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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은 또 다른 수행이다 박용범 독서작가(2022)
산 좋고 물소리 맑은 곳만 기웃거려서 촌에 들어가서 살 수 있을까? 그것이야말로 부질없는 욕심이 아닌가. 청송군 진보면에 마음을 굳히고 땅과 집을 빌려 농사 시늉을 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물질적 풍요와 편리를 삶의 중심 가치로 알고 쓰고 버리는 삶에만 길들여져 온 오랜 습관을 버리고 먹을 양식과 삶에 필요한 대부분을 제 손으로 마련해야 하는 생활에 몸과 마음을 적응해 가도록 바꾸어 내기 위해서도 최소한 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귀농한 도시인들의 가장 큰 실패 요인은 과도한 투자로, 땅 사고 집 짓고 농기계 구입하고 나면 정작 농사지을 돈은커녕 농촌 경제의 어려움 속에서는 빚만 늘게 돼 탈농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귀촌은 우리의 삶에서 그 가치의 중심을 경제적 가치, 곧 소음 가치나 물질 가치가 아닌 생명 가치 또는 존재 가치나 정신적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과 그런 삶의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돈을 벌기 위해 삶을 저당 잡히고 그렇게 번 돈으로 물질적인 풍요와 편리를 누리는 대신에 스스로의 손으로 생계의 필요를 마련하면서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지만 정신적으로는 풍요롭고 건강한 삶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우주의 순환 질서인 자연의 섭리에 따라 생명의 바탕인 땅에 의지하여 생명을 기르고 가꿈으로써 생태계를 풍요롭게 만들고 생명의 양식을 마련하여 생명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실현해 가는 것이 농업이다. 의식이 물질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신과학이 규명한 주요한 성과입니다. 결국 생각, 그 마음이 이 물질 우주를 이루는 기본 바탕입니다. 땅을 살리는 일은 다른 모든 일에 앞서는 가장 시급하고 근본이 되는 일이며, 땅을 살린다는 것은 곧 병들어 죽어 가는 우리 자신의 생명을, 그 생명의 터전을 살리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모든 농법, 모든 농사의 바탕이 땅을 살리는 것, 땅의 생명력을 회복하는 것이야 함은 이런 까닭입니다. 삶이 단순할수록 삶의 만족도는 높다. 우리는 불필요한 것을 덧붙여 삶을 불편하게 만든다. 삶은 먹고 자고 싸는 것이 전부이다. 우리가 자연을 가까이 접하고 살지만 틈틈이 시간을 내어 더 깊게 자연과 만나는 기회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주말에는 청량산을 다닌다. 산을 오르고 강과 바다에도 나가서 눈부신 햇살과 해맑은 공기와 살아있는 물 등 자연이 주는 생명의 에너지를, 대자연의 자양분을 온몸으로 흠뻑 섭취하는 시간들을 가지며 자연 속에 녹아드는 체험들이 우리의 몸, 우리의 생명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소박하지만 제철, 살아 있는 땅에서 거둔 생명이 충실한 밥상을 마련하여 자신에게 올리는 일이 자신의 몸을 제대로 돌보는 생태적 삶의 첫째 조건이다. 우리 몸이 곧 자연이고 생태계라는 말은 우리 몸 또한 자연의 법칙, 생태계의 법칙에 따른다는 말이다. 물질 우주에서 생명체인 우리 몸은 영양과 물질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달리 말하면 몸을 갖고 있는 한 외부에서 영양을 섭취해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우선 먹어야 하고 먹은 것을 소화해야 하고 그리고 영양으로 흡수한 다음 배설하는 과정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제대로 먹고 제대로 싸는 것이 생명체인 몸을 유지하는 데 핵심이라는 것이다. 인디언 치유사인 '우르릉 천둥'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입니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를 귀담아들을 필요가 갈수록 절실합니다.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은 하나의 느낌이나 자세가 아니다. 그것은 곧 삶의 방식이다. 우리 자신과 주위 생명체들에 대한 인간의 임무인 것이다. 자연은 고귀한 것이며 인간의 내면 역시 고귀하다. 자연은 언제 어디서나 존중되어야 한다. 모든 생명, 세상의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존중되어야 한다. 이것만이 유일한 해답이다. 영성이란 완전한 평화이며 완전한 균형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조화다. 더불어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와의 조화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영성은 인간과 다른 모든 생명체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귀농이란 결국 그 근본의 자리, 곧 자연과 함께 하는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이 돈벌이에 급급한 형태에서 벗어나서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을 받아들이며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귀농을 통해 삶의 양식을 바꾼다는 것은 인위적 수고로움을 줄이고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에 동참한다는 것입니다. 귀농을 통해 자연에 동참하는 삶을 이루는 관건은 결국 귀농을 하나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아직도 물질적 가치가 모든 가치를 주도하는 이 시대에 귀농을 또 다른 수행의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결코 삶의 전환을 통한 어려움을 기꺼이 감수하며 자연과 조화되는 삶이 주는 풍요, 삶의 건강성과 깊은 휴식을 제대로 즐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늙은 농부에 미치지 못하네(이병철 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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