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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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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실망스러운 책이었습니다. 읽기가 너무 힘들더군요. 이책엔 두개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는데 두개 모두다 번역이 매끄럽지가 못해요. "지하로부터... " 더 그 정도가 심한것 같습니다. 직역을 해서 그런가요? 너무 난해했습니다. 처음엔 저도 번역에 대한 의심보단 "고전이니 어려운걸꺼야"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서점에서 문예출판사에서 출판되고 이동연씨가 번역
"번역에 대하여..." 내용보기
상당히 실망스러운 책이었습니다. 읽기가 너무 힘들더군요. 이책엔 두개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는데 두개 모두다 번역이 매끄럽지가 못해요. "지하로부터... " 더 그 정도가 심한것 같습니다. 직역을 해서 그런가요? 너무 난해했습니다. 처음엔 저도 번역에 대한 의심보단 "고전이니 어려운걸꺼야"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서점에서 문예출판사에서 출판되고 이동연씨가 번역한 동명의 소설을 보게 되었습니다. 누가보더라도 그 책이 읽기도 편하고 이해하기도 훨씬 쉬워보였습니다. 해서 미련없이 곧바로 반품해버렸습니다. 그동안 이런 인터넷 서평을 참고로 책을 사서보면서 아쉬웠던점은 서평자들이 번역서의 번역에대한 평가에 인색하다는 점이었어요. 그 서평만 믿고 책을 샀다가 후회했던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사시려는 분들에게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YES마니아 : 로얄 k***l 2004.12.1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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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깨닫고 바꿀수 있는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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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집의 기록] 1849년 4월, 29살의 도스또예프스끼는 니꼴라이 1 세의 왕정을 비판하고 급진적 민주주의를 주장하던 뻬뜨라셰프스끼 사건에 연좌되어 다른 서클 회원과 함께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 총살 직전 그는 황제의 특사로 4년간의 시베리아 징역형과 4년의 병역의무로 감형되어 그는 시베리아로 유형된다. 이 시베리아의 옴스끄 감옥에서 지낸 4년간의 생활을 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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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집의 기록] 1849년 4월, 29살의 도스또예프스끼는 니꼴라이 1 세의 왕정을 비판하고 급진적 민주주의를 주장하던 뻬뜨라셰프스끼 사건에 연좌되어 다른 서클 회원과 함께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 총살 직전 그는 황제의 특사로 4년간의 시베리아 징역형과 4년의 병역의무로 감형되어 그는 시베리아로 유형된다. 이 시베리아의 옴스끄 감옥에서 지낸 4년간의 생활을 고스라니 담아 40세에 출간하게 된 것이 이 책중 [죽음의 집의 기록]이다. 소설의 형식을 빌린 이 글은 그래서 도스또예프스끼 자신의 감옥생활에 대한 기록이면서 또한 그가 그곳에서 관찰한 범죄자와 범죄에 대한 형벌 시스템에 대한 관찰을 담은 기록이기도 하다. 그가 본 유형수로 온 범죄자들은 스스로의 범죄행위에 대해 특별한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도리어 그들 자신을 현 사회제도의 희생자로 여기며 분노하는 것이다. 러시아 민중은 그들이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범법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강제로 놓여져 있으며 그래서 유형자가 되었고, 이런 부당한 형벌이 결국 그들의 죄를 정당화해준다고 믿는다. 이런 부당한 사회 시스템의 개발 및 유지 보수는 지배층의 전유물이다. 유형자들은 그러므로 상부층이 만든 시스템에 희생당하는 자신들의 모습에서 결코 죄를 발견할 수 없다. 그들은 희생자일 따름이다. 최근의 뇌물수수사건이나 대학에서 연구비 횡령 후 당사자들의 태도는 그것이 늘상해오던 일이거나 관습적으로 받아들일수 있을때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나에게 쏟아지는 모욕이나 혹은 비난은 과도하다는 것이다. 옳음에 대한 기준이 없다면 누군가 정한 룰에 의한 이런 정죄는 과연 불합리하다. 우리 사회는 범칙금이란 내가 잘못해서 내는 것이라기 보다는 [재수가 없어서 걸린 것]이다. 잘못된 최고속도 기준, 잘못된 장소에 설치된 카메라, 숨어서하는 잘못된 적발. 모두 다하는데 왜 나만 이렇게 재수없게 걸려들었을까? 어쩌면 그때의 러시아나 우리는 많이 닮아있다. 과연 그러면 죄란 존재하나? 이런 죄에 대해 우리사회는 이렇게 처리한다. 이런 종류의 일이 터지면 전 국민을 잡아넣을순 없으니 그중 본보기 일부만 처벌한다고한다. 이는 결국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관행이며 걸린 사람만 재수가 없다는 의식을 국민과 심지어는 지식인과 그들 밑에서 배울 장래의 우리 지식층 사람에게까지 교육시키고 있는 셈이다. 우리사회에 현재 명확한 잘못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잘못에 대한 기준이 없기 때문은 아닌가? 우리사회 범법의 기준은 항상 여론과 이를 조정하는 교묘한 잔재주에 놀아나고 있다. 이것은 분명 나라를 망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며 나라를 뿌리에서부터 뒤흔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기준의 붕괴는 분명 확대 재생산되고 있으며 기준이 없는 백성은 망하게 될 것이다. 도스또예프스끼에 있어 이런 흔들리는 작의적 기준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민중의 가슴안에 숨겨진 본성을 본다. 본성의 깊은 곳에서 인간의 자기 죄에 대한 자각과 인간의 어떠해야함에 대한 명확한 내적 기준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천성적으로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소유됨에도 불구하고 교육되고 개발되어지지 않으면 무시되기 쉬운 지각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이 본성을 지하실에서 스스로 고뇌하는 지식인 안에서가 아닌, 수용소에 갇혀 인간의 진실된 삶, 비참함, 추악함과 악함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인간존재를 직접 봄으로써 깨닫게 된다. 인간은 자기의 죄를 보아 깨닫고 바꿀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존재이다. 결코 시스템에만 좌우되지 않는...이 책을 통해 비로소 그의 이후 저작인 [지하로부터의 수기][죄와 벌][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대한 실마리가 주어지는 느낌이다.
s***y 2005.08.0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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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병든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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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병든 인간이다……. 지하에서 시작되는 한 몽상가의 이야기는 현대 사회에서 소외시키고, 소외당하는 인간들에게 지독히도 깊은 절망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지하 생활자는 현실 그대로의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이들은 일상 생활의 현실성도 희박하고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인물들인 것이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글의 표면에 “이 수기의 필자도, 이 수기 자체도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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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병든 인간이다……. 지하에서 시작되는 한 몽상가의 이야기는 현대 사회에서 소외시키고, 소외당하는 인간들에게 지독히도 깊은 절망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지하 생활자는 현실 그대로의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이들은 일상 생활의 현실성도 희박하고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인물들인 것이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글의 표면에 “이 수기의 필자도, 이 수기 자체도 물론 허구이다. 그렇지만 이런 수기의 필자와 같은 인물은 우리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여러 조건을 고려한다면, 얼마든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 뿐더러, 오히려 존재하는 게 당연한 것이다."고 적고 있다. 이 책에서는 주인공이 '나는 일생 동안 줄곧 당신들이 반도 추구할 용기가 없었던 것을 극단까지 추구할 뿐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도스토예프스키의 상상 속의 인물들은 삶의 극단 속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r*****f 2004.10.1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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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지하생활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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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생활자의 수기에서 내가 알 수 있었던 인간에 대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시선은 애처로움이다. 그는 인간의 이성이 보잘것없는 것이라 말했지만 '이상적인' 이성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추악하고 극단적일 수밖에 없다라고 시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성의 도래를 꿈꾸었었던 그의 소설 집필 전의 모습을 그리워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귀향을 끝마치고 돌아왔을 때의 인간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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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생활자의 수기에서 내가 알 수 있었던 인간에 대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시선은 애처로움이다. 그는 인간의 이성이 보잘것없는 것이라 말했지만 '이상적인' 이성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추악하고 극단적일 수밖에 없다라고 시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성의 도래를 꿈꾸었었던 그의 소설 집필 전의 모습을 그리워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귀향을 끝마치고 돌아왔을 때의 인간의 모습은 그가 그리던 모습이 아니었음에 그는 정신적으로 큰 배신을 느꼈다. 그것은 인간에게 이성은 존재할 수 없으며 그저 동물적이고 악의적인 본능(그는 이 것을 자유의지라 말했다.)이 지배한다고 단정지을 만큼 큰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책에서 도스토예프스키가 시사하려고 한 것은 이성의 도래를 꿈꾸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는 여기서 자유의지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또한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측면을 집중 토로하면서 '나는 이렇게 살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며 인간의 한 군상만을 내비친 것도 아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오히려 인간의 마음으로 찬찬히 모두를 관찰하였고 항상 어두운 권력의 혼돈 속에 놓여진 주인공의 무력함을 묘사하고, 비관론자, 신비주의자(마땅히 표현할 말이 없었지만 1장에서 보여준 그의 사회전반에 걸친 주장을 살펴볼 때) 등으로 그를 이끌어 갔다. 자신의 사적인 불행과 고통에 대한 맹목적인 복수심과 젊은 시절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의 승리(?)를 통해 19, 20세기 자살이나 상소리를 지껄이던 젊은 개인주의자들 계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해 놓고 연결 적인 방식으로 그의 주변 인물에도 모든 개성을 부여하고 있는 소설의 형태에 적잖이 놀랐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에 대한 실망을 내보였고 그들을 증오하고 자기 자신도 지하생활자 같은 사고와 생활적 면모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인간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면모가 이 소설 중에서 나타나는 잔인함을 가장한 애처로운 시선인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잔인함'이라는 코드를 자주 사용하는 작가 중의 한 명이다. 그는 육체적인 가해로 인한 잔인함의 측면이 아니라 정신적인 측면의 잔인함을 좀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이 가진 선과 악의 대면에 끼워 맞추고 있다. 상당히 이중적인 면을 모두 시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 요소를 드러내주는 것이 지하생활자가 매저키스트라는 사실이다. 그는 스스로를 힐난하며 몸을 물어뜯고 쥐어뜯으며 자신을 추잡스럽다고 느끼지만 그것이 나중에는 일종의 저주스런 오욕으로 변하고 마침내 쾌락을 느낌을 볼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 생활자의 수기>는 나에게 짧지만 복잡한 소설이었다. 하나만 머리 싸매고 생각해도 되는 여타 소설보다는 좀 더 나를 알아야 하고 사람들을 알아야하고 특히 도스토예프스키를 알아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우스운 이야기지만 나는 인간적으로 그를 알지 못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와 알아 가는 동안의 나는 아마도 사람감정에 도통해 있는 그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읽는 내내 그와 비슷한 내 주변의 인물을 떠올렸고, 어떨 땐 '나'를 떠올리곤 빙그레 미소짓곤 했었다. 마치 치부를 들킨 듯한 당혹과 쑥스러움에 말이다. 그리고 자꾸만 도스토예프스키의 사진을 들춰보게 되었는데 그는 왜 이렇게 소심하고 비굴한 겁쟁이인가? (물론 이것은 나한테 퍼붓는 항의일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하생활자는 고독하고 외롭다. 외로움을 견딜 수 없을 때는 길을 나설 수밖에 없다. 그 길이 자기 오욕의 길임을 알면서도...... 보통의 사람들도 고독하고 외로운 것은 마찬가지이다. 마찬가지로 그들도 밖으로 나선다. 그것이 오늘 무슨 사고가 생기거나 모욕을 받는 일이 예정되어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것은 그들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같은 인간의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 지하 생활자의 모습을 보면서 저럴 수 있을까 하는 감정 뒤에 숨기려는 치부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이고 또 다른 사람들의 모습들이다. 지하 생활자는 그것을 조금 더 밖에 드러내었을 뿐이고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그는 매저키스트였고 고집이 세기 때문이었다. 단순할 수 도 있겠다. 하지만 그도 인간인걸 어쩌란 말인가. 인간적인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자 한다면 한없이 그럴 수 있다.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가 경멸해 마지않던 이성적 시각에서 본다면 그는 한없이 병적인 것이다. 내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나는 모르겠다. 머릿속이 한없이 복잡해 질뿐이다. 어쩌면 그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을지도,(끔찍하지만 내가 새디스트적인 경향을 띄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나 또한 그를 지하의 구석으로 내 몰지도 모른다 도스토프스키는 어느 사회든 그런 사람이 존재하고 있고 존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참으로 비관주의 적인 인간미를 내재한 사람 같다. 하지만 그것은 믿기 어렵지만 진실이고 그것을 주목하는 도스트예프스키 조차 그 안의 생활을 경험한 적이 있음을 보여준다. 나는 가끔씩 책이나 미디어가 무서워 질 때가 이 순간이다. 러시아에서 가장 행복한 인간은 백치라고 했던가. 어쩐지 그 말이 진리처럼 느껴질 때가 가끔 있다. 앞에서 나는 단순하게 지하생활자는 그저 예민한 인간일 뿐이라고 일축하기는 했지만 알면 알아갈수록 내가 경험하지 못한 공포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듣고 전해 볼 때마다 느끼곤 한다. 어떤 관점에 따라서도 버거운, 사람과 사람의 문제, 그리고 제도와 사회의 문제를 말이다.

[인상깊은구절]
"이성이란 요컨대 한낱 이성일 뿐, 인간의 지적 능력을 만족시키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의욕은 전체 생활의 발현이며, 이성도 비근한 생리적 작용도 모두 포함하는 인간의 전체 생활의 발현인 것이다." "나는 다만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명백히 밝혀 두거니와, 비록 내가 독자를 상대하는 것 같은 투로 쓰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단에 지나지 않을 뿐이며, 그렇게 하는 편이 쓰기가 쉽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형식, 하나의 형식에 불과하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독자적인 자유로운 의욕뿐이다. 이 자유로운 의욕의 대가가 아무리 비싸더라도, 그리고 어떤 결과를 초래하더라고 그런 건 문제가 아니다. 참으로 이 의욕만큼 처치 곤란한 것도 다시는 없을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k********r 2002.08.0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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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부터의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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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리뷰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Notes from Underground)》는 현대 실존주의 문학의 서막을 알린 문제작입니다. 《죄와 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같은 대작들이 나오기 직전에 쓰인 이 소설은 그의 후기 철학이 응축된 '사상의 씨앗'과도 같습니다.소설은 1부 '지하', 2부 '진눈깨비에 관하여'로 이름 없는 주인공인 '지하 생활자'의 독백으로 진행됩니다.1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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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리뷰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Notes from Underground)》는 현대 실존주의 문학의 서막을 알린 문제작입니다. 《죄와 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같은 대작들이 나오기 직전에 쓰인 이 소설은 그의 후기 철학이 응축된 '사상의 씨앗'과도 같습니다.

소설은 1부 '지하', 2부 '진눈깨비에 관하여'로 이름 없는 주인공인 '지하 생활자'의 독백으로 진행됩니다.


1부: 이성(理性)에 대한 반역

1부는 주인공의 철학적 논쟁입니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합리주의와 과학적 낙관론을 정면으로 공격합니다.

그는 세상이 수학 공식처럼 완벽하게 짜이는 것에 거부감을 느낍니다. "2 더하기 2는 4"라는 명백한 진리조차, 인간의 자유 의지를 구속하는 폭력적인 장벽으로 느낍니다.
수정궁(The Crystal Palace)은 모든 것이 완벽하고 풍요로운 미래의 유토피아를 상징합니다. 하지만 그는 인간은 결코 그 안에서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때로 자신의 이익에 반하더라도,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고의로 고통과 파괴를 선택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하는 '지하'는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거부하고 자기 내면으로 침잠한 극단적인 고립 상태를 의미합니다.


2부: 비루한 현실과 비겁한 자아

2부는 20년 전 그가 겪었던 일화들을 통해, 그의 철학이 현실에서 어떻게 일그러진 형태로 나타나는지 보여줍니다.

비겁한 복수: 자신을 무시하는 군인에게 복수하려다 오히려 비참해지는 모습, 동창회에 억지로 끼어들어 분위기를 망치는 모습 등 찌질하고 비루한 인간 군상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리자와의 만남:매춘부 리자에게 고귀한 설교를 늘어놓아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지만, 막상 그녀가 진심으로 다가오자 자신의 초라함이 드러날까 두려워 그녀를 모욕하고 내쫓습니다. 그는 사랑조차 권력 관계로만 파악하는 비뚤어진 인간이었습니다.


인간은 '피아노 건반'이 아니다

이 소설이 위대한 이유는 인간의 '부조리함'을 인정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니체는 이 책에 대해 "본능의 목소리가 들리는 기쁨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나답게 사는 것'의 이면에는, 이 소설이 말하는 가공되지 않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인정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지하 생활자'를 품고 있습니다. 남들에게는 번듯해 보이고 싶지만, 속으로는 질투하고, 비겁하며, 때로는 스스로를 망치고 싶어 하는 충동을 느낍니다. 도스토옙스키는 그 어두운 부분을 낱낱이 파헤쳐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인간이 단순한 기계가 아닌 자유를 가진 존엄한 존재임을 역설합니다.

"나는 단지 질문을 던질 뿐이다. 인간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독립적인 선택인가, 아니면 합리적인 행복인가?"

이 소설은 읽는 내내 주인공의 자의식 과잉에 숨이 막힐 수도 있지만, 그 끝에서 만나는 인간 본연의 진실은 매우 강렬합니다. 

k****n 2025.12.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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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생활자로부터의 수기' 읽기
"'지하생활자로부터의 수기' 읽기" 내용보기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1부다. 1부의 대한 보충 설명으로서 2부일 것이다. 따라서 2부를 읽어 화자의 생활환경, 동창생, 창녀, 그리고 하인과의 관계 등 사전 지식을 습득한 뒤에 1부로 파고들어야 한다. 사회비평 이론이다. 그것도 지상과 대비되는 지하에 사는 굴욕과 비천함과 더럽고 치사한 그러나 날카로운 지성의 눈으로 현실을 거꾸로 보며 비판한다. 즉 선과 아름답고 숭고한, 그
"'지하생활자로부터의 수기' 읽기" 내용보기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1부다. 1부의 대한 보충 설명으로서 2부일 것이다. 따라서 2부를 읽어 화자의 생활환경, 동창생, 창녀, 그리고 하인과의 관계 등 사전 지식을 습득한 뒤에 1부로 파고들어야 한다. 사회비평 이론이다. 그것도 지상과 대비되는 지하에 사는 굴욕과 비천함과 더럽고 치사한 그러나 날카로운 지성의 눈으로 현실을 거꾸로 보며 비판한다. 즉 선과 아름답고 숭고한, 그리고 이성적이며 과학적이고 수학적인 자연 법칙 - 지상에 반대되는 지하에서 본 사회 비평이다. 비정상적인 병든 인간으로서의 화자는 자기 비하(卑下)가 강해 불만으로 증오심이 가득찬 사람이다. 벌레가 되고 싶어 할 만큼 의식이 강한 지하생활자. 아름답고 숭고함을 찾고자 하나 언제나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곤 하는 인간사 막다른 골목, 절망 속에 살면서 복수로 반전을 꾀하지만 문제에 문제들을 덧붙여 더욱 복잡해진 풀 수 없는 문제를 만들어 회의, 불안 속에서 자기 자신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며 구멍으로 들어가는 한 마리의 더러운 쥐로 생각하는 지하생활자. 그 속에서 섬세한 쾌락까지 감지하는 나. 정상적인 사람들은 과학이라든가 수학과 같은 자연의 법칙들 앞에 순응한다. 이 법칙은 2 × 2 = 4라는 수학이다. 그런데 그 것에 순응할 만 한가. 하나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을 끌어내게 마련이다. 이것이 모든 의식과 사고의 정확한 본질이다. 이때 우리는 자연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어떤 결과에 도달할 수 있을까. 복수와 같은 것. 복수는 정당한 것. 그러나 거기에 어떤 정의가 있으며 어떤 미덕이 있는가. 오직 악의 일뿐. 그러나 누가 악의를 존중하랴. 악의는 다시 분해되고, 이성도 증발해 버리고 원인 제공자도 발견되지 않으며, 모욕도 더 이상 모욕이 아닌 급기야 치통처럼 운명적이 되어 버려 비누 거품과 무기력. 어쩌면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한다는 자체가 죄악인지도 모른다. 게으름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를. 따라서 내가 무엇인가 한다면 '아름답고 숭고한 것'을 위하여 마실 수 있는 모든 것을 마셨을 것이다. 쉬첸드린, 그리고 화가 게의 '똥 그림'까지도. 인간들이 진정한 이익을 깨닫고 자신의 이익이 선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헤아려 이익에 반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 법. 따라서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선만을 행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가. 그러나 인간은 유리한 것만을 취하는 것이 아니다. 해로운 것을 찾기도 하며 우리가 만든 법칙들을 한낮 먼지로 치부해 버리기도 한다. 인간의 이익이 절대적인 정확성으로 계산된 적이 있는가. 인간의 이익은 어떤 범주에도 포함되지 않으며, 어떤 목록에도 맞추어 넣을 수 없는 것이 아니던가. 문명은 인간을 양순하게 만들고, 인간은 피에 덜 굶주리게 되고, 전쟁수행 능력이 점점 약화되고 있다는 버클리의 주장은 맞을까. 천만에 지금도 피는 강물처럼, 샴페인처럼 즐겁게 흐른다. 가장 세련된 피를 흘리게 하는 이들이 가장 문명화된 신사들이란 것을 아는가. 클레오파트라는 여종들 젖가슴을 황금 핀으로 쑤셔 비명소리와 몸부림에서 쾌락을 찾곤 했다는데, 이 것을 한갓 야만 시대에 있었던 일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가. 지금도 알게 모르게 쑤시고 있지 않은가. 이성과 과학이 발달했지만 우리는 그것에 익숙하지 않으며, 또한 익숙해지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인간은 피아노 건반 중의 하나, 오르간의 작은 나사못 이상이 아니다. 세상에는 자연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어 인간이 무엇을 하든, 원하든 스스로 자연의 법칙에 따라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모든 것이 도표에 따라 계산되어 인간이 할 일이라곤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식의 꿈에 불과하다. 사람은 절대로 이성과 이익이 지시하는 대로하지 않는다. 자기 마음대로 하기를 좋아하며, 이익에 반대되는 엉뚱한 것을 원하기도 하기 때문에 자율적인 욕구만을 필요로 할 뿐이다. 인간의 욕구들과 변덕을 위한 공식을 발견한다면 인간은 욕구를 상실해 버릴 것이다. 손가락질 하나에도, 계산된 수학 공식이나 수학적 도표에 따라 했다면, 내 안의 자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런 세상이라면 향후 30년 내의 모든 인생을 미리 계산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이 이런 식으로 준비된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들은 노아의 대홍수 시대로부터 현재까지 지속되어 온 무례함과 배은망덕으로 인간들이 기대해온 정반대 되는 일들을 하고야말 것이다. 자기 마음대로 파괴나 혼돈, 고통들을 생각해 낼 것이며, 저주할 것이며, 인간이지 피아노 건반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신시킬 것이다. 따라서 2 × 2 = 4라는 자연법칙에 인간의 의지가 따를 것이라 믿는 것은 오산이다. 인간은 파괴와 혼돈을 사랑한다. 인간은 목표를 달성하는 것보다 과정을 중시하고 과정을 즐긴다. 인류가 추구하는 지구상의 전체 목표는 달성하려는 절차의 계속성 이상이 아니다. 인간은 고통을 좋아한다. 인간은 진정한 고통을 파괴와 혼돈과 똑같이 거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고통은 의식의 유일한 원인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의식적 무기력이 낫다. 즉 지하실의 생각들이 지상의 그것들 보다 더 낫다는 말이다. 정상적인 인간, 그들의 상황을 질투하지만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은 싫다. 그러나 2 × 2처럼 더 좋은 것은 지하실이 아니다. 다른 어떤 것, 다른 내가 열망하는, 그러나 발견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엄숙한 것...... 그리고 먼 과거에 대한 회상 때문에, 그 답답함을 털어 내기 위하여 2부를 쓴다. 오늘 눈이 내리고 있다…. …떨쳐 버릴 수 없는 그 사건을 회상했던 것은 진눈깨비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진눈깨비 때문이다. 그리고 2부의 소제목이 ''진눈깨비 때문에''이다. 대개 사건이 2부에 있어 1부의 그 난해함으로의 해방감 때문인지 1부는 제쳐두고 2부만 이야기한다. 제대로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x*****k 2003.04.1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린 나름대로의 지하속에 진실과 욕망을 묻어둔체...
"우린 나름대로의 지하속에 진실과 욕망을 묻어둔체..." 내용보기
나는 누구인가? 일정한 단위로서, 자연율로서 보장되고 규정된 행복과 이익을 쫓는 보통사람인가... 삶이란, 인생이란, 사랑이란 과연 어디에서 생성되고 가공되며 완성되어 지는 것일까? 열심히 산다는 것이 정의롭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최고의 보배인 것인가...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우리가 미처 시도하지 못한 모든 가능성과 상념들의 구체적 서술이었다.
"우린 나름대로의 지하속에 진실과 욕망을 묻어둔체..." 내용보기
나는 누구인가? 일정한 단위로서, 자연율로서 보장되고 규정된 행복과 이익을 쫓는 보통사람인가... 삶이란, 인생이란, 사랑이란 과연 어디에서 생성되고 가공되며 완성되어 지는 것일까? 열심히 산다는 것이 정의롭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최고의 보배인 것인가...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우리가 미처 시도하지 못한 모든 가능성과 상념들의 구체적 서술이었다. 일면적이고 따분했던 불문율들을 그 속에 잠재해 있던 격동적인 이상과 근심으로 깨어부수고 걷어차버리며 통쾌함마저 안겨주는 '미친소설'이다 어차피 우린 모두 삶에 '미친'사람들이지 않은가... 이 소설을 읽고 떠오른 상념들을 적어보았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1865년에 발표된 도스토예프스키 단편의 대표격이다. 크게 1부(지하의 세계)와 2부(진눈깨비의 연상에서..)와 나누어진 본 작품은 자신을 '병적인 인간', '심술궂은 인간', '남으로부터 호감을 얻지 못하는 인간'으로 칭하는 (사회로부터 고립되길 원하는) 한 '지식인'이 독백체로 휘갈긴 수기이다. 뚜렷한 형식도 일정한 격식도 없는 듯하여 분명히 어떤 '거부감'을 주는 글이지만 그래도 글 속에 담긴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도스토예프스키의 문체와 지론들은 우리의 두뇌회전을 촉진시키는데 충분한 영양제 역할을 하고 있다. 1부에선 주인공(전체를 통털어 그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의 사상적 배경과 자신의 평소생각들을 화려하고 번잡한 문장들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집중하지 않으면 이 작품의 핵심이 되는 구절들을 놓칠법도 한 난해한 부분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여기에서 '이익'에 대한 상대성과 '인간의 의욕'의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일반인들이 흔히들 사용하는 '이익'이라는 개념과 대비되는 또 다른 '이익'을 제시하며 자신의 반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이다. 주인공은 "인간은 이익과 이성에 우선하여 무엇이든 내키는대로 하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다"는 가설을 내세우며 우리를 설득하려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의욕'이라는 것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입장을 볼 수 있는데 그는 "이성이란 요컨대 한낱 이성일 뿐, 인간의 지적 능력을 만족시키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의욕은 전체 생활의 발현이며, 이성도 비근한 생리적 작용도 모두 포함하는 인간의 전체 생활의 발현인 것이다."라는 사유적 이론을 내세운다.. 이러한 기본적인 사상적 맥락과 더불어 2부에서는 자신의 에피소드를 서술하고 있는데 그 내용들이 모두 흥미로운 것들이다. 그 중 생면부지의 장교와 자존심을 건 한판승부를 하는 주인공을 읽고 있노라면 '꼭 저렇게까지 해야 직성이 풀릴까?'할 정도로 무모하고 도발적인 그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자신이 자처하여 들어갔던 당구장에서 그 장교에게 수모를 당하고 자존심이 구겨진 나머지 장교를 비방하는 긴 장문의 글을 신문사에 보내서 스스로 자기만족에 빠지거나, 한길에서 늘상 그 장교와 마주치면 자신이 먼저 피해버리는것에 대해 분노를 느낀 나머지 (단지 그 장교가 먼저 비켜나길 위한 방편으로)온갖 치장을 하고 확고한 다짐까지 하며 장교와 (당당히)어깨를 부딪히며 스쳤다는 것만으로 느낀 쾌감에 프랑스노래까지 흥얼거리는 주인공... 우리는 이 사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또 다른 에피소드 역시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질 않는 것이었다. 자신과는 학창시절 원수처럼 지냈던 즈베르코프라는 인물의 환송회에 (자신이 참석할 자리가 아님을 알면서도 그렇게 해야만 직성이 풀릴거라며)버젓이 참석하여 개만도 못한 대접을 받고 온갖 모욕과 수치심을 삼켜야 했던 주인공의 '정신착란'적 행동들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필연적으로 빠져드는 일상밖으로의 탈출을 위한 비상구 역할을 해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래도 주인공은 자신은 고귀하고 전능한 인간이며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지성인이라 자부하면서 독자들을 설득중이다... 이런 이해못할 인간은 정말 처음이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마지막까지 '개'가 되기위해 친구들을 따라 갔던 '업소'에서 만난 '리자'라는 여자와의 긴 대화(라기보단 거의 설교에 가까운)로써 소개된다. 창녀들의 끝은 어디인가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고 리자 역시 그러한 파멸을 피할 수 없게 되리라는 다소 무겁고 비관적인 얘기들을 책을 읽어내려가듯 주절대는 주인공앞에서 '리자'는 좌절과 더불어 주인공으로부터 알 수 없는 매력을 느끼게 된다.(그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젠장!) 다음날 그의 집으로 찾아온 리자와 맹목적인 '관계'를 가진 후 밀려드는 번뇌와 후회, 허무감에 주체할 수 없는 자기혼란에 빠진 주인공은 리자에게 그 대가로 5루블을 손에 쥐어준다... 순수한 리자의 사랑에 비수를 꽂아버리는 순간이다... 주인공이 보여주는 예측불허의 행동과 생각의 반전들을 통하여 도스토예프스키가 우리에게 얘기하고자 하는것은 무엇일까? 작가는 글의 서문에서 "이 수기의 필자도, 이 '수기' 자체도 물론 허구이다."라고 분명히 명시하면서 작품의 허구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더불어 강조하는 바에 따르면 "이 수기의 주인공은 우리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여러조건을 고려한다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또 있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이라 하여 본 수기의 '현실성' 역시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의 내면세계에 병적인 사상과 본능들을 감춘체 좋은것, 옳은것만을 쫓는 인간들에게 직접적인 '자각'과 '의식전환'을 촉구하고자 했던것은 아니었을까...
k*****7 2003.05.2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인간, 그 깊은 곳으로...
"인간, 그 깊은 곳으로..." 내용보기
이 책에는 두 소설이 있습니다. '죽음의 집의 기록' '지하 생활자의 수기'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을 읽을 때마다 니끼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프로이드가 그를 좋아할 만 하구나. 둘은, 이 작가의 삶은 자신의 작품과 비슷하지 않을까. 비슷한 사람끼리, 비슷한 수준의 사람끼리 통할 가능성이 많다면, 작가와 프로이드의 정신적 친밀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둘 모두,
"인간, 그 깊은 곳으로..." 내용보기
이 책에는 두 소설이 있습니다. '죽음의 집의 기록' '지하 생활자의 수기'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을 읽을 때마다 니끼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프로이드가 그를 좋아할 만 하구나. 둘은, 이 작가의 삶은 자신의 작품과 비슷하지 않을까. 비슷한 사람끼리, 비슷한 수준의 사람끼리 통할 가능성이 많다면, 작가와 프로이드의 정신적 친밀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둘 모두, 인간 마음 저 깊숙한 곳에서 인간을 움직이는 거대한 무엇을 탐색 했으니까요. 다만, 그 탐색의 결과를 표현하는 형식의 차이만 있을 뿐이죠. 어찌보면, 그 형식의 차이도 아주 작을 것 같습니다. 프로이드의 책을 읽어보면, 그는 마치 문학 작품을 쓰듯이 정신분석학 논문을 쓰고 있으니까요. 두 번째 느낌은 개인적으로 아주 불길한 느낌입니다. 작품과 작가의 삶을 일치시키는 동시에 독자의 나의 삶을 그들의 삶에 일치 시킬 수 밖에 없으니까요. 특히, 사람에 따라서는 그 일치에 대한 욕망이 유별나게 강한 경우도 있을겁니다. 이 책에 나온 두 작품에서도, 작가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습니다. '지하 생활자의 수기'에서 '지하 생활자'는 특별히 현실 도피적인 사람일수도 있지만, 평범한 우리들일 수도 있습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의 내면에는 지금 현실에서 그런대로 삶을 유지하는 나와 지하 생활자로서 나가 공존한다고 봐야지요. 조금 더 부연하면, '지하 생활자'로서 삶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되어진다고 볼 수 도 있겠습니다. 오히려, 후자의 가능성이 더 크죠. 사람을 '지하 생활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정상인'의 반대어가 '비정상인'이라고 하는 말들에 내포되어 있는 폭력이 그 나눔 속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은 언제나 재미있고, 어렵고, 독자를 심각하게 만들고, 때로는 자학에 빠지게 만듭니다. 대단한 작가입니다. 우리 시대의 고전이라면, 이런 책들을 뜻 하는 것이 아닐까요.
g********m 2003.08.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