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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장르보다도 작가의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를, 또는 생각을 엿볼수 있는 것이 에세이라는 장르일것이다. 허구를 추구하는소설의 특성상 작가의 생각을 담기에는 조금은 어려울때가 많고 상징성을 중요시하는 시의 특성상 그 역시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을 드러내기는 제약이 다른다. 수필이라는 장르는 자신의 신변잡기적인 이야기가 들어가기도 하고 자신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쓰기도 하고 어떤 사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쓰기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작가를 가장 잘 이해할수 있는 장르가 아닐까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의 예를 들어보자. 학교다닐때 그의 작품을 읽었다.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소설을 통해서 그의 작품을 처음 접했다. 그리고 어'둠의 저편'이라던지 몇몇 작품을 통해서 그의 소설임을 특징을 잡아낼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 '잡문집'이라는 책을 통해서 느꼈던 하루키라는 사람은 소설에서 알고 있는 내가 알던 그 작가와는 또다른 이미지였다. 어두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 소설이라는 장르속에서만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았던 것이다. 또한 그가 그렇게 음악을 좋아하고 매니아인줄도 그때서야 알았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에세이는 가장 작가를 잘 드러내준다고 할 수 있겠다.
현기영 산문집. 운문과는 다른 산문. 작가만의 생각을 제약없이 표현 할수 있는 장르. 이 작가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어서 전혀 아무 맥락도 없이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단지 책이 새로 나온 것을 알았고 누군가가 읽어보고 싶다고 했고 그래서 그 김에 나도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내가 작가에 대해서 알아보고 조사를 해보고 어떤 작품을 썼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나는 이 작가의 작품을 읽지 않고 넘겼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말이다.
사실 제목과 띠지만 보고 늙어감에 관한 자연스러운 생각들을 주로 적어 두었을줄로만 알았다. 하루하루 나이가 들어가는 이 시점에 다른 사람들이, 같이 나이들어가는 사람들이, 이미 나보다는 조금 더 세상을 살아간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솔직한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었던 것도 같다.
4.3사건을 비롯해서 강정 사건까지 자신의 주장을 펼펴내는 작가의 주장이 당연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까칠했다. 이 책을 통해서 제주에 무슨 사건이 있었고 어떤 일이 있었으며 그것이 무엇이 원인이 되어 그런지도 알게되었지만 내가 기대했던 것이 그런 종류의 글은 아니었기 때문에 약간은 아쉬웠다. 나는 잔잔한 산사의 새소리나 풍경소리를 기대하며 책을 펼쳤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시끄러운 데모현장에 와 있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이 작가를 잘 알고 있고 그의 작품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하면서 읽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그와 같은 정치노선을 동조하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관심이 가는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져 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작가와 함께 대담을 나누고 싶은 독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고 이 책을 통해서 아예 그들은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는 제목답게 아마 작가는 영원히 늙지 않을것만 같은 느낌이다. 허구를 꿈꾸고 상상을 계속 하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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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는 단어가 깊게 베어있는 에세이집이었다. 노년에 접어든 저자는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태어난 것은 모두 죽는다는 그 단순한 삶의 이치. 죽는 건 정말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 다시 다양한 생물들로 태어난다고 생각하면 기쁘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저자는 죽음 그 자체는 두렵지 않으나, 죽어가고 있음을 아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한다. 자신의 존재가 점점 사라지는 것 같은 절망감이 다름 아닌 죽음 그 자체이다. 죽음이 있다는 것 때문이라도 사람은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닌 가 싶다. 노년은 갑자기 놀랍게 두렵게 마감되는 것이 아니라, 금빛의 풀밭과 단풍 든 나무들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서히 사라져 가는 것이라 한다.
바다. 제주가 고향인 저자는 가슴속에 조그많게 축소된 바다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눈감으면 암암히 떠오르는 유년의 바다. 어린 그의 몸을 안고 굴리면서 잔뼈를 굵게 키워준 제주바다이다. 도시생활로 마음이 혼탁해지면, 가슴속의 작은 바다가 몸살을 앓는다. 그러면 제주바다를 만나기 위해 공항으로 달려간다. 바닷가 현무암 암괴 사이의 물통에 살고 있는 깅이통. 어린시절 놀던 곳과 비슷한 장소에서 깅이통을 만난다. 제주는 바람의 고장이다. 바람에 바다 냄새가 실려있다. 그리운 어머니를 향해 달려가듯이 공항에서 내리자 마자 바다로 달려간다. 바다를 향한 그의 열병과 갈증이 극심하여 두 달에 한 번 꼴로 고향에 내려가 바다를 보아야만 직성이 풀린다 한다.
제주 4.3사건. 그는 고향에서 벌어진 학살에 대한 글을 많이 썼다고 한다. 대학살 사건은 오랜 세월 동안 독재정권에 의해 발설 못하게 철저히 금압당해왔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고 절망과 공포를 유머로 꿰뚫으면서 밝은 미래에 대한 확신을 보여주었기에 감동 받았다고 한다. 글 쓰는 자는 어떠한 비극,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인생은 아름답다고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독자에게 확신 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소설을 쓰냐는 핀잔도 많이 들었던 모양이다. 동족에 의한 학살, 그건 묻어두어야 할 이야기인가. 아니면 밝히고 참회해야 할 진실인가.
숲과 나무에 관한 글이 많다. 자작나무가 땔감으로 쓰이고 있다는 글도. 산악회 회원들과 자주 산에 오르며 술 한잔 기울이고 있다. 흙내가 고소해지기 때문일까.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좀 더 눈에 담고 싶어서 일수도 있겠다. 빛의 향연, 대자연의 움직임. 소근대는 소리들. 그냥 두고 걸어가기에는 아까운 것들이다. 억새꽃 하얀 군무는 가슴이 저리도록 처연하게 아름답다고 한다. 그 군무를 볼 때마다 가슴에선 뜨거운 희열이 솟구친다. 들판의 금빛 물결, 바람에 따라 춤을 추는 꽃들의 움직임. 풀들이 생명을 마감하면서 마지막 정열로 뿜어내는 절정의 환희. 풀벌레들도 환희의 노래를 부른다. 짝짓기 소리. 생명의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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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 】 현기영 / 다산책방
“노년은 도둑처럼 슬그머니 갑자기 온다. 인생사를 통하여 노년처럼 뜻밖의 일은 없다. 아등바등 바삐 사느라고 늙는 줄 몰랐다.” 예전에는 쌀을 항아리에 담아놓고 양푼이나 바가지로 퍼 먹었지만, 쌀통이 나온 뒤로 한 번 들이 부어놓곤 밑에서 빼먹기만 한다. 쌀이 얼마나 남았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빈 통을 만나게 된다. 나이를 먹어가는 일이 꼭 그런 듯하다. 늙지도 않을 것 같다. 마르고 닳도록 살 것도 같다. 그렇게 잊고 살아간다. 나이 듦과 죽음이라는 관념에서 억지로 멀어지려고 한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다. 작가의 표현처럼 노년은 도둑처럼 슬그머니 갑자기 온다. 부지불식간에 죽음과 막다른 골목에서 만나는 일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죽음 그 자체는 두렵지 않으나 죽어가고 있음을 아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한다. 공감이 간다.
사회 명사로 활동했던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마음이 심란할 것 같다. 그들 대부분은 자기 이름의 노예로서 일생을 살아 온 면이 클 것이다. 세상이 그 이름을 잊는 걸 무엇보다도 두려워한다. 이름이 지워질 때의 정신적 고통, 그 쓰디쓴 절망감은 다름 아닌 죽음 그 자체일 것이다. 그래서 이름이 높은 사람일수록 두 번의 죽음을 겪게 된다고 한다. 높은 지위에 자리하다 정년퇴직하고 나서도 아직도 자신이 그 자리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곤 후임으로 앉아 있는 사람 또는 예전 부하직원들에게 지시를 하는 황당무계한 경우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 사람에겐 그 자리가 목숨과도 같은 자리가 아니었을까? 꿈과 현실을 분간 못하듯, 퇴직 전과 퇴직 후 자신의 위치감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참으로 심각하다. 이야기가 어찌 이렇게 흘러갔지만,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 ‘이름의 노예’, ‘자리의 노예’라는 단어를 통해 그 사람이 생각났다. 안타까움을 넘어 답답하다.
소설가 현기영의 산문집이다.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나이 듦’과 ‘자연’이다. 작가는 ‘내 안의 죽음’을 달래기 위해 도시 밖으로 자주 나간다고 한다. 자연은 노년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란다. 조만간 돌아가야 할 곳이 그곳이기에 더욱 정이 간다고 한다. 인간의 삶을 자연의 일부로 삼았던 옛사람들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죽은 후 나의 유전자는 두 방향으로 전달 될 것이다. 한쪽은 종족의 한 분자로서 후손에게 전달되고, 다른 쪽은 자연의 한 분자로서 초목과 곤충에 전달된다.”
1941년 제주도 태생인 작가는 제주의 이런 저런 모습을 그려주기도 하지만, 33년 전 작가의 작품 「순이 삼촌」이야기를 꺼낸다. 독일 철학자 아도르노의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라고 한 말을 기억하며, “내가 처음으로 제주 4. 3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 「순이 삼촌」을 쓸 때의 내 생각도 그와 비슷했다.”라는 말을 한다. 작가가 「순이 삼촌」을 쓸 때는 고통스러웠지만, 시간이 제법 흐른 지금은 4. 3의 글쓰기도 조금은 너그러워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단다. “글 쓰는 자는 어떠한 비극,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인생은 아름답다고,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독자에게 확신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각성이 생겼다.” 작가의 마음에 이런 생각이 자리 잡기까지 3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싸우는 동안 증오의 정서가 필요했고, 증오가 가득한 가슴으로는 ‘사랑’이란 말만 들어도 속이 느끼했는데, 이제 나는 그 사랑이란 두 글자에 대해서도, 그것을 노래한 사랑의 시에 대해서도 머리를 조아려 사과를 한다.”
어렸을 때, 좀 놀아 본 아이가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말이 있다. 어려서 억압받고, 구속당하고 자란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삐딱선을 탈 가능성이 많아질 것이다. “어른은 자신의 아이 시절에서 배운다.” 아이 시절에서 배울 것이 없으면, 많이 부족했던 것을 요구할 것이다. “그 시절의 아이가 늙은 나를 꾸중하면서 잊어버린 것들, 잃어버린 것들을 일깨워준다. 도시에 살면서 하늘의 구름, 달, 별 보는 법을 잊어버렸다고 나를 꾸중한다. 들판에 퍼질러 누워 느긋하게 오래 바라봐야만 그것들이 제대로 보이고 그것들을 바라보는 내가 누구인지도 제대로 알 수 있다고 가르친다.”
작가 현기영은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아버지」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순이 삼촌』, 장편 『바다에 우짖는 새』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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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금기시 되었던 제주 4.3사건의 이면사를 세상에 내놓아 충격을 던진 현기영작가의 산문집을 읽게 되었습니다. 제주 4·3 사건(濟州四三事件)은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무장을 한 남로당 제주도당 골수당원 350여 명이 제주도 내 12개 지서를 일제히 급습한 것을 기점으로 합니다. 남로당 중앙당과의 협의 없이 제주도당이 단독으로 저지른 사건으로 남한에서 단독정부를 수립하기 위하여 실시키로 한 5·10 총선에 반대하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의 밑바탕에는 1947년 3월 1일 삼일절 기념식이 거행되는 과정에서 불거진 불상사가 촉매가 되어 경찰이 발포하는 사건이 있을 정도로 팽배한 좌우익의 대립이 심화되어 임계치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고 합니다. 4월 3일의 경찰서 기습사건은 정부의 토벌로 이어졌고, 군경과 남로당이 대치하는 과정에서 숱한 양민들의 희생이 뒤따랐다고 합니다.
지금도 시각에 따라서는 제주 4.3사건에 대한 해석이 제각각인 것 같습니다. 현기영 작가는 무고하게 희생된 분들의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진실을 토로해왔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물론 작품 활동 초기에는 많은 고초가 뒤따랐다고 합니다. 등단 이후 40년이 넘는 세월을 바쳐 지켜온 화두를 이제는 내려놓을 법도 하지만, 작가는 여전히 자신의 화두를 짱짱하게 지키고 있는 모습입니다. 세월의 흐름에 거스를 수 없다는 안타까움과 야속함이 진하게 배어 있는 것으로 읽었습니다.
어느날 눈 떠보니 세월을 다 살아냈더라는 느낌을 작가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노년은 도둑처럼 슬그머니 갑자기 온다. 인생사를 통하여 노년처럼 뜻밖의 일은 없다. 아등바등 바삐 사느라고 늙는 줄 몰랐다. 그래서 누구나 처음에는 자신의 몸속에 진행되는 늙음을 부정하고 거부하려고 한다.(11쪽)” 그러면서도 세월의 흐름에 거스를 수는 없더라는 생각을 이렇게 에둘러 적기도 합니다. “옛 말에 늙으면 흙내가 고소해진다는 말이 있다. 늙어 흙에 묻힐 때가 머지않았다는 뜻인데, 죽음을 두려움이나 슬픔이 아니라, ‘고소한 흙내’로서 흔연히 받아들였던 우리 선인들의 넉넉한 풍류가 가슴을 친다.(195쪽)” 그러니까 작가는 여전히 미진한 무엇을 가슴에 담고 있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순이 삼촌>을 읽은 사람들 가운데 ‘동족에 의한 학살, 그런 이야기를 까발리는 일은 적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현장에 있던 분들은 ‘좌익도 우익도 자기 마음에 안들면 마구잡이로 죽여버리는, 완전히 미쳐버린 세상이었다’라고 회고하는 것을 보면,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에 좌우익 어느 쪽도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끔찍한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그 과정을 소상하게 밝혀두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먼 뿌리를 제주에 두고 있는 터라, 안타깝고 안타까운 일이라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2000년 1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사건을 재조명하고 무고하게 희생된 분들을 기리는 기념사업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다만 옥석구분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양민을 학살하는데 깊숙하게 간여했던 사람들이 희생자로 버젓이 탈바꿈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제주 출신으로 오랜 세월을 교단에서 보낸 작가적 경험을 녹여낸 제주 특유의 분위기를 손에 잡힐 듯 그려내고 있는 것도 작가가 붙들고 있는 화두 말고도 눈길을 끌었다고 말씀드립니다. 제주 방언으로 닭을 ‘독’이라고 부르는데, 제주방언으로 ‘독새기’는 무엇을 말하는지 궁금하실 것 같습니다. 무엇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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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는 늙지 않는다』는 민족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불리는 현기영 작가의 산문집으로 지난 2002년부터 최근까지 써왔고 발표했던 산문 37편을 묶어 출간한 책이기도 하다.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태어남과 동시에 동전의 양면처럼 정해져 결국에 죽음을 향해 늙어가는 것이겠지만 이러한 늙어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인생 또한 어떨지를 나이 지긋한 소설가가 들려준다.
삶의 어느 순간에서든 주변에서 본 동물, 꽃, 사람, 자연 등에 대해 작가 자신만의 생각이자 느낌, 나아가 깨달음을 담아내고 있는 책이여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지만 당연한 것에 대해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 글쓰는 사람들은 다르구나 싶어지기도 한다.
자신의 경험담에서 우러난 이야기이기에 솔직한 표현이 담겨져 있는데 작가 개인적인 의견 또한 읽을 수 있고 전반적인 내용이 나이듦에 대한 언급하고 있기도 하지만 꼭 그런 부분만 담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누구라도 크게 개의치 않고 읽을 수 있는 책인 셈이다.
나이가 들면서 주변에서 친구들이 하나 둘 곁을 떠나기도 할 것이다. 저자 역시도 그런 경험이 있다. 일요일 마다 북한산 산행을 핑계로 술이나 먹으며 삼십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던 산행 팀이 늘그막에 안나푸르나 트레킹에 도전하고 왕복 12일 동안,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걸어야 하는 힘든 여정 속에서 낭떨어지 길을 걸으며 주변을 돌아 볼 여유도 없던 그때 결국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기에 뭘 그렇게 힘들어 할 것인가 하고 자문하는 모습이 꽤나 선인(仙人) 같은 느낌 마저 준다.
한 번뿐인 인생, 누구에게라도 정해진 죽음을 향해 늙어가는 순간이라면 굳이 그 늙음을 두려워하기 보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들에서 행복하고 즐거운 기운을 찾는다면 오히려 그 나이듦이 더 큰 자유를 선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런 책이다.
누구라도 나이가 든다는 것은 결코 담담히 받아들이기 힘든 일일 것이지만 그래도 마음 먹기에 따라 아등바등 하기 보단 오히려 흔쾌히 포기해 버리면서 욕망의 크기마저 줄이다보면 그 대신 자유를 얻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서 얼굴에 주름살 하나 늘지언정 마음만은 더 젊어질 수 있다니 늙지 않는다는 말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하고자 한 말이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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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인생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뻔한데 뭐, 그렇게 힘들 게 갈 것 있나 늙는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프다. 애써 부정해도 그날은 반드시 찾아오고 만다. 미뤄두었던 트래킹을 간 날. 시간의 제약에 우리를 밀어 넣었던 폰까지 두고 첫날의 허벅지 진동을 무시하며 묵묵히 산을 올라간다. 같이 가자 약속했던 친구들은 먼저 가라며 우리를 두고 어디선가 쉬고 있을 거라 생각하며 산 정상에 올랐다. 그래 인생의 끝에 별것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나이. 2부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 이제는 무뎌질 때도 된 것 같은데 잘 벼려진 검처럼 날카로움은 세월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다. 숲에서 본 아까시나무, 무분별하게 소비되고 있는 자원, 인간의 이기심으로 망가져 가는 강줄기를 보면 속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로 온몸이 떨려온다. 아직 마음은 늙지 않았다. 3부 당신, 왜 그따위로 소설을 쓰는 거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사건이다. 그 사건을 언급하는 이유는 단 하나. 역사적으로 있었던 사실이며, 그 사실에 대한 슬픔을 감추는 것보다 드러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치가 더 크기 때문이다. 괴롭다고 외면한다면 그 역사에 대해 누구 하나 기억하지 않기 때문이다. 4부 늙으면 흙내가 고소해진다는 말 자연 곳곳에 남아있는 4.3의 흔적들이 감추려 해도 여실히 보인다. 그런 강정에 또 인간의 패악적 욕망이 들끓고 있다. 이러니 흙내가 고소해지는 것도 다 부질없는 일인 것 같다. 이대로 가다가는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을까. 그의 뿌리는 제주. 고향을 빼놓고는 자신을 논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역사적으로 묻힐 수밖에 없었던 4.3 사건을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톤으로 끊임없이 역설하고 있다. 간간이 울분 속에서도 자연의 아름다움과 한국의 현실의 안타까움을 말하는 그는 아직 열정을 품고 있는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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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 > - 현기영 / 다산책방 - 이 책은 제주항쟁의 4.3 사건을 그린 <순이 삼촌>으로 등단한 현기영 소설가의 산문집이다. 1부에서는 자연에서 스러지는 죽음을 맞이하는 여러 모습 들을 통해 자연스러움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2부에서는 그의 구석구석 뻗어 있는 여러 관심사들과 깊이 있는 주제들을 간략하게 보여준다. 3부에서는 그의 모태나 마찬가지인 제주를 들여다보며 글 속에 스며 있는 아픔들을 들춰낸다. 4부에서는 민란이 자주 일어날 수밖에 없는 제주의 역사에 대해 엿볼 수 있는 기회도 준다. 책 전반에 걸쳐 자연스러운 소멸의 과정을 읊으면서도 결코 역사를 지나치지 않는 묵직함이 내내 거대한 강물처럼 흘러간다. 그만의 색깔로 살고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이 짊어지기에는 너무나 큰 사건을 온 삶으로 짊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전체적으로 내게는 위로와 쉼을 준 책이다. 소설가다운 면모는 글 하나에 집중해서 읽다가 그 다음이 갑자기 궁금해지는 마지막 문장을 만날 때이다. 그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제주에 대한 사랑과, 4.3 사건은 인간 본연의 얼굴은 무엇일까 다시 생각하게 한다. 무엇보다 자연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스러지는 생명에 대한 생각은 나와 많이 닮았다. 산문은 재미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군가의 삶과 생각을 만나는 일이 늘 흥미롭지는 않다. 내가 당신의 기억까지 굳이 알아야 하는가 물어본다면 달리 할 말이 없다. 그러기에 산문은 소설이나 시보다 오히려 어려울 수 있다. 개인적인 경험과 삶의 발자취를 통해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흔적을 남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기에 난 이런 좋은 책을 만나면 더 고맙고 반갑다. 이런 글이야말로 알지 못하던 어느 사람의 작은 조각을 글로 만나는 일이다. 그와 내가 달라서 흥미롭기도 하고 그와 내가 닮아서 반가운 마음이 인다. 늙음을 당연하고 의연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제목은 늙지 않는다고 표현했다. 겉모습은 늙어가지만 품은 생각들은 오히려 날 선 낫처럼 살아 있는 그의 글답다. 읽는 내내 시원한 바다내음이 밀려오던 책. 그러면서도 묵직한 파도가 덮치기도 하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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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산문집, 자서전... 현실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비밀스러운 속내까지 들여다보는 것 같아 굳이 찾아서 읽지는 않았다. 사실.. 인생을 초연한 듯한 그들의 글이 왠지 못마땅하기도 했고, 속을 뒤틀리게도 했었다. '이제 나도 나이를 먹는구나!'라고 느끼는 요즘은 어떠한 책보다도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되어버린 아이러니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회색빛, 구버정한 뒷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이는 표지를 받아들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예전같지 않은 신체나이를 실감하며, 가끔은 우울하고, 또 가끔은 지금이라도 활기차게를 부르짖으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내 모습을 바라보는 듯 해서 책장을 넘기는데 더 힘이들었다. 다행히도 다산책방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 는 어설픈 건방은 가볍게 묵살시킬 수 있는 작가의 깊은 내공을 느낄 수 있는 산문집이다. 등단 41년, 일흔을 훌쩍 넘긴 작가의 산문집이라는 것을... 책을 읽는 내내 감사하는 마음으로 읽고 또 읽었다.
작가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슬픔, 비움, 회상. 고뇌??? 소설가는 더는 노년을 겁내지 않는다고 했다. 올해로 등단 41년이 된 노작가의 3번째이자 14년 만의 산문집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는 2002년부터 2016년까지 틈틈이 써오고 발표해 온 산문 37편을 묶었다고 한다. "파도가 아주 쉽게, 아주 부드럽게 쓸어버리더군. 죽음이 아주 부드럽게 퍼져서, 자비롭게 모든 걸 덮어버리더군. 그렇게 모두가 죽는다면 나도 죽음을 두려움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 p36 "어른은 자신의 아이 시절에서 배운다. 그 시절의 아이가 늙은 나를 꾸중하면서 잊어버린 것들, 잃어버린 것들을 일깨워준다. 도시에 살면서 하늘의 구름, 달, 별 보는 법을 잊어버렸다고 나를 꾸중한다. 들판에 퍼질러 누워 느긋하게 오래 바라봐야만 그것들이 제대로 보이고 그것들을 바라보는 내가 누구인지도 제대로 알 수 있다고 가르친다." p59 책을 덮고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문구들이 있다. 그것이 좋아서도 떠올리고 싶어서도 아닌데.. 그냥 문득 떠오르는.. 현기영 산문집은.. 그렇게 떠오르는 문구들이 많아서 자꾸 곱씹게 된다. 선선한 가을날.... 자연을 벗삼아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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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좋아한다. 여행 에세이든 삶에서 건진 에세이든 읽게 되노라면 저자의 삶에서 얻은 철학이 나를 숙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나와는 전혀 다른 삶 속에서 언뜻 발견한 공감은 성별과 나이를 떠나 심장 한켠을 찌르르 울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에세이 속에서 발견한 감흥은 심장을 관통하고 또 다른 삶을 혜안을 선사한다. 나를 감싸 안고 토닥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제시한다. 이번에 나와 전혀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리며 살고 계신 현기영 소설가의 에세이를 만나게 되었다. 그동안의 에세이가 공감 에세이라면 이번에 만난 에세이는 자신만의 색깔이 분명한, 짙은 농도의 에세이였다. 동강 트레킹을 하다가 만난 폐가를 바라보며 아름다움과 애틋함을 느끼고, 우물을 향해 절을 올린다. 당연하게도 노인과 소를 떠올리며 그들의 마지막을 그려본다. 한낮에 동네에서 두꺼비와 조우하고 그와 잠깐의 만남을 통해 생태계와 인간 터전을 교집합과 공집합을 되씹는다. 깅이통에서, 보리짚더미에서 별 바라기를 통해 지난 어린 시절을 추억한다. 아카시 나무를 배척했으나 이제는 다민족, 다문화가 되어버린 우리나라의 현실을 인정하며 아카시 나무도 우리의 것이라 덤덤하게 인정한다. 제주생이라, 제주 인구의 10/1이 죽임을 당한 4.3사건을 소재인 <순이삼촌>을 발표하지 않고서는 서정시를 쓸 수 없었노라고 고백하는 현기영 소설가. 제주에서 태어났기에 반농반어의 삶을 살아간다는 잠녀의 전생 궂은 팔자를, 깅이통에서 노니는 자그마한 어세계(魚世界), 대양의 축소판을 이야기한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필연적으로 제주를 찾을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한편 한편을 읽으면서 이해하기 어렵고 때로는 나와 맞지 않는 감각에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생업이 소설가라 한 문장 한 문장 씹어먹는 것도 아까워 필사하고픈 마음이 굴뚝이었다. 미사여구는 필요치 않았다. 맛깔나는 의성어와 감각적인 문구들은 수채화 같기도, 시를 여려 겹 덧씌운 것 같기도 하다. 정갈한 글 한편을 읽고 나면, 문학이 왜 문학(文學 :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 또는 그런 작품, 네이버 어학사전)인지 절로 느끼게 된다. 사실 이번 현기영 소설가의 산문집을 읽기는 그다지 쉽지 않았다. 노력과 노력으로, 인내와 인내로 읽어야 했음을 고백한다. 한편을 읽고 다음 편을 마저 읽는 우를 범하기보다는 씹어 먹듯이 읽어야 하며 위에도 잠시 언급했듯이 필사하면서 읽어야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지경이다. 41년 차 소설가 현기영씨는 노년이 도둑처럼 슬그머니 왔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은 나이 들지 않았으며 고집은 형형했고, 그가 모함마드에게 건필을 기원하듯 나도 현기영 소설가에게 건필을 기원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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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는 늙지 않는다. 현기영 저자는 등단한지 41년이 되었고 이번에 나온 산문집은 14년만에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저자의 많은 생각과 이야기들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안나푸르나 트레킹이라는 험난한 도전도 해보았고, 평범하게 산책도 했다. 그때마다 많은 것을 보고 생각하고 글로 전달할 수 있는 소설가라는 것에 대해 생각 할 수 있었다. 소설가의 산문을 읽으면 아무렇지 않은 평범한 일들에도 유려한 글쏨씨를 뽐내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그들은 자신의 글을 절대 뽐낸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지만 말이다. 산책을 하던 도중에 만난 두꺼비를 보며 과거를 회상한다. 두꺼비 다리를 구워서 먹거나 태워서 가루로 만들어서 먹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눈에 비친 두꺼비는 신이 만들어낸 완전한 완성품이라고 한다. 제주도는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다. 그곳에서 태어난 저자는 장편소설의 배경으로 제주도를 선택한다. 그 곳은 4.3 이라는 참사의 배경이 된다. 저자는 그 잔인했던 사건을 <지상에 숟가락 하나>라는 소설에 모든 것을 담아낸다. 그의 글쓰기는 폐광에서 광맥을 캐는 일과 같다고 한다. 어렸을 적 살았던 제주도에서 기억을 되살려 그 소설을 쓴 것이다. 무의식 속에서 살아있던 고향을 글로써 보여주는 작가의 소설을 보면 소설가는 늙지 않고 오히려 더 젊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그가 글을 쓸 때 젊은이들이 요즘은 쓰지 않는 단어로 글을 쓸때마다 과연 젊은이들이 이 단어를 알지, 어떤 의미로 쓰는 것인지 모를 까봐 걱정이 된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인터넷의 쉬운 글들만 보지 말고 순수한 소설을 읽는 시대가 다시 왔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