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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주앙이라는 이름을 우리는 대부분 알고 있다. 한마디로 ‘바람둥이’라고 불리우는 그의 이미지는 그러나 많은 예술작품들 속에서 되풀이되어 차용되곤 했다. 그만큼 돈 주앙이라는 인물은 오랜 세월이 흘려도 잊혀지지 않는 마력을 지녀왔다.
돈주앙은 여성성에 대한 찬미자인 동시에 여성의 내면을 진지하게 이해하고자 하하고, 그들에게 숨겨진 자신의 매력을 발견하게 해주는 조력자이다. 돈주앙은 여성의 편에서 그들을 외면하는 남편들, 그들을 비하하는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높힌다. 물론 이 모든 운동이 그의 에로틱한 여성편력을 통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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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명의 여자를 품었다는 돈 주앙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경악했다. 한 명의 애인 또는 배우자도 건사하기 힘든 판국에 1000명의 여자라니. 매일 서로 다른 여자와 동침한다고 해도 3년 가까이 걸리는 그 믿기 어려운 기록을 보면서, 이 남자는 아마 선천성 과다성욕증이라는 병이 있다면 그것에 걸린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돈 주앙의 잃어버린 일기>를 읽고 나니 돈 주앙에 대한 내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단순한 바람둥이, 호색한, 색정광이라기보다는 기사, 박애주의자, 순수를 좇는 이였다. 물론 그의 박애(?)는 방향을 빗나가서, 결혼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홀로 남겨진 과부나 유부녀, 나이가 꽉 찬 처녀에게 부여되었지만 말이다. 저자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돈 주앙의 잃어버린 일기를 입수하여 옮겼다는 에디터 노트로 책이 시작되어서 이것이 소설이라는 사실을 깜빡 잊을 뻔했다. 그만큼 이야기는 자연스럽고 긴박하고 정연하게 쓰여져 있다. 돈 주앙은 마지막 한달여를 기록하는 중간중간, 수녀원 마당에 고아로 버려진 자신의 출생에서부터 귀족의 위치에 오르기까지의 인생 편력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여자들의 이야기가 곁들여지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때는 16세기 중반의 스페인. '세빌랴의 이발사'로 귀에 익은 도시 세비야가 돈 주앙의 활동 무대이다. 종교 재판이 한창인 반면 교황과 사제들도 정부와 자식이 있을 정도로 사회는 문란하다. 정치는 왕과 귀족들, 군부가 서로 견제하면서 치열한 첩보전을 벌이고 있다. 그 사이에서 고아 주앙은 타고난 재주와 직감, 노력으로 귀족의 자리에 오른다. 많은 여자들과 육체의 기쁨을 함께 즐겼으나 사랑은 나누지 않았던 그가 공교롭게도 스승이자 친구의 약혼녀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인생 참 얄궂다. 스페인의 특징으로 지금도 실시되는 투우에 나온 성난 소의 콧김, 성 축일의 행렬에서 자라반드 춤을 추는 수녀들의 모습, 왕궁에서 열린 가면 무도회장의 드레스들, 동방의 황금을 싣고 돌아오는 배와 선술집의 레몬과 오렌지를 섞은 포도주, 종교 재판으로 화형을 당하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 남자들끼리의 목숨을 건 결투 등 특색있고 화려하며 이국적인 시간과 공간의 무대가 선명하게 펼쳐진다. 돈 주앙의 박애(?)에 대해서는 그다지 공감이 가지는 않지만, 워낙 매력적으로 그려진 그의 모습에 살짝 빠져들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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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주앙이라고 하면 조금 낯설지 모르겠지만 사실 비전문가로서, 무슨 분야의 비전문가인지는 모르겠지만, 카사노바와 비슷하다고 하면 관련 전문가들, 예를 들자면 소설가나 사학자들, 에게는 실례가 되는걸까? 소설의 플롯은 영화 "카사노바"의 플롯과 유사하게 흘러간다. 신대륙을 향해 떠나간 수많은 남자들과 집에 남겨진 수많은 여자들. 그 여자들의 마음과 몸을 훔치고, 아니 경배하고 신성시한 한 남자의 이야기. 수많은 여자들의 우상이자 수많은 남자들의 우상인 남자. 그리고 동시에 수많은 남자들의 원수인 남자. 이 책은 바로 그 남자에 대한 소설이다. 하지만 딱 좋게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은 거기까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히스 레져의 영화 "카사노바"와 이야기의 구성이 너무 흡사하고 순간 순간 넘치는 위트나 영상미, 음악의 힘은 도리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분명한 해피 엔딩을 좋아하는 내 취향에서는 이런 모호한 마무리는 실점이 되면 실점이 되지 득점이 되기는 힘든 것도 사실이다. (웃음) 다만 무척 흥미로웠던 것은 당시 스페인의 밤문화를 묘사한 것이 상당히 사실적이었다는 점. 밤문화라고 해서 유흥에 관련된 것들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귀족들의 삶 전반에 관한 부분들이 넓게 자리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놓치지 않고 다뤄주는 부분은 (일종의) 역사 소설을 읽을 때 문화적인 이질감을 즐기는 독자들에게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책을 읽기에 아깝지는 않은 수준의 매력을 담고 있다. 상당한 고증이, 이루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바탕에 깔린 작품이지만 대신 소설의 핵심인 플롯에 있어서는 다소 식상한 맛이 없지 않은 정도. 무난하게 읽기에 좋은만큼 평가도 무난할 수 밖에 없는 정도가 아닐까. 돈 주앙의 잃어버린 일기더글라스 에이브람스 지음, 홍성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나의 점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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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남자들이 전투에서는 용감하지만, 아무런 무기도 갖고 있지 않은 여자들과 맞서는 것은 두려워하죠."
우리나라에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지만, 서양에서는 돈 주앙이라는 인물이 제법 유명하다. 스페인 사람인데, 발음하기에 따라서 돈 후앙, 돈 지오반니 등으로 불리는 바로 그 사람.(모짜르트나 슈트라우스 등의 위대한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이 책의 주인공인 돈 주앙은 카사노바처럼 엄청난 바람둥이로 유명한 인물이다.
하지만 대개의 옛날이야기가 어느 한 편의 완성된 스토리가 아니라 지방마다 서로 다른 버전들이 있는 것처럼, 돈 주앙 이야기도 서로 다른 일화들이 지역마다 다르다고 한다.(앞서 소개한 모차르트와 슈트라우스의 곡들이 서로 다른 것처럼) 이 책의 저자는 그 이야기들을 수집해 작가적 상상력을 동원해 재미있게 재구성해 놓았다.
이야기의 배경은 스페인의 세비야. 지금이야 스페인스 수도가 마드리드로 옮겨졌지만, 옛날만 하더라도 큰 항구도시로 유명했던 곳이다. 콜럼부스가 스페인의 여왕에게 자금지원을 받고 배를 띄운 곳이 바로 여기 세비야(세빌리야)다. 돈 주앙은 그 도시에 살면서 많은 여자들과 연애행각을 한다. 세비야에 사는 모든 사람은 그를 알고 있고, 마치 연예인을 훔쳐보기 좋아하는 오늘날 사람들처럼, 사람들은 주앙의 행위 하나하나를 보면서 즐긴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 보게 된 아나 아가씨에게 한 눈에 빠져버린 주앙. 그는 어떻게든 아나의 마음을 얻고자 하지만 생각대로 쉽지만은 않다. 또 그 사랑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상황은 더욱 쉽지만은 않게 되었다. 과연 주앙은 아나 아가씨의 사랑을 얻어낼 수 있을까? 작가는 일기라는 형식을 통해(자연히 1인칭 주인공 시점이 된다) 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주앙과 한 패가 되도록 만든다. 중세의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바람둥이의 순정 이야기가 펼쳐진다.
또 책 겉종이에 ‘출간도 되기 전에 세계 유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느니, ‘전 세계 25개국에 판권이 팔렸다’느니 하는 수식어들이 잔뜩 붙어 있는 책이다. 뒤표지에는 각계각층으로부터 받은 최고의 찬사들이 또한 길게 줄을 서 있다. 출판사에서는 이렇게 하면 책의 가치가 올라갈 거라고 생각했을까? 하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는, 이런 식의 과대포장 된 책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화려하기만 하고 정작 맛이 없는 과일들이 떠올라서 말이다. 그리고 대개 정말로 중요한 사람들은 자신을 숨기지 드러내지 않는다.(대통령이 이동할 때는 자신을 숨기기 위해 똑같이 생긴 차 3대가 함께 움직인다고도 하지 않는가.) 아무튼, 이 책에 실려 있는 '무한히 위대한 영도자'를 떠올리게 만드는 소개들 때문에 일단 마이너스 점수를 먹고 들어가는 책이다.
그래도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스페인이라는 매우 독특한 지방의 역사와 문화를 책 속에 잘 재현에 놓았다는 점이다. 일찍부터 로마의 지배 아래 들어가 로마식의 문명 건설이 이루어졌고, 기독교의 로마로의 침투에 발맞추어 기독교화 되었지만, 이슬람 세력의 지배 아래 한 동안 놓이게 되면서 기독교와 이슬람교라는 두 종교의 영향을 복합적으로 받게 되었던 상황. 스페인 사람들만의 독특한 삶의 양식과 태도 등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이해해야만 제대로 보인다고 할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자신의 작품 안에 제대로 복원해 놓았고, 때문에 독자는 책을 통해 마치 직접 그 시대 그 장소에 가 있는 것처럼 스페인이라는 독특한 나라를 간접 체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배경적 장치들을 넘어서 직접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상당히 실망스럽다. 우선 인물들의 행동과 생각에 그다지 많은 개연성이 보이지 않으며, 저자는 그다지 할 말이 없을 때마다 남녀의 잠자리에 대한 묘사를 하기에 바쁘다.(물론 사람들의 행동이 언제나 논리적 추론의 결과는 아니지만.) 또, 책이 애초부터 ‘잃어버린 일기’라는 이름을 갖는다면(요즘 유행하는 ‘팩션’으로 쓰고 싶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책 안에 등장하는 서술을 하는 주인공은 당대의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하지만 종종 ‘지나치게 현대적인’ 생각들이 등장하고, 처음의 장치(‘잃어버린 일기’라는)는 책 안에서 그다지 효용이 없어서 그냥 일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로만 보일 뿐이다. 스페인이라는 이색적인 배경에, 돈 주앙이라는 흥미로운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뭔가 크게 한 건 터뜨릴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인지 그에 상당하는 만족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스페인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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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무엇이고 욕망이 무엇이며 쾌락은 무엇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내머릿속을 떠나지않은 의문점들이다.
돈주앙!! 그는 16세기후반 스페인에서 가장이름을 날리던 바람둥이였다. 그의 바람기와 여자들을 유혹하는 방법은 이제 전 세계인들이 알정도다. 그리고 제 2의 돈주앙이 되고싶어하는 사람들은 돈주앙을 추앙하고 존경한다.
하지만 나는 그를 이해하지못했다. 돈주앙의 행각은 지금도 엄연히 불법이기때문이다. 간통이라는것으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돈주앙을 미워하지않는다. (돈주앙을 미워했던사람들이라면 그 시대 돈주앙과 함께살았던 남편들과 종교재판관들뿐이겠지?)
왜 그런걸까? 왜 합법적이지도 않은 일을 벌이는데도 돈주앙을 미워하지않는것일까?
해답은 오히려 간단했다. 여자들의 욕망과 쾌락을 해방시켜주었기때문이다. 그렇다. 16세기 후반은 여자들의 정절이 강요당하던 시대였다. 남편들 몰래 다른남자와 사랑을 나눌수 없으며 시집가기전에도 마찮가지이다. 그렇게 여자들은 자신의 욕망과 쾌락을 마음속 깊이깊이 감출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여자들에게 돈주앙이 다가왔던것이다. 외로움속에 울고있는 여자들을 따스한 손으로 감싸고 그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일을했기에 돈주앙을 피할수도 미워할수도 없었던것이다.
이때의 여자들을 보면 조선시대의 여자들이 생각난다. 유교문화를 받아들여 남성우월주의 사회가 되고 그에따라 여자들은 7살이 넘으면 집에서 갇혀지내야했다. 더군다나 시집을 갔는데 남편이 먼저죽으면 자신이 죽을때까지 정절을 강요당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모습을 보니 어쩜 그렇게 닮았는지..
더구나 그런 정절을 지키는것을 어기면 제재를 가하고 벌하는 모습까지 어쩜 그렇게 닮았는지 모를일이다.
왜 남자들은 한여자가 아닌 여러여자에게 마음을 주어도 괜찮고 왜 여자는 한남자만을 바라보고 살아야만했을까? 왜 여자들의 욕망과 쾌락을 억압해야했을까?
그리고 돈주앙이 많은여자들을 탐닉하면서 진정으로 찾고자했던것은 무엇이었을까? 돈주앙은 사랑하지않는다고했다. 오로지 여자의 욕망과 쾌락을 쫓으며 여성을 탐했다. 그리고 돈주앙은 결혼하지 못한다고했다.
하지만 돈주앙은 아나아가씨를 만나게되면서부터 달라진다. 한여자에게 자신의 전부를 주는것에대해 생각하게된다.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를 궁금해한다. 그리고 사랑이라는것이 무엇인지도 궁금해한다. 하지만 돈주앙은 그렇게 오래 고민하고있지않았다. 자신이 원하는것을 그 많은 여자들을 탐하면서도 채워지지않는 무엇인가를 아나아가씨를 만나고나서부터는 확실히 깨닫게된다.
그리고 돈주앙은 한여자에게 자신의 모든것, 전부를 내어주기로 마음먹는다. 돈주앙이 그 모든것을 온전히 한여자에게 받쳤는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난 웬지 그랬을것같다. 그렇게 믿고싶은건지도 모르겠지만...
돈주앙을 삶을 읽고있을때 문득 이런생각이 들었다. 돈주앙은 사랑을 찾기위해 그동안 많은 여자들을 탐닉하고 다녔던게 아니었나하는 생각말이다..그리고 그 사랑이라는 감정을 욕망과 쾌락이라는 감정이 함께 뒤섞이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갔던게 아닌가하고 말이다.
돈주앙은 욕망을 갈구하고 쾌락을 추구했다. 하지만 끝내는 사랑을 택했다. 하지만 그 사랑속에는 욕망과 쾌락이 함께 들어있었다. 온전히 한여자속에말이다.
지금도 많은 남자들은 욕망을 추구하고 쾌락을 추구한다. 여자들도 마찮가지이다. 한가지 더 좋은 점은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라는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잘못된 욕망을 쫓고 쾌락을 쫓아가는 이들이 많다. 자신들의 옆에 소중한 이가 마음속깊이 욕망과 쾌락을 간직하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잘보지못하는이들이 많다. 혹시 그 한사람에게 자신의 전부를 주기가 두려운가? 아니면 아까운가? 돈주앙처럼 되고싶은가? 하지만 돈주앙도 결국에는 한여자에게 모든것을 주고만다. 그런것처럼 당신이 가지고 있는 욕망과 쾌락을 주는것을 두려워하지도 아까워하지도 말라. 모든것을 주면 모든것을 되돌려받는다. 그리고 되돌려받을때는 그저 욕망과 쾌락이라는 감정이 아닌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되돌려 받을것이다.
"돈 주앙은 죽었다. 돈 주앙이여,영원하라!" 아마도 욕망과 쾌락만을 쫓던 돈주앙은 죽었을것이다. 하지만 모든것을 한여자에게 받친 돈 주앙은 영원할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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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받아보자마자 든 생각은 "우와~ 이 책 정말 두껍다."였다. 표지를 한장 넘겨 보니 멋진 포즈의 작가사진과 돈 주앙의 활동 무대였던 세비아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지도가 있었다. 그 지도를 보며 마치 돈 주앙의 발자취를 추적해가는 탐정이 된 기분으로 책에 빠져 들 수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그가 아무 생각 없이 오로지 여자만을 탐하는 호색한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이 책은 돈 주앙의 내면적 갈등과 그가 이런 생활을 어찌하여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는지에 대해 인간적이고 약간은 관대한 측면으로 그에 대해 써내려 간다. 그도 그럴것이 이 책은 돈 주앙이 직접 자신에 대해 쓴 일기라는 설정 하에 써내려간 것이기때문이다. 읽는 동안 실제 일기라고 해도 믿을 만큼 그 설명과 묘사가 상세했으며, 탄탄한 소설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국에서는 이미 베스트셀러로 명성을 날렸다는 데... 믿을 수 있는 말인 것 같다.
비록 5세기라는 차이가 있지만 우리의 여러 현대판 돈 주앙들과 16세기의 돈 주앙 사이에는 약간의 공통점을 발견 할 수 있는 듯 하다. 내면의 외로움과 과거의 우리가 쉽게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심각한 문제가 그들이 돈 주앙이 되는 가장 큰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16세기의 돈 주앙은 마치 로맨스로 똘똘 뭉친 멋진 기사 같았다. 그는 의리가 있었으며 비밀을 지킬 줄 알며 여성을 존중할 줄 아는 그리고 여성의 욕망을 쉽사리 충족시켜 줄 수 있는 16세기 최고의 남성이었다.
너무나 좋은 책을 만나 오랫만에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함 없이 즐겁게 읽어 내려갈 수 있어서 기뻤다. 그리고 그에 대한 오해 또한 어느정도 풀 수 있었으니 다른 이들에게도 꼭 한 번 이 책을 읽어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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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 나는 돈 주앙을 여성의 적으로만 생각하였습니다. 그것은 돈 주앙과 카사노바에 대해 이야기한 한 권의 책 때문이었습니다.
'돈 주앙과 함께 여성편력의 명성을 날린 카사노바. 그런데 이 둘의 평판은 사뭇 달랐다고 한다. 둘 다 여자를 꼬시고 버리는 데에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들이었지만 왠지 여성들에겐 돈 주앙보다 카사노바가 좋은 평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유인 즉슨, 돈 주앙은 여성의 육체를 점령하는 데에만 목적을 두었을 뿐 여성에 대한 배려가 없었지만, 카사노바는 여성의 육체보다는 영혼을 달래주는 무엇이 있었기 때문에 똑같이 버림 받은 처지라도 돈 주앙보다 카사노바에게 버림 받은 여성이 되고 싶었다'는 것이 어느 책에서 설명되었더군요.
이러한 책을 읽은 나는 돈 주앙은 나쁜 놈, 카사노바는 좋은 놈이라는 편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 돈 주앙에 대한 편견을 뒤바꿀 정도의 새로운 해석이 담긴 책이더군요. 그러나 이 책을 단순히 <돈 주앙의 여성 편력기> 정도로 생각할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을 읽은 뒤, 여성으로서 사랑의 목적과 남성으로서 섹스의 목적이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까요.
흔히 여성이 말하는 사랑은 <감동>이라면, 남성이 말하는 사랑은 <쾌락>이라고 이분법적으로 나누곤 하죠.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여성은 사랑의 쾌락을 못 느끼나요? 반대로 남성은 오직 쾌락만을 추구하나요? 사랑이 가져오는 감동과 쾌락은 남여구분이 없다고 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돈 주앙>은 '희대의 바람둥이'나 '만인의 섹스 심벌'이기보다는 진정한 '사랑의 메신저'로 표현될 수 있겠습니다. 이 책에선 오직 <돈 주앙>만이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뜨고 사랑에 눈 뜨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가르쳐주니까요.
그렇다면 <돈 주앙>이 바람직한 남성상이 될 수 있느냐? 어떻게 보아도 <돈 주앙>의 행동은 부도덕하지 않느냐, 그런 인물에게 <사랑의 메신저> 운운할 수는 없지 않느냐? 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겝니다.
물론 그렇지요. <돈 주앙>은 부도덕한 인물입니다. 그는 어떠한 미사여구에도 수많은 유부녀와 처녀들을 겁탈한 것만은 지울 수 없으며, 그를 바람직한 사람으로 볼 수도 없지요.
그러나 이 책은 픽션(허구)입니다. 이미 400년 전의 인물을 놓고 도덕적이네, 부도덕하네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굳이 역사적 인물탐구 격으로 돈 주앙을 변론한다면, 16세기 말, 유럽의 남성들이 전장의 이슬로 사라졌기 때문에 수많은 여성들이 과부이거나 처녀귀신이 될 처지에 <돈 주앙>의 부도덕한 행동을 옹호할 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변론이 그의 명예를 돋우어 줄까요? 무엇 때문에 이런 정력(?)을 낭비한답니까.
이 책에서 작가가 말하고 싶은 주제는 <사랑>입니다. 과연 어떤 방식의 <사랑>이 그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과연 남자의 사랑은 오로지 '섹스'로 결말을 맺는가? 이런 의문에 대한 작가의 답은 '아니다'입니다. 여성들이 말하는 사랑을 남성들은 100% 모를지는 몰라도 그것을 오로지 '섹스'와 '쾌락'으로 일축해 버린다면 그런 남성에게서 <완전한 사랑>을 찾는 여성들은 모두 바보일겝니다. 그 증거. 남성의 사랑이 오직 '섹스'와 '쾌락'이 아니라는 증거를 보이기 위해 작가는 '섹스 심벌'인 <돈 주앙>을 골랐고, 그간의 평판이 어찌되었든 작가는 <돈 주앙>을 '사랑의 메신저'로서 그린 것입니다.
저는 공감합니다. 남성으로서 여성과 사랑에 빠지면 '마음'보다 먼저 '거시기'가 동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여성들이여! 남성은 그런 신체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사랑을 알기 위해 사랑에 빠지길 머뭇거리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이 점에서만큼은 남성이 여성보다 사랑에 용감하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여성들이 '이 남자가 진정 나를 사랑하기는 하는 걸까?'라는 의구심 때문에 사랑 앞에서 망설일 때 사랑 앞에 문외한인 남성들은 기껏 사랑을 찾으려 바투 올린 '거시기'마저 쪼그라든다는 사실을.
남성은 조물주가 만든 실패작입니다. 적어도 여성이 바라는 <완벽한 사랑> 앞에서 말이죠. 사랑해주세요. 보듬어주세요. 그리고 가르쳐주세요. <돈 주앙>을 만든 건 남성들이 아니라 여성 자신이었다는 것을 잊지마세요. 그러면 여성은 <완벽한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으며, 남성은 한 여성에게서도 세상의 모든 여자를 차지한 것보다 더 큰 사랑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사랑에 대해 새롭게 해석한 <돈 주앙의 잃어버린 일기>. 참, 흥미롭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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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주앙...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로 의하면 그는 희대의 호색한이다. 수 많은 여자들과의 관계로 카사노바와 함께 바람둥이의 양대 산맥으로 불린다고 해야할까? 나 또한 그러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나왔던 돈 주앙에 대한 이야기나 책, 뮤지컬 등 돈 주앙에 관한 거의 모든 작품들에서도 돈 주앙은 그러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돈 주앙의 잃어버린 일기에서의 그의 모습은 사뭇 낯설다. 물론 여러 여자들의 연인으로서 그려진 그의 모습은 거의 다를바가 없지만 이번 책에서의 돈 주앙은 특별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바로 한 여자에 대한 돈 주앙의 사랑이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때에는 그러한 기대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냥 평소에 알고있는 돈 주앙의 모습이겠거니, 뭐 좀 독특한 에피소드들이 새로 들어있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책의 초반부에는 나의 그런 생각대로 내용이 이어졌다. 호화로운 도시 세비야에서의 그의 화려한 여성력이 이어졌다. 물론 그 당시 세비야의 상황이라든지 돈 주앙이 생각하는 이성과 욕망에 대한 이야기로 돈 주앙을 약간 변호해 주기는 하지만 그러한 것은 그냥 치졸한 변명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그런 정도였다. 하지만 돈 주앙에 대한 이러한 나의 생각은 아나 라는 여성의 등장과 함께 조금씩 변화를 겪게 된다. 아니, 내가 아니라 돈 주앙이 변화를 겪게 된다고 할 수 있을까?
돈 주앙은 아나 라는 한 여성을 사랑하게 된다. 수 많은 여성을 상대하면서도 단 한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올려본 적이 없는 희대의 호색한이자 바람둥이인 돈 주앙이 오직 한 여자만을 위한 사랑에 빠져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 점이 돈 주앙의 다른 이야기와 이 책의 가장 큰 차이점이자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돈 주앙이 한 여자에 만족하며 오직 그녀를 사랑 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이 책을 끝까지 읽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며 흥미진진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러한 나의 궁금증은 해답을 얻지 못한 체로 책의 마지막 장을 덮게 된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돈 주앙의 일기가 소개된 대부분의 분량이 아닌, 그의 마부가 주인의 마지막을 목격하고 죽기 전에 그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써내려간 일기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궁금증만을 남긴 체 끝나는 본문 내용의 뒷부분을 순식간에 읽어내려가게 되었다. 마지막에 아나가 함께 도망친 그 남자가 과연 돈 주앙일지, 아니면 돈 주앙과의 사랑을 망각해 버린체 다른 남자와의 도피를 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그가 돈 주앙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운명을 달리한 돈 주앙이 너무 서글퍼 지지 않는가.
이 책을 읽고 나서 돈 주앙에 대한 나의 생각이 조금 바뀌게 되었다. 그동안 알려졌던 호색한이자 난봉꾼인 돈 주앙이 아닌, 시대의 상황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리고 그 시대에 의해 당해버린 피해자로서의 돈 주앙의 모습이 눈 앞에 그려진다. 또한, 돈 주앙이라는 인물을 떠나서, 돈 주앙의 잃어버린 일기는 아주 재미있는 한 편의 소설로 읽을 수 있을것 같다. 돈 주앙... 이제는 호색한이나 난봉꾼, 바람둥이가 아닌 사랑의 화신으로서 후대에 남겨질 수 있는 그런 인물로 그려질 수 있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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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주앙의 잃어버린 일기.
책은 돈주앙의 일기를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다.
스페인을 배경으로 몇 백년전의 호색한으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있는 인물 돈주앙.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돈주앙에 대해서 단지 여성들에게
매력덩어리 이자 그 어떤 여성도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카사
노바의 모습이 있을 것이라 나름 짐작을 했었다.
책에서 만난 돈 주앙은 여성이 진정 원하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러니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으면서도 그에게 빠져든 것이
아닐까?
공장부인에서 부터 하녀에 이르기까지 그를 거부할 수 있는
여성은 아마도 없을 것이어었다.
다만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호색한으로 치부하기엔 돈 주앙
은 멋진 남성이다.
스페인이라는 그리고 세비아라는 곳의 배경을 책에서는 멋지
게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기대가 되는 곳이다.
돈 주앙은 진정한 그리고 가슴아픈 사랑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
단순한 호색한으로 치부하기엔 너무도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보았다.
세기를 주름잡는 바람둥이라기엔 이 책에 돈 주앙은 아마도
모든 여성이 원하는 매력적인 남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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