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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철학 강판권 글항아리/2016.6.22. sanbaram 우리의 주변에서 나무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심히 지나치기에 어떤 나무가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관심을 좀 기울여 나무를 봐도 이름이나 특성을 몰라 그냥 ‘나무가 있구나’ 하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나무 철학>의 저자는 이런 나무에서 인생의 길을 찾았다고 한다. 1981년 계명대 사학과에 입학하여 사학에 입문하였고, 1999년 경북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나무열전>, <역사와 문화로 읽는 나무 사전>, <중국을 낳은 뽕나무>,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세기> 등, 나무에 관한 10여 권의 책을 펴냈다. <나무 철학>은 3부로 이루어 졌다. 1부 순리에 맞게 변화하는, 2부 단순하고 절박한, 3부 그러나 끊임없이 치열한. 등으로 나무에서 깨달은 것을 나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곁들여 풀어 놓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나무들은 결코 자신의 삶을 다른 나무들과 비교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끊임없이 나의 삶을 다른 사람의 삶과 비교하면서 살았다. 여기서 나의 창의성은 막혀버렸다.(p.6)” 그렇게 생활하다 나이 40이 되어서 나무 철학을 깨닫게 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고 한다. 나무는 위로 향하면서도 옆으로 몸집을 불린다. 나무는 시간의 삶과 공간의 삶, 즉 종적인 삶과 횡적인 삶을 동시에 사는 존재다. 그러나 인간은 대부분 시간의 삶에 집중한다. 그래서 나이에 집착하게 되고, 나이에 집착하는 삶은 행복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뭇잎의 색깔은 이파리 하나라도 같은 것이 없다. 한 그루의 단풍나무 잎은 대충 보면 붉은색이지만 자세히 보면 모두 다르다. 단풍잎이 아름다운 것도 붉고 고와서라기보다 잎마다 각자의 색깔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잎마다 농도가 다른 단풍나무를 보면 평소에 보지 못했던 나무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아울러 물든 잎은 앞과 뒤가 다르다.(p.35)” 잎은 나무마다 다르기도 하지만 어릴 때와 자랐을 때의 색깔도 다르다. 나무가 매년 잎을 가는 모습은 분명 인간이 배워야 할 점이다. 나무는 변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싫증내지 않고 좋아한다. 변하는 것은 때론 두렵지만 변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는 법이다. 결국 변화는 발전하는 삶의 원동력이 된다. “꽃은 나무의 일부다. 하지만 사람들은 꽃이 나무의 전체라고 생각한다. 모든 생명체는 우주다. 물프레나뭇과의 개나리는 한국이 원산지다. 서울시가 한국 원산지의 개나리를 서울의 상징으로 삼은 것은 좋지만, 개나리꽃을 상징으로 삼은 것에는 문제가 있다.(p.152)” 개나리꽃은 황금색 종처럼 생겼다. 봄에 개나리꽃이 피어 바람에 흔들리면 황금종소리가 서울 전역에 울려 퍼진다. 그러나 꽃이 지고 나면 종소리도 사라지고, 잎이 돋으면 사람들의 발길도 끊어진다. 더욱이 꽃이 지고 난 뒤에 사람들에게 나무 이름을 물으면 대부분 그 나무가 개나리인지조차 모른다고 저자는 아쉬워한다. 한 그루의 나무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나무의 일부만을 사랑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나무와도 비교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은 꽃이나 열매가 잘생겼느니, 못생겼느니 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꽃과 열매는 그 자체로 성스럽고 예쁘다. “모든 나무는 같은 하늘을 바라본다. 때로는 하늘을 차지하려고 격렬하게 다툰다. 나무가 하늘을 다투는 것은 곧 햇볕 싸움이지만,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은 아니다. 나무들도 죽기 살기로 다투다간 서로가 함께 죽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산에 살고 있는 나무를 유심히 보면 굽은 나무를 자주 볼 수 있다. 햇볕 경쟁에서 밀린 나무들은 틈을 이용해서 햇볕을 얻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몸을 비틀어서 위로 올라가야만 한다. 이는 경쟁 속에서도 같이 살아갈 수 있다는 지혜를 보여준다.(p.221)” 나무의 옹이는 곧 외부의 상처다. 즉 외상이 나무 안에서 생긴 고통의 흔적이다. 이 세상 어느 누구인들 옹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옹이 하나쯤은 안고 산다. 옹이가 있다고 해서 불행한 것은 아니다. 옹이는 나무의 삶을 강하게 만드는 희망의 에너지다. 옹이를 만나면 톱마저 지나가기 어렵다. 그래서 하나의 옹이는 나무의 몸 전체를 보호하기도 한다. “나무와 풀꽃이 아름다운 것은 아주 잠깐 피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1년을 기다려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언제든지 꽃을 볼 수 있다면 감동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p.256)” 대추나무 잎이 천천히 돋는 것이 자신의 생체리듬에 맞게 움직이는 모습인 것처럼 열매도 크고 작음이나 맛의 여부만으로 그 가치를 결정할 수 없다. 열매의 크기는 나무의 필요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사람과는 무관하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입장에 잘 맞으면 쓸모 있는 열매이고 그렇지 않으면 보잘것없다고 평가해버린다. 그래서 사람의 편견이 드러나는 이름을 가진 나무들이 많다. 사람들은 그런 나무 이름 앞에 ‘개’자를 주로 붙인다. 개가 알면 웃을 일이다. “공자가 평생 화두로 삼은 것은 인(仁)이지만, 삶의 태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중용(中庸)이었다. 중용은 그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중용은 가운데가 아니다. 어떤 일이든 핵심에 적중시키는 능력이 바로 중용의 정신이다.(p.337)” 이렇게 저자는 사학자답게 나무가 중용의 철학을 몸으로 표현한다고 한다. 자연을 잊어버리고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에게 나무 철학을 배워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자기의 길을 찾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지라는 저자의 생각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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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철학>은 3부로 이루어 졌다. 1부 순리에 맞게 변화하는, 2부 단순하고 절박한, 3부 그러나 끊임없이 치열한. 등으로 나무에서 깨달은 것을 나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곁들여 풀어 놓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나무들은 결코 자신의 삶을 다른 나무들과 비교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끊임없이 나의 삶을 다른 사람의 삶과 비교하면서 살았다. 여기서 나의 창의성은 막혀버렸다.(p.6)” 그렇게 생활하다 나이 40이 되어서 나무 철학을 깨닫게 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고 한다. 나무는 위로 향하면서도 옆으로 몸집을 불린다. 나무는 시간의 삶과 공간의 삶, 즉 종적인 삶과 횡적인 삶을 동시에 사는 존재다. 그러나 인간은 대부분 시간의 삶에 집중한다. 그래서 나이에 집착하게 되고, 나이에 집착하는 삶은 행복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뭇잎의 색깔은 이파리 하나라도 같은 것이 없다. 한 그루의 단풍나무 잎은 대충 보면 붉은색이지만 자세히 보면 모두 다르다. 단풍잎이 아름다운 것도 붉고 고와서라기보다 잎마다 각자의 색깔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잎마다 농도가 다른 단풍나무를 보면 평소에 보지 못했던 나무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아울러 물든 잎은 앞과 뒤가 다르다.(p.35)” 잎은 나무마다 다르기도 하지만 어릴 때와 자랐을 때의 색깔도 다르다. 나무가 매년 잎을 가는 모습은 분명 인간이 배워야 할 점이다. 나무는 변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싫증내지 않고 좋아한다. 변하는 것은 때론 두렵지만 변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는 법이다. 결국 변화는 발전하는 삶의 원동력이 된다. “꽃은 나무의 일부다. 하지만 사람들은 꽃이 나무의 전체라고 생각한다. 모든 생명체는 우주다. 물프레나뭇과의 개나리는 한국이 원산지다. 서울시가 한국 원산지의 개나리를 서울의 상징으로 삼은 것은 좋지만, 개나리꽃을 상징으로 삼은 것에는 문제가 있다.(p.152)” 개나리꽃은 황금색 종처럼 생겼다. 봄에 개나리꽃이 피어 바람에 흔들리면 황금종소리가 서울 전역에 울려 퍼진다. 그러나 꽃이 지고 나면 종소리도 사라지고, 잎이 돋으면 사람들의 발길도 끊어진다. 더욱이 꽃이 지고 난 뒤에 사람들에게 나무 이름을 물으면 대부분 그 나무가 개나리인지조차 모른다고 저자는 아쉬워한다. 한 그루의 나무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나무의 일부만을 사랑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나무와도 비교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은 꽃이나 열매가 잘생겼느니, 못생겼느니 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꽃과 열매는 그 자체로 성스럽고 예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