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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껍지만 빨리 읽힌다. 이런 류의 책은 언제나 그랬던 것 같다. 잠시의 지루함도 허락하지 않으며, 오히려 다음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계속해서 책장을 넘기게 된다. 하지만 다 읽고 났을 때 허망함이 느껴지는 까닭은 왜일까? 정의가 승리했다는 느낌보다는 누군가가 정의의 이름으로 죽었다는 생각이 앞섰다. 인간이 인간을 심판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늘 이런 우울함을 불러 일으키는 것일지도. 아니 어쩌면 살인 사건이라는 소재가 나에게는 일종의 매스꺼움을 불러 일으켰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1932년 3월, 린드버그의 아기가 유괴당했던 사건은 여전히 미궁 속에 남아있다. 브루노 리차드 호프만이라는 자가 범인으로 지목되었지만, 실제 그가 범행을 저질렀는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작가는 이로부터 책 한 권의, 그것도 두꺼운 분량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하나의 사건으로부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나간 작가의 상상력의 힘은 생각보다 거셌다. 죽음에도 가치가 매겨지는 것일까.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은 어느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했지만 상류층에 해당하는 매기 로즈와 마이클 골드버그의 납치 사건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도 남았다. ‘린드버그의 아들’ 이라며 스스로를 소개한 범인의 세상에서 가장 주목 받는 자가 되고 싶다는 끔찍한 욕망은 바로 실현되는 듯 했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당한 학대의 기억 속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는 그에게 범죄는 흉물스런 방법이었지만 자신의 가치를 드높일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등잔 밑의 어두움은 실로 강했다. 부패한 행정 당국이 모든 사건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것이 우리 세상의 이치라도 되는 것일까. 소설에서마저도 그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을 때의 씁쓸한 심정이란. 아니, 이는 어쩌면 소설을 현실과 혼동하게 만들면서도 소설틱하게 만드는, 소설에 있어서의 필수적 요소인지도.
정의는 승리한다는 단순한 기치 아래 전개된 이야기인 만큼, 작가가 주의를 기울여 인물과 각 범죄를 치밀하게 연결시키려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전개는 눈에 뻔히 보인다.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소 안타까운 점은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를 살해하고 아이를 유괴했던 진정한 범인인 개리 소네지는 그저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경험한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강렬한 성공 욕구를 지닌 인물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비정적 모습을 지닌 제지 플래네이건, 그녀로부터 섬뜩함을 느꼈던 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그녀의 연기는 물질을 향한 강한 집착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인간보다 물질을 우선시 하는 사회라면 어느 곳에서도 자행될 수 있는, 그녀는 그런 범죄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그녀와 반하는 인물은 우리의 주인공 앨릭스. 그의 끈질긴 수사 정신은 미궁 속에 빠져있던 사건을 하나하나 명확화하는데 기여한다. 심지어 FBI 에 비해 훨씬 제한된 조건 하에서도 말이다.
얼마 전 범인이 잡히면서 종결(?)된 희대의 살인 사건이 떠오른다. 소설을 읽는 내내 긴장했던 것은 분명 소설 탓이 아니었다. 어느새 나의 머리는 현실과 소설을 연결시키고 있었고, 지금 이 순간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져들게 되었다. 안전한 곳은 아무것도 없으며, 믿을만한 이 역시 아무도 없는 곳이 우리 세상일지도 모른다. 스릴 넘치는 범죄 소설에 우리가 광분하는 만큼, 소설 속에서만 있을 법한 끔찍한 사건이 우리네 현실에서도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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