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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라는 말을 들어본적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유토피아라는 책을 본적이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것을 생각된다. 그중의 한사람으로서 유명한데는 이유가 있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책을 보게되었다. 고전중에서는 다소 내용이 어렵지만 생각을 하게 만드는 면이 있는것같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어쩌면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유토피아라는 이상향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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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의 역설逆說 궁극적으로 이상理想 사회란 행복한 삶이 있는 사회를 위해, 신新국가를 건설하여 그에 부합되는 체제와 특징을 갖춘 사회를 의미한다. 우리는 그것을 ‘유토피아utopia’라고 부른다. 오늘날 매체에서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두고 흔히 ‘헬조선’ 이라 칭하고 있고, 현재의 20대를 가리켜 ‘9포세대’라 말하는 요즈음이다. 각종 사회적 문제와 현실에 부딪혀 좌절하는 이 시대의 우리는 깊은 수렁에 빠진 것만 같다. 우리 모두 사회적으로 평등하고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우며 공정한 사회, 건강한 사회를 생각하며 그런 시대가 오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지는 않은가 ‘유토피아’라는 명칭을 최초로 지은 사람은 영국의 대학자, 토마스 모어Thomas More란 인물이었다. 그가 살았던 시기란 지속적인 전염병과 굶주림, 전쟁 등으로 인한 위기의 연속이었다. 자본주의를 필두로 한 경제적 성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지만, 그 내면에는 인클로저로 인해 많은 이들의 삶이 궁핍해졌으며 몰락하는 이들도 허다했다. 모어는 얼핏 현실 사회와 반대되는 면들을 『유토피아』에 묘사한 것처럼 보인다. 그곳에서는 사유재산의 개념이 없으며, 하루 6시간 근무를 할 뿐이다. 또한 유토피아에 사는 이들은 모두가 한 가족으로 생각하고 살아간다. 그런 유토피아가 아주 행복한 사회로 유지되고 있다는 말 또한 빼먹지 않는다. 모어는, 이 같은 '유토피아'의 사회상社會相을 그림으로써 당대의 현실 세계를 에둘러 비판하고자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기야 그가 살았던 시대야말로 흉포한 권력이 횡행하고 죽음과 비참이 휘몰아치는 ‘비합리적인 시대’였으니 말이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유토피아는 무엇이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그 속에서 본인이 지향하였던 이상 세계관이 책에 반영되었을 것이고, 당대 현실을 신랄히 비판하는 장場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당시 근대 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현실 사회의 문제에 대한 성찰과 반성의 의미로 유토피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을 비판하고 개혁하여 미래의 이상사회를 추구한다는 것만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무언가 허전하다. 유토피아에서는 누구나 같은 옷을 입으며, 옷 한 벌을 가지고 수 년 동안 입는다고 한다. 물자가 부족해졌을 때는 욕망을 억제하고(애초에 그들 모두가 합리적 생활을 기반으로 하여, 물자 부족이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일과 후 남는 시간을 덕德의 실천과 정신적 쾌락을 위해 보내는 매우 바람직한 사회로 묘사된다. 오늘날 시각에서 보아도 이상사회라 하기엔 좀처럼 이해할 수 없지만, 정작 그렇게 살면서도 유토피아의 사회구성원은 불만을 가지지 않고 행복하다고 한단다. 눈치 챘겠지만, 이러한 유토피아의 사회에서는 생동감이 철저히 배제된 사회임을 알 수 있다. 생동감이라는 것은 인간이 지니는 원초적 속성(혹은 본능), 이를테면 때로는 인간의 비합리적 판단과 그러한 성향을 유발하는 ‘감정’ 따위를 들 수 있다. 모어는 유토피아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성이 사라져야 한다고 하였는데, 실제로 그들에게선 소유욕과 정욕情慾, 게으름, 사치 등은 찾아볼 순 없으며, 누구나 인간이라면 지닐 수밖에 없는 ‘본성’이 보이지 않는다. 기실 모어가 제시한 유토피아란 엄격한 통제와 금욕적 생활 실천을 전제하는 사회인 셈이다. 유토피아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고대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이상적 국가 사회 건설을 위한 방안으로 ‘시인추방론’을 제창한 바 있다. 감정을 유발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그는 이성과 감정, 욕망 중에서 가장 추구해야 할 것을 '이성'이라 하여, 사회가 이성에 의해 통제될 때 비로소 이상적 사회라고 규정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른바 ‘절대 이성’을 토대로 한 사회와 국가를 지향한 셈이다. 그러나 이성의 빛이란 이름으로 삶의 일체를 통제하는 섬세한 권력과 통제의 망을 발명한 계몽적 이성, 이성이란 이름으로 행해진 정념과 감정에 대한 억압이나, 문명의 이름으로 행해진 ‘야만’의 규정이야 말로, 우리가 역사의 고금에서 학습해왔던 숱한 비이성非理性의 연속이지 않았는가.(근대 이성주의의 위험성) 그런즉, 우리가 유토피아라고 생각한 곳이 다름 아닌 디스토피아일 수 있으며, 인간의 믿음과 오만이 현실 이상과의 정반대인 디스토피아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모어 역시도 인간 삶의 행복과 평등사회를 그렸다고 하나, ‘완벽한 사회’인 유토피아에서도 치명적인 오류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노예제의 존재와 식민지 논리가 그것이다. 과연 이것들이 시대적 한계에 기인한 유토피아의 모순 내지 옥에 티였는가? 그렇지 않다. 이 사회야 말로 흠잡을 곳 없는 완벽한 사회이다. 다름 아닌 절대 이성의 신념에 발원發源한 인간의 독단과 야만, 그 토대로 만들어진 사회. 그들은 진실을 알 방법조차 원천 차단된 곳에서 살아가며 단지 그곳을 ‘유토피아’라고 부르며 살아갈 뿐이다. 이쯤되면 우리는 모어가 이상향이 무엇인지에 대해 근원적인 의문을 제기하려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모어의 진의眞意가 어렴풋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는 오늘날은 물론, 앞으로도 논의되어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완벽하고도 행복한 사회’를 위해 구성원 개개인의 희생이 전제되어야 한다면? 비록 사회는 불완전할지라도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자유 등을 누릴 수 있다면 둘 중 어떠한 것을 지향해야하는가? 국가를 위해 사회구성원인 자신 개개인의 고유한 것까지 포기해야하며, 그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 개인은 얼마만큼의 권리를 포기해야 하는지, 모어는 우리에게 적잖은 의문을 넌지시 던진다. 유토피아의 뜻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理想의 나라’ 라고 하였던가. 그는 당대 사회의 현실을 통해 꿈꾸던 이상사회를, 다소 체념적 염원念願으로 유토피아를 말했으면서도, 실상은 ‘어디에도 존재해서는 안 되는 나라’ 라고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외형적으로는 유토피아를 제시함으로써 정반대의 디스토피아를 나타내려했다는 것, 애초 유토피아를 꿈꾼 사회의 결과가 디스토피아라니. 생각해볼수록 이 얼마나 아이러니컬한가! 오늘날 디스토피아는 무엇인가? 예나 지금이나,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언제나 디스토피아를 지닌 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과연 오늘날 자본주의를 낙관적으로만 볼 수 있는가? 자본주의의 반면半面에는 자본의 유무, 정도로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나뉘는 불평등이 적나라하게 반영되어 있고, 우리는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놓인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전부터 문학작품이나 영화 등에서 디스토피아를 주로 한 작품이 등장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것은 근심, 불안 등 내면에 잠재된 우리의 무의식을 의미한다. 지배하는 자와 지배 받는 자로 극도로 양분兩分된 세상, 자본과 권력을 지닌 소수만이 주도해가는 미래 사회의 결과는 결국 누군가가 인간의 권리, 자유를 구속하는 흉흉한 세계로 나타날 것이다. 이른바 현대 디스토피아의 전형적인 형상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유토피아』가 가지는 의의는 무엇일까. 역자譯者는 유토피아를 두고 ‘현실과 이상에 대한 성찰의 산물’이라고 하였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유토피아, 그러한 유토피아를 이룩하고자 한 자들의 노력은 오늘날까지 이어져왔다. 모두가 평등하고 도덕적이며 아름다운 사회, 그러나 역사적으로 그런 사회가 존재했었던가? 유감스럽게도, 유토피아는 머나먼 미래에도 그저 ’유토피아‘로 남을 따름이다. 그러나 우리는 『유토피아』를 통해 ’이상적인 사회·나라의 표상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현실과 이상은 늘 괴리가 있으나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보다 나은 세상, 보다 좋은 세상을 생각하며 간절히 바라게 된다. 우리 누구나가 ‘꿈’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고, 목표가 있기에 자신의 미래가 있고, 그것이 삶의 원동력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우리 사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행복한 사회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특히나 오늘날과 같이 각박한 세상일수록 올바른 정신추구를 통해 현실을 개선하려는 의지는 더더욱 필요하다. 그런 과정과 노력을 통해 우리는 전보다 나은 사회로의 기대를 해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럼으로써 우리는 모어가 말한 유토피아로 한 발 다가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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