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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고데모의 안경> 이후 읽을 책을 찾다가, 아무래도 요즘 한진중공업이나 강정마을 등등 굵직한 사건들이 많은현 시점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4년 전에 한번 읽었던 이 책을 다시 꺼내들었다. 이 책은 두 개의 연결부를 중심으로 8개의 챕터가 3 / 3 / 2개씩 나눠지는 형태를 지닌다. 처음에 나오는 세 챕터에서는 칼뱅주의와 자본주의,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 구티예레즈의 해방신학 등 이론을 정리 및 논박하면서 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말한다. 그리고 연결부에서 '샬롬'이란 개념을 제시하며, 이후 다음 연결부까지 이어지는 세 챕터에서 이 '샬롬'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적용해본다. 세상의 모든 상황에 대해 이 개념을 적용하면 참 좋겠지만, 이 책에서는 저자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즉 빈부와 민족주의, 그리고 도시의 미학을 다룬다. 그리고 두번째 연결부에서는 이전 종교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던저항적 정신을 다루고, 나머지 두 챕터에서는 앞의 내용에 비해 관념적 혹은 조금 특정한 범주일 수 있는 부분, 즉 개신교의 예배 문제와 실천 지향적 학문에 대해 다룬다. 일단 이 책은 쉽지 않다. 단순히 두께만 보고 말하는 게 아니라, 내용이 어려워 한 장 한 장 넘기기가 힘든 부분도 많다. 그래서 처음에는 읽는 데만 한 달이 넘게 걸렸었다. 다행히 이번엔 북스터디를 하면서 모르는 부분을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진 덕분에 이전보다는 조금 쉽게 접근할 수 있었지만, 아직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매 장을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개념이 나오고, 그 개념을 제대로 알지 못해 이 책을 비판적으로 읽기보다는 단순히 받아들이는 데 그친 게 아쉬울 뿐이다. 물론 그와 함께 저자가 가진 지식의 깊이에 감탄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부분은 개신교의 예배 비극을 다루는 7장이었다. 그리스도인에게 예배는 믿지 않는 이들과 자신을 구분하는 하나의 척도일 뿐만 아니라 삶 자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이 장을 읽으면서 우리 교회의 예배는 어떤지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안식의 개념이 단순히 '쉼'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것을 보고 기뻐하는 것'을 포함한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더불어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 안의 무지함을 제대로 직면했다. 페이스북에도 적어놨지만, 나는 칼뱅주의를 계승한 한국 개신교 공동체에 속해 있으면서 칼뱅주의에 대해 무지했고,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으면서 자본주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부분은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아는 게 없으면서 그냥 '빈 머리 뜨거운 가슴 높은 기동력'으로 살아온 게 바로 나라는 걸,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 하지만 단순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도 있었는데, 8장의 '실천 지향적 학문'이 그랬다. 저자는 칼 마르크스의 말을 빌려 실천 지향적 학문의 목표는 세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꾸는 것이라 했다. 하지만 나는 세상을 바꾸기 전에 세상을 제대로 설명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반대집회 때문에 평택에 간 적이 있었는데, 대추리 마을 사람들과 반대집회를 하는 내내 미군기지 이전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째려보던 기억이 난다. '미군기지 이전'이라는 상황은 하나지만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이걸 찬성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강정이나 한진, 발레오, 유성 등등도 다들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은 '세상을 설명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꾸는 것'이라고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책은 사실 30년 전에 저자가 한 강의가 28년 전에 출판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에서 서술한 현실과 지금의 현실은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그래서 아직 바뀌지 않은, 하지만 분명 조금씩 바뀌고 있고 앞으로도 바뀔 그 현실을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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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중의 클래식이라 불릴 만한 월터스토프의 책이다. (사실 너무 오래 전에 읽어서 기억이 흐릿하긴 하다)
30여년 전에 쓰여진 책이지만, 그가 보여준 통찰력과 깊이는 실로 놀랍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 책은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앞 챕터들은 특히.....(오랜 기간 공부하고, 관련 주제에 대한 선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독해하기가 더 수월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챕터 하나 하나가 워낙 알차다 보니, 밑줄 그어 가면서 공부하듯이 읽으면 참 좋을 것이다.
칼빈주의를 다시 조명해 보면서, 바른 세계관과 사회 인식론을 가지고 문제들을 하나 하나 풀어 나가는 저자의 지식은 상당한 수준을 자랑한다.
'빈곤'의 문제부터 시작해서, '도시화' 에 대한 단상까지, 폭넓은 주제들을 아우르며 우리네들이 직면해야 할 문제들에 대해 하나의 방안들을 제시해 준다.
'샬롬'이 선언되는 세상.....
칼빈주의를 바로 다듬고, 조금은 '진보적인' 요소까지 활용해 나가면서 최대한 균형 잡힌 관점을 취해 보려는 저자의 노력이 엿보이는 책이다.
그리고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정의'의 문제들이 이 책 속에 가득 담겨 있다.('빈부격차'의 문제... 이 고질적인 문제도 다룬다. 어떤 방법을 주장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는가?)
개인적으로 가장 신선했던 부분은 책의 후반부에 나오는 '샬롬과 도시의 미학'이라는 파트였다. 도시의 건축가 디자인 등의 개념들도 가벼이 취급하지 않고, 깊은 의미를 담아서 해석해 내는 저자의 인문학적 소양과 세상을 바라보는 깊이에 깊은 감탄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세상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고자 하는 지성인의 깊은 사랑이 전문적인 지식의 형태로 이 책 속에 감춰져 있다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사회로부터 점차 유리되어 가는 듯한 기독교의 모습 속에서 적지 않은 회의를 느낀 이들이라면 다시 월터스토프의 책을 잡아 보는 건 어떨까?
실제적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은 많이 있다. 고쳐 나가고, 바로 다듬는 작업들을 해 나가자는 것. 변혁된 세계를 만들고자하는 것도 칼빈주의 적 기독교 세계관의 중요 논지 아니던가.
"오 하나님 , 굶주리는 자들에게는 빵을 주시고 빵을 가진 우리에게는 정의에 대한 굶주림을 주소서"
이와 같은 고백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