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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이덕일박사님의 강점은 성실함과 꾸준함 그리고 길들여지지않은 야성이다.
매년 자신의 전공분야인 역사에서 한편이상의 책이 나오고 있다.
책을 쓴다는 것은 창작의 고통으로 쉽지않은 것이다.
기존의 틀에 박힌 역사관찰이 아닌 책과 여러매체에 기고하는 글을 통해
새로운 시각의 역사평론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책에서 시종일관 주장하는 것이 있다.
역사는 단지 뼈다귀들만의 이름나열을 암기하는 것이 아닌
史觀이 있는 역사를 배워야한다고 말이다.
뼈다귀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현재 우리네의 삶속에서 어떻게
고민하고 미래에 다가갈 것인지 알려주는가를 말하고 싶은것이다.
특별히 저자의 문민정부이후부터 대학에서 역사강의의 필수에서 교양으로 바뀐것에 대한
아쉬움과 비통의 견해는
현재 우리가 겪고있는 동북공정,일본의 주기적인 극우발언 등에
비추어보았을때 다시금 우리의 정책이 얼마나 근시안적이었는지 보여준다..
미국에서 교육받은 숭미주의 교육가들에 의한 교육개혁~
정작 200년 역사인 미국은 두개이상(정치사,미국사 등)의 역사과목을 이수한 학생에게만
대학졸업을 시킬정도로 자국역사에 대해서 관심과 애정이 있는데
우리는 너무 이런 사실을 간과하고 교육위정자들이 애써 축소적용한 것이
아닌지 의구심마저 들게한다.
본인 역시도 고등학교때까지 역사는 단순암기식으로 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솔직히 국,영,수위주의 공부로
역사에 시간을 할애하는것도 쉽지않은 시기를 거쳐온것이 현재 우리 청년의 모습이 아니던가..
이 책이 눈뜰 당시는 2002년으로 새로운 대통령을 뽑기위한 준비과정의 모습이 보였던 것에
반해 레임덕이라 일컫을정도로 정권말기현상이 있었음을 우리는 알고있다.
끊임없는 게이트와 부적격인사시스템으로 몇달사이 국무총리가 바뀌는 것을 말이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처럼 조선역사에서도 당시 현재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음을 저자는
"역사에게 길을 묻다"에서 소개하고 있다.
젊은날의 한 부분을 떼어내어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
아주 곰곰이 반추해보는 시간을 가질 필요성은 당연한 것이고 이를 인도해 줄
길잡이이자 안내자가 있다면 바로 "역사에게 길을 묻다"일 것이다.
저자의 붓끝에서 펼쳐지는 논리적인 전개는 시원함 그 자체이다.
저자의 책 중 초기의 작품인 "거칠것이 없어라"란 책의 이름과 같이 진짜 거칠것이 없이
우리의 지적 호기심과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을 이끌어낸다.
긴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튼튼하고 믿을 수 있는 다리가 필요하듯이
역사란 긴 강을 건널 수 있게 하는 튼튼한 다리역할로 충분한 책이라 말하고싶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일독을 권하고 책을 읽은다음 또다른 서평을 기대하는 바이다.
[인상깊은구절] 역사학은 과거학이 아니라 미래학이다. |
| 역사를 읽는 목적 중에 으뜸은 교훈을 얻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간의 삶이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아도 옛날과 지금의 모습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조선시대의 삶이 우리와 크게 다른 것 같아도 막상 정치, 경제가 굴러가는 모습들을 비교해보면, 사람만 바뀐 것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몇몇 정신 나간 정치인, 기업인들의 면모가 그때나 지금이나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놀랍기만 하다. 정상적인 왕위 계승 절차를 무시하고 왕위를 차지한 태종이나 세조 때 공신이 수십 명 책봉되었고 이들이 각종 이권을 차지하면서 특권세력화 하는 과정도 현대사에서 어김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역사를 다룬 드라마를 제작할 때 역사가의 고증의 거치도록 하자는 의견에 동감한다. 어린 학생들이나 역사에 별 관심 없는 분들이 그나마 역사를 배우는 곳이 드라마인데 늘상 역사가 왜곡된 내용을 시청하고 있다면 심각한 일이다. 저자는 역사가들이 현대사에 대해 언제까지 침묵해야만 하는지 묻고 있다. 학문을 위한 역사연구에 몰두하면서 역사는 대중성을 잃어버렸다. 차츰 암기과목으로 전락해갔고 선택과목으로 바뀌면서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과목이 되어버렸다. 역사의 필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정치인들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상당 부분 역사가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한다. 저자는 조선의 경우와 바로 지금의 경우를 비교하여 우리 역사를 망친 것으로 친인척의 정치 개입, 부정부패, 공신집단, 어리석은 지도자와 간신을 들고 있다. 개혁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개혁이 성공하려면 뚜렷한 명분, 개혁을 추진할 힘, 신속 과감한 추진력이 있어야 한다. 게다가 개혁대상이 개혁주체 세력 속에 섞여 있을 때 개혁이 물 건너 간다는 점도 이야기 하고 있다. 저자는 이해하기 쉬운 글로 역사에서 성공과 실패의 경우를 뽑아 제시하고 있다. 사실 논문을 읽으면 다 읽고 나서도 무슨 소리를 한 건지 몰라서 또 읽고 또 읽고 할 경우가 많은데, 이런 종류의 책은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역사를 싫어하는 사람이 읽어도 무난한 책이다. 학술적인 역사 서적도 많이 출판되어 팔리면 좋겠지만 대중적인 역사서도 베스트셀러에 많이 올랐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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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관의 대부 이병도로 대표되는 실증 사학은 일제의 역사가들이 주장했던 "사대"와 "정체"로 우리 역사를 정의했다. 그리고는 그 이상의 해석을 경계했다. 실증 사학에서 "실증"이란 단순히 있었던 사실의 나열만을 한다는 것이다. 들어보면 실증주의는 어찌보면 가장 합리적이고 타당한 역사연구의 방법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실증 사학에는 큰 문제가 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확한 나열이 무엇이 문제일까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의 심각한 부작용은 실증 사학를 주장하는 나라의 역사에는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사관(史觀)이라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파악하여 해석하는 근본적인 견해, 다시말해 역사관을 지칭하 것이다.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나열에 대해서 사관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실증 사학이란 사관들이 이용할 역사적 사실을 찾는 방법일 뿐이다. 그리고 더큰 문제는 그 실증에 다수의 왜곡이 가해졌다는 것이다. (일본사학계의 고질병인 왜곡의 문제는 어제오늘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단순한 역사실증를 사관이라고 포장하여 주장한 것이 일제시대의 식민주의 사관이다. 실증주의적 역사서술의 이면에는 일본의 치밀한 식민지 통치술이 담겨있다. 그것은 조선의 과거는 "사대주의"와 "정체"의 역사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는 암시와 세뇌를 조선인들에게 주입시킨 것이다.
따라서 들어보면 합리적인 주장이라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실증 사학의 문제점은 바로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역사란 미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미래가 없다면 그 역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서 사관이 필요한 것이다. 과거를 해석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관점이 사관인데 우리나라의 역사에는 이것이 없었다.
이러한 역사인식을 뿌리내리게 하고자 일제가 만든것이 바로 식민사관이다.
[인상깊은구절] P. 268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시각으로 새로운 세기를 맞고 새로운 세기를 해석하는 것이다. 교육 현장에서 국사를 퇴출시킨 교육학자들처럼 미국의 눈으로 한국을 바라보고, 그 잣대로 우리의 역사를 재단할 때 우리의 미래는 식민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친일 사학자나 숭미 교육학자나 그 본질은 같기 때문이다. |
| 나의 역사는 일제가 뿌려놓은 식민사관에 놀아났었다.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한국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암기과목이 아니고 삶에 꼭 유용하게 필요하리라는 긍지르 가지고, 열심히 했건만 그것이 바로 일제에 의해 놀아난 식민사관이었다. 나의 세계사는 영국 등의 서양중심의 제국주의사관에 놀아났다. 영국과 미국, 프랑스는 좋은 나라도 미화되고, 아프카의 많은 사람들은 미개인들으로 취급해야만 했다. 도대체 어떤 사관 어떤 눈을 가지고 몇천년이나 흘러 과거역사, 현재의 역사 미래의 역사를 볼 것인가? 나는 참으로 한가지 한가지 사관을 당연히 그것이 다 인줄알고 믿어왔다. 한치의 의심이나 생각에 대한 반고도 없이... 사관의 문제가 나의 우리의 국가의 현재와 미래를 바꿀 수 있는다는 것은 이미 과거의 역사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고 체득했을 것이다. 이 한국사나 세계사를 보는 사관에 대한 중요성이 중요한 키워드라는 사실을 이덕일님께서 많은 책에서 줄곧 역설하고 계신다. 로마인이야기로 한국에 많은 노블리스 오블리제 열풍을 일으킨 시오노나나미 역시 그동안 기독사관에 젖어서 볼 것만 보게 된 로마역사를 기독사관에서 벗어난 2차3차사료를 통해 로마를 볼 수 있었던 새로운 눈을 보여주었다. 과거의 사실인 역사가 오늘의 현재를 재조명하고 미래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는가? 이덕일님은 과거의 사건을 가지고 현재의 모습을 투영시킨다. 그리고 그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회복해야 하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보여주고 있다. 세조와 단종이야기. 중학교, 고등학교의 국사교과서 엄밀히 말하면국사가아니라 한국사이지요.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비교해 나가면서 얼마나 우리 한국사를 단편적으로 식민사관에 물들어, 관학사관에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국사교과서의 문제점을 대안없는 비판이 아니라, 발전을 위한 쓴소리를 하신다. 조선의 종친문제와 오늘의 대통령아이들과 친인척의 권력형비리문제, 텔리비전에서 들어난 역사이야기의 허와 진실등을 말한다. 이것이 맞고 그것은 틀렸다고 말하기 보다는 지금 나타나고 있는 사실에 과거의 모습을 새로운 눈으로 다시 보고 현재 보여지는 해석되어지는 모습을 다시 보자는 것이다. 텔레비전의 재미위주의 문화위주의 역사해석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강조하신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도 줄곧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도 이덕일님이 제시하는 역사사관에 대한 또한번의 반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네라는 생각이 아니다. 그리고면 그것은 틀렸고 덕일님의 생각이 전적으로 옳네도 아니다. 한권의 책을 읽고 그것이 다인것인냥 믿어버리는 것이 가장 무섭다고 하지 않는가? 이책을 읽으면서 내내 새롭게 제시되고 비판되어 지는 것들이 내 속에서 다시 해체되고 조합되는 과정이 꼭 있어야 할 것이다. |
| 우리는 흔히 지금의 우리의 일들을 평가할 때 훗날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의 벌어지고 있는 역사보다도 앞으로의 일어날 역사에 대하여 더 많은 관심과 배려를 하는 듯한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우리의 역사 의식은 정작 지금 돌이켜 보면 참으로 참담한 결과를 가지고 있다. 역사란 과거의 일들을 비추어서 현재를 조명하고 미래의 일을 예측하고 준비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역사를 이야기한다면 본서는 참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역사의 평가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잘못과 허물들 사이에서 지금의 모습을 조명하고 새롭게 인식해야 할 것을 지적하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과거의 우리의 역사가 당쟁과 음모와 모함의 정치로 비추어지도록 교육 되어진 역사의식을 뛰어 넘어 새롭게 재인식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도 우리의 역사 인식을 바로 잡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때로는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역사인 줄 알았던 것이 새로운 시각으로 새롭게 조명 되어진 역사보기는 나로 하여금 역사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갖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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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이 책에 몰입되어 있었습니다. 오랫만에 엄청난 흡인력을 가지고 빨아들이는 책이었습니다. 이책은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책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같습니다. 요즘에는 이 책에서 말하고있는 것 같은 시각의 역사를 말하는 사람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역사가 어떠한 것인지 경험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책입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경험은 단순히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시원하게 만드는 청량제 역할에서 시작해서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구체적으로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반성케 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습니다.
볼 때는 몰입해 들어가면서 삐뚤어진 세상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면 보고 나서는 자신에게로 돌아가 마음 속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지난날을 반성케하는 책입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너무 한쪽 방면에 치우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반복되는 것 같은 내용은 자칫 진부함으로 흐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 이 책의 저자 이덕일씨는 정말 제 마음을 통쾌하게 해 주시는 분입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에도 국사 선생님께서 교과서 국사를 가르쳐 주시면서도 이에 대해서 신랄한 비판을 가하셨을 때부터 우리나라의 역사는 얼마나 진실하게 전달되고 있는가에 대해서 궁금했었습니다.그런데 역시나 일제에 의해서 심하게 왜곡되어 있는 우리의 역사,우리의 자긍심은 꺾이고 너무나도 종속적인 역사관을 우리들의 머리속에 담기게 만들었죠. 이 책을 접하면서 어떻게 그 수백년전의 일이 지금과 이렇게 같을까?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게 됩니다. 조선의 종친들과 현 권력자들의 가족,친척들... 조선의 공신들과 권력자들의 가신들... 수많은 비교를 통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 그릇되었던 점들을 되잡기를 저자는 호소하는 듯 합니다. 역사는 돌고돕니다.하지만 실패했던 역사를 다시 반복하는 과오는 벌어져서는 안될 것 같네요. 단 하나 아쉬운 점은 글씨체가 너무 단조롭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정말 좋은 책인데... 옥의 티라고나 할까요! |
|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다. 현실적으로 볼 때 민족의 앞날을 위해 필요한 것은 역사와 교육이란 측변이 있으니까. 그렇지만 요즈음은 이 두 가지에 대해 별로 기대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가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한 것 같으니까. 그래서 생각한 것이 종교 쪽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현실적으로는 역사는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본다. 특히 우리와 같이 일제시대의 친일분자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식민지의 근성을 버리지 못하는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일제시대 그 어려운 시절에 어렵게 독립운동을 하고도 해방이 되어서 대접을 받기는커녕 일제시대와 같은 대우를 받고 있는 이 나라에 제대로된 역사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가끔씩 든다. 일제 시대에 그렇게 친일을 하고도 민족지 운운하는 언론도 아직 뻔뻔하게 살아 있는 이 나라에 과연 정의는 있는 것일까. 이 책을 보면서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과연 역사는 발전하는 것인지에 대한 강한 회의가 든다. 조선시대보다 못한 우리의 현실이 이런 자괴감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역사학계의 현실도 우리 나라의 현실과 같다. 일제시대 친일에 가까운 인사들이 아직도 역사학계를 주무르고 있고 그 제자들이 또 역사학계를 주무르려고 한다. 물론 제대로 하려고 해도 어떻게 제자가 스승을 비판할 수 있느냐는 정도로 역사학계는 문제가 많은 것이다. 앞으로 재야 사학계도 많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인터넷이라는 정보 공유의 가능성은 이 역사학에도 새로운 길을 재촉하게 될 것으로 기대가 된다. 얼마 전에 변호사협회에서 대통령의 대사면에 대해서 문제점을 지적한 적이 있다. 뇌물 사건은 사면에서 제외하애 한다는 상소를 조선시대에는 이미 올리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정치인이 뇌물을 수수하고도 그 다음에 사면이 되어서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국민이 무죄를 보장한 것으로 말하고 있는 이 나라에 무슨 정치적 발전이 있을지. 그런 의미에서 뇌물죄를 범한 관링들의 명단이 '장안'에 실리면 그 후손은 대대로 벼슬길이 막혔다(123쪽)는 조선의 제도를 우리는 강건너 물보듯해서는 안될 것이다. 왕권에 버금가는 권력을 누리던 한명회가 성종 재위 때에만 무려 107회에 달했다는 사실, 연산군 당시의 권신 임사홍이 이보다 많은 140회의 탄핵을 받았다는 역사적 사실(214쪽)을 보고는 놀라움이 앞선다. 우리 권력의 핵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지금 대통령의 친인척 관리가 조선시대보도 못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과연 조선시대처럼 탄핵을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조선시대의 언론기관인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은 지금 제 역할을 다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저자에 따르면 언로가 막히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이 유교정치의 이상이기 때문에 조선은 상소의 내용이 강경해도 처벌하지 않거나 관대하게 처리했다고 한다. 과연 지금은 언로가 막힌 시대인가, 열린 시대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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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되풀이 된다? 대략 이 책을 정리하면 그쯤 되겠다. 역사는 깊이와 범위를 달리할 뿐 연속적이고 반복적이다. 그래서 역사에게 길을 물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 속에 이미 현재의 숙제에 대한 답이 있다. 대통령 측근비리, 권력편에 선 사법부, 정치인의 부정부패 등의 문제는 지나간 역사속에서 무수히 발생하고 반복됐었다. 따라서 역사적 사실을 연표로만 읽고 시험문제의 답으로만 외워서는 의미가 없다.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해법을 찾는 것이야말로 역사를 배우는 진정한 자세이다. ...라는게 이덕일 선생의 주장이다.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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