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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흥미 있었다. 그리 두꺼운 책도 아니지만 일주일 동안 세 번에 걸쳐 읽었다. 첫 날 : 2010년 7월 8일의 느낌 이 책을 받기 전에도 제목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용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막연하게 조선조 최고의 재상이자 후덕한 인품을 지닌 황희와 고려는 물론 우리 역사상 최고의 외교관으로 꼽히는 서희에 대해 그들의 삶을 깊이 있게 분석한 책일 것이라고만 생각하였다. 그러나 책을 펼치면서 그 상식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황희와 서희뿐만 아니라 정몽주와 이방원, 황희와 서희, 김상헌과 최명길 등 18명의 인물들에 대해 그들의 상반된 관점에 대해서 비교하면서 삶을 조명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인물을 분석한 평전이 아니다. 상반된 삶을 살펴보는 역사비평서가 아니라, 두 인물의 삶을 통해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알려주면서 좋은 삶에 대한 통찰의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라는 표제의 머리말을 통해 아이들에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이자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머리말에 공감하면서 이 책을 펼쳤다. 첫 이야기인 <단심가를 버리고 하여가를 취하라(정몽주와 이방원)>를 흥미 있게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소제목은 정몽주가 나쁘고 이방원이 옳다는 의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단심가의 자세는 자신의 이념에 절대적인 가치를 두고 그것의 구현을 위해 타협이 없이 매진하는 마음이고, 하여가의 자세는 줏대 없이 살라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도 보면서 유연한 사고를 갖자는 마음이다. 저자는 개인적으로 정몽주를 좋아하고 그 인품을 존경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 절대적인 가치와 신념의 사고가 놀랄 만한 업적을 남길 수 있는 개연성이 충분한 것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삶의 자세는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주위의 사람마저 피곤하고 긴장하게 한다는 지적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오면서 무릎을 쳤다. 저자는 이렇게 권하고 있다. “절대적 가치나 신념을 설정해 놓고 거기에 목숨을 거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유연하고 부드럽게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조절하며 살라는 말이다. 여러분이 어떤 하나에 자신을 붙들어 매지 않고 마음을 크게 열어 놓을수록 인간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그만큼 커진다.” 위와 같은 형식으로 이야기를 펼치고 있는 이 책의 두 번째 이야기는 이 글의 제목이기도 한 '황희처럼 듣고 서희처럼 말하라'이다. 저자는 이 글에서는 두 여종의 싸움을 보고 모두 옳다고 하고, 그것의 모순을 지적하는 아들에게 그 말도 옳다고 한 황희의 마음을 분석했다. A라는 여종의 입장에서 그녀의 생각을 들어보면 그녀가 옳을 수밖에 없고, B라는 여종의 입장에서 그녀의 처지를 생각하면 그녀가 옳다고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 모순을 지적한 아들의 입장이 된다면 그 지적 역시 옳을 수밖에 없다. 즉, 누가 옳은 것을 판가름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말을 공감하면서 들어 준 황희의 자세를 배우자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서희가 거란의 소손녕과의 담판을 통해 강동6주를 확보하는 등 우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외교적 성과를 거둔 것을 분석한 것도 재미있었다. 저자는 소손녕을 만나기 전에 국제정세와 소손녕의 입장을 세심하게 살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고구려의 후예가 서경 이북의 땅을 차지해야 한다는 소손녕의 주장과 지적을 인정하면서 고구려의 후예는 거란이 아니라 고려라는 점을 설파하고, 양국이 평화를 누리면서 윈윈하기 위해서는 거란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설득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의 논지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황희와 서희의 생애를 분석한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에 있어서 그들처럼 듣고 말함으로써 조화로운 인간관계를 창조·유지·발전시키자고 권하고 있다. 세 번째 이야기는 <이항복은 A급 범생이, 문종은 B급 범생이>이다. 이 책의 내용도 짐작이 되지 않는가? 모범생의 전형을 보여 준 두 사람이지만, 긴장 속에서 여유 없는 삶을 살았던 문종은 그 포부를 펴지도 못하고 애석하게 세상을 떠났고, 해학과 여유를 즐긴 이항복은 천수를 누리면서 뜻을 폈다는 논지이다. 저자는 세종대왕이라는 명군에게서 조선에서 최초로 제왕수업을 받으면서 모범생으로 성장한 문종이 천수를 누리지 못한 것을 애석해 하면서 그런 교육을 시키고 받아들였던 세종대왕과 문종을 안타까운 눈으로 보고 있다.
이 대목에서 어쩌면 현재의 우리 교육은 세종대왕의 마음으로 문종같은 학생을 키우려고 하고 있고, 학생들은 문종같은 모범생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그것을 목표로 생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결과가 학력지상주의라는 오늘날의 비극을 조장했는지도 모르겠다. 네 번째 이야기는 <한 번도 바꾸지 않았던 김상헌과 여러 번 바꾼 최명길>이다. 저자가 누구의 관점을 지지하는지 느낌이 올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존경받을 삶을 살았지만, 최명길의 성격에 대해 점수를 주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성격은 노력여하에 따라서 바꿀 수 있다면서 독자들에게 여섯 가지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첫날은 여기까지 읽었다. 다섯 번째 이야기인 <유성룡과 김성일의 향기어린 우정>을 비롯하여 황진이와 서화담, 이율곡과 허목, 이황과 연산군, 평강과 온달이 펼칠 남은 이야기들이 기다려진다. 둘째 날 : 2010년 7월 11일의 느낌 상당히 흥미 있게 읽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도가 안 나가는 것은 그만큼 삶이 힘들기 때문이다. 요즘은 단 10분의 여유를 갖기도 힘들다. 오히려 이 책이 재미있으니 읽어보라고 권했더니, 내 책상에 있는 책을 먼저 읽은 동료가 있었다. 첫 날 아홉 가지의 이야기 중에 네 가지를 단숨에 읽었지만, 유성룡과 김성일, 황진이와 서화담, 이율곡과 허목의 세 가지 60여 쪽을 읽는데 사흘이나 걸렸다. 남은 두 가지를 읽을 짬을 내기가 힘들 듯해서 중간 정리를 하겠다. 다섯 번째 이야기는 <유성룡과 김성일의 향기어린 우정>이다. 징비록의 저자이자 명재상인 유성룡, 동인의 거목이자 임진왜란 직전에 왜군이 침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김성일! 이 두 사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아름다운 우정을 나눴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되었다. 흔히 우정의 대명사라고 하면 ‘관포지교’라는 고사성어까지 만들어진 관중과 포숙아를 꼽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를 다룬 책을 여러 번 읽었지만, 의문점을 떨칠 수 없었다. 관중을 배려하는 포숙아의 마음은 아름다웠지만,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관중까지 본받으라는 것은 무리라고 보았다. 그런 내게 유성룡과 김성일의 우정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김성일은 유성룡보다 네 살이나 더 연배였다. 친구라기보다는 선배에 가까운 나이였지만 모범적인 우정을 나누었던 두 사람! 김성일이 먼저 세상을 떠난 뒤에는 부모의 묘소를 김성일이 살던 마을에 잡아 놓고 그의 유택을 찾은 생사를 초월한 유성룡의 우정은 진실로 아름다웠다. 두 사람의 일화를 포함해서 “친구를 친구로 사귈까? 사귀고 싶은 친구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친구와 어떻게 사귈까?”의 세 가지 물음에 대한 저자의 답변들은 교과서에 실어서 많은 청소년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섯 번째 이야기는 <황진이도 반하게 하라>이다. 지금까지 다섯 가지의 이야기가 두 사람을 대비시킨 것임에 비해 이 글은 황진이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녀와 인연을 맺었던 벽계수, 소세양, 이사종, 지족선사, 서화담 등과의 관계를 열거하고 있다. 특히 서화담과의 관계에서는 애정을 뛰어 넘은 상대에 대한 배려에서는 종교적인 감동까지 느껴졌다.
저자가 소개한 연애 비법 세 가지를 소개하면서 이 부분은 넘어가겠다. 첫째, 사랑하는 이의 눈에 띄게 열심히 살아라. 둘째, 순수하고 진정어린 태도로 인격적인 만남을 가져라. 셋째, 자신의 욕구를 앞세우기 전에 사랑하는 이에게 진정으로 배려하라. 넷째, 관계를 통해서 성장을 경험하고 경험시켜라. 일곱 번째 이야기는 <이이처럼 빨라도 좋고 허목처럼 늦어도 좋다>이다.
육곡 이이는 약관 13세에 진사시에 급제한 후, 23세에 별시로 치러진 과거에서 장원급제를 한 후 아홉 번이나 과거에 응시하여 모두 장원급제를 함으로써 구도장원공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29세에 정6품 호조좌랑을 시작으로 해서 사간원 정원, 홍문관 교리, 부제학, 승지원 우부승지 등 중앙관직과 청주목사와 황해도관찰사 등 지방장관을 두루 섭렵했다. 허목은 과거와 벼슬에 뜻을 끊고 독서, 제자백가, 서예 등 학문에만 정진했다고 한다.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음에도 63세에 정5품 지평을 시작으로 하여 81세의 고령에 우의정에 임명되는 특이한 기록을 남겼다. “이이처럼 빨라도 좋고, 허목처럼 늦어도 좋다.”라는 저자의 생각은 자신의 진로에 대한 결정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할 뿐 속도나 나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가 청소년들에게 권하는 진로 탐색의 요령을 덧붙여 보겠다. 첫째, 마음에 사무치게 꼭 갖고 싶은 직업이 있으면 일찌감치 준비를 시작한다. 둘째, 자신이 정한 직업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것인지 따져본다. 셋째, 흥미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역량에 맞는 직업인지 따져본다. 넷째, 그 직업의 미래 전망을 따져본다. 다섯째, 그 직업에 대해 가족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정환경을 따져본다. 이제 이황과 연산군, 평강과 온달의 두 가지 이야기가 남았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 셋째 날 : 2010년 7월 15일의 느낌 여덟 번째 이야기는 <이황의 결단을 따를까, 연산군의 결단을 따를까?>이다. 앞서 읽은 정몽주와 이방원, 서희와 황희 등에서는 제목만 읽고도 어떤 내용으로 전개될지 짐작할 수 있었다. 대비되는 두 사람의 성격이 어느 정도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황과 연산군은 감을 잡기 힘들었다. 두 사람은 활동한 분야나 남긴 자취에서 어떤 공통점이나 차이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책을 펼치면서 절로 감탄이 나왔다. 이황과 연산군은 결손가정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황의 어머니는 아버지 이식의 후실 부인이었다. 전처인 의성김씨가 2남 1녀를 두고 세상을 떠나자, 두 번째 부인으로 들어온 여성이 춘천박씨인데 이황은 춘천박씨가 나은 5형제의 막내였다. 더구나 아버지인 이식은 이황이 태어난 다음해에 세상을 떠났다. 즉, 이황은 편부슬하이면서 이복과 동복의 형과 누나 일곱이나 있었다. 폐비윤씨의 소생인 연산군은 어머니를 미워한 인수대비와 계모인 정현왕후의 슬하에서 자라났다. 전형적인 결손가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이황과 연산군이 똑같이 결손가정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면서 한 사람은 조선을 넘어 동양의 대학자로 학문적인 업적을 남겼고, 한 사람은 희대의 폭군으로 기록된 차이를 추적하고 있다. 저자는 그것을 다음 세 가지로 분석했다. 1)이황은 비록 편모슬하이지만 모친과 친척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음에 비해, 연산군은 친부와 조모가 있었지만 그럴 여건이 아니었다. 2)이황은 자신을 길러 준 모친의 사랑에 절대적인 확신이 있었지만, 연산군은 부친과 조모는 물론 모든 가족들에 대해 그런 확신이 없었다. 3)이황은 평생 성리학을 탐구하겠다는 숭고한 결단을 가졌음에 비해, 연산군은 모친의 원수를 갚겠다는 원한의 결단을 가졌다. 그러면서 저자는 혹시 결손가정의 환경에 처하더라도 다음과 같이 결단을 하자고 권고하고 있다. 1)더불어 사는 가족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2)마음에 의심이 남지 않도록 부모의 사랑을 확인하자. 3)주변에 살가운 지원 세력을 만들자. 4)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결단을 내리자. 즉 저자는 결손가정이라는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결단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전직 대통령 중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부부가 모두 흉탄에 쓰러지는 비극을 당한 그 이에게는 세 자녀가 있었다. 어느 자녀는 많은 국민의 신망을 받는 정치지도자로 성장하였고, 어느 자녀는 약물 중독 등 갖가지 방황으로 화제가 되었다. 똑같이 부모의 비극을 경험한 이들이 이렇게 다른 모습을 보인 것도 결단의 차이가 아니었을까? 아홉 번째 이야기는 <자성예언? 잘못하면 울보 평강, 잘하면 장군 온달>이었다. 자성예언이란 ‘기대를 하면 그와 같은 결과가 일어난다.’는 뜻으로 흔히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고도 부른다. 이 말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조각가 피그말리온이 자기가 조각한 여인상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정성을 기울이자 이에 감동한 아프로디테 여신에 그 조각상에 생명을 주어서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게 했다는 신화에 어원을 두고 있다. 저자는 이 글에서 평강공주가 온달을 선택한 것은 아버지 평원왕이 “너를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는 농담이 자성예언이 되어 평강공주에게 실현된 것으로 보았다. 또한 온달의 그릇은 결코 바보가 아닌데 주위에서 '바보 온달'이라고 부르니 스스로 바보로 알고 처신한 것이니 이 역시 자성예언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온달이 고구려의 대표적인 장군이 된 것은 그의 품성을 알아 본 평강공주의 바람과 기대가 온달에게 자성예언으로 구현된 결과라는 것이다. 저자는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어떤 믿음은 그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보고 있다. 자성효과가 멀쩡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도 하고, 바보를 장군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에게 긍정적인 자성예언을 심어줌으로써 자신을 발전시키자는 것이 저자의 의도이다. 저자는 자성예언으로 자신을 바꾸는 비결로 다음 다섯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1)나는 무엇이 될 수 있다는 간절한 바람과 소망을 가진다. 2)자신의 바람과 소망을 끊임없이 속삭이면서 이루어진 모습을 상상한다. 3)바람과 소망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세분화해서 구체적으로 작업한다. 4)바람과 소망을 이루기 위해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하게 노력한다. 5)혹시 실패하더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결과를 낙관한다. 저자가 마지막으로 제시하는 경구를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내 인생은 나의 것 긍정적인 자성예언으로 꿈을 일구자.” 이 책은 올해 읽은 책 중에 가장 감동적인 책이었다. 내가 보다 젊은 시절에 이 책을 만났다면 내 삶이 보다 긍정적으로 변화하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을 품으며, 나의 학생들을 비롯한 많은 젊은이들이 이 책을 만나고, 내가 느낀 이상으로 깨달음을 얻기를 소망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