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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는 '허삼관 매혈기'로 기억되는 작가다. 읽어본 사람은 다들 알겠지만, 가난해서 끝없이 피 팔아대는 남자의 일대기를 시종일관 진지하게 말하는 블랙코미디이다. 웃으면서 눈물이 나는 위화의 글은 장편 '형제'(1~3)에서 더욱 확대되었다. 형제는 주인공 '이광두'와 그의 가족사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보통 우리는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들 중에서도 개인의 삶을 중심으로 투영한 것을 좋아한다. 역사를 바로보는 것은 부담스럽고 때론 지루한 일인 경우도 있지만 개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항상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의 삶이 중심이 되었을 때는 그 사건에의 동화를 훨씬 쉽게 한다는 메리트도 있다. 한국 전쟁을 소재로 한 많은 영화들이 전쟁 자체보다 형제, 가족 중심의 이야기로 이끌어가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말이다. 역사를 직접 말할 때는 넌픽션이 되지만, 픽션이라면 기본적으로 이야기의 재미가 사람들의 손길을 이끄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할 때 '형제'는 픽션다운 재미를 역사적 흐름 안에서 잘 잡아낸 소설이다.
'형제'는 제목처럼, '이광두'와 '송강' 두 형제의 이야기이다. 서로 배다른 두 형제가 각각 태어나 형제가 되어서 함께 보낸 유/소년의 시간이 전반부라면 후반부는 각각 둘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전반부는 시골마을 '류진'에 닥친 '문화대혁명'이 그 주요 배경이고, 후반부는 중국의 빠른 자본주의화가 배경이다. 소설 속의 문화 대혁명은 상세한 설명 대신, 억지스런 정치적 구호와 양은 냄비처럼 쉽게 꺼지는 열정으로 묘사되어 있다. 정치의 명목이 일반 대중에게 전파되지 못하고 선전 구호처럼 독재식으로 이끌어질 때 무지한 대중은 각자에게 유리한 쪽으로 발길을 옮기기 마련이다. 그 속에서 지주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죽어가는 형제의 아버지 '송평범'과 그를 거두는 아내 '이란'의 이야기는 문장 하나 하나가 가슴을 송곳처럼 찌른다. 그 둘이 이룬 가정의 모습이 너무 행복했기에, 그저 따뜻한 밥상 하나 하나에도 만족했던 가족이었기에 끝까지 아들들에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고, 아픈 아내를 데리러 간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감금처를 탈출했다 정류장에서 처참히 맞아 죽은 아버지. 팔도, 다리도,온 몸이 제각각으로 꺾인 피투성이 아버지를 찾아 나선 아들들의 대화는 뭐라 할 말이 없게 만든다. 오랜 지병을 치료하러 떠났다 돌아와 처참한 남편의 주검을 맞닥뜨린 여린아내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생전 남편이 그랬듯이 죽음과 같은 수준의 인내심으로 의연하게 장례를 치르고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생을 차곡 차곡 준비한다. 아들들에게 밥 해 먹는 방법을 가르치고, 자신의 관까지 사놓고 나서야 다리를 뻗는 어머니, 철 안 든 아이들은 어머니의 가르침을 충실히 이행하며 항상 서로를 위하는 진짜 형제로 든든히 맺어진다.
그러나 후반부의 시간은 거칠고 빠르다. 유럽에서는 중세 이후 백 여년이 걸렸던 근대화의 광풍이 거대 대륙 중국에는 쓰나미 처럼 밀어닥친 것이다. 순수하고 지적인 청년 송강은 동생 이광두와 연적이 되어 사랑을 쟁취하지만, 이광두는 포기한 사랑 대신 특유의 수완과 기질로 사업가로서의 성공을 거듭한다. 백만장자에서 천만장자로, 천만장자에서 억만 장자에서 조금 모자란 수준으로 이광두가 자라는 동안 중국도 끝없이 변모한 것이다. 처녀 미인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처녀막 재생 수술을 하는 애 엄마, 이광두와 절연을 하게 만든 송강의 부인 임홍 역시 종내는 돈 있는 이광두의 힘을 아쉬워한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송강은 아내의 노후를 위한 돈을 벌기 위해 인공 가슴을 달고 유방 확대 크림을 팔다 종내에는 몸도 마음도 모두 망치고 임홍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철길에 반듯이 누워 자살을 택한다.
돈에 따라 울고 웃는 시골 마을 '류진' 사람들의 행태는 슬랩스틱 코미디 수준이다. 이광두에게 투자한 후 남아 돈을 주체할 수 없어 해외 여행을 다니다 그것에도 흥미를 잃고 통역을 고용하여, 해외에서 열린 시위라면 무조건 참가하는 새로운 모습의 정치가 여 뽑치, 일 없는 부총재의 직함으로 번듯하게 지어놓은 수위실에서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을 즐기는 동 철장, 한 때는 이광두를 쓸어차기로 괴롭히는 악한이었다가 류공보의 홍보 대사로 끝없이 입을 놀리는 류 공보까지.. 이들이 돈의 시류에 적당히 올라탄 운 좋은 사람이라면 칼가는 사람에서 칼파는 사람으로변모했지만 끝없이 가난한 방랑의 길을 재촉하는 관가새나 결국 돈의 힘에 청년 시절의 그 우아함을 모두 잃게 된 송강은 그 반대의 경우라 하겠다.
그래도 위화는 중국의 빠른 변화를 마땅치 않아 한다. 개인의 수준과 함께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인물만이 득을 얻는 변화가 과연 중국에 무엇을 가져다 주겠느냐는 우려인 듯. 이광두는 끝없이 돈을 벌고, 결국 그 돈으로 첫사랑 임홍을 다시 성취하지만 처참한 형제의 죽음에는 모든 것의 부질없음을 깨닫는 것이다. 피는 '돈'보다 진하다는 진리.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
'허삼관 매혈기'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있는 작가였던 위화는 '형제'를 통해 그만의독특한 스타일을 적어도 한 명의 독자에게는 정확히 각인시킨 것 같다. 특히 하나의 흐름이 아니라 진지하기도하고 풀어주기도 하는 다양한 굴곡은 세 권짜리 장편소설을 읽어내는 다양한 맛인 듯 하다. 마치 '형제' 속에 자주 등장하는 중국의 대표음식 만두처럼. 육즙의 맛을 느끼고, 빵의 맛을 느끼고, 야채의 시원함과, 고기의 진득함을 한 데 어울려 맛있게 쪄 낸 제대로 된 만두.. 이것이 소설 '형제'의 맛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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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60~90년대를 정리한 격동30년이라는 라디오다큐멘터리드라마가 있다. '형제'를 읽는 내내 '격동 30년'이란 단어가 머리 한구석을 맴돌았다. 형제는 혁명전후부터 현재진행형의 중국을 철저히 중국인으로서 관찰한, 그래서 책임있는 반성이 포함된 소설이다. 무엇보다 작가는 현재의 중국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듯 하다. 그래서 송범평이나 송강이 아닌 -자본주의를 상징하는-이광두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광두를 통해 현재 중국의 자본주의를 애증으로 비판하고, 사회의 자정작용을 수행하지 못하는 지식인을 조소한다. 이 소설은 무관한 듯 하면서도 우리나라 80년대에 유행했던, -정주영이나 이병철쯤의 성공신화 이미지를 투사하는- 선굵은 남성적 분위기의 소설, 만화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중국인인 위화의 이야기가 훨씬 '리얼'로 느껴지는 이유는 영웅적일 정도의 성실성과 개척정신을 찬미하는 신화로서의 이야기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자본주의에서 그런 식의 성공신화는 말그대로 '신화'일 뿐이란 걸 모두 알지 않나. 어차피 신화는 현실에서 불가능하니까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광두는 얍삽하고 몰염치하다. 그렇지만 묘한 매력이 있다. 아! 뭔가 자본주의에서 돈 많이 벌기 좋은 자질의 요약처럼 들리지 않는가. 작가 특유의, 이런식의 통찰력은 미련할 정도로 우직한 묘사와 맞물려 상당히 작위적인 구성내에서도 묘한 현실감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우리나라는 아마 지구상에서 가장 단기간에 정치적 민주화를 이룬 나라일 것이다. 그러나, 정신의 민주화, 사회의 민주화, 문화의 민주화가 이루어졌나 하고 묻는다면, 그건 절대 아니다. 그런데 뭐든지 빠른 대한민국은 벌써, 민주화의 반작용이 가속도가 붙어 아직 반성도 못한 채로 달려 왔던 자본화가 더욱 심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분배와 성장'(이걸 꼭 이렇게 양분해야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에서 이른바 서민이라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도 성장이다. 그리고 여전히 부자들은 분배에 인색하다. 이 시점에서 한국인 모두가 이 '형제'를 읽었으면 한다. 남의 나라 일처럼 느껴지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 대해 이렇게까지 살냄새나는 통찰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역시 지금의 중국에서밖에 나올 수 없는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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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유명한 문학 작가라면 그를 대표하는 작품이 있기 마련이다. 여기 그런 사람의 작품이 있다. 바로 중국 선봉파의 기수로써 이를 뽑는 발치사에서 소설가로 인생 대역전을 하며 이름을 떨친 현대 중국문학의 젊은 작가 '위화'가 그런 사람이다. 그런 위화에게는 초창기 실험정신이 가득한 전위적 중단편집이 있었지만, 이후 발표했던 장편소설 <인생>과 <허삼관 매혈기>는 그를 단박에 알리는 특히 국내팬들에게 '위화'라는 존재감을 각인시키는데, 일조한 대표적 작품이다. 위트와 풍자는 물론 그 속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한 날카로운 페이소스와 패러독스가 담긴 걸작같은 소설들이다. 아직 읽지 않은 분들은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
다섯 여자의 엉덩이로 스타가 이광두, 제대로 통속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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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을 재밌게 읽은 것하곤 다른 또 다른 재미로 3권을 단숨에 읽었다. 위화의 <인생>을 너무나 술술 읽으며 감동과 재미를 받았기에 서슴지 않고 한 선택이 옳았다. 구입해 놓은 허삼관매혈기도 기대된다.
이광두의 모친 이란이 생전에 이광두에게 즐겨한 말은 ‘그 아비에 그 자식’. 송강은 그 아비를 닮아 매사가 남 눈에 들고 이광두는 그 아비를 닮아 그 아비에 그 자식임을 과시했다. 이광두가 공중변소서 다섯 개의 여자 엉덩이를 쳐다보다 조시인에게 붙잡혀 우리 류진(우리 동네)의 경찰서에 끌려가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부터 그 아비에 그 자식 이란 말을 이란은 자주 사용했다.
이광두의 아비는 이광두가 태어나던 날 공중변소에서 여자들 엉덩이를 쳐다보다 똥통에 빠져 죽었다.그의 사체를 떠메고 온 게 중학교 교사 송범평이고 그의 아들이 송강이다.남편의 치욕스런 죽음앞에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사는 그녀가 아이조차도 밝은 대낮엔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앞에 데리고 나가질 못하자 아이는 발육부진이 된다.밝은 달빛만 쬐여주던 어느날 송범평에게서 위안 섞인 말을 듣고 약간의 자신감을 찾으며 살던 날 송범평의 아내가 죽는다. 장례 풍습인 지전을 만들어 고마움을 표시하는 이란.이란은 똥통에 빠져죽은 남편을 데려오고 늘 공손한 태도와 말씨로 대해 주었던 송범평에게 경외심을 갖고 있었다.이런 인연이 되어 둘은 결혼을 한다.
이광두의 아버지는 이란을 꼬셔낼때 그녀를 범하기 위해 단 한 번 낭만적이었다고 기억하는 이란에게 송범평은 낭만 그 자체, 배려 그 자체, 존경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사람 그 자체였다. 이란은 송범평에겐 천상 여자였고 둘은 사이가 너무 좋았다. 잠시도 사랑하지 않음 안되는 부부였다.덩달아 두 아이도 형제애가 남달랐는데 송강이 형이고 이광두가 동생이다.
이란이 아퍼서 큰 병원으로 멀리 보내기 전 가족사진을 찍는데 이 사진이 마지막일 줄이야.
문화대혁명으로 인한 홍위병들이 들이닥쳐 송범평은 지주로 찍혀 갇히고, 아이들은 둘이 똘똘 뭉쳐 힘겹지만 눈물겹게 연명을 한다. 송범평은 구타와 고문으로 팔이 탈구되었어도 치료도 당연히 못받지만 멀리 병원에 있는 아내 이란에게 절절한 연서를 보내 안심을 시킨다.그 와중에도 아이들에게 항상 긍정적인 모습과 밝은 표정으로 정신적 지주로 군림한다.
어느날, 이란이 알 수 없는 불길함을 확인코자 마중 나와 줄것을 요청하자, 그러마 하는 편지를 써서 보내고 송범평은 말없이 아내를 데리려 역에 나가다 홍위병들에게 탈출로 인식되어 해명의 여지도 없이 처참하게 맞아 죽는다. 시체를 보며 아이들은 자신들의 아비인지도 모른다.얼마나 처참한 모습으로 죽었는지. 나중에 알고도 부인한다. 우리 아버지가 아니라고.이 때 어쩔 수 없이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는 걸 간식식당을 하는 과부가 사람들을 설득하여 죽은 송범평을 집으로 데려가는데 이 인연으로 식당과부와 도청은 평생 이광두의 도움을 받게 된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콧물이 질질 나오고 눈물은 뚝뚝 떨어지고, 화장지로 눈물닦고 코를 풀어도 또 금방 그 지경이 되었다. 사람이 맞아죽는 정경이 얼마나 세밀히 고통스럽게 사실적인 묘사로 되어있는지 이 세상에 맞아죽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그러면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궁금함에 흡인력은 미치지 않곤 못배기게 만드는 글솜씨(번역작가의 실력)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란은 돌아와서 장례를 치르는데 송범평이 키가 큰데 관이 작아 다리를 분질러서 입관을 시키고 늙은 지주(송범평의 아버지)가 끌고 우리 류진이 아닌 늙은 지주의 동네에 가 매장을 한다.그리곤 송강을 할아버지한테 맡기고 이광두만 데리고 온다.이란은 관습보다 더한 송범평을 사랑했던 마음을 담아 머리를 7년동안 감지 않고 머리기름만 발라 사람들은 옆에 가지도 못하던 어느날 드디어 죽음을 예감하고 머리를 감으니 흑발이 백발로 변해있었다. 아이들이 임종도 못지키고 이란은 미리 자신의 장례준비까지 해 놓은 상태에서 운명하여 그렇게도 보고싶어했던 송범평의 곁에 묻힌다.
송강은 이란의 마지막 유언인 동생 이광두를 잘 보살핀다. 이 마지막 유언 때문에 매번 갈등하고 종종 괴로워한다.하지만 유언대로 동생편에 가급적 선다. 이광두는 다섯 개의 여자 엉덩이 중 임홍의 엉덩이를 최초로 본 남정네로 우리 류진의 명물이다. 임홍은 우리 류진의 1순위 미인으로 모두가 애간장을 태우며 바라보는 애인이었는데 이 엉덩이를 봤으니 사람들은 임홍의 엉덩이를 알고싶어 이광두를 삼선면을 사주며 꼬드기지만 이광두는 타고난 사업기질을 발휘해 잘도 얻어먹는다.그러던 중 임홍을 사모하기 시작한다.그러나 임홍은 송강을 맘에 두고 결국 우여곡절끝에 형제의 의는 끊어지고 송강과 임홍은 결혼을 한다.
의절한 채로 지내는 동안 이광두는 몹시 궁색하고 굶기를 밥먹듯 할 때, 임홍과 송강은 직장에 출근하며 송강에게 간식비용을 따로주지만 형제인 이광두에게 갖다주다 들킨다. 나중엔 그마져 여의치 않으니 자신의 도시락을 반씩 나눠먹는다. 그마저도 반대하는 임홍앞에서 송강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다시 의절을 선택하게 된다.
착한 남자를 나쁜남자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여자에겐 있다. 반대로 나쁜남자를 착한남자로 만들 수 있는 힘도 여자에겐 있다.부모와 자식간, 형제지간의 정을 끊거나 이어주는 것도 여자의 현명함에서 나온다는 생각이다.여자가 지혜로워야 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한 계기였다.
이광두는 정관수술을 받고 임홍이 아닌 여자는 모두 성욕상대로만 생각한다. 이광두의 사업기질은 승승장구하고 이광두의 재력과 권력 앞에 모든 언론과 우리 류진사람들은 이광두의 과거까지도 미화된 관점으로 바라본다.
장재봉(세탁소)관가새(대장간)왕케키(아이스크림)여뽑치(무허가거리치과)조시인,류작가 등 이름에서 풍기는 게 조강지처클럽의 한심한,한원수,한복수 등 이름을 연상시켰다.
문화대혁명이라는 소용돌이속에서 살아가는 민중들의 삶을 통해 볼 수 있는 인간성과 군중심리를 보았고, 우리나라는 아니어도 생존방식을 선택하는 인간군상의 여러 모습도 전개된다. 별의별 모습이지만 그 중엔 바르게 살려는 송강같은 사람이 맛보아야하는 깊은 슬픔이 있어 소설은 마음이 아프다.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송강은 순응할 뿐이지 불평이나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 그 아버지 송범평이 그랬듯이.
부모는 다르지만 형제였으며 형제이기를 거부했고 결국 형제일 수 밖에 없었던 얘기를 3권이지만 참 재밌게 참 아프게 참 생각을 요하며 읽었다.상황상황에 맞는 적절한 표현이 묘미를 더하며 작가 위화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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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제가 첫번째군요;;영광입니다
위화의 전작 <가랑비속의 외침> 이나 <허삼관매혈기>에서 보여줬던 인물들과달리 보다 보르헤스적인 접근을 시도했다고 생각되는 작품입니다 읽다보면 이곳의 배경이 중국인지 한국인지 미래의 제3의 국가인지 모를 정도로 넘나듬이 다채롭습니다.
소설적 상상력은 현실의 면밀한 관찰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작가관도 마음에 들구요..
개인적으로는 방황하고 무엇하나 손에 잡히지 않는 요즘.. 방향 설정에 약간의 도움을 준 값진 작품이었습니다.
ps. 작중 인물들의 사투리나 지방어들을 재치있고 실감나게 번역하신 역자 최용만 선생님께 한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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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참 웃긴다. 첫 문장부터 중국을 상징하던 모습인 공동 화장실에서 몰래 여성의 엉덩이를 훔쳐 보려다가 걸린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흥미를 이끌어 간다. 위화의 소설이 흥미로운 것은 절대적인 선이 없다는 것이 아닐까? 이 한사건을 풀어 가면서도 다양한 인간군상이 존재하고 이 상황을 어떻게 나의 이득에 합당하게 해 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온다. 도덕적으로 나오던 사람들도 결국은 마을 최고 미인의 엉덩이 모습을 보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사실, 엉덩이를 훔쳐 본 아이에게 모습을 구술하기 위해서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는 사실. 그리고 이런 사건을 통해서 세상과 소통하는 모습을 배우는 아이.
전통적인 중국의 인간상을 대변하는 한축과 개혁개방을 상징하는 한축이 어우러져서 펼쳐지는 대 서사시는 독자들로 하여금 정신을 못차리게 할 정도로 숨가쁘다. 그 안에 장치된 다양한 이야기는 거대한 담론을 이야기 하지도 않고, 그저 살아가는 모습일 뿐이다. 아무것도 모른채 며칠씩 기차를 타고 베이징 티엔안먼 광장에 가서 마오쩌뚱에 열광도하고, 무수한 핍박 속에서 시골로 내려가 무의미한 노동에 시달리던 홍위병의 모습을 우리에게는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시대에는 그러한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슬프고 혼란스러운 상황마저도 위화의 손을 거치면서 과장되지도 않고, 작아지지도 않은 그 시대를 날것 자체로 받아 들이게 되는 것이다.
형제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한 두 형제는 삶이 극과 극으로 변한다. 동네 양아치로 소문난 동생이 개혁개방의 기류를 타고 중국의 거대 부자가 되어 가는 현실과 누구 부럽지 않고 평범하고 안정된 직장을 다니던 형의 모습은 중국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옮겨 놓은 것 같다. 시대의 흐름을 타는 사람과 퇴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네 모습과 다른게 없다는 보편성마저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도 말은 틀리지만 잘살아 보겠다고 대도시로, 대도시로 나가고 공장에 앉아서 가발도 만들고 서로간에 배신도 하면서 그렇게 살아 왔고, 지금도 살아 가고 있다. 이들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아주 흡사하다고 생각된다.
위화의 소설은 재밌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너무 빨리 읽힌다는 불만을 가질 정도로 소설 속 재미에 푹빠져 있었다. 위화의 소설에는 아드레 날린이 발라져 있는 것같다. 책장을 넘기는 촉감부터 시작해서,읽는 눈의 즐거움, 그 다양함을 즐기는 뇌까지 온몸에 즐거움을 툭툭 던진다. 한편의 판소리를 듣는 것처럼 환상적이고 즐거운,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독특한 슬픔이 어우러져서 크게 한판 즐겁게 놀아본 난장이 된 것 같다.
이 소설 기다리는데 10년이 걸렸는데, 다시 10년을 기다려야 하나? 식상한 소설에 질렸다면 아무 후회없이 이 책을 집어 들고 냄새나는 화장실부터 시작해보자. 3분안에 주인공과 동일시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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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위화.. 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책!
중국어를 공부할 때 선생님께서 강추해주신 <허삼관 매혈기>를 읽고 펄벅과는 다른
매력을 느꼈다.
한 권짜리 허삼관보다는 세 권이어서 그런지 좀 안정감이 느껴진다고 할까..?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 강약과 편안한 전개를 느꼈다.
1권을 보면서 펑펑 울었고, 2권을 보면서는 깔깔 웃었다. 그리고 아직 3권은 읽지 못
했다. 이번 주말에 다 읽어야겠다.. 너무 재미있어서 한 번 보면 다 읽기 전까지는
빠져나오기가 힘든 책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반영한 대하소설을 보면 서민들의 힘
겨운 삶에 항상 마음 한 켠이 저렸는데.. 중국의 근대사도 만만치 않다는 걸 알았다.
아마 대부분의 나라가.. 기존의 틀에서 새로운 틀로 넘어가는 과정을 겪으면서 혼
란과 방황, 상실등 정서적 공황상태를 느낀게 아닌가 싶다. 비록 3권의 압박은 있
지만 친구들에게 마구마구 선물해주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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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두가 사랑한대요. 준비됐어요?" 방직공장에 다니는 임홍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이광두가 다섯명의 아이들에게 소리치게 한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이 "이광두가 임홍이랑 성교한대요. 준비됐어요?"로 외치게 될 줄이야. 역시 아이들에겐 이 말이 어려웠나 보다. 방직공장에 가다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잊었으니 말이다. 아마도 이 때가 이광두에겐 송강과 최고로 행복했던때가 아니었을까. 이광두가 복지공장의 공장장이 되고 그 임명장을 손으로 써서 간직할 정도로 송강이 무엇보다 기뻐해줬으니까. 물론 송강의 마음이 임홍을 향하고 있어 그 마음은 무척이나 괴로웠겠지만 어찌되었든 이광두와 자주 나타난 송강을 임홍이 사랑하게 되어 두 사람이 이루어졌으니 나중에야 세상을 다 얻은듯 기뻤을 것이다. 그러나 동생 이광두가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했다는 자괴감은 사라지지 않고 평생 괴롭히게 되니 송강의 처지가 참으로 애처롭다고 해야하나.
송강의 아버지 임범평이 이광두의 어머니 이란과 재혼을 하고 이 둘은 형제가 되었다. 송범평이 문화대혁명때 희생되고 나중에 이란마저 세상을 떠났을때 이광두를 부탁한다는 어머니의 말에 "밥 한그릇만 있으면 광두를 먹일게요. 옷 한벌만 있으면 광두에게 입힐게요"라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임홍이라는 여자로 인해 이 둘 관계가 허물어져 버렸으니 형제란 말이 무색할 정도다. "사랑하는 임홍을 뺏아가는 사람은 도륙을 낸다"고 호기롭게 외치던 이광두에게 송강은 "형제여도?"라도 묻는다. "그렇다"고 대답하는 이광두의 말에 마음의 짐을 내던지고 임홍과 결혼하는 송강을 형제이기에 도륙을 내지 않고 내버려둔다. 형제로 송강을 생각하는 이광두의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짠해진다. 물론 먹고 살기 힘들때 이광두가 송강의 돈을 빼앗아 가는 모습에선 화가 좀 나긴 하지만 말이다. 형제이기에 힘들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크게 화가 날 상황은 아니긴 하다. 밥 못먹고 사는 동생이 있다면 형제라면 누구든 배고프지 않게 도움을 주지 않겠는가.
그런 송강의 모습을 보기 싫어하는 임홍으로 인해 "형제가 아니다"라고 선언하게 되는 송강, 이것으로 이광두와의 관계는 정녕 정리가 되었는가. 이광두가 고물을 모아 파는 사업이 커나갈때 일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송강에게 달려가지만 형제의 관계를 자신이 끊어버렸기에 물리쳐버리는 송강을 바라보는 임홍은 그저 "고물상을 하는 사람일 뿐이다"라고 무시해 버린다. 아, 어찌 이런일이. 함께 기뻐해주는 가족을 원했건만 그것마저 임홍은 끊어버리게 하다니 정말 안타깝다. 어린시절 할아버지를 따라 시골로 간 송강이 이광두가 보고싶을때면 달려와 "토끼표 캐러멜"을 놓고 가곤 했던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일까.
세월이 흘러 이광두와 송강의 처지는 너무도 크게 달라진다. 이광두는 류진에서 초특급 갑부가 되고 송강은 직장에서 쫓겨나 폐에도 병이 들어 변변한 직장하나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곤궁하여 "이광두를 찾아가 보라"는 임홍의 말을 죄책감에 여전히 물리쳐 버리는 송강. 찾아가 보라고 부추기는 임홍이 난 왜이리 싫어질까. 형제가 함께 할 수 있게 해 주었다면 두 사람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텐데. 분명 이광두는 임홍과 결혼한 송강을 용서해줬을테니까. 그것이 형제니까. 거칠게 욕설을 뱉긴 하지만 자신과는 일을 함께 하지 않고 주유와 장사를 하러 떠났다는 말에 화를 내지 않았던가. 이것이 송강에 대한 이광두의 마음인 것이다. 훗날 송강이 죽었을때 "난 고아다"라고 우는 그의 외로운 심정이 이해가 간다.
그 옛날 변소에서 임홍의 엉덩이를 훔쳐보고 "새끼엉덩이, 엉덩이 대왕"이라는 별명을 얻고 임홍의 엉덩이 이야기를 팔아 삼선탕면을 수없이 얻어먹는 광두는 이때부터 이미 사업에 대한 소질을 보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첫시작은 끔찍했지만 진정으로 임홍과 이광두가 잘 되었으면 하고 바랬었다. 잘생긴 송강과 결혼하여 아이는 없지만 행복했을 임홍도 이광두의 재력에선 무너져 내리지 않던가. 사람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인공유방을 가슴에 붙여 유방크림을 팔아 임홍에게 큰돈을 쥐게 해 주고 싶었던 송강의 마음은 철저히 버려지게 된다. 인공유방이라니..어쩌다 이 지경까지 갔는지 마음이 아프다.
이광두가 류진에서 초특급 갑부가 되면서 그의 사업에 투자했던 여뽑치, 왕케키는 주주가 되어 세계여행을 하며 여생을 편하게 보내게 된다. 썩은이나 뽑던 여뽑치, 아이스케키를 팔던 왕케키가 이렇게 큰 부자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어린시절 송강과 자신을 그렇게나 괴롭히던 조시인과 류작가도 그의 그늘 아래서 먹고 살게 되니 이것으로 그때의 복수는 다 한 것이 아니겠는가. 다만 모든 것을 함께 하고 싶었던 형제가 없어 마음이 쓸쓸하고 슬플뿐이니 우주여행을 갈때 송강의 유품이나마 함께 하고자 하는 이광두의 마음이 와 닿아 송범평, 이란도 오래오래 살아 네식구와 가족사진을 찍었던 그때의 행복을 다시 느끼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나의 쓸쓸한 마음을 밀어내 본다. 이발비가 없어 번쩍번쩍 대머리로 다닌다고 '이광'이라는 이름이 아닌 '이광두'라는 별명으로 불리어진 그가 이렇게 크게 성공했으니 죽은 부모님도 아마 크게 기뻐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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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 슬픔. 안타까움. 실소. 황당. 관조.
3권을 읽는 동안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느낌...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을 공부하다 보면 중국에 대해 모순된 생각과 감정을 갖게 된다.
매력을 느끼고 좋아하면서도 편견의 골이 더욱 깊어지기도 한다.
자신의 나라와 사람들을 바라보고 염려하는 위화의 시각에 어느 순간 나도 동조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것은 중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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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열광한 위대한 중국의 작가인 지는 잘 모르겠으나, 단 숨에 읽히는 전개와 희비극이 얽힌 이야기는 읽을 때는 웃음을 다 덮고 나서는 이상한 여운과 뒷 맛을 남기는 근래 읽은 책 중 유례를 찾기 어려운 소설이라 하겠다. 문혁바로 이전부터 등소평의 개혁 개방 시대를 거쳐,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있는 중국의 현재 모습까지를 배경으로 하는 '형제'는 위악스럽게도 가련하기 짝이 없는 두 형제를 주인공으로 그 고통만큼이나 알싸한 중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다. 의붓형제 송강과 이광두는 형제의 우애라기 보다는 유사 연인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며,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거나 받으며 서로 다른 길로 성장해 간다.
소설의 첫 장, 이광두는 금 도금된 변기에 앉아, 우주선을 타고 우주여행을 할 생각을 하고 있다. 나무상장에 한 줌 재로 남은 그의 형 송강 또한 생각하며, 지난했고 고통스러웠지만 찬란했고 아름다웠던 그러나 더럽고 비참했던 그의 어린 시절로부터 기억을 건져 올리고 있다.
"이광두, 이광두" "송강, 송강" "이광두, 이광두" "송강, 송강"
여리고 지나치게 정직했기에 어리숙할 수 밖에 없었던 송강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것에 대해 그 경솔함을 탓할 생각은 없다. 아마도 견디기 어려웠을테니까,,,,, 사람들은 송강같은 인물에게 바보천치라며 화를 내거나 원망을 쏟아 붓겠지만 원래 그러한 성품을 원망하는 일처럼 바보같은 일도 없다.
처음에는 이광두가 송강을 아예 잊어버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허기 진 배를 육욕으로만 채우던 이광두에게 가장 부족한 결핍은 바로 '송강'의 부재였다. 마흔이 다 되어 가는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이제 난 고아야", 다 큰 어른은 가족이 하나도 남지 않았어도 자신을 고아라 말하지 않는다.
수천억의 재산과 권력를 거머쥔 이광두에게 가장 필요한 송강이 없다는 사실은 그에게 그 어떤 것의 부재보다도 크게 다가온다. 그런 맥락에서 이광두에게 연민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광두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은 엉덩이가 예쁜, 그의 첫사랑이었던 류진 제일의 미녀 "임홍"도 아니었으며, 그가 몰두했던 대상은 돈도 권력도 아닌 송강의 인정이었다. 송강이 베낀 복지공장 공장장 임명서를 찾아내 간직하는 장면에서도 알 수 있다.
"임홍"은 어설픈 팜므파탈이다. 그녀자신은 자신이 얼마나 형제의 의를 갈라놓았는지 알 지 못한다. 물론 이는 형제에게도 마찬가지이지만,,, 후에 임홍이 퇴폐미용실을 운영하는 모습이 그려지면서 그녀의 잊혀진 파탈로써의 면모가 잘 드러난다.
이광두가 천하의 개후레자식이든 어쨌든 간에 왜 자꾸 가장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 지 모르겠다. 이광두를 가장 빛나게 하는 이광두를 가장 사랑해주는 이광두가 가장 사랑하는 이광두를 인정해주는 송강이 없어서 일까,,,
송강의 뼛가루를 우주에 뿌리고 오면 적어도 이제는 고아가 되었다는 생각에서는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위화가 대륙의 위대한 작가인 지는 잘 모르겠으나,,,, 필력있는 작가임에는 틀림없고 평가대로 번역은 정말로 탁월하다. 동철장, 아비 아들 관 가새, 장재봉, 여뽑치, 왕케키, 소 아줌마, 복지공장 열네충신,류 작가, 조 시인, 주 유, 류 진의 사람들,,,,, 송범평과 이란, 임홍 그리고 이광두와 송강,,,형제의 사람들이다.
오랜만에 밤을 새운 기억이다. 더럽고 어지러운 중국의 지난날과 지금은 우리의 다름아니기 때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