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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천추범(海天秋帆)은 민영환이 1896년 쓴 기행문의 제목으로서 ‘배를 타고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다’ 라는 뜻을 담고 있다. 민영환은 고종의 특명을 받은 전권공사로 러시아 황제인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여하게 된다. 이를 위해 민영환은 증기선을 타고 6개월 21일 동안 세계일주를 하게 된다. 그가 거쳐간 나라들을 나열해 보자.
조선-중국-일본-캐나다-미국-아일랜드-영국-네덜란드-독일-폴란드-러시아-(시베리아 대륙을 횡단하여)-조선
그야말로 지구를 360도 돈 셈이다. 현대인인 우리조차 이런 여행을 감히 상상 못하는데, 교통기관이 발달되지 않은 1896년에 세계일주를 성공한 민영환의 이야기는 그 제목만으로도 매우 흥미롭다. 서구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겨우 개화에 힘쓰는 단계에 있던 조선의 한 신하에게, 이미 도시문명이 크게 발달하여 각종 기계장비와 고층빌딩까지 들어선 서구의 모습은 과연 어떻게 비춰졌을까? 흥미로운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독자들이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란다.
해천추범(海天秋帆)은 민영환이 1896년 쓴 기행문의 제목으로서 ‘배를 타고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다’ 라는 뜻을 담고 있다. 민영환은 고종의 특명을 받은 전권공사로 러시아 황제인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여하게 된다. 이를 위해 민영환은 증기선을 타고 6개월 21일 동안 세계일주를 하게 된다. 그가 거쳐간 나라들을 나열해 보자.
조선-중국-일본-캐나다-미국-아일랜드-영국-네덜란드-독일-폴란드-러시아-(시베리아 대륙을 횡단하여)-조선
그야말로 지구를 360도 돈 셈이다. 현대인인 우리조차 이런 여행을 감히 상상 못하는데, 교통기관이 발달되지 않은 1896년에 세계일주를 성공한 민영환의 이야기는 그 제목만으로도 매우 흥미롭다. 서구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겨우 개화에 힘쓰는 단계에 있던 조선의 한 신하에게, 이미 도시문명이 크게 발달하여 각종 기계장비와 고층빌딩까지 들어선 서구의 모습은 과연 어떻게 비춰졌을까? 흥미로운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독자들이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란다.
민영환이 세계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는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에 의해 시해된 후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아관(러시아 공사관)으로 파천(피신)하게 된 것과 관계가 있다. 당시 조선은 새롭게 등장한 세력인 러시아의 힘을 빌어 조선을 노리는 일본을 물리치려는 외교적 노력을 하게 된다. 마침 니콜라이 2세 대관식이 열리게 됨에 따라 고종은 민영환을 축하사절로 파견함과 동시에 5가지 조항에 대한 조약체결을 위한 특사로 임명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러시아로의 세계일주가 시작된다. 사절 일행은 방문국가가 늘어남에 따라 발달한 서구문명에 대해서 찬탄을 금치 못한다. 견학이 거듭될수록 조선도 빨리 개화하여 서구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굳어져 간다. 한편 이미 러시아의 속방이 되어버린 폴란드의 신세를 자국의 아픔처럼 여기기도 한다. 대관식이 열리는 모스크바에 도착한 민영환 일행은 황제를 알현한 후에,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겨 한달반 가량을 머물게 된다. 아직 조약이 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협상 계속을 위해 황궁이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겨간 것이다. 이곳에서 에르미타쥐 박물관, 이삭성당, 피터폴요새, 동물원, 농업박물관, 군함제조소, 페테르고프, 황제의 마을 등을 방문하며 러시아의 발달된 문화와 문명을 접하게 된다. 민영환은 농업박물관을 둘러 본 후 거금 9만 5천 루블을 들여 밀가루 제조기를 구입한다. 또한 군함 한척 건조하는데 1년이 걸린다는 군함제조소에 갔을 때는 군함의 규모와 대포의 크기를 보고 놀라게 된다. 러시아에서 이렇게 무시무시한 무기를 바다와 육지 가릴 것 없이 매일 만들어 낸다면 여타 열강들도 이에 못지 않을 텐데 장차 어디에 쓰려 하는가 라고 물으며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이 살아 있는 영혼을 편안케 하려면 반드시 병기를 모두 녹여 부어서 농기구로 만들 날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는 아마도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라고 하는 구약성서 이사야 2:4을 인용한 말일 것이다. 장차 메시아가 다스리는 나라는 전쟁이 없는, 평화롭게 농사지으며 사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민영환의 독백은 평화를 사랑하는 한민족의 성격을 잘 드러낸 말임과 동시에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있는 조선의 우울한 모습을 반추하게 한다.
적어도 이 책에 나타난 민영환은 서구문물을 가급적 많이 배우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자로 보여지고 있다. 폐쇄적이었던 조선 대신이 이러할 진대, 당시 국가적으로 개화에 대한 요구가 얼마나 간절했었는지를 느낄 수 있다. 만일 민영환 같은 신하가 50년, 아니 30년 만이라도 일찍 세계일주에 나서서, 청나라 뿐 아니라 미국과 영국과 러시아의 발달된 문물을 소개하고 조정에서 받아들였다면, 우리의 역사가 일제 식민지라는 치욕으로 떨어지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조선의 역사는 언제 읽어도 답답함을 금할 수 없지만, 늘상 조상탓만 할 수는 없다. 만일 이것이 한민족이 가야만 했던 길이라면 거기에는 필시 역사의 뜻이 있을 것이다. 고난으로 단련된 한민족은 어느 나라보다 겸손함을 갖추어 이웃나라를 괴롭게 하지 말아야 한다. 한편 이웃나라가 우리를 넘보지 못하도록 스스로 힘을 길러야 한다. 민영환이 1896년에 배를 타고 세상끝까지 나아갔다면, 이제 2008년의 한국인은 우주추익(宇宙秋翼)-우주선을 타고 우주 끝까지 날아감-을 해야 할 것이다. 좀더 넓고 높은 우주로 누구보다 먼저 나가야 한다. 그러나 제국주의자들처럼 무력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민영환의 소망대로 무기는 모두 녹여 농기구로 바꾸는 평화의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나라는 한민족만이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역사의 채찍을 통해서 배운 것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평화를 사랑하는 천성이 있고, 이제는 뒤처지면 고난당한다는 것을 알기에 최신, 최고의 문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교훈까지 겸비했다. 구한말 우리의 외교는 실패하여 국권까지 잃었지만, 지금 우리는 유엔사무총장을 낼 정도로 외교적으로 성공하고 있다. 좀더 넓은 세계, 아니 더 높은 우주로 날아가 세계 평화를 이루는 한민족을 상상하는 것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세계 평화는 세계를 품고자 하는 우리의 담력 여하에 달려 있다 할 것이다.
추기. 민영환이 러시아를 다녀간 후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대한제국 공사가 설립되고, 그 자신이 1887년 초대공사로 임명되나 실제 러시아에서 공사 활동을 하였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공사로서의 실질적 임무는 1900년에 이범진 공사가 부임되면서부터 시작된다. 조선의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민영환은 조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공문을 각국 공사에 보낸 후 한양에서 자결한다. 그의 나이 44세. 한편 이범진 공사는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외교권이 박탈된 후 일본의 소환령이 떨어졌으나 이에 불응하고 남아서 항일 외교활동을 계속한다. 이후 한일합방이 되자 돌아갈 나라가 없어졌다고 한탄하며 이듬해인 1911년 1월 26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자결한다. 이범진 공사의 집무실은 현재 여름정원 근처 페스텔랴 5번지에 보존되어 있으며, 우리 정부는 이곳을 유적지화 할 계획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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