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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겸손하다. 나의 진실추구이야기<간디 자서전>(문예출판사) 마하트마 간디는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다. 그는 영국에서 유학생활 후 변호인으로,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 그는 비폭력을 외치며 실천으로 옮겼고, 많은 이들에게 비폭력을 전파했다. 그의 비폭력 추구는 가족의 가르침으로 보인다. 인도의 작은 소공국인 포르반다르의 총리를 지낸 아버지 카바 간디의 셋째 아들로, 정직함과 공정함 그리고 나라에 대한 충성심도 높았으며 무엇보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깊었다. 아버지의 우직함을 이어받은 마하트마 간디(이하 간디)는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한지 1년 만에 사망했다. 힌두교도가 그를 총살 한 것이다. 비폭력을 외치던 그가 폭력에 의해 사망했다. 유의미한 사건이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 개인의 한계를 보여준 것은 아닐까 싶다. 간디는 자서전을 쓰는 이유를 진리추구 이야기를 위해서라 밝힌다. 간디가 말하는 진리의 정의를 한 마디로 정리할 수는 없지만, 도덕과 관련돼 있다. 인도 정신의 바탕인 종교에 관한 내용이다. 그리고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영국에 관해서도 밝혀야 한다. 그가 추구했던 진리를 실천할 수 있었던 계기를 <나의 진실추구 이야기>에서 살펴보자.
간디는 영국의 지배를 받은 인도인이지만 유럽의 복장과 생활양식을 즐기는 엘리트 지식인이었다. 영국에서 유학,남아프리카에 돌아와 변호사생활을 하면서부터 진실추구를 위해 힘썼다. 이 과정을 자서전으로 남겼는데, 그 책이 <나의 진실추구 이야기>다. 책은 총 5부로 구성 3장까지는 유년시절을 보여주며 진실의 기준을 세우는 과정을 보여줬다면, 4부와 5부에서는 자신이 세운 가치를 실천하는 장으로 해석된다. 간디는 식민지가 된 것도 인민들의 탓이라 말하면서 영국에 지배에서 벗어나려면 그들과 대화하기 위해 그들의 요구조건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간디는 유럽의 복장과 생활양식을 따랐다. 그리고 영국인들과 대화가 통했을 때 다시 인도의 전통복장을 입는다. 인도가 영국에서 완전한 해방을 원했기 때문이다. 간디는 서양인들이 동양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려 노력했을 뿐 아니라, 인도인들의 합일점에서의 해방을 원했던 것이다. 결국 간디의 바람대로 인도의 해방은 이루어졌으나 내국의 분열은 해결하지 못했다.
서로의 욕망이 한 사람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간디는 영국에서 교육받은 신지식인이다. 법조인으로 인간에 대한 본성을 누구보다 많이 탐구했다. 그렇기에 사실과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고 전한다. 사실을 인정해야 하며, 이후 앞으로 생길 일들에 대한 냉철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것은 과거뿐 아니라 현재에도 지속되어야 한다. 인도에 거주한 영국인들이 그랬듯, 대다수의 사람들도 자신의 실수나 과오를 숨기기 위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간디가 높이 평가되는 것은 변호사였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이 나타나는 것은 파르시 루스톰지 사건에서다. 동료가 된 파르시 루스톰지는 뭄바이와 캘커타에서 물건을 수입하는 대수입자다. 그런데 밀수를 하다 적발된 것이다. 간디는 이러한 사실을 정부에 먼저 알리고, 관련 사람들을 만나 설득했다. 파르시는 재판은 면 했고 정부에 벌금만 낼 수 있었다. 개인의 과오를 타협으로 끝났다. 간디의 솔직함과 끈기가 이뤄낸 승리다. 변호사로써 의뢰인의 과실을 덮으려고만 하지 않고 사실을 밝힌 솔직함이 대단하다. 서로의 실수를 언급하며 인정하지 않는 우리들과는 다른 모습니다.
간디의 사실추구는 채식주의와 단식으로 정신을 다듬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간디는 영국 유학을 가기 전, 어머님과 채식을 유지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채식으로 인해 유학을 가지 못할 상황에 놓였을 때도, 자신은 채식만 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의지는 유학생활에서도 이어졌다. 육식을 주로 하는 영국에서 채식자를 위한 식당은 찾기 힘들었다.그럼에도 어머니와의 약속으로 그는 육식을 멀리 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그의 고집으로도 보인다. 아내의 병이 심해져 죽기 직전에도 ‘채식’만을 고집했다. 그의 아내도 “당신은 너무 완고해요. 누구의 말도 듣지 않으니 말이에요.”(p. 437)이라 말했을 정도니까. 그럼에도 그의 채식주의와 단식은 자기 절제로 이어진다. 그는 “마음과 몸 사이에는 긴밀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육욕적인 마음은 언제나 맛있는 것과 사치스러운 것을 탐내는 법이다. 이러한 경험을 막으려면 음식의 절제와 단식이 필요하게 된다. 육욕적인 마음은 감각을 통하기는커녕 그 노예가 되어버린다. 그러므로 몸은 언제나 깨끗하고 비자극적인 음식과 규칙적인 단식을 요구한다.”(p. 440)로 주장하기 때문이다.
무소유, 무 집착으로 이어진 듯싶다. 자신의 의지를 다지기 위해서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행위로도 보인다. 즉, 소유욕이 클수록 사람의 정신을 지배한다는 것. 이에 종교에 대한 연구도 끊임없이 했는데, 그가 말한 종교는 ‘도덕’에 반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영국의 행태는 도덕적이지 못하며, 비윤리적이다. 인도 내 같은 사람임에도 영국인은 이동이 쉽고, 인도인은 통행증을 지참해야 했다. 게다가 기차를 탈 때도 인도인은 3등 칸에만 타야 한다. 이런 차별은 영국인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며, 인도인은 따라야 했다. 지금은 자본의 논리로 구분되지만,과거엔 누군가의 허락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허락은 누가 하는가? 인도를 지배하는 영국인이다. 간디는 말한다.신을 믿는 자는 도덕을 버리면 안 된다고. 간디의 입장에서 본다면 영국은 신을 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간디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자급자족한 공동체를 만든다. 톨스토이 농장이다. 그 곳에서 간디는 물레를 돌리며, 사람들과 함께 농사를 짓는다. 간디는 아이들에게 최고의 교육을 아버지의 가르침이라 했다. 그가 할 수 있는 한 아이들과 함께 하려 했다. 그가 아버지에게 배운 가르침과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전하려했던 것이다.그렇기에 더욱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삶을 보여줬다.
간디는 결코 개인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인도의 정신적 지주가 될 수 있었다. 나는 이 책을 정치인, 법조인 혹은 리더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물론 앞서 언급하지 않은 사람들도 읽으면 좋다. 사회는 개인의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간디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움직인 것이 아직도 신화로 남아있는 이유는 우리가 그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의 정신을 제대로 체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간디는 사실과 진실을 널리 퍼뜨리려 노력했다. 그의 진실관철투쟁운동이 없었다면, 진실을 추구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인도는 생겼을까? 물론 간디도 사람이기에 실수도 있었다. 자신의 행동을 책임지기 위해 자신의 행동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성찰이 이어졌다. 간디는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겸손할 수 있어야 진실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태어난 특별함을 강조하는 현실이다. 리더가 특별하다? 그렇지 않다. 누군가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면 ‘겸손’을 꼭 기억해야한다. 이를 행동으로 옮겼기에 간디는 위대한 리더로 칭송받았다.
책을 읽기 힘든 독자라면 영화를 찾아보자. 책이 전하는 감동보다는 덜 하지만, 영화만으로도 간디의 정신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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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 자서전 나의 진실 추구 이야기 마하트마 간디 지음 문예출판사
이 책은 신격화된 간디를 벗어나 인간의 얼굴을 한 간디를 만나는, 『간디 자서전 - 나의 진실 추구 이야기』라고 하겠다. 새로운 관점에서 풍부한 해설과 정확한 번역으로 다시 읽는 저자의 자서전이다. 다른 번역서가 오역한 부분, 생략한 부분 등을 수정하거나 보충하고 있다. 또한 저자가 자서전을 저술한 후부터 세상을 떠날 때가지 28년간의 이야기도 담아냈다고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읽지를 못해서 아쉽기는 하지만, 다음에는 완독을 하리라 마음 먹어 본다. 저자는 인도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성인으로 우러러보며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의 '마하트마'라고 불린다. 하지만 이 책에서 우리는 그러한 성인으로서의 '간디'가 아니라 끝없이 진실을 추구하는 인간으로서의 '간디'와 만날 수 있다.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이 그대로 들어있어 우리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처음에 격언 노트를 만들려고 했을 때는 어떻게 이것을 다 채우나 하고 조금은 막막한 심정이였다. 그리고 고전 교과서에 나오는 모든 고전들을 다 수업시간에 배운 것이 아니여서 미쳐 진도를 못 나간 고전들 빼고 써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격언을 찾아서 기록하는 과정에서 미처 배우지 않은 고전들도 격언 일기를 쓰기 위해서 이해하도록 노력하며 꼼꼼히 정독하다보니 100%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조금은 그 사상가나 작가, 인물의 뜻이나 생각과 심정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배웠던 고전들도 다시 한 번 그 의미를 떠올리며 읽어보니 걱정했던 격언 일기를 쓰는 것도 생각보다는 수월해졌다. 격언 노트를 다 쓰고 난 지금은 어렵게만 느껴졌던 고전의 내용이 좀 더 가깝게 느껴지고, 잘 이해되었다. 그리고 고전이 현실과 동떨어진 현학적인 내용이라 여겼는데, 오히려 그 무엇보다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참' 과 같은 존재인 것 같다고 느끼게 되었다. 지금은 저자가 그토록 강조한 비폭력, 무소유가 아닌, 폭력과 소유가 인정받는 21세기다. 하지만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지금의 안락함과 평안함만을 갈망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저자의 비폭력과 무소유의 정신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노력에 따라 세상은 희망으로 채워지게 될 것임을, 저자는 의심하지 않는다. 2016.5.27.(금) 이지우 (고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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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는 자서전을 쓴 목적이 자신의 진실의 추구라고 밝히고 있다. 간디는 이 자서전을 통하여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치적목적이나 개인의 영달을 위하여 각색하지않은 것을 느낄수가 있다. 이런 간디도 20세 이전에는 부귀영달과 선진문화를 좇기위하여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그리고 인도로 다시 돌아오기까지는 그저 평범한 젊은이의 삶을 살것 같았다. 육식을 하지 않게다는 맹세를 지키기위해 남과의 불편함도참고 꼭 이루는 고집불통의 남자였다. 그러나 변호사로서의 삶을 살기위해 간 남아프리카에서 인도인으로서의 차별을 경험하면서 간디는 개인의 성공보다는 사회에 대한봉사와 희생의 길을 택하게 된다. 여기서 간디는 많은 어려움과 고행이 있었지만 신에 대한 믿음과 헌신으로 극복하게 된다. 기존체제에 대항하는 역사적인물들의 공통적인 특징중에 하나가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저항하여 꼭 이긴다는 점이다. 간디는 톨스토이나 러스킨등에 영향을 받고 교류하면서 평소자신의 지론이였던 자연과 동화되고 무소유하는 삶에 대한 실행하게 된다. 그것이 협동농장형태로 태동하게 되는데 여기서는 불가족천민도 같은 동료를 받아들인다. 신분제도가 있는 인도이지만 100년전에 간디는 인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철폐되어야 함을 보여주었다. 위대한 인물들에게 보여지는 특징중의 하나가 가족에 대한 소홀함이다. 간디도 여기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우리같은 소시민에서보면 회사일을 제되로 하기 위해서 나쁜남편, 나쁜아버지가 되어야되는데---, 이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간디는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비폭력을 신봉하였고, 체게바라는 폭력을 신봉하였다. 그러나 그둘다 폭력에 의하여 희생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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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읽은 위인전에서 간디는 성인으로, 인도의 독립을 위하여 평생을 바친 인도건국의 아버지로 묘사 되었었다. 또한 식민 통치국 영국에 대한 비폭력 저항은 그의 위대한 사상으로 내 마음속에 아직도 각인되어 있다. 이제 성인이 되어 간디의 비폭력,무소유등의 사상적 개념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또한 간디의 삶은 어떠하였는지 궁금하던 차에 마침 간디 자서전이라는 책이 있길래 펼쳐보게 되었다.
간디 자서전 - 나의 진실 추구 이야기 는 간디의 전생애가 아닌 1920년에서 끝마치고 있다. 간디의 일생 중 가장 중요한 시기, 위대한 독립투쟁의 시기인 그의 후반기 삶이 모두 빠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옮긴이도 이야기 하지만 그의 독립투쟁의 방식이 그가 평생을 통하여 서서히 깨닫고 추구하여 온 진실관철투쟁의 일부임을 헤아린다면 이 책을 통하여 간디의 전생애를 반추해 볼 수 있다.
인도의 카스트 중 셋째 카스트인 바이샤로 출생한 간디는 남들보다 학업성취가 뛰어나지도 않았고, 무척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나이 많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형의 도움으로 영국으로 건너가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돌아온 간디. 하지만 기대와 달리 인도에서 변호사로 성공하지 못하고, 때마침 인도회사의 초청으로 남아프리카로 떠나게 된다. 남아프리카는 간디에게 운명적인 곳이다. 이 곳 남아프리카에서 바로 간디의 신화가 탄생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도인이 계약노동자인 남아프리카에서 인도인들은 백인들로부터 엄청난 차별을 받고 생활하고 있었고, 간디 스스로도 그러한 차별을 경험하게 된다. 이에 간디는 인종차별법인 이민 법안에 반대하는 청원을 제출하고 나탈인도국민회의를 조직하여 비폭력으로 저항하면서 서서히 대중운동가로서 면모를 갖추게 된다. 책의 대부분이(전체 5부중 1~4부가) 남아프리카에서의 진실관철투쟁을 다루고 있는데, 남아프리카에서의 활동이 그의 핵심사상인 비폭력, 무소유등의 개념이 확립되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남아프리카에서의 인도인들의 권익을 위한 영국 정부에 대한 탄원과, 파업, 러스틴의 책 "이 마지막 사람에게도"에 감동하여 건설한 자급자족 농원인 피닉스 정착촌, 인두세 반대, 톨스토이 농장 등 간디의 대중운동은 줄기차게 이어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남아프리카에서 보어전쟁과 줄루족 반란이 터졌을 때, 또한 후에 1차 세계대전이 터졌을 때도 간디는 앞장서서 인도인으로 구성된 간호부대를 조직하여 영국을 위하여 전쟁에 참전한다. 영국 제국의 지배하에 있는 인도의 입장에서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여야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근거에 의한 행동이지만 훗날 인도에서 영국이 물러날 것을 주장하는 그의 행동과는 맞지 않는 행동이라 하겠다. 1915년 인도로 영구 귀국한 간디는 참파란에서 농민해방운동을 지도하고 아메다바드의 방직노동자 파업을 지원하며 영국이 치안방해만으로도 영장없이 체포할 수 있는 롤랜트법안을 제정하자 전국적인 파업을 주도한다. 또한 간디의 상징이랄 수 있는 물레를 돌려 직접 옷을 만들어 있는 카디 운동을 전개한다. 끝으로 1920년 인도 국민회의에서 영국에 대한 비협력 결의안이 통과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이 책을 통하여 우리가 알지 못햇던 마하트마 간디가 아닌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간디의 발자취와 비폭력, 무소유 등의 진리를 추구하며 살았던 겸손한 인간 간디의 진솔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평생을 통하여 자아를 실현하고자 노력하였으며 그 실현을 위하여 자신을 끝없는 시험으로 몰아가고 이를 통해 자신의 행동과 양심이 일치하도록 평생을 바친 한 인간의 위대한 진실 추구의 기록. 그 기록이 간디 자서전인 것이다.
간디의 무소유의 개념을 느낄 수 있는 유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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