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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폴란은, 자신의 정원에 감자를 심다가 문득, '식물'이 자신의 번식을 위해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선택하게 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리고 온갖 생물 종들이 얽히고설켜 있는 거대한 상호 이해의 거미줄 속에 우리 인간이 살고 있음을 독자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게 이 책의 목적이다.(34쪽)
길들여진 식물 종의 핵심적인 과일, 꽃, 식량, 마약을 가장 잘 대표하는 식물이기 때문인데.
『사과』에서는 마치 특정인물(조니 애플씨드)의 위인전을 다룬 듯이 많은 지면이 할애되었고,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정신이 번쩍 뜨였던 부분이 『감자』이기도 했다. 인간이 식물의 유전자를 조작하게 되면서 맞이하게 될 생태계의 파멸이 섬뜩하게 여겨지면서, 처음 이 책을 잡도록 유도했던- 식물이 인간의 마음을 조종하여 욕망을 채워주고 서로 공진화해 왔다는 마이클 폴란의 글이 그렇게 애교스러운 수준으로만 받아들여졌더라면 좋았을 껄 하는 생각이 들었다.
1. 달콤함의 욕망 : 사과
- 사과나무를 통칭하는 ‘말루스 도메스티카’의 원래 조상은 카자흐스탄의 산악지대에서 자라는 야생 사과나무(50쪽)
* 중국에서 최초로 접붙이기 방법을 통해 점점 달콤한 사과를 얻는 방법을 터득했으나 존 채프먼(일명 조니 애플시드Johnny Appleseed)은 광활한 대지에 이름없는 수많은 사과씨들을 심는 방법을 통해 사과 스스로 온갖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번화하는 방법을 선택하였고 오늘날 미국의 수많은 사과 품종들을 가능하게 했다. 접붙이기 방식으로 복제되는 사과들은 결국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자생능력을 잃고 말지만 야생환경에서는 식물과 해충이 공격과 저항의 끊임없는 순환과정을 통해 공진화해 나간다는 것이다.
-단맛에 대한 갈증을 주로 과일의 육즙에서 채웠는데 그 과일이 바로 사과이다(58)
* 신사과는 대부분 술을 담가 마시게 되는 용도로 쓰였는데, 금주법이 시행되면서 사과의 판매량이 감소할 것을 막기 위한 홍보의 전략으로 “하루에 사과 하나만 먹으면 병에 걸릴 일이 없다‘는 말이 생김.
-꽃을 인식하고 기억하는 능력은, 다른 먹이 사냥꾼보다 먼저 열매를 차지하는데 도움이 된다.(133쪽)
정원에 피는 꽃들은 벌이나 박쥐 혹은 나비뿐만 아니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좋음 혹은 아름다움에 대한 온갖 인식들을 겨냥해서 자기 의도를 관철하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에 꽃과 인간이 거래를 텄고 이 결합의 결과, 즉 서로의 욕망이 경이롭게 공생함으로써 나타난 것이 바로 정원에 피는 꽃들이다.(135)
튤립 열풍이 한창 거세게 불 때는 한 뿌리 가격이 1만 길더나 되었는데 그것은 당시 암스테르담에서 최고수준의 수장 저택을 한 채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126쪽)
니코틴(자기를 갉아먹는 해충의 근육을 마비시키거나 경련을 일으킴)이나 카페인(신경체계를 손상기킴), 플라보노이드(혀의 맛을 교란시킴), 감광물질(동물이 섭취했을 경우 염색체가 자외선을 쐴 경우 돌연변이를 일으켜 새까맣게 탐), 심지어 동물을 미치게 하는 독성까지.
*주로 주술사에 의해 종교의 기반을 형성하도록 도운 향정신성 식물들에는 독말풀, 양귀비, 벨라도나, 해시시, 광대버섯등이 있는데, 그중 대마초는 미국에서 금단의 식물로 표적이 됨으로써 오히려 오늘날 더 강력한 품종으로 거듭났다.
감자의 발전사는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주로 다룬 유전자 조작내용을 적어본다면, 몬산토 社가 유전자를 조작한 품종인 뉴리프(스스로 살충성분을 생성하도록 만들어진 품종)를 마이클 포란 자신의 정원에 재배하며 기록하는 내용들은 먹거리에 대한 불안함을 넘어 생테계의 파멸까지도 가깝게 느끼게 한다.
현재 종과 종 사이뿐만 아니라 문(계, 문 , 강, 목, 과, 속, 종의 단계)과 문을 넘나들며 유전자를 특정 식물에 주입해 특정한 특성을 가지도록 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식물의 본질적이며 결코 바꿀 수 없는 정체성의 장벽에 금이 갔음을 뜻한다(309)
-이식된 유전자는 다른 일반 유전자보다 종과 종 사이의 이동을 더 쉽게 한다는게 실험을 통해서 밝혀졌다. 종의 장벽을 뛰어넘는 생물학적 오염이라는 새로운 환경 문제를 제기한다. 일부 환경론자들은, 농업에서의 강조점이 화학적인 발전에서 생물학적 발전으로 이동함에 따라서 생기는 결과는 불행한 유산으로 후대에 전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농약에 의한 오염은 아무리 해롭다 하더라도 약효가 떨어지면 언젠가는 유해성이 바닥난다. 하지만 생물학적 오염은 자기 증식을 계속한다.(3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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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과 먼저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회사 이름을 "애플"이라고 지은 이유가 뭐냐고 사람들이 물어 보았을 때, 그는 "그냥"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고 했다. 나는 뭔소리하나 했다. 선문답인가? 자기들 끼리만 통하는 코드가 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어디다 물어 볼곳이 없다. 이 책에서 마이클 폴란은 사과 이야기를 자신들의 개척영웅 "조니 애플시드, 존 채프먼"으로 시작한다. 이 사람은 미국 FOX사의 만화 "심슨네"에서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뭐 그런가 보다 했는데 대단한 괴짜다. 사과를 미국 서부 전역에 퍼뜨린 사람이다. 대충과 신중함을 섞어서 읽는다. 알고 싶은 내용은 아니었지만 재미가 있기에 따라간다. 존 채프먼의 이야기는 조금 지루할 정도다. 그러다가!!!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생각나는 대목이 있었다.
인용이 길었지만 미국인에게 사과는 아메리카 드림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부모의 부와 명예와 관계없이 자신의 능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순수한 아메리카 드림의 상징이어서 스티브 잡스도 "애플"이라는 이름을 '그냥'사용한 것이다.(물론 지금은 아메리카 드림도 옛날 이야기라고 하지만) 다시 한번 잡스가 생각난다. (좋아하거난 추종, 숭배하지는 않는다.) 2. 읽으려 한 이유 선행학습을 통해 이 책의 대강의 내용은 안다고 생각했다. (물론 읽기 시작하자 마자 내가 틀린 것을 알았지만) 그리고 이 책을 읽게 된 목적은 자료가 필요해서였다. 바로 "공진화 共進化 , coevolution -여러 개의 종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진화하는일 " 에 관한 내용이었다. 내가 필요한 구절은 서장에 있었다. 식물은 온갖 시행착오 끝에 자기 종을 퍼뜨리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동물을 유혹해서 이용하는 것임을 터득했다. 이 동물이 꿀벌이든 식물에게든 별 차이가 없다. 단지 그 방법은 동물의 욕망을 자극 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때 동물은 자기의 욕망을 인식할 수도, 그러지 못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식물로서는 어느 쪽이든 상관 없다.~~이런 특성이 매우 교묘하다는 것은 나중에 보니까 그런 것일 뿐이다. 자연 속에서 드러나는 계획이나 의도는 자연석택에 따른 우연한 사건들이 중첩된 것일 뿐이다. 나중에 나타나는 결과 역시 너무 아름답고 효율적이라서 목적의식성이 만들어낸 기적처럼 보이기도 한다. 3. 이 책은 마이클 폴란의 글은 읽기에 즐겁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끝없는 이야기 보따리는 마법의 주머니다.이 책에서는 사과, 튜울립, 대마초, 감자에 대한 길고 길지만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네 가지 식물은 각기 달콤함, 아름다움, 황홀함(?), 지배를 상징하고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대마초도?) 식물이라서 그리고 이야기 할게 많아서 선택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식물들이 어떻게 우리들이 그 식물들을 재배하게 만들었는지 재미있고 풍성한 이야기 꽃을 피운다. * 미국 사과와 배는 맛이 없다. 이 책에 나오는 '딜리셔스'라는 품종의 사과는 절대 딜리셔스하지 않다. 우리나라 배와 사과가 훨씬 달다. 우리가 더 과일에 달콤함을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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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진화.... 일반적인 통념으로는 인간이 식물을 선택해서 재배에 성공, 즉 신석기 혁명으로 불리는 농업혁명의 요체이다 그러나 실상은 인간과 식물(재배식물)은 서로서로 보완하면서 진화해 왔다는 것을 주요 식물을 예를 들어 공진화를 설명합니다 지구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인간뿐만 아니라 식물에게도 있음을 알아야 겠다
1.재배식물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일방에서 양방향으로, 식물의 지배에서 식물과 인간의 공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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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공진화는 인간과 재배식물을 벗아나 식물과 곤충,식물과 동물사이에서도 서로의 영역에서 공유하는 부분이 있었다 ○다름쥐는 25%의 도토리를 저장한 장소를 잊음으로 인해서 도토리가 확산(대)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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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과일이 푸른색에서 붉은색으로 변하는 이유가 진화의 산물이고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대비책임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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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여기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까? 진화란 무엇인가? 아마도 양보하고 공유하고 배려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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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모란의 진화 즉 배려한 것은 여자의 냄새를 풍길 정도까지 가까이 갔다 진화의 위대함일까?. 아니면 모란이 살아남기 위해서 인간에게 배려한 것인가? 아니면 인간이 너무나도 원해서 모란이 꺽인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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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진화심리학의 단골 메뉴중의 하나가 '공작'새의 깃털이다 몸집에 비해서 깃털이 가분할 정도로 크다 그래도 여전히 아름답다. 아름다우면 건강하고 튼튼한 후손을 가질 확률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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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간의 요구에 순순히 응한 식물에서 우리는 아름다움이란 새삼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름다움'은 세상을 지배하기 위함인가 세상을 배려함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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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대제국 화란에서 일어났던 '튜립열풍'은 그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총체적인 난국임을 알 수 있다 앞으로 예상되는 버블도 이와같은 총체적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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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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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셰익스피어는 일년 내내 가장 달콤한 때를 봄이라고 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과일은 무엇일까? 이러한 호기심 덕택에 읽은 책이 바로『욕망하는 식물』이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사과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보다 중요한 대목은 사과라는 단순한 사실이 아니다. 그 보다는 앞서 말했듯이 달콤함이라는 복잡한 사실에 있다. 이것이 사과의 욕망이라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인간의 욕망이라고 주장했을 텐데 이러한 믿음도 공진화(共進化) 앞에서 다시금 수정되어야 한다. 즉 사과의 욕망이자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이다. 다윈은『종의 기원』에서 자연 선택과 인위 선택을 말한 바 있다. 진화의 주체가 자연이냐 사람이냐, 라는 것이다. 결국 한쪽이 주체가 된 반면에 다른 한쪽은 객체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공진화의 패러다임에 따르면 상황이 바뀐다. 공진화라는 것이 여러 개의 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체내지 객체라는 규정은 무의미하다. 이런 측면에서 사과 이야기를 다시 해보면 야생사과에서 골든 딜리셔스에 이르는 사과의 역사는 곧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사과나무는 벌 대신 인간을 선택하였고 그 보답으로 인간은 달콤한 맛을 얻을 수 있었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아름다움의 욕망인 튤립, 도취의 욕망인 대마초, 그리고 지배의 욕망인 감자가 나온다. 튤립의 욕망은 색깔과 대칭성에 있으며 대마초의 욕망은 극단적인 깨달음이라는 경이로움에 있다. 마지막으로 감자의 욕망은 식물을 줄을 지어서 심는 단일 지배에 있다. 이 네 가지 욕망에 대한 저자의 예리한 관찰력이 돋보인다. 뿐만 아니라 날카로운 비판은 경고의 메시지여서 간과할 수 없다. 특히 감자의 줄 세우기는 앞서 말한 공진화의 논리를 무색하게 한다. 감자의 야생성을 무시하면서 오로지 경제적인 효과만을 생각하는 인간의 부의 욕망이 우리의 먹거리를 위협하고 있다. 가령, 감자를 대량으로 재배하는 주인은 절대로 자기의 감자를 먹지 않는데 놀람과 심각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우리는 보통 다른 종(種)에 비해 강한 존재라고 부른다. 그것은 우리가 다른 종(種)을 길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우리가 과연 진정으로 강한 존재인지 의심하게 한다. 이 문제에 대해 루소는『에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즉, 능력이 욕구를 능가하는 존재는 그것이 곤충이나 벌레라 할지라도 강한 존재이다. 반면에 욕구가 능력을 능가하는 존재는 그것이 코끼리나 사자 영웅이라 할지라도 약한 존재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가 사과나 감자를 굳이 욕망하는 식물이라고 부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식물로만 존재하면서 길들여진다면 식물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식물은 길들여지길 거부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네 가지 식물을 둘러싼 문화의 역사와 변동, 그리고 모순과 위기를 한 눈에 보여주고 있다. 식물의 욕망에서 얻은 깨달음을 통해 우리는 좀 더 다양하고 너그럽게 살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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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는 식물》이라는 제목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식물이 가진 수동성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작은 정원이라도 가꾸어 본 사람은 식물이 동물처럼 스스로 움직일 수는 없음에도 성장과 번식으로 자기의 영역을 넓혀가려는 끝없는 욕망에 깜짝 놀라게 된다. 정원이 딸린 일층 아파트에 이사온 첫해에는 텃밭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잔디를 깔고 초화를 심고 애를 썼지만 십년이 지난 지금은 이름모를 잡초가 정원을 점령하고 있다. 인공적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끝없는 관심과 돌봄의 노동이 필요하다. 자연에 대한 이런 노력을 인간이 자연을 '길들이는 것'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길들이는 것에 대한 여우와 어린왕자의 유명한 대화 " 넌 아직 나에게는 수 많은 꼬마 애들과 똑같은 꼬마에 불과해. 그리고 나는 네가 필요하지도 않고 너 또한 내가 필요하지 않아. 나는 네게 있어 그 많은 여우들과 똑같은 여우에 지나지 않거든. 그러나 만일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게 되는 거야. "가 생각난다. 지구상에 많은 식물과 동물 중에서 인간의 필요에 따라 선택을 받은 소수의 종은 번식과 성장에 인간의 도움을 받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길들여진 식물종의 핵심적인 네 유형인 과일, 꽃, 식량, 마약을 대표하는 사과, 튤립, 감자, 대마초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달콤함의 욕망을 상징하는 사과는 농부이자 성자의 이미지를 가진 조니 애플시드가 미국 전역에 사과씨를 뿌리면서 미국을 상징하는 서민적인 과일이 되었고, '매킨토시'라는 품종은 스티브 잡스가 건설한 애플 왕국을 상징한다. 사과주를 생산하는 것에서 과육을 직접 먹는 과일로 변하면서 사과는 점점 신 맛에서 단 맛을 내는 품종으로 선택되었고 수많은 품종 중에서 몇몇 품종 만이 지배적으로 재배되게 되었다. 인간이 추구하는 단맛을 제공함으로써 그 사과의 품종은 인간을 이용해서 번식의 이득을 본 것이다. 식물은 인간에게 먹을 것이라는 실용적 의미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이라는 허망한 욕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청교도적 검약과 청빈의 나라인 네델란드에서 몰아쳤던 튤립투기는 인간 욕망의 광기를 상징한다. 알뿌리 하나에 집 한채 값이었다는 '셈퍼 아우구스투스'는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것이었다니 견고한 하얀 꽃잎에 타오르는 붉은 줄무늬는 툴립과 인간 모두의 열병을 상징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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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c/cc/Semper_Augustus_Tulip_17th_century.jpg
도취의 욕망을 상징하는 대마초에 대한 부분은 특히 인상적이다. 대마초가 환각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단기기억상실을 유발하여 기억의 필터링 없이 지금 이 순간의 감각을 극대화시켜서 초월 또는 불멸의 순간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에게 금단의 열매이자, 그들이 낙원에서 추방되어 노동의 괴로움과 해산의 아픔을 겪을 때 필요했던 것이 바로 대마초같은 도취성 화학물질을 분비하는 식물이었을 것이라는 견해는 인간의 나약함과 초월성이라는 양면을 잘 드러내고 있다. 감자는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높아 가난한 유럽 농민들의 식량이었지만 한 품종의 단일재배였기 때문에 감자잎마름병이 돌게 되자 모든 감자가 썩어버리고 아일랜드에서 수백만명이 굶어죽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Monoculture가 단일재배와 단일문화의 뜻을 다 갖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맥도날드로 대표되는 패스트 푸드 업체에서 주는 하얗고 기다란 프렌치 프라이에 사용되는 감자가 단일품종이며 단일경작을 위해 농약과 제초제로 밭과 감자가 절여질 정도여서 농부들은 절대 감자를 먹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진실앞에 무엇을 먹어야 하나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농약을 덜 쳐도 된다고 광고하며 농부들에게 유전자 조작된 씨감자를 파는 '몬산토'라는 거대기업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농부들이 종자를 거두지 못하도록 하는 '터미네이터'기술은 반대에 부딪혀 포기했다지만 식물을 지배하고 농부들을 지배하려는 그들의 욕망은 계속되고 있다. 다품종의 순환경작과 유기농법만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원제목인 《The Botany of Desire》를 직역한다면 '욕망의 식물학'으로 인간의 욕망을 위한 식물학이라는 느낌을 준다면 번역서의 제목인 '욕망하는 식물'은 식물의 욕망에 중점을 둔 것 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과 식물의 욕망이 상생작용을 하는 공진화의 관점으로 본다면 주종관계를 굳이 규명하려고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인간이 식물의 욕망에 이용되고 있다는 관점으로 자연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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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적인 묘사이다. 식물이 욕망을 하다니. 물론 식물도 욕망한다. 그러나 그것은 개개 식물의 의식이 하는 욕망이 아니다. 다양한 식물들 중에서 자신의 종을 살아남기기 위한 힘든 종족보전의 노력을 식물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꿀벌을 끌어들여 자신의 화분을 다른 꽃으로 옮기는데 성공하는 식물이 살아남아서 종을 보존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이 책이 가진 주목할만한 특이한 점은 식물이 종의 보존을 위해 유혹하는 꿀벌같은 종의 종류에 인간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식물이 인간을 유혹하는 것이다. 마치 꿀벌이 이 꽃이 향긋하니 이 꽃의 화분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인간은 자신이 감자를 먹고 사과를 소비하며 욕망을 충족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식물의 입장에서 볼 때는 자신의 종족보존을 위해 매개생물을 이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간은 자신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생각하지만, 식물의 입장에서는 인간은 그저 자신의 종을 보존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몇몇 식물에 한정된 이야기이다. 인간은 식물다양성을 파괴하고, 하루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식물의 종을 지구상에서 멸절시키며 살아가는 가장 파괴적인 동물이다. 인간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생태계를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식물들을 종 채로 멸절시킨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다른 종을 이용하는 결과가 멸절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 행위는 식물도 마찬가지다. 양귀비나 대마초같은 식물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인류를 향해 치명적인 유혹을 가한다. 일부 식물은 지구를 훼손하는 인간이라는 재앙을 만나 속수무책으로 절멸되어가지만, 인간을 유혹하는 능력을 가진 일부 식물은, 인간을 꿀벌처럼 노예로 삼아 이 세상을 실질적으로 점령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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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지 식물중 가장 인상깊었던 식물은 바로 대마초와, 감자였다
사과는 다양한 종의 이름들이 예쁘고 반가웠지만....
내 머릿속에 고정관념속에 기억되어있던 대마초가 다시 새롭게 보였고 우리가 단정짓고 생각하는 것들이 실용적일 수는 있지만 선과 악으로 구분되어질 수는 없겠구나 했다
작가의 대마초 재배기억도 즐거웠고 대마초에 관한 솔직한 고백도(현 금지식물인가운데) 신선했다
무엇보다 몬산토 주식회사(육종회사) 의 감자씨앗이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농약성분이 있어서 벌레도 살아남을 수 없는 감자라니.... 티없고 풍성한 잎들, 그리고 크고 좋은 감자. 이 씨앗이 살충제로도 등록되어있다는 점이 충격적!
화려한 광고로 마케팅으로 아이들을 사로잡는 맥도날드의 감자가 몬산토의 그 살충제감자였다니 참으로 놀랍고도 그렇지 싶다 거대기업의 현란한 속삭임에 속고있는 현대의 불쌍한 사람들.
작가의 한마디 "결국 어떤 종(대표적으로 인간이다) 이 다른종을 완벽히 통제하려고 시도할 경우, 다가우는 건 재앙뿐" 이라고 한 말이 내내 마음속에 맴돌고 있다
남편이 가져온 포테토칲의 원산지를 보고서도 내내 찜찜한 기분.
이제, 인간의 자연의 권리와 법칙을 억지로 거스르려 하지 말고, 자연의 무질서가 주는 법칙(이것을 그렇게 생각하는 한)에도 순응하며 존중하며 살아가야할 때가 온 것이다 (아니, 이미 지났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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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굉장히 다양할 수 있다. 음악을 중심으로 세상을 설명할 수도 있고, 그림을 중심으로 세상을 설명할 수도 있다. 철학과 철학자, 사상의 흐름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볼 수도 있고, 역사적 인물을 중심으로 세상을 해석할 수도 있다. 물론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민중을 중심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무수한 시선이 존재한다. 『욕망하는 식물』은 그 중에서도 ‘식물’을 중심에 두고 세상을 보고 있다. 식물은 나름대로의 이미지를 뚜렷하게 가지고 있다. 비운동성으로 말미암은 수동성과 씨를 통한 생식으로 말미암은 다산성, 그리고 광합성을 기초로 지구상의 모든 에너지와 식량을 만들어내는 본질성 등. 그래서 식물은 인간에게 식량을 제공하는 기원임과 동시에 인간이 정복할 수 있는 만만한 대상으로 바라본다. 당연히 그 정복은 인간의 욕망 충족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본다. 어떤 식물을 인간의 욕망에 맞추어 개량했을 때, 그것은 여러 변이를 가진 것들 중에서 인간이 선택함으로써 특정한 형질을 지닌 것이 증가하게 되는 것이고, 그걸 통해 그 종(種, species)은 그런 인간의 기호에 호응함으로써 번성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시선을 바꾸어 그 식물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은 종의 번성을 위한 하나의 매개체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꽃에게 벌이란 자신의 수분을 돕는 매개체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식물에게 그런 의식 자체를 부여하고 의도적인 행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그저 문학적인 은유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도 진화적인 측면에서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관계의 역전은 『욕망하는 식물』이라는 제목 자체에 잘 드러나 있다. 그렇게 『욕망하는 식물』은 인간과 식물 사이의 관계를 조금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인간과 식물 사이의 관계를 일방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중심은 인간의 욕망이다. 인간의 욕망, 즉 달콤함을 즐기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도취되고 망각하고 싶어하며, 자연을 지배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사과와 튤림과 대마초, 감자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충족되며 좌절을 맞는가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내용은 원래의 제목에서 더 잘 알 수 있다. “The Botany of Desire”, 즉 “욕망의 식물학”. 식물 자체를 중심에 두고, 그 식물에 대해서 시시콜콜하게 과학적인 기원과 생물학적인 특징, 역사적인 사건,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식물을 두고 벌어지는 인간의 욕망과 식물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즉, ‘식물학(botany)’가 바로 이 책이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달콤함의 욕망: 사과’에서는 ‘애플시드’라 불리는 존 채프먼이 가장 중심이 되고, ‘아름다움의 욕망: 튤립’에서는 (당연하게도) 그 욕망의 정점에 달했던 17세기 네덜란드가 중심이 된다. ‘도취의 욕망: 대마초’에서는 대마초를 둘러싼 금지와 그 효용에 대한 감정적이고, 과학적인 논란이 중심이 되고, ‘지배의 욕망: 감자’에서는 유전자 공학이 중심이 된다. 그러니까 그 식물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 중요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인간의 욕망이 그 식물을 통해서 드러났으니까 그 식물을 얘기하는 것이지, 다른 식물을 통해서도 충분히 나타날 수 있었다. 사과가 달콤함의 욕망의 대명사이며, 그럴만한 과학적인 연유가 충분하지만 굳이 사과가 아니라 다른 열매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는 것이다. 튤립은 더욱 그렇다. 지금 튤립의 가치를 보면 그 광기어린 집착은 전혀 짐작할 수 없는 것이다. 그건 튤립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 튤립이 있었을 뿐이다. 대마초는 또 어떤가? 과연 그것을 금지하는 것이 옳으냐의 문제는 아직도 잠복되어 있다. 법을 어길 수는 없지만, 그 법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충분히 허용될 수 있다면 과학적인 근거를 들어 제기할 수 있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대마초가 도취의 성분을 지닌 것은 사실이지만, 역사적으로 그것이 어떤 계기로 지금과 같은 악명을 떨치게 되었는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다. 감자의 경우에도 다른 세 식물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단일 혈통의 위험성과 유전자 조작에 대한 논란이 그것이다. 이러한 논란이 감자만의 것이 아니란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감자는 1800년대 아일랜드 대기근의 주역이었고, 유전자 조작 논란의 중심에 선 작물 중 하나가 되었다. 감자는 스스로 원하지 않았음에도 구황작물이 되었고, 그리고 자본주의의 욕망에 희생되면서 단일 품종만이 채택되었고, 그래서 곰팡이의 습격에 단숨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감자의 얘기지만, 꼭 감자의 얘기만은 아니다. 욕망을 없앨 수는 없다. 욕망 없이 어떻게 인간이 인간일 수 있겠는가? 그 욕망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이뤄온 것이 아무리 덧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인간은 그 욕망의 탑 위에서 현대 문명을 향유하면서 살고 있다. 그렇다고 반성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반성하지 않는 욕망은 언제나 파멸일 뿐이다. 식물, 단 네 식물을 통해서 마이클 폴란은 인간의 욕망에 대한 교훈을 너무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2013.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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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동물들의 권리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찬동하는 입장이다. 희망의 밥상이란 책을 읽고 사육 닭과 돼지등의 일생에 대해 생각하고 몹쓸 인간의 처사에 대해 분개하였다. 그런데 어떤 책에선가 사육동물 역시 종을 퍼뜨리고 존속시키기 위한 동물의 선택이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개개 사육동물 입장에선 비참한 일생을 보내지만 그 동물의 유전자의 입장에선 안정된 종족번식의 방법일 수 있다는 얘기다. 섬짓하지만 진실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도대체 유전자란 게 뭐길래. 진화생물학이 뭐길래... 식물의 경우에는 어떨까. 이런 논리라면 식물, 사람이 작물로 키우는 식물은 가장 성공적이고 안정된 방법의 종족유지에 성공한 케이스일까. 이런 사고가 지배하는 것이 이 책이다. 수동적이고 동물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인식되는 식물이 알고보니 가장 무서운 능력의 소유자였다. 인간은 약하디 약한 식물을 마음껏 이용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식물은 그런 인간을 은근히 비웃으며 전체를 조종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물 중에 가장 영리한 인간을 이용해 인간의 종이 된 것처럼 보이게 하면서 안심하고 유전자의 전달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네가지 작물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있는 이 책은 독특한 접근 방법 못지 않게 독자들을 식물과 그 이야기들에 대해 욕망하는 사람들로 잘도 만들어준다. 미국에 사과주가 번성했던 이유, 사과의 고향, 튜울립의 신기한 역사등 잘 만들어진 드라마를 보는 듯한 글을 읽으며 내 주변의 식물들이 말을 걸어올 것같은 환상에 빠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내가 우리집 정원에 있는 화초들을 구해다 기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집 정원에 있는 식물들이 나를 선택했다는 사실, 어째 섬뜩하지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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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는 식물/ 마이클 폴란/ 이경식/황소자리/2007 이렇게 흥미있는 내용일 줄은 몰랐습니다. 제목이 살짝! 거시기한 지라 이게 뭔 내용이야? 하는 생각으로 보다 아, 읽어봐야 겠다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예전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라는 책이 유행했던 적이 있죠. 개미의 시선에서 인간을 보게 만든 그야말로 발상의 변화를 일으켰던 책이었습니다. 그 외에는 지금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지만요. ^^;;
첫번째는 달콤함의 욕망 사과에 대해서 입니다. 존 채프먼이라는 아메리카 대륙에 사과나무를 퍼뜨린 어느 유랑자의 이야기가 메인 테마입니다. 사과가 이렇게 과일의 제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분 덕택이라고 하는 군요. 사과는 사과 씨가 아니라 접붙이기를 통해서 동일한 품종을 보존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의 사과에는 5개의 사과씨가 있는 만큼 그 하나의 사과씨에서 올라오는 사과나무는 이 전의 사과와는 완전히 다른 사과가 된다고 합니다. 식물의 세계는 동물과는 아주 달라서 DNA가 2배수나 3배수가 되어도 또다른 식물이 되어서 자라나고, 수없이 많은 변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는 책에서 읽은 적이 있지만, 이렇게 흔히 먹는 사과에 이런 재미있는 비밀이 있다는 것도 무척 흥미진진했습니다. 과거의 사과는 아주 시거나 써서 대부분 사과주로 담거 먹었다고 합니다. 어쩌다 우연히 달고 맛있고 예쁘기 까지 한 사과가 야생에서 발견되었고, 어디에서나 최초라고 하면 빠지지 않는 중국인들이 접붙이기 방식을 도입해서 이 맛있는 사과를 지속적으로 맛볼 수 있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존 채프먼 별명은 애플시드(말그대로 사과씨) 였던 이 사람은 접붙이기가 아니라 다양한 사과씨를 퍼뜨렸습니다. 다양한 종이 무성하게 자라면서 사과나무는 종의 확일성으로 인한 멸종의 길이 아닌 다양한 번성의 길을 가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사과, 맛있고 달콤한 사과는 사실 우리가 재배하지만, 실은 사과가 우리의 수고로움을 받아 이토록 많이 번성하게 된 것이랍니다. 그래서 사람은 사실상 인간 꿀벌이라는 재미있는 통찰을 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아름다움의 욕망 튤립에 대해서입니다. 네덜란드 튤립 파동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굳이 언급을 안하겠지만, 어쩌다가 이 튤립이 그토록 유행하게 되었냐에 대한 사회 문화적 언급이 함께 있는 책은 처음이었습니다. 튤립은 그야 말로 아름다움 만은 위한 꽃이라는 것이지요. 단순하고 명료하고 우아한 아름다움. 네덜란드라는 칙칙한 칼뱅교의 나라, 화려하게 치장할 줄 몰랐던 그 나라는 걸핏하면 물웅덩이가 지는 땅이었던 지라 화려한 정원을 두는 것을 부의 척도로 두었다고 합니다. 무역을 통해 돈이 부가 쌓여서 였을 까요. 튤립을 통해 사치와 향락으로 가게 됩니다. 물론 지금도 아름다움은 돈이 됩니다. 굶어죽기 직전의 상태가 아니라면 말이지요. 알뿌리에 따라서 튤립의 꽃무늬나 색상이 달라지고, 같은 것이라고 심었는데도 변종이 제법 잘 생기는 이 튤립은 당시에는 참으로 매력적인 꽃으로 보였을 것 같습니다. 분명 노란 튤립이 날 것이라고 믿었는데, 중간에 불쑥 빨강이! 그리고 기기묘묘하게 문양을 그리면서 불꽃 무늬가 생기는 튤립들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아마 장미에게도, 동양의 모란이나 난초에게도 이런 역사가 있을 것이지만 튤립 파동만큼 드라마틱한 역사는 없는 관계로 튤립을 이야기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튤립은 이러한 아름다움을 통해 자신을 널리널리 퍼뜨렸고, 이제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꽃이 된 셉이지요.
세번째는 도취의 욕망 대마초 입니다. 저자는 본인이 대마 나무를 키워본 독특한 경험이 있더군요. 옷을 만들기 위해 삼으로 출발했지만, 도취의 목적으로 새로이 길들여진 대마로 둔갑하면서 같은 나무가 완전히 다른 두 가지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외견상으로도 완전히 다른 나무가 되어 버렸지요. 많은 나라에서 추방되었지만, 이 글의 저자가 쓴 글이나 외국 드라마에서 보면 비밀리에 밀실에서 자라도록 적응된 대마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면서도 씁쓸합니다. 실내에서도 몰래 재배할 수 있게 자란 대마는 잘 살고 있는 걸까요, 아님 불쌍한 걸까요. 이 대마를 통해 망각을 하고자하는 인간의 욕망. 그렇습니다. 사실 기억력만큼 망각력도 중요하지요. 안 그러면 인간은 행복하게 살 수 없었을 테니까요.
네번째 지배의 욕망 감자편에서는 아주 진지해 졌습니다. 앞의 세가지와 달리 여기에 와서는 그야말로 인간이 유전자를 인플란트 해서, 즉 저자의 표현대로 하면 감자를 만들기 위한 소프트 웨어를 감자씨에 이식해서 감자를 인간이 만들어 내는 상황에 까지 간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배의 욕망이란 먹거리를 지배하기 위한 인간의 욕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앞에서와는 달리 인간과 식물이 공진화하는 과정은 사라지고, 이제 인간이 신과 같은 입장에서 병충해를 이기는 감자를 개발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지요. 사실 약간 소름이 끼치기도 했습니다. 유전자 변형 처리된 독특한 감자는 감자를 좋아하는 벌레가 먹으면 그 벌레가 죽도록 개발되었습니다. 그럼, 사람에게는 괜찮은 걸까요. 자연 의심이 안 들 수 없습니다. 물론, 감자가 벌레 먹지 않고,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퍼부어대는 그 숱한 살충제와 농약들의 위험에 대해서도 할 말은 많습니다. 그러나 책 속에 나오는 어느 유기 농업자의 말처럼 그래도 결국은 내성이 생기고 벌레는 결국 이겨 낼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인간의 필요를 위해서 이런 식으로 종이 다양화를 잃고 획일화되면 한번에 멸절하고 만다는 위험한 경고도 들리는 것 같습니다. 바나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예전 바나나는 지금과 달랐다고 하니다. 그 바나나가 전 지구적으로 병을 앓아 멸종 되고, 이 바나나는 그 이후에 겨우 남은 애들을 변형 시켜 현재까지 우리가 먹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 바나나도 어제 위험해 질 지 모르겠습니다. 현재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거의 같은 종류라고 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다 같으면 안 된다. 같은 체질일 수도 없고, 완전히 같은 형질일 수도 없다. 그게 오히려 인류의 비극이다. 모든 인간에게 다 듣는 약은 당연히 없다. 뭐 이런 생각 말입니다. 한의학의 체질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를 수 밖에 없고, 그것이 당연하고,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라는 것두요.
즐거운 책읽기 였습니다. 저자가 쓴 식물이 아니라 동물에 관한 책도 있다 하니 읽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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