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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때문에 우리는 공부를 하는 것일까?
저자는 공부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지식을 얻는 행위는 이해력, 상상력, 표현력 높이기 위한 훈련. 공부하는 것은 이해하는 인풋과 표현이라는 아웃풋 그 사이를 이어주는 상상력이다. 제대로 공부하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인간이 된다. 물론 인간이므로 실패할 수도 있고 아무리 학문을 쌓아도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공부는 배운 그때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배우고 익히면서 연습을 하고 과정을 겪으면서 우리는 인내를 배운다. 그리고 실패하면서 노력을 알게 된다. 노력하면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노력이 적으면 적은 열매를 많은 크고 멋진 열매를 맺게 해준다. 그러나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면 겉모습만 멋진 열매가 된다.
공부는 내적인 동기와 외적인 동기에 의해서 하게 된다. 외적인 동기에 의해서 도움을 받고 내적인 동기가 충만해지면서 자신감을 얻게 된다. 그러나 내적인 동기가 없는 상태에서 외적으로 동기를 주게 되면 헛바퀴를 돌듯 효과가 없게 나오기도 한다. 또한 공부하는 방법을 배울 때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선생님, 부모님들)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공부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면 혼자의 힘으로 이끌어나가야 한다.
'머리 나쁜 선생이 아이들 심정을 잘 안다'라는 말은 틀리소리라고 한다. 교사는 늘 학생이 머릿속으로 어떤 이미지를 그리는지 상상하고, 그 이미지가 더 구체적이고 선명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대단한 능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뛰어난 인재를 키워내는 선생님은 대단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아이들을 인도해 주는 선생님을 저자는 만났던 것이다.
저자는 일기를 매일 쓰기하는 것을 같은 반 친구와 내기를 했는데, 며칯 지나자 쓸 이야기가 없어 소설을 써 제출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 소설을 읽어주면서 소설가로서 자질이 있다고 칭찬해 주었다. 그 은사님이 정년퇴직을 하고 고행 야마마츠 문학관에서 근무를 하였다. <링>으로 유명해져서 그 문예관에서 '스즈키 코지전'을 하면서 은사 앞에서 나는 어린 시절의 설익은 소설을 칭찬해 주었던 선생님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나의 교육방침은 못하는 아이일수록 칭찬해 주는 것이었다’라고 했다. 그 말에 폭소가 일어났고, 선생님은 저자가 소설을 썼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못하는 아이일수록 칭찬을 해 주는 것이라는 것은 아이들에게 많은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일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칭찬의 말이 공부를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부모의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야 또한 공부를 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미래를 불안해도 커다란 봉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는 것이 공부의 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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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난 아들에게 공부하라고 닥달은 하지 않지만, 아무래도 엄마다 보니 바라는 것은 있다. 난 아들에게 초등학교 6년 동안 공부 못해도 좋으니 수학, 책 읽기 그리고 피아노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 세가지만 잘하면 다른 과목은 빵점 받아와도 신경 안 쓴다고, 중학교 때가서도 공부에 흥미가 없으면 할 수 없지만 지금은 이 세가지만 신경쓰고 실컷 놀라고 주문한다. 물론 빵점 받아오면 열딱지 나겠지만 초등학교 때 공부 잘한다고 중고등학교 때 공부잘할 것이라는 믿음을 난 가지고 있지 않다. 머리가 어느 정도 커지고 자신이 6년 동안 읽은 책에서 또는 다른 매체에서 얻은 지식을 통합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그리고 어느 분야에 흥미가 있는지 확실할 때, 공부해도 늦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고 폭 좁은 학교공부대신에 좀 더 넓은 의미로서의 공부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밀리언 셀러 작가 스즈키 코지는 다치바니 다카시의 IO이론(INPUT & OUTPUT)을 끌어들여, 공부란 지식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이해력, 상상력, 표현력을 기르는 훈련(20p)이라고 말한다. 공부라는 것은 이해라는 인풋과 표현이라는 아웃풋, 그사이를 이어주는 상상력, 이 세가지 힘을 기르는 훈련이다. 즉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정보를 취합해서(이해력) 자신만의 발상으로(상상력)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것(표현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글이라든가 영상이라든가등등)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이해력, 상상력, 표현력이 필요할까? 그는 공부를 통해 익힌 지식은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지식이 쌓여 새로운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힘(19p)을 기르며 그 힘으로 우리가 사는 사회 공동체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인류에 공헌하기 위하여 공부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가 여기에서 제시하는 것은 점수벌레를 양산하는 입시 위주의 교육이나 공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입시위주의 공부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목표를 잃어버리고 시련이나 위험이 닥쳐올 경우 대처능력이 형편없이 떨어진다고 한다.
예를 들어, GMO식품의 한 예를 들자면 GMO식품에 대한 막연한 지식이나 무조건적으로 매스컴에 휘둘려 먹지 말아야지하는 것보다는 보다 GM기술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정확히 이해하고 농업의 실태나 세계의 식량문제, 인류의 미래, 생명문제 등을 생각하여 이 기술을 사용해야 할지 말아야할지(76p)를 토론해야 미래의 식량난 혹은 세계의 절반이나 굶주리고 있는 인류에게 보탬이 되는 것이지 막연한 정보처리 능력으로는 나를 위해서도 그리고 인류를 위해서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공부는 푼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고 거시적인 안목으로 보면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스즈키 코지의 말도 일리가 있다. GM식물에 대해 불확실한 지식으로 딴지 거느니, 어차피 GM식물이 탄생하게 된 배경 즉 인류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좀 더 연구하여 인류에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지, GM식물을 외면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잖는가.
여러모로 짧지만 유용한 책이다. 우리 아이들이 이 정도의 이해력, 상상력, 표현력을 갖기 위해서는 점수 위주의 학교공부에서 탈피해서 좀 더 많은 책과 정보들을 체계적으로 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현근인가 뭔가 하는 아이의 상업주의로 찌든 공부법이 아니고 공부를 왜 해야하는가에 짧은 에세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듯 싶다. 이 책 읽으면서 장정일의 <공부>가 떠올랐다. 중졸의 학력이 전부인 그이지만 세상의 온갖 지식을 다 섭취하고 싶어 안달하는 그에게서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새삼스레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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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한부분 한부분 읽으면서 귀를 씻고 읽어야 할 거 같다.
공부라는 것에 진절머리가 난 내가 이 책을 구입한 이유도
이 공부라는 것을 깨고싶은 자아속의 근심이 아니었을까?
책을 읽으면서 .. 내가 왜 공부하는지...
그야말로 나의 자아정체성을 일깨워주는 책이었다.
읽으면서.. 내가 이때까지 학생시절에 공부해왔던 게 ... 그러기위해서 였구나!
라는 걸 깨달으면서 무릎을 탁 칠정도였다.
그것은 바로 이해력, 상상력, 표현력을 기르기 위한 것!
이제 수능을 다시 준비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나지만..
이제야 내가 왜 공부를 해야하는 것이고
앞으로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사소해보이는 내 개인 공부가 사회에 세계에 미친
다면 난 공부에 대해 더 열정을 가질 수 있다고 확신 할 수 있다.
공부는 이제 나에게 어렵고 지루하고 짜증나고 힘든 존재가 아니게 되버렸다
이제는 공부는 나에게 있어서 나를 만들어주는 나의 자아를 밝혀주는 고마운 존재
가 되어버린거 같다.
좋은 책을 고를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하다.
그리고 이 좋은 책을 살 수 있고 소장하게 되어서 뿌듯하다.
부디 많은 이들이...아니...공부에 대해 막연하기만 한분들이 이 책을 읽고나서 저
머나먼 심연의 바다를 뚫은 기분으로 즐겁게 공부하셨으면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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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공부했는가? 그리고 지금 나는 왜 공부하는가? 전자에는 아쉬움과 함께 시대의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 사실 난 입시를 위한 공부보다는 기계를 다루는 일을 배우고 싶었다. 그러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 내가 입시를 위한 공부를 포기하는 건 부모님의 유일한 희망을 꺾는 일이었다. 그리고 사회가 그렇게 요구했다. 대학에 가지 않으면 경쟁에서 도태된다고 말이다. 후자에는 아주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난 공부를 하고 싶다. 그 일환으로 책을 읽으며 교양을 쌓아가고 있고 필요하다면 특정 분야에 깊게 파고들고 싶다. 뒤늦게나마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왜 나이 서른이 넘어서야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건 아마도 내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했던 공부들이 그만큼 사회에서는 쓸모없는 것이었음을 절실히 느낀 탓이리라.
“왜 공부하는가. 인류의 진보에 공헌하기 위해서다.” (185면)
지금 다시 왜 공부하는가에 대해 묻는다면 스즈키 코지의 이 말에 많은 부분 수긍이 가는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로선 개인적인 목적-교양을 쌓고, 내 아이들에게 올바론 교육을 시키기 위한-이 강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독서코칭이나 본격적인 사회활동을 위한 밑거름을 준비하는 과정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공부야 평생 하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만약 목적이 좀더 분명하다면 공부는 한층 신나고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내 생각과는 달리 안타까운 것은 지금 초, 중,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현실은 우리 때보다도 더욱 심각하다는 것이다. 우리 때야 학원에 다니는 일은 극히 드물었고, 어려서는 방과 후에 숙제에 대한 부담만 없으면 맘껏 뛰어놀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숨쉬기조차 힘든 빡빡한 공부 스케줄에 목이 메어 살고 있다. 나는 내 아이에게 이러한 현실을 물려주거나 강요하고 싶지 않다. 항상 올바른 안목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 인생을 즐기고 더불어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해왔다. 정리된 것은 없었지만 막연한 원칙만 가지고 살아왔는데 <링>의 작가 스즈키 코지는 이러한 부분을 <왜 공부하는가>에서 아주 명쾌히 정리하고 있다.
“미디어가 내보내는 메시지를 비판적으로 읽고 깊이 해석하는 것을 미디어 ‘리터러시’라고 한다. ‘리터러시(literacy)’는 ‘학문(교육)이 있음, 읽고 쓰는 능력’이란 뜻이다. 말 그대로 리터러시의 능력은 지식을 익히는 힘이다. 따라서 무엇을 위해 공부하느냐고 묻는다면, 이해력, 상상력, 표현력을 높이고 리터러시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수 있다. 개개인의 리터러시 능력이 높아지면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줄어들 것이다. 가치 있는 것과 가치 없는 것, 훌륭한 것과 훌륭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확실한 안목을 가지게 되므로 사회 전체의 수준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21면)
“진정한 교양은 지식이 아니라 지식을 익히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얻는 것이다. 그렇게 노력해서 얻은 교양이 살아 가는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해결책을 던져준다.” (30면)
이렇게 공부에 대해 제대로된 관점에서 이야기한 사람이 <링>의 작가라는 것이 쉽게 연결되지 않았지만, 그의 가치관에 많이 공감할 수 있었다. 그의 말마따나 강요된 경쟁 속에 아이들을 내몰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치를 판단하고 협력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교양인을 키워내는 것이 시급한 문제이다. 나부터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우리 아이가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이야기해나가고 싶다.
“만일 자식에게 왜 공부를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부모는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자신 있게 대답해야 한다. 우리는 공동체에 속해 살아간다. 공동체 구성원 하나하나의 학력과 교양이 높아지면 질수록 어떤 선택을 내릴 때 공동체를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판단할 수 있다.” (44~45면)
“‘왜? 어떻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정확하게 대답해 주도록 하자. 반드시 그게 옳은 대답일 필요는 없다. 적당히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하나 만들어서 들려주면 된다.” (59면)
“아무 생각 없이 ‘평화’와 ‘전쟁반대’를 외쳐서는 안 된다. 피해야 할 불행을 피하지 못하게 만든 시스템이 그 꼴을 바꾸어 전후 일본사회에 똬리를 틀고 있다면, 그것을 철저히 분석하여 바꾸어야 할 곳을 바꾸는 것이 과거를 뛰어넘는 길이다.” (81면)
“지금까지 공부에 대해 말해왔는데,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다양한 문제에 대해 개개인이 스스로 생각해 자신만의 결론을 내려야 하고, 분위기가 정서에 휩쓸리지 않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84면)
“어학에 필요한 것은 단문의 확실한 암기다. 중학교에서 배우는 정도의 쉬운 영문을 반복해서 말하고 쓰기만 해도 영어의 기본적인 구조를 몸으로 익힐 수 있다.” (96면)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지이다. 교사는 학생들이 이미지를 가질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101면)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기쁨이나 슬픔, 괴로움이나 억울함, 행복감이나 충족감, 불안이나 공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감정을 균형 있게 체험하는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그것을 극복할 힘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남과 자신이 함께 뻗어나간다. 그것이 결국 자신을 위한 일이다. 이것이 협력사회의 훌륭한 점이다. 세상은 결코 경쟁사회가 아니라 ‘협력사회’라는 전제를 가지고 배워야 할 것이다. 교육현장에는 절대로 경쟁원리를 도입해서는 안 된다.” (116면)
“진실로 강한 아버지란 스스로 일어서고, 남을 배려하며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는 존재가 아닐까.” (132면)
by 꽃다지, 2007년 10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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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다들 있을 것이다. 이런 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것들을 내가 왜 공부해야 하는지는 짧게는 내신 시험을 치기 위해서 수학능력시험을 대비하기위해서 궁극적으로는 대학입시에 성공하기 위해서였다. 단순히 대학에 더 잘가고자 공부하고 내가 더 잘난 직업을 가져 남들보다 더 잘 살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할까?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이 저자는 공부의 목적은 세계의 구조에 대한 이해력, 상상력, 표현력을 키우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해력, 상상력, 표현력의 능력을 기르고 세계를 덮고 있는 만은 양의 정보를 취사선택하고 세계에 공통적인 잣대로 판단하여 가치있는 토론을 통해 자신의 견핼ㄹ 내세우고, 더욱 나은 해답을 찾아낼 가능성을 조금 높이는 데에 공부의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왜 공부하는가... 그건 인류의 진보에 공헌하기 위해서이다. 과연 지금 인류의 진보에 공헌하기 위해 공부하는 자가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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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생들에게 물어본다. 너희 왜 공부하냐. 돌아오는 답은 간단, 명료. 대학 가야죠. 이것은 또한 그네들에게 공부가 고통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 대학 가면 공부 안 하겠다는 건가. 물론 그때는 또다른 이유가 생기겠지. 학점 잘 받아야 한다든가, 좋은 데 취업해야 한다든가.
왜 공부하는가에 대한 저자의 답변 또한 간단하다. 우리는 세상을 잘 알고 잘 살기 위해서 공부한다. 저자가 말하는 키워드는 단 세 가지. 이해력 상상력 표현력.
이해를 돕기 위해 저자는 몇 가지 예를 든다. 아마도 지구인의 영원한 수수께끼가 될지도 모를 질문 하나. ‘UFO는 존재하는가?’ UFO가 존재한다는 말은 외계인이 비행접시를 타고 지구에 나타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선 외계인이 존재해야 한다는 말이다. 즉, 우주인은 정말 있을까, 라는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우주인이란 결국 생명체이다. 지구 밖에도 생명체가 존재할까. 그렇다면 생명체는 우주에 어떻게 생겨났는가. 그걸 알려면 지구에 생명이 어떻게 탄생했는가를 알아야 한다. 물 메탄 암모니아의 결합으로 아미노산이 생기고 그것들이 질서정연하게 배열해 단백질이 생겨났기 때문에? 아니면 신이 창조를? 일단 외계인이 존재한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외계인이 UFO를 만들어서 몇 만 광년을 지나 지구에 도달할 수 있는 초강력 문명을 지녀야 한다. 더불어 지구인을 만나고자 하는 의지도 추가. 과연 이 모든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지?
UFO가 존재하느냐는 질문 하나만 해도, 우리는 생물학 천문학 물리학부터 시작해 인류문화 역사 종교 등 엄청난 분야의 지식을 섭렵하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추론할 능력이 있어야 함을 알게 됐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아주 많은 의문과 호기심을 가지고, 또 매우 많은 선택을 한다. 그 순간 우리는 온갖 사고를 동원해 답을 구(하고자)한다. 이때 판단의 재료가 되는 지식과, 판단 능력인 사고력은 공부를 통해 얻을 수 있다. 공부하는 이유는 다른 데 멀리 있지 않다. 바로 눈앞, 현실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