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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민족국가의 죽음을 예고하는 시기가 있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바짝 무르익은 전지구적 신자유주의는 유목주의라는 현학과 더불어 민족국가의 기초와 경계를 허무는 여러 현상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시장의 일방적인 독주에 의해 전형적인 국가행위는 축소되고, 작은 정부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적 태도로 인하여 복지국가의 운영도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다. 슈퍼국가라는 요지부동의 지위를 차지한 미국은 '911사태'를 전후로 전지구적 정치질서에 있어서 일종의 지각의 변화를 불러왔다.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공화국으로](2006)는 911 이후의 현실과 전망을 거시적으로 고찰하는 작품으로, 자본주의/민족/국가의 삼위일체에 대한 비판과 극복이라는 문제의식과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여기서 '세계공화국'이란 칸트가 [영구평화론]에서 제기한 이상으로, 이 책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극복 가능성, 즉 근대 민족국가에 대한 비판과 극복의 가능한 대안으로 제시된다.
[세계공화국으로]는 가라타니 고진의 저작물을 통틀어 대중적인 눈높이에 가장 잘 맞춘 책이다. 비록 교환형식, 세계제국, 세계경제, 세계공화국이라는 거시적 관점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해하기 쉬운 편이다. 저자는 생산이 아닌 교환의 시각에서 자본주의와 민족국가의 기제를 분석한다. 전작 [트랜스크리틱](2001)에서도 저자는 호수(互酬), 재분배, 상품교환이라는 세 가지 교환양식으로 각각 민족, 국가, 자본을 고찰한 뒤 이들 세 교환양식을 초월하는 제4의 교환양식인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을 발견한 바 있다. 이런 발견은 저자가 칸트의 사유를 적극적으로 점유하고 창조적으로 재생산한 덕분이다. 어소시에이션은 자본과 민족과 국가의 삼위일체를 극복하는 대안기제로 자리매김된다.
교환양식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일본식 한자인 호수(互酬)란 바로 호혜성을 의미하는데, 공동체 내부의 증여와 답례에 기초한 교환양식으로 민족의 형성기제다. 재분배는 약탈과 더불어 공동체와 공동체간의 오래된 교환양식으로 국가의 형성기제가 된다. 상품교환은 비교적 뒤늦게 시작된 공동체와 공동체간의 교환양식으로 자본의 형성기제다. 마지막으로 '연합'이라 번역할 수 있는 어소시에이션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개념으로 바로 세계공화국을 건설하는 핵심기제가 된다.
저자는 노암 촘스키의 구분에 따라 불평등/평등을 가로축으로, 통제/자유를 세로축으로 하여 4가지 국가 유형을 구분한다. 리버럴리즘, 복지국가자본주의,국가사회주의,리버테리언 사회주의가 그러하다. 그러나 소련이라는 국가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즉 신자유주의의 나팔수들이 말하는 '역사의 종언' 이후 리버테리언 사회주의 역시 종언을 고하는 듯 쇠퇴했다. 저자의 어소시에이션에 근거한 세계공화국은 바로 리버테리언 사회주의에 속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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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읽은 가라타니의 저작 중에선 가장 간결하면서 이해하기 쉬웠다. 이 책의 주요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자본제 이전의 사회구성체에선 국가도 생산양식의 일부로, 경제적 구조와 정치적 구조의 구별이 없다. `생산양식`이란 관점에선, 마치 구별이 있는 것처럼 보이므로, 혼란을 막고 사회구성체 역사를 보편적으로 보기 위해선 `생산양식`은 쓰지 않는 게 좋다. `생산양식`이란 표현은 교환이나 분배가 이차적인 것으로 간주되므로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선 생산양식보단 `교환양식`이라 불러야 한다.
네 가지 기본적인 교환양식이 존립하는 위상을 명확히 하고 어떻게 연관되는가를 보기 위해 자본제 이전 세계=세계제국과 자본제 이후 세계=세계제국으로 장을 나누었다. 세계제국은 고대부터 세계 각지에 있었던 국가로 교역권, 문명, 세계종교로 통합한다. 고대국가, 부족사회는 제국과 관계하면서 그 주변이나 아주변에 위치했다. 15,6세기 성립된 세계시장에서 분리되어 있던 다수의 세계제국이 연결되고 그 내부에서 다수의 주권국가로 분해, 성립된 세계가 `세계경제`다. 세계경제 안에서 세계제국은 해체되었고, 발전된 중추부와 미개발된 주변부로 나뉘어졌다.
가라타니 주장의 핵심은 생산양식이 아닌 교환양식으로 사회구성체를 봐야한다, 그리고 국가는 공동체 안에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다른 공동체와의 관계에서 존재하므로 국가의 지양은 공동체 안에서만으론 되지 않는다, 마르크스가 국가주의적이라서 국가주의적인 독재체제를 초래한 게 아니라 오히려 국가가 간단히 사멸할 것이라 봤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로 `세계제국`과 `세계경제`란 제목이 붙은 장에선 교환양식과 사회구성체의 역사적 흐름을 차례대로 보여주면서 어떻게 변화했고 어떤 형태로 나타났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장 `세계공화국으로`는 이 책의 총론이자 마무리 부분이다. 그는 여기서 네그리와 하트가 말하는 `다중`의 한계에 대해 말하고 다중은 국가를 극복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국가는 국가 안에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다른 국가 사이에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중의 반란은 국가의 지양보다 국가의 강화로 귀착된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라타니는 칸트를 들고온다. 칸트는 영구평화를 위한 국가연합을 구상했는데 그 구상의 바탕엔 국가의 본성은 없애지 못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었다. 칸트는 국가연합이 인간의 이성이나 도덕성에 의해 실현되지 않고 인간의 `반사회적 사회성`, 즉 전쟁으로 실현된다고 생각했다. 칸트의 이념은 각국이 주권을 방기함으로 형성되는 세계공화국에 있다. 국가는 다른 국가에 대해 존재하기 때문에 한 나라 안에서만 국가를 지양하는 건 불가능하다. 국가에 대항하기 위해선 국가 내부에서 부정하는 것만으론 국가를 지양할 수 없다. 그러므로 각국에서 군사적 주권을 서서히 국제연합에게 양도하고 국제연합을 강화, 재편성해야한다. 각국에서 주권을 방기하는 것 외에 국가를 지양하는 방법은 없다. 그런 `위로부터`의 운동과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연계하면서 새로운 교환양식에 기초한 어소시에이션이 실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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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크리틱 : http://blog.naver.com/ghost0221/60118774250 가라타니 고진의 저작을 몇 권 읽어보기는 했지만 여러 저작들에서 인상적인 논의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결국 가라타니 고진을 지금과 같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만들게 된 것은 ‘트랜스크리틱’ 덕분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전에도 이름을 떨치기는 했지만 지금만큼은 아닌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트랜스크리틱’ 전후의 가라타니 고진은 분명 다르다는 말을 해야만 할 것 같다. 비평가의 위치에서 사상가의 위치로 올라선 가라타니 고진은 마르크스(이하 맑스)의 논의들을 다시금 재검토하면서 칸트, 헤겔 등등 여러 사상가 철학자 학자들의 논의들을 두루 살펴보면서 지금 이 시대를 어떤 식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 어떤 대안을 내놓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 노력과 제안들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며 구체성과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를 찾을 수 있기도 하겠지만 흥미를 끌게 되기도 하고 관심을 갖게 되기도 한다. ‘트랜스크리틱’ 이후에 발표한 ‘세계공화국으로’는 ‘트랜스크리틱’과 마찬가지로 변혁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가라타니 고진의 고민과 그 고민에 대한 어떤 대답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고 명료하고 쉽게 이해될 수 있도록 자신의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기 때문에 가라타니 고진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도 쉽게 그의 생각에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계속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자본=네이션=국가라는 보로메오의 매듭을 넘어서기 위한 제안을 확인할 수 있는 ‘세계공화국으로’는 당장 제목부터 칸트의 논의를 떠올리게 되고 있고 칸트의 논의를 어떤 식으로 지금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고 있는지를, 맑스의 논의를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갱신하려고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라타니 고진이 주장하는 어소시에이션이 얼마나 구체성을 갖고 있고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란타니 고진이 보여주는 자본=네이션=국가에 대한 분석은 무척 인상적이고 기존과는 조금은 다른 이해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흥미롭게 읽혀지는 것 같다. 개별적으로 파악하려고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걸 개별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닌 종합적인 이해가 필요함을 계속해서 강조하며 여러 역사와 철학 그리고 사상과 분석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면서 지금과 같은 단단함을 보여주는 자본=네이션=국가라는 매듭을 벗어날 수 있을지를, 지양할 수 있을지를 모색하고 있다. 그 넘어섬을 위한 방식으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아닌 칸트가 주창했던 세계공화국을 통한 위로부터의 억압을 말하고 있고, 그것에 대해서 상세한 논의를 모색하려고 하고 있는데, 얼마만큼의 설득력과 가능성을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고민과 노력 그리고 구체적인 제안과 대안을 내놓으려고 하는 시도에 대해서 계속된 관심이 기울게 된다. 가라타니 고진은 계속해서 변혁을 위한 무언가를 생각하고 말하려고 하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