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대형서점에 가서 책을 둘러보고 있는데 우연히 눈에 띈 책이 있었다. 앤드루스의 '다락방의 꽃들' 내가 소녀였을 때 친구들 사이에서 '다락방의 꽃들' 시리즈가 꽤나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나도 같이 읽으면서 그 음울하고 비극적인 스토리에 충격(?)과도 같은 감정을 느끼며 열심히 시리즈를 읽었던 기억이 나서 집어들고 1권을 뒤적였다. 책 속에는 오래 전에 읽었던 내용들이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물론 전의 느낌이 되살아난 것은 아니지만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로 이상야릇한 내용과 이미지는 그대로였다. 아마도 내용과 분위기가 그로테스한 것이었던 만큼 매력을 느낌과 동시에 싫은 느낌이 드는 것은 여전했던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할, 그리고 가장 보호해줘야 할 부모자식간에 있는 혈육들이 혈육을 사랑하고 괴롭히고 급기야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과정을 거쳐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어느모로 보나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한 집안에서 추악한 비밀이 생기고 숨기고 또 비밀은 또다른 비밀과 거짓말을 남기며 비극을 계속 잉태해 나간다.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인공들의 삶은 뭐라 말할 수 없이 기괴했다. 시리즈를 읽는 내내 그런 기괴한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아서 나중에는 멀미가 나는 느낌까지 들었다. 마치 운명의 늪에 빠진 가련한 꽃들같다고나 할까. 작가의 전력도 평범하지는 않아서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몸의 장애로 인하여 집안에서 두문불출하며 소설을 썼다고 하는데 그의 가슴 속에서는 밝은 빛이 쏟아져 나오기가 그토록 힘들었던 것일까. |
|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 소설은 인간의 사랑하고 사랑받고자 하는 본능과 과연 어디까지 사악할수 있는가 하는 근원적인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타인이 타인을 미워하고 죽이고 아파하는 구도에서가 아니라 피를 나눈 사람들끼리의 좀 더 데모니쉬한 측면에서 파고들기에 중학교때 이 책을 처음접하고 나서의 나의 느낌은 꽤 충격적이었다. 금기된 사랑이 상당히 슬프고 파괴적으로 그려지고 있기때문에 행복한 해피앤딩을 기대해야 할지 아니면 그들의 사랑을 말려야 할지 읽는 순간 순간마다 도덕적 관념과 감정사이에 나를 갈팡질팡하게 만들던 기억이 난다. 이 소설의 작가 앤드류스가 불구였고 그것으로 인해 집밖으로 나가본적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은 이 소설의 어두운 측면을 반영해주고 있다. 그녀는 평생을 종이와 펜을 쥐고 세상과 단절된 채로 살았고 구체적인 그녀의 삶이 어쨌는가를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그녀의 외로움은 충분히 알수 있다. 그녀가 방안에서 그녀의 소설안의 인물들과 같은 생활을 하면서 느낀 사랑하고 싶은 감정과 갖혀진 답답함과 두려움, 희망에 대한 막연한 기대들...그녀는 근원적인 감정들을 모두 혼자의 힘으로 이겨낼수 밖에 없었고 그것으로 인해 그렇게 극단적일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만큼 자극적이고 손을 뗄수 없게 만드는 소설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재미만을 기대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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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의 꽃들 -성장하고 또 다시 성장하는 존재들
책은 꽤 유명한 책이었다. 그런데 나만 몰랐던가보다. 아주 오래전부터 책장 어딘가에 꽂혀 있었던 게 다였다. 어째서 내 관심을 끌어내지 못했던 것일까. 나는 왜 이 책을 그렇게 오래도록 외면했던 것일까. 어느 누군가 말했다. 이 책은 단행권이 아닌 여러 권으로 구성된 책이며 읽다보면 그 안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건넸다. 강열한 이미지의 스포일러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기심을 자극하고 궁금증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읽으려고 하니 힘이 들었다. 94년 1월 초판 15회 발행이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누렇게 변한 종이에서는 눈이 따가울 정도로 매캐한 무언가가 지속적으로 나를 따라다녔던 것이다.
다락방의 꽃들이라는 제목만을 가지고 생각해본다면 무언가 낭만적인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다. 딴은 침침하고 음습한 공간과는 상대적으로 아름다움 혹은 연약함과 향기로운 꽃향기, 유혹, 사랑 등으로 상징되는 꽃의 등장은 분명 무언가 의도하는 바가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한국영화 ‘올드보이’를 떠올렸다. 그리고 마지막 왈츠로 알려진 그 음악 쇼스타코비치 왈츠를 오래도록 들었다. 어딘지 모르게 영화와 소설은 닮은꼴이 많아보이였다.
영화 속 주인공은 누군가에게 의해 납치를 당하고 감금된다. 납치와 감금은 나 혹은 주인공의 의지와는 별개로 보이지 않는 강력한 힘에 의해 지배된다. 소설에서는 제목에서 나오는 다락방이 있는 하나의 방이 강금의 장소로 등장한다. 그리고 여기 네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그렇게 시작된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존재가 어느날 갑자기 그들의 곁을 떠나간다. 사고였다. 남겨진 가족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버리고 낯선 땅, 낯선 집, 낯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아이들의 감금상태는 어머니의 서글픈 계획내지는 집요한 계략에 의한 것이었다. 왜 계획과 계략이라는 두 단어를 같이 쓰고 있는가는 책을 읽어보면 알 수가 있다.
아이들은 지혜로웠으나 어머니는 지혜롭지 못했다. 아이들은 사랑이라는 것의 정서적 교감과 모성애와 어머니라는 의미가 지니는 무한의 힘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그들의 어머니는 정작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않는 인물로 변해간다. 네 명의 아이들 크리스토퍼, 캐시, 쌍둥이인 캐리와 콜리는 조부의 죽음을 기다렸다. 그 결과로 유산을 상속받게 되는 어머니가 하루라도 빨리 부자가 되어 자신들을 방에서 꺼내줄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다락방이 딸린 외진방에 갇혀 3년 5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버틴다.
소설이 갖는 중요한 포인트로 근친상간의 요소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는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이해받기 어려운 부분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아이들의 부모는 숙부와 조카의 관계였다. 이 두 사람은 세간의 비난과 날선 이목을 피해 성을 바꿔 아이들을 낳아 평범하게 살았지만 결국 가문에서 버림받는 신세가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로 인해 네 아이들은 처음부터 저주받은 아이들이라는 불명예를 떠안고 출생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 또 다른 한 여자가 등장한다. 그녀는 온몸에서 감정이라는 이름의 모든 찌꺼기가 빠져나간 듯한 무감각하고 냉정한 사람인 조모로 나오고 있다. 냉혈함으로 갑옷을 두른 듯한 이 인물은 끊임없이 네 명의 아이들과 적대감을 형성해간다. 소설은 남편이 죽고 생활이 곤고해진 까닭에 자신의 옛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의 어머니가, 시간이 갈수록 조모의 모습을 닮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사실 닮아가거나 배워가는게 아니라 내면에 잠재되어있던 그녀의 진짜 모습이 고개를 들고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들의 어머니는 처음부터 아니 태생부터 조부모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믿고 따랐던 자신의 네 명의 아이들을 희생시키게 된다.
소설은 갇힌 존재인 아이들의 시선을 따라 전개된다. 작은 아이들의 시선에 비친 어른들의 모습은 거짓과 모순 그 자체였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인간 심리의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이기심과 비열한 열망과 같은 인간의 어두운 이면이 가져오는 이중성을 어머니와 조모를 통해 비판한다. 이를테면 보편적이거나 통상적인 생각의 틀을 비틀어버린 채 등장하는 어머니의 이미지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작품에서 책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반전을 독자는 어느정도 예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처음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그 방에 들어갔던 아이들은 네 명이었으나, 다시 그 문을 열고 나오는 아이들은 세 명뿐이었다. 왜 그들은 조금 더 빨리 닫힌 문을 열고 나오지 못했을까. 아직 너무 어렸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이 아이들을 그곳에 그토록 오래 붙잡고 있었던 이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하고자 했던 어머니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설은 성장소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의 달 5월에... 그것도 어린이날이 낀 연휴동안 이 책을 붙들고 있어야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희생이 먼저일까. 사랑이 먼저일까. 아주 오래전 초등학교 동창생이 내게 이런 말을 남겼다. 사랑 앞에는 희생이 뒤따라야 한다는 내 말에, 그는 희생이 따르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열변을 토했던 것이다. 이십여 년이 흐른 뒤 나는 다시 그의 말을 다시 생각한다. 사랑이란 이름 안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감사의 이름과 기쁨의 이름이, 슬픔의 이름과 함께 누군가를 책임지도록 만들어가는 그 희생의 이름이 또 깨달음과 성찰의 이름까지 모두 담겨진 것은 아닌가. 그 가운데 인간은 어떻게든 성장한다. 그래서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은 인간의 성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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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락방 시리즈,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필독서 였어요. 반 애들이 거의 다락방 시리즈는 기본으로 꿰고 있었거든요. 전 그때 읽지 않았었는데, 나중에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우연히 읽게 되었죠. 1권은 너무 잼있었어요. 1권이 끝나는게 아쉬울 정도로 정말 열심히 읽었죠. 밤새도록 읽고도 다시 한번 더 읽고 싶단 생각이 들 정도로 마력이 있더군요. 작가님이 표현하는 말이나 문장들이 꽤나 멋지게 느껴졌답니다. 스토리는 간단합니다. 4형제가 부모님과 오순도순 잘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모든게 산산조각이 나죠. 그래서 어머니는 외할아버지가 부자라며 그곳으로 가자고 합니다. 나중에 외할아버지에게 4형제들을 인사시키겠다며 좁은 다락방에 가두죠. 1편은 잼있는데요. 2편도 그런대로 봐줄만 하고, 3편부터는 읽다보니 잠이 오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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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흥미가 없고 나는 무슨책을 읽어도 재미가 없더라 하는 사람들에게 한번쯤 권해 주고 싶은책이다 책은 영상보다 지루할거란 생각을 재미있는책 한권을 만나면 바뀌게 되고 이 책이 그런 시발점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생각하며 추천하고 싶은책이다
재미있는책이니 읽으면 후회하진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이책의 저자가 쓴 다른책도 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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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2학년 때 이 책의 제목을 보고는 깃털처럼 가볍고 낭만적인 그런 흔한 로맨스 소설이겠거니 하고 별 생각 없이 읽어나갔습니다. 아, 그런데 맙소사.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아동 학대'에 준하는 상황에 거기다가 모친의 배신, 근친상간, 독살....이거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로구나. 기대하지 않았던 음울하고 잔혹하달 수 있는 내용을 접하고 어느 정도는 거부감을 느꼈지만 그래도 그 알 수 없는 자력에 이끌려 후딱 읽게 되었죠. 갇힌 다락방의 틈새로 지켜본 세상의 찬란함에 숨죽이던 남매들과 함께 저 또한 감정이입이 되어 심장이 졸아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을 잊을 수가 없군요. 사실 읽고 나서 남는 건 충격적인 줄거리의 잔상일 뿐 그다지 남는 것은 없다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이러한 종류의 책에서 우리가 얻어내고자 하는 것-오락성은 썩 뛰어난 소설이 아닌가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