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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거나 시인이었던 사람의 글을 좋아한다. 나의 이러한 오래된 습성은 문장의 리듬감을 중시하는 '겉멋'에서 발원하는지도 모른다. 정작 나는 노래를 잘 부르지도, 그렇다고 리듬감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면서 혀끝에 착착 달라붙는 찰진 글을 쓰는 작가의 글만 편애하는 건 어찌 보면 '겉멋'일 수 있다. 나는 이런 책을 읽고 있노라, 뻐기는 것일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다고만 주장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리듬감이 뛰어난 글일수록 오래 두고 읽어도 지루한 감이 없기 때문이다. 의미야 어찌되었든, 사상의 깊이가 어떻든지 간에 책을 읽으면서 나는 봄날의 새싹처럼 야릇한 흥분을느끼는 것이다.
이병률 시인의 산문집은 이제 워낙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끌어서 그가 시인이 아닌 에세이스트로 착각할 정도이지만 최영미 시인이나 한강 시인(나는 여전히 한강 작가를 소설가가 아닌 시인으로 기억한다.), 또는 황인숙 시인이나 안도현 시인 또는 류시화 시인 등 시인의 산문집은 독자의 마음을 흔드는 묘한 구석이 있다. 운문을 고집하던 시인이 산문을 쓰면서 겪는 낯선 시선, 시인의 몸에 배인 운문적 글쓰기의 오래된 습관이 책의 곳곳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는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읽을라치면 물아일체의 경지가 이런 것이로구나, 생각하게 된다. 나는 여전히 시인의 산문집을 사랑하고 있음이다.
시가 사랑받지 못하는 요즘 세대에는 시인의 산문집이 워낙 많아져서 예전처럼 귀한 대접을 받지는 못하는 게 사실이지만 시인의 산문집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아서 이따금 나는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오래 사귄 동지인 양 살가운 인사를 받기도 한다. 단지 시인의 산문집을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로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시인의 산문집만을 항상 고집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소설가의 산문집도 좋아하는데 그럴 경우 국내외의 몇몇 작가로 한정되곤 한다. 신경숙 작가는 그 중 한 사람이다.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게 작년 여름이었으니 작가는 벌써 1년 전에 잊혀진 사람이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작가의 부재가 가족의 빈자리인 양 느껴질 때가 더러 있어서 그럴 때마다 나는 몇 권 되지도 않는 그녀의 산문집을 별 의미도 없이 뒤적여보곤 한다. 신경숙의 <자거라, 네 슬픔아>는 신경숙의 글과 구본창의 사진이 어우러진 영상 에세이집이라고 할 수 있다. 대개 이런 종류의 책은 사진과 글이 영 따로 노는 경우가 많아서 사진집이거나 에세이집이었더라면 더 좋았을 걸, 하고 아쉬워 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구본창의 사진이 신경숙의 글을 방해하지 않을 뿐더러 신경숙의 글이 구본창의 사진으로 인해 더욱 빛이 나는 느낌이다.
"문득문득 눈앞이 시어지며 저리 아름드리로 저리 넓은 품을 지닌 소설을 쓰고 싶은 욕망이 불끈 솟아오르는 것이다. 봄날의 찬란한 귀룽나무를 보고 있을 적엔 내가 영원히 싸워야 할 것 같은 허무가 아득히 지워지며 갸륵하게도 뭔가를 생산해내고 싶어서 귀밑이 후끈 달아오르기도 한다." (p.133 '귀룽나무 아래서' 중에서)
신경숙의 글은 저마다의 가슴 밑바닥에 숨겨두었던 지난 슬픔을 조용히 다시 불러내어 가만가만 어루만지기도 하고 잊혀졌던 옛슬픔을 한껏 휘저어 놓기도 한다. 그녀의 글이 늘 그렇듯 이 책에서도 작가의 한쪽 발은 과거에 담근 채였다. 작가와 내가 나고 자란 시간과 공간이 다를지언정 과거로 향하는 애잔한 정서만큼은 하나로 이어지는 까닭에 나는 언제나 작가의 글에 중독되는 것이다.
"나의 시선은 우연인 것 같으나 그 응시 속에는 어린 시절의 어떤 기억들이 찰랑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빨래를 하러 가는 어머니 뒤에는 꼭 내가 있었다. 어머니는 위에 앉고 나는 아래에 앉아 빨래를 빨았다. 어머니가 큰 옷을 빠는 동안 나는 손수건이나 걸레 따위를 주물럭거렸다." (p.209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중에서)
'갑자기 비가 내리면 할 말을 잊은 것처럼 할 일이 없어지는 사람들이 있다.'에서 보듯 작가는 한 문장에서 하나의 영상을 그려내곤 한다. 하염없이 비가 내리는 풍경을 하릴없이 바라보고 있는 한 여인이 떠오르기도 하고, 왠지 모를 울음이 왈칵 쏟아질 것 같기도 하다. 작가의 글은 어렸을 적 자신의 어머니, 똘망똘망한 눈으로 한없는 애정을 담아 바라보던 그 어머니의 눈매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마치 모든 기억은 다 슬프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오래전 사람들에게 풍경은 쉬엄쉬엄 걷다가 고개를 들어보았을 때 문득 눈앞에 펼쳐지는 장엄한 아름다움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그런 풍경은 사라졌다. 풍경은 타고 가는 차의 앞 유리창이나 옆 유리창의 크기로 축소되었으며 그마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서 멀어져간다." (p.234 '백미러 속 풍경'중에서)
새벽의 어둠 속을 걷다 보면 내가 그 길로 내처 걸으면 내 어릴 적 동무들과, 마을 사람들과, 보고 싶었던 모든 사람들을 하나하나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산의 정상에서 발길을 돌릴라치면 내딛는 발에 힘이 빠져 휘청이곤 한다. 살아온 시절이 마치 꿈만 같아서 무너질 듯 허망해지는 것이다. 지난 과거는 지금의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지만 잊혀짐의 대상, 체념과 허망함의 대상이 아니라 용서와 공존의 대상, 이따금 꺼내어 매만져야 할 서글픈 아름다움이라는 걸 작가는 말하고 싶었나 보다. 오늘은 슬픔이 추억처럼 아름다운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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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좋은 요즘, 사진이 있는 책들이 좋다.
몇 년간 내 화장실에 자리잡고 있으면서도, 쪼글 쪼글 해지지도 않고...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이 책. 역시 볼 일보고, 샤워하고...침대까지 갖고 나와서 엎드려 읽었다.
요즘은 정말 사진만 보면 미칠 것 같다. 에전에는 신경숙의 글에 끌렸다면..이 번에는 사진을 염두하고 글을 봤다.
사진만 봤을 때에는 요즘 염두하고 있는 구도, 노출..그런것은 잘 모르겠다. 대신에 느낌이...사진 밑의 찍은 연도를 보면서 옛 것, 오래된 것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사진을 보면서, 글도 같이 읽었다. 이 책이 만들어진 과정은 모르지만..만약 구본창의 사진 한 컷을 보고 작가가 이런 저런 글들을 써내려 갔다면...신경숙은 정말 대단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나저나 참 신기한 것이...처음 출간 당시에 읽을 때는 정~말 별로였고, 그 후로도 몇 번 더 읽었을 때에는..괜히 이유없이 우울해 지더니... 오늘 읽을 때에는 그냥 사진과 잘 어울리는 담백한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쳤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오늘은 신경숙의 글을 기쁜마음으로 봤다. 그것도 얼굴에 샐쭉 샐쭉 웃으며...--;;)
예전에 '기차는 7시에 떠나네'라는 작품을 그녀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한다고 했었는데, 요즘은 이 책이 더 좋다. 내용이 그나마 밝은 편이라서 그런가보다.
밑에 글은 예전에 써둔 리뷰다. 책 한 권 읽고..그 땐 참 센치멘탈 했었다.
[슬프지는 않았지만...잔잔했다..그 느낌이...] 2007년 9월 27일 작성한 리뷰
책을 고르는 기준은 없다. 마음에 드는 책은 주로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 위주라서,보통 한 작가가 좋아지면..그 작가에대한 책은 죄다 섭려하는 편이다.
각설하고...
이 책은 몇 년전에 구입한 책이였고, 처음 읽을때는..좀..지루했고..아마 그런 식으로 평을 남기지 않았었나 한다(남겼는지 안남겼는지..기억이 없음)
요즘은 화장실 한켠에다 꽂아두고 즐겨보는 책이 되었다.큰일을 보거나 혹은 욕조에 물을 받아 놓고...사진과 글을 보다보면,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일단 첫째로 부러운 것은..글쓰는 사람에 대한 동경과 부러움 둘째는 바쁘고 분주한 삶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정리 정돈해 버리고 싶은 마음.
아무런 이유없이 움츠려 드는 경우가 있다. 아니, 이유가 없진 않겠다. 잊은 줄 알았더니 불쑥 생각나는 옛 연인, '이젠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을 박아버린 내 오랜 친구, 그리고..또 뭐 없나? 여하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황당함에 기가막힌 어느 저녁에, 읽으면 딱 좋을 책이다. 최소한 그녀의 다른 책과는 다른 포스가 있다.
책 내용이랑은 상관없지만, 구본창의 사진을 보니...나도 자고 일어난 이불, 널어놓은 빨래 같은 것에나 정을 주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레임은 집어치우고... 책상이나 볼펜이나 그런 것들에 대한..새로운 느낌 찾아봐야지. 이 책 보면서... 감성은 책에서나 느끼고, 내 실생활에서는 조금더 담담해 지리라는..생각을 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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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보는 아름다움이 무슨 소용이 있어, 라는 말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향한, 다다를 수 없는 것을 향한, 고독한 독백이기도 해서 누구나의 심장을 관통한다. (신경숙 - 자거라, 네 슬픔아 p. 30) 다다를 수 없는 거리감. 허우적거리다 잠을 깨면 목덜미가 차디차다. 꿈이었구나, 자각하지만 이미 마음은 다다를 수 없는 거리감으로 인해 야릇한 슬픔에 사로잡혀 있다. (신경숙 - 자거라, 네 슬픔아 p. 73) 신경숙 작가의 소설은 언제나 편안하다. 그 익숙함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쫓아가다 보니 ‘시골 풍경’과 ‘고독’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어릴 적, 마루에 드러누워서 할머니께서 주시는 과일을 먹으며 마당에 매달린 등을 보곤 했다. 그때는 시골에 사는 순수한 아이답게 곤충과 벌레 같은 것 따위는 무서워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등에 들러붙은 수많은 벌레들을 보면 온몸이 가렵거나 미간을 찌푸리지만 그 시절에는 그랬다. 그땐 과일을 먹으며 등을 바라보고, 벌레를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항상 내 곁에는 익숙한 향의 모기향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타 들어가는 모기향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정신을 놓곤 했다. 향에 취해 다가오는 모기처럼 나도 그 향에 취해 있었던 게 아닐까. 신경숙 작가의 소설들은 항상 향수를 자극한다. 이 작가의 소설의 특징은 동일한 배경과 설정이라는 것이다. 조금의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시골에서 태어난 책읽기를 좋아하는 소녀, 여섯 남매의 따뜻하지만 풍족하지 못했던 그때, 항상 자식들을 생각하고 묵묵히 일만 하시는 어머니, 말수는 없지만 언제나 자식들 편에 서 계셨던 아버지. 신경숙 작가만의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이 배경이 어쩌면 우리들에게 익숙함으로, 나에겐 향수로 다가오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아직 필요 없는 옛 기억속의 모기향을 사 버렸다. 결국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모기향 냄새가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 작가만의 또 다른 특성인 ‘고독’. 우리는 고독에 익숙하다. 소설에서도 나왔듯이 우리는 이룰 수 없는 것을 향해, 다다를 수 없는 것을 향하고 있다. 그것이 사랑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상관은 없다. 우리는 언제는 잡을 수 없는 것을 향해 손짓하고 있을 뿐이다. 마치 숙명처럼. 하지만 때때로, 기다리는 게, 달려가는 게 힘들고 지칠 때가 있다. 그럴 땐 뒤돌아보고 자신을 발끝을 쳐다보게 된다. 그리고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고독에 빠지게 된다. 언제나 이룰 수 없기에, 가질 수 없게, 채워지지 않는 욕망은 언제나 공허하다. 우리는 가져도, 가질 수 없었다. 가질 수 없어도 가지려고 한다. 그럴 때 우리는 고독을 느낀다. 최근에 눈물을 펑펑 쏟아낸 적이 있다. 그 감정의 시작이 어디서부터인지 알 수는 없지만 너무나도 서럽게 울었다. 그날, 뱉을 수도 삼킬 수도 없는 말을 종이에 적은 다음 찢어버렸다. 처음에는 괜찮아진 듯했다. 하지만 이내 눈물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고독했다. 그냥 고독했다. 나의 고독은 나만이 아는 것이라 생각했다. 나도 당신의 고독을 이해 못해, 하지만 당신도 나의 고독을 이해 못해. 소리치고 싶었다. 뭐가 그토록 서럽고 억울했는지 좀처럼 그치지 못했다. 최근 심연과 고독이란 말을 많이 사용한다. 어떤 바람이 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감정들이 나쁘게 여겨지는 것만은 아니다. 최근, 내 감정에 솔직해지는 느낌도 든다. 저열한 감정이든, 긍정적인 감정이든 내 것이라 생각 든다. 내 것, 나의 것, 나만의 것. 내가 소중한 사람이고,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면, 나의 저열한 이 감정까지도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따금 드는 생각이지만, 그런 나의 모습까지도 사랑해줄 수 있는 누군가, 타인이 나타나 줬으면 하는 어린 아이 같은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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