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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찾아 오셨다. 그러곤 말씀하셨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고 말이다. 아마도 아브람은 이 말씀이 상당히 기가 막히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말도 안 되다며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 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고향에서 나름 잘 살고 있었을텐데 모든 것을 등지고 떠나라니! 연고도 전혀 없고, 어딘지 조차 모르는 아무 곳으로 말이다! 게다가 떠날 당시 그의 나이는 칠십오세(창 12:4)였다! 이 얼마나 청천변력 같은 말이었을까!? 젊은이도 자신의 고향을 떠나는 게 쉽지 않은데 노인인 아브람은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브람은 아무 말 없이 모든 소유와 식솔들을 데리고 떠났다. 단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창 12:2)" 하시겠다는 말씀 하나만 믿고 말이다. 정말 큰 믿음이 아닐 수 없다.
'계약신학과 그리스도'
이 책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약을 분석하고 있다. 가장 먼저 하나님의 계약을 다룬다. 그것의 속성, 범위 등 하나님의 계약의 맥을 짚는다. 이어서 계약의 두 축이라 할 수 있는 창조와 구속의 계약을 분석한다. 특히 구속의 계약에서는 아담, 노아, 아브라함, 그리고 다윗 및 그리스도의 계약에 특별한 주제를 부여하여 상세히 살피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성경, 곧 구'약'과 신'약'의 전체적인 맥을 짚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두 책의 관계를 알고, 성경의 핵심을 좀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하나님의 계약이란 무엇인지, 그것이 인류와 어떻게,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계약의 중요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신앙의 축복을 더욱 온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과 계약을 맺으셨다. 일방적인 그것은 어찌보면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다르게 본다면 은혜로 보일 것이다.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그 계획은 하나님의 자비이자 사랑이다. 따라서 그분의 계약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제대로 알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창조와 구속의 계약, 인간을 위한 그 계약을 온전히 이해하면 하나님의 뜻과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나아갈 바와 행할 바를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
| 누구에게나 성경을 이해하는 여러 가지 관점 혹은 틀이 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이고, 어떤 사람은 그것이 “법”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땅”이라고 한다. 그런데 계약신학 혹은 언약신학이라 불리는 일단의 신학자들은 그것을 “계약” 혹은 “언약”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오늘날 개혁주의 신학 내에서 계약신학은 가장 영향력이 있고, 설득력있고, 체계적인 신학 사상이다. 팔머 로벗슨(O. Palmer Robertson)의 [계약신학과 그리스도](The Christ of the covenant)는 카버넌트 신학교(Covenant Theological Seminary)의 구약신학 교수로서, 계약신학에 관한 그의 대표적인 저서이다. 로벗슨은 우선 하나님의 계약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난 이후에 창조의 계약, 아담의 계약(시작의 계약), 노아의 계약(보존의 계약), 아브라함의 계약(약속의 계약), 모세의 계약(율법의 계약), 다윗의 계약(왕국의 계약), 그리스도의 계약(완성의 계약)에 대해서 차례대로 설명한다. 그리고 그 중간에 구약 성경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계약신학과 반립(反立)으로서 이어져 내려온 세대주의 신학에 대해서 반박하면서, 구약 성경을 세대주의적으로가 아니라 계약신학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서 증명한다. 우선 로벗슨은 하나님의 계약이 약정이며, 피로 맺은 약정이고, 주권적으로 사역되는 피로 맺은 약정이라는 계약의 세 가지 속성을 설명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예레미야와 호세아를 예를 들며 노아에서 예수 그리스도까지 하나님이 인간을 대하는 데 있어 계약이 큰 역할을 담당해 왔다는 성경적 근거를 제시한다. “노아에서 그리스도까지의 구속 역사에서 그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계약 관계의 영역 밖에 있는 기간은 없었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리고 이 계약은 구조적인 측면에서, 주제적인 측면에서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 계약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라는 계약 원칙의 핵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며 완성된다. 예레미야와 에스겔 등의 예언자들에게서 ‘새 계약’에 대한 여러 가지 예언이 나타나는데, 새 계약의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1) 추방된 이스라엘의 약속의 땅으로의 복귀, 2)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축복의 완전한 회복, 3) 하나님 이전의 계약 약속의 성취, 4) 하나님의 성령 역사에 의한 내적 소생, 5) 죄에 대한 완전한 용서, 6) 이스라엘과 유다의 통합, 7) 새 계약의 영원성.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체감을 통해서 새 계약의 백성들은 모든 중재적 선생들이 불필요하게 되는 하나님을 직접 알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렘 31:34). 새 계약이 성취되는 현 단계에서 선생들은 계약 공동체 안에서 활동한다. 그들은 제한된 의미 속에서 계약의 중재자 역할을 한다. 그리고 새 계약의 약속 성취에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은 아무도 그들을 가르칠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요일 2:27). 새 계약의 참가자들은 수건을 벗은 얼굴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그리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기 때문에 모세보다도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예언은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 아니다. 이 예언은 지리상으로 지정된 팔레스틴에서 민족적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사건이 아니다. 오늘날 새 계약의 성취는 육체의 부활과 전 지구의 회복과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완성이다.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최초의 창조로부터 추락하고, 낙원에서부터 쫓겨났지만, 이제 새 계약에 참여한 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약속의 땅”에서 새창조를 받으며, 부활을 통하여 새 이스라엘에 참여하게 될 것임을 기대할 수 있다. 언약신학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 성경을 일관된 주제로 꿰뚫고자 하는 사람은 이 책을 반드시 읽기를 권한다. 단, 재미를 느끼면서 읽기에는 다소 딱딱한 책임을 주지하고 시작하기를 바란다. |
| 주경신학 중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구속사를 읽어내는 열쇠로 중요한 몇가지 중에 계약과 하나님나라가 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그레엄 골즈워디의 [복음과 하나님 나라]가 구속사적 관점에서 가장 간단하고 포괄적 그림을 보여주는 책이며, 계약신학에서는 이 책이 일목요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체그림은 69 페이지의 부채꼴 그림에 모두 나타나 있다(마이페이퍼에 올려야겠다). 아담과의 계약에서 확장발전되고 구체화되는 하나님의 자기계시로서의 계약이 노아-아브라함-모세와 다윗을 거쳐 그리스도에서 완성되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신구약을 비교하여 그리스도의 중심성을 보여주는 성경공부인 Harper J. Roper의 [Through the Bible] series를 공부하면서 항상 느꼈던 것은 수천년에 걸쳐 쓰여진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나 하나로 읽혀지는가 하는 것이다. 분명 이 책도 이런 계시의 발전과 그리스도의 완성이라는 성경의 맥과 주제를 읽는데 큰 도움을 주리라 생각한다. |
| "계약이란 주권적으로 사역되는 피로 맺은 약정이다." 계약이라는 용어는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다. 하지만 성경 전반에 걸쳐 흐르는 이 개념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통일된 관점에서 성경을 읽기는 것은 어렵다. 이 책에서는 위와 같이 정의를 내리고 있는데, 이를 더욱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우선, '약정'은 관계 안에서 진행되는 약속이다. 약정으로 인해 우리와 하나님은 관계를 맺게된다. 둘째, '피로 맺은'은 둘 사이의 결속을 강화 시켜준다. '계약을 체결한다' 하였을 때 이 구절은 '계약을 자른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계약을 어기게 되면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계약을 지킨다면 삶을 영위하게 된다. 셋째, '주권적으로'는 상호 조약이나 협정없이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행하는 것이다. 이 계약은 성경 전반에 걸쳐서 흐르는 개념이다. 사실 '계약'이라는 단어가 성경에서 처음 등장하는 곳은 노아와 하나님의 약속 수립과 관계해서다. 때문에 '노아 이전 시대에는 계약관계가 아니지 않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겠다. 하지만 세 가지 이유로 노아 이전시대도 계약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첫째, 다윗의 경우를 보아도 계약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았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계약적이었다. 그리고 후에 다윗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계약관계임이 나타난다.(삼하 23:5) 둘째, 성경의 두 구절(예33:20이하, 호6:7)에서 최초의 창조 관계를 계약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셋째, '계약'이라는 용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약이 존재하는데 필요한 요소들이 들어있다. 결국 "하나님 계약의 범위는 세상 시작부터 세상 끝까지 이르게 된다." 하나님의 계약은 통일성을 지니고 있다. 우선 구조적으로 통일을 이루고 있는데, 일테면 모세의 계약은 아브라함의 계약과 단절되어 새로운 계약을 맺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계약에 기초하고 그 기본중심을 이어받은 채 더 높은 실현의 단계로 이끌어진다.(출3:16, 17;6:4~8) 그 주제에 있어서도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임마누엘의 원리'이다. 즉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된다'라는 것이다. 아브라함, 모세, 시내산, 다윗, 새 계약 그 어느 곳에서나 고집스럽게도 계약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기 위한 것이다. 이는 실재로 성전인 우리 가운데 나타나는 다이내믹한 일이다. 하나님의 계약은 다양성 또한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세 가지 기본 형태로 구분되는데, 창조 이전의 계약과 창조 이후의 계약, 행위의 계약(창조계약)과 은혜의 계약(구속계약), 옛계약과 새 계약이다. 성경을 '계약'이라는 개념을 통해 거시적인 관점으로 성경을 볼 수 있게 해준다. 1,2문장의 성구로 성경을 편협하게 이해하던 자들에게 그 작은 눈을 떠주게 해주는 좋은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