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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의 집을 보고 처음에는 이런 영화도 있구나~~ 라는 생각만으로 1, 2편을 시청했다. 다 본 후의 느낌 역시 일본이 복지 쪽으로는 우리보다 앞서 있어서 영화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인식개선을 도모하는데 이바지하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시간이 흐른 뒤,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농아인을 자식으로 둔 부모와 가족들의 입장과 농아인의 입장을 생각하게 되었다. 농아인을 자식으로 둔 부모와 가족들은 자신의 생활보다 아이를 위한 삶 밖에는 살 수 없었다. 그들이 자식을 포기하고 싶어하는 모습 역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농아인 자녀뿐만 아니라 어느 자녀든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 사회적인 인식과 스스로의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절망감 때문에 스스로 아이를 포기하던지, 주변에서 그 같은 권유 아닌 권유를 받게 된다. 부모의 입장 뿐만이니라, 형제 자매역시 매우 힘들다. 왜냐하면 영유아기, 청소년기 받아야 할 사랑과 관심이 농아인자녀에게 집중되기 때문에 시기적절한 사랑과 관심을 여러모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나 농아인의 입장에선 어떨까? 농아인의 입장에서,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고, 사람들과 소통할 수 없고, 자신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어떠한 표현도 배우지 못한다. 선청적인 경우 더욱 그러하다. 왜냐하면 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교육이 들어서 알수 있게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소통하는 방법을 농아인들은 모른다. 그래서 그들을 이해하지 않으면 그들의 표현이 이상해 보이고 거부감이 들게 만들어 버린다. 즉, 그들을 바로 이해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협회에서 일하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 농아인과 농아인부모를 비롯한 가족들을 어떻게 대해야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전혀 모르는 분야에 나와 일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언어인 수화를 배우고, 수화를 통해 농아인들과 대화를 하고, 그들의 부모 및 가족들을 만나서 농아인의 삶을 대변해 줄 수 있다. 아직은 미숙하지만, 내가 아는 지식의 범위 안에서 그들을 대변하며 생활할 수 있는 단계에 있는 것 같다. 앞으로 더 많은 교육과, 배움을 통해 농아인의 삶이 나에게 베어나길 원한다. 이 영화가 나의 삶에 도움이 되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