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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스캔들이라는 단어를 보고는 청소년들의 ‘풋풋한’ 연애얘기나 ‘추문’이 이는 연애얘기인 줄 알았다. 스캔들이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뜻 가운데에서도 요즘에는 유난히 그런 뜻으로 많이 쓰이지 않는가. 그래서 막연히 교사와 학생의 연애 감정, 남녀 친구들 간의 삼각관계 또는 동성 친구들 간의 어떤 감정 등 그런 얘기가 나올 줄 알았다. 어쨌건 이런 이야기들이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스캔들 범주에 들어가는 케이스들이 아닌가. 그런데 웬걸. 전혀 잘못 짚었다. 사실 여기서 스캔들이라는 말은 어떤 ‘사건’을 지칭한다고 하겠다. 물론 잠깐 마음 설레게 하는 감정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저 ‘사건’의 범주 안에서이다.
주인공(!) 이보라의 중딩 학교생활백서 1조는 ‘튀지 않는다, 밟히지도 않는다!’이다. 만만치 않은 중딩 생활을 보내기 위한 보라의 지침인데, 난데없이 천방지축 이모가 학교 교생으로 오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물론 공과 사를 분명히 구별하는 보라는 이모를 모른 척하고 이모도 나름 협조한다. 그런데 이모는 단순히 나이 서른에 외모가 빼어나서만 튀는 이모가 아니었다. 보통 사회의 범주에서 보면 용납하기 힘든 현실을 갖고 사는 이모였다. 그런 이모의 ‘사생활적인’ 사진이, 가면과 닉네임을 쓰면서 2학년 5반 아이들이 이용하는 비밀 카페에 뜨면서부터 사건은 크게 불거지기 시작한다. 이용도도 낮은 카페였지만 가면 쓴 아이들이 선생님들을 때리는 게임은 너무 한다는 댓글과 함께 아이들이 모두 한번쯤은 해본 게임이었다.
이모의 사진들과 카페 존재 사실을 담임도 학교도 차차 알게 되고, 담임은 교생의 수업 참관, 조례와 종례도 금지시킨다. 그에 대항하는 이모와 그에 열 받은 담임, 그리고 마침내 열 받은 담임이 작은 잘못을 한 인호를 가격하면서 일은 삽시간에 벌어진다. 학교와 교사를 비난하는 글을 올린 학생은 정학을 당하고, 학교와 교사들, 학부모 그리고 학생들 모두 경직 일변도로 치닫는 가운데, 마침내 동영상이 카페에 뜨고 아이들은 비밀카페를 공개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행동개시에 들어간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도 봤듯이, 결국 이 세상의 어떤 사회든 단체나 구조, 체제는 그게 어른들의 세상이건, 아이들의 세상이건 그 본질은 같다. 치사함, 비굴함, 협박, 반항, 배신, 영웅, 정의 등등이 모두 인간 내면에, 사회 속에 공존하는 감정들인 것이다.
이야기는 마치 추리물처럼 흥미진진하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밝혀지면서 재미를 더해간다. 실제 이야기가 전개되는 기간은 이모가 교생실습을 나온 한 달이지만, 그 한 달이 전체적인 학교나 교사, 학부모 등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라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조숙하지만 평범했고 또 범생이었던 이보라가 이젠 남들이 따가운 시선을 던지는 처지가 된다. 하지만 이제 보라는 ‘적어도, 나 자신의 시선에 대해서라면 당당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요즘 새롭게 배워가는 중이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사건을 겪고도 학교는 변한 게 없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늘 똑같을 것이다. 대신 그 가운데에서 우리 중딩 아이들은 나름의 이런저런 성장통을 겪으면서 때로는 힘들게, 때로는 덜 힘들게 만만치 않은 고집불통 학교에서 중딩 생활을 해내며 성장할 것이다. 생각하면, 한편 마음 한쪽이 아릿하게 아파오고 또 한편 아련한 추억이 깃든 내 중딩 생활이 떠올랐다. 그때는 왜 그렇게 웃을 일도 많고 울 일도 많았던지… 그립다, 그때가…
현실에 맞게, 아주 재밌게, 흥미진진하게 그려낸 청소년 소설을 만났다. 교사도 아니고 학부모도 아니고 중딩 조카를 둔 이모나 고모도 아니지만, 정말 재밌게, 단숨에 읽어낸 소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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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라는 문턱을 벗어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짧은 단발 머리에 교복을 입은 획일화된 모습으로 살았던 그 시절이지만, 겉모습의 동일함이 한 개인의 인격마저도 같음을 의미하진 않는다. 어른의 시각에선 유치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교실은 좋고 싫음의 감정이 난무하는 인간관계 역시 존재하는 하나의 작은 사회였었다. 다시 그 교실로 돌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핸드폰과 인터넷, 문명의 이기에 어른보다도 익숙한 젊은 세대가 만들어낸 문화는 여느 세대의 창조물보다도 활기찬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반이 이상적인 질서로 가득하길 바라는 담임 선생님의 권위적인 모습 하에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억눌려 있는 듯했다. 하지만 태초에(?) 세상은 평화로웠다. 저자가 주인공으로 내세운 인물인 이보라의 삶 역시 그런 세상을 닮아 있었다. 별로 튀지 않는 모범생. 자신의 이모가 교생으로 자신의 학교, 그것도 자신의 반에 나타나지만 않았더라면 그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조용히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모의 등장은 표면적으로는 고요하던 교실을 한바탕 흔들기에 충분했다. 물론 처음에는 교생이 주인공의 이모라는 사실 뿐만 아니라, 이모가 결혼하진 않았으나 아이를 키우고 있는 비혼모라는 사실 역시 아는 이가 없었다. 하지만 조무래기 아이들의 호기심은 한 사람의 아픈 과거를 들추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철저한 익명성에 기반한 인터넷 상의 카페를 통해 그들은 비밀을 공론화하기에 이르렀다. 끊임없이 빗발쳤을 학부모들의 항의전화와 사실을 무마시키기 위한 학교 측의 억압적인 모습, 하지만 책의 전반에 흐르는 긴장감은 이와는 다른 곳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부당함에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당찬 교생과 그런 교생이 자신의 이모임을 밝히는 주인공, 그리고 폭력으로 얼룩진 현장을 기꺼이 고발할 용기를 지닌 몇몇 친구들. 요동쳤던 학교라는 하나의 사회를 잠재운 것은 시간이 아닌 그들 자신의 힘이었다. 익명성에 기대어 발설한 내면의 목소리가 세상 그 어떤 소리보다도 진실을 담고 있었기에 이 모든 것은 가능한 일이었다. 새로운 담임 선생님의 등장과 함께 사건은 마무리된 듯해 보인다. 스스로의 힘으로 원하는 바를 얻었으니 전형적인 해피엔딩 구조라고 말해도 좋을까? 하지만 근본적인 구조가 변화하지 않는 한 학교 폭력이나 한 개인을 무참히 짓밟는 권위적인 모습은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한 것이 어른 아닌 아이의 힘에 의한 것이었다는 사실은 어른이 되어버린 나에게 부끄러움을 안겨주었다.
안타깝게도 난 학창시절에 대한 기억을 그리 많이 갖고 있지 못하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주인공 이보라보다도 어쩌면 더욱 평범했던, 그래서 나의 학창시절은 많은 부분 이미 망각의 영역으로 흘러 들어가버린지 오래다. 그 당시 나는 아픔도 성숙을 위한 하나의 과정임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때론 두렵더라고 앞을 향해 나아가야만 하는 순간이 있음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의 학창시절이 그토록 무미건조하고 재미없었나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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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이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겼다. 그러고는 인호를 향해 다시 손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뺨을 겨냥하지도 않았다. 인호는 쓰레기통에 몸을 기댄 채 두 팔 사이로 얼굴을 집어넣고 무작정 얻어맞았다. “선생님!” 이모가 달려와 담임의 팔을 와락 움켜잡은 것이었다. “선생님, 왜 이러세요!” 이모가 다시 외쳤다. 나는 입 안 가득한 신 침을 삼키지도 못하고 담임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담임이 와락 들어 올렸던 손을 부르르 떨며 천천히 내렸다. 그러더니 인호의 셔츠를 움켜쥐고는 한 손으로 뒷문을 열고 인호를 밀어버렸다. 그리고 문을 닫고는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 나왔다. 교단을 지나쳐 창가로 가서 팔짱을 척 끼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74-75쪽 발췌)
졸업한 지 스무 해도 넘은 중학교 교실에 앉아 있는 것처럼 섬뜩합니다. 수업 시간에 핸드폰 문자가 들어오는 소리 때문에 교실에서 쫓겨나던 인호가 욕을 했다고 구타당하는 모습입니다. 그것도 젊은 교생 선생님이 지켜보는 상황입니다. 학생이 구타를 당하는 원인이야 다르지만 어쨌든 매를 맞는 풍경은 예전과 다를 게 없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의 반응은 같으면서도 사뭇 다릅니다. 교실 밖으로 밀려나는 인호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공포에 떠는 것이야 예나 지금이나 같지만 그것을 자신들만의 인터넷 비밀 카페에 올리고 공론화하는 과정은 다른 모습입니다. 물론 여러 요인들이 개입을 하며 공론화가 가능했지만 공포에 떨다가 입도 벙긋 하지 못하던 우리 세대와는 분명 다릅니다. 인터넷 비밀 카페를 만들어 교생 선생님의 사생활을 들추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당당해질 수 있는 자리를 만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십대의 풍속을 경쾌한 문체로 예리하게 파고든 작가가 믿음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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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차이... 내가 청소년기였을 때에는 속으로 수없이 되뇌던 말이지만 지금은 듣기 싫은 말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특히 딸에게서 그런 소리를 듣기라도 한다면 그동안 노력했던 것이 허사가 되는 것 같아 화가 나기까지 한다. 워낙 권위적이거나 틀에 박힌 것을 싫어하는 성격인지라 나도 아이들에게 되도록이면 권위를 내세우려 하지 않는다. 그래도 시간 차이는 어쩔 수 없는지 간혹 딸의 행동이나 말이 용납이 안 될 때가 있어서 잔소리를 하게 된다. 그러면서 하는 말, 요즘 아이들은...
정말 요즘 아이들은 우리 때와는 너무도 다른 생활을 하고 있다. 저마다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며 좋아하는 가요를 듣기도 하고 화가 나면 그걸 푼다고 쇼핑을 한다고도 한다. 예전 같으면 그건 처음 사회생활 시작할 때의 모습이 아니던가. 물론 내가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런 문명과는 약간 동떨어진 생활을 했기에 더욱 큰 괴리감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여하튼 많이 다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니 달라지지 않은 게 있다. 바로 교실에서 사제지간의 풍경.
간혹 포털 사이트에서 체벌 당한 이야기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또 주위 학교에서 어떤 선생님이 심하게 체벌을 해서 문제가 된 적도 있다. 그 경우 분명 한 쪽의 일방적인 잘못은 아닐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요즘 아이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 예전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는 동안 내심 보라의 담임 선생님이자 수학 선생님이 아이들을 체벌하는 이유가 실은 아이들은 모르는 어떤 사실이 숨겨 있지는 않을까 기대했었다. 나중에 선생님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 아이들에게도 자신의 과한 체벌을 사과하여 잘 해결되리라고 생각했다. 왜 우리의 아동문학에서 끝맺음을 대부분 그런 식으로 하지 않던가. 그러나 내 예상과 기대는 전혀 빗나갔다.
무엇보다 반 아이들이 모두 가면을 쓰고 가상의 공간에서 벌이는 몰상식하고 때론 비열하기까지 한 행동들은 기실 현재 아이들의, 아니 사람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제 인터넷 상에서의 비방성 글이나 인터넷 예절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은 '잔소리'로만 인식될 뿐이다. 맞는 말이지만 듣기는 싫은 잔소리...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책은 그런 문제점들을 아이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이 하면서 잘 표현하고 있다. 겉으로는 당당하고 쿨하게 지내지만 가면을 쓰면 비열해지는 인간의 모습도 보이고 권력 앞에서 자신이 다칠까봐 내지는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서 아부하는 모습도 보이고, 속이 없는 듯 언제나 웃고 있지만 실은 자신의 못난 모습이 싫고 주눅들어 있는 모습도 보인다. 그야말로 교실에는 온갖 종류의 인간군상들이 있는 셈이다.
거기에 하나 더 있다. 바로 교실에 새로 온 교생인 미혼모 이야기. 그녀를 바라보는 제도권의 시선도 있으며, 밖에서라면 당차다거나 멋있다는 둥의 이야기로 흘려들었겠지만 자기 아이가 있는 학교에서는 절대 안 된다는 학부모들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쩌면 이것은 그저 지어낸 가상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지금의 현실 문제인지도 모른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현실에서는 미혼모라는 사실에 본인이 그런 엄두를 내지도 못한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일까. 여하튼 담임이 학교를 그만두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지만 과연 아이들의 마음 속에서도 그럴까. 아마 이 사건을 계기로 아이들은 한층 자라게 될지도 모른다. 원래 아프거나 힘든 일을 겪고 나면 자라는 법이니까.
간결한 문체와 정작 1인칭 주인공 시점임에도 그다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듯한 전개가 읽는 이를 더 감정에 휩싸이게 한다. 청소년기 아이들의 고민과 이야기가 다 들어 있으면서도 그 속에 들어 있는 문제점들을 그냥 넘기지 않는다. 피상적인 것만 좇는 요즘 아이들이 이런 책을 계기로 사물과 사건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았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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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빛중학교 2학년 5반, 이보라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답답한 학교에서 답답한 학생 노릇을 하며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
'그래, 학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어. 아이들은 이렇게 변해가고 있는데, 학교의 어른이자 실질적 주인인 선생님은 언제나 아이들 길들이기에 여념이 없지. 게다가 더욱 아이들의 숨통을 쥐어짜는 수행평가, 그러니 갈수록 아이들이 학교를 전쟁터로 인식할 수 밖에.'
책을 다 읽은 후 나오는 건 한숨 뿐, 내 지난 시절의 학창 시절을 두서없이 떠올리게 만들었다. 학교에 교생이 온다는 처음 부분에 중학교 때 만난 얼굴이 귀공자처럼 말쑥하게 생겼던 영어 교생 선생님이 떠오르면서 문득 그 영어 선생님이 수업하고 있던 교실로 심부름을 가면서 가슴 두근거리던 순간의 영상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때 내 눈을 보고 고맙다고 말하던 교생 선생님의 얼굴은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다. 그 후 우리 반 국어 교생이었던 선생님이 떠날 때는 집에서 쓴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던 기억까지, 교생 선생님과의 즐거운 만남은 나의 학창 시절을 잠시나마 탄력적으로 만들어 주었던 시간이었다.
내가 학생으로 보냈던 시간과 오늘 날 이보라가 보내는 학생이라는 시간은 거의 비슷하다.
그만큼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학교만큼은 더디게 변화를 회피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보수적인 면모를 회색빛 시멘트 건물에 위풍당당하게 씌운 학교. 과연 오늘의 학교는 희망적인가?
우선 창비에서 첫 청소년 소설로 '우리들의 스캔들' 이라는 작품이 출간 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눈에 확 들어오는 책 표지에 호기심이 잔뜩 생겨났었다. 그러다가 읽게 된 책. 그 첫 느낌은, 좋았다.그리고 반가웠다.
청소년 문학은 사계절 1318문고나 비룡소 등이 있지만, 아직까지는 활발한 시장이 형성되지는 않았다고 본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세계명작이나 한국단편소설을 읽어야 학생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교육현실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수업 시간에 아이들한테 아무리 좋은 단편문학을 읽게 해도 돌아오는 답은 언제나 어렵다, 혹은 재미없다이다. 또 대개의 작품이 과거에 기대어 있기때문에 공감대 형성은 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그만큼 한때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유진과 유진' 등의 청소년 문학이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졌던 것도 그들의 반가운 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자신과 똑같은 또래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현실을 되돌아 보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 자체에서 독서의 즐거움을 찾는 것 같다. 우리 반에서 유진과 유진을 읽은 아이들은 하나 같이 말한다. 이야기가 작은 유진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임에도 그건 뒤로 하고, 때론 가출도 필요한 것 같다는 등, 가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만큼 요즘 아이들은 가출을 계기로 답답한 가정이나 학교를 벗어나는 꿈의 유혹을 달콤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 현실 속에서 그들의 학교를 본격적으로 보여준 '우리들의 스캔들'은 아이들이 반가워 할 다음 작품으로 손색이 없을 듯 하다.
이야기는 보라의 이모가 자기 반 교생 선생님으로 온 것 부터 시작된다. 그 후 눈에 띄는 교생선생님에게 관심을 보인 정체불명의 L이 이모의 싸이에 들어가서 이모의 핸디캡이 될 만한 사진을 자기 반의 인터넷 카페에 올리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여기서 0205비밀의 방이라는 인터넷 카페가 사건의 중심지로 자리하고 있는데, 반 아이들이 가입된 반 카페로, 자신의 정체는 숨기고 활동하는 곳이다. 그래서 나중에 이모의 사진을 올린 L이 누구인지, 그리고 용감하게 학교의 부정을 폭로하려 했던 프로도가 누구인지...점점 궁금증을 갖게 만드는 묘미도 있어서 글에 더 몰입하게 만든다. 마지막에 가서는 찡한 울림도 전달한다. 진실을 찾고, 정의를 향한 아이들의 몸부림은 그 자체로도 감동이었다.
제목이 우리들의 스캔들이라서 문득 '연애'라는 내용으로 짐작했던 내 예상은 빗나갔지만,
2학년 5반의 제대로 된 스캔들을 제대로 다루고 있다. 선생님의 폭력, 미혼모 교생에 대한 사회적 편견, 학생을 성추행하는 선생, 그리고 불량 학생으로 찍혀서 가출하는 아이 등등.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을 여러 인물을 통해 빠른 전개로 이야기 하고 있다.
늘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학교에서는 하인처럼 약자에 서 있게 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은 미래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현실의 고달픔에 한숨을 푹푹 쉬기 일쑤이다. 우리 반 애들을 보면 정말 공부 잘 하는 애들은 뭐든 상황을 즐기면서 잘 해나간다. 그러면서 꼭 하는 말이, 자기는 참 바쁘다는 것이다. 바쁘다는 말을 정말 늘 내뱉는다. 책 읽을 시간도 없을 정도로, 시험 기간에는 공부에 온 시간을 할애하며 전투채비에 들어간다. 그러면서도 시험때는 더 바쁘다, 라는 말을 잊지 않고 한다. 정말이지 요즘 아이들은 어른인 나보다 더 바쁘다. 노는 것도 집에서 엄마가 30분 정도 허락해주는 컴퓨터 게임이 전부이다. 오로지 공부를 위해 학습되는 아이들의 모습은 교육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오늘과 미래가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인다. 아직 애도 갖지 않는 여자들이 주로 하는 말 중에 나중에 애 교육비 나갈 생각을 하면 걱정부터 앞선다는 게 있는데, 정말 이러다 교육 강대국이 되겠다. 스파르타의 일인자로 명성을 휘날리며, 선생님과 엄마들은 더욱 악독한 철 심장으로 무장을 하고 학생이라는 아이들을 훈련 시키는 데 온 정신을 쏟을 것이다. 물론 나라의 발전과 더불어 개인의 성공을 위해서는 공부는 필수이다. 하지만 너무 아이들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건, 아이들을 점점 벼랑 끝으로 밀어내는 것임을 한번 더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아이들이 이따금씩 눈을 번쩍이며 이야기하는 것들은 특별활동 시간에 한정되어 있다. 아니면 기막히게 재밌는 영화를 봤거나, 학교에서의 재밌었던 사건들이다. 하지만 그 속에 공부는 없다. 학교 수업은 언제나 아이들을 피곤하게 만들 뿐, 아이들은 수업이 많은 날은 파 김치가 되어서 학원에 와서 쉰김치로 변해간다.
반면에 자신이 좋아하는 프라모델을 만들거나, 좋아하는 친구와 영화를, 볼링을, 생일 파티를 즐기고 온 아이는 언제나 행복해 보인다. 또 중국어 선생님이 수업하다말고 울고 나간 일은 여러 반을 거치며 속보로 다루어 진다. 늘 똑같은 시간표에 똑같은 선생님으로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조금이라도 그 일상과 다른 변주가 일어날 때는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들의 스캔들은 공부에 지친 아이들이 잠시나마 눈을 번쩍 뜨게 만드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물론 여전히 학교에서 약자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아이들이지만, 그래도 끝까지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이야기 속의 친구들을 보며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어떻게 학교 생활을 하는 게 좋을 지...정말 자신들이 학교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무엇이 변해야 하는지도 말이다.
내가 학생 때 이 책을 만났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아쉽게 끝난 보라의 첫사랑 그림자에 미련을 두었을까, 아니면 당시 교생 선생님을 한번 더 바라보면서 짝사랑을 꿈꿨을까. 일명 날라리라고 찍힌 애들을 좀더 고운 시선으로 바라봤을까...여러 생각이 든다.
대개 1318문고라 칭해지는 것들은 학창 시절의 고리타분한 회고록이거나, 외국 작품에 기댄 것이 많다. 이제는 과거 이야기만 할 것이 아니라, 자라나는 아이들에 맞게 그들의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그리고 밝고 명쾌하게 그려나가는 작품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청소년 문학도 동화처럼 마땅히 존재해야 할 문학으로, 책을 찾아서 책을 읽는 청소년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스캔들, 앞으로도 계속 될 이야기.
-덧붙여서 작품 속에 비밀의 방에 가입된 반 아이들의 정체를 밝혀 나가는 과정에서 신여랑 작가의 이름과 이용포 작가, 최나미 작가의 이름이 나오기도 한다. 솔직히 몽구스 크루의 신여랑 작가의 글은 실망한 부분이 많아서 반갑지 않았지만, 이 기회에 이용포 작가의 느티는 아프다는 기회되면 꼭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동화 버럭할배...에 대한 인상이 좋았기 때문. 그런데 청소년 문학 수상작인 강미의 길위의 책이나 몽구스 크루는 아이들한테서 많은 공감을 못 얻고 있는 것 같다. 길 위의 책은 솔직히 나도 공부한다는 기분으로 읽었었다. 책에 대한 담화가 좀 지루했던 것. 그래도 다 읽고 나면 남는 것은 분명 있다. 하지만 대개의 아이들이 이 책은 상당히 힘들어 한다. 그리고 몽구스 크루는 제목 때문에 읽다가도 금세 유치하다고 하면서 손을 놓는다. 어쩌면 공부밖에 모르는 아이들에게 있어서 춤추는 애들은 날라리로만 보이는 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사건도 별로 없고, 몽구가 춤에 빠진다는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의 다큐멘터리 정도. 아무튼, 좋은 청소년 문학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아, 이현 작가의 짜장면이 불어요도 어서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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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내가 읽기 위해서라기보다 선물을 하려고 샀다 중학생의 이야기라고 하길래.. 지금 과외를 하고 있는 중학교 여자친구에게 하려고 말이다 그런데 일단 간단한 줄거리만 보고는 어떤지 몰라 슬쩍 내가 먼저 읽었다 중학교 시절의 이야기이지만 가볍지만은 않다 물론 문체나 어떤 시사하는 정도 이런 저런 것들이 아주 무겁거나 깊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시절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어떨까하고 고민할 법한 이야기들이다. 미혼모의 이야기 자신의 의지나 생활과는 상관없이 떠밀려 사는 이야기 한 교실에서 자신의 존재감 가면을 쓰는 인터넷 상의 까페에서의 삶과 실제 나의 이야기 내가 알지 못했던 내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나의 옆.. 같이 숨을 쉬고 지내던 사람들의 이야기 학교에서 자행되는 폭력 학교 역시 진정한 배움이라기 보다는 권력에 의해 좌우될 수 있는 공간이란 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나를 다시 일깨워준 것 같다. 아직 이 책을 그 친구에게 선물해야 할지 고민이다. 물론 내용중에는 공감이가는 내용도 있겠지만 말이다. 솔직히 요즘 아이들이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알기 어렵다 내가 그 입장을 넘어 이제 다른 입장이 되어 그런가?
같은 교복을 입고 교실의자에 있지만 각기 다른 곳을 바라보며 가면을 쓰고 있는 아이들.. 자신을 다 드러내지 못하고 살아가야 하는 모습들 겉표지를 보면서 내용을 다시 떠올려본다 그리고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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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 노릇’하기 힘든 아이들의 이야기. ‘아이들’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반사작용처럼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사건사고의 속을 거닐면서, 미운 짓도 제법 해대는 녀석들이지만 사랑스럽다. 행복한 학교와 교사생활이 내 동경의 세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참교육을 실천하는 교사에 대한 소명의식이나 남다른 사명감이 있어서는 더더욱 아니다.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함께 고민하고, 웃고 떠드는 것이 그냥 행복하다. 사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늘 가르치는 것 보다 배우는 것이 더 많았다. 아이들은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시각은 예리하고 정직하기 때문이다. 투명한 습자지 같다. 이현의 「우리들의 스캔들」은 학교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을 중심으로 교사와 학생, 학교와 교사, 학교와 학생, 학생과 학생 등의 갈등을 그려내고 있다. 규칙과 질서를 강요하는 관료적 집단인 학교와 인터넷이라는 공간의 익명성 등 우리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언론에서 심심치 않게 접하는 학교의 사건사고들을 잘 버무려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문학이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 이상의 기능을 갖는다고 볼 때, 이 소설은 적지 않은 아쉬움을 남긴다. 불편한 사회의 현실을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유쾌하고 즐겁게 들춰내고는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일상 같은 이야기가 ‘청소년 문학’으로써 아이들에게 어떤 역할을 해줄지가 의문이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들은 생활의 주 무대가 ‘학교’인 아이들에게는 특별할리 없는 일상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청소년 문학’이라는 타이틀이 제 기능을 하기위해서는 등하교시간과 쉬는 시간 틈틈이 나누는 일상의 수다를 넘어서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등장인물이 청소년이고, 소설의 배경이 학교라는 이유로 ‘청소년 문학’의 조건을 다 갖췄다고 볼 수는 없다. 벌써 반년이나 되었지만, 처음 ‘창비 청소년 문학’을 접했을 때 무척 반가웠다.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이 읽어야할.. 등의 수식어가 붙은 문학들은 교과서문학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들이었고, 수능과 언어영역을 떠올리게 하는 이런 작품들은 아이들에게 ‘즐거운 문학’이라기보다는 ‘국어학습’의 연장으로 인식되기 십상이었다. 따라서 아이들은 자연스레 문학과 책에서 멀어지고, 문학은 따분하거나 어렵고 재미없는 것으로 생각되곤 했다. 아동과 어른의 중간 단계인 청소년들은 동화책과 성인 문학사에서 설 자리가 좁다.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 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시도는 반가우면서도 조금 걱정스럽다. 청소년 시기의 아이들은 탱탱한 초록빛깔의 싱그러운 청포도 같다. 이런 아이들을 생각하면 단내와 시큼함이 입안가득 고인다. ‘참, 예쁘다...’라는 감탄사 밖에는 그 어떤 미사여구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 싱그러운 사랑스러움, ‘창비 청소년 문학 시리즈’가 햇살과 거름이 되어 그 싱싱한 사랑스러움에 한 몫 거들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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