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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자의 슬픈 비망록! 김경욱 '천년의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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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시인 마리 로랑생은 자신의 시 '잊혀진 여인'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을 잊혀진 여인이라 규정했다. 잊혀지는 아픔이 얼마나 큰지 그녀는 죽음보다 더하다고 표현했다. 존재의 사멸 만큼 세상에서 아픈 것이 있을까 싶은데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천년의 왕국'은 네덜란드인으로 태어나 한국인으로 생을 마감한 한 이방인의 처연한 삶을 그린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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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시인 마리 로랑생은 자신의 시 '잊혀진 여인'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을 잊혀진 여인이라 규정했다. 잊혀지는 아픔이 얼마나 큰지 그녀는 죽음보다 더하다고 표현했다. 존재의 사멸 만큼 세상에서 아픈 것이 있을까 싶은데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천년의 왕국'은 네덜란드인으로 태어나 한국인으로 생을 마감한 한 이방인의 처연한 삶을 그린 소설이다. 역사에 단 몇 줄로만 기억되었던 남자, 박연. 네덜란드 이름으로는 벨테브레. 선장이란 직함을 얻자마자 그의 배는 난파되었고, 36명의 선원들 가운데 요리사 에보켄과 어린 선원 데니슨만 살아남았다. 17세기 초엽, 설명할 길 없는 운명의 힘에 이끌려 그는 지금 제주도에 고립무원의 처지로 있다. 차라리 무인도였다면 오히려 희망을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휘몰아치는 운명의 소용돌이 앞에 그는 속수무책이다. 고국을 떠나올 때 그의 아내의 배는 불러있었다.  

 

희안하게 생긴 자들이 제주도에 있다는 소식이 왕에게 전달되었다. 왕은 그들을 보기 원했고 목에 쇠사슬을 매단채 그들은 짐승처럼 끌려간다. 왕은 그들을 애처롭게 보지만 고국으로의 귀환은 불가함을 전한다. 이제 살아서는 길이 없다. 고국으로 돌아가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데니슨은 마음의 병을 얻어 입을 열지 않고, 에보켄은 모든 스트레스를 입으로 풀거나 오입질로 풀려고 작정한 듯하다. 

 

이 곳 조선의 왕은 타타르를 향해 과도하리 만큼 촉각을 세우고 있다. 자신의 아버지가 타타르에게 당한 굴욕을 잊을 수도 없거니와 자신 또한 타타르에 볼모로 잡혀있었기에 왕의 증오심은 대단하다. 왕의 마음속엔 자나깨나 타타르를 징벌하려는 생각 뿐이다. 그런 왕의 호의 속에 도성에 거하고 있지만 이 곳은 자신들이 있을 곳이 아니었다. 자신들은 이 곳 사람이 아니니까.

 

타타르에서 사신이 올 때 마다 그들은 숨어 있어야 했다. 드러나봐야 긁어 부스럼밖에 되지 않았다. 하루는 데니슨이 보이지 않는다. 데니슨은 귀환하는 타타르의 사신에게 뛰어들어가 자신의 처지를 고하고 이 일로 조정은 발칵 뒤집힌다. 모두의 목숨이 위험해졌다. 왕은 이들을 감싸고 싶지만 마땅한 명분이 없다. 결국 데니슨에게 죽을 때까지 검투를 하라는 형벌이 내려지고 데니슨의 싸움을 보던 벨테브레는 그만 기절하고 만다. 비록 목숨은 건졌지만 데니슨은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음을 맞이한다. 이제 벨테브레와 에보켄만 남았다.

 

작가 김경욱은 여기서 세 부류의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현실을 부정하다 못해 결국 생까지 부정하고만 데니슨적 양상과 무한 긍정의 힘으로 이방에서의 삶을 씩씩하게 살아내는 에보켄적 양상, 그리고 귀향을 원하지만 이 곳에 있을 수밖에 없음을 아프게 받아들이는 화자인 나의 방식이다. 그들은 비록 셋에 불과했지만 각기 다른 삶의 유형을 대변하고 있다. 김경욱은 어떤 것이 바람직하다며 그 어떤 것을 주창하고 있지 않다. 단지 그는 잊혀진 자의 고통을 소개할 뿐이다.  

 

조선 사람이 아무리 잘해준다 한들 이 곳은 타국이었고, 그들은 이교도였다. 그들의 정감있는 언행이 자신들의 마음을 움직인다해도 잠간이었다. 누구도 그들의 빈 마음을 채울 수는 없었다. 세월이 흘렀다. 에보켄은 원래부터 이곳 사람이었던듯 사람들도 잘 사귀고 말도 잘한다. 그의 넉살과 적응력은 탁월하기만하다. 게다가 '자줏빛 구름'이라 불리는 영매와 살림까지 차린다. 홀로 남은 벨테브레는 대포 만드는 일에 전념한다. 그는 이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타타르가 전쟁을 일으켰다. 무서운 속도로 도성을 진입한 그들은 국왕이 피신한 강화도를 포위한다. 이 전쟁에 그들이 주요 임무를 맡았다. 그들의 싸움이었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을. 누구를 위해 싸워야 하며 누구를 위해 죽어야 하는지 그들은 답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 이 국왕의 싸움에서 에보켄이 죽는다. 바다로 나오기 전 그는 대륙을 휩쓸고 다녔던 유명한 마녀 사냥꾼이었다.

 

그의 마녀 사냥에 수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사람들은 자신의 어머니와 쌍동이 여동생도 마녀 사냥에 희생됐다고 알려준다. 그는 고아였다. 그런데 후일 쌍동이 여동생을 마녀로 규정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 얘기를 들은 즉시 그는 바다로 나온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기 위해서 배를 탔다. 타인을 위해 죽음을 맞이하게 됨으로써 이제 그의 고된 삶이 비로소 멈추게 된다. 멀고 먼 이방 땅에서 맞는 죽음은 그에게는 안식이었다.

 

지금 나는 소설의 처음으로 돌아가 벨테브레가 박연이 되어 제주도에서 네덜란드인 하멜을 만나는 장면을 읽고 있다. 이제 그는 파란 눈의 조선인이 되었고 왕의 사자로 그 곳에 있다. 26년의 시차를 두고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하멜을 대하고 있다. 둘 다 입이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다. 벨테브레, 그토록 원했지만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뱃 속에 있던 아이도, 햇살처럼 눈부셨던 아내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하멜은 달랐다. 마침내 탈출에 성공했고 고국으로 돌아가 이 곳에서의 일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벨테브레는 이곳에서도, 그곳에서도 단 몇 줄의 글로만 남았다. 잊혀진 자의 아픔을 그처럼 생생하게 삶으로 살아낸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아픔이 꼭 그만의 아픔만은 아니었다. 몸을 가진 모든 자의 아픔을 더 극적으로 보여주었을 뿐이었다. 그 뿐 아니라 우리도 결국 잊혀지고 말 것이다. 심지어는 자신에게 조차도 말이다. 잊혀짐이라는 인간의 숙명을 김경욱은 박연을 통해 보여주었고, 우리는 그를 통해 나를 보았다. 우리는 모두 잊혀진다. 그래서 세상은 슬픈 자들만 남아있다.

 

 

 사진 출처: 나는 시시한 사람이다 http://www.cyworld.com/heebee747

 

 

 

d*********2 2012.04.10. 신고 공감 7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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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의 역사에서 뻗어나온 매력적인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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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만큼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이야기가 있을까. 이거 진짜 겪은 얘긴데...라고 하면 더욱 귀를 쫑긋 세우게 되는 건 인지상정. 그런 점에서 역사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흥미롭다. 현재의 공간에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 아닌가. 그것도 진짜 있었던 일로 말이다. 얼마 전 서점에서 내 시선을 끈 문구가 있었다. '역사가 돌보지 않았던 이름, 벨테브레 혹은 박연'  '38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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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만큼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이야기가 있을까.

이거 진짜 겪은 얘긴데...라고 하면 더욱 귀를 쫑긋 세우게 되는 건 인지상정.

그런 점에서 역사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흥미롭다. 현재의 공간에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 아닌가. 그것도 진짜 있었던 일로 말이다.

얼마 전 서점에서 내 시선을 끈 문구가 있었다.

'역사가 돌보지 않았던 이름, 벨테브레 혹은 박연' 

'380년 전, 낯선 땅 조선에서 이방인으로 살다 간 네덜란드인들의 이야기'

흔히 우리나라 역사와 관련된 소설이라고 하면 교과서에서 보았던 잘 알려진 인물들의 이면을 살펴보는 것 정도라고 여겼는데, '역사가 돌보지 않았던' '이방인'들의 이야기라는 것이 나의 호기심을 단번에 자극했다. 히딩크 때문이라고는 하지 않을란다. 김경욱이라는 작가가 주는 믿음에 팩션이라는 요즘 소설의 트렌드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내 주머니를 열게 했을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선택은 성공적이었다.

실재했으나 자세히 기록되지 않았던 역사 속의 인물을 만난다는 것은 책장을 한장씩 넘길 때마다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벨테브레의 1인칭 서술이 소설의 재미와 긴장감을 더해주었다.

소설의 매력은 거짓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상상력에 빠지게 되는 것. 그런데 실존 인물에 대한 상상이니, 그 재미는 다른 소설을 대할 때와 사뭇 다르다.  

한 줄의 기록에서 여러 명의 인물울 탄생시키고 그들의 치열한 삶을 그려낸 작가의 상상력에 박수를!

f*******s 2007.07.10.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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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왕국을 건설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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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역사소설을 읽을 때에는 독서의 흥미가 배가된다. 바로 이 땅, 같은 공간을 차지했던 과거 선조들의 시계에 작가의 상상력을 불어넣은 한국역사소설은 우리것에서 오는 정서적 공감대와 역사의식을 잘 비춰주기 때문이다. 김훈의 『남한산성』이 그랬고, 신경숙의 『리진』이 그랬으며, 황석영의 『바리데기』가 그랬다. 한국을, 한국 소설가에 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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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역사소설을 읽을 때에는 독서의 흥미가 배가된다. 바로 이 땅, 같은 공간을 차지했던 과거 선조들의 시계에 작가의 상상력을 불어넣은 한국역사소설은 우리것에서 오는 정서적 공감대와 역사의식을 잘 비춰주기 때문이다. 김훈의 『남한산성』이 그랬고, 신경숙의 『리진』이 그랬으며, 황석영의 『바리데기』가 그랬다. 한국을, 한국 소설가에 의한, 한국 독자들을 위한 한국의 역사소설은 언제나 굵직한 깊이로 내게 읽혀졌다.

 

  김경욱이라는 작가를 처음으로 만났다. 그의 신작 장편소설 『천년의 왕국』을 읽었다. 책을 읽기 전 '천년의 왕국'이라는 제목에서 신라를 떠올렸으나 정작 소설의 배경은 380년 전의 조선이다. 일본으로 가는 길에 배가 표착되어 낯선 땅 조선에서 이방인으로 살다간 네덜란드인들의 이야기이다. 1653년 하멜 일행이 제주도에 표착되었던 역사적 사실인 하멜표류기에서 소설의 소재를 삼았다. 하멜에 앞서 1627년에 표착한 네덜란드인들의 기록에 역사는 인색했고 작가는 이방인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가난한 상상을 불어넣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김훈의 『남한산성』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문장이 짧고 강렬하게 몰아치는 김훈의 문체와 비슷했고, 시대적 배경 또한 인조반정 이후 타타르(청나라)와의 긴장관계가 펼쳐지고 이후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으로 이어지는 오욕의 역사를 관통하고 있다. 김훈의 『남한산성』이 전지적 작가의 시점으로 45일간의 남한산성에서의 수성을 그리고 있다면 김경욱의 『천년의 왕국』은 벨테브레라는 한 네덜란드인의 1인칭 주인공의 시점으로 정묘호란에서 병자호란을 거쳐 국왕이 교체(효종 즉위)되고 하멜 일행이 도착하기까지의 26년간의 역사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조선의 일상에 녹아드는 세 명의 중심인물에 내면적 상상력을 깊이 불어넣었다. 역사의 인색함에 의해 이방인의 내면을 발굴하지 못했기에 복원이 아닌 철저한 창조로 세 인물의 영혼을 완성했다. 독실한 기독교도인 벨테브레의 내면에는 언제나 주님(기독교에서의 예수님)으로 가득차 있다. 조선을 관찰하는 시점에서도, 하루하루의 일상에서도, 자신의 양심과 지향하는 가치에서도 기독교적인 그의 사고는 중요한 기둥으로 서있다. 에보켄은 보다 여유가 넘치는 인물이다. 말하기 좋아하고 세상을 좋아하며 여자도 좋아하는 긍정 지향적인 인물이다. 또한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도 뛰어나 처음 생활하는 이교도의 나라에서 문화와 언어, 사상과 법도를 넘어선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준다. 유머와 조소와 삶의 깊이가 뒤섞인 그의 말과 행동은 벨테브레와 더불어 이 소설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젊은 청년 데니슨은 가장 심각한 인물이다. 어린 나이답지 않게 사랑과 삶과 죽음 대한 깊은 고독으로 일관한다. 그 고독과 번민의 최절정에서 사신으로 온 타타르 신하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용기를 보이지만 실패로 불발하여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3명의 인물이 각기의 기질과 가치관과 시선을 갖고 고요한 아침의 나라이자 이교도의 나라인 조선을 각기의 방법대로 탐구하는 것이다.

 

  국왕 인조의 자상하고 자애로움이 많이 부각되는 것이 흥미롭다. 김훈의 『남한산성』에서의 인조는 고독과 번민에 빠진 무능력한 왕으로 묘사되었다면, 『천년의 왕국』에서는 자애롭고 관용 있는, 그리고 열정적인 인간미의 소유자로 그려졌다. 신식 대포의 개발에 대한 열정, 두 번의 탈출을 시도한 벨테브레에 대한 관용, 권위와 격식보다 따스한 인간애의 발동 등 김경욱이 묘사한 인조는 자애로운 왕이었다. 동일한 역사 인물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통찰을 발견할 때면 언제나 즐겁고 흥미로움에 취해있는 내 자신을 동시에 발견하게 된다.

 

  제목 '천년의 왕국'의 의미를 생각했다. 소설의 시대배경 기준, 건국된 지 150년도 되지 않았고, 종국엔 500년만에 생을 마감한 조선이라는 왕국을 생각하면 어찌 천년의 왕국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타타르와의 전쟁에서 목숨을 잃는 에보켄의 마지막 유언은 "선장... 부디... 두려워..."의 완성되지 않은 세 단어였다. 에보켄이 남기려 했던 말은 완성되지 않은 채 영원한 침묵으로 봉인되었다. 하지만 그 순간 벨테브레는 깨닫는다. 그리고 에보켄의 죽음을 자신의 영혼의 전쟁의 시작으로 교체한다. 남겨진 자, 즉 벨테브레 자신의 생을 통해 완성될 것이라며 의지를 불태우는 소설의 마지막은 대체 무엇을 얘기하는 걸까? 머리속에서 정리되지 않은 채 여러가지 생각이 일렁인다. 소설 속에서 그의 영혼의 중심으로 일관되게 비춰졌던 주님의 나라를 완성한다는 건가.. 인류 최후 아마게돈의 혼란을 연상시키면서.. 그리고 천년왕국의 건설로 귀결되는 모호한 세상의 마지막을 향한 희망과 몸부림처럼.. 온 세상을 덮는 적이 물러나도 나의 전투는 쉬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볼테브레의 마지막 강렬한 의지와 목적의식의 표출은 책은 덮은 내게 아직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다윗

YES마니아 : 플래티넘 g*****o 2007.08.09.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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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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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왕국 김경욱 장편소설 / 문학과 지성사   단연, 올해 본 소설 중 최고!   이런 독단적인 나섬을 자랑하는 문구의 편애작. 이 될 줄은 나도 몰랐다만, 그런 작품.   굳이 이유를 대자면, 1)이방인의 정서. 2)역사에 대한 다른 시각의 해석. 3)의고체 문체의 흥미. 4)진행중인 시나리오와 같은 시대적 배경. 5)굿 타이밍.   위 순위는 철저히 개인적인 호감도에 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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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왕국

김경욱 장편소설 / 문학과 지성사

 

단연, 올해 본 소설 중 최고!

 

이런 독단적인 나섬을 자랑하는 문구의 편애작.

이 될 줄은 나도 몰랐다만, 그런 작품.

 

굳이 이유를 대자면,

1)이방인의 정서.

2)역사에 대한 다른 시각의 해석.

3)의고체 문체의 흥미.

4)진행중인 시나리오와 같은 시대적 배경.

5)굿 타이밍.

 

위 순위는 철저히 개인적인 호감도에 좌지우지됨.

 

김경욱 작가는 <장국영이 죽었다고>로 처음 접하고, 아아, 지대시다. 라고 즐겁게 읽었던 작가였다. 그럼, 작가를 읽지 작품을 읽나? 나는 작가를 읽는다. 작품은 내가 읽은 것이다.

 

<장국영이 죽었다고>의 말미의 단편 '나가사키의 안녕'은 <천년의 왕국>의 예고편 같은 거다. 말하자면, 작가는 영화 <아비정전>의 마지막에서 양조위가 커스텀 쇼를 하는 것과 같은 예고편을 쓴 것이다. 아비의 이야기는 계속되지 않았지만, 낯선 이교도의 왕국 생활은 계속된다. 작가는 이것에 집착한다. 아니 집중한다.

 

'벨테브레' 혹은 '박연'이란 두가지 이름으로 살았던 17세기의 조선 사내는 '히딩크' 혹은 '허동구'와는 다른 네덜란드인이다. 아이러니컬한 표현은 히딩크가 대박난 해에 언급된 하멜 때문이다. 소설의 시작은 하멜이 제주(바람의 섬)에 표류했을 때 조정에서 내려온 사람이 바로 박연 혹은 벨테브레였기 때문이다. 소설은 거기에서 시작한다. 이방인을 확인차 내려온 이방인의 형상을 한 현지인(이교도)

 

소설 내내 주인공은 조선인들을 이교도라고 칭한다. 하지만 너무 서운해하지는 마라. 중국은 빛의 제국. 여진족은 타타르라고 불리지만 조선은 천년의 왕국이니.   

 

수줍음과 적나라함. 겸손과 오만, 침묵과 소란. 이 모든 것이 변화무쌍한 조선의 군상들에게 박연은 시종일관 당황한다. 그의 주위에 두 사내엔 에보켄과 데니슨 역시 그러하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길에 명확히 놓여진다. 주인공 박연만이 결말이 끝나도 기별없이 살아 서두의 하멜 일행 앞에 당도한다. 그는 여전히 대포를 만들고 있었다.

 

문장은 바느질처럼 튼실하고, 명징한 함의는 조선의 선비를 닮았다. 탄탄한 고증은 이것대로였다면 무너지지 않았을 성벽을 느끼게 하고, 묘사는 그 성벽을 넘어 날아가는 자유로운 영혼과 닿아있다. 의고체 대사들은 시대의 묵비권을 박탈한다.

 

가장 짧고 절절한 부분은 역시 로맨스다. 

좀 째째한 로맨스이지만 작가는 여기서 '이름'을 거론한다. 기생과 이방인 모두 두가지 이름이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 이름을 공유하는 순간.

 

just, must, desert.

 

 

 

결말이 아쉽다. 김이 빠질까 - 스포일러 정도는 아니니까 - 말하지 못하지만, 좀 더 이후 연의 하릴없는 혼자만의 생, 그리고 프롤로그와 대치되는 에필로그로의 전환. 그런 건 어떨까 생각하지만, 작가는 용병의 전투에서 그 끝을 지정한다. 마치 갑작스럽게 끝난 천년의 왕국처럼.

 

가히 2007년 한국 소설의 쾌거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 시도 산문도 아닌 시절의 왕국에서.

 

 

 

십 년이 꿈이라면 백 년은 꿈이 꾸는 꿈인가.

십 년을 꿈꾼 자는 백 년 후를 기약하고

백 년을 꿈꾼 자는 천 년 후를 기약하네.

물이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곳이라면

바다는 모험의 노래를 부르는 곳.

십 년으 ㅣ모험이 끝나는 곳에서 고향이 우리를 반겨주네.

천 년의 사랑이 우리를 기다리네.

 

 

검이 무디면 목숨을 잃고 총이 신통치 않으면 전투를 잃고 포가 제구실을 못하면 전쟁을 잃는다.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은 돌이킬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나를 절망에서 구원한다.

 

 

"선장, 일전에 말했듯이 이 왕국의 이교도들은 모두 시인입니다. 듣자하니 관리를 뽑는 시험에서도 시를 짓게 한답니다. 시인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시인들이 군대를 지휘하고, 시인들이 병을 치료하고, 시인들이 장래를 점치는...... 이곳은 가히 시인의 왕국입니다. 멋지지 않소?"

 

 

타인은 내 고독의 희극을 완성하는 관객이다.

 

 

이 사내는 읽을수록 의미가 모호해지는 책이다. 새로운 책장은 지나간 책장을 배반하고 지나간 책장은 다가올 책장을 기만한다.

 

 

"나방이 불속에 몸 던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자줏빛 구름'이 물었다.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나방이 불속에 몸 던지는 것은 불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어둠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자줏빛 구름'이 스스로 답했다.

"나비가 꽃의 품에 달려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꽃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인가?"

"꽃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

 

"나는 나비인가 나방인가?"

'자줏빛 구름이 나를 노려보았다. 영혼이 얼어붙는 듯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나를 응시하는 시선의 끈을 돌연 늦추도니 '자줏빛 구름'이 미소를 지었다.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두려워 말고 사랑하라. 그걸로 족하다."

 

 

a*****2 2007.08.0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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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 새로운 나로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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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상실증에 걸린 것도 아니고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더 이상 ‘나’ 아닌 나로 살아야 한다. 벨테브레라는 네델란드인이 낯선 조선 땅에서 박연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엄연한 내 이름을 두고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환경에서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라니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김경욱은 천년의 왕국을 통해 벨테브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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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도 아니고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더 이상 ‘나’ 아닌 나로 살아야 한다. 벨테브레라는 네델란드인이 낯선 조선 땅에서 박연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엄연한 내 이름을 두고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환경에서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라니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김경욱은 천년의 왕국을 통해 벨테브레라는 사내가 박연이 되어가는 과정을 속속들이 그려내고 있다.

  소설은, 이 남자의 두 개의 이름 대신 오로지 ‘나’의 목소리, ‘나’의 내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가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데 이 점이 무엇보다 흥미로웠다. 지도에서도 찾기 힘든 조그마한 동양에 본의 아니게 살게 되면서 조선 사람들과 병자호란까지 출전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서 그가 서서히 진짜 조선인이 되어 가는 모습에 마음이 찡해지기도 하고.

  ‘나’가 보여주는 조선의 모습 또한 색다르다. 그도 그런 것이 그는 처음부터 조선 사람이 아니었고 조선 사람이 되어가면서도 때때로 타인이어야 했을 테니 좀더 객관적으로 보고 느끼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낯선 땅에서의 고독한 삶에서 조금씩 자신이 있는 곳에 융화되고 동화되는 것을 상상해본다. 부끄럽지만 조선 시대에도 있었던 일인 줄 알면서도 내가 저 멀리 아프리카 어디쯤 떨어진다면 아마 지레 겁을 먹었을 게 분명하다.

c*******e 2007.07.2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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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이 풍부한 역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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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왕국 두개의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한 사내의 영혼을 건 전투가 시작된다. -380년 전, 낯선 땅 조선에서 이방인으로 살다 간 네덜란드인들의 이야기   평소에도 역사소설에 관심이 참 많았다. 그래서 읽게 된 것이 바로 김경욱 작가가 쓴 천년의 왕국이었다.어렸을 적에 국사시간에 조선에서 "박연"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파란눈의 외국인이었고 사람들은 그에게 번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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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왕국

두개의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한 사내의 영혼을 건 전투가 시작된다.
-380년 전, 낯선 땅 조선에서 이방인으로 살다 간 네덜란드인들의 이야기

 

평소에도 역사소설에 관심이 참 많았다. 그래서 읽게 된 것이 바로 김경욱 작가가 쓴 천년의 왕국이었다.
어렸을 적에 국사시간에 조선에서 "박연"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파란눈의 외국인이었고 사람들은 그에게 번듯한
이름이 있었지만 친근하게 박연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라는 말 한마디만 들었을 뿐 그 다음 그의 삶과 생 그리고
조선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그가 해왔던 것들은 좀체 들을 수가 없었다.
이 책은 이를 바탕으로 작가의 시점에서 써내려간 픽션이라고 할 수 있다. 읽으면서 아, 이럴 수도 있겠구나. 작가와 같은
상상의 날개를 펴기도 했다.
그전에 김경욱 작가의 "황금 사과"를 읽고 관심이 생겼는데 "천년의 왕국"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작가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y*******5 2007.08.0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역사, 개별의 고통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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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앞은 괜찮은데 뒤가 좀 약해!' '고마워요.' 그렇게 S선배가 '천년의 왕국'을 건네줬다.   선입견을 안고(!), 책의 처음을 열고 끝을 닫을 때 생겨나는 느낌. 그것은 '어...그래...무언가 닮았다?!' (수미쌍관 구조는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을 닮았다. 철학적 레토릭 가득한 짧은 문장과 소재는 김훈의 그것을 닮았고, 적의 공격과 임박한 죽음의 그림자, 곧이은 인물의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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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앞은 괜찮은데 뒤가 좀 약해!'

'고마워요.'

그렇게 S선배가 '천년의 왕국'을 건네줬다.

 

선입견을 안고(!), 책의 처음을 열고 끝을 닫을 때 생겨나는 느낌.

그것은 '어...그래...무언가 닮았다?!'

(수미쌍관 구조는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을 닮았다.

철학적 레토릭 가득한 짧은 문장과 소재는 김훈의 그것을 닮았고,

적의 공격과 임박한 죽음의 그림자, 곧이은 인물의 최후가 소설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알렉산드로 뒤마의 '철가면'을 닮았다.

단, 그것은 내가 읽었던 한계 내에서일 뿐이다.)

 

2.

삶이 유발시킨 두려움에서 한 발자국도 나서지 못했던-운명의 주인

이 되지 못한 채 살아가야 했던 지식인 벨테브레 혹은 박연.

'마녀의 자식'으로 태어나 마녀사냥에 앞장서야 했던 모순의 업보를

감추고, 죽음과 삶의 경계를 초탈한 듯한 리얼리스트 에보켄.

갇힌 노예의 삶 속에서 참을 수 없는 생의 강한 충동과 열망을 안고,

죽음을 통해 운명의 개척자가 되었던 영원한 열여덟 데니슨.

 

세 인물들이 낯선 이교도의 땅 '코레아 왕국'에서 새로운 운명과 만

난다는 설정에서 펼쳐진 이야기는 희미한 역사적 사실 하나만을 바

탕으로 오로지 작가의 상상력에 의존한다.

거기에 시간의 연대기적 흐름을 가미해 만일 두 권짜리 책이 되었더

라면 '대하소설'이 되었을 것을, 그러나 앞선 역사소설들과 다르게

작가는 애초부터 그런 데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었던 듯하다.

 

3.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고금을 막론하고 역사 속을 살아가는 개

인의 운명과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영혼의 구원이 아니었을까?

따라서 소설에서는 반복되는 삶, 자유의 갈망, 무의미하고 권태로운

일상, 메마른 영혼의 갈급증,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질곡 등이 소재

로서 빈번하게 등장한다. 그것은 이교도들의 삶 속에 갇힌 이방인의

것이기도 했지만, 결국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에도 한치

의 다름이 없다.

 

반복되는 것들의 반복이 뚜렷해질수록 삶의 기미는 희미해진다.

그 벗어날 수 없는 반복의 운명, 야만의 세계인 '이교도의 땅'을 벗

어나야 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 자신인 것이다.

오늘의 우리에게는 지독한 반복을 끊어내고 살아가야 할 운명이 있

다. 그것의 기본은 운명의 관객이 아니라 주인공이 되는 데 있다.

때론 내 운명의 표정을 읽기 위해서는 이교도들이 제공한 삶과 단호히 결별할 용기도 필요하다.

 

운명의 해석을 돕는다는 이교도 땅의 영매 자운이 말한다.

"너는 네 운명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그릇은 이미 주어진 것이니 그

릇의 생김과 성질을 알면 무엇이 담길지 가늠할 수 있다. 네가 나비

인지 나방인지 안다면 궁극의 앞날 네 앞에 놓인 것이 꽃인지 불꽂

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어림짐작일 뿐이다.

모든 나방이 불꽃 속에서 생을 마감하지 않듯 모든 나비가 꽃의 향

기로움에 취하지 않으니 앞날을 볼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

가?"

이 때 나 역시 주인공 박연/델테브레와 동시에 되묻는다.

"나는 나비인가 나방인가?"

그러자 자운의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대답이 나온다.

"두려워 말고 사랑하라. 그걸로 족하다."

 

4.

'이교도의 뭍에 표착한 순간부터 두려움은 내 생존의 방편이었다.

내 두려움의 내력은 깊고 질겼다. 분노와 경멸은 두려움의 배다른

형제였다. 그것들의 어두운 가계는 사랑을 질식시켰다. 헐벗은 영혼

에게 두려움은 가깝고 사랑은 멀었다. 이방의 어둠 속에서 뒤척이며

나는 두려움을 사랑하고 사랑을 두려워했다.'

 

두려움에 대한 공포로 인해 사랑을 포기하고, 타인과 세상의 불의의

관습에 항거하지 못하며, 자아의 앙상한 기억만을 편리하고 안온하

게 지켜가려는 Ego의 성벽이 높아져 갈수록 우리는 삶을 재미없고

희미하게 만드는 그 반복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러한 성찰 역시 이방인으로서의 고립-철저히 혼자인 채로가 아니

었다면, 결코 가질 수 없는 것들이다. 단언컨대, 성찰한 고독들은 이

윽고 연대할 수 있으리라!

 

5.

한편 고독 속에서만이 신의 형상을 닮아가는 인간은 자신의 하찮음

을 깨닫는 동시에 끊임없는 생의 절박한 소일거리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때로 영혼의 소비를 요구받는 절체절명-그 자체가 되

기도 한다.

 

'나는 대포를 사랑하지 않는다.

대포 만드는 일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새 대포 만드는 일에 영혼을 바치고,

육신을 닦아세웠다. 대포라도 만들지 않으면 어김없이 밝아오는

또 다른 아침을 무엇으로 견딜 것인가?'

이 어찌 '박연/벨테브레'만의 시린 독백이겠는가?

우리네 생에 밥벌이가 주는 힘은 그런 것이다.

 

이렇듯 이 소설은 현대인의 삶을 역사적 상상력에 버무려 절묘히 일

별하려 했던 작가의 진지한 탐구의 결실에 가까워보인다.

거기에 이방인의 눈을 통해 이교도의 세상(한반도) 밖으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채 천년을 이어온 우리의 자화상을 들여다보는 의제

설정까지 곁들였다. 만일 진중권의 '호모 코레아니쿠스'의 소설 버

전이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 속에 발견하는 또 다른 재미다.

 

6.

역사를 소재로 하는 소설과 작가가 오늘의 시기에 재미 이상의 그

무엇을 주려고 한다면, 영웅서사시나 정치적 복고주의 따위로 일관

할 경우는 대부분 음험한 결과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은 곧 작품을 읽는 오늘의 우리네 삶과는 유리된 채 백 년이 지 

나고 천 년이 흘러도 건재할 불멸의 왕국을 건축하는 데에 바쳐진,

국왕과 영웅들만의 초인적 능력, 그리하여 개별적인 고통과 번뇌와

는 무관해서 한없이 자비로운 소재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는 것이 아

닐까?

 

'영원한 제국'을 통해 사라져간 왕권국가의 로망을 간절히 바랐던

작가 류철균(이인화)은  결국 후속작 '인간의 길'을 통해 왕조와 박

정희에 대한 갈망의 일치가 결코 우연히 아님을 선보였고, 이 젊은

소설가의 재능은 포스트 이문열을 지향하는 정치이데올로기화와 후

안무치한 표절 논란 등으로 끝간 데 없는 추락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작가 김경욱은 역사소설의 외형을 빌려서, 작가 자신이 밝혔

듯, 역사가 돌보지 않았던 이름들-이방인의 기구한 삶의 여정에 대

해 진득하게 천착하고 있다. 그리하여 일반적인 역사소설의 재미와,

세련된 언어와 달리 개별적인 고통을 제 것으로 끌어안고 있다.

난무하는 역사소설류와 TV대하사극의 허황되고 왜곡된 국가주의적

역사판타지의 시장파워에 견줘볼 때 비록 이 작품의 '스케일'과 영

향력은 작을지 모르나 지향하는 바는 만만찮은 무게감을 지니고 있

다고 생각된다. 부디 이 좋은 성과가 역사소설류의 새로운 조류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덧.

좋은 소설은 상상력과 그 방대한 지식의 섭생에 관해서는 늘 생활인

의 콤플렉스를 유발시킨다.

s******4 2007.08.0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압도하는 그의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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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대중매체에서 소개되었던 이 책을 읽은건 작년 말이였다. 역사소설이란 장르때문에 약간은 낯설게 시작된 이책과의 조우는 벅찬 감동으로 그 말미를 장식했다.   비록 내게 글재주가 없어 그 감동을 타인에게 전달하기는 쉽지 않지만, 380년전 조선에 우연히.. 사고로.. 강제로..(어떤 표현이 가장적당한지 모르겠다.) 조선에 정착한 네덜란드 선원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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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대중매체에서 소개되었던 이 책을 읽은건 작년 말이였다.

역사소설이란 장르때문에 약간은 낯설게 시작된 이책과의 조우는 벅찬 감동으로 그 말미를 장식했다.

 

비록 내게 글재주가 없어 그 감동을 타인에게 전달하기는 쉽지 않지만, 380년전 조선에 우연히.. 사고로.. 강제로..(어떤 표현이 가장적당한지 모르겠다.) 조선에 정착한 네덜란드 선원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시대 조선의 모습을 신비스러우면서도 적나라하게 들어내 주고 있다.

 

이 책을 읽은지 몇달이 지나서야 그 느낌을 적으려니 쉽지는 않지만, 간단히 몇자 적어내려고 한다.

 

난 이 책을 읽어나가는 내내 이상하리 만큼 주인공 '벨테브레'와 그의 동료들을 동정하면서 그들의 험난한 삶에 심취해 들어갔다.

 

'나무'라는 책에서 소개된 시간여행자가 된냥 조선에서의 삶을 낯설고 미개한 종족들의 삶으로 묘사하는 그들의 대화는 나도 그 들과 함께 그자리에 와있는듯 생생하게 와닿았다.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타타르 사신들의 눈치를 봐야하는 조선의 중신들 때문에 더욱 어려운 삶을 살아야 했던 조선에서의 그들의 삶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만큼이나 힘들고 고된삶이 였다.

 

고향으로 들어가고 싶어하는 그들을 놓아주지도 제대로 통제하지도 못하는 조선의 모습은.. 뭐랄까.. 현대에 넘쳐나는 고급인력들을 제대로 활용하지못하는 한국정부의 모습과도 흡사했다.

 

조금 더 일찍 적었다면 더 생생하게 이 책의 내용을 전달 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n***0 2008.02.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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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천년의 왕국> /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조선(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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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인조 때 귀화한 네덜란드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제주도에 표류했고, 이방인을 돌려보내지 않았던 조선의 국법에 따라 조선에 살 수밖에 없었다. 훈련도감에 근무했고 대포를 제조하기도 했으며 병자호란에 참여했다. 함께 정착한 두 명의 동료는 전쟁 중 전사했다. 세월이 흐른 뒤 하멜이 제주도에 표류했을 때 통역을 담당하기도 했던 그는 '박연'이라는 조
"김경욱, <천년의 왕국> /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조선(인조)" 내용보기

조선 인조 때 귀화한 네덜란드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제주도에 표류했고, 이방인을 돌려보내지 않았던 조선의 국법에 따라 조선에 살 수밖에 없었다. 훈련도감에 근무했고 대포를 제조하기도 했으며 병자호란에 참여했다. 함께 정착한 두 명의 동료는 전쟁 중 전사했다. 세월이 흐른 뒤 하멜이 제주도에 표류했을 때 통역을 담당하기도 했던 그는 '박연'이라는 조선이름으로도 불렸던 벨테브레이다.

 

그가 바로 <천 년의 왕국>의 화자이다. 네덜란드에서도 조선에서도 주목받을 수 없었던 '박연'. 그가 김경욱에 의해 <천 년의 왕국>에서 이방인으로 눈으로 조선을 바라보고 있다. 조선에 대한 당시의 풍경을 이방인의 눈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뱃사람으로서 바라본 세상,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슬픔과 낯선 곳에서 살아야 하는 갈등과 번민의 내면심리가 잘 그려져 있다. 작중 화자의 내면의 독백을 읽다보면 김훈의 '말'들이 가끔씩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김훈과는 또다른 문체로 김경욱은 당시의 조선을 설명한다.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조선과 풍경의 '낯설게 하기'는 조선사람의 후예로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도 다르게 생각해볼 것을 강요한다. '조선의 역사와 문화가 그랬었지'라는 단순한 끄덕임이 아니라 이방인의 눈을 통해 때론 불합리함으로 때론 우수함으로 평가하는 모습을 엿보며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소중함과 잘못된 인식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객관적 시각이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작가 김경욱이 당대를 살지도 않았고 박연의 행적 역시 허구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또다른 시선으로 조선(인조 시대)을 바라본 것은 의미있는 일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by 꽃다지, 2007년 10월 23일

l*******g 2007.10.23. 신고 공감 0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