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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인 방학도 이번이 마지막인데, 내가 자발적으로 - 스터디나 이런 거 말고 - 혼자 전공 관련 책 읽는 건 처음인 것 같다(살짝 부끄... ㅎㅎ). 항상 학기 중에는 방학 때 읽을 책 리스트 업도 하고 유난을 떨지만, 방학 중에는 그냥 시간을 흘러 보내거나, 아님 스터디 때문에 읽어야 될 책을 읽거나, 심지어 예정에 없었던 토플 공부로 2개월을 보낸 적도 있었다.
아무튼 기특하게도 이번 방학 땐 그동안 사둔 책들을 꺼내어 읽고 있다. (사실 마지막 시험 끝나고 좀 놀고 싶었으나 아무도 안 놀아줘서 결국 학교 나가서 책 읽고 있다. 어떻게 보면 잘 된 일... ㅎㅎ) 그 중에서, 이 책도 사실 교수님이 번역하신 거라서 사 놓긴 했으나 당장 읽을 생각은 없었는데, 내가 아는 다른 교수님이 이 책의 서평 쓰신 것을 보고 - 극찬을 하셨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기본서로 손색이 없다고... - 관심이 생겼다. '역사적 예수'에 대해서는 이래저러 많이 들었으나 직접적인 책은 읽은 책이 없어서 - 사실 이 책도 일차 자료는 아니다 - 더 관심이 갔다. 마크 앨런 파월이라는 교수가 이 주제에 관하여 현대의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의 연구 내용에 대해서 정리해 놓은 책이다. 따라서 한번에 훑어보기에 참 좋다.
나는 성격상 한 권의 책을 시작한 이후에 끝까지 보기가 참 쉽지 않다. 그래서 보통 한번에 읽고 있는 책이 많다. ㅠㅠ 이번 방학 때도 시작하고 중간에 쉬고 있는 책이 여러 권. 그런데 이 책은 저번 주부터 시작해서주말 빼고는 거의 매일 읽었다. 하루에 읽는 양을 가늠한 후에 그 정도를 목표로 정하고 읽으니 좋은 것 같다. 나 같은 경우엔 처음에 60 페이지 정도씩 읽었는데, 그래서 목표를 그 정도로 잡고 속도가 안 나갈 때는 자신을 채찍질도 좀 하고 그랬더니 매일 50-60 쪽씩은 읽은 것 같다.
아무튼 역사적 예수 연구의 전반적인 내용을 다룬 후, 예수 세미나, 크로산, 보그, 샌더스, 마이어, 라이트의 연구를 개별적으로 소개하면서 서로 비교하고, 제일 마지막엔 주제별로 다시 한번 이 학자들의 연구 내용을 비교하면서 마친다. 역사적 예수 연구의 주요 내용들은 예수와 유대교와의 연속성 또는 불연속성 문제 - 이는 예수가 누구인가에 대한 문제일 수도 있다 - , 예수는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했는가 - 자의식 문제, 종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가, 초자연 현상에 대한 문제 등 다양하다. 이에 대해 이 연구자들은 각각 다른 주장을 펼친다.
이 책을 읽다가, 다음에 읽을 책으로 톰 라이트의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를 고르게 되었다. 이 책도 역시 사 놓고 아직 못 본 책이다. 라이트를 역사적 예수 연구자로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파월은 그렇게 소개하고 있고, 특히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가 그에 관한 책이라고 소개한다. 파월이 소개한 모든 학자들 중에 라이트의 의견이 제일 부담이 없는 것 같고, 신앙의 그리스도(즉, 교회가 예배하는 그리스도)와 연결시키기에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는 계속될 것이다. 이 연구가 우리가 믿고 예배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좀 더 이해하고, 더 잘 따르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ps.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 책의 원서가 나온 것이 1998년, 따라서 벌써 오래전에 나온 책이다. 최근의 연구 업데이트가 되지 못한 듯해서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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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제자들을 향해 말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러자 제자들이 대답히기로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 하나라 하나이다.” 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오늘날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들 사이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는 것은 성서가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2천년전에 참으로 실제했는가? 실제했다면, 과연 성경의 모습과 일치하는가? 실제한 예수는 어떤 모습이었는가?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신학적으로 예수의 대한 이해는 구원론, 그리스도론 등 모든 분과와 관련되어 있으며 학문을 넘어서 개인과 종교의 정체성과 운명이 관련되어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예수의 모습은 어떻게 제시되고 비추어질 것인가 계몽주의시대 이후로 제기되었던 역사적 예수 탐구는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과 비기독교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계몽주의의 발전으로 인간의 이성과 자율이 강조되면서 근대 이전의 시대에 당연히 믿어왔던 성서속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과연 2천년전 예수의 모습과 일치하는가? 하는 의구심에서 역사적 예수 탐구는 등장했다. 라이마루스를 시작으로 신개신교주의 시대를 넘어 역사적 예수 탐구의 붕괴, 새 탐구 등장, 이후 제 3탐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신학자들의 다양한 방법론을 차용함으로 역사적 예수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고자 시도했다. 200년 가까이 되는 세월동안 학자들의 역사적 예수 탐구와 관련해 수많은 저서들이 쏟아져 나왔다. 따라서 그 저서들을 모두 읽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역사적 예수 탐구에 관심 갖는 독자라면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해야 될지는 난감한 일이다. 예수 탐구를 처음 접하고자하는 독자들이 역사적 예수 탐구를 무작정 공부한다는 것은 거대한 숲을 가이드 없이 혼자 관통하는 것과 똑같다. 때문에 역사적 예수 탐구에 관심있는 신학생들과 평신도라면 전체적인 흐름을 짚어주고 오늘날 대두되는 현대 신학자들의 다양한 예수 이해를 접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행동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에 대한 다양한 이해』는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역사적 예수 탐구의 입문서적이고 교과서적인 책이다. 신학교에서 역사적 예수의 대한 주제로 공부하는 학생들과 평신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는 책이다. 특히 여기서 소개되는 신학자들은 특정 성향의 신학자들만 열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세미나의 마커스 보그, 크로산 반대로 샌더스와 톰 라이트 또한 역사비평방법을 철저히 사용한 존 필 마이어 등 다양한 성향의 학자들을 개괄적으로 설명함으로 균형감을 갖추었다. 때문에 이 책을 공들여 읽는 이들은 그 무엇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지식과 생각을 얻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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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트리니티 루터란 신학교의 신약학 교수로 재직 중인 마크 앨런 파월의 책이다. 역사적 예수 연구에 있어 현대의 논의들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핵심적인 쟁점들을 명료하게 다루고 있다. 특히 다양한 스펙트럼의 역사적 예수 연구 학자들의 방법론과 신학적 관점을 제시할 뿐 아니라, 그들의 연구에서 비판적으로 제기될 문제들을 다양한 학자들의 주장과 함께 정리하고 있다. 1장에서 저자는 ‘역사적 예수’ 연구의 가치와 그 동안의 역사적 예수 연구의 역사를 빠르게 훑어가고 있다. 라이마루스로부터 시작된 역사적 예수 연구는 파울루스, 스트라우스, 르낭, 알베르트 슈바이처를 거쳐 불트만까지 이어진다. 이후의 연구는 새 탐구라고 불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불트만의 제자들로부터 시작된다. 케제만과 보른캄과 페린은 예수의 행위보다는 예수의 가르침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 이후 라이트는 제3의 탐구라는 용어를 만들어서 20세기 후반에 일너났던 역사적 예수 연구를 또 다른 유형을 언급한다. 2장에서는 자료들과 판별 기준들에 대해서 말한다. 이는 역사적 예수 연구에 있어 가장 기초적이고도 핵심적인 작업이다. 자료들은 로마 문헌과 유대 문헌, 신약 서신과 공관복음서, 요한복음, 외경 복음서들을 소개한다. 진정성 판별 기준은 여전히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폭넓게 인정하는 것들로 다루고 있다. 여기서는 다중 증거, 비유사성 ,기억하기 쉬운 내용이나 형식, 언어와 환경, 해명, 조화를 자료 기준으로 제시한다. 3장은 오늘날의 예수의 이미지에 대해서 짤막한 묘사를 하고 있다. 이는 이후에 제시되는 학자들의 연구 가운데서도 보여지는 예수의 이미지이다. 리처드 호슬리는 사회적인 예언자인 예수를 그리고 있으며, 게저 베르메시는 카리스마적인 유대인인 예수를 그린다. 모톤 스미스는 마술사 예수를 그리고 있고, 벤 위더링톤 3세는 유대 현자 예수를 묘사한다. 제럴드 다우닝은 견유 철할자 예수에 대해 말한다. 4장부터 9장까지에서는 각 학자들의 이력과 그들의 연구방법론, 그들이 주장한 역사적 예수, 그에 따른 영향력과 비평 등을 다루고 있다. 먼저는 예수 세미나이며, 다음으로 존 도미니크 크로산이다. 6장은 마커스 보그를 다루고 있으며, 7장은 E. P 샌더스이다. 8장은 존 마이어이고, 9장은 N. T 라이트다. 각각의 주장은 전통적인 신앙의 관점에서 심각한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내용이 있으며,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주장들이 많다. 그럼에도 이들의 연구에서 공헌한 연구 결과들은 상당히 많으며, 무조건적인 비판보다는 엄밀하게 분석하고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장인 10장에서는 역사적 예수 연구의 쟁점과 관심사들에 대해서 분석하고 있다. 여전히 쟁점은 자료들과 판별 기준이며, 또한 접근법이 있다. 관심사에서는 이전의 연구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면서 예수와 유대교의 관계, 종말론에 대한 주장, 예수와 정치에 대한 입장, 예수와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문제 등이다. 이러한 각각의 관심사에서 연구자들의 주장은 나뉘어진다.
이 책을 통해 현대의 역사적예수 연구자들의 신학적 관점과 방법론을 알 수 있게 되었으며, 최근의 역사적예수 연구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대략적인 짐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독자들에게는 입문서와 연구서로 훌륭하다. 최근에 역사적 예수에 대한 더욱 다양한 논의들이 있다. 이러한 논의들을 충분히 소화하기 위해서 먼저 읽고 정리해둘 좋은 책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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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0장 말미에 부활한 예수가 도마에게 말한다.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되다”고. 20세기로부터 21세기 초반, 한국 개신교 정서와 경향은 이런 신앙으로 기울어져 있다. 맹신 혹은 광신이라고 평가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섣부른 비판은 삼가자. “알기 위해서 믿는다”는 경구를 상기해보자. 오늘날 과학적 사고에 능숙한 사람들, 스스로를 지성인이라고 자부하는 이들은 무신론자임을 밝히는 데 거리낌이 없다. 그들에게 동정녀의 임신이나 예수의 부활 같은 이야기는 어떻게 다가올까? 검증불가능한 차원보다 못한, 허무맹랑한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을까. 반대로 신앙인들은 왜 무신론자들의 발언에 불편함을 느끼는가? 더 나아가, 어째서 ‘역사적 예수’ 연구물에 당혹해하는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것이 더 이상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진다면, 그 누가 혼란스럽지 않겠는가. 그런 까닭에 저항감이 생긴다. 역사 실증주의라는 것, 객관적 사실이란 걸 다 알 수 있을까. 객관성에 도달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주변부만 맴돌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한 발 더 나아가, 성경을 통해 예수를 얼마나 알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마크 앨런 파월은 그의 책 <예수에 대한 다양한 이해>를 통해 여기에 천착한다. “예수에 대해 최대한 많은 양의 역사적 자료를 고려하여 예수상을 구성하는 것인지, 아니면 가장 믿을 만하게 보이는 최소한의 자료에만 근거하여 예수상을 구성하는 것인지”(352). ‘본문비평’은 근본적으로 본문의 원래형태를 찾는 연구방법이다. 고전적인 뜻은 그렇다. 그러나 현대적인 개념은 조금 다르다. ‘사실’보다 ‘진실’에 방점을 찍는다. 무슨 말인가 하면, 여러 본문들 속에서 발견한 이독variants들의 의미를 묻는 것이다. 최초형태의 본문을 찾기란 어렵다. 가령, 본문비평에선 ‘짧은 것이 원래본문’이란 명제가 있다. 그러나 이는 오류 가능성이 다분하다. 짤막한 이야기에 살이 붙었을 수도 있고, 밀도 높은 서술을 위해 압축시켰을 수도 있다. 어떤 게 정답인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이게 정직한 답일 것이다. 역사적 예수 연구도 마찬가지다. 그 연구가 무용하다는 건 아니다. 학자들은 저마다의 관심사에 맞춰서 성경을 ‘낯설게’ 보았다. 종말론, 유대교, 정치 등등과 연루 지으면서 말이다. 물론 포이에르바하의 “신은 인간의 투사”란 날카로운 지적은 여기에도 적용된다. 저마다가 예수 상을 투영해서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성경에서 근거했든, 다른 자료에 의존했든 말이다. 중요한 것은 지난 200년 동안 그 연구를 통해 예수의 이미지가 보다 더 풍성해졌다는 점이다. 악단은 여러 다른 음들과 다양한 악기들을 가지고 화음을 만든다. 신학자가 그 낱낱의 소리를 발화하는 악사라면, 교회의 설교자는 그 이독variants들의 연주를 통솔하는 지휘자다. 그 다성多聲이 아름답게 울려퍼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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