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카슨의 이 책은 석의를 할 때에 있어서 헬라어, 히브리어 원문을 참고함에 있어서 얄팍한 문법적인 지식만을 가지고서 참고를 할 때 설교자, 신학자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들에 대해서 범주를 나누어 제시하고 있다. 특별히 주석이나 BDAG Lexicon, Lidell-Scott Lexicon 등을 단순히 참고하는 수준의 설교자들이 가장 범하기 쉬운 단어 연구에 의한 오류들에 집중하고 있다. 사실 어떤 설교자이든지 자신이 신학교에서 배운 헬라어와 히브리어의 지식을 설교에 반영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게 되며, 설교를 통해서 자신의 신학적 지식을 과시하고자 하는 욕심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그러는 가운데 자신의 설교의 주제를 지지해주는 원어상의 근거를 발견하고 싶어서, 무리하게 단어의 의미를 견강부회(牽强附會)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정말로 원어를 철저하게 공부하고, 깊이 있게 훈련을 받았다면 오류를 적게 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초보적인 원어 실력을 겨우 갖추고 신학교를 졸업하게 되는 대다수의 설교자들이 충분하지 못한 원어 실력으로 단어를 분석하고, 구문을 분석하려고 하다보니 정확하지 못한 결론을 도출해 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지적과 함께 카슨이 제시해 주는 여러 가지 오류의 항목들은 설교자들이 강단에서 어설픈 원어 실력을 뽐내지 않도록 경계를 준다. 어근의 오류를 범하거나, 섣부른 선입견을 단어 분석에 도입하거나, 의미론적 시대착오를 일으키는 등의 실수들에 대해 이미 정보를 가지고서 원어 연구를 시작하는 설교자라면 그가 저지르게 될 실수의 양을 훨씬 줄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슨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소극적인 방법으로 오류를 줄이는 것보다는 좀 더 깊이 있는 원어 문법을 공부하기를 주문하면서 적극적인 대응을 요청한다. 저자는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서 움츠려 들거나, 회의(懷疑)만을 가지고서 이 책을 덮기를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 본문을 석의하는 데 있어서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공평하게, 그리고 겸손한 태도로 석의 작업을 할 것을 부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맥을 잘 살펴서 단어의 뜻과 문법을 살피는 것’이 올바른 석의를 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키(key)가 된다는 사실을 이 책 여러 군데에서 확증해 보이고 있다. 2. 카슨은 53쪽에서 ‘언어와 지성을 결합시키는 오류’에 대해 언급하면서 “어떤 언어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사고 과정을 심하게 규제하여 그들은 특정한 형태의 사고를 할 수밖에 없게 되고 다른 패턴들로부터는 보호를 받는다고 전제한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카슨이 Sapir-Whorf Hypothesis를 반대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Sapir-Whorf Hypothesis는 ‘언어결정론 가설’로서 예를 들어 에스키모인들에게는 눈[雪]이 일상적인 것이고 그들의 생활에 있어서 아주 빈번하게 대화의 소재로 사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눈을 표현하는 단어가 여러 개가 있는 반면에, 한국어에서는 쌀(rice)이라는 표현이 ‘밥’, ‘쌀’, ‘벼’, ‘이삭’ 등 여러 가지라는 것이다. 즉 이것은 사고와 문화가 언어를 결정하며, 그 반대로 또한 언어가 그 언어 사용자의 사고와 문화를 제한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이 책에서 카슨이 비판 하는 바처럼 반드시 “셈어는 활동성이 있기 때문에 중성명사가 없다”는 모세 실바의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그러나 특정 언어가 그 언어의 사용자의 사고와 문화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며, 또한 그 문화는 다시 언어에 영향을 준다. 즉 언어와 사고/문화는 상호 영향관계에 있다. 이 점에 대해서 카슨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그는 이 이론에 대한 다른 학자들의 비판을 인용하거나 자신이 이 이론의 타당성을 논리적으로 비판해야 할 것이다. 3. 이 책의 번역에 대해서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은 헬라어 단어와 문장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결코 쉬운 내용의 책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용어의 정확한 번역과 문장의 논리적인 흐름을 자연스럽게 번역해야만 잘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용어의 선택도 적절하지 않거나 일관성이 없고, 또한 문장도 매끄럽지 못한 것이 많다. 또한 오자(誤字)도 여러 군데 눈에 띈다. 몇 가지만 제시하도록 한다. 1) pseudodeliberative의 번역을 96쪽에서는 “무늬만 결정유도적”이라고 번역했다가 다시 97쪽에서는 “유사결정유도적”이라고 번역하는 비일관성을 보여준다. 2) 96쪽의 “권고적”이라는 단어는 hortotary가 아니라 hotatory이다. 3) 105쪽 6째줄에서 “무관사적인 용례”는 “관사적인 용례”가 되어야 한다. 4) 92쪽에서 술정적이라는 영어 단어가 constative라고 한 반면, 93쪽에는 costative라고 되어 있다. 무엇이 본래 단어인지 알 수 없다. 이 두 단어는 영한사전에서조차 쉽게 찾을 수 없는 단어임에도 두 쪽에서 다르게 제시하고 있다. 5) punctiliar라는 단어를 87쪽에서만 “순간시점적”과 “점적인”으로 다르게 번역한다. 그리고 이 단어도 5째줄에서는 punctilar라고 쓰고 있다. 6) 54쪽에서 “해석자는 어떤 단어에는 늘 혹은 거의 늘 어떤 전문적인 의미가 있다고 잘못 전제하고 있다”라는 문장에서 밑줄 친 부분과 같은 어색한 직역이 꼭 필요한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판독 능력을 떨어뜨리는 기능 외에는 아무 일을 하지 않는 표현이다. 그리고 한 문장 안에 “어떤”을 두 번씩이나 쓰는 데 “어떤”이라는 표현은 좋은 표현이 아니다. 이 문장은 단순하게 “해석자는 특정한 단어에는 대개 특정한 의미가 있다고 오해한다”라는 식으로 쉽게 번역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내용을 다루는 책에서 단순한 의미를 담는 문장들까지 복잡하게 번역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위에서 든 예는 몇 가지만을 언급한 것에 불과하다. 이 책의 번역은 대체로 좋지 않다. 서평을 하면서 번역을 반드시 언급할 필요는 없지만, 이 책의 경우는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쉬운 문장을 어렵게 직역하고, 용어를 일관성있게 번역하지 않으며, 영어로 용어를 표기해 주는 일에 있어서도 오자가 너무 많아서 이해를 돕기는 커녕 이해를 해치고 있다. 오류(誤謬)를 다루는 책이라고 해서 이렇게 번역의 오류와 편집상의 오자(誤字)가 많을 필요는 없는 데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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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평의 제목처럼 "성경해석에 관한 간략하면서도 깊이 있는 탁월한 책"입니다.
성경해석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입문서로 꼭 읽어보셔야 할 책입니다.
단어 연구의 오류, 문법적인 오류, 논리적 오류, 성경 해석의 전제적 오류와 역사적 오류 등에 대해서 잘 다루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그 동안 강간에서 종종 듣던 성경해석에 오류가 있었음을 발견하고 무릎을 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21장의'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에 얽힌 대화를 필레오, 에로스, 아가페 식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지적하는데, 깊은 깨달음을 줍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의 권능에 관해 사용된 두나미스라는 단어 역시 종종 '다이나마이트'같은 강력한 폭발력으로 해석되어져 왔는데, 이 어근은 초대교회 시대에는 사용되지 않았고, 그 후에 사용되기 시작한 단어임을 지적하면서 바른 성경해석의 특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일단 성경해석에 관심있는 분들은 이 책부터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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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전문가(신학자들)들과 비전문가들(대다수의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그리스도인, 혹은 비그리스도인들), 그리고 그 사이의 여러 사람들(목회자들이나 신학을 일정부분 공부한 이들)이 성경을 읽고 해석하면서 저지를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잘못들을 정리해 놓은 책이다. 저자는 단어와 문법, 논리적인 문제와 성경 외적인 전제들로 인해 발생되는 것 등의 항목을 나누어 여기에 해당하는 오류들을 설명하는데, 대부분의 설명들마다 실제로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들을 (그들의 실명과 함께, 종종 자기 자신의 글에서도 뽑아) 함께 제시하고 있다.
2. 감상평 。。。。。。。
이 작고 얇아 금방 읽어버릴 것 같았던 책을 읽는 데 (틈틈이 읽었음을 감안하더라도) 나흘이나 걸렸다. 어지간히 전문적인 내용들이 많아서 흥미로운 제목과는 달리 신학을 전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특히 헬라어를 입문 수준 이상으로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앞서 말한 대로 책은 성경의 독자들이 범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오류들을 항목에 따라 분류해 설명해 놓고 있다. 당연히 이 설명들을 읽으면서 두 가지 질문이 떠올랐는데, 하나는 우리가 너무 쉽게 성경을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는 반성이고, 다른 하나는 과연 누가 성경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물론 저자는 성경해석에 대한 시도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경 해석에 있어서 오류의 가능성을 조금씩이라도 줄여나감으로써 미래의 해석학적 공동체가 보다 원 의미에 가까운 성경해석의 결과물을 갖게 되기를 소원하며 썼지만.
이런 책은 그리스도인들을 조금쯤 겸손하게 만들지 않을까 싶다. 너도 나도 말하기를 좋아하는 교회 안에 있노라면, 가끔은 귀를 막아버리고 싶을 때도 있으니까. 그 안에 담긴 수많은 논리적인 오류들과 잘못된 성경해석들을 성공이라는 증거로 정당화하는 모습이 보기 싫은 것도 사실이고. 그런 사람들에게 이런 책을 들이밀면 또 무슨 궤변으로 넘기려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 번은 읽어보라고 말했으면 하는 책이다.
책에 나온 설명을 모두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50%의 내용만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성경을 대함에 있어서 좀 더 조심스러워져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충분한 이유는 될 테니까.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하지만 너무 섣불리 도전했다가는 앞서의 의욕이 금새 꺾여버릴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하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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