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에 전반적으로 흐르고 있는 내용은 가진 자의 정보은폐와 강자와 약자사이의 feedback-즉 상호작용의 원리였다.
자본가는 어떠한 유용한 앎을 머릿속에 갖고 있기에 그러한 소유를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이고 그러한 앎이 퍼지게 하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한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가치 있는 정보는 희소성이 있기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자신들의 유용한 정보가 보편화 되었을 때에는 손해를 입고 도태된다고 생각하기에 가진 자는 실질적인 알짜 정보는 은폐하고 일반인들에게 듣기 좋은 아름다운 말을 내세워 계속 이득을 얻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은폐의 구조 속에서 사회의 불평등은 심해져 가고, 갈수록 80:20의 사회는 가속화되고 있었다. 세계화조차 절대로 자연적인 과정이 아니라 자본가들에 의해서 목적의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저자의 목소리는 많은 것을 시사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구조는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가? 이것에 대해서 저자는 날카로운 분석들을 하고 있었다.
민주주의, 그 자본주의 속에서 세계화가 의도적으로 가속화되면서 이제는 방관할 수만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 저자의 호소라고 느껴졌다. 우리는 우리의 세계 속에 있는 문제성 있는 논리를 그 피드백을 파악하고 분석하여 보다 나은 결과를 도출 할 수 있는 논리와 피드백으로 바꾸어 놓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지만 우리 세계인은 살아남을 수 있다. 어느 소수에게 치우친 이익으로 인하여 다수가 힘겨워진다면 소수조차 잘 살아남기는 어렵다. 우리 모두가 공존할 수 없다면 우리 사회는 모두 나락으로 떨어진 다는 것은 과연 과장일까?
문제는 80 : 20의 양분된 사회가 가속화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정보은폐로 기인한 것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정보가 갈수록 중요해져 가고 있다.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자본가에게만 높은 것이 아니라 없는 자에게도 높아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정보를 공유하려는 노력은 지금의 상태로는 사실 유도하기가 어렵다. 자신이 손해를 본다고 생각되는 일을 자발적으로 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무조건적으로20%의 가진 자를 탓할 수는 없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충분히 설득력 있는 타당한 이유와 논리이다.
정보은폐는 단기적으로 굉장한 이익을 줄 소지가 높다. 그것은 사실이다. 희소성으로 말미암아 일단 그 정보의 가치가 상승하게 되고 그리고 어떠한 획득과 소유가 보다 쉽게 이루어 질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적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간과한 견해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획득을 이루는 것이 그래서 20%에 속하는 것이 과연 그 사람 본인에게 행복한 삶을 제공해 줄 수 있을까? 앞선 본문 발췌에서 나온바와 같이 강도와 원한을 품은 이름모를 자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주 작은 측면일 뿐이다. 이러한 불평등의 심화를 자신이 조장하고 있다면 그러한 자본가는 배척이라는 강한 압박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다수가 공존할 수 없도록 알게 모르게 조장하고 있다면 그러한 것의 대가가 어떠한 것인지를 바로 알아야 한다.
인간은 좋은 측면을 보려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한 좋은 것은 한 단면일 뿐이고 단기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어떠한 불평등을 조장했을 때 자신에게 돌아오는 비물질적인 압박과 피해를 바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제제가 돌아올 수도 있음이다.
자신의 삶을 장기적으로 보는 시각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성찰이라는 단어를 써보고 싶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지구 전체를 수지 않고 좇아다니는 선수들조차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값비싼 호텔방에 누워 엉엉 울 때가 있다. 특히 옛날 학교 동기동창을 어쩌다가 외국의 낯선 거리에서 만나, 그 친구가 형편이 좋지 않아 몇 년 만에 가끔 세계여행 한번 하면서도 싸구려 호텔에서 잠을 자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더욱 가슴이 아플 것이다. 또한 이렇게 바삐 세계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해외여행을 1년에 수십 번도 더 하게 되는데, 대륙과 대륙 사이를 예닐곱 번 왔다갔다 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하는 공허감과 고독감에 빠져들게 된다.」
본문에 실려 있는 위 같은 내용은 상당히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인간에게 있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나의 밥그릇을 늘리고자 여러 가지 정보를 은폐하는 것은 과연 스스로에게 이득만을 가져올 것인가? 아니면 손해와 피해가 더 클 것인가? 그러한 이해관계는 어떠한 잣대로 재야하는가? 내․외부적 요인 모두 검토해보고 생각해 볼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진가가 그들 스스로 자발적으로 불평등 완화에 노력할 수 있는 이유를 납득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생각 있는 지식인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무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갈고 닦고 배워야 한다는 강한 필요성을 느꼈다. 보다 많은 고민으로 이것에 대해 보다 명확한 답을 제시할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그러나 이런 식으로 지구 전체를 수지 않고 좇아다니는 선수들조차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값비싼 호텔방에 누워 엉엉 울 때가 있다. 특히 옛날 학교 동기동창을 어쩌다가 외국의 낯선 거리에서 만나, 그 친구가 형편이 좋지 않아 몇 년 만에 가끔 세계여행 한번 하면서도 싸구려 호텔에서 잠을 자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더욱 가슴이 아플 것이다. 또한 이렇게 바삐 세계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해외여행을 1년에 수십 번도 더 하게 되는데, 대륙과 대륙 사이를 예닐곱 번 왔다갔다 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하는 공허감과 고독감에 빠져들게 된다. |
|
교수님께서 이 책을 소개해주시면서 기자들의 글이어서 쉽게 읽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 정말 그러했다. 독일 슈피겔 편집위원들의 글은 쉽게 빠져들게 만들어 주었다. 고등학교 시절이었던가 선생님께서 20%의 사람들을 위해서 80%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씀 하셨었다 아마 20%에 들으라고, 학업에 충실하라고 하셨던 말씀으로 기억한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평등하면서도 불평등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이 되었다. ‘20대 80의 사회: 세계의 지배자들이 새 시대를 열기 위해 정신없이 돌아다닌다.’
옮긴이는 말한다. 세계화의 본질을 명쾌히 밝히는 말이나 글은 별로 세계화되지 않은 것 같다고 그래서 사회적 맥락을 따져보고 넘어간다. 국제화란 기업경영에 있어 나라간 국경의 개념을 인정하며, 자기 국가를 기초로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세계화란 나라간 국경 자체의 한계나 차이를 뛰어넘어, 처음부터 지구촌 전체를 하나의 경영 단위로 삼는, 보다 공세적(공격적)이고 전략적인 기업 활동을 일컫는다. 세계적인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보다 높은 능력과 자질을 갖추고, 보다 더 열심히 일해서 세계적으로 높은 생산성을 달성해야 하는 것이 세계화에 대비하는 과제이다. 여기서 문제제기를 한다. 세계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세계 각 나라의 노동자들이 노사 합심하여 열심히 일한다면 과연 모두가 이기는 ‘win-win game'이 될 것인가? ’
수 많은 사람들이 패배하고, 이긴 사람들조차 다음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이를 악물며 허리띠를 졸라맨다. 이 경쟁이 경제 전쟁이고 세계화는 노동자들로 하여금 살인적 경쟁을 하게 만들고 있다.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이나 인격, 공동체나 생태계가 급속도로 파괴된다. 한마디로, 사회복지와 민주주의, 삶의 질이 심각하게 훼손된다. 경쟁력을 높이는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학대해야 하고, 인간적 욕구를 억압해야 한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일하러 가는 것인데, 이제는 경쟁력 있게 일을 하기 위해서 삶의 질을 희생 시키고 있는 것이다. 베르너 슈밥의 유고작품 <호흐슈밥>에는 ‘미개사회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라고 하였다. -많은 이윤을 갖다 주는 것, 훌륭하고 가치로운 장밋빛 세계화를 공부했던 초, 중, 고등학교 사회책을 떠올리며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교과서는 두 얼굴을 가질 필요가 있는데 한 방향으로만 포장되어 있었다. 전도된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였었다.
이 책을 통해 안 단어 중 하나이며 새로운 사회의 모습인 ‘티티테인먼트’. 이 말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만든 말이라고 한다. 그는 폴란드 출신으로 미국 지미 카터 행정부에서 안보담당 보좌관을 역임했다. 그 뒤로 그는 지역 전략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티티테인먼트’는 즐기는 것을 뜻하는 ‘entertainment'와 엄마 젖을 뜻하는 미국 속어 'tits'를 합친 말이다. 다시 말해 기막힌 오락물과 적당한 먹거리의 절묘한 결합을 통해서 이 세상의 좌절한 사람들을 기분 나쁘지 않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방송 화면들은 꿈과 이상을 지배하게 될 것이고, 그 꿈들은 다시 사람들의 행동을 규정짓게 될 것이다. 갈증이라는 인간적 욕구를 코카콜라에 대한 갈망으로 전환시켜 내는 과정이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완성 중에 있는 것이다. -80%의 모습인 것이다.
지구촌 사람들끼리 인간적으로 매우 친밀하게 서로 교류하거나 이해의 폭을 넓히려는 일은 엄두도 못낼 지경이다. 매스컴 속에서 느끼는 가까움이나 동시성은 결코 실제의 현실 속에서 문화적인 결속감을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더더군다나 현실의 지구 전역에서 경제적인 평준화는 거의 불가능하다.(p.59)
캉드쉬도 고백하였다. “이 세계는 유감스럽게도 소수의 몇몇 부자들의 손아귀에 놓여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p.100) 경제가 집어 삼키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돈도 다 같은 돈은 아닌 듯 싶다. ‘달러’ 화폐는 전 세계 이자율의 변동을 거의 결정짓는 다고 확인된다고 한다. 이렇게 잘 나가는 돈 ‘달러’에는 링컨과 같은 대통령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이렇게 말했다. “만일 우리가 관세를 철폐하고 자유무역을 장려하게 되면 모든 경제부문의 우리 노동자들도 유럽에서처럼 노예와 같은 수준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자유 무역 협정을 체결 할 때 링컨과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농민들을 화나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독일 부퍼탈 기후 환경 energy 연구소 이사장 에른스트 울리히 폰 바이츠제커의 말마따나 지금까지 전해 내려 온 경제 발전 model로부터 기꺼이 이탈하는 것이 결코 “불행으로 가는 비참한 행진”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의 새로운 길로 가는” 지름길이다.(p.79) 그리고 대형 위기에 대처하여 세계적으로 연결된 ‘중앙 감독원’이 필요하다.(자니오)
‘세계화된 위기’를 지혜롭게 지구촌 차원에서 바꾸어 나가려면 위기의 원인을 올바로 인식하고 뒤집어진 객체를 바로 세우고, 수단과 목표를 분명히 하고, 기업적 합리성과 사회적 합리성의 관계를 올바로 세워, 마침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과 지구촌 사회의 미래를 근본적으로 되돌아 볼 수 있게 하는 맑은 거울로 비치기를 원하는 이 책 서문의 마지막처럼 마음에 남았다.
-옳고 그름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진정 올바른 것을 알아내기란 어렵지만 그러기 위하여 매일 매일 배워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국제적으로는 협력하고 자발적으로 질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이 세계는 유감스럽게도 소수의 몇몇 부자들의 손아귀에 놓여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
| 그렇게 읽기 쉬운책은 아닌 것 같습니다.특히 저같은 의대생한테는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많이 있었고..모든 내용이 유럽 중심이다는 점이 좀 거슬리기는 하지만,그래도 지금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주는 책인 것 같습니다. 책의 초반부는 지금의 세계화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지구촌 전체가 무한경쟁으로 나아가는 것이 결국은 선진국이나 후진국 모두에게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강요하는 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죠..이미 정치가의 손에서 떠나버린 자본(돈)의 흐름..그리고 그 안에서 새롭게 생겨나는 권력들..결국 그 흐름에 따라서 돌아가는 세상...세계화란 결국 이 지구촌 내에서 무언가 최고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그래서 결국은 모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임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전반부의 내용을 읽다보면 절망밖에 할 수가 없더군요.그런데 앞에서 그렇게 겁주다가 후반후에 가서는 유럽이 이렇게 이렇게 하면 할 수 있다고 가능성을 이야기 하는게 조금은 그렇더군요.앞에서는 결국 모두가 망한다고 이야기 하고는, 뒤에서는 앞에서 망하는 그 방법을 쓰면 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하고...그래도 세게화를 바라보는 관점을 새롭게 해준다는 점에서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 무작정 세계화, 세계화 하지 마시고 한번씩들 읽어보시길... |
|
지난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이른바 냉전 이데올로기에 휩싸여 살아왔었다. 그리고 동서냉전의 해체와 팍스 아메리카즘의 급속한 성장! 그 와중에 우리는 냉전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대신하여 세계화라는 이데올로기에 휩싸여버렸다. 냉전 이데올로기가 전 세계를 휩쓸 당시에는 그나마 양극이라는 선택의 기로라도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지금의 세계화는 단극의 절대성을 지닌 듯이 확산되고 있다. 코페르니쿠스적인 사고가 생겨나지 않는 한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세계화'라는 추세... 과연 이러한 세계화의 미래와 문제점은 무엇일까... 바로 이 책은 그러한문제의식을 현재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는 각 나라들의 사례들을 통해서 제시하고 대안을 찾으려는 것으로 평가하고 싶다.
세계화의 가장 커다란 모습이자 문제점은 바로 경계를 무너뜨리는 단극의 세계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종교, 민족, 국가간 갖은 불신과 적대로 인해 우리의 지난 역사는 한번도 조용한 적이 없었다. 이러한 세계의 모습을 하나의 체재로 통합함은 그러한 불신을 근본부터 없앨 수 있는 이야기인듯 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나는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서 물론 세계의 피폐화를 보았지만 그리 실감나지 않는 나 이외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써 흥미삼아 보았던 것들이 나의 현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사례가 외국 사례이긴 하지만 최근들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이 책의 사례를 이름만 바꾸었지 내용상으로는 같은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기에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이런 생각을 했다. 어린 시절 우리는 21세기의 모습을 그려본적이 있었을 것이다. 고층건물과 함께 사람의 일을 대체하는 로봇을 그렸을 것이고, 거리에는 각양각색의 머리색과 함께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오가고 있는 모습을 그렸을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마치 오색찬란한 낙원의 모습처럼 표현했고 하나의 설레임으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정말 믿기지 않게 그런 21세기는 미래형이 아닌 현재형으로써 우리의 곁에 다가와 있다. 그러나 그 겉모습은 우리의 생각과 같을진대, 속모습은 그게 아니니... 그렇다고 어쩌란 말인가 분명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겠지만 이 책의 속에서는 현실적인 대안은 전혀 찾지를 못하고 있는 듯하다. 결국 문제 제기만 하고 있을뿐 탁상공론식의 대안만을 제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정답이란 말인가. 세계화! 마치 자연의 섭리를 이길 수 없고, 신의 영역을 침범할 수 없는 것처럼 그 논리는 거스를 수 없는 이야기와 같은 모습이다. 단순한 이론으로써의 모습을 벗어난 진리와 같은 추세! 이 책을 읽어나가는 독자들은 그로인해 세계화의 진정한 속모습을 다시한번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존재, 역활, 세상 사는 지혜를 도저히 찾아내기에는 더욱 부담스럽게 만들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인상깊은구절] 최고 경영자들은 물론 보통 사람들까지 잘 알고 있다시피, 두려움이란 결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따지고 보면,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어쩌다가 중대한 실수를 범한다는 것은 피하기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기업의 경영자들이 경영과정에서 생기는 엄청난 근심걱정을 단순히 감추어 버리고 앞만 보고 달려가게 된다면, 그들은 금방 대단한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예컨대 과도한 링엔지니어링이나 아웃소싱, 아니면 다운 사이징을 앞뒤도 돌아보지 않고 밀어붙이게 된다면, 위기로부터 자신을 구출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 많은 것을 파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새로운 시대적 환경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기 보다는 눈감고 도망가려 하거나, 실수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식으로 단지 수세적으로 머물고자 한다면, 이것은 이미 실패가 예고되어 있는 바와 다름 없다. 변화된 세상의 글로벌 플레이어들이시여, 당신들은 당신들이 활동하고 있는 정치계, 금융계, 언론계, 그리고 경제계 등의 각 영역에서 도대체 그 정체가 무엇인가? 단지 어쩔 수 없이 떠밀려서 함께 저지르는 사람들에 불과한가, 아니면 미리 계획해서 의도적으로 일을 벌이는 사람들인가? |
|
세상은 하나로 통합되어가고 있다. 미국의 회사였던 것이 어느새 본토에는 지휘부만 존재하는 회사로 자리잡았으며, 자본의 수익상태가 좋거나 노동자들의 인건비가 싼 나라들로 옮겨가면서 비용절감과 함께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다. 기업뿐만이 아닌 자본시장의 핫머니들까지도 국경이라는 것을 비웃으며 오늘도 전세계를 상대로 투기를 계속하고 있는 상태다.
IMF를 겪으면서 한국이라는 나라는 마치 세계화만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며, 성공의 길이라고 믿는 듯 했다. 자각하지 못한 상태에 모든 것을 다 내어준 우리는 현재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인가? 세계는 동·서간의 이데올로기 싸움이 끝난 뒤 신자유주의가 물결치고 있다. 이것은 미국 통화론자인 밀튼 프리드만의 경제이론에서 기인한다. 케인즈가 이야기한 정부의 시장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이 아닌 최소한의 정부만이 존재하여 모든 것을 자유롭게 풀어야 한다는 것을 그 이념으로 삼는다.
이것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영국의 세금과 정책에 반대하여 독립한 미국의 모습에서도 읽을 수 있는 자유를 근간으로 한 전형적인 미국적인 사고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이념들이 우리에게는 IMF를 거치면서 나타난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김대중 정부의 '작지만 봉사하는 효율적인 정부’라는 캐치프레이즈에서 볼 수 있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그 어려운 결합 - 한국판 신자유주의 - 이 과연 옳은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의 현재 모습을 파악해 보자. 모든 것을 다 개방해놓고도 결과적으로는 자본을 가지고 있는 거대한 국가들 앞에서 굴복하고 있는 것이 과연 우리가 원하던 세계화였고, 국내 기업집단들을 팔아서 그동안의 잘못된 정책으로 야기된 부채들을 갚아 나가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근본적으로는 세계화를 이루지 못해서가 아니라 세계화라는 굴레와 허상 때문에 우리는 더욱 더 목소리를 높여 세계화를 이루어내야 한다는 것은 아니었던가? IMF를 겪어가면서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이 있는가?
'세계화의 덫’에서 이야기하는 덫이란 개념은 무엇인가? 산업혁명 이래로 자본주의는 이윤의 추구라고 하는, 부를 창출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와 행위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발전해 왔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모순들은 마르크스가 천명했던 사회주의 이론과의 대립을 통해 그 토대로 세워진 공산주의와의 대립 양상을 초래하기도 했다. 또한 1930년대 대공황 같은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 케인즈가 외쳤던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은 이후 많은 문제를 야기하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레이건 정부시기에 그 결말을 보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과는 반대적인 유럽의 몇몇 국가들은 서구 민주주의 사회도 부의 분배와 형평성에 입각한 복지정책을 최우선적인 과제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분할된 경제영역에 어느 순간부터 전형적인 미국적인 사고의 자본주의가 물결치게 되었으며 이것은 전세계적인 유행으로 번지게 되어 결국 모든 국가들은 미국 자본주의의 이념인 신자유주의가 세계화의 표상인양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점이라 할 수 있다.
현재까지도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적극적인 자본주의를 지상의 최대명제로 삼는 통화주의자들이며 유럽의 경제학자들은 복지를 강조하는 - 2년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던 캠브리지 대학의 아마르티아 센 교수와 같은 - 학풍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 다시 묻는다면 유럽의 역사적인 상황에서 만들어지게 된 복지정책이 미국의 신자유주의에 밀려 초라하게 변질되어 가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이라 할 수 있는가?
이런 상황에서 전세계를 상대로 한 경제활동의 변화가 어떻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발전과정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가? 자본주의가 한참 태동되고자 했을 시절에 선진국의 근대화 이론이 후진국에 무차별적으로 강요되어 자생적인 발전을 가로막고 문명을 퇴보시켜 놓지 않았는가. 그 당시의 모델도 잘못된 것일텐데 현재 다수를 죽이고 소수만이 부를 독점하는 세계화가 어떻게 발전적이고 필연적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시민사회의 점진적인 개혁을 통해 완성된 민주주주의는 일정의 풍요와 교양을 지닌 중산층이 핵심이 되어 사회를 이끌어 왔다. 그렇지만 현재 나타나는 사회의 힘이 되어온 중산층의 몰락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좀 더 20대 80의 사회로 가려는 것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가? 20대 80이라고 불리는 사회는 탄탄한 중산층도 없고, 저항할 세력도 없는 부유한 사회를 이야기한다.
지배층은 '티티테인먼트'라는 기막힌 오락물과 적당한 먹거리의 조합을 통해 좌절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게 조종한다. 주입되는 의식을 통해 저항을 통제하고 반란의 씨악을 사전에 제거하여 지배체제를 더욱 확고하게 자리잡고자 한다는 점이다. 기계와 정보화, 자동화로 인하여 일자리를 급속도로 줄어들게 되고 정규직 노동자는 시간제 또는 임시직 노동자로 대체된다.
마르틴과 슈만은 세계화의 방향을 산업사회의 생태적 재구축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실질적인 영향력을 거론하면서 지금과 같은 신자유주의를 포기하기를 희망하는 한편, '영미식의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에 맞설 수 있는 유럽식의 대안은 '민주화된 유럽연합의 건설'이외는 아무것도 없다'고 또한 역설한다.
그리고 "단계적으로는 우선 주식시장에서의 판매세와 외환거래시 세금의 인상 결정을 통해 중앙은행과 G-7의 정부들이 더 이상 무례한 돈장사꾼의 요구에 무조건 굴복할 필요가 없도록 금융시장 세력가들의 정치적 힘을 제한하되 각국 정부들은 공동으로 기업가적 자유를 저이자율의 중앙은행대출을 통해 다시 확대하고, 그리고 이를 통해 보다 많은 성장과 고용을 촉진할 수 있다. 필연적으로 이는 자원소비의 비용을 높이고 노동력의 가치를 드높이는 환경세 개혁과 결합되어야만 모든 경제가 자연약탈적 성장을 계속함으로써 다가오는 세대한테서 모든 삶의 기회를 빼앗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마르틴과 슈만은 정치개혁을 중요한 과제로 상정한다. 그래서 연계된 시민적 참여를 통해 이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사회분열을 지양하고 단결을 추구하여 생태적인 사회건설을 추진하는 동시에 세계화된 경제가 요구하는 압력과 도전에도 맞서야 하는 이중과제를 지적하면서 자신들의 논의를 마치게 된다. [인상깊은구절] 이 책의 지은이들에 따르면, 범지구적 세계화 물결 속에서 사회복지 측면이나 민주주의 측면, 그리고 생태계 측면 모두에서 <20대 80의 사회>가 다가오고 있다. 각 나라에서, 그리고 지구촌 전체에서 오로지 약 20퍼센트의 사람들만이 좋은 일자리를 가지고 안정된 생활속에서 자아실현을 할 수 있으며, 그 나머지 80%의 대다수는 실업자 상태 또는 불안정한 일자리와 싸구려 음식, 그리고 매스컴에서 뿜어대는 상업적 대중문화 속에서 그럭저럭 살아나가야 한다. 이들 대다수는 소수가 생산해내는 부에 빌붙어 먹고 살아야 한다. 비롯 지은이들이 유럽사회를 중심으로, 또 유럽인의 눈으로 이 문제를 따져내고 있지만, 이것이 반드시 유럽의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코 이것은 지구촌의 평범한 사람들, 우리 모두한테 해당되는 심각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범지구적 경쟁의 격화 - '세계화' - 는 각 나라의 노동자들로 하여금 생산성과 원가, 품질 등의 여러 측면에서 살인적 경쟁을 하게 만들고 있다. 이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 기업들은 경영관리 및 생산과정의 혁신, 그리고 노사관계와 조직문화의 혁신을 빠른 속도로 진행시키고 있다. 일반적으로 |
| 1997년 말 IMF 체제가 우리나라에 들어선 이후 신자유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책입니다. 한국보다 일찍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였던 유럽 지역, 그 중에서도 저자의 모국인 독일의 예를 들면서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설명한 책입니다. 조세제도를 많이 이야기하면서 신자유주의-이 책에서는 주로 '세계화'라는 단어를 쓰는군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세계적인 연대 투쟁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많이 하네요.. 우리나라의 예를 든게 아니라 생소한 독일 이야기가 주로 나오기 때문에 다소 이해하기 난해한 면이 없잖아 있지만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팽창하고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고 싶다면 읽을 만한 책입니다. |
|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기준이 글로벌라이제이션이 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은 그런 아메리칸 스탠다드의 정도를 세계화의 척도로 삼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한 미국화가 세계화라는 공식에 유럽, 특히 독일의 입장에서 그 허구성을 통렬히 지적하고 있는 책이다. 많은 부분에서 우리가 접하는 미국의 논리가 아닌 유럽의 논리를 통해 세계를 바라본다는 것으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주며 숙응하게 한다. 하지만 독일 서적으로써의 한계라 해야 할지 미국화를 비난하면서도 독일의 방법이라면 그렇지 않다는 식의 한계 또한 볼 수 있었다. |
| 이 책은 1996년에 쓰여졌다. 책에서 페소화위기를 보여주면서 무소 불위의 기세로 투기를 해대는 금융 시장에 대한 국가의 연약성을 폭로시켰을 뿐 아니라. 금융 시장 자체에 대한 투기꾼들 자신의 무기력성까지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결국 멕시코의 위기는 각 국의 대출에 의해 막았지만, 결국 그 대출이라는 것도 국민의 세금이고 그 세금이 돌아간 곳은 국제 자본가들이었다. 우리 나라는 1997년 12월에 IMF의 지배 하에 들어갔다. 결국 우리 나라도 멕시코의 전처를 밝게 된 것이다. 더불어 국제 자본 시장의 힘에 완전히 굴복하고 말았다. IMF라는 체제가 원하는 것도 결국 자본의 자유로운 활동과 이동일 뿐이다. 어쨌든 1999년 현재 우리 사회는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면을 살펴보면 국제 자본 시장의 원리인 <20 대 80 의 사회>가 되어 가는 듯한 불안을 지울 수가 없다. 우리 사회에서도 점차 중산층은 사라져가고 있다. 경기가 호전되었어도 잘 팔리는 곳은 고급 호화 상품들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또한 우리 정부의 정책 역시 IMF 및 국제 금융 시장의 요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어 보인다. 교육 정책 역시 자본의 논리로 되어 가고 있음은 주지할 일이다. 단순히 우리가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들의 생활과 생명의 발전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생활과 생명의 희생을 요구하는 경제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 책에서도 하나의 대안으로 생각한 것처럼 NGO(비정부기구)의 활동도 주목하고 기대해 봄직하다. 이들 비정부기구들은 시민 사회로 나아가는데 실질적 주도 세력이 될 듯 하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현실적인 힘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더불어 국제 금융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연대에도 힘을 써야 할 것이다. 첨단 기술과 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국제 금융 시장과 거대 기업만이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부러운 점이 있었다. 독일이라는 나라의 건강함이라고 해야 하나? 저자의 그러한 지적이 우리의 현실과 비교했을 때의 괴리감이었다. 현재 독일은 소위 선진국의 톱이다. 그리고 적어도 환경 정책에 있어서도 독일은 1998년 10월에 입각한 새 정부는 세계에서 가장 야심에 찬 환경세제 개혁을 단행하였다. 이는 봉급에서 2.4%의 세금을 감면하는 반면에 에너지 세금을 동일한 비율로 올리는 것이었다. 이러한 개혁이 이루어지는 나라, 이것은 단순한 어떤 사대적 감상이 아니라 언젠가는 우리에 맞는 방법을 만들어 가야한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물론 이 책에도 단점은 있다. 그리고 정말 바램은 그런 단점이 많았으면 하는 것이다. |
| 이 책은 전에 읽었던 『신자유주의의 역사와 진실』과 같은 맥락에서 읽혀졌는데, 『신자유주의의 역사와 진실』이 비록 논문의 형태로 씌어졌다 하더라도 신자유주의의 개념과 역사를 한국인의 관점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쉽게 읽혀졌던 반면, 르포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세계화의 덫 : 민주주의와 삶의 질에 대한 공격』은 신자유주의의 '웃는 얼굴'인 '세계화'를 대부분 유럽에 국한된 예시를 통해 유럽인-특히 독일인-의 시각으로 서술하고 있어 유럽의 상황 이해를 하는 데만도 애를 먹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에 가득 차 있는 '디스토피아에 관한 정밀묘사' 때문에 기분은 정말 우울했다. |
|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동전의 앞뒤면처럼 "세계화"라는 큰 이슈에 대해 언론이 들춰 보여주지 못했던 어두운 부분들을 저자는 이야기 하고 있다. 특히 미국주도하에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는 '민주주의'가 아닌 '극렬한 자본주의'로 흐로고 있으며, 80/20사회가 아닌, 더욱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는 10/90사회로 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점차 하향 편준화 되어가고 있는 문화, 이미 통제의 틀을 넘어선 세계금융시장의 위험, 중산층의 몰락, 국가 주권 & 국민 주권의 추락, 노동자의 고용에 대한 문제점 등을 폭넓게 지적하고 있다. 미처 깨닫지 못했던 많은 부분들-특히 개인적으로는 세계금융의 위험성에 대한 지적-은 참 신선하게 다가왔으나,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한 대안 제시가 무척 부실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저자 스스로도 유럽인의 한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는 주관적 시야로 세계화를 바라보고 있음이 책 곳곳에 드러나고 있다. 여하튼, 많은 이들이 인정하는 큰 흐름, "세계화" 앞에 우리 스스로 뚜렷한 가치관을 갖을 필요가 있을것 같다. 그러한 가치관 정립의 한 축에서 이 책이 도움이 되길 바랄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