한하다. / 인간에게 치료 효과를 저해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자기증오다. 파괴적인 가능성으로서 그것이 지닌 잠재력은 거의 무한하다. /오늘날까지 이러한 양단성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을 배출해낸 문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면에서 인간의 정신적 구조가 지닌 분열성은 보편적인 현상이다.(p.18) 인간 내면에서 자기증오와 관용의 역학구도가 형성되어 있는데, 자기증오의 시작은 인격 대부분이 형성되는 성장기, 특히 부모와의 관계에서 주로 만들어진다. 정상적인 애착관계를 형성하면서 아이의 욕구와 감정을 존중해줄 때 아이에게 올바른 자기조정능력이 생기지만, 문제는 세상 모든 부모가 자녀들의 인격과 감정, 욕구를 존중해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려 육아를 분재하듯 다루는 부모들이 있다. 자신의 욕망과 기대를 자식에게 과도하게 주입시키고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강요한다. 그러한 환경에서 부모의 과도한 기대와 억압에 비례해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가혹한 잣대로 스스로를 심판하고, 자기증오의 굴레에서 평생을 고생하게 된다. 지나치게 관대한 태도, 방임 또한 부모가 육아를 회피하는 행동의 일환으로, 아이에게 자기증오를 심어주게 된다. 부모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무의식적 선택이 오히려 자기증오와 절망의 길로 자신을 내몰았을 것이다. 참된 시각, 참된 선택, 관용의 선택은 예상되는 반발로부터 해방되고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된 분위기 소게서 이루어진다. 나의 여러 가지 감정에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 결론에 이른 다음 스스로 선택하는 과정을 거치는 선택, 진지한 선택의행위는 관련된 문제가 무엇이거나 간에 지극히 중요하다.(p.283~284) 아마도 <절망이 아닌 선택>을 읽는 독자들은 심리학에 조예와 관심이 있거나, 신경증과 같은 심리적 문제에 개선 의지를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인간의 조건들은 항상 이상적이지 않다. 오히려 부족하고 비루한 나 자신을 인정하는 데서 건설적인 성장이 시작될 것이다. 책을 통해 알게 모르게 나를 지배하고 괴롭혔던 자기증오의 절망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용의 길, 내가 진정 원하는 참된 '선택'의 길로 나아가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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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완전할 필요가 없다! 오늘부터 당장 그대 자신을 좋아하기 시작해라! 나 자신이 완벽한 사람이길 바랬던 적이 있다. 하지만 완벽한 사람이란 없다는걸 알기까진 참 오랜 시간이 걸렸고 많은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을 돌아봐야 했다. 완벽한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결과적으로 난 참 헛점이 많은 사람이란걸 깨달았다. 하지만 이런 내가 너무 좋다. 물론 처음부터 나 자신의 헛점들이 좋았던건 아니었다. 난 왜이렇게 잘 하는것도 하나 없이 모든게 다 어정쩡한지 한심하게 느껴졌던적도 있었다. 그런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그 당시엔 키가큰 나도 싫고, 공부를 잘 하지 못하는 나도 싫고,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나도 싫었다. 말그대로 하나에서 열까지 내 모든게 싫었다. 자신감 또한 바닥을 쳤다. 언제부터였을까 나 자신을 사랑하기로 마음 먹은때가.. 아마도 일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시점인듯 하다. 블로그의 내 소개는 '나를 사랑합니다'로 바뀌었고, 나는 조금씩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들을 찾아냈다. 「절망이 아닌 선택」 이 책은 십여년 전에 나왔던 책의 (개정판) 이다. 그 당시에도 별점 평균 4~5점을 기록할만큼 많은 사람들이 읽었고, 좋은 글들이 올라와 있었다. 우울증에 시달리다 이 책을 접하고 이겨냈다는 사람, 사랑하는 자기자신에게 주는 선물 이라는 사람, 긍정적인 글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나또한 정말 힘들었던 시기에 이 책을 추천해줄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좋은책이었다. 제1부 절망을 뿌리치는 선택, 제2부 자기증오, 제3부 관용, 제4부 인간적인 조건 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이 책은 자기 자신에 대해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거나, 앞으로의 인생을 고민하거나, 우울증, 절망, 깊~은 슬픔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참 많은 도움이 될법한 책이었다. 자기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것 만으로도 그 사람들은 스스로의 고통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혹여나 아주 가끔 너무너무 힘이들어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 생각한다. 책이 두껍고 내용이 무거워 다른 책들에 비해 읽히는 속도가 많이 느렸다. 읽었던 부분의 내용을 까먹어 다시 읽기도 하고, 이해하지 못해 다시 읽어보기도 했다. 아마 이해하지 못한 것 보다는 제대로 읽고 독후 기록을 남겨야 겠다는 욕심이 커서 더욱 그랬던 듯 하다. 평소 얘기하기 힘들었던 무거운 내용들이 주를 이루며, 자살을 떠올릴 수 있는 내용들이었기에 더욱 더 조심스럽게 읽어나갔던 듯 하다. 죽음을 생각할만큼 힘든 때라면, 이런 책을 읽으며 위안을 받고 자신의 삶을 다시한번 돌아보며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책따위가 뭘 안다고... 라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에 더욱 무겁게 읽어나갔던 듯 하다. 나에겐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라며 토닥이는 듯한 책이었고, 혹여나 앞으로 힘든일이 생기거나 정말 인생의 끝을 생각하는 시기가 온다면 다시 한번 읽어봐, 그냥 삶이 너무 무겁다 느껴질때에도 아무장이나 펼쳐서 읽어봐...라고 말하는 듯 했다. 한동안은 나의 책장 한켠에 오~랜기간 자리잡고 읽힐책일듯 하다. -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된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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