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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님, 저는 날을 수 있어요. 재단사가 주교에게 말했습니다. 주의해 보세요. 제가 어떻게 날으는지! 그리고 그는 날개처럼 생긴 것을 가지고 높고 높은 성당 지붕 위로 올라갔습니다. 주교는 계속해서 걸어갔습니다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야 사람은 새가 아니거든. 앞으로도 사람은 절대로 날을 수 없을꺼야 주교는 재단사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그 재단사가 죽었어요. 사람들이 주교에게 말했습니다. 굉장한 구경거리였어요. 그의 날개는 부러져 버렸고, 그의 몸은 박살이 나서 굳고 굳은 성당 마당에 놓여져 있어요. 성당의 종을 울리시오 그것은 거짓말에 지나지 않았소. 사람은 새가 아니오. 앞으로도 사람은 절대로 날을 수 없을 것이오. 주교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본서에는 인터넷을 검색하다보면 심심치않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나 '살아남은 자의 슬픔', '어느 책읽는 노동자의 의문'등도 수록되어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는 바로 이 '울름의 재단사(Der Schneider von Ulm)'라는 시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브레히트의 몇몇 시들이 빠져 있는 것이 보이고, 번역에 있어서도 아주 약간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다만, 어쨌거나 본서가 현재 유일하게 '유통'되고 있는 브레히트 시집이라는.^^ 낙관할 것이라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시기를 살다 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하려는 의지가 보여지는 한 극작가의 시집이다. 전체적으로 짙은 어두움 속에서, 그럼에도 마지막 남은 빛줄기를 붙잡고 놓지 않으려는 시집의 분위기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마음에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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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는 왜 슬퍼하는가?
물론 나는 잘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누구는 죽었고 누구는 살아남았다. 죽어야 할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니고, 살아야 할 사람이 산 것도 아니다. 시인의 말마따나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시인은 살아남았고, 친구들은 죽었다. 살아남은 시인은 죽은 친구들을 애도한다. 애도는 죽은 자를 위로하는 의식이면서도, 동시에 살아남은 사람의 아픔을 치유하는 의식이기도 하다.
애도를 통해 죽은 자는 저승으로 가고, 살아남은 자는 이승에서 살길을 모색한다. 시인 또한 이런 과정을 거쳐 하루하루 살아갈 힘을 얻었을 것이다.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을 마음 깊은 곳에 밀어 넣고, 죽은 자들이 살지 못한 오늘을 묵묵히 보냈을 것이다. 지난밤 꿈속에서 시인은 친구들을 만났다. 살아남은 시인을 말하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라는 말을 듣자마자 시인은 가슴 깊은 곳이 울렸다.
시인은 자신이 강한 자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강한 자란 권력을 쥔 자가 아닌가? 그 말을 듣고 시인은 자신이 한없이 미워졌다.
살아남은 자 앞에 죽은 자가 있다. 죽은 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죽은 자의 말을 시인은 꿈속에서 듣는다. 꿈속이란 시인의 무의식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시인은 정말로 살아남은 게 부끄럽다. 오죽하면 살아남은 자신을 미워할까? 죽은 자가 있기에 살아남은 자는 슬프다. 다른 이유는 없다.
<덧붙이는 글>
2022년 12월 16일은 이태원 참사로 죽은 이들의 49재 날이었다. 2022년 10월 29일은 한없이 슬픈 날이다. 같은 장소에 모인 누군가는 죽었고, 누군가는 살아남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잘 안다. 죽은 자가 없었으면 그곳은 한바탕 축제의 향연이 벌어진 장소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그 장소에서 누군가가 죽었고, 그곳에서 살아남은 자는 슬픔에 겨워 목을 멘다. 추모의 정을 내보이는 일만으로는 애도가 되지 않는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우리는 지금도 겪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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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h der Überlebende(살아남은 자의 슬픔)
여기, 한 시인이 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독일어 발음처럼 딱딱한 그의 시들을 읽던 중 라디오에서는 오래된 영화('디어헌터')의 주제곡이 흐르고 있었다. Stanly Meyer의 'cavatina' 라는 기타연주곡에 Cleo Laine가 가사를 붙인 'He was beautiful'이라는 곡. 영화나 기타연주를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매혹되었을, 명곡이다. 브레히트의 시를 논하려다가 뜬금없이 영화와 음악 얘기를 시작한 것은 때마침 흐르던 음악과 브레히트의 시 사이에 존재하는 것 같은, 내가 느낀 어떤 기시감(旣視感) 어린 통증 때문이 아니었을까. 음악을 들으며 시를 읽는 내내, 쉽게 몰입할 수 없는 브레히트의 서사극과 건조한 시들의 이면에 자리잡은 그의 아픈 삶이 스쳐갔다. 그는 1898년에 태어나 1956년에 사망했다. 60년도 안되는 삶이지만, 그가 살았던(살아야했던) 시기는 그의 삶을 철저하게 유린하기에 충분했다.
그의 사춘기 시절에는 참혹했던 1차 세계대전이, 청년기에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혼미함이 관통했다. 1920년대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극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지만 나찌의 사상검열로 인하여 망명길에 오른다. 오스트리아, 덴마크, 소비에트를 거쳐서 미국까지 이어진 15년에 걸친 망명기간에도 그는 순탄한 날을 맞이하지 못했다. 파시즘을 피해서 당도한 미국에서도 그는 궁핍에 시달리는 동시에 독일에서와 마찬가지로 사상검증을 받아야 했으며, 나찌 치하의 유럽에 남겨진 동료(그와 비슷하게 나찌의 탄압을 피해 망명길에 올랐다가 스페인 국경에서 자살한 발터벤야민의 경우가 대표적이다)들에 대한 죄책감은 집요하게 그의 내면을 괴롭혔다.
끝없는 폭력으로 치닫는 세계 속에서, 어디에도 망명처가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절망은,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 극에 달한다. 미군당국은 그의 고향인 서독으로의 귀향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결국 그는 동독에 정착하게 된다.
동독에서 브레히트는 인간에 대한 폭력을 은폐하는 시대에 대한 강렬한 풍자를 담은 실험적인 극작활동을 전개한다. 그러나 그의 이상과는 달리 사회주의 동독도 1953년 동베를린의 반소비에트 항거가 소련 진압부대에 의해 처절하게 짓밟히고 교조적인 스탈린주의가 동독 예술을 지배하게 된다. 브레히트가 꿈꾸었던 세계와 추구했던 예술은 그의 생애 안에서 끝내 빛을 발하지 못했고 동베를린 항거 몇 년 뒤 그는 마지막 망명지에서 생을 마친다.
브레히트의 대표적인 시들을 모아놓은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자신의 삶을 통해 마주해야 했던 시대의 폭력에 대한 고발과 내면의 고백을 담고 있다. 그의 시어는 결코 언어미학적으로 아름답지 않다.
인간과 자연의 아름다움 보다, '서정시가 쓰기 힘든 시대'에 대한 직설적인 언급('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하고, 미국의 헐리우드에서 겪은 "거짓을 사주는 장터"로 가는 비참함('허리우드')을 토로하는가 하면,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야만의 현실에서 "자신이 미워진"다고 고백('살아남은 자의 슬픔')한다. 독일어의 딱딱한 발음이 더없이 잘 어울리는 그의 시들은,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아픔이 지배했던 자신의 삶과 시대를 고발한다.
그러나, 나는 그의 시를 읽으며 "그는 아름다웠다(He was beautiful)" 라고 말한다. 그것은 야만의 시대에서도 누군가는 (비겁하게라도) 살아남아서 그것을 증언해야 한다는 역설과 끝까지 창작을 멈추지 않았던 그의 진정성 때문이 아닐까. 브레히트와 달리 많은 이들의 망명과 죄책감은 역사에 대한 외면과 망각에 머물고 말았다. 기억-역사를 망각하고 현실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아름다운 문학을 꿈꾸는 이율배반보다는 낯설고 투박한 그의 언어와 정직하게 아픈 삶이 더 아름답지 않은가.
이 글을 쓰는 와중에 흐르던 영화 '디어헌터'의 주제곡이 끝나간다. 그러고보니, 이 음악이 삽입되었던 영화도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다루고 있다.
전쟁터에 남겨진 친구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70년대 미국 젊은이들의 어두운 표정 사이로 낮게 울리던 기타선율. 이 선율을 들으며 읽은 브레히트의 시집은 낯선 언어로 가득했지만 낯설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느낀 기시감은 역사에 짓밟힌 살아남은 자들의 공통된 아픔에 연관되지 않았을까. 현실이 아름다운 서정시는 아니지만, 살아남은 자의 외면하지 않았던 삶-기록을 통해서 문학은 다시금 아름다움을 얘기하는 자양분을 얻을 수 있으리라. 그는 어쩔 수 없이 20세기의 가장 폭력적인 시기를 살아내야 했다. 그러나 망각과 무감각이 지배하는, 환멸이 일상화된 현재에서 바라본 그의 삶과 문학은 아름다웠다. HE WAS BEAUTIFU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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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의 시는 생각날 때마다 읽곤 한다. 극작가로들 알고 있지만 대학에서 친구들과 시를 공부하는 나에게 브레히트는 시인으로 먼저 다가왔다. 솔직히 브레히트의 시는 연극 이상이었다. 브레히트의 시는 기존의 시와 다른 면이 많다. 시가 단편소설처럼 촌철살인의 폭발력을 지닌다. 브레히트의 시는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보이는 대로 그냥 읽고 말 시도 아니다. 브레히트의 시는 어렵지 않되 생각을 하게 하는 시다. '어머니'나 '울름의 제단사'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브레히트가 처음 주장한 '낯설게 하기 효과Verfremdungseffekt'가 연극에서와 같이 시에서도 나타난다고 생각하면 틀림없을 것이다. 짧은 시에서도 긴 시에서도 브레히트의 시는 보여주고 생각을 하게 하는 시들이다. 때문에 그 시들은 긴 호흡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 [인상깊은구절] 나의 어머니Meiner Mutter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 속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로 날아간다……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
| 내가 브레히트의 시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고3 때 국어시간이다. 선생님께서 서정시의 한 예로 들어주신 것이 연기(Der Rauch)란 시였다. 그 당시에는 그 시가 누구의 시인지는 관심도 없었고, 선생님도 누구의 시라고 말씀안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난 대학에 들어왔고, 한 때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란 소설이 유행을 했었다. 그 소설책을 읽었지만, 지금은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하지만 소설책을 읽고, 나는 브레히트의 이 시집을 샀다. 내가 지금까지 책에 대해 투자한 것 중 가장 가치있는 투자였다는 것은 시집을 사고 나서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란 시는 정말 짧고, 그 시대상을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시를 시 자체로 이해할 때, 마지막 싯구인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라는 말은 당시 대학생인 나의 마음을 옭아맸고, 지금도 그렇다. 왜 그런지는 너무도 잘 알지만, 그 이유 또한 명확하지 않다. 대학 시절 가장 기억남는 읽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읽고 느낀 정신적 충격일 것이다. 그리고 이 시집을 통해 고등학교 때 봤던 서정시의 주인을 찾을 수 있었다는 점은 또다른 느낌을 주었다. 나는 지금도 '연기'라는 시를 최고의 서정시라고 생각한다. 브레히트에 대해 과연 나는 무엇을 쓸 수 있을까? 비록 문외한이지만, 그의 시에 대해 쓰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연구가 필요하며, 독자 서평으로 대처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못난 독자서평을 남기는 이유는 이 훌륭한 시인의 시들에 대해 어느 누구도 관심을 남기지 않아서 이다. 그점이 못내 아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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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목은, 괴테의 " 베르테르"의 한 귀절에서 따온 것이다. 시인이자, 전문 번역가이며, 무엇보다 독문학 교수인 김광규에 의해서. 다분히 센티멘탈하고, 숭고하기까지한 이 제목은 베르테르에게는, 그리고 시집의 제목으로는 적당한 것이리라. 그러나 브레히트의 원시 제목은 상이하다. Ich, der Ueberlebende(1944년). 번역하자면, 나, 살아남은 자. 이 제목은 다시 싯귀에서 찾아진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즉, 나, 살아남은 자, 강한 자. 강하므로 살아남은 "나"는 자신이 밉다. 시대를 견딜 수 없어 자살한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이자 예술가인 자신에게 강하다는 것, 살아남았다는 것이, 조롱으로, 혹은 야유로 다가온다. 위로가 되지 않는다. 자기 혐오의 정의이다. 살아남아 있기에는 그 시간이 너무도 참혹했기 때문에. 비루한 시대, "내가 먹는 것이 굶주린 자에게서 빼앗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먹고 마"시며 살아 남은 시대. 시인은 그 시대로부터 살아나온 것에 대한 용서를 다음과 같이 구했었다.
우리가 잠겨 버린 밀물로부터 떠올라오게 될 너희들은, 생각해다오 우리의 허약함을 이야기할 때 너희들이 겪지 않은 이 암울한 시대를. 신발보다도 더 자주 나라를 바꾸면서 불의만 있고 분노가 없을 때는 절망하면서 계급의 전쟁을 뚫고 우리는 살아오지 않았느냐. 그러면서 우리는 알게 되었단다. 비천함에 대한 증오도 표정을 일그러뜨린다는 것을. 불의에 대한 분노도 목소리를 쉬게 한다는 것을. 아, 우리는 친절한 우애를 위한 터전을 마련하고자 했었지만 우리 스스로가 친절하지 못했단다. 그러나 너희들은, 인간이 인간을 도와주는 그런 정도까지 되거든 관용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생각해다고. (1934/38년) ----------------------"후손들에게" 중에서, 개정판 6쇄, 2004.
10년이 지나, 시인은 더이상 용서를 바라지 않는다. 죄가 너무 컸던지, 그 죄악의 구렁텅이를 같이 걷지 못하고, 망명지 미국에서 보낸 것에 대한 미안함인지 알 수 없지만, 단지, 새로이 시작할 것을 권한다.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다. 당신이 포도주 속에 부은 물을 당신은 다시 퍼낼 수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은 변화한다. 마지막 숨을 거두며 당신은 새로 시작할 수 있다. (1945년) -----------------------------------------------"모든 것은 변화한다"중에서, 개정판 6쇄,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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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 독일의 작가. 1980년대 운동권 학생이라면 그의 연극을 안 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물론 지금 그의 연극을 대학로에서는 전혀 볼 수 없다. '거리두기.'라는 연극 감상법을 제시하여,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극작가가 바로 '베르톨트 브레히트.' 그를 알고 싶었다.
하지만 솔직히 그의 극작품들은 상업주의가 만연해버린 한국의 연극사회에서는 묻혀버렸다. (대학로에 가서 '진지한 연극이 없어요?'라고 묻자, 연극 안내하는 사람이 그런 것 없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 대학로의 연극은 딱 두가지다. 코믹 또는 뮤지컬) 그래서 브레히트 시집을 샀다.
브레히트 시집 중, 브레히트를 설명해 주는 책에 나온 시 두편을 소개함으로써 간단한 리뷰를 마칠까 한다.
나의 시에 운을 맞춘다면 그것은 내게 거의 오만처럼 생각된다. 꽃피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동과 엉터리 화가*에 대한 경악이 나의 가슴 속에서 다투고 있다. 그러나 바로 두번째 것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중에서 *히틀러를 지칭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나 자는 자신이 미워졌다. (194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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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세기를 살아간 모든 이들은 슬펐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그들은 개인성을 상실했다. 아니, 상실'당했다'고 표현하는게 옳을 것이다. 언제나 집단과 민족은 옳은 것이었으며, 모든 이들이 지지하는 것만이 진리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게 지난 20세기였던 것 같다. 한국의 19-20세기를 살아간 이들이 일제 침략기와 6.25를 경험했던 것 처럼, 그의 인생도 1,2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얼룩이 지배적이었다. 떳떳하게 살다 차가이 식어갈 것이냐 허리 굽혀 편하게 살다 죽을 것이냐를 놓고 고민하던 수많은 이들. 우리 시대의 소시민들은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시는 고뇌로 가득차 있으며, 냉담한 현실에 대한 끊임없는 내뱉음이 번져있다. 그에게는 살아있다는 그 자체가 죄책감이었으며, 부끄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글을 빌어 끊임없이 현실을 타파하고자 노력했지만, 글은 글일 뿐, 모순의 현실로부터 그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자신의 그릇된 살아남음에 대한 자학과 동시에, 근본적인 계급적 모순에 대한 다가감도 보여진다. 물레방아는 끊임없이 돌아가지고 위에 있는 물은 위에만 머물 순 없지만, 아래 있는 물은 한없이 물레바퀴를 돌리기만 할 따름이라는.. 조금은 비관적인 그의 사고 속에서 나날이 커가는 현대사회의 빈부격차를 느낀다. 가진 지식이 없어도 이미 날 때부터 모든 게 달라 그를 위한 모든 것이 준비된 사람들이 있지만, 그도 언젠가는 사정이 달라질지도 모르기에 배워야만 할 것이라는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희망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영웅은 시대가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브레히트는 어쩌면 철저히 시대가 만들어낸 참여시인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깊은 고뇌 속에 넘치던 우울함의 정서와, 당연시되는 차별속에 존재하는 존귀함과 천함에 대한 강한 부정, 그러면서도 동시에 기층의 흐름을 복원코자 했던 외침의 목소리들. 그에게 역사는 피지배자의 역사여야만 했음을, 그의 시를 통해 느끼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