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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 바닷가에 버려진 작은배, 삶과 죽음의 고해는 끝도 없다. 고해정토. 슬픈 미나마타
미나마타병은 일본질소비료공장이 유기수은이 섞인 폐수를 바다로 버리는 바람에 수은에 중독된 물고기를 통해 바닷가 미나마타주민들에게 유기수은 중독 증상을 일으킨 것이다. 이따이이따이병과 함께 일본에서 발생한 대표적인 공해병이다. 그저 일본에서 생긴 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같은 회사가 흥남에서 질소비료공장을 세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흥남 비료공장 주변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더 잘 살게 해주겠다는 산업화는 언제나 소리없이 낮은 곳에서 사는 가난한 사람에게 큰 고통을 준다.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에서 나는 물고기를 고마운 마음으로 잡아서 가난하게 사는 사람에게 바다는 인생의 전부이고 추억의 전부이다. 중추신경 마비로 사람이 아닌 사람의 삶을 힘겹게 이어가는 미나마타 사람들은 그 옛날 그리운 바다를 회상하고 정겨웠던 소박한 삶을 그림처럼 그리면서 한순간 병의 고통에서 벗어난다. 사람이 터를 잡고 사는 곳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일들, 더 이상 벌어지지 말았으면 하는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난 뒤 피난 갔다가 되돌아와 다시 떠나게 된 어느 아흔의 할머니는 '하늘로 피난간다'는 편지를 써놓고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그 할머니에게 집, 평생 살았던 고향을 떠나 오래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현실은 어떤 무게로 다가갔을까? 옆 마을 저수지를 더 크게 만들고, 그 옆에 공원(그냥 가만히 두어도 그대로 공원인)을 만든다고 근처에 살던 사람들은 땅을 모두 내놓게 되었다. 그 돈으로 어디가서 땅을 지금처럼 살 수도, 번듯한 집 한채를 지을 수도 없는 노인들이 다수라고 한다. 이 분들은 어디에서 살아갈 것인가?
미나마타병은 돌연 생긴 병이 아니라 예정된 슬픔이다. 당연하게 회사와 정부는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미나마타 사람들을 고립시켰다. 병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1956년인데 공장 폐수에 포함된 유기수은이 원인이라느 사실은 1968년에 발표되었다. 그리고 그 지루한 법적 책임 공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은 뉴스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당연한 사실인데도 인정하지 않는 동안 힘들게 살아가며 소리없이 스러져가는 것은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이다.
최근 중학생 아이들이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슬픔 소식이 연달아 날아들었다. 세상을 아프게 한 한 아이는 2년 전 근무했던 학교에 다니는 아이다. 퇴직한 학교로 올 때 입학한 아이라서 가르쳐본 적은 없지만 한없이 마음이 아팠다. 떠들썩했던 대책들은 근본 원인을 알면서도 내버려두고, 그 원인을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번르르한 눈속임에 불과하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인간의 온 생을 마비시키는 미나마타병은 우리가 사는 곳곳에 불쑥불쑥 솟아나리라는 불길한 예감 속에 빠져들었다.
책의 원제목이기도 한 '고해정토'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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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 알려지지 않을 때는 서글프다. 나를 서글프게 만든 책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슬픈 미나마타>이다.
원제는 <고해정토: 우리의 미나마타 병>이다. 이번에 달팽이에서 나온 이 책은 영문판으로는 진작에 나왔고 독어, 스페인어 할 것없이 각국어로 번역된 지 오래다. 이 아름다운 책이 왜 이제서야 번역되어 나왔을까. 영어 제목은 <슬픈 바다의 천국>. '고해정토'란 '극락정토'의 반대말일 터이다.
'고해'. '고통의 바다', 인간 세상을 일러 '고해'라 한다. '고해정토', '고통의 바다의 천국'. 그러나 '극락정토'가 '극락'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고해정토'는 인간 세상을 말한다고 보아도 좋지 않을까. 영어 제목이 '슬픈 바다의 천국'이므로 '슬픈 미나마타'라는 제목은 아마도 영제목에서 영향을 받아서 지은 제목이 아닐까.
사실 이 책은 삼부작이다. 이번에 번역되어 나온 <슬픈 미나마타>가 제 1부고 제 2부는 <신들의 마을>, 제 3부는 <하늘의 물고기>다. 내가 읽은 책은 <고해정토>와 <신들의 마을>. 기록이지만, 고발문학이지만 더할 나위없이 아름답다. 읽어내려가는 동안 소름이 끼쳤으니까. 아직 번역되지 않은 <신들의 마을>은 소설인지 시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니까.
읽어가는 동안 알게 된다. 왜 미나마타 환자가 더 이상 인간답지 않은지. 미나마타병의 무서움은 바로 거기 있다. 인간을 인간답지 않게 만드니까. 읽어가는 동안 아주 잔잔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유키의 회상, 그러나 울부짖음이 가슴을 때린다. 유기수은으로 인한 중독이 뇌를 서서히 파괴시켜갔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피곤하다고 여겼을 뿐이다. 일을 많이 해서 몸이 힘들어한다고 여겼을 뿐이다. 이윽고 손과 발이 말을 안듣고 끝내는 온몸이 뒤틀려 내 몸은 내 몸이지만 내 말을 안듣는 내 몸이 된다. 병이 나라는 의식을 비집고 들어와 나 대신 내 몸을 차지해 가는 무서운 과정.
떠먹여줘도 먹을 수 없다. 먹는 일이 투쟁이 된 것이다. 마침내 유키는 네 발로 지탱한 채 먹기를 택한다.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 그녀를 웃게 한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을까. 내 몸에서 사라진 아기가 물고기로 변하는 환상을 보는 그녀.
유기수은을 버린 회사는 환경오염을 부인하고 정부는 눈 하나 깜짝 않는다. 바다가 썩어가도 동물들이 죽어가고 사람이 죽어가도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득일 뿐.
마음대로 걷지 못하는 미나마타 환자들을 다른 환자들은 경멸하고 비웃는다. 더러운 물건을 보듯 피하고 우스운 코미디를 보듯 웃어댄다. 어디 그들뿐일까. 미나마타 환자가 아닌 모든 이들, 내가 당사자가 아닌 모든 이들에게 미나마타는 극소수의 문제일 뿐.
유키의 의식 흐름이 인간에서 동물로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면 병원의 기록과 신문기사는 그 인간다움을 잃어가는 이유를 밝혀준다. 철저히 자기 중심적인 진실을 철저히 객관적인 진실이 뒷받침하고 있는 것. 그래서 이 소설은 설득력을 띠고 그래서 아름답다. 지극히 냉정하고 간결한 병원 기록, 해부 기록은 뇌에 구멍이 뚫리고 수많은 부분을 잃어버려 더 이상 인간다울 수 없는 원인을 보여주는데 누가 눈을 감을 수 있을까.
설득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뚜렷한, 그래서 삭막하고 건조할 수 밖에 없는 고발문학이 병원 보고서와 신문기사와 기록으로 엮어진 보고서 같은 기록 소설이 왜 아름다운가. 책 속의 바다는 환상처럼 다가오고 인간의 삶은 동화인듯 꿈결인듯 물결친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히 미나마타 병이 아니다. 미나마타 병을 불러온 원인은 칫소회사의 이기심일 뿐 아니라 산업화 사회에서 인간의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우리 모두의 이기심이라는 것. 자연의 오염은 결국 인간의 멸망이라는 것. 읽어보면 알게 된다. 그리고 생각하게 된다. 오늘 내가 버린 플라스틱에 관해서. 귀찮아서 사용한 일회용품에 관해서. 내 이기심에 관해서. 악착같이 이윤만을 따지는 곳은 어디 칫소 회사 뿐이랴. 남몰래 버리면 된다는 그 이기심이 어디 그 당시 일 뿐이랴.
이 글을 읽는 나는 산업화 사회에서 그 폐해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이런 책은 의식을 팽팽하게 한다. 늘어져 있던 정신을 되돌아보게 하고 생활을 방만하게 하던 휴식류의 책과는 달리 등을 꼿꼿하게 세운다.
참고: 유기 수은을 버려 미나마타 병의 원인이 되게 한 저 칫소회사는 해방전 우리나라 흥남에서 질소 비료공장을 운영하던 회사다. 녹색평론에 소개된 적 있으며 환경에 관심있는 이라면 누구나 보아야 할 책. 번역본이 나와서 몹시 반갑다. 이런 좋은 책을 왜 번역 안했을까 유감스러워 하던 중이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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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때 읽으려고 구매했던 책들중 한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