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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삶이 전해지길 바라며]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 결말이 너무도 끔찍함을 알기에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무거울 수밖에...유대인 학살을 다룬 책은 역사적 사실임에도 그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전해주기가 정말 무섭다. 사람이 사람으로써 행할 수 있는 극악무도함의 끝은 들려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 게다가 그것이 바로 역사의 한 부분임을 인식시켜야 하기에 더욱 그렇다.
유대인이 아니면서 유대인을 구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쉰들러에 대한 영화를 기억하면서 코르착을 읽었다. 코르착은 폴란드 태생의 유대인으로 어릴적 이름은 헨리크 골드슈미트이다 .어린 헨리는 부모에게서 ' 꿈이 없는 아이, 바보 같은 아이'로 불릴 만큼 소외된 아이였다. 그러나 책을 가까이 하는 코르착을 '꼬마 철학자'라고 인정해 주는 식구도 있었다. 듀대인임이 들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헨리크라는 이름 대신 사용하게 된 야누시 코르착은 그의 삶을 바꾸게 된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유대인 고아원의 원장이 되어서 아이들을 돌보고 아이들을 위한 책도 썼던 코르착은 그 자체만으로도 칭송받을 많한 사람이다. 그런 코르착이 더 없이 위대한 사람으로 느껴지는 건 나치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오직 아이들만을 위해서 살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유대인 집단수용소인 게토에서 아이들과 생활하게 된 코르착은 매 순간 아이들을 위한 걱정뿐이었고 대학살이 행해지는 곳으로 옮겨가는 와중에도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서 자신이 지은 동화의 한 장면을 연출하면서 행군을 했으니 말이다.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도 저버리고 끝까지 아이들과 마지막을 함께 한 코르착을 보면서 진정 사랑의 의미를 안 인간다운 인간이었음에 고개가 숙여진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나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들을 코르착이 본다면 과연 어떤 말을 할까? 지금의 안일한 일상에 안주하고 이익에 급급하는 어른들에게 일침을 가하겠지..모든 것은 자의가 아니면 그 위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코르착의 삶을 통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사랑이 우리 아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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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예루살엠의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에 가면 "코르착과 게토의 아이들"이라는 동상이 있다고 한다. 아이 10여명을 끌어 안고 있는 어른이 바로 폴란드에서 태어나 존경 받는 지도자이자 어두운 역사를 헤쳐 나간 '야누시 코르착'이라는 인물이다. 이 작품은 독일인이 자신을 알아본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함께 죽음의 길에 동행한 코르착의 일대기를 담은 그림책이다.
코르착의 삶과 그의 일기의 한 부분, 독일군의 침략으로 폴란드가 무너지고, 유대인들이 강제수용소로 보내지게 되는 등의 유대인들이 겪은 고통의 역사도 담겨 있다. 한 인간의 비뚤어진 생각과 그를 따르는 인간들의 주도 하에 얼마나 많은 유대인들이 희생되었던가. 이 책에 의하면 유대인 대학살이 자행되는 사이에 150만 명의 아이들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두려움과 불안에 떨며 굶주림과 질병으로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다 죽어간 사람들을 고통을 생각해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마지막 장면에서 기차의 문 판자 사이로 작게 보이는 아이의 붉은 색의 옷은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 등장하는 한 장면-흑백 영상 속에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던 붉은 색 원피스를 입은 한 여자아이-을 떠올리게 한다. 실은 코르착이 많은 아이들의 목숨을 구했다는 식의 결말이 아니어서 조금은 실망했다. 그러나 비록 그가 쉰들러처럼 많은 목숨을 구한 슈퍼 히어로는 아니었지만 아이들을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며 사랑하고 돌본 삶 또한 숭고하게 다가온다. 본문 뒤 속지 부분에 코르착과 아이들이 끌려가는 장면을 본 한 목격자의 기록은 이 책을 덮는 마지막 순간까지 가슴을 아프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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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유대인 학살 책이다. 벌써 이번 주만 3권째^^ 그러나 이렇게 묵직한 느낌의 책을 좋아하기에 밀어내지 않고 바로 손에 들고 어떤 이야기로 내게 충격을 줄까 하고, 한 대 얻어 맞을 준비를 미리 하고 펼쳤다.^^ 역사의 한 부분을 크게 자리하고 있는 사건이면서 우리와도 전혀 무관하지 않게 이야기를 접목시켜 할 수 있기에 꼭 소리 내어 읽어 주게 되는 책이기도 하다. 그림책이지만 다 큰 아이들을 옆에 끼고 읽어주다 보면 책을 읽어 주는 시간보다 그 외에 샛길로 빠져 이야기 해 주는 것이 더 많을 수 밖에 없는 이야기. 독일이 자신들의 민족 우월감을 가지고 유대인들을 차별하고 학대한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다. 강제수용소나 게토는 물론 유대인 이라는 표식이 눈에 잘 띄도록 별을 붙이고 다니게 하거나 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하고 상점도 유대인들은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던 사실은 이제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다만 아이들을 사랑한 ‘야누시 코르착’이 죽음의 길 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아이들이 느낄 공포와 외로움을 함께 하기 위해 행진하는 모습은 또다시 내 머리를 둔탁한 소리를 내며 가격한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그 충격에 띵하다. 영웅이 된 사람들은 그들의 내부에 무엇이 있기에 그런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것인지? 자신의 목숨까지 내 놓을 만큼의 용기가, 그를 유대인의 영웅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역사는 훗날 그것을 진실로 용기있음으로 기억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