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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무라카미류라고 적힌 책들이 모두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를 따라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혼자 엉뚱한 상상을 했던 적이 있다. 혼자서 그럴싸하게 '류'라는 글자가 분류를 나타낸다고 단정지어버렸으니...그리고는 무라카미류의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이상하다 혼잣말을 했던것이다. 여러명의 작가들(무라카미 하루키를 닮아가려는 사람들)의 단편을 모아놓은것이어야하는데, 한명이 줄곧 쓴 느낌이니 거기서 나의 상상력이 지쳐 쓰러져버리면 좋으련만, <아~하 그럴싸하게 여러명이 이어쓰기를 해서 한편을 완성했군.>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아뿔사~이제 생각하니 나의 상상력을 관장하는 부분이 크게 고장나버린 것이리라.
나는 개인적으로 주변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그야말로 관찰자의 눈으로 생각의 여지를 남겨두는 작가와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를테면 주인공의 외모와 감정에만 포커스를 맞춘 '집중적'인 글보다는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 얼핏 하찮아 보이는 물건에까지 온기가 닿는 느낌의 '분산적'인 글이 더 인간적으로 보이는것이다. 사실 하루하루를 살면서 '나'에게만 관심을 가지는 '나'와 대면하는 일은 이제 너무도 지루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책 속에서 만나는 그 제한적인 서술들이 현기증을 일으킬만큼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무척 신선하다. 각 챕터는 각기 다른 서술자와 주변인들,장소와 시간들로 알차게 들어차있다. 중간에 크리스마스라는 챕터만이 유일하게 장소가 아닌 시간이고, 나머지는 모두 특정 장소에서 관찰된 내용이다. 서술자는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거나 눈길을 주지않는 노숙자로부터 집요하게 시선을 떼지 못하고, 공항에서는 여행을 즐기고 돌아오는 노부부에게, 피로연장에서는 초대받은 사람들과 주인공 커플에게, 노래방에서는 방탕한 길을 걷고 있는 10대 소녀들에게 관찰의 시선을 줄기차게 주고있다. 이는 어쩌면 갖가지 사연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들이 각각의 시간과 공간에서 주변인들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고 살아있음을 인식하는 과정일런지도 모른다. 내가 살아있다는것을 증명하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내가 주변인들과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만큼 확실한 증거가 또 있을까?
우리 인간은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사는게 아니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인생이 쉽게 풀리는 것도 아니야. 중요한 건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먹느냐 하는 거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보다 누구와 알고 지내는지가 더 중요해. -'크리스마스'p.117
작가후기를 보면 그가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궁극적으로 '희망'이라고 한다. 얼핏 각 챕터의 주인공들은 평범한 모습이지만, 그들 내면에 감추어진 불완전성이 그들로 하여금 자기 존재감을 인식하도록 끊임없이 종용하고 있다는것을 알수 있다. 진수성찬을 먹고 있는 '사람'을 뛰어넘어 소박하지만 행복한 만찬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불완전한 톱니바퀴를 맞붙여 완전성에 가까워지려는 인간의 본성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결국 존재나 희망이나 모두 불완전한 개인에게는 제한적인 그 무엇인가보다. 오늘 나는 불완전함이라는 인간의 본질을 극복하려는 '우리'를 발견하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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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의 젊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일본 작가 중 하나가 바로 무라카미 류가 아닐까 싶다. 가끔 한국에서 대중적 인기를 얻는 혹자의 소설을 읽다보면 그의 냄새가 물씬 느껴 질 때가 있다. 그런 유형(일본 작가의 성향)의 소설은 인기를 많이 얻는다. 정랄 하고 직설적이며 자극적인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마치 무언가를 몰래 훔쳐보는 스릴과 흥미를 글을 통해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보면 독자들 중 꽤 많은 사람이 관음증이 있는 것 같다. 작가들은 그런 점을 잘 파고들어 그들의 구미에 알맞게 글을 써 낸다. 결국 글이란 대중들에게 보여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해는 된다. 하지만 그 영향의 파괴력 또한 무시할 수 없어 걱정이 되기도 한다. 결국 유행과 문화를 이끌어 나가는 힘 중 하나가 글에 있음을 무시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일본 작가들의 소설이 우리에게는 자극적으로 느껴질지 모르지만 일본 사회 속에서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이야기일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접해온 일본의 대중문화 그 중에서도 만화책을 보면 ―물론 완전한 사실을 말하지는 않지만- 우리와는 다른 그들의 삶을 자세히 알 수 있다. 뭐랄까? 굉장히 개방적이다. 우리 사회가 일본 사회보다 확실히 보수적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그런 만화나 글을 재밌게 웃고 즐기며 읽기는 했지만 언제까지나 텍스트 안에 국한시켰다. 실제 우리 사회 속과 너무 동떨어졌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 특히 젊은 층에서는 그런 구별 의식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들은 무분별하게 받아드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비단 일본 문화 뿐 아니라, 점점 국적을 알 수 없는 문화들이 들어와 혼란스럽게 짬뽕되어 가는 현재 사회를 보면 막막하기 그지없다. 시대는 우리에게 구분할 줄 알고 비판할 수 있는 판단의식을 요구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따라가지 못한다. 오히려 갈수록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해 새로운 사회 문제와 범죄들이 발생하고 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어떤 글을 접하든 자기 주관을 갖고 접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과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식이 많고 적음이 대수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준점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수준과는 상관없이 이런 사고가 있어야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바람에 몸을 떠맡기듯 휘둘리지 않는다. 현재 대한민국은 휘둘림 현상이 심각하다. 한 예로 내 친구 중 하나는 석사까지 공부를 했음에도 자기 주관이 없다. 항상 자신을 지도해 준 교수의 성향에 질질 끌려 다닌다. 무조건 그의 의견에 모순이 없고 좋단다. 그래서 내가 그렇다면 도대체 네 주장은 뭐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직설적으로난 친구에게 넌 공부 헛했다고 말했다. 비단 이 친구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는 저,고학력을 떠나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러니 항상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책이나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을 대할 때 조금이라도 자기 정체성을 만드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런 개개인이 사회 구성원이 되어 공동체를 이룬다면 이 사회가 이렇게 줏대 없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소설은 반복적인 일상의 삶의 탈출을 다룬다. 주인공 주변에 소소하게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 가끔 지겹다고 느끼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 한다. 항상 여러 사람과 어울리고 함께 지내며 나 자신을 잃어 간다. 저자는 인간 실존의 문제에 대해 제기한다. 상황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길 바란다. 항상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누군가 때문에 또는 누군가에 의해서 사는 것에서 벗어날 것은 요구한다.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았으면 그 목표를 찾아 떠나라고 강하게 충고한다. 저자는 희망을 말한다. 희망은 잊어서도 안 되고 포기해서는 더욱 안 되는 누구나 간직해야 할 소중한 것이다. 현실을 나갈 수 있는 단 하나의 문이 바로 희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 역시 가끔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떠날 때도 있었지만 크게 봐서는 결국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현실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런 용기를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찾아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완전히 다른 삶, 과연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아쉽게도 소설은 그 점까지는 이야기 하고 있지 않다. 결국 지금의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를 가더라도 그곳은 또 하나의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시간이 지나면 무료해지고 벗어나고 싶은 충동이 들고. 그러면 우리는 또 떠나야 하는 것인가, 이런 의문이 들기도 한다. 소설은 삶에 불만족하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지극히 일상적인 그래서 지겹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크다. 나 역시 군대를 가기 전 대학을 졸업한 후 많은 곳은 아니지만 이곳저곳 많은 곳을 돌아다녀봤다. 하지만 결국 어느 곳에 있어도 위치만 바뀔 뿐 둥근 수레바퀴의 삶은 반복적으로 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결국 희망을 갖고 떠나는 건 자기 자신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꼭 어떤 용기가 필요하지도 않고 두려운 일도 아니다.
이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일까? 바로 고정된 관념에서 벗어남을 말한다. 우리가 바라보는 현상을 그대로 받아 드리고 변함없이 생각하는 것에서 떠나야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다. 항상 현재 삶이 무료해지면 모두들 그 자리만 떠날 생각만 한다. 물론 그 역시 나쁜 방법은 아니지만 위에서 말했다시피 한계가 있다. 우리가 지닌 사고와 마음의 세계는 무한이 넓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가 생활권 반경 밖으로 벗어나지 않는 현실 속의 삶처럼 사고의 세계 역시 더 생각하는 그 이상을 뛰어넘으려 하지 않는다. 아예, 그런 생각조차 안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따지고 보면 무료하고 희망 없음은 우리의 관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그어 놓은 그런 사고의 선을 넘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고 본인이 원하는 세계를 볼 수 있다. 아무 문제가 없는데 자기 삶의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이 점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여행, 아주 좋다. 때로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다지기에 무척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자기 세계로의 여행을 해 보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눈을 감고 잠시 명상을 해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쩌면 우주보다 더 넓은 자기 세계로의 탐험을 해 보길 바란다. 비록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변하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다른 세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눈을 떠 자신을 보라. 꼭 육체가 떠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일상을 벗어났음을 알 수 있다. 현실과 마음의 세계는 결국 이어져 있는 공간이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희망, 자기 세계의 여행을 갔다 온 자라면 이미 일정부분 얻었다는 것을 확신한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읽으면서 내용을 통해 삶의 현장을 뛰어 넘어 희망을 얻었다. 이 역시 자기 세계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이제 우리 안의 세계에 비행기를 타고 희망을 찾아 가 보자. 멋지고 흥미진진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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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무라카미 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다. 하루키는 소설보다는 오히려 수필이 더 좋았는데 류는 소설 이외의 작품은 보지 못한 것 같다. 생각해보면 그의 소설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니다. 몇 작품을 읽다가 이건 내 취향이 아니자나~라는 생각이 들어 더이상 그의 책을 들지 않았었다. <교쿄>를 마지막으로 몇 년 동안 그의 책은 읽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작품 몇 편으로 너무 섣불리 그에 대한 선입견을 만들어 버렸는지도 모르지만 싫은 걸 억지로 읽을 수도 없는 것 아닌가.(류의 팬들에겐 미안할 따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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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港にて :: 村上 龍 갑자기 여행이 붐이다. 몇년전만 해도 여행 서적이라 해봐야 노란색의 [세계를 가다] 시리즈가 고작 이었고, 그것도 서점에서 구석에 있는 취미란에나 가야 찾을 수 있었는데, 이젠 에세이란 명목으로 당당히 문학부에 넓다란 부스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피리, 뉴욕, 스페인, 인도, 터키, 일본... 하도 온갖 나라의 기행문이 쏟아져 나와서 이대로 가다간 아직 [정복] 되지 않은 나라 찾는 게 더 어려워질 것도 같다. 그야말로 [신新 신대륙 찾기] 열풍 이라고 할까. 그 서적들을 보고 있기만 해도, 파리나 도쿄의 구석 구석이 우리 동네 어귀보다 더 친근하고, 나도 여기에 사진 한장 박으러 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기묘한 박탈감을 느끼게도 된다. 그래서 그만큼 해외 여행비가 저렴 해졌나, 하면 딱히 그것도 아니다. 경기가 어려워졌다고, 물가가 왜 이러냐며 대통령한테 모든 책임을 전가 하면서도 환율이 낮아지면 얼른 외제 위시리스트를 사기에 계산기 두드리는 손이 바빠진다. 스스로 쪼들리는 생활을 자처하면서도 나라탓을 할 수 있으니 사실 우리나라야 말로 정신적으로는 복지 국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 모임에 나가 식사를 할 때도 꼭 몇명은 해외에서 먹었던 것과 비교하며 이야기를 이어 나갈 수 있는 분위기가 쉽게 조성 되다가도 곧장 나라 비판으로 넘어가 자신들은 아무 책임도 없다는 듯 스스로의 국적을 경멸하는 것을 이어 듣다보면 견딜 수 없는 괴리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꿈꾸지 않는다. 자본주의에 당당 하면서도 무책임 한 것을 떠나, 자신의 근거를 부정하는 행위 자체가 허망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여기만 벗어나면 무엇이든 이루어질 것] 이라는 생각은 그야말로 환상이다. 개중엔 자아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나고 그 길 가운데 생을 터득하는 사람도 분명 있지만, 아쉽게도 사람 모두가 그런 역마살을 갖고 태어나는 건 아니다. 자기 부정을 하면서 자아를 찾겠다는 것부터가 모순인데, 그저 타인과 다른 것을 소비하고 소유함으로, 다른 공기를 잠시 쐼으로 스스로가 완전히 리프레쉬 되고 뒤바뀔 수 있을까? 이 해답을 못찾는 사람은 결국 돌아와서 불안감에 시달리며 다음 여행지를 병적으로 선별한다. 가끔 이런 학생들을 본다. 이곳에서 배우는 건 한계가 있으니까, 그래서 바깥에 나가서 배우면 큰 도움이 될텐데, 그럴 여건이 안되서 좌절 스럽다고. 부모 잘 만나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나가는 또래들을 보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고. 그러면서 자신의 인생을 한순간 내팽개친다. 자신이 여기에서 아무리 노력 해봐야 더 나은 환경에서 노력한 사람에 매번 지기만 할텐데 무슨 의욕이 생기겠냐면서. 그럴지도 모른다. 확실히 운좋게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 제 아무리 나름대로 괴롭다 해도 돈이 있으니 속이라도 풀고 살지 않겠냐 하며 자본에 의해 사람의 감정이 좌지우지 된다. 사실상 그렇게까지 운좋은 사람은 세상 인구의 1%에 불과하지도 않는데도 모든 것이 상대적이다 보니 그 1%가 99%로 느껴질 때가 더 많다. 그러나 거기에서 자포자기는 결국 자신의 선택이다. 태생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스스로의 선택 마저 어쩔 수 없게 놔둬 버리면 인생도 거기서 끝이다. 타인과 비교하며 인생의 의미를 찾는데만 골몰하면 모래 시계처럼 흐르는 시간은 아무 형태도 갖지 못하고 그저 스러져만 갈뿐이다. 아무리 아무 불편없이 노년을 맞았더라도 그때의 젊은 세대들의 편의성을 보며 또 아쉬워 하고 부러워 할텐데, 끝없이 내 처지를 아쉬워 하기보다 차라리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자신에게 만족하는 편이 바라는 미래의 자신의 모습에 더 근접하지 않겠는가? 이 소설집은 그저 [현실도피] 를 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편의점] 에서는 어렸을 땐 아무런 재주도 없이 형편 없었고 늘 형과 비교 돠었던 동생이 자신만의 일을 찾아 새로운 인생을 개척 하고자 하고, [술집] 에서는 얽매여 있던 모든 것을 과감히 버리고 스스로 원하는 것에 홀로 용기있게 도전 하고자 하고, [공원] 에서는 타성적으로 끌려가는 가식적이고도 염증스런 조직에서 빠져나와 지유를 얻는 이가 나오고, [노래방] 에서는 남들과 비교하며 만족하는 생활이 덧없음을 경고하고, [피로연장] 에서는 자신이 속해있고 접하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역설하고, [크리스마스] 에는 "특별" 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얼마나 허망하고 무의미 할 수 있는가를 인지 시키고, [역앞] 에서는 "현실도피" 로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들을 강하게 힐난하며, [공항] 에서는 하고자 하는 일을 막연하게 바라만 볼게 아니라 "실천" 으로서 "가능" 하고 그럼으로 "희망" 을 낳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 어디에나, 자아를 이미 목도하고 찾아서 그 다음에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나는 30대 중반을 바라보며, 아이도 낳아 기르며 경력이라곤 내세울 것도 없는 평범 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주부지만, 그래도 여전히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남들보다는 한참 늦었어도 대기만성을 중얼거리며 4.50대에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열심히 습작하고,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기 위해 부족한 체력을 열심히 키우며 매일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고, 언젠간 히말라야 트래킹을 달성하고 노년에는 봉사 활동으로 생을 마감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 안에는 이루기 어려운 황당무계한 계획도 심어 놓고 있지만, 그것이 정녕 불가능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래의 나를 믿어서가 이니라 지금의 나를 믿고, 만족하고,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나는, 생활에의 충실이 [희망] 이라고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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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이라.. 여행의 시작이 되는 곳, (혹은 끝이 되기도 하고..) 뭔가 새로운 것이 시작되는 곳. 만남이 있고 헤어짐이 있는 곳..
그런 이미지를 떠올리며 이 얇은 소설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기대와는 다른 소제목들이 눈에 띤다.
편의점에서, 술집에서, 공원에서. 노래방에서, 피로연장에서, 크리스마스, 역앞에서, 공항에서.. 이런 소 제목들이 붙은 작은 소설들의 모음집이다.
일상에서 흔히 보아오던 장소에서 주인공들은 뭔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거나, 시작하기로 결심하거나, 시작할 계기를 만난다. 그러고 보니 이 소설의 큰 제목으로 삼은 '공항에서'라는 이미지와 완전히 다르지는 않은가 보다.
하고싶은 뭔가가 있다는 것이, 또 할수 있는 용기가 있다는 것이. 의미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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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고뇌와 뭔가를 시작하고 이별을 이야기하는 장소들의 이야기 이야기 속의 장면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장면 들이다 술집에서,공원에서, 역에서 그리고 공항에서 등
저자의 자세한 상황 설명들은 미처 깨닫지 못한 체 이뤄지는 여러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한 주인공을 대상으로 하는 듯한 이야기들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주인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처음 이야기의 전개를 만나면서 그곳의 상황들 속에 또다른 이야기가 전게 됨으로써 약간의 혼동을 안겨준다 그 또 다른 전개를 이해 하는데 한참의 시간들이 흐른다. 마치 한참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다가 예고없이 선전으로 넘어가는 장면처럼... 왔다갔다 그 주인공의 과거의 이야기, 그리고 현재에 도달하면서 생각하게 된 이유가 알듯 모를 듯 연결이 되어 간다. 그 장소를 떠나게 되면 새로운 희망을 안겨줄 것 같고 지금의 어려운 상황들이 다 사라질 것 같은 생각들
우리도 가끔은 꿈꾼다 멀리 떠나고 싶은 마음을 그리고 새로운 도전을
지금까지 접한 일본소설의 황당한 전개에 비하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이야기인 것 같다. 그리고 각 장소에서 섬세한 표현들은 나아닌 다른 이들의 모습과 마음을 접할 수 있었다.
그 순간은 어렵지만 한참 전개한 후 이해를 해야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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