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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진짜도 아닌 것이 진짜인 척하는
것을 사이비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사이비란 [맹자]에 나오는 사시이비似是而非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얼핏 옳은 것 같지만 잘 따져보면 그르다는 뜻이다. 우리사회에는 사이비가 너무도 많은 것 같다. 정치인이나 언론인, 또는 종교인을 막론하고 우리 국민 모두, 아니 나에게도 해당되지
않는지 잘 따져 볼 일이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제도나 법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민주주의가 혹 사이비민주주의는 아닌지, 때만 되면
시끄럽게 떠드는 복지가 혹 사이비 복지는 아닌지, 유심히 살펴보고 또 정말 진짜인지 어떤지 따져봐야
한다. 사이비가 활개치는 세상이니 말이다.
강신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시대라고 말한다. 진열대에는 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상점 안으로 들어가보면 실제로 팔고 있는 것은 개고기라는 것이다. 처음과 끝이 다르고, 이곳에서 한 말과 저곳에서 한 말이 다르고, 번지르하게 포장은 되어있지만 풀러 보면 실상은 없거나 전혀 다른 것들이 들어 있는 시대라는 말 일 것이다. 이런 시대에 철학자의 소명은 진짜도 가짜도 아닌 사이비, 즉 실제
팔고 있는 것이 양고기인지, 개고기인지를 의심하는 것이라고 한다. 복지를
말하면서 부자감세를 하고, 역사를 말하면서 역사교과서국정화를 하고, 노동자와
서민을 말하면서 자본을 위해 규제를 철폐한다고 하는 시대이다 보니 비상경보기가 켜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이 책은 2년 전 경향신문에 연재한 칼럼 <철학자 강신주의 비상경보기>에 썼던 글들을 업데이트하여
단행본으로 발간한 것이라고 한다. 그가 비상경보 했던 것들은 과연 무엇이고, 그것들은 지금 우리의 삶을 어떻게 만들고 있을까
저자가 울리는 비상경보는 최근 들어 부쩍
심해진 과거로의 회귀, 그리고 그들만의 나라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현실과 끝도 없는 욕망을 향해 질주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것이다. 유신독재의 망령은 종말을 고한지 30년이
넘었지만 지금은 유령이 되어 우리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 그는 "과거에 생긴 트라우마는 환자의 현재를 지배하고, 나아가 미래를 결정하는 법이다."(22쪽) 라고 말하며,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어떤 식으로든
미래를 지배하게 된다는 사실"(22쪽)을 지적한다. 일본이 과거사를 집요하게 왜곡하는 것,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는 것은 그런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위안부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시고, 우리마저 세상을 떠난 100년 후에는 위안부문제가
과연 어떻게 될까 하고 반문한다. 그건 유신독재도 마찬가지이다. 유신독재도, 그것이 남긴 상처도,
모두 역사의 심판에 맡기자고 하는 것은 무덤에 있어야 할 유령들을 불러내겠다는 것에 다름아니라는 것이다. 이것 모두가 가버린 시대에 대한 장례식을 제대로 치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저자는, 이제라도 우리 모두 퇴마사가 되어 유령들을 무덤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또 대한민국이 어떤 사람들의 나라인지를
묻고 있다. 정말 우리 모두가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 사회냐고? 강력한
자본과 보수정치권, 그리고 일부 언론의 동맹은 전체주의 냄새를 짙게 풍기며 우리를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것은 다수를 깨알처럼 만들어
서로를 연대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서로를 불신과 경쟁의 대상으로 생각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모든 지배와 통제의 핵심이다." (235쪽) 그러기에 그들은 특수고와 일반고, 명문대와 지방대로 나누어 젊은이들을 반목하게 만들고, 남성과 여성,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어 노동자들을 모래알처럼 만들며, 그것도
모자라 노인과 젊은이 혹은 장년과 청년이라는 세대론을 꺼내 들고 부모자식마저도 갈라놓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너무 어리석었다. 빵이 커져야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준다는 것은 지금 빵을 나눌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만을 말한다는 사실을 몰랐으니까. 작은 빵이라도 나누어 먹을 수 있다고,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사랑이라고 말하지 못했으니까. 어리석음의 대가는 치명적이었다." (445쪽)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자 했던 깨알이 되어 신자유주의가
내건 경쟁의 원리를 받아들이면서 서로의 목에 칼을 겨누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이 경쟁은 한번 뛰어들면
누구도 쉽게 그만둘 수 없는 강제된 게임이 되어버렸다. 경쟁이란 서로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수단일
때, 그리고 언제든지 스스로 그만둘 수 있는 경우에만 가치가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그 자체로 진리가 되고 선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바로
사이비 진리로, 사이비 선으로 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비상경보를 울려대며 우리에게
주문하고 있다. 노예가 아닌 내 자신이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모든 권위와 억압을 딛고 똑바로 서서 내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온전히 내가 나일 수 있게 하는 인문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 바로 이 곳 대한민국을 직시하면서 말이다.
온 나라가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국회의원 선거 때문에 난리가 난 것 같다. 아니 우리 모두는 가만히 있는데 지들끼리 난리다. 국민은 간데없고 그들의 말만 넘쳐난다. 도대체 그들이 말하는 국민은 어떤 국민인지 알다가도 모를 지경이다. 서로가 잘났다고, 서로가 진실하다고. 그러는 그들이야말로 사이비가 아닌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차라리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 같기도 하지만, 최선도 차선도 없다면 차악이라도 뽑아야 하나 하는 생각에 가슴만 답답해지고 있다. 띠요.. 띠요.. 경보기는 비상시임을 알리기라도 하듯 시끄럽게 울린다. 어떤 길이 사이비가 아닌 진짜 길인지를 생각하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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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가게 맨앞에는 양의 머리를 내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판다는 의미다.이것을 민주주의로 비유하자면 겉으론 민주주의를 표방하되 속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난장판에 가까운 정치를 하고 있다는 의미다.너무 확대 해석했다고 억울할 것도 없다. 실상이 그러하니 어떻겠는가.총선을 앞두고 연일 여.야 정치판이 대의 민주주의라는 속성을 망각하고 일신상의 안위와 권력만을 좇아 이합집산하는 꼴을 보노라니 고개가 절레절레한다.오로지 선거판에서 이기기 위한 싸움에만 혈안이 있다.지역의 대표를 뽑는 선거를 앞두고 주객이 바뀐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지긋지긋하고 숨막히는 군사 독재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정치 민주화가 이루어지는가 했지만,아직까지 한국의 정치판은 유신시대로 되돌아간 듯한 정치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국가의 중차대한 사고(세월호 침몰 사건)가 발생했어도 아직까지 그 원인과 진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무한책임이 있는 국가 통수권자도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다.유가족들의 억장이 무너지는 비애를 누가 씻겨줄 것인가.사실 국가의 안전망 부재는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신자유주의의 잘못된 관행과 상행위가 세월호 참극을 불러 일으켰다고 생각한다.순간의 위기를 모면하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안이한 생각이 국가 전반에 걸쳐 팽배해 있는 것이 민주주의로 가는 길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 아닐까 한다.사공만 많지 구심점이 되는 지도자는 눈을 씻고 찾아도 찾을 길이 없다.
정치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대한민국에 봄날과 같은 민주주의 시대를 기대했지만 시대는 신자유주의에 깊게 침윤되어 모두들 돈과 자본에 목말라 있다.있는 사람은 더 갖으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없는 사람은 기본적인 삶을 이끌기 위해 악전고투를 마다하지 않는다.한국이 OECD국가 가운데 자살율 최고,삶의 지수는 꼴찌로 자리매김되고 있는 이유는 극심한 양극화와 사회 구성원과의 위화감을 들 수가 있다.현 정권을 쥐고 있는 세력은 단연 친일파,유신 세력,자본가 세력에 다름 아니다.그들은 대기업 친화를 표방하면서 대기업이 이윤의 극대 창출을 도모케 하여 근로자들에게 보다 나은 노동 임금이 가도록 하고 있지만,실상은 기업의 이윤이 근로자들에게 돌아가기보다 노동자들에 의해 발생한 이윤은 기업이 '꽁꽁' 숨겨 놓고 투자 및 근로자들에게 풀지를 않는다.
한국은 해방 이후 수많은 비민주적 행사,절차를 거쳐 오면서 수많은 민주 인사들이 희생되어 왔다.군사 정부와 같은 1인 독재는 당사자의 말이 헌법 위에 있기에 비위에 거슬리고 정권에 걸림돌이 되는 것들은 모두 무 자르듯 싹둑 잘라 버렸다.군사독재 시대의 종언을 외치면 그것으로 민주주의가 될 것이라 여겼지만 비민주적인 세력들은 '양두구육'과 같은 사이비 민주주의를 교묘하게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라는 말을 만든 사람이 손녀뻘인 캐디의 몸을 더듬는 행위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겠는가.사회 지도자급의 인사들이 솔선수범해야 마땅한데 실상은 나쁜 행위를 더 많이 하고 있다.위장 전입,성 접대,성추행,부동산 투기,병역 기피 등등이다.법이 사실,근거를 원칙으로 하다 보니 물증이 없으면 처벌을 받지 않는 풍토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잘못을 해서 들키면 재수 없어서 들킨 것이고 그냥 넘어가면 '살았다'라고 스스로 죄책감에 무뎌지는 것이다.그래서 늘 생각하는 것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점이다.(上濁下不淨)
전례없이 시대의 흐름과 사람의 의식이 바뀐 만큼 사회적 제도 역시 다양성을 갖춰야 한다.나와 남이 갖고 있는 생각과 감정 역시 다름을 인정하고 경청하고 수용할 줄 아는 아량을 갖춰야 한다.그런데 현 정권의 동태를 살펴보면 내 생각과 이념이 다르다고 남의 생각과 이념을 싹둑 자르는 행위를 서슴없이 획책하고 있다.분명 이것은 대의 민주주의라는 원칙에 어긋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애써 자신들이 한 행위를 합리화,조장(助長)하고 있다.민주주의를 등에 업고 살아가는 존재들인데 현실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행태를 버젓하게 보이고 있다.미래의 꿈을 펼치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무한 경쟁 교육에 휘둘리게 하는 것도 결국은 신자유주의에 체제에 옭아매는 것에 다름 아니다.그래서인지 학생들의 표정은 늘 불안하고 피곤하기만 하다.대학을 나와도 제대로 된 정규직은 거리가 너무 멀기만 하다.미래가 불투명한 젊은 세대들이 왜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겠는가.정치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입만 열면 경제 민주화가 어떻고 복지가 어떻다고 떠들어 대지만 이젠 양치기 소년보다 못한 구역질 나는 존재들이다.게다가 국정 교과서 채택,테러방지법 도입 등은 정권 유지,국민 호도용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의 민주주의 현 주소를 신랄하게 적시하고 비판하고 있는 이 도서는 현 시대의 60여개의 험로(險路)를 통찰력 있게 그리고 있다.강신주 저자는 빼앗긴 삶과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케 한다.총 5부로 구성된 이 도서는 위풍당당한 파시즘 행진곡,대한민국,그들만의 나라,자본주의 인간을 위한 진혼곡,거침없이 민주주의 재장전,당당한 삶,그 첫걸음을 위한 찬가로 나뉘어져 있다.이제 총부리를 겨누고 살상하는 시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현재의 잘못된 민주주의 모습을 바꾸기 위해서는 참신하고 신뢰할 만한 정권 탄생을 바라는 사람들끼리의 강한 연대만이 참된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대기업 친화주의적인 신자유주의는 대기업의 배만 부르게 하고 일반인들의 삶에는 '간에 기별도 없는'꼴이다.즉 낙수물 효과(Trickle Down Effect)는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 글은 왜 현재의 민주주의가 잘못 되었고 삶다운 삶을 빼앗겼는지를 제대로 짚어 주고 있다.100% 딱 입에 맞는 집권 세력은 없다.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소박한 꿈이 이루어지는 시대라도 사는 동안 누려 보는 것이다.그것은 돈과 자본으로 모든 것을 측정하려는 집권자가 아닌 상식과 정의가 바로 세울 수 있는 집권자의 강한 힘에 의해 민주주의가 제대로 꽃을 피울 것으로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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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광부들은 카나리아를 데리고 갱도로 들어갔다. 카나리아는 호흡기가 약해서 사람이 인지하지 못하는 수준의 유독가스만 감지해도 밖으로 달아나기 때문에, 광부들이 불의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카나리아는 광부에게 더없이 고마운 비상경보기나 다름없었다. 생태계에는 이처럼 환경이나 생태계에 발생하는 이상 징후와 위험 수위를 알리는 비상경보기 역할을 하는 생물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인간 사회의 경우는 다르다. 우리에게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이상 상황이나 위기의 전조를 감지하여 사전에 알려주는 비상경보기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와 같은 비상경보기 역할을 자처하는 책이 출간되었는데, 바로 강신주의 『비상경보기』다. 이 책은 우리 사회에 발생하고 있는 수많은 이상 현상들을 지적하고 진단함으로써 21세기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현대 한국인들에게 경종을 울리고자 하는, 진짜가 대접받는 현실을 위한 진지한 고민을 양심적으로 풀어내고자 하는 한 철학자의 몸부림에서 비롯된 소산이다. 이 책은 신문 칼럼에 연재된 글들을 책으로 엮은 것인데, 여러 시사적 현안들에 대한 저자의 깊은 사색이 짙게 배어 있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책이 이 시대의 비상경보기 역할을 일정 부분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에는 추호의 의심도 없다. 왜냐하면 이 책은 우리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접근하는 여러 현안들 뿐 아니라,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흘러 넘겼던 사회 현상들까지도 새로운 시각과 비판 정신으로 재고하는 데 일조한다고 여겨지는 대목이 꽤 있기 때문이다.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모두에게 공감을 얻는 현실에서, 이 책의 출간은 대단히 시의적절할 뿐 아니라 오히려 때늦은 감도 없지 않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이 저자의 의도대로 비상경보기 역할을 완수하리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책은 신문 칼럼에 연재된 글들을 엮은 것이다. 따라서 당시에는 아무리 참신하고 시사적인 문제더라도 이미 지나간 그때의 일들에 대한 진단이나 사색은 아무리 낙관적으로 평가해도 우리에게 닥친 직접적 현실과의 시간적 간격을 감안하면 참조거리 정도의 수준에 그칠 뿐이다(물론 이 책에서 다루는 모든 문제가 현재와 완전히 무관하다는 뜻은 아니다. 저자가 비판적으로 주장하듯이, 지나간 과거에 대한 집착과 고집에서 비롯된 보수주의적 태도나 시각은 저자가 과거에 쓴 글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책이 저자의 의도대로 비상경보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요소는 부조리한 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편향된 관점이다. 저자는 오늘날 대한민국을 ‘보수주의가 진보주의를 고사시키기 위해 현실주의와 연대하는 유령의 시대’로 진단한다. 언뜻 보면 설득력이 있게 느껴지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저자야말로 진보주의를 선으로, 보수주의를 악으로 규정하는 비합리적 이분법에 매몰된 채 박정희 정권을 유신독재 정권으로 규탄하면서 그 폐해에서 비롯된 과거의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과대망상증에 시달리고 있는 듯하다는 인상을 준다. 우리 국민들 대다수가 현 시대를 그 정도로까지 보수주의가 판치는 세상으로 인식하고 평가할지는 의문스럽다는 점에서, 저자의 생각이 객관성을 상실하여 지나치게 협소하게 느껴진다. 특히 저자는 진보라는 논리로 무장하고 사회의 부조리한 현상을 대단히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비판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지만, 실상은 마르크스의 철학적 입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박정희 정권의 모든 행적을 유신독재를 정당화하고 미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치부하는 극단적 환원주의를 공리로 삼아, 오늘날 대한민국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여러 현상들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많은 부작용들을 박정희 정권과 연계시켜 성토하는 대목은 많지만 정작 북한과 관련된 쟁점이나 현안(핵실험, 미사일 도발, 인권 문제 등)에 대한 진지한 고찰은 540여 페이지 어디서도 눈에 띄지 않을뿐더러, 현 정부의 모든 행정이나 조처들까지도 박정희 정권의 부활이나 박정희 정권에로의 회귀로 평가절하한다. 이 책이 저자의 의도대로 비상경보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소는 부조리한 사회 현상을 진단하는 저자의 논리적 비약과 저열한 언어 표현이다. 관객 수가 1천만 명을 돌파한 인기 영화들의 등장에서 파시즘의 불길한 예감을 읽어내는 것은, 한편으로 독창적이긴 하지만 과도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한 저자는 박근혜 정부를 역대 어느 정부보다 ‘치사하다’고 규정하면서 통합진보당 해산 신청을 그 근거로 제시하는데, 그와 관련된 여론 조사를 감안하면(물론 여론 조사가 통계의 허구라는 비판도 있지만) 저자의 이런 근거는 국민의 법 감정이나 사상적 평가와 크게 동떨어진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독재 시대에 겪은 학창시절의 부정적 기억을 근거로, 오늘날 대한민국에 만연한 과도한 경쟁과 불신이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개인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유신독재의 잔재나 재현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교육을 부추기고 극도의 경쟁을 유발하여 오늘날 소위 금수저나 흙수저 현상을 고착시킨 것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였음을 감안하면, 저자가 펼치는 이런 논리를 비약적이라고 부르는 것도 오히려 후한 평가라고 하겠다. 저자는 박정희 개발 독재 시대의 영화가 재현되기를 바라면서 박근혜 정부를 탄생시킴으로써 젊은이들을 제2의 ‘전태일’로 만든 장본인이 그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삼촌, 이모, 고모라고 냉소하는데, 이는 인턴제 시행 및 확대로 비정규직을 양산하여 청년층의 실업을 조장하고 정규직 진입이 원천 봉쇄된 체제를 고착시킨 것 역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라는 사실을 은폐하여 읽는 이들로 하여금 잘못된 현실 인식을 갖게 하는, 작가로서 대단히 비윤리적인 처사라고 하겠다. 또 저자는 100m 늦게 출발한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결코 추월할 수 없다는 제논의 역설을 근거로 삼아 현행 사법 절차도 문제 삼는다. 저자의 논리에 따르면, 사회적 약자(노동자)가 사회적 강자(회사, 기업)를 상대로 소송에서 승리하더라도 항소와 상고의 과정을 통해 현실적으로 피해를 계속 입게 되니 법이 만들어 놓은 구간들에 들어가려 해서는 안 된다. 저자의 말만 들으면 대단히 설득력 있게 들리지만, 상황을 거꾸로 가정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다시 말해, 만일 사회적 약자가 1심에서 패소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항소와 상고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억울함을 해소해야 하지 않는가? 저자는 특정 사안을 끄집어내어 거기에만 확대경을 들이댐으로써 보편적으로 정당한 법 집행의 절차를 트집 잡는, 대단히 편파적이고 비논리적인 태도를 다시 노출한다. 오히려 이런 저자의 태도에 비상경보를 울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540페이지가 넘는 책에서 저자는 많은 쟁점들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다시 한 번 다른 시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고마운 기회를 제공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롭게 읽기는 했지만, 솔직히 처음 1/4 정도만 읽어도 이후에 전개될 책 내용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사회 현상에 대한 저자의 시선이나 관점이나 사상은 고정적이다. 철학자가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고수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받겠지만,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무수한 스펙트럼의 독자들을 접하는 작가로서의 책임의식과 소명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강신주라는 이름에서 비롯되는 후광효과에 현혹되지 않고 냉철하게 평가한다면, 아무래도 이 책은 저자가 제목으로 밝히는 바람대로 완전한 기능을 갖춘 비상경보기의 역할을 수행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인상이 짙다. 그럼에도 이 책은 우리가 놓치고 있을지도 모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저자와 완전히 상반된 입장에 서 있는 독자라면, 저자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사회를 어떤 태도와 시각으로 바라보는지 그리고 그런 태도와 시각에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저자와 일치된 입장에 서 있는 독자라면, 자신의 관점을 더욱 확실히 고수하기에 충분한 근거를 저자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완벽한 최신 비상경보기 수준은 아니지만 의사(擬似) 비상경보기 수준 정도로 작용할 수 있다고 기대해도 무방하다. 획일적 체제 비판이라는 단일 원리로만 가동되는 단순 비상경보기보다, 심층적이고 건설적인 진단 기능을 갖춘 종합 비상경보기가 등장하기를 희망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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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경보기 - 비상경보기의 울림에 귀기울이자!
이 책의 내용은
저자인 강신주가 '작정하고' 쓴 글이다.
‘작정하고’ 썼다는 말을 하는 이유는 이 시대에 이런 성격의 글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기에 그렇다. 책이나 글, 또 돌아다니는 소리들은 많은데, 이런 글을 만나기는 어렵다.
이 책을 저자가 작성하고 썼다는 것을 세가지로 생각해 보았다.
먼저 ‘사이비를 변별하고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글(15쪽)을 쓰자고 작정했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가 작정한 것은 ‘민주주의를 읊조리면서도 파시즘을 관철하려는 작태, 인문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순응주의를 유포하려는 작태’(16쪽)를 까발리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가 또 하나 작정한 것은 “그런 잘못된 것들을 ‘옳다고 받아들이면 그르게 되는 걸, 아니 그르게 되는 정도가 아니라 삶마저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 (16쪽)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책 제목이 왜 ‘비상경보기’인가
그렇게 작정하고 쓴 책이 분명한데, 책 제목을 '비상경보기'라 한 이유를 저자는 벤야민의 <일방통행>을 인용해 밝히고 있다.
<소동에 의해서든 아니면 음악에 의해서든 또는 도움을 요청하는 외침에 의해서든 진리는 화들짝, 돌연 일격을 당한 듯 자기 침상에서 깨어나길 바란다. 진정한 작가의 내면에 갖춰져 있는 비상경보기의 숫자를 다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집필한다는 것은 그런 비상경보기를 켠다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11쪽)
진정한 작가의 내면에 갖춰져 있다는 비상경보기, 저자 강신주가 켜 놓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회, 이 시점에 아무도 비상경보기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이 민감한 시기에, 위험에 처했을 때에 비상경보기가 작동이 되지 않으면 모두다 위험에 빠지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것을 켜놓지 않은 시점에, 저자가 홀로 켜주어서 고맙다.
이제, 비상경보기 소리에 귀기울여 보자. 무슨 소리인지
이 사회, 어느 한 군데, 비상상황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그러한 사회에 모두다 비상임을, 정상이 아님을 소리쳐, 저자의 글들은 단어 하나까지 목놓아 경고하고 있는 듯하다.
이 사회가 비상상황인 근본적인 이유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우리 주변에 펼쳐지는 비극은 항상 자본이 인간을 압도하려 할 때 벌어진다.”(151쪽)
자유주의든 신자유주의든 자유가 부여되는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자본이다. (193쪽)
지금은 자본주의적 삶의 가치가 공동체뿐만 아니라 우리의 내면까지 지배하고 있는 불행한 시대다. 이제 돈이 모든 행위의 지고한 목적, 거의 유일하기까지 한 목적으로 신격화 된 것이다. (265쪽)
그러한 자본주의, 한걸음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가 바로 그 주범이다, 그러한 신자유주의 민낯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다.
생각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흔히들 식자들은 말한다. 사람들이 생각없이 산다고 한다. 그래서 생각좀 하고 살아라, 하고 세대를 꾸짖는다. 그러한 말에 무슨 말이냐고,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이러한 것에 대하여 저자는 생각의 정의를 명쾌하게 내린다.
<생각의 핵심은 타인의 입장에서, 혹은 공동체의 입장에서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컴퓨터라도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37쪽)
그러니 생각도 나름이다. 저자가 명쾌하게 구분한 것처럼, 자기를 향한 생각이 아니라 타인 또는 공동체를 향한 생각이다. 그런 생각을 해야 진짜 생각을 하면 사는 삶이 된다.
자기계발 권하는 사회
요즈음 자기계발의 열풍이 부는데, 그 대열에 휩쓸려 가면서도 왜 그래야 하는지를 모르고 가는 사람이 많은데, 이런 글 한번 읽어 들려주고 싶다.
<욕망의 이미지는 자본주의가 상품을 사도록 유혹하는 구별의 이미지일 수도 있고, 인간이 자기 자신을 훈육하도록 유혹하는 성장의 이미지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명품 가방을 들고 있는 모델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사진이나 영상을 떠올려보자. 나도 저 가방을 들고 있으면 매력적일 수 있을 것만 같다. 사기 힘든 명품 가방을 구입하는 순간, 우리는 저 섹시한 모델처럼 다른 사람과는 구별되는 멋진 사람이 될 것만 같다, 바로 이게 구별의 이미지다,
구별의 이미지가 상품, 즉 대상과 관련된다면 성장의 이미지는 우리 자신과 관련된다. 스티브 잡스의 이미지, 혹은 젊은 나이에 학계에서 주목받는 학자의 이미지를 보면서, 우리는 스스로 그렇게 주목받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성장의 이미지가 자기계발 의지를 작동시키는 이미지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구별의 이미지든 성장의 이미지든 욕망의 이미지에 사로잡히는 순간, 우리는 자신을 자본주의 체계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최고의 상품으로 만들려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65쪽)
서점에 처세술 책들이 지천으로 깔린 이유를 아는가?
저자는 직접 경험한 일을 통해 그 이유를 밝혀놓고 있다.
<어떤 편집자가 내게 당당히 권한 적이 있다.
"선생님이 쓰고 싶은 것을 쓰세요. 대신 제목만 제가 달도록 해주세요. 인문서적으로 분류되지 않고 경영과 처세 서적으로 분류되어야 하니까요. 최소 10만권 이상 나갈 수 있을 거예요."> (298쪽)
그 이유? 돈이 되기 때문이다.
무심히 지나치지 말자,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러니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것들을 결코 무심하게 보고 지나치지 말.
이런 글도 그런 차원에서 읽어보자.
<권리는 약자가 아니라 강자의 부당함에 맞서서 주장되어야 한다는 것.> (73쪽)
<법은 근본적으로 일부 소수의 사람들이 아니라 대다수 사람들의 억울함을 해소하는, 그래서 전체 공동체의 공동선을 회복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127쪽)
교사의 비정규화:
<자본주의적 교육을 관철하려면 아이들이 서로를 사랑하지 않고 상대방을 경쟁자로 여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 선생님들이 아이를 사랑하는 시간을 빼앗아야 한다. 사랑의 가치를 가르치면 안 될 테니 말이다. 그러니 선생님의 지위도 경쟁의 논리에 집어넣을 필요가 있다. 기간제 선생님을 양산함으로써 선생님들이 자시의 생계에 전전긍긍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75쪽)
<누가 우리 아이들을 경쟁과 불신에 물들여 끝내 사랑을 배신하도록 만드는가? 인간보다는 자본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들이다.> (93쪽)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산업의 발달과 자연에 대한 무분별한 개발은 환경을 심각하게 오염시키기 마련이다. 자본주의는 생태파괴를 반성하기는커녕 그걸 또 이용해 새로운 상품, 즉 생수를 만든 것이다. 생수를 만들기 위해 생태를 파괴하는 생수 공장을 만드는 아이러니가 여기서 발생하는 것이다.> (69쪽)
이제 비상경보기의 울림에 귀기울이자!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말한다.
<다시 한번 비상경보기를 울리고 싶었다. 더 세게, 더 절절하게, 더 애정을 가지고.> (17쪽)
그러니 우리 모두 그 소리 - 더 세게, 더 절절하게, 더 애정을 가지고 울려대는 비상경보기 - 를 귀기울여 듣자. 그 소리는 우리가 그러러니 하고 무심히 지나치면서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의 이면을 잘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이제 그러한 것을 보게 되었으니, 무엇 하나라도 달라져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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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
프로필에 쓰여진 사랑과 자유의 철학자라는 멘트와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진만으로도 그가 지향하는 세계의 일면을 볼 수 있을 듯 하다. 아니 한 편으로 생각하니 뭔가 이상하기도 하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아니 저자의 말대로 모든 것이 자본의 힘에 포획당한 이 시대에 '사랑'과 '자유'라니,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 담배라니, 한 때, 고뇌하는 지성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담배를 문 풍경의 사진을 저자의 사진으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그리고 철학이라니? 과연 이 시대에 자신을 철학자라고 자신있게 밝히는 사람이 있다니?
프로필에서 만나게 되는 저자의 모습은 현대 사회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추구되는 모든 가치와 상반된 듯 보인다. 물론 사람들은 '사랑'과 '자유'의 부분에서는 이의를 달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의를 달면서도 동시에 그러한 말들이 어딘지 모르게 과거형으로 되어버렸다는 사실에서 옛 애인과 재회하는 듯한 아련하면서도 씁쓸한 기분을 감추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이 책은 표지를 펼친 다음에 만나게 되는 저자 프로필의 부분에서 이 책이 보여주고자 하는 바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만이 이 세상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 이 시대에 '사랑'과 '자유', 그리고 현실에 대한 고뇌(물론 담배를 오늘날 이런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는 불분명하지만)가 과연 얼마나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누구나 인정하고 있듯이, 강신주가 끊임없이 이 책에서 반복하는 이 가치들이 여전히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듯하다.
이 시대 지식인의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이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이 책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주제이기도 하다. 수많은 인문학자들의 책이 '인문학의 위기'임을 부르짖는 이 시대에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인문주의자들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인문주의자를 표방하는 수많은 인문주의적 지식인들이 실상은 인문주의자의 코스프레로 자신들의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문학이 자기계발서라는 외피가 아닌 현실에 대한 치열한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다만, 한 꼭지 한 꼭지 읽으면 강렬하게 다가오는 글들이 이 책 전체에 관통되면서 그 강렬함이 상쇄되는 점에서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전적으로 동녁 출판사의 스타일이다. 동녁 출판사의 편집과 구성은 30년 전 철학 에세이 식의 구성에서 별로 나아지지 않은 듯하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내용을 감싸안는 구성의 묘가 조금 아쉽다. 변해야 하지 않아야 하는 부분이 있지만, 변해야 하는 부분도 있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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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끓는다. 꾸역꾸역 담배만 피워댄다.화가나 견딜수가 없기 때문이다. 화는 강신주가 내는데 울화통은 독자가 터진다.
페이지가 넘어가면 갈수록 분노게이지는 폭발 직전이다. 독자의 분노를 자극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면 강신주는 120% 아니 200% 목표 달성에 성공했다. 옆에 누가 있으면 한번 내지르고 싶을 정도로 화를 돋우기 때문이다.
정말 이런 적이 없었다. 장하성의 '왜 분노해야 하는가'를 읽을때도 이렇게 분노하지 않았다. 근데 이책은 다르다. 일단 표지부터 분노를 일으킨다. 엷은 붉은 색이 피를 끓게 만든다. 표지가 보라색이었다면, 노란색이었다면 이렇게 화가 나지 않앗을 지도 모른다.
읽는 내내 의문점이 들었다. '누가 우리의 강신주를 이렇게 분노하게 만들었나?' '누가 중년의 잘나가는 철학가를 이렇게 화나게 만들었나?' '누가 대한민국의 몇명 되지 않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약을 올렸나?' '누가 몇 안되는 대한민국 고액의 강연자를 몸서리치게 만들었나?'
도대체 누굴까. 박근혜정부인가? 보수 꼴통 들인가? 보수 언론인가? 정권교체가 되서 좌파정권이 들어서면 우리의 강신주박사님의 분노는 치유되는가? 정말 그런가?
비상경보기 꺼진, 그래서 웃는 강신주를 보고싶다. 분노하는 철학자가 아닌 자애로운 철학가를 보고 싶다. 그런날이 왔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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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의 정치수준은 그 나라의 국민의 수준을 대변한다고 한다,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일면 일리가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직접 투표를 통해 정치인을 선출한다. 한데 검증되지 않은 많은 후보자들이 자신만의 개성과 공약으로 표를 호소하고, 그들의 호소에 따라 국민들은 자신의 마음이 끌리는 후보에게 투표를 한다, 즉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이가 선출되는 것은 당연하니 그 정치인이 바로 그 나라 국민의 평균 수준인 것이다. 즉 정치인이 정치를 잘못하면 그를 욕할 것이 아니라, 그를 뽑아서 그 자리에 올린 우리 스스로의 잘못을 탓해야 한다. 그나마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인 선거조차도 하지 않은 이는 정치인의 잘못을 나무랄 자격도 없다. 일부 국민들은 정치는 우리의 생활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치는 그 사회의 근간이다. 예를 들어 헌법에 명시된 대로 국가의 주인인 국민을 바라보며 정치를 하는 이들과 자신들의 안위만을 위해 정치를 하는 이들의 행동은 같지 않다. 국민을 바라보며 정치를 하는 이들은 국민의 안전과 평안을 위해 각종 법규를 제정하고 실행할 것이며, 그렇지 않은 이는 자신들의 이익이나 일부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브로커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떠올리기는 싫지만 얼마 전 2주기를 맞은 세월호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기본적인 의무도 소홀히 하는 국가에서 국민의 안위는 보장될 수 없다. 국민은 국가가 자신을 보호해 줄거라 생각하며 국민의 의무와 권리를 다한다. 하지만 국가의 대변자인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의무를 소홀히 할 경우 국민이 어떤 경우에 처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어디 그것뿐인가. 그 이후 바로 발생한 메르스 사태에 대해서도 정부는 안이한 대응으로 일관하여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지 못하고 전 국민을 위험에 던져 넣었다. 국가가 그 기본적인 의무를 소홀히 한 정책을 펼칠 경우 국민이 어떤 상태에 놓여질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들이다. 아직도 그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세월호 사건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단돈 2만원에 팔려나와 친정부 데모를 하고 유족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그런 국민들. 그리고 그들을 부축이는 위정자들이 있는 한 제2, 제 3의 세월호 사건은 또 일어날지 모른다. 이렇듯 정치는 국민의 안전뿐만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와 일상생활 모두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지금도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고 추진하려고 하는 현 정부의 각종정책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한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그 진실을 모른 채 그저 위정자들의 거짓말에 속고 있다. 그 법안들이 국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 인양 허울된 양의 탈을 쓰고 양두구육의 모습으로 국민을 오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말이다. 그런 오도에 속아 넘어갈 국민이라고 그들은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니면 무슨 짓을 해도 이 나라의 국민이 자신들을 지지해 줄거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그런 대한민국의 현 사회를 진단하는 내용이다. 양두구육의 탈을 벗겨버리고 그들이 무엇을 위해 정치를 펼치는지, 그들의 정치로 인해 이 나라의 앞날이 어떨지, 이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는지,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들려준다. 헌데 정치학자의 시선이 아니라 철학자이며 인문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사회에 대한 진단이다. 지금 이 사회에서 위정자들이 벌이고 있는 행동과 그들의 주장의 허점이 무엇이고, 그들이 시도하고자 하는 정책을 통해 그들이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낱낱이 보여준다. 파시즘이 만동하고, 국민들을 위한 나라가 아닌 그들만의 리그를 위한 나라, 자본주의라는 논리에 갇혀 무너져 내리는 이 사회의 근본 문제, 빼앗긴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우리가 해야 될 바가 무엇인지를 철학자는 우리에게 말한다. 또한 현재 이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제반 사항들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이 무엇이고 허구가 무엇인지 말이다. 평소에 말을 잘하기로 유명하지만 그의 평소의 말솜씨보다 이번 이 책을 통해 풀어내는 사회의 진단은 그의 말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다. 작가만의 예리한 통찰력과 더불어 여러 객관적인 논리와 수많은 철학자들의 논리를 빌어 설명해 내는 그의 글솜씨는 읽는 이를 감동케한다. 하지만 그 감동의 이면에 분노감이 치민다. 이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제반사건들과 지도층이라도 하는 이들이 행하는 행동의 이면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글을 통해서라도 국민들의 조금 더 진실에 접근할 수 있고, 대한민국의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든 사건들의 현상을 볼 수 있다면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누가 국민을 위한 진정한 정치인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이미 국민들은 알고 있는지 모른다. 그건 이번 총선의 결과로 우리에게 나타났으니 말이다. 진실을 아는 국민이 많아질수록, 그리고 국민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정치인들은 국민을 무서워하게 되고, 그들은 국민들을 쉽게 무시하지 못한다. 그리고 감히 국민을 속일려고 들지도 않을 것이다. 더불어 국민은 수준이하의 정치인들을 민의를 대변하는 자리에 앉히지도 않을 것이다. 헌법에 보장된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한참 하위법인 도로교통법으로 규제해도 아무 말도 못하는 나라, 그리고 그것이 정의인양 부르짖는 나라, 그런 나라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다. 하지만 그런 나라가 어제까지의 나라였으면 한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우리의 후손이 살아갈 나라는 그런 나라가 아니었으면 한다. 이 책의 표지에 소개된 글처럼 민주주의의 위기, 무너지는 삶 앞에서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우린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들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수많은 우리의 선배들이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서 과감히 자신의 목숨을 던져 되찾은 그 민주주의를 말이다. 철학자가 울린 비상경보기, 이제 그 비상경보에 우리가 행동여야 한다. 비상경보가 울리면 즉시 안전한 지역으로 피신하여 스스로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 즉 비상경보가 울리는데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비상경보에도 가만히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행동하지 않으면 누구도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 행동하는 국민이 많아질수록 이 땅에서 비상경보가 울리는 경우는 줄어들지 않을까. 아니 아예 경보가 울리는 경우가 아예 없어지지 않을까. 철학자가 울린 비상경보에 우리가 이제 응대할 차례다. 왜? 가만있으면 우리가 다치니까. 우리의 삶과 더불어 이 땅의 민주주의가 훼손 되니까 말이다. 세상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올바른 판단과 그 판단에 따른 행동을 옮길 때 세상은 바뀐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접하는 사건들에 대한 진실을 들여다보는 것은 가장 일 순위다. 위정자들이나 일부 몰지각한 이들에 의한 허울이 아닌 그 이면에 진실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 정확한 판단을 해야 정확한 행동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진실에 접근하기 에 이 책은 충분한다. 한나라의 정치수준의 그 나라의 국민의 수준을 대변한다고 했다. 이번 4.13 총선의 결과는 그동안 절망했던 대한민국 국민의 수준에 대한 기대를 다시 갖게 끔 했다. 국민들이 가진 유일무이한 힘인 선거의 위대함을 증명해 보인 절호의 기회였다. 그동안 양의 탈을 쓰고 국민을 오도한 이들의 가면을 벗겨내고 그들의 본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선거 이후로 달라질 이 나라의 미래가 기대된다. 이번 한번이 우연일수 도 있다. 참다 참다 국민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분노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번으로는 안 된다. 앞으로도 잘못된 정치를 하는 위정자들이 있으면 국민들의 힘인 선거를 통해 그들을 심판해야 한다. 그래야 정치인들은 국민들이 무서운 줄 안다. 아니 국민을 무서워하지 않는 이들은 아예 그들의 설 자리를 잃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펼칠 것이다. 이번 선거의 결과는 대한민국 국민의 수준을 한 단계 상승시켰다고 믿는다. 이 나라에 아직 희망이 있다. 대한민국은 국민은 아직도 위대하다. 대한민국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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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1 <비상경보기(강신주 지음/동녘)> 철학이란 단어의 어원은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지혜에 대한 사랑’이다. 그러다 보니 철학자들은 세상의 복잡한 현실과 동떨어져 진리만을 추구하는 이상주의자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에 저자는 강력하게 반대한다. 원효와 니체, 신채호의 의지를 닮고자 노력하고, 어지러운 세상의 탁한 빛이 제거되기를 꿈꾸는 철학자 강신주 선생의 진짜 구별법. 사이비(似而非)를 의심함은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경향신문에 2년 동안 게재한 칼럼을 모아서 만든 책이다. 칼럼이 쓰인 시기가 책이 발간된 2016년 초의 이전 2년이다 보니 보수 정권이 ‘보수’라는 가치에서 어긋나 있던 때였다. 개인적으로 암울하고 답답하던 시절이었다. 나만 그랬던 것은 아닌 듯 철학자도 마찬가지였나보다.
최근 사회지도층들의 후안무치와 안하무인은 그 유래가 오래된 것이다. 그들은 주인의 생각을 충실히 따르면서 개밥을 챙겨왔던 사람들, 타인들의 입장에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생각의 의무와 의지를 저버린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들을 이렇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은 과거 유신 시절로 상징되는 권위주의적 사회 분위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유신 시절을 거쳤다고 해도 모든 사람들이 그들처럼 개가 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그렇다.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은 이 사회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정당한지 그들은 전혀 반성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니 누구 탓도 할 일이 아니다. 생각의 의무와 의지를 저버렸던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본인들 선택이었으니까. 아니, 더 정직히 말해 반성해야만 했을 것을 반성하지 않아서, 생각해야만 했을 것을 생각하지 않아서 그들은 지금 그 자리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 <개보다 못한 개들의 세상> 중에서
착하다! 자본주의에 개밥에 도토리처럼 치여도 자신이 뽑은 대표자들의 보호도 못 받고 죽는 우리 이웃들이여! 10만 명당 자그마치 29.1명이 죽어 나가고 있다. 29.1명이라니 얼마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말자. 1년에 1만 5,000명이 자살하는 셈이다. 자살률 11연패에도 이제 심드렁한 것 같다. 대한민국은 2015년 기준 OECD 국가 중 11년 연속 자살률 1위를 기록했다. 어쩌면 자본가나 보수 정권이 원하는 대로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삶의 척박함을 사회 구조적 문제라기보다는 개인 탓으로 돌려야 한다는 보수주의 논리가 우리 이웃들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으니 말이다. 백 명의 고용이 보장된 사회구조가 열 명의 고용이 보장된 구조로, 혹은 한 명의 고용이 보장된 구조로 바뀌었다. 그런데 자본가와 정부는 어쨌든 열심히 하면 열 명 중의 한 명이 자신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니 취업이 안 되거나 정리해고되거나 명예퇴직 되어도, 그것은 모두 우리가 노력을 하지 않는 탓이다. OECD 국가들 가운데 자살률 1위를 달성한 비법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만 탓한다. 그러니 자신만 죽으면 된다. 경쟁에서 진 낙오자니까. 한마디로 자신에게 분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분노를 내면이 아니라, 외면으로 돌리자. 타살을 자살로 왜곡하는 논리에 걸쭉한 침을 뱉자. 그리고 탐욕스러운 자본가나 그를 방조하는 정부에 화끈하게 분노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엿을 먹이자. - <세계 11연패에 도전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중에서
집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박근혜 정권은 우리 이웃들을 유혹하던 화장을 깨끗이 지우고 마침내 자본 편을 들고 싶었던 자신의 도도한 민낯을 드러냈다. 보수 정권의 행복한 선택, 아니 솔직한 선택은 우리 이웃들에게는 거대한 불행의 서막이 될 것이다. 보편적 복지는커녕 약자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칸막이마저 제거할 테니 말이다. 감언이설에 속지 말고, 이제 제발 돌아보라. 지금 박근혜 정권이 얼마나 노골적으로 ‘자유주의’ 정책을 실행하고 있는지를. 더 가증스러운 것은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한다는 미명하에, 마치 모든 사람에게 자유를 주기라도 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 정권은 사자와 사슴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철책을 깨끗하게 제거하려는 동물원 당국자와 얼마나 다른가! 이제 야생의 피 냄새가 진동하게 될 동물원 아닌 동물원이 탄생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 <누구를 위한 자유인가> 중에서
친자본주의적 정권들이 지속적으로 집권하자 좁게는 무상급식과 관련된 논쟁, 더 넓게는 복지를 둘러싼 논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경제의 위축, 그리고 취업과 고용의 불안은 항상 정의를 요구하는 논쟁을 낳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성장에 집중하다가 분배라는 사회적 정의의 핵심을 소홀히 했던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그 누구도 복지 정책을 확대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견을 달지 않는다. 더군다나 집권을 노리는 세력들이라면 말해 무엇하겠는가. 복지 정책의 수혜 대상자들이 대다수 유권자들이니 말이다. 사실 핵심은 복지 정책 강화가 선심성 공약일 뿐인지 아니면 현실적 의지인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지금 복지 정책을 실시하자는 입장이라면, 그는 복지에 대한 현실적 의지가 있는 것이다. 반대로 그렇지 않고 시기상조를 주장하는 입장이라면, 그에게 복지 정책이란 그저 선심성 구호였을 따름인 것이다. - <사랑, 그건 본능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 중에서
보수 정권의 마무리가 아름답지 못했다. 이후 집권한 진보 정권에 대한 평가는 나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선택의 순간이 다가온다. 유권자 각자의 의사가 온전히 자신의 뜻대로 반영되기를 바란다. 부자는 부자를 지지하는 정당,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을 지지하는 정당을 선택하기를 바란다. 가짜뉴스에 현혹되거나 부화뇌동하는 선거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를 그 다음 선택의 순간까지 잘 기억하고 있기를 바란다. 선택한 이후 유권자를 배신하는 정당이 있다면 꼭 기억해두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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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박사 강신주의 책을 좋아한다. 솔직하면서 대담하게 거침없이 얘기하기에 뭔가 글을 읽고나면 얻는 것들이 항상 있었다. 강신주 박사의 전공을 살릴 '철학이 필요한 시간' 도 그랬고 일반 대중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충고,조언해주는 다상담도 그랬다. 그래서 항상 yes24를 들어오면 뭔가 그의 새 책이 나왔나 검색을 해 보는데, 이번에 나온 책은 예전에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코너인 '비상경보기'에 썼던 글들을 모아 엮은 책이었다. 일단 경향신문의 해당 기사를 좋아해서 책 제목만 보고도 이 책이 어떤 얘기들을 할지 대충 짐작은 되었다. 책 두께도 만만치 않게 두꺼워서 '이거 언제 다 읽나'하는 생각도 잠시,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서 다 읽었다. 책의 내용은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이야기와 주로 정치에 대한 이야기다. 예전 이승만 시절의 얘기도 있고 박정희 정부때 이야기도 있고, 지금 우리 현실사회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4.13 총선이 지나고 나서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이 변했다. 국내정치에 불만을 가진 여러 국민들은 그 결과를 여소야대의 상황으로 만들어냈고, 그 상황이 대통령의 부정부패를 캐내는데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의 작은 한표가 책 제목과 같은 비상경보기 역활을 한 것이다. 지금도 나라는 시끄럽고, 앞으로 몇달간은 이러한 상황이 계속될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읽어봄 직한 책으로 나는 이 비상경보기 책을 추천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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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한 장면처럼, 건물에 화재가 났거나 비행기에 문제가 생겼거나 혹은 배가 침몰할 위기에 처했을 때에 어김없이 붉은 색의 경광등이 돌아가며 경보음을 울립니다. 우리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에도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이상징후를 알리기도 합니다. 그 경보음을 들을 수 있다면, 위급한 상황에서도 탈출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들을 수 없다면 위기의 순간을 모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혹은 경보음이 사방에서 울리고 있더라도 늘상 일어나는 일이라고, 만성이 되어 그 위기를 직감할 수 없을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에게 이 세상이 가장 크게 경보음을 울린 날은, 2014년 4월 16일이라 생각합니다. 위급한 순간에는 경보음이 울리고, 어디선가 구조대가 나타나서 내 생명을 혹은 내 이웃의 생명을 구해줄 것이라던 믿음이 사라지면서 대한민국 전체에 '비상경보등'이 울려퍼진 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었던 국가는 경보음을 울릴 생각도 없이 뒤짐을 지고 있고, 국민의 생명은 민간업자에게 넘어가고, 비명을 지르는 혹은 살려달라는 외침은 물 속에 가라앉았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는 그 날 이후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둘러보면,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면 세상 어느 한 구석 경보음이 울리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평온하지 않고 정상적이지 않다는 그 울음을 어쩌면 우리는 애써 외면하거나 나한테는 들리지 않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발터 벤야민이 <일방통행로>에서 말하고 있는 '진정한 작가의 내면에 갖춰져 있는 비상경보기의 숫자를 다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집필한다'는 것은 그런 비상경보기를 켠다는 것에 다름아닐 것이다' 라는 말은, 굳이 작가가 아니더라도 세상에 대해 예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몇 개씩의 경보음을 듣고 있을 것이고, 그 소리에 이끌려 뭔가라도 하고 있을 것이라 해석을 하고 싶습니다. 저자의 주장처럼, 사인이 분명하지 않으면, 죽은 자들의 요구에 대답할 수 없다면 서둘러 관뚜껑을 닫으면 안 됩니다. 뚜껑을 닫는 순간, 생과 사의 명확한 갈림이 생기고 우리에게서 죽음은 묻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저 죽음을 슬퍼하거나 애도하는 것으로 부족하다는 말이고, 진실이 규명되기 전까지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는 말입니다. 바다에 가라앉으며 '왜 나는 죽어야 하는가?', '왜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는가?'라고 물어야 했던, 세월호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이들의 물음에 제대로 답을 할 때까지 말입니다. 어쩌면 세월호가 우리 사회에 울리고 있는 이 경보기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끌 수 있다면, 다른 몇 개의 경보기까지도 끌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될 수 있습니다. 경보음에 반응한다는 것, 세상 무엇인가에 반응한다는 것은 그에 따른 책임을 진다는 의미라는 저자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 경보음에 반응하는 수 많은 이들이 오늘도 광장에 모여 '촛불'을 켜고 있는 것이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