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0%
  • 리뷰 총점8 5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8.0
  • 50대 10.0
리뷰 총점 종이책
근본을 모른다면 그 지식은 쓰레기다
"근본을 모른다면 그 지식은 쓰레기다" 내용보기
예전에 “씨앗은 힘이 세다”라는 책을 읽은 적 있다. 초보 농사꾼 강분석 부부의 귀농 일기였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함께 아름다운 삶을 일구어 가는 부부의 모습이 너무 부럽고 존경스러웠던 기억이다. “나는 늙은 농부에 미치지 못하네” 과연 이 시대에 늙은 농부에 미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 스스로도 궁금하다. 천하의 근본인 농사를 우습게 여기고, 하늘을 다스
"근본을 모른다면 그 지식은 쓰레기다" 내용보기
 

예전에 “씨앗은 힘이 세다”라는 책을 읽은 적 있다. 초보 농사꾼 강분석 부부의 귀농 일기였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함께 아름다운 삶을 일구어 가는 부부의 모습이 너무 부럽고 존경스러웠던 기억이다.


“나는 늙은 농부에 미치지 못하네”

과연 이 시대에 늙은 농부에 미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 스스로도 궁금하다. 천하의 근본인 농사를 우습게 여기고, 하늘을 다스리는 일을 맡은 농부들을 무시하는 세상. 이런 세상이 온전히 돌아갈 수 없음은 당연하고, 그야말로 미친 세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민주화 투쟁과 투옥, 다시 농민 운동과 환경 운동. 그리고 이후 저자는 이 땅의 진정한 귀농을 위해, 그리고 생태와 환경의 온전한 이어짐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분이다. 귀농이 단순히 도시에서 농촌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본디 사람이 태어났던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임을 저자는 오랫동안 강조해왔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저자는 “불임의 잿빛 도시”라 표현한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풍요와 편리라는 신기루를 쫓다 결국 우리 스스로를 잃어버린 도시. 자연과의 조화를 위한 생산이 아닌 온통 생명에 도움이 되지 않는 무수한 상품만을 쏟아내는 도시. 우리는 그 곳에 살고 있고, 벗어날 희망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때문에 귀농은 단순한 직업의 전환에서 벗어나 “뿌리 뽑힌 삶에서 뿌리내리는 삶으로, 자연을 거스르는 삶에서 자연과 조화로운 상생 순환의 삶으로,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삶에서 생산적이고 살리는 삶으로, 의존적인 삶에서 자립적인 삶으로 돌아가자”는 뜻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신자유주의의 망령이 이 땅을 어지럽게 하기 전부터 우리는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겠다는 일념하나로 너무나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희생해 왔다. 그 중 어떤 것들은 이제 돈으로도 다시 얻을 수 없고, 다시는 만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는 발전이라 말한다. 도대체 무엇이 발전된 것일까.


스코트 니어링은 “더 많이 소유하는 삶 대신에 더 많이 존재하는 삶”을 말해왔다. 당장 삶의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무엇을 소유하기 위해 소중한 우리의 삶을 낭비하는 모습. 그것처럼 어리석고 답답한 모습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하찮은 소유 때문에 자신의 삶 자체를 하찮게 만들고 있다. 이제 사람은 사람으로 평가되지 않고, 소비의 주체, 즉 얼마나 많은 것들을 사 모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를 기준으로 평가된다. 아끼는 삶이 아닌 쓰고 버리는 삶을 위해 평생을 노예처럼 일하는 것이다.


귀농이란 “더욱 삶에서 가난하고 생각에서 풍요로울 수 있”도록 우리들을 이끈다. 소유와 집착에 고통스러워하기보다는 나눔과 땀의 결실을 안겨준다. 어머니 자연의 위대함에 두 손 모으게 되고, 인간의 하찮은 오만과 방종에서 벗어나 소박함과 진정한 아름다움을 얻도록 해준다.


물론 지금 우리 농촌의 현실은 한없이 무참하기만 하다. 생명의 키우고, 만들어내는 농업을 또 다른 산업으로 규정하고, ‘경쟁력’을 운운한 그 순간부터 이미 우리 농업은 생명을 잃어가고 있다. 감히 쌀을 돈과 비교하려 하다니. 자동차와 비교하다니. 우리는 차가 없으면 걸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쌀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농업을 죽여 자동차를 팔아먹겠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부였고, 현 정부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런 엄중한 현실 속에 귀농을 마치 모든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인 것처럼 표현하는 것은 위험한 것일 테다. 하지만 농촌이 이렇게 죽어갈수록, 그 죽어가는 땅에 돌아가 다시 생명을 가꾸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저자가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죽어가는 농촌, 이 땅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땅이 죽고, 농촌이 죽으면 우리 역시 살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나누어 우리들에게 잔잔하고 부드럽게, 때로는 단호하게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지금 이 땅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전하고 있다. 이제 귀농을 준비하시는 분들, 혹은 언젠가 불임의 도시를 떠나 어머니의 땅으로 돌아갈 꿈을 꾸고 있는 분들에게 좋은 마음의 다독거림이 되리라 생각한다.


정부는 경제 상황을 핑계로 기어이 이 땅의 강들을 파헤칠 모양이다. 당장 잠깐의 발전을 위해 후손들의 권리와 몫까지 전부 가져가고 있다. 우리가 진정 그럴 권리가 있을까.

암담한 현실에 이 책은 자그마한, 그러나 한 없이 따뜻한 위로가 될 듯하다.

정말 나는 감히 “늙은 농부”에 미칠 수 없다. 당연하다.

YES마니아 : 로얄 w*******7 2009.02.12.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귀농은 또 다른 수행이다
"귀농은 또 다른 수행이다" 내용보기
귀농은 또 다른 수행이다 박용범 독서작가(2022)     산 좋고 물소리 맑은 곳만 기웃거려서 촌에 들어가서 살 수 있을까? 그것이야말로 부질없는 욕심이 아닌가. 청송군 진보면에 마음을 굳히고 땅과 집을 빌려 농사 시늉을 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물질적 풍요와 편리를 삶의 중심 가치로 알고 쓰고 버리는 삶에만 길들여져 온 오랜 습관을 버리고 먹을 양식과 삶에 필요한 대부
"귀농은 또 다른 수행이다" 내용보기

귀농은 또 다른 수행이다

박용범 독서작가(2022)

 

 

산 좋고 물소리 맑은 곳만 기웃거려서 촌에 들어가서 살 수 있을까? 그것이야말로 부질없는 욕심이 아닌가. 청송군 진보면에 마음을 굳히고 땅과 집을 빌려 농사 시늉을 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물질적 풍요와 편리를 삶의 중심 가치로 알고 쓰고 버리는 삶에만 길들여져 온 오랜 습관을 버리고 먹을 양식과 삶에 필요한 대부분을 제 손으로 마련해야 하는 생활에 몸과 마음을 적응해 가도록 바꾸어 내기 위해서도 최소한 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귀농한 도시인들의 가장 큰 실패 요인은 과도한 투자로, 땅 사고 집 짓고 농기계 구입하고 나면 정작 농사지을 돈은커녕 농촌 경제의 어려움 속에서는 빚만 늘게 돼 탈농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귀촌은 우리의 삶에서 그 가치의 중심을 경제적 가치, 곧 소음 가치나 물질 가치가 아닌 생명 가치 또는 존재 가치나 정신적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과 그런 삶의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돈을 벌기 위해 삶을 저당 잡히고 그렇게 번 돈으로 물질적인 풍요와 편리를 누리는 대신에 스스로의 손으로 생계의 필요를 마련하면서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지만 정신적으로는 풍요롭고 건강한 삶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우주의 순환 질서인 자연의 섭리에 따라 생명의 바탕인 땅에 의지하여 생명을 기르고 가꿈으로써 생태계를 풍요롭게 만들고 생명의 양식을 마련하여 생명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실현해 가는 것이 농업이다. 의식이 물질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신과학이 규명한 주요한 성과입니다. 결국 생각, 그 마음이 이 물질 우주를 이루는 기본 바탕입니다.

땅을 살리는 일은 다른 모든 일에 앞서는 가장 시급하고 근본이 되는 일이며, 땅을 살린다는 것은 곧 병들어 죽어 가는 우리 자신의 생명을, 그 생명의 터전을 살리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모든 농법, 모든 농사의 바탕이 땅을 살리는 것, 땅의 생명력을 회복하는 것이야 함은 이런 까닭입니다.

삶이 단순할수록 삶의 만족도는 높다. 우리는 불필요한 것을 덧붙여 삶을 불편하게 만든다. 삶은 먹고 자고 싸는 것이 전부이다. 우리가 자연을 가까이 접하고 살지만 틈틈이 시간을 내어 더 깊게 자연과 만나는 기회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주말에는 청량산을 다닌다. 산을 오르고 강과 바다에도 나가서 눈부신 햇살과 해맑은 공기와 살아있는 물 등 자연이 주는 생명의 에너지를, 대자연의 자양분을 온몸으로 흠뻑 섭취하는 시간들을 가지며 자연 속에 녹아드는 체험들이 우리의 몸, 우리의 생명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소박하지만 제철, 살아 있는 땅에서 거둔 생명이 충실한 밥상을 마련하여 자신에게 올리는 일이 자신의 몸을 제대로 돌보는 생태적 삶의 첫째 조건이다. 우리 몸이 곧 자연이고 생태계라는 말은 우리 몸 또한 자연의 법칙, 생태계의 법칙에 따른다는 말이다. 물질 우주에서 생명체인 우리 몸은 영양과 물질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달리 말하면 몸을 갖고 있는 한 외부에서 영양을 섭취해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우선 먹어야 하고 먹은 것을 소화해야 하고 그리고 영양으로 흡수한 다음 배설하는 과정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제대로 먹고 제대로 싸는 것이 생명체인 몸을 유지하는 데 핵심이라는 것이다.

인디언 치유사인 '우르릉 천둥'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입니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를 귀담아들을 필요가 갈수록 절실합니다.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은 하나의 느낌이나 자세가 아니다. 그것은 곧 삶의 방식이다. 우리 자신과 주위 생명체들에 대한 인간의 임무인 것이다. 자연은 고귀한 것이며 인간의 내면 역시 고귀하다. 자연은 언제 어디서나 존중되어야 한다. 모든 생명, 세상의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존중되어야 한다. 이것만이 유일한 해답이다. 영성이란 완전한 평화이며 완전한 균형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조화다. 더불어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와의 조화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영성은 인간과 다른 모든 생명체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귀농이란 결국 그 근본의 자리, 곧 자연과 함께 하는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이 돈벌이에 급급한 형태에서 벗어나서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을 받아들이며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귀농을 통해 삶의 양식을 바꾼다는 것은 인위적 수고로움을 줄이고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에 동참한다는 것입니다. 귀농을 통해 자연에 동참하는 삶을 이루는 관건은 결국 귀농을 하나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아직도 물질적 가치가 모든 가치를 주도하는 이 시대에 귀농을 또 다른 수행의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결코 삶의 전환을 통한 어려움을 기꺼이 감수하며 자연과 조화되는 삶이 주는 풍요, 삶의 건강성과 깊은 휴식을 제대로 즐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늙은 농부에 미치지 못하네(이병철 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y****a 2022.02.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