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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디아노는 매번 잃어버린 기억, 사라져버린 삶의 흔적에 끈질기게 매달린다. 그럼에도 그의 모든 소설들은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더욱 더 마법같이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그만이 가지고 있는 그런 매혹적인 힘을 잘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그는 이 소설에서 1940년대의 전쟁을 겪고 난 후 기억상실자가 되어버린 한 남자가 자신의 과거를 추적해 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라는 이 한 문장만으로도 충분히 극찬을 받을 만한 유명한 구절로 소설은 시작된다.
오래되어 빛바랜 사진들, 의미를 알 수 없는 종이조각들, 그저 단편적인 기억들을 가지고 있는 증인들 그리고 그들의 불확실한 증언들. 그러한 불투명하고 단편적인 단서들을 가지고 자신의 과거에 대해 추적을 시작하는 남자. 그래서 그를 따라 그의 지나온 삶의 궤적을 추적해 나가는 일은 꽤나 어렵고 초조하다.
어디선가 맡아본 듯한 향기. 낯익은 거리의 풍경, 그런데 기억은 좀처럼 도와주지 않는다. 그리하여 삶이란 것도, 내가 나의 온전한 삶이라고 믿었던 것도 불투명하고 흐릿한, 언제 사라질 지 알 수 없는 그런 헛된 기억들에 의해 움직여진다는 사실.
그런데 그가 점차 자신의 과거로 들어가게 될수록, 그는 전쟁으로 인해 인간의 정체성이 훼손당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부닥치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전쟁 중 스위스로 넘어가려고 하다가 실패한 어떤 남자의 모습이 자신과 많이 닮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그조차도 그런 기억들이 그저 희미하게만 느껴져서 자신이 진실로 누구였는가를 확신할 수가 없다.
그 당시에는 전부인 것 같았던 것들이 이제는 그저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그런 기억들. 언제 증발될 지 알 수 없는 그런 연약한 존재들의 흔적들. 그런 존재의 가벼운 흔적들을 이 소설의 문장 사이 사이에서 느낄 수 있다.
'나'라는 존재는 그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어느 날 문득 무(無)에서 생겨났다가 잠깐 빛을 발한 다음 다시 무(無)로 돌아갈 그런 존재라는 것. 어쩌면 이 소설은 마치 이 사실을 말해주기 위해 불투명하고 단편적인 증거들 속에서도 그토록 힘든 여정을 계속했는지도 모른다.
그 여정을 따라가는 일은 무척 힘이 들면서도 매혹적이다. 바로 그러한 점이 자꾸만 모디아노의 책을 뒤적이도록 만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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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기억을 앓는 자들이다 -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느낌이 절박해질 때가 있다. 성숙하지 못한 호감과 거기서 비롯된 나르시스적인 열정이 상처의 공장으로 변환될 때, 경계를 허물려다가 더욱 깊은 경계를 만들게 될 때, 그래서 가역반응이 허용되지 않는 관계를 자각할 때, 삶은 절박해진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시기에 우리는 뒤를 돌아본다. 돌아보는 시선 속에는 아무것도 구체적인 것은 없다.
기억은 언제나 명확하지 않으며 다만 명징하게 다가오는 것은 몇 개의 순간들이 아니었던가. 기억을 되새길 때 우리는 자신의 삶을 좌우한 몇 개의 순간들과 마주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어느 여름날 차 안에서 잠든 당신의 옆모습에 매혹되었을 때, 처음으로 아프게 인식했던 활자의 기억들, 낯선 풍경이 익숙함으로 다가올 때 느껴지던 기시감,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종소리처럼 맑게 들리던 순간, 삶에서 잊혀지지 않는 몇 개의 풍경들.
프랑스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는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설의 주인공 '기'는 헤매고 있다. 기억 상실증에 걸려서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그는 남미 대사관의 직원이었으며, 누군가의 절친한 친구였고,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기'에게는 어떤 기억도 없다. 낡은 사진 한 장을 단서로 기는 자신의 과거 속을 헤맨다. 어디선가 맡아본 듯한 향기. 낯익은 거리의 풍경, 그런데 기억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다. 온전한 삶이라고 믿었던 것도 불투명하고 흐릿한, 언제 사라질 지 알 수 없는 그런 헛된 기억들에 의해 움직여진다는 사실만을 확인할 뿐이다.
점차 자신의 과거로 알아갈수록, 그는 전쟁 중 스위스로 넘어가려고 하다가 실패한 어떤 남자의 모습이 자신과 많이 닮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기억들조차도 희미하게만 느껴져서 자신이 진실로 누구였는가를 확신할 수가 없다. 가끔씩 명멸하는 것은 과거의 어떤 '순간'일 뿐, 퍼즐 같은 그것들은 끝내 명확하게 이어지지 않는다. 기억의 부재를 거듭 확인하면서 기는 계속 방황한다. 자신이 마지막으로 살았던 곳인 로마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향해가는 '기'. 거기에는 자신의 온전한 과거가 있을까.
이 소설은 세계대전 이후 정체성과 가치를 상실한 채 부유하는 프랑스의 젊은 세대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들은 과거에 빚진 것이 없기에, 새로운 가치를 찾아 끊임없이 방황해야 했다. 기성세대의 과거-기억에 좌우되는 자신들의 미래에 대하여 항의하는 이들의 움직임은 바로 '68혁명'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특정 세대를 다룬 소설이 다른 세대에게 읽힐 때, 그 소설은 '세대론'의 영역을 넘어서 보편적인 인간에 대한 성찰로 확장된다. 소설 속의 '기'처럼, 어쩌면 우리도 자기 자신을 응시하지 못하고 표류하는 존재들이 아닐까. '기'의 행보는 인간이 과거의 틈새 속에서 자신을 확인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잃을 수밖에 없는 기억의 체계와 불화하면서 우리는 현실 속에서 스스로를 명확하게 인식하기 어렵다. 내가 아는 당신은, 그리고 당신이 아는 나는 견고하지 못한 기억을 지닌 채 만나고 헤어진다.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 관계는 지속되지 않는다. 기억은 조각난 퍼즐에 불과하며 우리는 혼돈과 고통 속에 살고 있지만, 그 작고 위태로운 기억의 편린들이, 역설적으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희망의 근거가 아닐까. 우리는 불완전한 기억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기'의 친구 위트가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은 이러한 사실들을 상기시켜준다.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라고 한 당신의 말이 옳았습니다" (177쪽)
몇 개의 조각들, 어떤 것의 한 귀퉁이들이 갑자기 내 수사의 과정을 통하여 되살아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인생이란 바로 그런 것인 모양이지요. 과연 이것은 나의 인생일까요? 아니면 그 속에 미끄러져 들어간 어떤 다른 사람의 인생일까요? (24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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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공쿠르상을 수상한 파트릭 모디아노의 출세작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국내에서 독자들은 물론 작가들에게도 많은 자양분을 제공한 작품이다. 과거의 기억은 늘 희미한데, 그 흔들리는 기억을 들추어내는 단서들이 점점이 연결되다가 생의 윤곽이 어렴풋이 드러나지만 끝내 명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흐름을 그의 소설은 공통으로 보여준다. 그리하여 몽롱하고, 아련하다. 어딘가에 두고 온 누군가를, 기억이 명확하지 않은 그 대상을 그리워하는 아픈 정서가 늘 배면에 깔려 있다. 겉보기에는 이 소설은 과거를 찾아 헤매는 한 기억 상실자의 이야기다. 어떤 흥신소의 퇴역 탐정인 작중 화자는 마치 다른 인물인 것처럼 자신의 과거에 대한 추적에 나선다. 한 장의 귀 떨어진 사진과 부고를 단서로 바의 피아니스트, 어떤 정원사, 사진사를 차례로 만나게 되고 그들의 단편적이고 불확실한 증언이 1940년대, 밀수와 가짜 증명서와 배반으로 가득 찬 어는 집단을 환기시킨다. 그러면 그 기억 상실의 탐정과 ‘페드로’라는 인물은 결국 같은 사람일까? 그는 과연 저 신비스러운 ‘드니즈’, 패션 모델을 하다가 전쟁 말기에 스위스로 잠적한 ‘드니즈’를 사랑한 일이 있는가? 과연 그것은 그의 과거일까? 아니면 어떤 다른 사람의 과거일까? 집요하게 계속된 인터뷰의 목록들이 구성하는 저 허구 같은 과거 속으로 그는 조금씩 들어가 살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어떤 향기는 이미 맡아본 냄새같이 기억된다. 어깨를 따끔하게 꼬집힌 듯한 느낌은 막연히 가슴을 떨며 지나온 길을 상기시킨다. 어느 거리에 가면 옛날에 들었던 발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떤 창문은 지난날 오랫동안 기다렸던 장소 같다. 그러나 이 소설은 소멸된 과거의 근원적인 애매성을 어떤 병적인 기억 상실과 탐정소설적 추리를 통해서 재구성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앙드레 말로가 우리의 개인적 일생을 두고 말한 ‘조그만 비밀들의 무더기’와 대면시킨다. 어린 시절 저녁 나절의 슬픔처럼 쉬 사라져버리는 저 충동들의 환상이 지닌 사연 같은 메커니즘을 이 소설은 분해하여 보여준다. 더군다나 전쟁이 사람들과 사물들을 흩고 바스러뜨려버린 1940년대의 체험은 우리들 인간 조건이 얼마나 헛된 망각을 바탕으로 지어져 있는가를 보여주는 데 안성맞춤이다. 바닷가에서 바캉스를 즐기며 우리들 각자가 찍은 사진들 속에 우연히 함께 나타나 있으되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를 알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바닷가의 낯 모를 사람들’처럼 우리의 삶을 그려 보이는 데 있어서, 언뜻 지나치며 본 한 장면, 끊어진 한 토막의 대화, 어렴풋한 소리들을 예민하게 포착하는 모디아노의 감각과 탈색된 언어는 그 유례를 찾기 어렵다. 그의 문체는 탐정의 보고서만큼이나 간결하다. 결정적인 세부사항 하나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추리가 허구로 돌아갈 것 같은 불안감과 강박관념, 어떤 중요한 목록의 누락이 환기하는 질문은 문득 심각한 형이상학으로 인도한다. 과거를 모두 기억할 수 없다면 살아서 무엇하나? 그러나 살지 않는다면 추억해서 무엇하나? 가장 헛되이 바스러져서 망각의 무로 변하는 우리들 삶을 가장 감동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이 소설은 바로 이런 점에서 어떤 모럴을 손가락질하는 것 같다. 한 일생의 기나긴 자서전을 따라가는 것보다는, 그 지속적 시간 끝에 남는 무를 고려할 때, 차라리 이 확실하고 찬란한 현재를 사랑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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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 78년 콩쿠르상 수상 장편소설. 두 문구에서 자아정체성과 몽환성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80년대 이전의 프랑스 문학은 자아를 찾는 과정에 대한 연구가 붐을 이뤘고, 해당 주제는 책을 대중적으로 만들진 않았다. 반면 파트릭 모디아노는 유명한 이름이었고, 더구나 이 책은 작가의 대표작이 아니었던가.
책은 예상대로 소멸된 자아를 찾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건 책의 흡입력이었다. 탐정사무소에 근무하던 주인공은 8년전 기억을 잃어버렸다. 사무소 소장이 준비해준 여권과 이름으로 그동안 살아왔던 것. 사무소가 문을 닫게 되자 스스로 자신의 과거를 찾아 나서게 된다. 낡은 몇 장의 사진과 전화번호 몇 개로 바의 피아니스트, 정원사, 사진사 등 자신과 관련된 기억을 한 가지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한 명씩 만나면서 점점 자신의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기억상실증이란 소재를 프랑스 문학의 자아찾기와 연관시킨 책은 굉장이 매력적이다. 특히, 작중 화자는 마치 다른 인물인 것처럼 자신의 과거에 대한 추적에 나선다. 이에 주인공의 과거를 찾는 내용은 마치 제3자의 자아를 찾아가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또한 무(無)에서 왔다가 무로 돌아가는 줄거리 역시 독자 스스로의 반성을 요구한다.
소멸된 과거 기억의 일부는 모든이에게 적용될 수 있고, 따라서 책은 탐정소설적 추리로 강제적인 기억을 만들진 않는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보여줌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몽환적 느낌의 내용으로 인해 프랑스 문학의 매력을 더하고, 열린 결말로 상상력을 자극한다.
주인공이 살았다는 로마의 옛 주소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2번지'에 닿을 때 과연 그는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있을까. 아득한 지난날의 빛바랜 기억들을 가진 우리의 모습은 스스로에 대해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까. 뒤돌아보지 않고, 현재와 미래만을 생각하며 살 순 없을까. 뿌연 안개속을 헤매는 주인공의 모습, 다른 이의 인생을 살아가는 그의 모습이 낯설지만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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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는 '해변의 사나이' 라고 불리는 한 인간을 나에게 그 예로 들어 보이곤 했다. 그 남자는 사십 년 동안이나 바닷가나 수영장 가에서 여름 피서객들과 할일 없는 부자들과 한담을 나누며 보냈다. 수천 수만장의 바캉스 사진들 뒤쪽 한구석에 서서 그는 즐거워하는 사람들 그룹 저 너머에 수영복을 입은 채 찍혀 있지만 아무도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며 왜 그가 그곳에 사진 찍혀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中에서
내가 누구인가의 문제는.
굳이 기억을 상실한 그 누군가가 바스러지는 기억속을 헤매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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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해 보면 어떨까? 설렐까, 참담할까. 내가 기억을 하든지 못 하든지 나를 아는 사람들을 찾아 되짚어 보는 세월, 묘하게 매력적인 여정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내게 좀 지루했다.(행복한왕자님의 리뷰와 책 제목에 마음이 확 끌렸는데) 그런데 손에서 놓고 싶지는 않았다. 보통 이런 비슷한 소설책은 하루 이상 걸리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사흘 동안 붙잡고 있었다. 뭘까, 지루한 듯 하면서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고 다 읽어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하는 이 힘은?
프랑스라는 배경 덕분인가? 솔직히 나는 프랑스를 떠올리지도 못했다. 마치 우리나라 어느 낯선 도시를 헤매는 기분이었다. 사람 이름도 낯설고 도시 이름도 낯설고 거리 이름도 낯설고.(너무 낯설어서 구분조차 하기 힘들었고, 게다가 주인공이 자신의 이름조차 잊어버린 상태였으니 누가 누구였는지, 원....) 다만 희한하게 생각되는 것은 카페 이름이나 카페 분위기로 봐서는 이들 카페들이 꼭 우리나라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았다는 점이다.
그냥 좀 쓸쓸했다. 하염없이, 막연하게, 굳이 찾아야 할 나의 지난 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번쯤 돌아가 보았으면 싶은 그 어떤 갈망. 그러면 그 지난 날은 나를 반갑게 맞아줄까 아니면 지긋지긋해 할까.
책이 괜찮았던 것인지 어떠했던 것인지 분명하게 말하지는 못하겠다. 그런데 읽고 있었던 그 시간들이 꽤 괜찮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묘한 독서 여정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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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릭 모디아노. 1945년 생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해방둥이'인 셈. 그는 직접 2차대전을 겪지는 않았겠지만 성장과정에서 전쟁의 그늘과 영향을 계속 의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모디아노의 자녀 세대인 70년대 생인 나도, 술주정뱅이로 변한 육이오 상이군인이나 월남에 간 삼촌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으니 말이다.
소설 내용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이 사람들을 만나가며 과거의 자신을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내 생각에 이는 한 개인의 삶의 추적이라기 보다는, 2차대전을 겪지않은 전후세대가 자신은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전쟁과 과거 역사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작업이 아닐까 한다.
소설 말미에 가면, 주인공은 1940년 경에 프랑스-스위스 국경을 넘으려다 브로커 조직에 희생당해 외상을 입고 사랑하는 아내와 기억을 잃은 듯 보인다. 그 과정에 그가 겪은 일은 구체적으로 서술되지 않는다. 그 기억을 잃을 만한 결정적 사건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전쟁의 경험을 은유한 것이 아닐까?
읽다보니, 이 소설은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이 원어로 읽어야 그 느낌을 제대로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국어의 과거시제는 과거뿐이지만, 프랑스어는 복합과거와 단순과거의 두가지 시제가 있다. 주인공이 추측, 회상하는 과거 장면이 과연 원서에는 어떤 과거로 표현되어 있었을까? 궁금하다.
그외, 파리의 여러 거리, 지명 언급도 흥미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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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이렇게 교훈이 없을 수 있나....
기억을 잃어버린 남자가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렸다. 딱보면, 헐리우드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그럴듯한 소재인데, 프랑스 소설답게 불친절하다.
전반적으로 무덤덤하고, 무미건조한 이야기속에 마음을 후비는 임팩트도 없고, '잘 봐, 바로 이거야' 하는 자극적인 내용도 없다.
그럼에도, 아무런 거부감없이 이야기를 쫓아가고 있는 나.
자신을 찾기위한 여정속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도, 슬그머니 이런 저런 상상의 여지를 남긴다. 퍼즐맞추듯이 풀어나가긴 하지만 명쾌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여전히 그의 흔적들을 찾아가며, 내가 그 사람인지 아닌지 애매모호하게 끝나버리는 결말은, 외롭고 쓸쓸한 한 남자의 뒷모습이 연상되어 마음이 편치 않다.
그래....살다보면...종종 추억도 버겹다. 아름다웠지만...돌아갈수 없는 것에 대한 집착은 망상이고, 허상일 뿐이지 않을까? 책 속에서처럼 기억상실증에 걸린다해도...아니, 차라리 그렇게라도 되었으면 하는 순간도 있었을테지.
어떤 날은 잠을 뒤척이며 베게를 적시게 되었더라도...아침이 되면 변함없이 밝고, 건강한 현재를 맞이했으면 좋겠다. 책의 주제는...솔직히 뭔지 모르겠으나, 답답(?)한게... 묘하게 끌린다.
그런데 참 이상한게, 이 대책없이 묘하게 우울(?)한 글을 읽고났는데... 난 좀 잘 먹고 잘 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뭐 그랬더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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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것은 나의 인생일까요? 아니면 내가 그 속에 미끄러져 들어간 어떤 다른 사람의 인생일까요?
기억상실증에 걸린 남자가 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여행을 시작한다. 여행을 통해 과거에 자신과 관계 맺었던 사람들을 만난다. 자신을 이루는 잃어보린 조각들을 찾아 맞춰 나간다. 그는 자신을 이루는 모든 조각들을 모두 찾을 수 있을까?
그는 분명히 바다에서 실종되지는 않았다. ... 나는 결국 그를 찾아내고야 말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시도를 해볼 필요가 있었다. 즉 로마에 있는 나의 옛 주소 '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2번지'에 가볼 필요가 있었다.
자신의 가장 절친한 친구를 만나러 갔는데, 정작 그는 실종됐다. 잠시 그는 자신이 찾는 퍼즐 조각을 잃어 버렸다. 그는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그는 그 자신을 이루는 모든 조각을 찾으면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 그가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2번지'에 찾아 갔을 때 그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혹시, 또 다른 퍼즐에 대한 단서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삶을 이루는 요소들을 다 갖춘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혹시, 주인공은 이미 자신의 퍼즐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그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삶은 알 수 없는 여백과 더불어 완성된다. 여백은 다른 사람들의 삶으로 채워진다. 동시에 나의 삶도 다른 사람들의 여백을 차지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프랑스 소설을 오랜만에 읽는다. 짧은 문장과 빠른 이야기 진행이 눈을 끈다. 결코 흥미 위주의 소재는 아닌데, 나는 탐정 소설 이상의 흥미를 느꼈다. 특히, 작가의 시선은 역시 다르구나 라는 평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 시선과 형식이 잘 어우러졌다는 말도 덫붙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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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오는 길, 자유로에선 밤안개를 자주 만난다. 피가 차가운 편이라 주변에 영향을 잘 받지 않지만 유독 그 뿌연 자욱함 앞에선 내 안의 동굴이 조금 더 크고 깊어진다. 그럴 때마다 프랑스 작가의 소설들을 잘 골라 읽으면 참 좋다. 침잠이란 게 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은 기분. 혹은 짧고 순간적이고 말초적인 쾌감에 익숙해져 있다가 갑자기 각성되는 느낌이기도 하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현재와 미래만 생각한 지 어언 8년. 하지만 '기'는 자신의 과거 속으로 흐르는 시선의 움직임을 막을 수 없다.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기억을 자극하는 상황들을 만난다. 그리고 희미한 결말.
난 그가 좀 답답했다. 언제나 그렇듯 과거의 진정한 이미지들은 훅 지나가 버리면 끝이다. 스스로가 기억해 내지 못하는 과거는 그래서 한편으론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제 힘으로 구성하지 못하는 자신의 과거를 찾아간다는 건, 그저 나에게서 벗어나 다른 이 혹은 다른 사물에 기대 자신을 들여다 보고픈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과거를 찾는다는 게 유의미할 수 있는 지점은 어디일까 의문이 들었다. 번쩍하며 다가오는 어떤 기억의 한 프레임을 붙잡는다는 건 현재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행위일진대 무작정 그때 그 시절로 투신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느냐 하는 말이다.
그리하여 파트릭은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아니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슬픈 우리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지나간 어떤 시간을 추체험하는 건 누구에게나 감정이입할 수 있는 순간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돌아갈 수 없는 것에 대한 근원적인 슬픔. 그건 소금기둥처럼 자리에 우뚝 선 채로 그저 뒤를 바라보는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 그건 현재와 미래를 향해 시간으로 만들어 낸 디딤돌이자 구름판이 되어 줘야 한다.
유대인들은 기도와 토라를 통한 회상 속에서 미래를 가르친다. 작가가 그려 내고자 한 과거로의 여행도 난 이 부분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었다. 'viva la memoria'는 앞으로를 향해 나아가는 최고의 제사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글의 첫문장을 쓰는 건 참 어렵다. 연필 끝을 아무리 깨물어도 맘에 드는 그 한 줄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사실 이 소설은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끝없이 섬겨야 마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