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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대사가 나오는 영화가 하나 더 있는데, 1990년작 '엑소시스트3'이다. 그 영화는 소설의 원작자인 블래티가 직접 메가폰을 잡아 화제가 되기도 했었지만, 흥행에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다만 대단히 참신한 몇 개의 이미지가 새로운 세대의 창작에 영향은 적지 않게 준 듯, 2010년작 영화 '리전'에선, 예를 들어 미친 노파가 천정을 기어오른다든가 하는, 그 영화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공포의 심상을 거의 그대로 모방하다시피 한 흔적도 보였다(그걸 떠나서도 제목 자체가 '리전'이었음). '고스트 라이더'는 원작 코믹이 있다. 원작이 있으면 영상화를 위한 검증된 디딤돌과 두터운 팬층이 있다는 점에서 유리한 점이 있을 테고, 기대를 잔뜩 하고 있을 마니아들이 수 틀리면 크게 반발을 보인다는 점에서 부담도 적지 않다(어드밴티지를 활용 못했다는 더 큰 문책이 들어올 것이므로 '이사회[=자본]'의 더 따가운 시선도 감내해야 할 것). 그런데, 원작 코믹 자체가 워낙에 어린 층에 사랑 받던 작품이었다 보니 이 영화의 낮다못해 어처구니없는 완성도가 크게 비판 받았다기보다, 그냥 그러려니 넘어갔다는 정도가 지금 남아 있는 기억이다. 주변에서 봐도, 초등학생에서 중학교 저학년 정도가 이 영화를 보고 대단히 열광해 대었고, 직업 없이 노는 오타쿠나 또래에 비해 지능 많이 떨어지는 단순 반복 노동에 종사하는 성인(이라고 할 수 있나?)들이, 단순한 선호 의사 표시도 아닌 열광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곤 했다. 영화(그리고 원작)이 주는 매혹은 다소 독특한 주인공의 운명 설정에 있다. 나면서부터는 아니나 운명의 순간에서 악마와 거래를 튼 죄가 있다 보니, 그의 생은 그때부터 온전한 아이덴티티로 살아가지 못하는, '저주 받은 이중 행로'로 떨어지게 된다. 태생의 저주를 받는 여러 캐릭터들이 계약을 이행하건 그러지 못하건(이게 재미있는 점인데, 악마는 그 자가 성실히 채무를 이행했는지의 여부에 상관 없이 생명에 대한 강제집행을 관철한다는 게 웃긴다. 하긴 그래서 '악마와의 계약'이란 말이 있는 거겠지만) 결국 파멸을 맞게 되는데, 주인공은 분명 대놓고 계약의 일방 파기를 선언하고, 나아가 적극적인 채권 침해(헉)를 시도하기까지 하지만, 뻔뻔스러운 자신의 행태를 고스란히 모방하는 이 필멸의 하찮은 존재의 대담함에 질려 버렸는지, 악마는 주인공의 수순밟기에 속수 무책일 뿐이다(내부 분란이라는 다른 사정도 함께 작용). 타락한 세상에서 괴물과 싸우는 자는 이제 더 이상 괴물이 되길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현대적' 각성의 결과일까? 결국 타이스를 구원하려면 내 자신이 그 '돼지'에 뒤집어씐 악령을 몸소 대체 인수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아이덴티티 (일부)상실- 포기라는 선택을 하기에 주저 않는 결과를 빚었고, 오히려 이 점이 기존 코믹 주인공들의 비현실적 순일함에 질려 버린 읿부 마니아층의 호응을 끌어 낸 것 아니었겠나 짐작한다. 그 의도는 이해가 가고도 남으나, 그 방법은 너무도 대담하리만치 졸렬한 것이라, 어떤 분석의 시선을 준다는 게 도무지 과분하리라는 생각 뿐이다. 제 주제를 모르고 폭주하는 미친 광신자(물리적 나이조차 그에게 아무 깨달음을 주지 못함), 척박한 현실에서 벌레처럼 생존을 도모하는 와중에 생긴 편의적 기억 상실증 환자의 무분별한 입놀림, 이 모든, 영혼을 팔아먹은 쓰레기의 작태에 대해, 거의 그 수준으로 기꺼이 떨어져 가면서까지 정화, 응징을 도모하는 주인공은 차라리 그 '어리석은 순수함'이 가상하게까지 여겨지지만, 그게 성숙한 모럴과는 광년의 차이를 둔다는 사실을 까먹기엔 내 나이가 아까울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초딩용임. 어떻게 봐도 결론은 마찬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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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고스트 라이더 Ghost Rider, 2007 감독 : 마크 스티븐 존슨 출연 : 니콜라스 케이지, 에바 멘데스 등 등급 : 15세 관람가 적성 : 2009.01.20. “신화는 언제나 재창조 되고 마는 것인가?” -즉흥 감상- 아마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으로 등장한다면서 어떤 영화의 예고편을 만나게 되었던 것으로 처음 인식했었지 싶습니다. 그리고는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원작이 만화책인 실사판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가던 어느 날. 불타는 해골머리의 영웅물이 그 두 번째 이야기를 공개할 것이라는 첩보에 관심의 심지에 불이 붙어 만나보게 되었다는 것으로, 이번 작품에 대한 소개의 시간을 조금 가져볼까 하는군요. 작품은 만화책의 그림들이 빠른 속도로 넘겨지는 것으로 시작의 문이 열리는 것도 잠시, 탐스러운 보름달이 뜬 어느 날 밤으로 한 남자의 목소리를 통해 서양에 존재하는 전설에 대한 이론에 이어, 그중에서 ‘고스트 라이더’의 전설을 말하게 됩니다. 그렇게 악마와의 거래를 깨버린 뒤 종적을 감춰버린 고스트 라이더가 하나 있게 되었다면서 본론으로의 문이 열리게 되는 이야기는, 세월이 흘러 가까운 과거로 어느 서커스 집단과 그중에서 오토바이 스턴트 묘기를 하는 부자에게 집중되게 되는데요. 암으로 죽어가는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악마와 계약을 하게 되었음에 ‘고스트 라이더’가 될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을 소개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계약에 따라 모든 것을 등지고 떠난 몇 년 뒤. 오토바이 스턴트 점프 쇼를 하며 살아가고 있던 그의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데요. 그러던 어느 날 사랑했던 과거속의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었음에 포기했던 인생을 되돌려 보려하지만, 지난 시절 그에게서 계약서를 받아갔던 악마가 다시 나타나 자신의 아들과 그 친구들을 어떻게 손봐줄 것을 명령하게 되지만……. 아아. 그저 큰 소리로 웃고 싶어졌습니다. 언젠가 말했었던가요? 제가 니콜 키드먼이 나오는 작품도 그렇지만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인 영화도 일부러 찾아보지 않는 주의라고 말이지요. 그 이유는 둘의 이름에서 ‘니콜’이 들어있기 때문이 아니라, 니콜 키드먼일 경우에는 인상이 너무 강해 영화를 보는 것인지 연기자를 보는 것인지 몰라서였다면, 니콜라스 케이지일 경우 본래는 진지할 것 같은 영화를 무엇인가 가볍게 만들어버리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분명 볼 때마다 연기를 잘한다고 인식이 되는 한편, 많이 접한 것도 아니지만 이때까지 만난 영화를 기준으로는 볼 때마다 왜 그렇게 웃고 싶은지요. 아. 물론 재미있어서 웃는 다는 것이 아니라, 으흠. 그냥 웃음이 나온다는 겁니다. 글쎄요. 그나마 익숙했던 몇몇 슈퍼 히어로들이 실사 영상물로 제작되어 그 모습을 보였을 때. 특히 ‘스파이더맨’이나 최근의 ‘배트맨’ 시리즈들을 만나오면서는 제가 기대하고 있던 극 사실적인 모습에 비명을 질러볼 수 있었다지만, 이번 ‘고스트 라이더’는 난생 처음 그 존재를 인식했었다보니 그리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들었던 것인지, 개인적으로는 별로였습니다. 하지만 비록 그래픽일지라도 그 타오르는 해골 머리의 연출은 또 한 번 발전된 영상 기술력을 과시한 것 같다는 점에서 모든 제작진 분들께 소리 없는 박수를 보내보는 바이군요. 일반상식으로 미국은 그들만의 신화적 역사가 없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어느 정도의 시간을 두었을 때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아니면 꼭 남다른 독창성이 있어만 하는 것인가요? 조금 더 넒은 시야에서 본다면 인간이 상상해낼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결국 서로 비슷해질 수밖에 없으면서도 서로의 개상이라 으르렁 거린다 생각하는 저로서는, 미국의 이런 짜깁기 같은 ‘전설’의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그들만의 신화’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문득, 단일민족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우리들에게는 어떤 신화가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물론 ‘단군신화’를 말할 수 있겠지만 늘어나는 다문화가정과 우리들만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있다 판단중인 현재에서, 과연 우리는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것인가 질문을 던져본다는 것으로,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쳐보는 바입니다.
TEXT No. 855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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