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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구치 안고가 말하는 타락론이라는 제목만 들으면 도대체 무슨 타락을 말하는 것인지, 일반적으로 타락이라는 단어는 부정적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타락한 어두운 성향을 고발하는 책인가? 하는 생각이 스칠 수도 있지만, 책을 읽어보면 오히려 정반대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실제로 부정적 의미에서 타락한 것은 일본 및 일본인이며 그러한 일본의 타락 속에서 진정한 인간의 본성과 영혼을 발견하고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존의 타락한 것들을 파괴하는 위대한 타락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희망을 향한 관문으로서 반드시 성찰하고 고뇌하는 괴로운 타락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의미에서 결코 비관론이나 정신적 해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받아들였다. 사카구치 안고는 죽음을 미화하고 죽음을 통해 삶의 완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은 일본미학가들에 비해 누구보다도 살아있음과 생존 그 자체에 대한 의미를 중요시한 작가가 아니었나 싶다. 개인적으로는 역시 백치가 제일 좋았고 왜 그렇게 유명한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기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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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집이라기엔 단편들 간의 유기적인 느낌이 아쉬웠다. <타락론>처럼 직접적인 메시지를 담은 산문은 차라리 부록처럼 뒤로 빼버렸음 어땠을까 하는 지극히 개취적인 의견. 자전적인 성격이 짙은 전반부 소설들과 백치, 마지막 벚나무 모두 좋았고 특히 <백치>에서 노골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타락'론이 뭔지도 내 깜냥 내에서는 알 것 같다. <타락론>에서 역설하듯 모든 허위를 벗어던지고 올바르게 또 온전히 타락해봐야 구원의 길도 스스로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몸소 보여주는 듯 그려진 백치 여인. 그러나 그 뒤를 잘 모르겠다. 타락까지는 알겠는데, '구원'이라는 말까지는 이렇게 직접적으로 자신 있게 사용하진 말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은 오만일까? 고개 돌리지 않고 올바르게 온전히 타락해보기, 그 출발점에서 한창 버둥대는 와중에 대뜸 저 멀리 흐릿한 구원으로 건너뛰어버리는 느낌? 끝까지 타락해보기엔 여러모로 유한한 인간의 한계라는 벽이 있다는 모순을 작가가 외면하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어설픈 타락을 어떻게 극복하며, 그다음은? 이렇게 되돌이표 같은 어설픈 질문밖에 못 하는 나 자신이 가장 유감스러움.ㅜ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