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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서 학위를 마친 저자는 고대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풍부하고도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사사기>에 대한 개론적 이해를 펼쳐 나간다. 특별히 <사사기>에 대한 개론적 이해에서 눈길이 갔던 것은 사사 시대(주전 1200-1050년)의 배경을 논하면서 고고학적으로 철기 시대 1기에 해당됨을 언급한다는 점이다. 이 시대 고대 중동 사회에 중요한 사건으로 해양민족 세력 중 하나인 블레셋의 지중해 연안 정착을 저자는 꼽는다. 고대 중동 세계의 전통적 강자였던 이집트의 견제(람세스 3세)로 인하여 이집트가 아닌 가나안 지역에 정착하게 된 블레셋 세력은 블레셋 평야에 가사, 아스글론, 아스돗 등을, 쉐펠라 지역에 가드와 에글론 등의 도시 등을 세우는데, 문화적 측면에서 사사 시대는 블레셋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시기로 저자는 보면서, 블레셋의 문화에 대해서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소개하고 있다. 원서가 아닌 한글 서적으로 블레셋 문화에 대해 접하기 쉽지 않음을 감안할 때, 블레셋의 제의, 토기, 장례 등 문화 전반에 대한 내용이 소개됨은 구약성서 <사사기>와 관련한 다수의 유익한 책들 중에서, 이 책 나름의 장점이자 차별성이 아닌가 싶다.
간혹 구약 시대 이스라엘은 선진화된 문화.문명으로서 주변 세계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막연히 생각해 온 이들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이스라엘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임이 분명하다. 문화강국 이집트에서의 수 백년간의 정착은 분명 이스라엘에 잠재적 영향력을 행사했으리라 짐작해 볼 수 있겠지만, 그 마저도 40여년의 광야 생활을 통해 떨쳐내야 했을 이스라엘이었고, 가나안 정착 생활에서 이스라엘은 그들의 라이벌 세력이었던 철기 문명이 일상화 되었던 블레셋에 대하여 문화적 열세 속에서 경쟁해야 했다(Cf. 삼상 13:19ff. 이에 대해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야웨의 집을 짓는다는 성전 건축에 있어서까지 이스라엘은 두로의 기술자 히람을 스카웃scout 했음도 주목해야 한다).
사사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저자는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이스라엘을 구하는 지도자의 역할을 감당”하는 이들로서, “지상의 왕권을 소유한 이들이 아닌,”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 선택된 자들”로서 사사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사사기에 언급된 이 같은 12 사사들에 대해 출신 지파, 통치기간, 경쟁 세력, 관련 본문 등을 일목요연하게 표로 작성하여 제시하고 있는데, 특히 그 출신 지파가 불분명하였던 베들레헴 출신의 입산에 대해서 히브리 성서에서 일반적으로 유다 지파의 베들레헴은 ‘베이트-레헴’으로 기록된 반면(Cf. 룻 1:1;삿 19:2), 스불론 지파의 베들레헴은 ‘베이트-라헴’으로 기록되고 있음을 근거로 입산의 출신 지파를 스불론 지파로 설명하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얻게 되는 소소한 유익이라 여겨진다.
저자의 입장은 ? 신명기에 나타난 신학적 입장을 바탕으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해석.기술한다는 마르틴 노트(Martin Noth)가 주창한 - 신명기 사가(Deuteronomistic Historian/이하 DH)에 의한 기록되었다는 것이 사사기에 대한 근본적인 전제이다. DH가 갖는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신학적 통찰의 특징으로 사사시대 이후 들어서는 이스라엘의 인간 왕정에서 왕들을 정치적 업적이 아닌, 종교적 신실성, 즉 야웨 신앙에 대한 충실성을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사사기를 포함하여 구약 성서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역사는 현대적 의미의 역사 서술이라기 보다는 서사적이며, 교훈적 의도와 목적을 가진 역사 서술이라는 저자의 언급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전술된 이 책의 장점과 필자의 공감과 동의 속에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DH는 왕들의 역사보다는 성전의 역사에 대한 기록에 열중한다”는 저자의 언급이다. 그 근거로 “가나안 땅이 하나님의 성전이 건축될 곳으로서의 중요성을 갖음”을 언급한다. 여호수아~열왕기에 이르는 신명기 역사서 전체적 숲을 볼 때,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싶으나, 그러나, 전체 숲을 보더라도, 그 숲을 이루는 각 나무를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다. 필자는 DH가 그렇게 보았다고 저자가 이해하는 “왕들의 역사 보다는 성전의 역사”라는 언급에 대해 오히려 성전에 대한 기록이라기 보다는 이스라엘 인간 왕들의 야웨 신앙의 순수성과 결부되어 그 결과로서 언급되어 나타난 성전의 수난으로서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다시 말해, 성전이 강조된 것이 틀린 것은 아니나, 성전의 기록이라기 보다 성전의 수난은 인간 왕들의 종교적 순수성과 결부되어 언급되는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런 필자의 이해와 연관하여 저자에게 아쉬운 것이, 기드온과 아비멜렉, 그리고 왕의 부재에 관한 여러 언급(Cf. 삿 17:6;18:1;19:1;21:25 등) 등 사사기에서 나타나는 이스라엘의 인간 왕정 전조에 대해서 심도있는 언급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삼손의 언급이 끝나고, 사사기의 결론부에 해당되는 17-21장에 대한 시기적 논의의 부재이다. 사사기에 그 범위를 제한하여 사사로서 마지막 언급 인물인 삼손의 시대에 이스라엘의 현실적 적대 세력인 블레셋의 건재 속에서 이스라엘 11지파와 베냐민 지파 사이의 대규모 내전이 있었다는 것은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여기에서 구체적으로 논할 수 없으나, 결론부의 대규모 내전은 기드온, 아비멜렉, 입다 등의 시기에 있었던 내전의 내용들과 내러티브적으로 연결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고, 오히려 결론부의 시기적 배경은 사사 시대 초반부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는 사사기 내용 구성에 대한 논의에 대해 저자의 그 해박한 지식의 강점을 가지고 이 논쟁에 대한 논의의 불을 지폈으면 좋았겠다는 평을 남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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