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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집에 오면 어김없이 어머니가 현관문을 열고 나를 맞이해주곤 했었다. ‘아내’의 어원이 ‘안에’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는 듯 어머니는 항상 가족을 위해 준비된 상태로서 집에 머무는 존재였었다. 이 사실은 내가 나이를 먹고 20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도 변화가 없다. IMF 이후 아버지가 직장을 관두고 개인사업을 시작하셨을 때도 어머니의 가정 내에서의 역할은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어머니는 가사에 가게 일까지 더불어 행해야만 했다. 집은, 아버지에겐 오로지 휴식의 공간이었지만 어머니에겐 끊임없이 일거리를 제공해주는 곳이었다. 누구나 한 번 즈음은 해 보았을, ‘난 엄마처럼은 살지 않을 거야’란 생각을 내가 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우스운 건 그 생각을 하는 그 순간에도 난 어머니의 존재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전업 주부인 어머니의 삶을 보고 자란 나는 종종 무기력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학교에서 그리고 사회에서의 성취가 아무리 높을 지라도 결국 난 어머니가 될 따름이며 그 외의 사회적 역할은 허락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결혼치 않고 혼자 살 것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내뱉어 보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혼자 사는 것보단 결혼하는 게 낫지 않냐”는 말을 들을 뿐이었다. 대화는 그렇게 단절되었고, 난 어떤 형태의 삶을 살아야 할지 아직도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제목을 처음 보는 순간, 내 내부에서는 이유 모를 설움이 솟구쳤다. 내가 원했던 것은, 남들이랑 비슷하게 살면 되는 거라는 식의 답변만을 들어왔던 내게 필요했던 건 다름 아닌 격려였는데… 이 책이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보여줄 것만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소설가로서의 그녀, 하지만 현재의 모습을 잃지 않기 위해서 그녀는 얼마나 많은 투쟁을 벌여야만 했던가. 왜 여성에겐 아내로서의 그리고 어머니로서의 역할 외의 것들은 사치마냥 비추어지는 것일까. 거진 30년의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이제는 홀가분한 상태가 된 그녀를 향해 사람들은 ‘이혼녀’라는 말을 내뱉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함께 사는 게 혼자 사는 것보다 더욱 외로우면, 결혼 생활로 인해 가족을 얻었으나 나를 잃었다면 그 땐 어떻게 해야 되는지 사람들은 말해주지 않는다. 원래 여자는 자신을 죽이고 살아야 하는 법이라고, 어머니가 위대하다 말은 하지만 어려움을 토로하면 무언가 부족하다 평하는… 그 높은 평가 기준이 난 무서웠던 것 같다. 내가 나의 어머니를 어머니로서 받아들였던 그녀 역시 두 딸에겐 어머니로서 이해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어머니도 ‘어머니’라는 지위를 획득하기 이전엔 여자였고, 결혼 후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었을 지라도 이에는 변함이 없음을 난 잊었었나 보다. 사회와 단절되고 오로지 가정 안에 머물면서 매일 반복되는 가사에 치이는 그 순간에도 사회는 그녀들을 향해 ‘집에서 애나 키우며 놀고 먹는다’는 말을 너무도 쉽게 내뱉었던…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으나 그 속도가 너무 더디어 지금 당장 내가 결혼한다 하여 어머니 세대와는 전혀 다른 결혼 생활을 영위할 순 없을 것이다. 드라마가, 유행가 가사가 강조한 사랑에 대한 환상과, 그 환상의 절반도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이 가져다 주는 혼란에 빠져 나는, 그녀들은 우리의 어머니들이 겪었던 비슷한 소외감을 경험할 것이다. 그리하여 결혼 생활이 깨어진다 하여도 우리 그 경험을 ‘실패’라 규정짓진 말자고… 긴 인생에서 한 번의 깨어짐이 있다 하여 그 인생이 완벽히 파괴된 것은 아니라고 그녀는 말하고 있었다. 우리의 딸들이 나와 같은 아픔에 무너지지 않길 바라며, 아이의 성별에 연연해하기에 앞서 생명을 품는 신성함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할 수 있길 바라며… 나의 어머니는 늘 같은 자리에서 날 바라보고 계시다. 나이가 먹음에 따라 저 먼 곳 아닌 나의 가까운 곳에 머물면서… 듣기 싫은 잔소리, 귀를 틀어막고 싶은 말 한 마디, 하지만 그 많은 목소리가 내 인생이 아주 작은 아픔이라도 피해갈 수 있었으면 하는 안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토록 닮기 싫었던 당신의 모습을 조금씩 닮고 있는 나, 당신과는 다른 삶을 살길 바라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주진 못하는 당신…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더라도 그 삶은 실패가 아닐 거에요.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