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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창의력'에 대한 필요성은 누구나 공감한 반면, 실제 '창의력'이 무엇인지, 어떤 조건, 환경속에서 발현되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다. 나 역시 그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 책을 읽었는데, 처음에는 솔직히 재미가 별로 없었고, 내용도 지루하고 딱딱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책의 제목처럼 창의력을 일깨우는 일곱가지 법칙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만약 개인적으로 창의력만을 얻고자 이 책을 읽는다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이 책은 창의성에 관한 포괄적인 접근을 하고 있어, 큰 흐름을 갖고 전반적으로 저자의 주장을 경청하는 마음으로 읽는 게 좋다.
2. 저자의 주장
'창의력'이 무엇인가가 궁금하다면 4장 먼저 읽는 것도 괜찮다. 저자인 켄 로빈슨은 창의성을 '독창적이고 가치를 지닌 결과물을 낳는 상상력의 과정'으로 본다. 독창적이라고 하여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것을 만드는 능력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생각만 하는 것도 아니며, 머릿속에서 조합된 상상력이 행동으로 수반하여 가치있고 쓸모있는 결과물이 나와야 된다고 한다.
그런데 창의력은 사람의 지능체계의 어는 일부분을 말하는 것이 아닌 전체적인 지능체계에서 파악되어야 하기 때문에, 학문적인 능력만으로, 또는 특정형태의 지적 능력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되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여러 지능을 종합적으로 이해해야만 창의성도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소프트 기술인 사람들과 어울리며 적응하는 능력,자신을 표현하는 능력, 변화하는 환경에 대처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점을 주장한다.
창의적이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매체인 도구와 기술이 필요한데, 이는 사물을 다른 방식으로 보는 법과 이를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머릿속으로 개념을 가지고 놀면서 가능성을 실험하고 모험할 수 있는 자유와 과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원래 창의성은 심상을 이용한 감각적 사고를 통해 이루어지고, 놀이를 통해 심상작용이 극대화되기 때문에 창의성의 원천인 '낯설게 하기'는 근면 성실한 사람보다 '재미'를 추구하며 놀줄 아는 사람만이 더 가질 수 있다.
나아가 저자는 창의성의 개념을 확장시도 한다. 창의성이 개인의 두뇌속에서
이분적으로 분리되어 파악함이 위험한 것처럼, 개인 혼자서만 창의적일 수 없고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타인과의 지속적인 접촉을 통해 상호 자극을 받아야만
창의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문화의 창의성 개념이 등장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1장과 2장을 읽어보면 저자의 주장을 다시한번 확연히 알 수 있게 된다. 21세기의 첨단 과학의 발달과 환경이 급속하게 변화하는 시점에서 19세기의 교육 이데올로기나 근면과 성실의 가치로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기 때문에,새로운 가치관과 교육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1,2장은 창의력이 필요성과 창의력에 방해되는 교육이나 환경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3~5장에서는 본격적인 창의력에 대한 정의와 설명이 있고, 6,7장은 창의력를 기업이나 사회, 문화적으로 폭넓은 시야로 바로 보아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이 책에는 덤으로 흥미로운 이론이나 연구결과의 용어들이 등장한다. 뇌스캔기술, 브레인 스토밍,축차비교등, 특히 뇌스캔의 이론중 유아기때에는 모국어와 다른 언어를 동시에 습득할 수 있고, 두뇌에 작용하는 부위도 동일한 반면 아동기를 지나면서부터 성인이 되면 외국어 학습은 뇌의 다른 부분에서 작동된다면서 언어습득능력은 사용하지 않을경우 두뇌의 신경능력이 다른 용도로 전환되면서 점차 사라진다고 한다. 두뇌를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중요한 대목이다. 그리고 이 책의 인명록이나 찾아보기 색인들은 잘 정리되어 있어 참조할 만 하다. 3. 마무리 하며
켄 로빈슨의 주장을 따라 읽다보면, 창의력이 어는 한 부분에 국한되거나 집중하여 독자적으로 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지성만을 중시하는 교육풍토도 문제이지만, 이에 반기를 들어 지나친 감성에만 치중한다고 하여 창의력이 특출나게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개인이나 사회나 모두 상호 조화롭게 건전한 자극을 주는 과정속에서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주로 영국에 국한된 교육이나 사회환경을 논하고 있지만, 우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지나친 지성위주의 교육의 경직성이나, 3일만 놀면 왠지 모르게 뒤쳐지는 것 같은 압박을 받는 조급증, 여유와 놀이에 인색한 우리들의 모습도 반추해 본다. 그리고 창의성을 실행하는 교육이나 환경을 새롭게 만들려는 노력도 이제부터라도 필요하다고 본다.
아주 익숙한 것을 다른 맥락에 놓아 새롭게 느끼게 하는 능력인 '창의성'.
켄 로빈슨의 창의성에 대한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과 필요성,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은 창의성에 대한 사고를 풍부하게 해 주었다.
아쉬운 점은 책의 구성이 저자의 주장과 달리 너무 아카데미시즘이지 않았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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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은 인류 역사상 위대한 과학자 중의 한 명이다. 그는 천재였으며 창의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당연히 학교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렸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즉 학교 성적과 그의 뛰어난 과학적 능력은 직결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학교에서는 그의 천재성이 발휘되지 않았다거나 아니면 천재성을 파악해낼 만한 도구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대답은 바로 학교에서의 교과목 편성이나 학습능력 테스트는 그의 천재성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알게 되었다. 작금의 우리나라 현실에서 공교육의 문제점이 자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그러나 보니 사람들은 공교육을 과감히 포기하고 대안학교에 자신들의 자녀를 입학시키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대안학교에 보낸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모험이 따를지도 모르는 것에 그들은 자신들의 자녀의 미래를 걸고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자신의 자녀를 대안학교로 보내는 주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 이유를 가장 쉽게 표현하자면, 아마도 공교육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맹점인 성적 지상주의 때문일 것이다. 이 시대에 있어서 부모나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성적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어떤 대학에 몇 명이 들어갔느냐에 따라 학생의 능력이 평가받고 있으며, 학교도 그렇다. 그런데 대안학교에 가는 부모들은 이런 성적지상주의에 가장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것으로 보여 진다. 그렇다면 대안학교에서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많은 대안학교에서는 이 시대 공교육이 포기한 전인교육을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국영수 성적보다는 지덕체를 통하여 참된 인간을 양성하려고 하는 데에 부모들의 마음이 끌리고 있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도 대안학교의 교육 시스템은 단순히 대안이 아니라 공교육에서 받아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내 안의 창의력을 깨우는 일곱 가지 법칙>(한길아트. 2007년)에 보면 유럽의 교육 시스템에 대해서 메스를 가하고 있다. 즉 영국의 교육제도는 산업시대에 만들어진 커리큘럼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오래전에 만들어진 시스템으로는 변화가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이 시대에는 맞지 않는 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산업시대에 만들어진 커리큘럼으로 교육받은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해도 제대로 일에 적응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창의력도 소멸된다고 말한다. “창의성은 순수한 지적과정이 아니다. 다른 능력 특히 감정, 본능, 유희적인 상상 등이 창의성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 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런데 산업시대의 교육은 이성과 합리성을 내세웠기에 감장이나 본능 등은 무시하고 만데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책을 읽은 나로서도 적극적으로 저자의 의견에 찬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시대에 걸 맞는 교육제도란 무엇일까? 저자는 지능에 대한 개념정립부터 새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우리가 현재 사람들의 지적능력으로 파악하고 있는 IQ의 효용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또한 학생의 타고난 재능이 자연스럽게 표출되어 이것이 창의력과 연결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이러한 논지를 설명하기 위해 심리학, 예술, 과학 등 여러 학문을 넘나들며 독자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의 해박한 지식과 현실 교육에 대한 원용은 어떤 책에서도 볼 수 없었던 참신함과 현실을 꿰뚫는 통찰력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미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 걱정하고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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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되면 적어도 내가 늘 갖고 싶어했던 그래서 소설가나 화가들을 동경하게 만들었던 그들의 창작력을... 나의 마음속에서도 창의력이란 것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바탕글이 되어주길 간절히 바라는 욕심이 있었다.
창의력이란 고민은 수학만큼이나 잘 하고 싶었던 또 하나의 그 무엇이었고 내 속에서 창의력을 발휘하기 위한 노력은 무얼 통해 가능한지... 창의력이란 능력은 정말 누군가에게만 타고난 것이며 노력으로의 한계는 있는 것인지 늘 고민과 부러움 속상함투성이였다.
처음엔 생각했던 것처럼 구체적으로 자세히 창의력을 깨우는 것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 것 같아 읽는 것이 조금은 어렵다고 느껴지기도 했는데 아마도 그건 이론보다는 예시를 통한 이야기를 더 원했기 때문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읽어갈수록 저자가 말하는 창의력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었던 창의력의 의미와는 많이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있다고 생각했던 그 창의력이 오히려 모두에게 다 있는 것이며단지 그 잠재되여 있는 창의력을 스스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각자의 잠재되여 있는 창의력은 교육등을 통해 인지되어야 하지만 그런 역활의 교육들이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음을 지적해주었다.
다 읽고 나니 창의력을 깨우는 법칙은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게 되였다. 스스로가 창의적인 사람이고 생각하는 마음.. 소설가처럼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창의적인 사람이어서 소설가가 된 것이 아니라 글 쓰는 일이 즐거워 노력하고 행동에 옮기게 되면서 소설가가 되였을 거라고 생각을 하게되였다.
나의 마음의 소리를 들여다 보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 열심히 하다 보면 나는 그 분야의 창의적인 사람이 되는 것일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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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력!
우리는 현재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간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우리는 사회에서 그 경쟁의 삶속에 있다. 그 속에서 얼마나 창의적인 인재를 요구하는 지 우리는 경험한다. 요즘 기업에서도 창의적인 사고를 요한다. 창의적인 사고를 가지고 얼마나 유연하게 기획하고 움직이느냐에 중점을 두기도 한다. “모든 사람은 창의적이지만,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창의성에 대한 오해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한다. 특정한 종류의 활동, 특히 예술 분야에만 적용된다는 오해, 그리고 특정한 사람, 용모나 행동이 상식에서 벗어난 사람들만이 갖고 있다는 오해를 꼬집는다. 창의성은 어떤 특정한 사람만 갖고 있거나, 특별한 활동을 할 때만 발휘되는 독립적인 두뇌활동이 아니라 과학, 기술, 경영, 비즈니스, 음악, 예술, 기타 인간의 지능을 사용하는 모든 활동에서 나타난다. 사람마다 서로 다른 창의적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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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떼 문화예술교육 시리즈 <내 안의 창의력을 깨우는 일곱가지 법칙>을 읽고.. " 흔히 사람들은 창의성을 순전히 개인적인 능력으로 여긴다. 혹은 창의성은 창의적인 사람, 혹은 창의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부서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 " 대부분의 회사는 이른바 '창의적 인력'을 독립된 부서에 배치한다. 청바지를 입고 넥타이를 매지 않으며 기발한 아이디어와 씨름하느라 지각해도 괜찮은 사람들이다."
" 모든 사람은 창의력을 갖고 있지만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 요즘 교육제도는 현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창의적인 인재를 효율적으로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는 어린이 각자가 타고난 능력을 키워주기보다는 기본적인 논리력과 사실의 암기라는 극히 좁은 분야의 지능만을 개발하고 있고 학업능력 평가제도나 입시제도도 그런 전제 하에 설계돼 있다. 나도 내 세대에선 비교적 많이 배울 만큼 배웠고 나름대로 성공적인 직장생활도 경험해 보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에 유연하게 대처하기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내가 직장을 다닐때는 그저 주어진 일만 잘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세상이 너무 바뀌었다. 경제와 기술은 눈 깜짝할 사이에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소위 '골드 칼라'라고 하는 아이디어 인재, 창조적 인재가 중요해 지면서 사회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이며 유연한 인재를 절박하게 필요로 한다.
이에 세계는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교육 수준을 높이려고 노력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창의적 인재는 점점 모자란 실정이다. 보통 학교에서 우수한 학업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어린이에게는 덜 유능한 인간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반면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학교에서 실패한 경우도 많다. 이들은 많은 경우가 교육제도에서 나온 뒤에야 성공을 거두었다. 필자는 교육제도 안에서 개인의 능력이 이렇게 낭비되는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아카데미시즘이라고 말한다. 아카데미시즘이란 특정한 학문적 능력을 전반적인 지능과 혼동하여 다른 능력을 무시하고 오직 그것만 개발하는 편견이다. 그러고 보면 엄마로서 나의 잘못도 없지 않아 있다. 언젠가 우리 딸이 학교에서 비누 조각품을 만들어온 적이 있다. 내 자녀가 만든 것이라 더 좋아 보였을지는 모르겠으나 이게 정말 초등학생의 실력인가 싶어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어릴 때부터 만들기나 꾸미는 것이 재주가 있는 것 같아 미술 학원을 보낼까 생각도 했지만 한참 공부하는 학원에 다니던 때라 공부에 방해가 될까봐 주저하다가 접은 경험이 있다. 나 역시 공부만 강요하고 딸의 다른 능력은 무시한 것이 아닌가 후회스럽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부모들이 그럴 것이다. 그 때문에 아이들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죽기 살기로 공부를 한다. 중학생인 딸애가 벌써부터 입시에 시달리고 있는 걸 보면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아카데미시즘과 잘못된 지적 기준은 아이가 가진 가장 중요한 지적 능력들을 걸러내 버리고 있다. 그래서 해외에서는 입시 위주의 공교육을 벗어나 정서적 안정을 돕고 타인에 대한 이해 능력을 높이는 문화예술교육이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오감으로 느끼는 미적 체험과 유연한 사고력은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시킨다" 갑자기 억울한 생각이 든다. 그동안 자녀에게 '더 필요하다'고 여겼던 공부를 시키기 위해 다른 능력들을 무시하고 있었다는 것이.. 당장 이번 주말에는 딸 손을 잡고 재미있는 연극이라도 한 편 보러 가야겠다. 앞으로도 많은 문화예술을 경험시켜 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지능 개념과 창의력 개념을 바로잡고, 타고난 재능을 자연스럽게 발현하는 것이 창의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한다. 특히 창의적인 인재를 키워내야 할 교육자나 부모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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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교육계의 화두가 되고 있는 몇몇 단어들 중에서도 '창의성'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하지만, 그 본질이나 방법에 대해서는 많은 오해가 있지 않는가 생각한다. 거의 모든 학교나 학원 등에서 창의적인 인재 육성을 말하며 창의성 교육을 실시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기업체에서도 창의적 인재를 찾고 있지만, 과연 창의성이란 어떻게 길러지는 것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대학입시에서도 천편일률적으로 수능 점수를 통하여 학생을 선발하는 대신 여러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고자 노력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수시모집에서 적성검사를 통하여 우수한 학생들을 모집하고자 하고 있다. 그 문제들을 보면 단기암기나 학문적 능력보다는, 순발력과 창의성을 동원하여 빠른 시간내에 문제들을 풀어야만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그 문제들을 살펴보았으나 어려서부터 암기위주, 문제풀이 위주의 교육을 받아온 나로서는 참 어렵다 싶었다. 이 책의 저자 켄 로빈슨은 많은 사람들이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지능지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창의성이란 지능지수 또는 학문적 능력과 비례하지 않음을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창의성에 대하여 몇가지 오해를 지적하고 있는데, 먼저 창의적인 사람은 남다른 재능을 타고 나서 평범한 다른 사람들과는 구별되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라는 편견이다. 또한 창의성은 특별한 종류의 활동, 예를 들어 음악이나 미술과 같은 예술 분야에 국한된다는 통념을 갖고 있다. 또한 창의성은 교육에 의해서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라 타고 난다는 오해를 많이 하고 있다. 그렇기때문에 어려서부터 특정분야에 독특한 재능을 나타내는 사람들을 일반적인 교육이 아닌 뭔가 색다르고 독특한 교육체계에서 가르쳐야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것은 창의성에 대하여 크게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창의성을 어떻게 배양해야 하는가. 저자에 의하면, 창의성이란 혼자서 스스로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의 다양한 생각과 자극에 영향을 받으며 창의적인 사고와 혁신이 장려되는 분위기에서 길러진다. 반대로 대화와 상호작용이 억압받는 분위기에서 창의성은 흐려진다. 그런면에서 기존의 우리 교육형태는 과연 창의성을 기르는 것이었는지, 아니면 오히려 창의성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었는지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또한 창의성은 역동적인 과정이며 다른 여러 분야에 관련될 수 있다. 현대의 지식은 갈수록 전문화가 심화되고 있는 만큼,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서로 자신의 생각을 내놓고 새로운 해석과 적용의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로, 창의성은 점진적이다. 새로운 생각이 무에서 갑자기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이전에 있던 이들 또는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의 생각과 성취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열린 태도와 유연한 사고가 창의성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이처럼 창의성이란 개인적 측면외에도 사회적, 문화적 측면을 모두 고려해야 하므로 특정인물이나 과정에 국한하지 말고 체계적인 혁신의 과정을 촉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하겠다. 이 책을 읽으며, 개인적으로도 창의성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볼 수 있었지만, 더불어 우리 교육현장에서 창의적인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 내가 해야할 교육적 활동에 대해서 반성해 볼 수 있었다. 철저히 대학입시대비 위주의 교육활동 속에서 창의성을 찾아보기란 어렵고, 또한 피교육자인 학생들마저 창의적이고 유연하며 열린 사고활동보다는 단순암기 지식만 축적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이 책은 창의성을 기를 수 있도록 안내하는 기술적 방법 안내서가 아니다. 그런 테크닉을 기대했다면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크게 실망할 수 있다. 오히려 다중지능과 창의성에 대해서 그 이론적 배경을 광범위하고도 깊이있게 살펴본 '학문서', 또는 '논문'에 가깝다. 그러나 교육현장에서 창의성을 바로 이해하고 창의성 교육을 실현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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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 지연, 혹은 지나친 아케데미즘의 문제로 회사에 취직하기조차 쉽지 않은 요즘이다. 사실 취직자리는 남아돈다고 하는데, 왜 전 세계적으로 실업률은 점점 증가하고 있을까? 경기가 불황이라서? 과거에는 그렇게 드물던 박사님들이 넘쳐나서? 3명당 1명꼴로 대학을 졸업하고 있고, 대학원에서부터 유학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가방 끈은 점점 길어지고 있는데, 그 넘쳐나는 인재들이 갈 곳이 없다. 참으로 아이러니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의 실마리는 간단하다. 남들과 똑같은 길을 걸어가서 남들과 똑같은 골인 지점을 향하게 되는 획일화된 교육제도와 본인의 의사결정이 결여된 사회적인 압박감이 작용한 탓이다. 무궁무진하게 펼쳐질 본인의 창의적 능력은 배제한 채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흐르는 땀과 뜨겁게 돌고 있는 몸속의 혈류를 무시한 채 그저 남들과 똑같아야 한다는 관념이 강박으로 작용하여 저마다가 동일한 미래를 향해 뻗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동감되는 부분이 아주 많았다. 비록 저자는 영국인이지만, 현 교육제도의 문제는 세계 어디를 가나 비슷할 것이고, 성공이란 허울에 눈이 멀어 개인의 창조적인 능력을 계발하지 못하는 사람들 역시 세계 어디를 가나 비슷하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지나친 간섭으로 스스로의 미래까지 부모에게 맡겨야 하는 요즘 세대 아이들이 불연 듯 애처롭게 보인다. 더욱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몰살 시킨 채, 오직 대학 졸업장만을 위하여 기계 라인보다 더욱 획일적으로, 혹독하게 훈련시키고 있다. 감성은 한 사람의 인성을 좌우하는 중요한 감각인데, 감성은 아무짝에 쓸모없는 기능으로 전락시키고 마는 것이다.
모든 학문은 서로 소통하고 있다. 예술을 알아야만 과학적인 사고력이 배양되고, 수학을 잘하면 또 다른 감각기관이 더욱 예술적으로 작용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삶의 질을 높이기에 급급하기 보다는 삶을 더욱 풍요롭고 아름답게 즐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개인의 창의력이 말살되는 시점에서부터, 역사와 사회,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탁월한 통찰력을 엿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시야가 확 트일 듯한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치로 이끌어 낼 수 있겠다는 희망도 생긴다.
창의력이란 무엇일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백지 상태로 머물러 있던 스스로에게 영감을 불어 넣어 또 다른 자아를 키워내는 일이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을 찾아서 하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내가 진정으로 원하며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나의 창의력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것인지를 찾아야 한다. 학생에서부터 기업인, 어느 정도 성공의 열망을 꿈꾸는 성인들까지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이 가장 중요하다. 창조적인 시야로 두뇌 속에 잠재하고 있는 본인의 능력치를 최대한 끌어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만이 이 시대의 새로운 천재로 거듭날 것이다. 과거의 그들이 걸었던 행로를 똑같이 걷는 것은 어차피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결과일 뿐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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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참 어울리는 겉표지란 느낌이 든다. 여러 가지 색깔의 비슷한 모양의 그림, 하지만 이 그림들은 똑같지는 않다. 인간의 뇌가 다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는 것을 겉표지를 통해 알려주는 듯 하다. 이 책은 교육을 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이들 교육을 집안에서 책임져야하는 엄마, 아빠, 그리고 학교나 학원 등지에서 지식 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들이라면 한번을 읽어 봐야 할 책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쟁점은 두 가지로 축약할 수 있다. 그 첫째는 지식 교육을 중시하는 현재의 잘못된 교육 체계이다. 수학이나 물리학에는 창의력이 필요없다는 식의 교육, 논리가 필요한 이러한 학문은 우리 선배들이 일궈논 논리를 그대로 전달하기 바쁜 교육 현실, 음악, 미술은 덜 중요하고 창의력은 이러한 예술에서나 필요하다 여기는 우리의 잘못된 인식이 개입 되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두 번째 쟁점은 먼 미래를 바라봐야 하는 기업들 역시나 단기적 지식교육에 공을 들이는 학교교육을 그대로 닮아 단기적 수익을 내는 것에 집중하는 기업의 사원 관리 행태다. 작가는 사람은 누구나 창의성을 갖고 태어난다 말한다. 기본적으로 인간 누구에게나 있는 창의력에 그것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교육과 세상에서 쌓을 수 있는 경험이 보태져 창의력은 충분히 극대화 될 수 있음을 얘기하고 있다. 창의력은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갖고 있다. 창의적인 뇌를 사용하지 않아 그 뇌의 부분을 지식이 차지해 버리는 바람에 겉으로 표출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있음을 인식하고 개발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면 충분히 표출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미래를 성공적으로 살아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창의력임을 우리는 안다. 미래적 사람을 배출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잘못된 교육체계를 하루속히 바꿔야 하며, 잘못된 기업의 사원 관리 역시 바꿔야 밝은 미래가 보장된다고 작가는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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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인 조직이 가지는 몇 가지 근본특징 1. 사람들에게 위험을 무릅쓸 자유를 주는 곳 2. 사람들이 자신이 타고난 지성을 발견하고 발전시키게 해 주는 곳 3. 어리석은 질문, 옳은 대답이 존재하지 않는 곳 4. 불손함, 생기발랄함, 역동성, 놀라운 것, 장난기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곳. 자, 이 조건에 한국의 기업이라는 모토로 접근하는 건 너무 광범위하니까 제외하고 내가 근무하는 곳으로 초점을 맞춰 생각해 보자. 먼저, 사람들에게 위험을 무릅쓸 자유를 주는 곳이라는 첫째조건부터 부합되지 않는다. 자유는 곧 항명이라는 생각이 경영진부터 뿌리깊게 박혀 있는 생각이라, 잠깐의 자유는 곧 회사에 대한 저항이라고 생각하기 일쑤다. 지성을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건 경영진에 가까운 초관리급에 한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맨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사람들에게는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곤 있으나, 정작 실무에 필요한 건 전혀 제공하지 않는다. 명목상으론 우리는 사원을 아끼고 모든 교육을 제공하여 초일류사원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라고 말하지만, 웃기는 소리다. 나만 해도 접근할 수 있는 교육과목이 기껏해야 토익을 위한 어학코스밖에 없다. 초관리급이 되기 위한 회계나 MBA같은 코스같은 건 아예 제공하지 않는다. 그마나 어학코스라도 제공해 주는 것이 감지덕지할 판이다. 과장급은 어떤가? 맨 밑 사원시절부터 교육받아야 할 관리자가 되어야 할 소양이라든가, 리더십과정을 이미 준리더의 자리에 올라선 지금에서야 제공하고 있으니, 현실과 너무 괴리되고 머리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MBA이니, 창의력개발코스니 조금 높은 코스들은 여지없이 이사급이나 기타 초관리급에서만 제공되는데, 이게 정말 지성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곳일가? 어리석은 질문, 옳은 대답은 반드시 존재한다. 조금이라도 틀을 벗어나면 곧바로 어리석은 놈, 나대는 놈, 뻣뻣한 놈이라고 낙인찍고 그 다음부터는 그 사람의 말을 일절 무시한다. 불손함, 겸손함 이런 모든 감정들은 조화되지 못한다. 오로지 회사에 대한 절대충성만을 키우려고 열을 올리고 있다. 발랄함이라든가, 장난기같은 건 평소엔 추켜 세워 주지만, 뒤로는 언제든지 회사가 불리한 위치에 처해있을 때 숙청을 하기 위한 하나의 조건부분으로 그 칸을 메우고 있다. 내 안의 창의력이 이렇게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건 뭐? 창의력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창의력을 마치 적성검사나 지능검사처럼 생각하고, 수치가 뛰어난 사람만이 가지는 한정특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교육도, 사회적인 분위기도 거기에 동조하고 오히려 기름을 붓고 난리도 아니였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문명화가 심오화됨에 따라 단순수치로 표현할 수 없다는 걸 절실히 깨닫고 있는 중이다. 창의력이라는 건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모든 조화로움의 표현 중 하나라는 걸 이제야 알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착실히 준비하자. 대학을 가기 위해선 미술같은 건 쓸모없다고 한쪽으로 치우지 말고, 무용과 체육은 같은 거니까 체육에 포함시켜 버려도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가지를 뻗어 나가는 나무처럼 생각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들 이 창의력을 깨우는 일곱가지 법칙을 잊지 말아야겠다. 전제로 당신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 이상의 존재라는 걸 잊지 말자. 1. 사고의 물꼬를 터라. 편견을 버리고 개방적인 사고를 의식적으로 라도 하기 시작하자. 2. 패혈증적 요소를 버리자. 전체 맥락에서 벗어나는 오해에서 벗어나자. 3. 당신의 마인드를 제대로 알자. 4. 창의성이라는 것에 대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자. 누구에게나 창의성은 내재되어 있다. 5. 감정과 소통하기 6.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7. 창의력이 변화를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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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생각중인데요. 이책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각각의 장은 시작과 끝을 명확히 하고 있으며 그속에서 여러가지 개념에 대해서 생각하고 고민하게 하는 책입니다.
내안의 창의력... 나자신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나가 변하고 나의 주변이 변하고 인생이 변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 그걸 누구 모르냐 라고 하신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걸을 실천할수 있는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제자신도 그렇구요. 이책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수 있는 길을 제시합니다.
똑같은 길을 가더라도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보이듯이 나자신을 제대로 알고 나자신의 가치를 정확히 볼때 그것이 바로 창의력이 생기는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것도 그속에서 기회를 찾는 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나자신이기에 나를 통해 세상을 보는 나가 세상에 적응하기보다 세상을 나에게 적용해보는 기회가 된것 같아요.
건강하고 바른 사고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기가 힘든 세상입니다. 그속에서 지금까지 받아왔던 환경적 틀과 교육의 틀속에서 이제는 벗어나야겠습니다.
세상을 알고 나자신을 알고 나자신을 믿을때 창의력도 생겨나는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남을 믿을수는 없습니다. 내안의 창의력을 믿지 않고 창의력을 다른 곳에서 찾기만을 남이 성공한것만을 보고 부러워한것만은 아닌지....
전 이제부터 제안의 창의력을 믿어볼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