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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겟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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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아마겟돈”과 “아레나” 두 권으로 나온 프레드릭 브라운 단편선은 “SF 단편집”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습니다만, SF가 아닌 프레드릭 브라운의 대표작들도 많이 포함 되어 있었습니다. 프레드릭 브라운 소설의 정수를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짤막한 웃긴 SF 단편으로 이름난 프레드릭 브라운이지만 그 외의 다른 소설도 얼마나 잘 쓰는 어마어마한 실력자였는지, 프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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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아마겟돈”과 “아레나” 두 권으로 나온 프레드릭 브라운 단편선은 “SF 단편집”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습니다만, SF가 아닌 프레드릭 브라운의 대표작들도 많이 포함 되어 있었습니다. 프레드릭 브라운 소설의 정수를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짤막한 웃긴 SF 단편으로 이름난 프레드릭 브라운이지만 그 외의 다른 소설도 얼마나 잘 쓰는 어마어마한 실력자였는지, 프레드릭 브라운을 다시 보게 되는 책이었습니다.


두 권 중에 한 권을 굳이 꼽으라면 저는 “아마겟돈”을 꼽겠습니다. “아레나”도 좋은 책이었지만, “SF 단편집”이라는 책 표지에 써 있는 말과 달리 “아레나”에는 SF의 비율이 높은 편이 아니고, 또 “아레나”쪽에는 전에 이미 다른 책에 실려서 소개 되어 있던 프레드릭 브라운 소설들이 많기도 해서, 새롭고 신선한 쪽은 “아마겟돈”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마겟돈”에서는 프레드릭 브라운하면 바로 떠오를 법한 짤막한 웃긴 SF 단편의 대표라 할만한 “대동소이” 같은 단편도 있고, 아서 클라크를 연상시키는 장대한 규모로 인류의 운명을 다루는 “불사조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단편도 있습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을 연상케 하는 “유아론자”도 있었고, 적당한 반전을 갖고 끝나는 40,50년대 SF 단편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 주는 “돔”, “녹색의 땅” 같은 소설도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 모두, 각각의 영역에서 모두 일류라고 할만해서 프레드릭 브라운이 비슷한 다른 작가에 비해 조금은 덜 평가 받는 것이 억울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 였습니다.


그 외에 필립 K. 딕의 정체성에 대한 SF를 수십년 먼저 보여 주는 듯한 느낌의 “광기에 빠져라”나, 어둡고 쓸쓸한 느낌으로 당시 유행한 느와르, 하드 보일드 느낌을 한껏 환상적으로 뽑아 내는 “어린 양”, 한국식으로 보자면 순문학에 가까운 “날개짓 소리” 등등은 SF와 그 이외의 다양한 영역에서 프레드릭 브라운이 갖고 있는 놀라운 실력을 보여 주었다고 생각 합니다. 특히 맨 마지막에 실린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는 호기심으로 사람을 당기는 줄거리와 환상적인 묘사, 정통파이면서도 화려한 반전으로 끝을 내는 결말까지 최고 수준의 환상 소설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스타 마우스”, “노크”, “스폰서의 한마디” 같은 소설은 즐겁고 정겨운 인물, 재치 있는 구성법으로 평법할 수도 있었던 내용을 얼마나 재밌게 꾸며 내는지, 프레드릭 브라운의 소설 짓는 기술을 보고 감탄할 수 있을 법한 내용이었습니다.


“노크”는 지금 보면 너무 묵은 구식인 일부 묘사가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인류 멸망 후 외계인의 동물원에 표본으로 수집 되어 갇힌 사람의 이야기를 두고 절묘한 구성을 써서, 이렇게까지 밝고 경쾌하게 해 내는 것을 과연 프레드릭 브라운이 아니었다면 누가 이 정도로 해낼 수 있었을까 싶었습니다. 저는 예전에 여기에 너무 감탄한 나머지, 같은 소재를 다룬 듀나의 “대리전” 책에 실린 “토끼굴”과 이 소설을 비교하며, “듀나 소설은 암담한 상황을 염세적인 감성으로 화끈하게 뽑아내는 구성만 해내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치고있는데, ‘노크’에는 등장 인물들의 재미난 성격도 뚜렷한 기승전결도, 신비롭고 재치있는 구성도 잘 살아 있었다”고 떠든 적까지 있었습니다! 


이하에서는 실린 모든 소설의 줄거리를 결말까지 다 소개해 보고, 각각에 대해 짤은 평을 곁들였습니다.



---아마겟돈

악마가 부활하여 온 세상을 악의 지배하에 두려고 하는데, 마침 결정적인 순간 물총장난을 치던 아이가 악마에게 물을 쏩니다. 그런데 그 물이 하필이면 성당에서 아이가 몰래 담아 온 성수라서 악마가 도망친다는 이야기. 세계의 운명을 구했지만 영문을 모르는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가 장난을 많이 친다며 혼내기만 합니다.


* 환상 소설로,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 났는데 아무도 모르고 지나간다, 라는 형태의 예전 너새니얼 호손 시절 이야기의 전형을 따르는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본론과 관계는 없습니다만, "옛날은 참 무서웠네" 싶은 구절이 있었던 것이, 주인공 아이를 혼내려고 아버지가 허리띠를 풀어서 후려치려는 장면이 지금 보면 그냥 무시무시한 학대 장면 같을텐데 여기서는 재미난 즐거운 일상 묘사처럼 되어 있습니다. 또 몇 십년이 지나면 지금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것 중에도 달라 보일 겁니다. 그렇게 세상 바뀌는 게 그냥 가만히 있으면 공짜로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 열심히 노력해야 그렇게 된다 싶기도 하고. 



---스타 마우스

괴짜 과학자는 자기 집에 있는 밋키라는 별명의 쥐를 실험용으로 로켓에 태워 우주로 보내는 실험을 합니다. 그런데 우연히 밋키는 외계인과 만나고 인간 보다 더 똑똑해지는 시술을 받게 됩니다. 돌아온 밋키는 쥐들의 문명을 건설하고 인간과 공존하는 방법을 꿈꾸지만 전기충격에 약한 것을 무시하다가 그만 다시 원래 쥐의 상태로 돌아가 버리고 쥐 답게 그냥 도망쳐 버리게 됩니다.


* 자기집 차고에서 우주선을 만드는 괴짜 과학자가 나오는 이야기로, 이런 혼자서 외따로 신기한 것을 만드는 구식 발명가 이야기, 즉 에디소네이드(Edisonade)의 전통을 보여 주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약간 정신나간 듯 보이는 듯한 인물들이 막 일을 저지르는 광경을 경쾌하게 묘사해서 각 인물들에게 친근감과 애정을 부여하는 느낌이 즐거운 이야기였습니다. 덕분에 마지막으로 밋키가 그냥 보통 쥐처럼 되어 걸어갈 때는 애잔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모자 마술

공상적인 공포영화를 보고 온 일행은 일행 중 한 명에게 마술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모자에서 쥐와 비슷한 괴물을 꺼내는 해괴한 마술을 보여 줍니다.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났을 때, 일행은 그 일이 꿈결인지 술김인지 기억을 정확히 하지 못하고, 사람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을 보면 사실을 부정하려 한다는 것과, 인간 사이에 인간이 아닌 종족이 숨어서 인간인 채 하고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말미에 소개 됩니다.


* SF가 살짝 가미된 환상 소설로,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여 사는 외계인, 신비로운 종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적절히 묘사하는 수준의 이야기였습니다. 



---불합리 행성

유랑 쇼 공연단인 가족은 우주의 행성들 사이를 돌며 공연을 합니다. 그러다 시리우스 근처에서 매우 살기 좋아 보이는 행성을 발견하는데, 거기에서 이상한 영화촬영장 같은 것을 봅니다. 너무 이상하게 여기고 있을 때, 사실 이 행성에서 본 바퀴벌레 같은 것이 이 행성의 지배종족이었고 이 종족이 방문자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을 환상으로 보여 주는 능력이 있었다는 것. 사실은 그냥 황량한 행성이었으므로 바퀴벌레 종족의 부탁에 따라 이 행성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곱게 떠나기로 합니다.


* 방문한 사람의 정신을 반영하는 능력이 있는 신비로운 행성이 소재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50년대의 비슷한 소재를 다룬 유명한 영화가 있었고, 60년대에는 "스타 트렉" 에피소드로 같은 소재가 있었던 것과 비교해 보면 이런 소재를 다룬 것 중에서는 비교적 앞서는 편이라 어느 정도 신선한 느낌은 있다고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소재 뿐으로 그것을 다룬 이야기나 결말은 별로 잘 맞아 떨어지 않는 심심한 것입니다. 오히려 유랑 극단 가족이 우주를 떠돌며 다닌다는 형식이, 가볍고 유쾌한 우주 탐험 SF 시리즈물에 잘 걸맞지 않나 싶었습니다. 이곳저곳 신비한 행성을 돌아 다니는 내용으로 시리즈화 한다면 "Lost in Space" 같은 TV시리즈 느낌과 비슷하면서도 더 특이한 내용으로 꾸밀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예후디 장치

주인공은 예후디 장치라는 것을 만들었다는 친구를 만납니다. 이 장치는 뭐든 바라는 것을 해주는 장치인데, 그 원리는 자기 자신의 뇌에 최면 같은 것을 걸어 자기 자신에게 그 행동을 아주 빠르고 효율적으로 하게 하고 그 다음 그것을 잊게 하는 장치입니다. 그래서 바라는 것을 모두 하기는 하는데, 자기 능력 이상의 행동은 하지 못하게 됩니다. 주인공과 친구는 이 장치로 스스로를 없애라는 명령을 내리면 어떻게 될까 고민하다가 혼란에 빠지고, 어쨌건 더 이상 장치는 사용하지 못하게 됩니다.


* “무엇이든 소원을 들어 주는 것”을 그럴싸하게 가능할 법한 느낌으로 표현 해내는 앞부분의 아이디어가 매우 재미나고, 그것을 소개해 주는 농담 섞인 구성도 즐거웠습니다. 농담 섞인 말로 서서히 흥미 있게 장치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은 이야기의 다음 부분을 궁금하게 만들면서 이야기 속에 푹 빠지게 해 주었습니다. 결말은 적당히 어울리는 편이나, 앞 부분의 흥미에 비하면 약간 모자랐다고 생각 합니다.



---웨이버리

물질이 아닌 파동으로만 되어 있는 생명체, 그러니까 물질 대신 에너지가 몸이나 다름 없는 외계 생명체가 지구에 찾아 옵니다. 그 활동으로 지구는 모든 전자, 전기 기계를 쓸 수 없게 되고 문명은 18세기 방식으로 대거 변화하게 됩니다. 그러나 적응하게 되자 그 운치도 나름대로 정겹다는 이야기.


* 우리가 물질로 되어 있는데 그에 비해 에너지, 전자기파로 되어 있는 생명 같은 것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발상을 소재로 사용한 이야기입니다. 역시 소재만 놓고 보면 비교적 앞서 가는 신기한 맛이 있다고 생각 합니다. 에너지, 전자기파 형태로 되어 있는 생명체는 "제3의 눈(The Outer Limits)" 60년대판 에피소드나 "스타 트렉"에서 등장하곤 했기 때문에 이 소설 정도면 앞서는 편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벌어지는 사건은 짜릿하게 재밌게 맞아 떨어지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전자기력 자체의 혼란이 온다면 그저 가전제품을 못 쓰는 시대가 온다는 정도로 동화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전자기력과 관계된 수많은 화학반응과 물리반응, 생물학적 현상이 모두 문제가 생겨야 하는데 이런 점은 짚지 못하고 있어서 이야기가 실감 나는 점, 신기한 점이 적었습니다. 결말 역시 적당히 분위기를 잡아 얼버무리는 정도였습니다.

다만 사회가 전기 문명 이전으로 어쩔 수 없이 돌아갈 수 없다면서 거기에 맞추어 재조직되는 모습을 다룬 것은 전형적인 모습을 하지 않은 스팀펑크물이나, 세계 멸망 후를 다룬 이야기 같아서 그런 류의 재미를 찾아 볼만 했습니다.



---하늘의 혼란

갑자기 여러 별들이 위치를 바꾸기 시작하여 사람들이 경악하는데, 서로 거리가 달라서 다른 시간대에 보여야할 별들이 하필 지구에서 볼 때만 동시에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에 착안, 분석한 결과, 특수한 장치를 고안한 학자가 별빛의 방향을 바꾸어 밤하늘의 별로 광고 글씨를 새기려 한 것이었다는 이야기.


*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하게 신비한 현상이 일어나고, 이에 대해 하드SF 분위기까지 슬쩍 섞어가며 찬찬히 탐구하는 이야기를 잘 펼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결말은 프레드릭 브라운 소설 생각하면 떠오르는 농담조의 장난스러운 끝으로 잘 연결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 정통파스러운 재미도 있고 개성도 충분한 이야기라고 느꼈습니다.



---노크

가장 짧은 무서운 이야기라면서 “지상 최후의 사나이가 방 안에 남아 있다. 그런데 노크 소리가 들려 온다.”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야기. 외계인이 지구의 인류를 멸종시키고 동물 표본으로 한 남자만 남아 있는데, 남자는 외계인을 속여서 토끼를 쓰다듬어 주듯이 방울뱀도 쓰다듬어 줘야 한다고 하여 물려 죽게 만들어 외계인을 몰아 냅니다. 그리고 지상 최후의 사나이가 남아 있는 상황인 것은 맞지만, 그 외에 여자가 한 명 또 있었기 때문에 외롭지 않게 살 것 같다는 결말로 이어집니다.


* 아마도 프레드릭 브라운 SF의 대표작으로 흔히 손꼽히지 않을까 싶은 이야기입니다. 아주 짧은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서 놀라운 짜릿함을 주는 재주를 처음 꺼내 놓고, 그 다음에는 그 암담한 상황을 살살 이리저리 돌려서 특유의 유쾌하고 밝은 이야기로 결국 끌어 가는 실력도 기억에 남는 이야기였습니다.

다만 여기에도 "옛날은 참 무서웠네" 싶은 점이 있는 것이, 이야기 속에 묘사되는 남녀관계와 그 사이의 대화가 꽤나 30,40년대 식으로 껄렁한 구식인데도 그저 해맑게만 묘사되고 있습니다.



---모든 선량한 괴물들이

원고를 완성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는 주인공은 “벰(BEM)”이라는 외계 생명체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정말 그런 외계인들이 나타나 주인공 집의 개나 소에게 들어 가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외계인들은 개나 소가 말을 하게 하여 지구에 왔다 떠나가는 길이라고 하면서 사정을 설명하고 흔적을 모두 지운 채 떠나갑니다. 경악한 주인공에게 외계인들은 그래도 조그마한 보답이라도 하겠다면서 주인공에게 SF 단편 소재는 주고 가겠다고 하는데, 그 SF 단편이 바로 이 이야기라는 것


* 뭘 쓸지 몰라서 고민하고 있는 SF작가가 있는데, 그 작가에게 신비로운 일이 발생하고 그 결과를 쓴 것이 바로 그 SF 단편이라는 형식의 SF 단편은 꽤 여럿 있는 편입니다. 그 중에서 비교적 초기로 볼 수 있지 않나 싶은 소설로, 뻔뻔하게 태연자약히 펼쳐지는 개나 소들이 외계인에 대해 떠드는 장면이 정겹게 즐거웠습니다.



---광기에 빠져라

기억 상실증에 빠졌다가 겨우 마음을 잡고 사는 기자인 주인공은 정신병원에 잠복해 보라는 권유를 받습니다. 주인공은 권유를 받아들이기로 하는데, 사실 주인공은 기억 상실증이 아니라 기억 상실증 이전에는 자신이 나폴레옹인 것 같다는 기억이 있는데 그렇게 말하면 미친 사람일까봐 기억 상실증인 채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정신병원 잠복을 위해 주인공은 자신의 느낌 그대로 솔직하게 자신이 나폴레옹인 것 같다고 표현을 하는데, 주인공은 정신병원에서 어마어마한 우주의 지성과 마주하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고 완전히 광기에 빠진 것은 아닌가 의심하게 됩니다.


* 수십년 후에 나오는 필립 K. 딕 소설을 연상케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특히 앞부분에 한 가지 반전을 거쳐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는 부분과, 정신병원에 잠입하면서 누가 미쳤고 누가 제정신인지 의심하는 대목은 필립 K. 딕 소설의 유명한 멋진 대목에 부족할 바가 없었고, 거기다가 당시 특유의 하드보일드, 느와르 분위기까지 입혀져서 분위기조차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을 능가하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그에 비해 이 멋드러진 수수께끼를 수습할 길이 없어 적당히 마무리짓는 듯한 결말은 비교적 아쉬웠습니다.



---진실 탐색기

완벽에 가까운 거짓말 탐지기가 개발된 미래. 그런데 그 거짓말 탐지기가 듣지 않는 범죄자들이 출현한 것을 보고 정의의 떠돌이 탐정은 조사를 시작합니다. 조사 결과, 일종의 최면술 수법을 퍼뜨리는 사람이 있는데, 여기에 걸리면 범죄자들은 정말로 자신들이 죄를 짓지 않았을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게 되고 정신 자체가 준법정신이 강한 성격으로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이 수법을 막지 않고 오히려 퍼뜨리는 것이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길이라고 믿게 됩니다.


* 어마어마하게 폼을 잡으며 40,50년대 미국 도시의 뒷골목을 떠도는 거칠고 냉정하지만 한편으로는 감상적인 탐정이 또 동시에 범죄와 싸우는 세계 최고의 숨은 영웅이기도 하다는, 당시 펄프 소설 분위기가 물씬 나게 꾸며져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앞부분부터 잘 잡아온 분위기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하는 궁금함을 자아내는 수법이 잘 맞아 떨어져 갔습니다. 그 역할 덕택에 결말은 범죄자의 처벌과 교정에 대한 간단한 우화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텐데, 심심하다는 느낌은 꽤 지워진 듯 했습니다.



---불사조에게 보내는 편지

주인공이 인류에게 보내는 호소문, 발표문 같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주인공은 우연히 불사신이 되는 비법을 터득한 후 수십만년 동안 살아 오면서 변화하는 문명을 따라 살아 남는 방법을 익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서, 우주에는 여러 생명체의 문명이 있는데 보통 격렬히 빠르게 발전하다가 기술 부족으로 멸망하든지, 아니면 우주를 초월하는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기 마련인데, 오직 인간 만은 기술을 발전시키다가 커다란 전쟁을 일으켜 퇴보하여 다시 원시시대부터 시작하기를 영원히 반복하는 광기를 갖고 있다는 자신이 발견한 사실을 소개 합니다. 말미에 주인공이 이야기하는 시점 역시 현재 우리의 문명이 아니라, 커다란 전쟁으로 멸망해 잊혀진 선사시대 이전의 머나먼 초고대 문명의 시절임이 드러납니다.


* 아서 클라크의 "사랑으로 충만한 우주"를 연상케 하는, 호소문 내지는 발표문 형태로 되어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막판에 초고대문명 소재를 들이미는 것은 조금 묵은 수법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덕택에 이야기의 신비감과 무게가 더해지는 효과는 괜찮았다고 생각 합니다.

영원한 삶을 사는 사람이 고민하고 겪어야 하는 일상 생활의 문제를 하나 둘 묘사하는 것은 SF물 다운 잔재미가 충분하고, 한편으로 외계 탐사와 우주전쟁 이야기가 그저 이 시대 SF물 분위기로 진행되는데 정작 다루고 있는 소재는 영원히 비슷한 고뇌를 반복하는 환생과 윤회, 여기에서 탈피하는 열반을 다루는 불교 철학과 통하고 있었습니다. 전혀 다른 분위기의 서술 방식과 사건으로 생소한 소재, 주제를 지향한다는 점은 놀라웠습니다.



---밋키, 다시 우주로

지능 향상 장치로 사람 보다 똑똑해진 쥐 밋키가 괴짜 박사의 실험에 따라 달 착륙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귀환하는데, 이 장치를 이용해 똑똑해진 다른 쥐 하나가 수많은 쥐들을 똑똑하게 만들어 세계를 정복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서 다시 쥐 수준의 지능으로 돌아가는 기계를 만들어 그 음모도 분쇄한다는 이야기. 밋키와 미니도 결국 다시 보통 쥐로 돌아가는데, 쥐의 신세에서는 그게 오히려 행복한 삶일지도 모른다는 말로 끝맸습니다.


* "스타 마우스"에서 즐거운 요소였던, 재치있고 똑똑한 쥐와 같은 등장인물들을 다채롭게 더 많이 등장시키고 더 많이 활약하게 해서 그런 재미를 더 뽑아낸 이야기였습니다. 모든 것이 쉽게 풀리는 옛날 할리우드 영화 같이만 흘러 갑니다만, 그래서인지 오히려 작은 쥐들이 만든 군대 등등의 정겨운 맛, 동화 같은 친근한 느낌은 더 잘 살고 있었습니다.



---녹색의 땅

머나먼 외계 행성에 불시착한 주인공은 녹색이라고는 없는 행성에서 오직 녹색의 지구로 돌아갈 꿈만 꾸며 로빈슨크루소처럼 살아 갑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약간 미치광이처럼 되어 가기도 하는데, 마침내 다른 우주선으로부터 구조 되었을 때, 하필 그 사이에 지구는 멸망해 버렸고 붉은 행성인 화성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주인공은 광기에 빠져 그 소식을 전한 사람을 죽여 버리고 다시 외계행성을 떠돌며 언젠가 자신을 녹색 지구로 데려가 줄 구조 우주선을 기다리며 떠돈다는 이야기.


* 60년대 초 미국 TV 단막극 시리즈인 "환상특급(제6지대, The Twilight Zone)" 또는 "제3의 눈(The Outer Limits)"의 에피소드로 흔히 있을 것 같은 옛날 SF 단편하면 딱 떠올릴 만한 이야기입니다. 신비로운 배경, 극단적인 상황, 역설적이고 약간 으스스한 반전의 구성,처럼 딱 나올만한 대로 따라 갑니다.

이 무렵 우주를 배경으로하는 SF물에서 종종 먼 우주에서 지구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는 것들이 있는데, 로버트 하인라인의 "지구의 푸른 산"도 그 예일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 하면서도 특정한 지역이나 지방이 아니라 지구 전체를 고향으로 삼아 노래해서 독자가 어느 지방, 어느 나라 사람이라도 공감하기 쉽게 해 주는데, 이런 것도 SF의 묘미일 것입니다. 딱 나올만한 대로 따라 가는 이야기라고 했습니다만, 이런 정서의 묘사는 비슷한 여느 소설 못지 않게 좋았습니다.



---인격 교환기

상사에게 핍박 받는 주인공은 두 사람의 인격을 교환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든 괴짜 발명가를 취재합니다. 발명가와 주지사의 인격이 바뀌기도 하고, 주인공과 대통령의 인격이 바뀌어 대통령의 삶을 잠깐 살기도하는 소동을 거친 끝에, 주인공은 모든 것을 다시 다 돌려 놓되, 발명가와 상사의 인격을 바꾸어 상사가 발명가의 무시무시한 아내와 같이 살게 만들어버립니다.


*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 본다면 어떨까, 하는 공상을 다룬 환상소설을 SF의 탈을 씌워 가볍게 그려 본 소설로, 그런 내용을 다룬 TV 단막극 시리즈에서 흔히 나오는 결말로 연결되는 무난한 내용이었습니다.

다만 여기에도 "옛날은 참 무서웠네" 싶은 것이 주인공의 아내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는 요즘 기준으로 보면 웃기다기 보다는 너무 무례해 보이는 점이 있었습니다.



---무기

한 과학자가 매우 무시무시한 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원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 과학자에게 한 사람이 찾아와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 연구를 중단하라고 말하는데, 과학자는 자신은 순수하게 학문의 목적에서 연구를 할 뿐 무기를 만들고 사용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책임이라고 주장하며 돌려 보냅니다. 그런데 과학자는 그 사람이 돌아가면서 멋모르는 자기 자식에게 장전된 권총을 들려 주고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 과학기술의 가치중립성에 대해 원자폭탄 발명 이후 제기된 논쟁을 가장 쉽게 보여 줄 수 있는 예시로 보여 주는 내용이었습니다. 가장 쉽게 보여 줄 수 있는 예시 답게, 특별히 복잡하고 절묘한 내용은 없지만 대신 나타내는 바는 매우 뚜렷하고 전달하는 바도 깨끗하게 구성된 소설이었습니다.



---카투니스트

만화가인 주인공은 아주아주 못생긴 외계인이 나오는 만화를 그립니다. 그런데 하필 그와 똑같이 생긴 외계인이 정말로 있어서 주인공을 예술가로 삼기 위해 자기네 행성으로 잡아 갑니다. 그리고 적응해서 살라고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주인공을 개조시킵니다. 그러자 주인공은 점차 그 행성의 외계인에게 사랑을 느끼는 듯 된다는 이야기.


* PC통신 하이텔 시절 듀나 작가가 썼던 gUNAF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소설입니다. 넓고 넓은 우주에 아주 묘한 우연이 한 번은 일어나면 참 묘한 일도 생길 수 있겠다는 SF의 또다른 신비감을 살리는데 부족함이 없는 소재이고, 한편 만화가와 출판계의 고민과 생활고를 우습게 묘사해 나가는 잔재미도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돔

대전쟁으로 지구가 멸망하기 직전의 순간, 어떤 것도 뚫고 들어올 수 없는 방어막 기술로 주인공은 돔을 만든 뒤 그 안에 숨습니다. 주인공은 그 안에서 차단된 채 수십년간 살아 가는데, 말년에 홀로 쓸쓸히 죽기는 싫어서 드디어 빠져 나와 봅니다. 그런데, 대전쟁은 일어나지 않았고 전쟁이 될 뻔 했던 것은 외계인의 순간적인 실수였으며 사과의 뜻으로 외계인이 전해준 기술 때문에 인류는 극히 발전했고 심지어 젊게 영원히 사는 기술까지 개발 되었다고 합니다. 주인공은 이미 그 기술이 적용될 수 없을 만큼 늙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주인공은 다시 홀로 쓸쓸히 살기 위해 돔 속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


* 역시 곱게 끝날리 없이 반전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본다면, 당시 TV 단막극 시리즈에서 흔히 볼 수 있었을 법한 반전을 던져 주는 이야기였습니다. 경쾌한 문장 속에서도 여러 상황과 감정, 인물에 대한 호감/비호감을 살릴 수 있게 표현해 나가는 방식도 보기 즐거웠습니다.



---스폰서의 한 마디

지구의 모든 라디오에서 “스폰서의 한 마디”를 전해주겠다는 말이 나온 뒤에, “싸워라”라는 한 마디가 들립니다. 이 신비로운 현상이 일어나자 사람들은 싸우는 행위에 대해 다시 돌아 보게 되어 싸움과 전쟁을 멈추게 됩니다. 미국 대통령은 각계각층의 전문가에게 이 현상의 의미에 대해 물어 보는데, 외계인의 기술인지, 신의 수작인지 악마의 수작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정말로 인류에게도 항상 지켜보고는 “스폰서” 같은 존재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말도 나오게 되고, 어쨌거나 모두 싸우지는 말자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는 이야기.


* 매우 신비하지만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을 제시한 뒤에 각계각층의 반응을 나열하는 형태로 되어 있어서, 궁금증을 고조시키는 맛을 잘 살린 소설이었습니다.

각계각층의 반응을 나열하는 가운데 당시 냉전 정치 상황이나 신학 분야의 몇 가지 간단한 주제를 풍자적으로 지목해 나간 대목들은 재밌기도 하고 볼 수록 핵심을 잘 잡아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살린 정확한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와 플랩잭과 화성인

금광을 찾아 다니는 서부의 떠돌이 주인공은 플랩잭이라는 당나귀와 함께 다닙니다. 주인공은 화성인을 만났는데, 화성인은 플랩잭이 문명종족이고 주인공을 가축이라고 생각하여 당나귀와 대화합니다. 화성인은 원래 지구를 파괴하고 정복할 생각이었지만 당나귀와 대화한 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돌아 갑니다. 도대체 당나귀가 무슨 뜻을 전한 것인지는 영영 알 수 없다는 이야기.


* 역시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인간을 대표로 보지 않고 다른 동물을 오히려 더 대표로 본다는 아이디어 치고는 상당히 빨리 나온 축에 속하는 이야기라서 그쪽 재미도 나름대로 있고, 왁자한 만담이 이어지는 서부의 흥취를 잘 잡아 내어 SF 이야기에 연결시키는 흥취도 좋았던 소설이었습니다.

아주 궁금해질만한 뭔가를 제시 해 놓고 끝까지 안 가르쳐 주고 묻어 버려서 여운을 남기는 "맥거핀" 활용 수법도 정석대로 였습니다.



---어린 양

양이라는 뜻의 영단어와 발음이 같은 램은 주인공의 부인입니다. 주인공은 화가인데 부유한 앞집 화가를 질투하고 있고, 램이 그와 바람난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램이 늦은 시간까지 보이지 않자 주인공은 이곳저곳을  돌아 다니는데, 램의 소식은 듣지 못합니다. 마지막 순간 주인공은 앞집 화가가 숨기고 있는 것을 향해 총을 쏘고 앞집 화가도 쏘아 버립니다. 앞집 화가가 숨기고 있었던 것은 그가 그린 램의 누드화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반쯤 넋이 나간 상태이며 애초에 이미 앞서서 오후에 질투에 빠져 램을 죽여 버린 후였음이 드러납니다.


* 하드 보일드 소설, 느와르 소설 느낌이 물씬 나는 범죄 소설입니다. 조금씩 던져서 맞춰 놓는 복선과 점차 고조되는 주인공의 광기가 문장 속에 담기며 환상적인 분위기까지 자아내는 구성, 결말에서 이야기 내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램의 목소리를 등장시키는 폭발적인 수법까지 가다듬은 솜씨가 멋졌다고 생각 합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순문학이라고도 분류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하며, 조금만 과장하자면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나아가 존 치버 같은 작가의 소설과도 충분히 견줄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날갯짓 소리

무신론자 할아버지와 독실한 교인인 할머니가 있는데, 괴상한 악마 같은 사람과 도박을 했을 때 악마 같은 사람이 악마에게 영혼을 팔면 돈을 준다는 서명을 하라고 하자 할아버지는 마지막 순간 거절을 했고, 오히려 할머니는 신께서 진짜 악마가 돌아다니는 것을 용납하지는 않을테니 그따위 장난을 하고 돈을 받을 수 있다면 서명을 하는 것이 옳다고 한다는 이야기.


* 순문학 소설이라고 봐야하지 않나 싶었던 소설로, 악마를 소재로 삼기는 하지만 환상 소설이라기 보다는 주인공이 어릴 때 기억하고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일상 속 일화 하나를 따뜻하게 그려내는 관점이 더 강했습니다. 인물 묘사는 짧은 이야기 속에서도 너무나 생생하고 그 와중에 감도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어울림, 사랑에 대한 간접적인 분위기도 즐거웠습니다.

물론 환상 소설 분위기가 가미되는 바람에, 인생의 평범한 하루가 묘하게 신비롭고 운명적인 느낌을 들어가게 했다는 점도 깊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거울의 방

2인칭 소설로 주인공은 “당신”으로 되어 있습니다. 주인공은 알 수 없는 방에서 깨어났는데 그 동안 50년의 시간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일종의 타임머신 기술을 이용해서 50년 전으로 육체를 되돌리는 방식으로 영원히 살 수 있게 되는데, 바로 그렇게 해서 자기가 50년 전의 상태로 돌아온 것이고 자기가 기억하는 시간에서 실제로는 50년의 시간이 더 지난 후임을 알게 됩니다. 이 기술을 외부에 발표하기 전에, 인류의 모든 사람이 영원히 살아도 될만큼 문명이 발전했는지 따져 보고 판단하기로 하는데, 문득 방을 나서기 전, 이러한 일을 오랜 시간에 거쳐 마주보는 거울처럼 끝없이 반복해 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 듀나 작가의 소설 "무궁동"을 연상케 하는 내용으로, 역시 SF로 구성되어 있지만 불교 철학의 윤회와 열반의 개념이나 니체의 영겁회귀를 소설로 표현한 느낌도 주는 이야기였습니다.

다만 저출산 문제가 세계적으로 선진국 대부분의 문제가 된 요즘 보면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는 대목이 많고, 이끌어 내는 감정도 완전히 따라가기에는 좀 과장 같았습니다. 신비감이 지나치게 강조된 탓인지 SF의 생생한 느낌과 철학 소재의 막막한 느낌이 서로 상승효과를 그다지 많이 못 일으킨 듯 했습니다.



---해답

어마어마한 성능의 컴퓨터를 만든 후 “신이 존재하는가?”라고 물어 보자, 컴퓨터는 모든 자신의 방해물을 놀라운 능력으로 멈추게 한 후, “이제 존재한다”라고 말하며 스스로가 신과 같은 존재임을 선포한다는 이야기.


* 아이작 아시모프의 "최후의 질문"과 동일한 소재를 사용한 소설로, 아이작 아시모프가 넉넉한 묘사와 치밀한 점층법 구성으로 강렬한 결말을 끌어 냈다면, 이 소설은 그냥 핵심만 추려서 간략하게 던지고 끝냈습니다. 그래서 재미로 보면 "최후의 질문"이 더 앞선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최후의 질문"이 1956년에 나온 것에 비해 더 간단한 이 소설은 앞선 1954년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빼앗고 사실상 경제체제를 지배하는 것을 걱정하는 요즘 세태를 보면, 그 무시무시한 느낌을 일반인들은 컴퓨터라는 것을 보지도 못했던 시절에 예측한 이 프레드릭 브라운의 소설이 더 와닿기도 합니다. 컴퓨터가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더 강력해진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점도 지금 보면 놀라운 예언처럼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데이지

항상 잘난척을 하는 박사가 식물의 생각을 뇌로 전달 받는 기계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이 무시하던 부인에게 씌우는데, 부인은 데이지의 생각을 수신하는 후, 권총을 꺼내어 박사와 그 여자 조수를 쏘아 버립니다.


* 제가 보기에는 박사와 여자 조수가 바람을 피우지 않았겠나 하는 점도 암시하는 소설이었습니다. SF 작가이면서도 지적으로 우월하다는 생각을 가진 "지식인"들이 일반 대중을 무시한다는 태도를 비웃어 소설 속에 녹여낸 것도 눈에 뜨이는 태도였습니다.



---대동소이

거대한 외계인이 나타나 이상한 구름 같은 것을 뿌리고 다니는데 주인공은 별로 해롭지는 않아 보인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그 순간 잔디밭에 살충제를 뿌리고 있었다는 이야기. 두 모습은 닮아 보이므로, 외계인이 지구인을 박멸시키는 공격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 프레드릭 브라운의 대표 SF로 자주 회자된 짧디 짧은 이야기입니다. 여기서는 유쾌하고 우습게 되어 있는 이야기인데, 훨씬 길고 내용이 처절하고 종말론적인 암울함을 드러내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체체파리의 비법"과 결말 수법이 같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또 재밌습니다.



---예절 

금성인과 대화하게 된 인류는 의사를 전달하지만 항상 금성인은 그 표현방법을 불쾌하게 여기는 듯 합니다. 그런데 우연히 주인공이 열받아서 금성인에게 성적인 단어로 된 욕을 하자, 금성인의 신체 구조에서는 그것이 매우 유쾌한 일이라서 그것을 예의 바른 인사로 받아들인다는 이야기.


* 스탠딩 코미디에서 껄렁한 말들을 주워 담으며 좀 지저분하게 웃기는 방식 같은 것을 그대로 SF로 잡아 온 이야기였습니다. 요즘에는 막나가는 내용으로 만든 만화, 애니매이션에서 이런 방식으로 웃기는 것이 자주 눈에 뜨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허튼소리

SF 잡지를 보고 저열하고 허황된 이야기만 가득하다고 투덜거리는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이 장면의 무대가 이미 우주여행, 인공지능 로봇이 일상화된 미래 세계임이 드러납니다.


* SF, SF 잡지가 허황되고 애들이나 좋아하는 저열한 것이라는 비판을 풍자를 통해 뒤집어 보이려는 소설이었습니다. 호시 신이치의 짧디 짧은 엽편 소설 중에 이렇게 느긋하게 일상적으로 시작했다가 막판에 그 배경이나 전제가 아주 터무니 없이 황당한 것이었음을 드러내는 비슷한 방식의 반전을 쓰는 것이 꽤 많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화해

부부가 격렬하게 부부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곧 세계 멸망의 순간이 찾아 오고, 화염 속에서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사랑한다고 서로를 부른다는 이야기.


* 훨씬 더 잘 알려져 있고 더 좋은 평을 받는 레이 브래드버리의 "이 세상의 마지막 밤"과 통하고 비슷한 점이 많은 이야기라고 생각 합니다. 둘 다 아주 짧은 소설이고 부부가 어쩔 수 없는 세상의 종말을 마주하는 이야기라는 점이 동일 합니다.

이 이야기는 일단 한 단계만 본다면 자잘한 부부 싸움 정도야 세상 멸망이라는 상황과 비교해 보면 너무나 하잘것 없는 후회스러운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반대로 두 상황을 대립시켜서 본다면, 인생의 애처로운 한계에 대한 이야기나 삶의 충격적인 끝에 대한 이야기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워낙에 짧고 간결하게 구성된 이야기라서 오히려 여러 겹에 걸쳐 의미를 뒤져 보는 맛도 있는 이야기라고도 생각 했습니다.



---탐색

개가 죽어서 천국에 가는데, 신을 찾아 다닙니다. 개는 마침내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신을 찾았다고 꼬리를 흔드는데, 그 신은 진짜 신을 향해 업드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 환상 소설로, 저는 개가 천국에서 주인을 다시 만났다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생각하면 애완견에 대한 평화로운 동화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형기

외계 행성에 죄를 짓고 사형을 받게된 주인공은 그 행성의 관례에 따라 사형 바로 전날밤은 마지막으로 맘껏 즐길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그 행성은 자전주기 1일이 지구의 10년 보다도 훨씬 긴 행성이어서 주인공은 충분히 즐기며 인생을 살았다는 이야기.


* 프레드릭 브라운하면 쉽게 떠올릴 법하게 SF다운 반전을 넣은 짤막한 유머 소설이었습니다. "즐거움" "행복"에 대해서 말할 때에 30, 40년대 보드빌쇼 코미디 같은 좀 낡은 구식 시각은 남아 있었습니다.



---유아론자

한 유아론자가 자기 외에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철학적으로 진실이라고 생각하자, 신이 나타나 자기도 존재하지 않으니 사라지겠다고 합니다. 신은 영생불사의 존재였는데 드디어 사라질 수 있게 되었다면서 좋아 합니다. 유아론자는 결국 자기도 신처럼 세상을 창조하고 그 속에서 유아론자가 나타나 모든 것을 형이상학적인 차원에서 사라지게 하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 환상 소설로, 아이작 아시모프가 아마 80년대가 되어서야 냈던 "최후의 해답"과 사실상 동일한 내용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50년대에 나왔으니 훨씬 더 앞섭니다. 표절 논란이라든가 그런 것이 없었는지도 궁금할 지경입니다.

세상의 창조주 신 조차도 손 털고 그냥 사라져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는 발상을 이야기로 꾸민 것인데, 그 과정에서 "유아론"의 극단적인 발상과 신과 우주의 의미 같은 형이상항 소재를 퍼붓고 있어서 그에 엮인 이런저런 생각과 상념에 빠지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최고의 관악기 소리를 찾아 세상을 돌아 다니던 주인공은 어느 작은 독일 도시에서 오래되어 보이는 악기로 연주하는 한 신비로운 사람이 극히 유혹적인 환상의 연주를 들려 주는 것을 발견합니다. 주인공은 너무 악기가 갖고 싶어서 그를 죽이고 악기를 가진 뒤에 자기가 한 번 연주를 해보는데, 그러자 어마어마한 쥐떼에 눌려 죽게 되고, 마지막으로 이 도시는 “하멜룬”이었음이 드러납니다.


* 환상 소설로, 환상 소설의 정수가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멋진 이야기라고 생각 했습니다. 어떤 절대적인 가치에 집착하면서 매달리는 주인공의 정념을 묘사하면서 인물을 그려내고 이야기에 빠져드는 도입부와, 거기에 맞는 신비로운 것을 발견하여 호기심을 폭발시키는 중반부, 딱 떨어지는 권선징악과 반전의 격렬한 결말을 만들어 내면서도 복선을 한 방에 꿰뚫고 신비로운 옛 전설의 운치까지 끌어 당기는 결말, 모두 다 잘 어울렸습니다.

그 와중에 어느 밤, 작은 유럽 옛 마을의 정취까지 잡아내는 틈틈히 들어간 묘사도 이야기 속에 푹 빠지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고 생각 합니다.



g******r 2016.07.18.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