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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 주논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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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다 아는 듯 누구도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수 없는 여인, 논개.'논개'는 조선 왕조 500년 역사 중 980여 차례의 외침을 통틀어 가장 처참하고 끔찍한 전란으로 꼽히는 임진왜란(1952)이 일어나기 바로 전과 임진왜란 종반까지의 시간을 배경으로, 스무 살의 짧은 생을 불꽃처럼 살다 간 논개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다. 작가는, 위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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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다 아는 듯 누구도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수 없는 여인, 논개.

'논개'는 조선 왕조 500년 역사 중 980여 차례의 외침을 통틀어 가장 처참하고 끔찍한 전란으로 꼽히는 임진왜란(1952)이 일어나기 바로 전과 임진왜란 종반까지의 시간을 배경으로, 스무 살의 짧은 생을 불꽃처럼 살다 간 논개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다. 작가는, 위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정사에서는 기생 혹은 정렬부인 등 논란이 분분한 논개라는 인물을, 지고지순한 사랑 하나로 횡포한 세상에 맞선 한 사람의 여인으로 재조명하였다.

 

모두가 사랑을 비웃을 때 사랑했고, 모두가 도망치려 할 때 끝까지 싸웠다.

 

신안주씨이며 전북 장수 출생인 논개는 양반가의 여식이었지만, 가계가 위태로워 양민 그리고 천민으로 까지 떨어졌다 임진왜란중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의 자리에 까지 오른 최경희의 후처가 된다.

이 책을 읽는 재미는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피비린내나는 임진왜란의 역사, 나이와 신분을 떠난 지고지순한 사랑, 무책임한 조정과 탁상공론의 당파, 그리고 아름다운 우리말... 처음에 책을 읽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인터넷을 뒤지고 사전을 뒤저가며 뜻을 헤아렸지만, 점점 책장을 넘길수록 이야기에 빠져들었다고 할까 그런 난관도 책 읽는 즐거움에 하나로 자리매김 하였다.

 

약속합니다. 생애 단 한 번뿐인 사랑으로 살고, 마침내 그 사랑으로 죽기를.

 

2차 진주성전투의 패배로 인하여 지아비를 여이고 그녀가 택한 바는 죽음이었다. 촉석루의 연회에서 왜장 게야무라 로구스케를 껴앉고 남강으로 투신하였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논개에 대한 기억 전부였다. 기생으로써 의로운 죽음을 택한 조선의 여인으로.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눈물이 나고 격정이 솟구친다. 그녀를 제대로 알지 못함이 아닌 그녀의 삶이 너무 슬프고 애달프며 고귀하였다는 점에서.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은 책은 김훈의 [남한산성]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분명 우리역사에서 불명예스럽고 치욕스럽다. 하지만 역사는 역사이다. 역사가 없으면 미래도 없을 것이다. 촉석루 벽류의 바위 위에서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의로운 죽음을 택한 논개의 삶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

 

s*******4 2007.08.16. 신고 공감 1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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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떨어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꽃이 떨어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내용보기
뼈대를 먼저 만들고 살을 붙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살을 발라 뼈대만 남기거나 뼈대 위로 조금의 살만 남겨 놓는 이가 있다. 이 살은 대체적으로 맛있어 보인다. 허나 과유불급이라 했다. 아무리 맛있어도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체한다. <논개>는 뼈대 위에는 맛있는 살만 붙이거나 남겨야 한다는 사실을 잊은 소설이다. 그렇다면 논개는 어느 방향인가. 최근 읽은 양쯔쥔의 <사자개
"꽃이 떨어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내용보기
뼈대를 먼저 만들고 살을 붙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살을 발라 뼈대만 남기거나 뼈대 위로 조금의 살만 남겨 놓는 이가 있다. 이 살은 대체적으로 맛있어 보인다. 허나 과유불급이라 했다. 아무리 맛있어도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체한다. <논개>는 뼈대 위에는 맛있는 살만 붙이거나 남겨야 한다는 사실을 잊은 소설이다. 그렇다면 논개는 어느 방향인가. 최근 읽은 양쯔쥔의 <사자개>를 볼 때보다 더 큰 아쉬움이 무럭무럭 꽃핀다.

 

 배나무로 따지자면 곁가지를 치지 않아 성장을 저해시키거나 배꽃을 제대로 따지 않아 열매가 달리지 못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말이다. 김별아는 어떤 곁가지를 처내야 하고, 언제 배꽃을 따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다. 혹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인정받는다, 는 것을 몸소 터득한 것이리라. 어쨌든 지나친 미사여구나 현학은 감탄의 대상은 될 지언정 마음의 감동은 얻지 못한다. 때로 그 감탄을 진심에서 우러 나오는 감동이라 믿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에 속을 수 없어 애석하다. 게다가 작중개입은 또 얼마나 남발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내가 이런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정도로 그 외 다른 것에서 감동을 얻었다면, 아마 이리도 표독스레 책을 노려보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당대의 사회상을 아무리 떠벌려 보아도 작중 인물들 사이의 관계나 사건의 개연성은 희끄무레하기만 하다. 선명하던 인물이 갑작스레 희미해지다가 죽어 버리기도 하는 등 전반적인 구성 자체에 강약의 조절이 너무나 부족한 것이다. 이런저런 아쉬움에 곁가지를 잘라내지 못하고 머뭇거린 결과다.

 

 김별아는 이야기를 찾아 헤매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다가는 허송세월하기만 할 뿐이다. 그렇기에 그 이야기가 자신에게 찾아오길 강렬히 고대했다고 한다. 그 순간 찾아 온 <논개>가 그를 흥분하게 했으리라. 작가는 그 흥분을 가라 앉힌 후, 이야기를 풀어야 한다는 사실을 깜빡 잊었다. 그러다보니 강약조절에 실패하게 되고, 그것을 미사여구로 감추게 되었으며, 결국 어정쩡한 모양으로 남은 것이다.

 

 그의 말처럼, 논개는 누구나 다 아는 인물이다. 허나 동시에 누구나 제대로 알지는 못하는 인물이다. 논개라는 기생이 왜적을 껴안고 강에 뛰어 들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논개가 누구인지 그 왜적이 누구인지 왜 같이 뛰어 들어야 했는지 또 어떤 시대였는지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렇기에 그것을 소재로 삼기에 부담스럽지만, 동시에 소설적 허구로 재창조하기 편해진다. 그럼에도 <논개>는 허장성세에 불과하게 되어 버렸지만, 그렇기에 안타까움을 면할 수가 없다.

 

 어쨌든 이러한 안타까움에도 불구하고, 논개의 죽음 하나만은 선명하다.

 

 적의 장수를 껴안은 논개가 기우뚱 떨어진다. 그 모습이 분분한 낙화를 떠오르게 한다. 김별아는 그것을 이팝나무 꽃마냥 너즈러진다, 했던가. 시인 조지훈은 <낙화>에서 '꽃이 떨어지기로서니 / 바람을 탓하랴' 라고 말했다. 바람 불지 않아도 언젠가 생을 다해 떨어질진대, 바람을 탓해 무엇하느냐는 의미일게다.

 

 논개가 충절을 위해 죽음을 맞았는지 사랑을 위해 목숨을 버렸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죽음을 향하던 논개가 낙화할 때에 슬프고 괴로워하되 누구든 무엇이든 탓하지는 않았으리라. 霖

m*******y 2007.07.22. 신고 공감 1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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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보통 사람
"그녀는 보통 사람" 내용보기
**  읽으면서 애달팠던 구절 하나, 감상 하나 **  자장자장, 자장자장....... 눈이 큰 우리 아가 잃어버린 것들 잘 찾겠다, 귀가 큰 우리 아가 속삭임도 잘 듣겠다, 코가 높아 냄새를 잘 맡고 입이 커서 상추쌈도 잘 먹겠다, 손이 크니 주는 것도 잘 받겠고 발이 크니 넘어지지 않고 잘 걷겠다....... 있는 그대로 귀하고 어여쁘고 맞춤하다 - 본문 중에서 어머니의 사랑은 너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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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으면서 애달팠던 구절 하나, 감상 하나 ** 
자장자장, 자장자장....... 눈이 큰 우리 아가 잃어버린 것들 잘 찾겠다, 귀가 큰 우리 아가 속삭임도 잘 듣겠다, 코가 높아 냄새를 잘 맡고 입이 커서 상추쌈도 잘 먹겠다, 손이 크니 주는 것도 잘 받겠고 발이 크니 넘어지지 않고 잘 걷겠다....... 있는 그대로 귀하고 어여쁘고 맞춤하다 - 본문 중에서


어머니의 사랑은 너그럽다.

눈이 크면 큰대로 팔자 드센 게 아니라 잘 보이니 좋은 것이고,

귀가 크면 남의 속삭임이나 듣고 다녀 음흉한 게 아니라 작은 소리도 잘 들리니 좋고,

코가 높으면 상스러운 것이 아니라 냄새 잘 맡으니 기특하고

입이 크면 상놈에, 손발이 크면 도둑놈이라 하여도

주는 대로 잘 먹고 잘 받으니 착한 데다, 넘어지지 않고 잘 걸을 발이라 흐뭇하다.

그러니 참, 어머니의 사랑은 어리석다.

**

 

논개를 읽으면서 가장 끔찍했던 건

우리나라를 침범한 왜적이 아니었다.

같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너와 나의 구별이 너무나 뚜렷하여 한 나라라는 것마저 망각해버린

내 민족, 내 동포의 모습, 그것은 참혹 그 자체였다.

그토록 삼강이 어떻고 오륜이 어떻고 충과 의가 또 어떻고를 입에 달고 외던 사람들이

전쟁이 나자마자,

백성과 노비들의 피고름을 쥐어짜 모은 재산을 움켜쥐고 꽁지가 빠져라 도망간 사이,

꽉꽉 비틀리고 탈탈 쥐어짜진 백성들은,

비치적비치적 일어나 내 가족과 내 나라의 강토를 지키기 위해

뼈만 앙상한 손아귀에 변변찮은 무기를 그러쥔다.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러할 것처럼.

 


전쟁이 났을 때 여자들은 참 비참하다.

죽는 편이 날까? 하지만 그러면 아이들은? 늙은 어머니와 힘없는 아버지는 어떡하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은 차라리 사치다.

하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먹어야 산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고,

전쟁이 참혹할수록 여자의, 어미의 손을 필요한 곳은 차고도 넘친다.

그래서 여자는 더 강해진다.

땅을 일구던 따뜻하고 다정한 흙손 그대로 칼과 창을 잡고 생사의 갈림길로 내몰린 불쌍한 남자들과

토실토실한 엉덩이로 골목길을 질주하고 고운 꽃을 따 먹으며 자라나야 할 나이에

굶주림과 공포에 지쳐 눈만 커다래진 불쌍한 내 아이들을 위해

여자는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이든 하고 할 수 없는 일까지 기꺼이 한다.

생명을 키우고 돌보는 건 원래부터 하던 일이 아니던가.

 


처음에 논개를 읽기 시작한 이유는 순전히 표지 때문이었다.

논개라고 하면 교과서나 위인전에서 왜장을 안고 물에 뛰어든 기생이라 나와 있었고,

그보다 더한 무엇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굳이 그런 구닥다리를 소설로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은 더구나 없었다.

그런데 마치 보자기처럼 곱게 보이는 표지가 참 갖고 싶었다.

그렇게 논개를 읽으면서 문득 깨달은 것은,

난 논개를 많이 들은 것에 비해서 거의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구태여 공부하려고 읽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소설이니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일지는 모르겠다.

다만, 논개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몰락한 양반이던지 기생이던지 최경회의 후실이던지는 다 상관없었다.

그녀는 잔다르크처럼 하늘의 계시를 받아 우국충정의 애국심이 마구 솟구치는 위대한 사람도 아니고, 한점의 흐트러짐 없이 외곬의 길을 가는 날 때부터 남다른 인물도 아니었다.

왠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저 보고 싶은 걸 보려고 잠깐 허튼 짓을 하기도 하고,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아서 마음 앓이도 하는 보통 사람이었고,

사랑과 함께 죽어야겠다 마음먹고 그것을 실행할 만큼, 딱 그만큼만 용기 있는 여자였다.

 


사실 그녀가 애국을 위해 죽지 않아서 좋다. 그녀가 위대한 사상과 이념을 위해 몸을 던진 것이 아니라서 더 좋았다.

후세의 사람들이 어떤 의미를 부여하든 간에, 역사적인 사실이야 어떠하든 간에,

이제부터 내 안에 그녀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 대로

그래서 죽음을 향해 뛰어든, 보통 사람이 되었다.

난 그녀가 이제는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마도 이미 행복해졌을 거 같다.

s****n 2007.07.04. 신고 공감 1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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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로서의 논개' 해체하다
"'은유로서의 논개' 해체하다" 내용보기
그렇지 않아도 논개라면 지난 황우석 사태 때 누군가 논개를 인용하는 것을 본 바 있다. 난자를 제공한 그들이 누구냐 어떤 이들이냐를 묻는 질문에 한 관계자가 "그들이 누구인지 밝힐 수 없으며 그저 논개같은 분들이라고만 해두자"고 했던 기사를 보고 분노했던 적이 있다.   난자를 제공받은 경로가 투명하고 떳떳했다면 그리고 그 난자를 제공한 이들이 흔쾌히 아무런 대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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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아도 논개라면 지난 황우석 사태 때 누군가 논개를 인용하는 것을 본 바 있다. 난자를 제공한 그들이 누구냐 어떤 이들이냐를 묻는 질문에 한 관계자가 "그들이 누구인지 밝힐 수 없으며 그저 논개같은 분들이라고만 해두자"고 했던 기사를 보고 분노했던 적이 있다.

 

난자를 제공받은 경로가 투명하고 떳떳했다면 그리고 그 난자를 제공한 이들이 흔쾌히 아무런 대가없이 제공한 것이었다면 떳떳이 밝히고 박수를 받아야 할 터인데 굳이 숭고한 희생까지 들먹여가며 그 사실을 은폐할 필요가 있는 것이었을까,가 1차적인 것이었고 숭고한 희생을 거론함으로써 그들의 현재 상태나 피해 정도를 외면하려 했다는 것이 두번째였다.

게다가 어처구니 없는 것이 바로 논개를 은유적으로 사용했다는 점. 아직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죽음으로써 희생한 사람과 비유한다는 것이 의아했다. 죽으란 말이냐, (게다가 논개라니 '어디 감히'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만큼 논개에 대한 신격화는 내 맘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의 언술에서 나는 그의 말로써도 도무지 해명되지 않는 부분들과 억지스러운 결합에서 오는 어색함 때문에 내내 그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와 같은 사람이 있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논개에 대한 관심은 내내 한가닥씩 갖고 있었는데, 마침 <미실>로 새로운 여성상을 구현해 냈던 김별아가 논개를 쓴다고 했서 출간 전부터 관심을 갖게 되었다.

 

머리말부터 '2005년의 겨울'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나는 작가도 나와 마찬가지의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닐까 막연히 기뻐했다.

 

그 당시의 사태와 그 인터뷰에서 내가 그저 분노에 그쳤다면 김별아는 그의 언술을 뒤집어 생각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논개를 인용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논개를 통해 구축된 신격화 그 모든 것들을 해체를 시도하고 있다. 해체하는 텍스트 역시 기존의 전거들을 십분 활용하는 장기를 선보인다. 논개에 관하여 이토록 방대한 자료가 남아 있는지 몰랐다. 물론 그 자료들의 진위 여부는 논외다. 소설 자체가 바로 허구니까 허구를 허구화하는 것은 허구를 창조해내는 것만큼 예술가에게는 매력적인 일이 아닐까.

 

 

책을 읽으면서 클라이막스라고 생각된 부분이 있는데 바로 의병을 일으켜 병사들을 이끌고 장수로 온 수백 명에 이르는 최경회 군대를 직접 오가며 호궤하는 논개이다. 이제 곧 환갑을 맞는 백발이 성성한 최경회와 이제 갓 스물을 넘긴 논개가 넓디넓은 평야에서 바람을 맞으며 재회하는 모습은 그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릴 때마다 벅찬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어릴적 배신한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미워하는 사람도 없는데다, 손도 야무지고 못하는 것도 없는 만능의 논개는 별로 인간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게 흠이다. 논개보다는 그 어미인 박씨나 최경회보단 그의 부인 김씨가 더 생생하게 와닿는다. 그들이 나와 더 비슷하며 내 주위 사람들과 흡사하다. 나라면 김씨나 박씨를 친구삼을 것이다. 그러나 논개 역시 사랑도 하고 분노도 하고 한없이 작아지기도 하는 한 사람의 여인이라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s******1 2007.07.09. 신고 공감 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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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논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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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 우선 처음 놀란것은 이 논개라는 이름이 (놓은 개/낳은 개) 라는 천한 이름으로 해석이 된다는 거였다어릴 때부터 유관순 열사처럼 항상 들어오던 이름이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다니.. 작가의 독창적인 상상력에서 나온건지 아니면 역사적 사료에 나오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유별나다고 생각했다 논개를 읽으면서 예전에 보았던 역사 스페셜이 많이 생각났다 제목은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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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 우선 처음 놀란것은 이 논개라는 이름이 (놓은 개/낳은 개) 라는 천한 이름으로 해석이 된다는 거였다
어릴 때부터 유관순 열사처럼 항상 들어오던 이름이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다니.. 작가의 독창적인 상상력에서 나온건지
아니면 역사적 사료에 나오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유별나다고 생각했다

논개를 읽으면서 예전에 보았던 역사 스페셜이 많이 생각났다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논개와 같은 기생들을 특집으로
다루었던 내용이었다 거기서 논개가 사실은 기생이 아니라 양반집 규수였고 이 작품에 나오는 것처럼
(최경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느 양반의 첩이었다는 내용도 나왔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이 작품은 좀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처음에 논개의 죽음에 대한 묘사부터 나오는건 정말 새로웠다 적장과 죽기전까지 싸워가며 결국은 죽음으로 몰아넣던 사투를
논개와 적장의 시점을 적절히 혼용해 가며 나타내 생동감이 넘치면서 논개의 시점에서의 글은 너무나도 현실을 달관하고
죽음에 초연했기에 약간 몽환적 분위기 또한 나타내면서 독자들을 책 앞으로 끌어들였다

어렸을 적 가난한 양반집에서 태어났지만 여느아이 안부런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던 당찬 아이..
하지만 흥진비래라던가.. 6살때 아버지를 여의고 숙부때문에 매매혼을 치를뻔 했던 불운한 아이..
어린 나이에 힘든 일을 치뤄서 인지 논개는 일찍 철이 들었고 그 모습이 나에겐 너무나 안타깝게 보였다..
한창 부모님께 재롱을 떨며 귀하게 자랄 나이에 물지게를 지고 바느질을 하며 일을 하는..
논개의 생애를 통틀어 행복했던 시간에 비해 슬프고 힘들었던 시간이 너무 긴것 같았다

이 책은 물이라는 소재를 크게 다루고 있다 처음에 관노로 일하려다 우물물에 빠져 죽을 뻔한 일부터
바다를 보고 싶어하다 업이와 박 지통에게 속아 큰일을 당할 뻔한 일.. 또 최경회의 자살과 논개 자신의 죽음까지..
이처럼 논개의 삶에서 물이란 소재는.. 왠지 빼놓으면 허전한 느낌이 들 정도랄까..?

전체적으로 너무 사실적이어서 과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구별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또 논개라는 인물을 위인적인 관점이 아닌 인간적인 관점에서.. 논개의 죽음을 나라를 위한 열사적 죽음이 아닌 개인적인 복수로
그려냈기에 왠지 논개와 많이 가까워 진 느낌이다.. 머랄까 나도 저런 상황이라면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일종의 동질감이랄까..?

김별아 라는 작가를 처음 만나게 된 논개라는 소설.. 느낌이 너무 좋다..
다음에 김별아 작가의 대표작 미실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

s********w 2007.08.15. 신고 공감 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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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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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의 저자가 김별아가 아니었으면 그토록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는 지 모른다. 주인공 논개에 대하여는 그동안 수없이 소설,영화 및 다큐멘터리에서 다루어져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어도 진주의 관기로서 왜장과 함께 남강으로 투신한 영웅임을 알고 있어 그다지 신선한 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그러나 보수적인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아직도 진위여부에 대하여 논란이 많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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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의 저자가 김별아가 아니었으면 그토록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는 지 모른다.

주인공 논개에 대하여는 그동안 수없이 소설,영화 및 다큐멘터리에서 다루어져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어도 진주의 관기로서 왜장과 함께 남강으로 투신한 영웅임을 알고 있어 그다지

신선한 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그러나 보수적인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아직도 진위여부에

대하여 논란이 많은 '화랑세기'에서 '미실'이라는 여인을 김별아만의 해박한 역사지식과

대단한 글솜씨로 현대 소설의 주인공으로 재탄생시킨 저력을 보고 김별아의 소설이라면

가장 먼저 읽고 싶은 욕망이 들었다.역시 이 책을 읽은 후 처음에 가졌던 기대에 부응하듯

김별아의 대단한 필력은 녹슬지 않음을 보여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계기로 조선은 엄청난 사회 및 정치적 혼란을 겪게되고 또한 제도적

모순에 눈 뜬 사회피지배계층의 의식자각으로 새로운 역사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된다.

특히 엄격한 유교정책의 일환으로 여성들에게 요구되어진 정절 내지 순결은 남성 입장에서는

엄청난 특혜이자 권리이지만 여자에 대하여는 죽을 때까지 지켜야하는 구속적인 함정이었다.

그러한 시대적 모순속에서 논개는 이 책속에서 그동안 세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관기가 아닌

한 남자만을 평생 사랑하기로 약속한,즉 끝까지 의(義)를 지킨 여자로 다시 태어난다.

 

일찌기 아버지의 죽음으로 파산당한 양가집에서 태어난 논개는 어머니와 함께 부득이 한 관청

의 수장인 최경회밑의 관노로 들어가지만 우여곡절속에 결국 오랜 지병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최경회 처의 부탁으로 그토록 마음속으로 연을 품어온 최경회의 첩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그 두사람의 애틋한 사랑을 시기하듯 시대적 혼란은 여지없이 그 둘을 갈라놓는다.

결국 최경회는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에 입성하고 김시민의 진주대첩에서 엄청난 패배를 하여

절치부심하던 왜병들은  명과의 화해 후 일본으로 퇴각 도중 복수심에 불타 진주성을 재차 공격

하기로 하였다.정예부대인 왜적에 대하여 오합지졸에 가까운 의병들은 사실상 전투상대가 되지

않았으니 결국 진주성안에 있던 모든 군사들과 백성들은 도륙의 길로 접어들어 피비린내나는

시체의 주인공이 되었다.

 

적에게 잡혀 적군의 수장으로 알려지면 머리가 잘려져 일본으로 보내지는 수모를 피하기 위하여

스스로 강물에 뛰어든 최경회의 죽음을 목격한 논개는 함께 죽지 못하고 살아남은 수치스러움을

씻기 위하여 상상을 초월한 행동을 하게 된다.그것은 살아남아 정조를 지킨 정절녀가 아니라 차라리

세인들에게 관기라는 오명을 받아도 왜장수와 함께 강물에 뛰어들어 먼저 간 님의 길을 따라가는 것

이 정도(正道)라 생각한 것이다.세속적이고 허울좋은 정조보다는 그녀가 최경회에게 보여주려던

의(義)가 무엇인가를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혹 일부 독자는 논개의 실체가 관기냐 아님 몰락한 양반집안의 딸이냐를 놓고 따질 수

있지만 소설의 본질 상 역사속의 인물을 작가의 생각에 따라 얼마든지 허구상이나마 재해석되어짐을

이해할 때 그러한 논쟁은 다 부질없는 것이다.다만 책 내용이 주인공의 주관적 견해에 따라 그려진 것

에 대하여 우리가 얼마나 공감을 가지고 함께 느끼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c*****0 2007.08.07. 신고 공감 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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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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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새롭게 조망되고 재현되는 수많은 역사적인 인물을 만날 수 있다. 책은 물론 영화 드라마를 비롯한 영상매체에서 예술품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 인물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때로는 권력과 기득권을 위한 테제로 때로는 다수에게 쾌락을 충족할 픽션과 함께 과거와 현대 혹은 미래를 그들은 살아가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인물들 속에 논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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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새롭게 조망되고 재현되는 수많은 역사적인 인물을 만날 수 있다. 책은 물론 영화 드라마를 비롯한 영상매체에서 예술품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 인물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때로는 권력과 기득권을 위한 테제로 때로는 다수에게 쾌락을 충족할 픽션과 함께 과거와 현대 혹은 미래를 그들은 살아가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인물들 속에 논개가 있다. “계사년(1953) 칠월 상순의 어느 맑고 볕 좋은 날, 마지막 숨결이 포말이 되어 솟구”친 논개의 이야기를 김별아가 다시 들려준 것이다.


<논개>는 틈틈이 지하철 안에서 읽었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버거울 때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 안에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끔찍하다. 그러나 숨통 끊길 듯 답답한 그 속에서 호흡을 도와주는 건 역시 책뿐이다. 다독을 하고 살아오지 못했지만, 읽는다는 행위는 그 무엇과 비견할 수 없는 ‘참 활력소’라는 건 인정하고 싶다.


문이당 출판사에서 출간된 <논개>의 마력은 역시 김별아 작가의 힘에 있다. (2005년 <미실>로 제1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라는 양력은 나에게는 무감하게 흘러가는 정보였다. 무슨무슨 문학상을 받았다는 타이틀이 그 작가의 다음 작품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만드는지 미루어 짐작하기에 내 자신만의 배려라고 생각한다.)  <논개>이기에 <논개>였기에 그토록 빛났던 그녀의 수사력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논개>는 잔칫날 정성껏 차려진 형형색색의 음식들이 HD화면 가득 펼쳐진 느낌이다. 그토록 선명하고 고우며 먹음직스러운 빛깔이란! <논개>는 그렇게 유혹적으로 나를 끌어당긴 작품이다. 지하철 속에서 <논개>를 읽는 그 순간들은 그 ‘매혹적인 영상’에 눈을 빼앗긴 시간들이었다. 이야기가 후반부로 진행되면서 흡인력이 떨어지고 구성이 탄탄하지 못해 끝내 저 물속 깊은 곳까지 끌려가지 못했다 치더라도 <논개>는 읽는 재미만큼은 톡톡히 안겨준 작품이다.


논개의 삶과 여정에 대한 것은 역사책 아니 광활한 인터넷 세상 속 그 어디에서든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나에게 논개의 삶에 대해 작가가 제대로 고증하고 펼쳐냈느냐는 기실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한바탕 나의 눈을 휘감을 책을 읽고 싶다면 김별아의 <논개>를 집어 들어도 후회하지 않을 듯.


“....... 오직 한 사람을 생각했다. 삶의 전부가 그를 사랑하는 것으로 채워지길 바랐다. 종내 죽음까지도 함께하기를 원했다........그를 죽이고 그녀를 죽이고 그와 그녀를 다시 만나게 하는 물. 그녀는 기꺼이 남강을 호흡한다. 그리고 마지막 간힘을 다해 경련으로 바르르 떨리는 손가락에 끼어진 지환들을 하나하나 확인한다. 이미 죽었거나,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거나, 죽지 못해 살아 있는 사람들의 가련하고 서러운 정표들. 상하의, 귀천의, 남녀의, 생사의 경계가 모두 사라진 정결한 새남의 표식에 그녀는 죽음으로 입 맞춘다.” - 21쪽

d******m 2007.08.11. 신고 공감 8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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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prologue, 어쩌면 특별한 인연...내가 책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오랜만인것 같다.논개의 삶을 재조명하고 작가의 신랄하고도 애절한 표현들이 나의 심금을 울려주었으니까...내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이 책에 집착하듯...무엇인가를 탐구하듯이 읽은 책...<논개>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작가가 누군지도 모르고 아는 것도 없는 무지한 독서가일뿐이다.그런데 <논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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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prologue, 어쩌면 특별한 인연...
내가 책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오랜만인것 같다.
논개의 삶을 재조명하고 작가의 신랄하고도 애절한 표현들이
나의 심금을 울려주었으니까...내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이 책에 집착하듯...
무엇인가를 탐구하듯이 읽은 책...<논개>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작가가 누군지도 모르고 아는 것도 없는 무지한 독서가일뿐이다.
그런데 <논개>라는 책의 제목을 들었을때...아...!! 바로 이거다...!!
그래..이 책이라면...!! 그런 생각이 번갯불만큼이나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단순한 위인전을 떠나 내겐 소중한 이야기가 아닐수 없었기 때문이다.

 

에피소드2 - 신안주씨이야기
큰아버지나 아버지께 집안족보에 대한 짤막한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족보의 계보부터 본관은 어디이고 조상님에 대한 작은 에피소드들이었다.
그 당시 나는 그러려니 하다가 갑자기 관심이 생기게 되어
과연 어떤분들이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찾은 분중 한 분이 바로 주논개...<논개>...바로 그녀였다...!!
신안주씨성을 가진 그녀...잠깐 족보이야기를 해보면 본래 신안은 중국에 있는 곳이며
아직도 그곳에 집성촌을 이루고 주씨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고려시대때 일부 주씨성을 가진 사람들이 중국에서 건너와 전라도 나주쪽에
집성촌을 이루고 그 수는 얼마 안되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 살고 있다.
<논개>...나 역시 그녀에 대해 아는 건 없었다.
단지 교과서에서나 접할수 있었던 인물이었다는 것과 내겐 큰 조상님이라는 정도였다.

 

에피소드3 - 거부할순 없는 숙명
내겐 다른 부분을 떠나 고집스러울지 모르겠지만,
그녀에 대한 예우이자 의무감같은 명분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논개의 일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 미스김 10억만들기'보다 더한 드라마가 아닐수 없었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인간의 탈을 쓰고 뻔뻔하게 행하는 인물들은 여전했던거 같다. 
마치 자신이 악역을 자처한 것처럼 모난 인생을 살아야 하는 건지..
가뜩이나 계급사회 신분에 억울한 누명과 여성으로써 견디기 힘든 모욕과 수치...
그럼에도 불구 하고 그녀는 그 인생에 별다른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신분에 맞는 삶을 사는게 보통 사람의 삶이었다면 그녀의 삶은
오히려 숙명이라는 무거운 짊처럼 짊어져야 했던 것이다.

 

남의 허점과 약점을 잡아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자에게 눈먼 세상은 너무도 쉽고
편한 곳이었다.승리한 악덕은 순식간에 선덕으로, 그리고 미덕으로까지 둔갑하였다.
-본문 99쪽에서-

 

본문의 일부이긴 하지만 이러한 점들을 살펴보면 본래 힘있고 재물을 가진 자들이
허풍과 위세가 기세등등 하며 도가 지나쳐서 민심을 어지럽히게 되니...
지하에서 세종대왕님이 노하시어 통곡하실일이 아닐까 하는 슬픈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렇게도 잔혹했단 말인가...계급이 판치는 사회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을 따져면서 셈하는 세상이 안타깝기만 했다.
이렇게 어지러운 처세술같은 세상에서 정국이 흔들리고 민심이 분열되고
나라가 이 지경...도탄에 빠지기엔 충분했다.
어쩌면 그녀의 삶은 당연했는지도 모른다.단지 특이한 사주를 가지고 태어난 것을 넘어
부모님께 물려받은 곧은 성정과 외곬스럽지만 자신이 지켜가고자 했기에
더욱 더 그러한 길을 갈수 밖에 없지 않았던가 싶다.

 

에피소드4 - 추억은 사랑을 닮아...
최경회...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과연 그녀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녀만큼이나 외길을 가고 있는 곧은 선비정신에 성인군자로써의 표상을 지닌 그는
아내 김씨부인이 병상에 있고 비록 자식은 없었지만 그의 절개 또한 논개만큼이나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와 그녀의 사랑...뭔가 말할수 없는 하지만...!!
사랑의 표현이 이토록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껴졌다.
김씨부인과 최경회의 이야기도 그렇고...논개와 연을 맺은 이야기도 그렇고...
논개와 김씨부인, 업이와 논개, 논개를 시기하고 미워하는 여인들...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했던가...?? 그녀의 성심과 진솔함이 묻어났기에 그것으로 충분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누구를 미워하거나 시기하는건 또다른 무언가를 낳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로든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것 또한 사랑이 아닐수 없는 것이다.

 

사랑,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소급되었다. - 본문299쪽에서-

 

그 어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말보다 더한 단어가 있을지...
때론 문장의 힘이 칼보다 강한만큼이나 인간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은
거부할수 없는 무언가의 힘이 아닌가 싶다.
꽃다운 나이에 여느 여인처럼 분명히 그녀도 사랑하고...사랑받고 싶었을 것이다.
행복하고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만큼이나 그녀의 인생이 바로 여기에 담겨져 있다.


etc...
작가의 섬세함과 각 인물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어우려진 한편의 이야기였다.
이로써 논개에 대한 오해는 자연스레 풀리게 되었다.
진정한 의인의 삶과 숭고한 정신은 계속 남아있을 것이다..
각성하고자 했던 시간을 가지며 논개의 이야기는
내 마음 한 구석이 아닌 미래의 자식들에게도 반드시 이 이야기를 꼭 전해줄것이다.
반드시 의무감으로라도 꼭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마음만큼이나 논개의 삶은 내 기억과 함께 할것이다.

 

j******g 2007.08.02. 신고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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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와의 인간적 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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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에서처럼 ‘논개’는 누구나 다 아는 듯하면서도 사실은 잘 모르는 사람인 것 같다. 이 책을 접하면서 ‘논개가 어떤 사람이었지?’라고 떠올려 보니, ‘논개’라고 하면 임진왜란 때 왜군 장수를 끌어안고 함께 죽은 여자 (논개가 관기였다는 것도 이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는... 쩝)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는 것. 전쟁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고, 사람의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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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에서처럼 ‘논개’는 누구나 다 아는 듯하면서도 사실은 잘 모르는 사람인 것 같다.

이 책을 접하면서 ‘논개가 어떤 사람이었지?’라고 떠올려 보니,

‘논개’라고 하면 임진왜란 때 왜군 장수를 끌어안고 함께 죽은 여자

(논개가 관기였다는 것도 이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는... 쩝)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는 것.


전쟁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고, 사람의 삶을 처절하게 만든다.

보통 아이와 여자들이 불쌍해진다고 하지만,

사실 죽음이라는 공포와 두려움 앞에서, 삶의 처절함과 생에 대한 욕망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매한가지가 아닐까 싶다.


시대에는 조금의 편차가 있지만 그런 면에서 얼마 전 읽었던

김훈의 [남한산성]과 비교가 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김훈의 [남한산성]은 권력자들을 중심으로 한 소설이라 한다면

김별아의 [논개]는 권력자들의 변방에서 전쟁을 맞닥뜨려야 했던 이들의 소설이고,

그중에서도 조선이라는 유교적이고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소외되고 관심이나 보호의

대상조차 될 수 없었던 한 여인을 중심으로 한 소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발적이라고는 하지만,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요,

어쩔 수 없는 몸부림으로 관비가 될 수밖에 없었던 한 여인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그리고 그 지난한 삶을 어떻게 견뎌냈는지,

또 왜 스무 살이라는 어리디어린 나이에 왜장을 가슴에 끌어안고

강물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는지, [논개]는 ‘논개’라는 지고지순하고

어찌 보면 외곬 같은 한 여인네를 주인공으로 하여 세밀하게 보여 준다.

쉬이, 논개는 우국충정을 온몸으로, 아니 죽음으로 증명하였다는 역사적 해석에서 벗어나

최경회라는 한 남자를 모든 것을 다 바쳐 사랑하고, 헌신했던 여인이었다.

김별아 소설 [논개]가 의미를 지닌다면,

논개를 한 여인으로서 보는 데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 아닐까.


뿐만 아니라 논개라는 한 여인네의 일생에서 더 나아가 임진왜란 당시의

나라와 사람들의 삶 또한 세밀하게 그려졌다 느꼈다.


국가에서는 두 손, 두 발 놓고 한없이 무기력하며

전시에도 명나라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일 때

백성들은 굶주리고, 빼앗기고, 치욕과 겁탈을 당했고, 논개는 그러한 모습을 보며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인에서, 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인간으로 더욱 성장한다.

분연히 일어나, 조국과 민족의 안위를 위해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내던진

의병들의 결연한 의지를 볼 땐 가슴까지 떨렸었다.


진주성의 치열한 싸움이 막을 내릴 즈음, 젖 먹던 짜낼 대로 짜내어 싸우다

그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서는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 오르기까지 했었다.


또한 [논개]를 읽으며 소설적인 재미 또한 못지않았지만

수려하고 화려한, 조금 아니 그리고 많이 낯설기도 했던 단어의 향연들로

또 한 번 읽고 난 뒤 뿌듯함을 느꼈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다시 한 번 더 읽으면서 [논개] 단어장 만들기를 해봐야겠다고~!!

f*******a 2007.07.04. 신고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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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지순한 논개의 사랑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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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하면 "일본 장수를 끌어안고 물 속으로 뛰어든 기생"이란 간단한 말로 국사책(?)에 나와있다. 하지만 논개가 왜 강물로 뛰어들었는지에 대해선 나와 있지 않고 그저 애국심에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다고 배운 기억이 난다.하지만... 그저 애국심에 자기 한 목숨을 쉽게 버릴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어 그녀의 삶이 궁금했다.   위로 뛰어난 재능을 가졌던 오빠가 죽고 어렵사리 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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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하면 "일본 장수를 끌어안고 물 속으로 뛰어든 기생"이란 간단한 말로 국사책(?)에 나와있다. 하지만 논개가 왜 강물로 뛰어들었는지에 대해선 나와 있지 않고 그저 애국심에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다고 배운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저 애국심에 자기 한 목숨을 쉽게 버릴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어 그녀의 삶이 궁금했다.

 

위로 뛰어난 재능을 가졌던 오빠가 죽고 어렵사리 얻은 딸은 남다른 사주를 타고 났고, 천하게 이름을 지으면 오래 산다는 믿음에 '개를 낳다'란 뜻의 논개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작은 시골 마을에 훈장으로 근근히 살고 있지만 늦게 본 자식인만큼 이쁨을 받으며 살아가던 중 아버지가 죽게 된다. 그 후 난봉꾼 시동생으로 인해 인생이 꼬인 논개는 평생의 은인이 되어줄 최경희와 친구이자 배신자인 업이와의 만나게 된다.

 

그녀는 황진이처럼 자기 앞에 놓인 삶을 스스로 만들어 가며 때때로 길이 없다 생각되어 지는 곳도 그 길이 옳다면 길을 만들어서라도 가고자 하는 여인이었다. 이제껏 충으로만 알았던 그녀의 희생을 작가는 과감하게 충이 아닌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게 옳든 그르든 역사 속에 가려져 있던 논개라는 한 인물을 꺼내 살포시 내 놓은 작가의 용기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김별아 작가님의 첫 작품이었던 '미실'은 기대가 컸던만큼 실망도 커서 나에게 있어 김별아란 세 글자는 그저 그런 작가였다.
하지만 '논개'를 읽고 난 지금 김별아.. 아니 김별아 작가님은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작가이고 지금까지처럼 널리 알려진 인물이 아닌 역사서에 단 한줄이 나와 있어도 글로써 소개해 줄 수 있는 그런 작가가 되었음 하는 바램이다.

 

푸른 빛의 하늘로 날아올라, 가마아득한 허공에 몸을 부렸다.
물속에 눈이온다.
죽음이 두려운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고통이 더 두려운가?
지고지순한 이팔청춘의 생을 마감하는구나...

e****n 2007.08.17. 신고 공감 8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