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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차기 대통령과 정치권이 해야 할 일 [ 입시공화국의 종말 ]
"추천 [서평] 차기 대통령과 정치권이 해야 할 일 [ 입시공화국의 종말 ]" 내용보기
한국에서 외국사회를 바라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들이 많듯이, 한국 밖에서 한국을 바라보면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모습이 전통에서 이어져온 문화적인 것이라면 '다름'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상식'적으로도 이상하면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고. 저자는 외국에서 볼 때 한국사회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 중에 교육문제가 특별하다고 말한다.그 중 하나는 중,고등학교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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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외국사회를 바라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들이 많듯이, 한국 밖에서 한국을 바라보면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모습이 전통에서 이어져온 문화적인 것이라면 '다름'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상식'적으로도 이상하면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고. 저자는 외국에서 볼 때 한국사회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 중에 교육문제가 특별하다고 말한다.
그 중 하나는 중,고등학교까지는 OECD 상위권에 위치하는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순위 밖으로 밀려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학에 서열을 매기는 '학벌'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일등부터 꼴찌까지 순위를 매기는 '객관식' 시험이다. 객관식 시험의 경우 초중고, 대학 뿐 아니라 각종 고시와 공무원 시험, 자격시험 등 한국사회의 거의 모든 시험은 객관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그 핵심 이유와 뿌리를 '입시공화국'에서 찾는다. '입시감옥'이라는 단어가 더 알맞을 수도 있다.


"온 나라가 병영이던 군사독재 시절에도 아이들에게만은 자유가 있었다. 모든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놀며 자기들만의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그 느린 시간, 어른이 보기엔 별 실용적 의미가 없어 보이는 시간이야말로 우리의 정서와 인간적 면모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는 걸 안다.
그런데 지금 아이들은 어떤가? 그들의 삶은 감옥에서 지내는 수인과 다를 바 없다. 과거 방식으로 아이들을 구속하는 일, 즉 폭력이나 권위주의적 방법을 통해 아이들을 구속하는 일은 이제 적어졌고 누구나 비판적이다. 이를테면 아이들을 심한 매로 다스리는 교사는 더 이상 발붙이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아이의 미래'라는 명분 아래 이루어지고 있는 구속은 전 사회적 합의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심지어 우리는 그 가공할 인권 탄압을 '교육 문제'라고 부른다."(p.16)


지금의 40~50대가 다니던 초,중,고등학교와 지금 초,중,고등학교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애기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아이들을 구속하는 감옥은 학교 뿐이 아니다. 가정과 학원, 그리고 사회 전체가 감옥이 되었다. 학부모와 교사, 학원강사, 언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모두 감옥의 간수 역할을 자청하고 있다.
무엇을 위한 감옥인가? 그것은 '수능시험'을 위한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입시만을 위해 준비한 것이 단판 승부로 결정되는 날, 한국에서는 기괴한 현상이 벌어진다. 1등 대학부터 꼴등 대학까지, 인기 학과에서 비인기 학과까지 서열이 매겨진 한국 사회에서 수험생들은 더 상위의 대학과 학과를 가기 위해 1등부터 꼴등까지 일렬로 줄을 세우는 시험을 치러야 한다. 수험생과 학부모, 학교는 물론 온 나라가 몸살을 앓는 가히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입시. 과연 이 입시는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
우리나라가 유례를 찾기 힘든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높은 교육열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입시에 목숨 거는 과열된 교육열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사회 발전을 이룰 수 있을까? 21세기는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지식정보와 문화의 시대라고 한다. 그런데 과연 지금의 입시와 교육 철학이 그러한 시대에 대비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바로 입시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한국의 교육과 인재관에 던지는 본질적인 회의이자 도전장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은이는 지금의 입시로는 “NO”라고 한다. 인재와 입시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학교와 학원 그리고 가정이라는 거대한 감옥에 갇힌 채 감시와 처벌 속에서 길러지는 우리의 아이들은 주체적이고 자율적으로 사유하고 행위할 수 있는 기회를 말살당한 채 인재가 아니라 그저 ‘쉼 없이 뛰는 조그만 선수들’로 양산되고 있을 뿐이다.
한국의 교육은, 좀더 정확히 말해 오직 입시만을 위해 존재하는 교육은 인적 자원밖에 가진 것이 없는 나라에서 인재를 죽이고 나라를 망치는 ‘원흉’이다. 교육이 인재를 기르고 국제 경쟁력을 제고한다는 주장은 한갓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열화된 대학의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무한 경쟁에서 승리한 엘리트들은 허약할 수밖에 없다. 허약한 엘리트들이 지배하는 사회는 자연히 허약할 수밖에 없다. 이런 엘리트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커녕 남을 위한 일말의 배려도 찾아볼 수 없다.
저자는 상식 수준에서 생각해봐도 지극히 비정상적인 한국의 입시 교육을 비판하고 있다. 아이들이 힘들어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정도의 어려움은 참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지금의 무한 ‘입시’ 경쟁이 유일한 방법인지. 누가 ‘인재 이데올로기’를 만들고 아이들을 무자비한 입시 경쟁으로 내몰고 있는지를 파헤치고 있다.


서울대는 전 세계 대학에서 그 전례가 없는 독특한 풍광을 보여준다. 즉 세계 최상위권의 인재들을 싹쓸이하고 있다. 서울대는 한마디로 우수한 인재들의 집합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인재들이 차고 넘친다. 그런데 왜 대한민국의 최고 대학일 뿐 국제적인 위상은 그다지 높지 않은 것일까? 세계적인 대학자는 없고, 희대의 논문 조작이 있을 뿐이다.
지은이는 입시만을 위한 교육에서 그 문제점을 찾는다. 수능 시험이 끝나면 고등학교 수업은 시간 때우기일 뿐이다. 더 큰 문제는 대학 교육이 시작하기도 전에 끝나버린다는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치열한 무한 경쟁을 뚫고 대학에 입학하는 것으로 경쟁은 끝난다. 가능한 높은 서열의 대학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목표이고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작 공부를 시작하고 제대로 경쟁해야 할 대학에서는 더 이상 '공부'하지 않는다. 오로지 고시 시험과 스펙 쌓기 뿐이다.


공교육이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공교육이 부실해서 사교육으로 몰리고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공교육의 무엇이 부실한 것인가? 지은이는 “공교육이 부실하다고 말하는 것은 대학 입시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경쟁 학생보다 1점이라도 더 좋은 점수를 받아서 한 단계라도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학과에 입학시키는 것이 교육의 목표인 상황에서 공교육은 부실할 수밖에 없다. 모든 학생들에게 똑같이 제공되는 학교 수업은 남보다 앞서는 것이 교육 목표인 상황에서 내용이 견실해도 불충분하고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줄 세우기에 방해가 되는 학교 교육은 내용과 방식을 아무리 개선해도 부실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대학 서열화가 계속 유지된다면 공교육이 부실하다는 비난은 더 거세지고 많은 학생들은 사교육으로 몰리게 될 것이다.


한국의 학교 교육은 토론식이나 논술식이 아닌 주입식 교육과 ‘찍기’의 객관식 시험이 중심을 이룬다. 학교나 교사 모두 논술식 교육을 진행할 준비와 능력도 부족하지만, 채점에 대한 시비 때문에 정답이 명백하게 있는 단답형 시험을 벗어날 수 없다. 논술을 위한 사교육시장은 급팽창하고 있다. 공교육이 채워줄 수 없는 것을 사교육이 채워주고 있는 것이다. 학교 교사는 논술에 있어서 ‘아마추어’이고 학원 강사는 ‘프로’이다. 팽창하는 사교육은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성적, 순위가 매겨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논술, 통합 교과형 논술 시험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서울대와 주요 사립대들이 학생들을 일렬로 줄 세워 기존의 대학 서열을 공고히 하기 위한, 그래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대학의 자율성이니,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느니, 아니면 국제 경쟁력 제고를 위한 엘리트 교육이 필요하다느니, 그리고 이는 국제적 경향이니 하는 것은 그저 변명이요 허위의식이요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한국의 대학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국가, 국민, 사회 등 거창한 이름으로 감추고 있다.
객관식 시험에서는 “정답이 1개인 특성을 감안해 어느 모로 보나 정답인 답항을 골라야” 한다. 복수 정답을 인정하라는 소송의 법원 판결이다. 정답이 반드시 존재하고 그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을 받는 우리 학생들이 창조적인 인식과 자율적인 사고가 가능할까? 프랑스 바칼로레아에선 “진실에 저항할 수 있는가?”라는 식의 문제가 출제된다. 이런 문제에 정답이 있을 수 없다. 자신의 견해를 논증하는 과정 자체 즉, 논증 방식과 절차 그리고 사유의 참신성과 독창성 등이 답일 것이다.


진짜 경쟁은 중,고등학교가 아닌 대학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진정한 경쟁을 해야 할 대학에서는 경쟁하지 않는 엘리트들이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허약한 엘리트들은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던 것처럼 정답 찾기에 여념이 없다. 정답을 찾으면 나머지는 모두 오답이다. ‘조국 근대화’, ‘세계화’, ‘BK21’, ‘천재론’, ‘지식정보 사회’, ‘FTA’ 이것들은 허약한 엘리트들이 찾은 정답들이다. 한때 정답이었다가 다른 정답이 제시되면 오답이 되고 만다. '성장'과 ‘세계화’가 정답이던 시절 모든 것을 성장과 세계화에서 찾았다. 무엇을 해야 하는 이유도 ‘성장'과 '세계화’였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그랬다. 그러나 그 정답의 결과는 외환 위기였다. 이후 새롭게 찾은 정답은 ‘지식정보 사회’이다. 구호만 난무하고 수단에 불과한 컴퓨터 보급과 인터넷을 까는 것이 전부였다. 정답을 찾아 헤매는 허약한 엘리트들은 사회 전체를 뒤흔들어 놓는다. 허약한 엘리트가 지배하는 허약한 사회의 스산한 자화상이다. 허약한 엘리트의 이데올로기에 허약한 민중들이 끌려다닌다.
엘리트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지 않다는 것은 이미 입증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엘리트가 다수를 대신하여 이끄는 시대도 지났다. 정보를 공개하고 공유하여 다수가 참여하는 토론의 장을 만들고, 지혜와 대안을 수렴하여 사회적으로 합의하도록 해야 한다. 인터넷과 정보통신기술은 이미 그것이 가능하도록 기반을 조성해 놓았다. 구조적으로 참여가 어려운 이들이 배제되지 않도록 조금 더 고민하고 배려하면 된다.


대통령 선거가 70일 앞으로 다가왔다. 학생들을 체념과 절망과 포기로 밀어넣고 있는 입시공화국, 입시지옥을 바꾸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정책을 제시하여 동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정답이 될 만한 대안들은 이미 몇 해 전부터 제시되어 있다. 무상교육, 중고교와 대학의 분리, 대학평준화, 수능시험 폐지와 자격고사,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 전문대학원 체제, 교육민주화, 교사 충원 및 획일적 교육방식 개선, 각종 객관식 시험제도 개선 등... 토론하여 선택하고 합의를 도출하여 내년부터 새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면 된다.
독일 대학에서 저자가 보내는 한국교육애 대한 이 메시지를 대선 후보들, 특히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에게 들려주고 싶다. 제대로 된 교육도 복지국가의 중요한 요소다. 안철수 후보의 <안철수의 생각>이나 문재인 후보의 <문재인의 힘>에서는 한국 교육문제에 대한 심각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두 후보 뿐만 아니라 구조적으로 엘리트 지위에 위치한 사람들부터 '엘리트 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 2012년 10월 09일 ]

c****n 2012.10.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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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가 없어져야 대한민국이 발전한다.
"서울대학교가 없어져야 대한민국이 발전한다." 내용보기
감옥과 공장과 학교의 같은점은 명령과 지시에 순응하는 인간을 만든다는 점이다. 학교가 감옥의 모습과 비슷하는 점을 다시한번 떠올렸다. 현실에 순응하며 사는 사람들은 잘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외국에서 공부하다 들어오는 아이들이 현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떠나는 것을 보면서 우리학교의 모습에 서글픔을 느낀다. 쉼없이 뛰는 조그만 선수를 기르는 교육, 거기에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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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과 공장과 학교의 같은점은 명령과 지시에 순응하는 인간을 만든다는 점이다. 학교가 감옥의 모습과 비슷하는 점을 다시한번 떠올렸다. 현실에 순응하며 사는 사람들은 잘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외국에서 공부하다 들어오는 아이들이 현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떠나는 것을 보면서 우리학교의 모습에 서글픔을 느낀다. 쉼없이 뛰는 조그만 선수를 기르는 교육, 거기에 가장 잘 순응하고 열심히 따라온 학생들이 쟁취하는 것이 서울대학교 진학이라는 영광?의 타이틀이다. 이에 반해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독일의 아비투어(졸업시험 및 대학입학 자격시험)은 암기한 내용을 평가하는 객관식 시험이 아닌 자신의 생각을 논리로 증명하고 타인을 이해시키는 주관적인 시험이다. 예로. 진리는 인간을 구속하는가,자유롭게 하는가?  감각을 믿을 수 있는가? 계산, 그것은 사유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타인을 존경한다는 것은 일체의 열정을 배제한다는 것을 뜻하는가? 이런 것들이다. 생각하는 토론하는 연습을 거의 해보지 못한 우리들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고민해 본적도 고민할 필요도 없이 학창시절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봐도 이런 질문에대한 명확한 답을 모르겠다. 물론 이런 질문이 명확한 답을 요구하기 위하여 낸 문제는 아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논거를 통하여 입증하고 결론을 내리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럼 지금우리는 이런 문제에 대답할 수 있는가?

 

사교육은 좋은 대학을 들어가기 위한 개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현상이고 좋은 대학을 나와야 사회에서 그들의 학벌을 인정해서 받아들여준다. 현재 그들의 능력보다 그들이 속한 학벌과 위상을 더 중요시한다. 요즘 어느 정도는 이런 학연을 타파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으니 너무 작은 부분이다. 대학에서는 고교평준화를 해체해야 우수학생들을 대학에서 선발하여 세계 명문대학이 될수있다고 한다. 역설적이게도 현재 한국pisa 성적을 보면 한국은 고등학교 학생들의 실력이 세계 최상위권이다. 이런 학생들을 받아들인 대학에서 노벨상을 지금껏 한차례도 수상하지 못하고 큰 업적같은 것들이 없다는 것은 지금의 대학교육이분명히 잘못되었다는 말일 것이다. 고등학교때만 암기위주의 교육에 올인했던 학생들이 대학가서는 놀고먹는 대학생이 되는 문제도 있고 중등교육에 이어 고등교육인 대학에서도 학문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암기하고 적어내는 교육만을 하고 있으니 발전에 역행하는 결과를 보이고 있다. 토픽위주의 수업을 통하여 토론하고 논쟁과 사고를 통하여 정답이 없는 문제에도 도전하고 최소한 현재우리들에게 최선의 대안을 찾아내는 연습을 많이 할수 있는 장의 모습으로서 대학이 필요하다. 취업을 위한 마지막 학교로서가 아니라.

한 물리학 시험 문제 , 기압계로 고층건물의 높이를 재는 문제에서 보통은 기압차를 이용해서 문제를 푸는데 옥상에 올라가 기압계에 줄을 매어 떨어뜨릴때 낙하시간으로 거리를 측정할수있다고 대답해 교수와 실랑이가 벌어진 닐스 보어의 우화처럼에서 우린 사유의 자율성 즉 학생들에게 생각과 표현, 질문을 자유롭게 할수있는 기회를 넓게 열어놓아야 한다. 심지어 그는 이외에도 대여섯가지의 다른 답을 제시해 교수를 놀라게했고, 그가 당시 생각한 답중에 제일 만족한 것은 "기압계를 건물관리인에게 주고 설계도를 얻는다" 였다니 참 생각이 열려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더불어 20세기 물리학의 두축을 형성하는 양자역학의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생각된다.  

 

시험을 주관식화하고 토론과 논의가 활발한 교실의 모습은 언제쯤 형상화 될까?

이렇게 되면 교실에 웃음과 대화가 넘치게 되겠지

k*****1 2012.01.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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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뚤어져도 한참 비뚤어진 한국 입시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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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2009 대학 수학 능력 시험을 치뤘다. 수십만명의 학생들이 주인공이 되고, 전국민이 주목하는, 매년마다 대한민국을 들썩이는 수능! 보기 5개 중 정답 하나만을 고르는 이 시험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수능 응시자들의 주관성은 짓밟히고, 정답 아니면 오답이라는 흑백 논리를 머릿속에 심어주는 이 시험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되었다. 한 학원이 주최한 입시 설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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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2009 대학 수학 능력 시험을 치뤘다. 수십만명의 학생들이 주인공이 되고, 전국민이 주목하는, 매년마다 대한민국을 들썩이는 수능! 보기 5개 중 정답 하나만을 고르는 이 시험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수능 응시자들의 주관성은 짓밟히고, 정답 아니면 오답이라는 흑백 논리를 머릿속에 심어주는 이 시험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되었다. 한 학원이 주최한 입시 설명회에는 어떻게든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안달이난 학생과 학부모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국외에서 이런 상황을 본다면 대한민국의 교육에 대한 열정을 정말 대단하게 생각 할 것이다. 교육 제도를 살짝만 들여다보면 경악을 하겠지만.

 

  '세계 정상급 학생들, 그중에서 최고의 학생들만을 싹쓸이하는 서울대는 왜 대한민국 최고에 불과할까? 입시에 목숨 거는 과열된 교육열은 앞으로도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까? 학생들은 정답을 고르는 객관식 시험을 통해 주체적이고 자율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을까?' 위 책에 나와있는 글 중 일부이다. 저런 글이 실린 머릿말을 읽자마자 난 이 책에 매료되었다. 오직 객관적 지식만을 요구하는 한국 입시 제도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내 의견과 부합하였다. 내 경험에 학교 시험 공부는 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진다. 객관적 정보들을 다 수용하고 나서 문제를 풀때면 주관적인 생각이 개입하게 된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문제를 풀기가 더 힘들어진다. 대한민국의 엘리트가 되기 위해선 딱 객관적 정보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적혀져있는 그 내용만 학습하면 된다. 주관적 요소는 엘리트로 가는 길을 방해할 뿐이다. 인생을 많이 살아보지 않은 나도 이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

 

  2년후에 수능을 칠 나는 책 내용 대부분 공감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 의견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어릴때부터 주위 지인들이 서울 상위 대학에 합격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지방대에 합격했다는 이야기는 아예 들어본 적도 없다. 왜? 지방대 합격했다고 자랑할 학생이 어딨겠는가? 설령 그렇다쳐도 어른들은 우리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을것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바라는건 일류대학이니깐!! 성장하면서 우린 상위권 대학 진학을 당연하게 추구하게 된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우리를 교육하는 사회 자체가 그렇게 몰고간다. 일류 대학에 합격하면 그걸로 인생이 결정되는 것처럼 가르친다. 왜? 대한민국의 교육제도는 왜 이런 것인가? 내가 기득권층이 되면 반드시! 무슨 일이있어도 이 망할 교육 제도는 다 뜯어 고칠 것이다.

g*****o 2008.11.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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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의 교육'에서 '주인의 교육'으로...
"'노예의 교육'에서 '주인의 교육'으로..." 내용보기
새정부가 등장하면서 공교육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그간 명목상이나마 유지되고 있던 0교시, 심야 교습 금지 등의 기본적인 '학생 인권 보호안'을 사실상 철폐하겠다고 하고 있으며, 대통령은 직접 '학생, 학부모는 경쟁하는데 교사는 경쟁하지 않는다'며 교사 평가를 제도화 해 교사간 경쟁을 시키겠다고 말한 바 있다. 세간에는 이에 대해 찬반 의견이 존재하는 듯 하고 교사들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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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부가 등장하면서 공교육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그간 명목상이나마 유지되고 있던 0교시, 심야 교습 금지 등의 기본적인 '학생 인권 보호안'을 사실상 철폐하겠다고 하고 있으며, 대통령은 직접 '학생, 학부모는 경쟁하는데 교사는 경쟁하지 않는다'며 교사 평가를 제도화 해 교사간 경쟁을 시키겠다고 말한 바 있다. 
세간에는 이에 대해 찬반 의견이 존재하는 듯 하고 교사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분들도 있는 듯 하다. 

글쎄,  누구나 교육에 대해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이 나라에서 왜 교육은 늘 개혁의 첫번째 대상이 되고 교육 현장에 있는 누구나 이 문제에 대해 답답해 하고 있을까 ?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문제지만 우리 교육의 온갖 모순들은 '전면전'이라고 지칭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끝없는 '일류 대학 진학 욕망' 때문이다. 이 끝나지 않는 전쟁 때문에 아이들은 '입시'라는 전투에 매달린 전사가 되었고 학부모들은 이들에 대한 끊임없는 '병참 지원'을 하지 않으면 된다. 한쪽에서 늘 아이들의 '인성 교육'이라는 문제를 지적하지만, 그건 당사자들에게는 '배부른 소리'로만 들린다. 눈 앞의 적들을 물리치고 저 높고 생존률이 극히 낮은 '일류 대학 입학'이라는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당장 총알을 충전하고 체력이 고갈될 때까지 또는 정신이 나갈 때까지 앞으로 앞으로 돌진해야하기 때문이다.

김덕영의 책, [입시 공화국의 종말]은 제목에서 노골적으로 표현된 것처럼 '대한민국'을 '입시공화국'이라 지칭하고, 이 끝없는 전쟁의 종말만이 대한민국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선언한다.

홍세화가 자신의 프랑스 생활의 경험을 통해, 박노자가 러시아와 노르웨이의 경험을 통해 교육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김덕영은 자신의 독일 유학 경험을 통해 교육 문제에 접근해 나간다.
그가 규정하는 한국의 학교는 일찍이 제레미 벤담이 고안해 낸 '판옵티콘' 즉 '감옥'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하면, 한국 사회가 '인재'를 기르는 기본 공식은 학생들을 어린 시절부터 전 사회적 차원의 거대한 감옥에 가두고 감시하며 처벌하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수의를 입은 채 획일적인 공부 기계로 주조된다. 그들은 기계 인간으로 주조된다. (p.31)

 위의 글에서  '교복'을 '수의'로 표현한 것처럼 김덕영의 말들은 다소 도발적이지만, 한국의 교육을 조금만 유심히 들여다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 하다. 그에게는 우리 교육의 모든 것이 고찰 대상이 된다. 김상봉이 <도덕 교육의 파시즘>에서 언급한 것처럼 서로 주체성을 가르치지 않는 한국의 교육에서는 끊임없이 '정답'만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의 객관식 문제 뿐 아니라 대학의 주관식 문제의 문제점까지 지적하는 아래 글을 보자. 

 대개 50분 정도 주어지는 대학의 시험은 말이 주관식 서술형 또는 논술형이지, 사실은 객관식이다. 아니면 주관식의 형태를 띠고 있는 객관식이다. 왜냐하면 강의 시간에 배운 내용을 얼마나 충실히 외워서 주어진 시간에 얼마나 충실히 적어내느냐를 평가하는 것이 대학의 시험이기 때문이다. 주관적으로 사유할 여유가 없다. 시험 문제를 보는 순간부터 아무 생각 없이 외운 내용으로 답안지를 메워야 한다. - 중략 - 결국 한국의 대학은 고등학교의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 (p.45)

이런 사유 속에서 사교육의 중요성이 공교육의 중요성을 초월해버리는 일에 대해 저자는 일종의 음모를 본다. 그건 당연하게도 이른바 명문 대학들의 음험한 속내다. 저자는 그들 명문대가 하이데거와 게오르규 짐멜까지 들춰내는 통합 교과형 논술은 애초부터 공교육 정상화에 대한 의지가 없다고 본다. 

 아무튼 서울대를 위시한 이른바 명문 사립대들이 논술 고사의 도입을 통해서 진정으로 추구하는 바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고착시키고 심화시키면서 그 지배적 패권 집단을 공고히 유지하며 확대 재생산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p.74)

 결국 저자가 이런 비판 지점에서 찾아 내고자 하는 것은 한국 교육의 고유성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래 글은 이런 저자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오늘날 한국의 교육은 세계 100대 대학의 육성이 어떻고 국제 경쟁력이 어떻고 노벨상 수상자의 배출이 어떻고 떠들어댈 계제가 아니다. 그보다 최소한의 근대성과 합리성이라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니 가장 기본적인 상식만이라도 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즉 개인의 인권과 인격이 최소한이라도 보장되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들에게 끝없는 정신적, 육체적 그리고 물질적 고통을 주고 사회 전체의 발전을 가로막을 것이다. 그리하여 개인과 사회에 아무런 미래도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p.130)

모든 교육의 목표가 오직 '대학 입시'로 귀결되는 사회에서는 이런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저자는 '초,중,고등학교도 대학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제도이며 조직이자 공간이다'(p.131)라며 기본 교육 회복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이런 결과들을 해석하기 위해서 사회학적 체계 이론을 통해 그 관계의 절망적 결과를 설명한다. 결국 한국의 교육은 '교육이라는 체계가 다른 체계들, 그중에서도 특히 정치라는 하부 체계에 대해서 거의 폐쇄성을 지니고 있지 못한다'(p.135)는 것에서 근원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로 결국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는 순전히 '입시 결과'에 따라 철저히 서열화된 시스템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식을 통해 저자는 '가장 시급히 요청되는 것은 한국의 초,중 , 고등학교가 대학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교육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현실은 정작 대학에서 배워야 할 인문학적 체계들을은 대입 논술 준비 과정을 통해서 기계적으로 습득하는 고등학생들과 정작 대학에 입학해서는 인문학적 체계들을 '뜬 구름 잡는 소리'로 여기는 대학생들의 모습이다. 저자는 이런 문제들을 통해 표현되는 '한국 대학 사회에 만연된 죄책감 없는 표절' 현상 등을 통해 문제를 진단하고 어두운 한국 사회의 미래를 본다. 그는 결국 이런 교육 과정을 통해 형성된 '허약한 엘리트'의 모습을 본다. 

 한국에서 엘리트는 명문대 출신과 동일시되는 명목상의 엘리트이다. 엘리트다운 능력을 겸비하지 못한 명목상의 엘리트는 당연히 허약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엘리트가 허약하다는 명제는 무엇보다도 엘리트 집단은 획일적이며 정답을 찾아 헤매는 집단이라는 사실을 통해 입증된다. 그리고 이처럼 허약한 엘리트가 지배하는 사회는 당연히 허약할 수밖에 없다.'(p.229)

교육에서의 총체적 부실은 한국 사회의 미래를 당연히 어둡게 전망하게 한다. 한국의 엘리트들은 끊임 없이 획일적인 '정답' 찾기에만 나선다. 김영삼 정부 때의 정답은 '세계화'였고 김대중 사회에는 '지식기반 사회'였고 이들 정부의 정답은 결국 '아니었다'가 정답이다. 새 정부의 정답은 과연 무엇일런가 ?

이런 엘리트층의 행태에서 감지되는 것은 결국 '누군가로부터 주어진 답만이 정답'인 교육을 받아 온 한국 교육의 근원적인 문제점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결국 이런 양상 속에서 행행하는 것은 저자가 '노예의 길'로 표현하는 두 가지 기술만을 측정해 엘리트로 키워나가는 방식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그 두 가지 기술이란 '공부하는 기술'과 '시험보는 기술'일 뿐이다. 이 기술들은 '전자는 주인이 준 것을 충실히 기억하는 기술이요, 후자는 주인이 묻는 것에 충실히 답변하는 기술이다'(p.277)이라는 점에서 '노예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회학자로서 김덕영은 진심으로 한국 교육과 한국 사회의 미래를 걱정한다. 그가 보기에 유구히 '입시 공화국'의 전통을 구가하는 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듯 하지만 너무나 당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이들의 인권을 늘 유보하고 이 무한정한 입시 전쟁으로 내몰고 있다. 과연 누가 이 절망적인 '배틀 로얄 게임'을 끝낼 수 있는가 ?

당연하게도 그건 이 사회 구성원 전체의 몫이라야 한다. 저자가 글의 말미에 인용한 임종업의 말은 단순하지만 기본적인 그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말이리라.

"앉아서 책 읽기보다는 골목에서 뛰어노는 게 낫습니다. 삶은 상상이 아니라 몸으로 살기 때문이죠."(p.293, 임종업, [똥 누고 밥 먹듯 쓰고 읽게 해요](한겨레), 책과 지성, 재인용)
YES마니아 : 플래티넘 p*****o 2008.04.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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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평등, 결과의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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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는가?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려는 노력보다 이런 것도 있구나 하고 느끼게 하는 정도가 아닌가 싶을 뿐이다. 참 재미나는 비유가 손님 찾아 달리기와 견준 것이다. 본인의 의지나 능력, 노력보다는 조건이나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 결과의 불평등을 관행이나 통념으로 합리화할 수 있는가? 이런 구조가 심화되는 것은 구조를 바꾸려는 노력보다는 그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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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는가?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려는 노력보다 이런 것도 있구나 하고 느끼게 하는 정도가 아닌가 싶을 뿐이다.

참 재미나는 비유가 손님 찾아 달리기와 견준 것이다.

본인의 의지나 능력, 노력보다는 조건이나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 결과의 불평등을 관행이나 통념으로 합리화할 수 있는가?

이런 구조가 심화되는 것은 구조를 바꾸려는 노력보다는 그 구조에 익숙해지고, 그 구조의 상부에 자리잡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모를 따라 외국에 나간 아이가 부모와 함께 귀국하기를 꺼린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공교육 정상화는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자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학교에 비해서, 다른집 아이에 비해서 더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라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공교육 정상화가 현실에 있기는 한 것인가?

대학에서 고등학생을 상대로 출제하는 논술 문제가 대학에서 가르쳐야 하는 내용이라는 대목에서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가 없다.

고등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서 대학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다는 논리는 대학교수들의 위장된 논리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사회의 구조를 제대로 파헤쳤고, 따라서 구조를 바꾸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다.

l****7 2007.07.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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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입시교육의 암울한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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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인적자원부...   사람은 자원이다....부속품....국가경쟁력을위한 자원이다...   따라서 교육은 개인의 개별적 완성이 목적이 아니라   국가를 위한 복무이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나라 교육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로 결론내린다.   소수의 엘리트가 국가를 먹여살린다   그 엘리트를 선발하기 위해 국민들을 초딩때부터 줄을 세운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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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인적자원부...

 

사람은 자원이다....부속품....국가경쟁력을위한 자원이다...

 

따라서 교육은 개인의 개별적 완성이 목적이 아니라

 

국가를 위한 복무이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나라 교육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로 결론내린다.

 

소수의 엘리트가 국가를 먹여살린다

 

그 엘리트를 선발하기 위해 국민들을 초딩때부터 줄을 세운다.

 

그리고 엘리트는 세습된다.

 

암울한 현실이다.

 

결국 대안은, 대학서열화 완전 폐지, 국가 경쟁력 이데올로기에 대

 

한 철저한 부정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난 지금 입시공화국의 명줄을 연장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b*****1 2007.12.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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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교육을 바꿀 자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다
"우리 나라 교육을 바꿀 자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다" 내용보기
책을 잡고 쉴 틈 없이 읽어 내릴 수 있다면 좋은 책이다.일단 저자가 주제의식이 명확하고 읽기에 지루하지 않은 사례와 주장이 논리적이고 설득적이면 어떤 내용이더라도 끝까지 읽어내려가는데 어려움이 없다.독일에서 공부하고 교수까지 되고 현직에서도 독어로 가르치는 교수인데한국 교육의 현실을 꿰고 있다.그래서 누구나 할 수 있는 비판인데도 새롭게 느껴진다.이미 우리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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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잡고 쉴 틈 없이 읽어 내릴 수 있다면 좋은 책이다.
일단 저자가 주제의식이 명확하고 읽기에 지루하지 않은 사례와 주장이 논리적이고 설득적이면 어떤 내용이더라도 끝까지 읽어내려가는데 어려움이 없다.
독일에서 공부하고 교수까지 되고 현직에서도 독어로 가르치는 교수인데
한국 교육의 현실을 꿰고 있다.
그래서 누구나 할 수 있는 비판인데도 새롭게 느껴진다.
이미 우리 나라 교육을 포기하고 선진국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런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우리 세대가 겪었던 교육의 모순이 시정되지 않은 채 방치된 교육제도하에
젊은 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고 빨리 시정되어야 할 것이지만
아무리 급진적인 장관과 대통령이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수십년내에 바뀌기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런 교육제도하에서도 내 자식에게는 절대로 그런 희생양이 되지 않게 할 자신이 있는데....^^ (문제는 나에게 그런 자식이 없다는 사실이다^^)

교육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 나라의 미래는 암울하다.
이런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대세를 이루어 제도를 바꾸어가기를 바랄 뿐이다.

j******6 2007.08.1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다양성의 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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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대학 서열화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세부적으로 대학 서열화와 그에 따른 학생 서열화 또 획일적인 입시 방식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결국, 문제는 대학의 서열화로 귀결된다.   다윈의 종의기원에서 말하는 발하는 진화는, 다양성의 진화로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교육 정책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테제인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 우리가 하고 있는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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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대학 서열화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세부적으로 대학 서열화와 그에 따른 학생 서열화 또 획일적인 입시 방식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결국, 문제는 대학의 서열화로 귀결된다.

 

다윈의 종의기원에서 말하는 발하는 진화는, 다양성의 진화로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교육 정책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테제인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 우리가 하고 있는 정책들의 특징인 무엇인가? 순리대로 가자면, 우리는 우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대학, 다양한 학생들이 공존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결과는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우리의 무덤을 파고 있다. 조급해서 그런가? 우리 대학은 우수한(?) 학생을 손쉽게 선발하기 원하고, 대학의 하부구조에 있는 초중고는 대학의 요구에 부합할려고 안달한다.

 

궁극적인 문제는 고등학교가 아니다. 대학이 문제다. 대학의 경쟁력이 낮은 것이 신입생들의 학력이 낮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체의 내부적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 교육에 대한 일반적인 문제들을 일반적인 관점으로 알기 쉽게 풀어 놓은 느낌이다. 하지만, 그 일반적이라는 단어 자체가 독자에게 새삼 충격으로 다가온다.

g********m 2007.10.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