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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가 된 지 한참 되었지만 20세기 음악을 듣는건 재밌다. 현재와 조금은 가까운 느낌이 드니까. 57년에 사망한 시벨리우스의 대표작들은 사실 대부분 19세기 말에 쓰여졌으니 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1904년부터 시벨리우스는 죽을 때까지 은둔했다. 핀란드에서는 이 위대한 작곡가를 위해 공군의 비행훈련까지 조정했다지만 의지의 시벨리우스는 굽히지 않고 그냥 죽을때까지 버텼단다. 송영훈씨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들은 이야기라 굳이 확인은 해보지 않았지만 맞겠지. 예술가들의 괴벽이야 가십처럼 떠돌며 허명을 과장시켜온 지 오래지만, 세상에 고분고분 적응해가며 연명하는 나에겐 그런 작품 외적인 이야기들이 그들에게 흥미를 갖게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정신분석학적인 견지에서 예술에 접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하니 굳이 스스로를 평가절하할 마음은 없다.
단지 누구나 생각해봤을 만한 세상에 대한 부정의 제스추어를 실행에 옮겼던 사람들-의 정신세계가, 매체를 통해 일관성있게 매듭지어진 결과물이 궁금할 따름이다. 이 전집물을 구입한 건 그 결과에 접근하는 주체가 개인이 아닌 음반회사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범람하는 저가의 박스물은 많은 경우 철지난 음원을 싼 값에 사다가 이름있는 지휘자 혹은 솔로이스트의 명성에 기대어 묶어내거나/ 이름이 없으면 대놓고 탄탄한 기본기가 바탕이 된 연주단체의 학구적인 해석이라고 선전하는 것 같은데, 주머니 헐렁한 나같은 사람이 혹하긴 하지만 에초부터 기획의 의지가 불투명한 묶음에 괜시리 우울해진다. 분명히 BIS는 마이너레이블의 태생적 한계가 있을텐데 나름의 충실한 기획으로 시벨리우스의 정수라는 박스물을 만들어냈다. 포장의 가벼움-카라얀 심포니 에디션의 경악할만한 홑종이 케이스-를 여기서도 한번 맛보게 되긴 하지만, 13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라이너 노트에는 시벨리우스라는 작곡가에 대한 소개와 기획의 변, 그리고 무엇보다 반가운 원곡의 가사와 영어번역이 모두 수록되어있다. Juan Hitters의 커버사진에 시벨리우스의 프로필을 싱크로시킨 것도 마음에 든다. 피요르드의 날카로운 바위의 명암과 시벨리우스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따로놀지 않는다. 어차피 인간은 입력된 모든 정보를 섞어서 판단할 수밖에 없는 선입견의 동물이니. 나는 가본 적도 없는 북국의 정서를 느끼련다.
말많은 그라모폰이지만 이미 평론매체를 통해 실력을 인정받은 오스모 밴스케와 라흐티 심포니, 니메 예르비 등 연주자의 실력도 믿을만 하다. 익히 알려진 연주인 강동석의 바이올린 협주곡도 괜찮다. 한곡 한곡 명연을 찾아듣는 재미도 있지만 레이블의 성격을 파악해보는 것도 음반 사는 재미니까. 어차피 인간이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해야한다면, 이 박스에는 변명거리가 꽤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