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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자본에 물든 시각으로 볼 때 죄악이지만 부끄러운 것은 아닙니다. 가난하여 살림이 힘겨운 것보다 더 큰 죄악은 '가난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지금 내 살림이 풍족하지만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 이유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유와 틈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인 듯합니다. 마치 내가 제자리에 멈춰 서면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고, 남들에게 뒤쳐지면 안 될 것 같은 위기감이 느껴지고.. 세상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게 느껴지면서 거부할 수 없는 건 '불안감' 때문입니다.
책을 보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아팠습니다. 책에서 보는 인도 아이들의 그 맑은 눈망울을 통해 종일 학교에서부터 학원에 이르기까지 지친 몸을 이끌고 살아가는 내 아이들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또래들과 어울려서 '놀이'를 하지 못하고 집 안에 박혀서 '게임'에 몰두하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외로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자본이 아직 우리의 삶을 장악하지 못했을 무렵에 살았던 아이들은, 배는 고팠을지언정 불행하거나 외롭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게임기나 장난감이 풍족하진 않았어도 자연에 지천으로 널린 것들이 모두 '놀잇감'이 되었고, 더불어 함께 놀이를 즐길 동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골목들이 모두 사라진 자리에 남은 아파트 공화국, 아이들을 쉼없이 실어나르는 학원 버스들..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왔다는 저자의 말에 100% 공감을 하면서도 이 현실을 어쩌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은 착찹하기만 합니다. 길이 복잡하지는 않으나 그걸 선택하는 과정이 쉽지 않은 까닭이겠죠.
책을 보면 알게되겠지만, 인도의 아이들이 노는 모습은 과거 우리가 놀던 모습, 우리가 놀던 놀이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은 모두 같은 목적을 위해서 세상에 왔고, 같은 방식으로 놀이를 즐기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놀이에 빠진 그 아이들의 그 맑은 눈망울을 바라볼 때마다 '천사의 눈'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듭니다.
내 아이들도 저런 맑은 눈망울로 마음껏 뛰놀 수 있게 해 주어야 하는데.. 하는 마음만 빚처럼 가슴을 짓누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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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대기실에서다.
때마침 간호사가 오더니 TV를 켜주었다.
저녁 무렵에 화장실에서 이 책의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요즘의 아이들은 놀 줄을 모른다. 게임은 놀이가 아니다.
아이들끼리 놀다가 싸우거나 울어서 알아보면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상이다. TV나 게임 등 혼자 노는 놀이가 대부분이니
또한 놀이를 하면서도 다른 아이에게 지는 것을 못 견뎌하고 울거나 억지를 부리는 경우를 많이 본다.
책을 읽는 도중에 놀이의 필요성에 구구절절 공감하게 되었다.
잘 놀아본 아이라야 행복을 찾아 나설 힘이 있다는데
미래를 이끌어갈 기둥인 우리의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인도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찍은 사진은 지저분해 보이지만 참 행복한 모습이다.
아이들 키우거나, 또는 아이와 관련있는 분야의 일을 하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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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 글, 사진 편해문. 소나무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아이들이 즐겁게 놀 때 환하게 웃는 그 모습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쓴 책이라서 꼭 읽어보고 싶었다. 공감되는 글이 많아 좋았다. 아이들에게 놀이처럼 수업을 하고 싶다. 즐거워서 푹 빠진 이제 게임하자고 하지 않고, 놀이하자고 말하자 -나는 놀이가 허구이거나 꾸며 노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놀이에서 언제나 자신들의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그들만의 작은 우주를 날마다 새롭게 창조하고 있었다. -내 작은 경험으로 보아 밖에서 많이 놀아보았던 아이들은 게임 중독에서 쉽게 벗어나더란 것이다. 밖에서 땀 흘리며 노는 재미를 한껏 맛본 아이들은 그 이후에 만난 게임과 같은 것들이 이 세상 많은 놀이 가운데 하나로 보더라는 것이다. 이것이 참 중요하다. 그러니 만약 아이가 게임에 중독 되었다면 그 아이는 평소 스스로 놀지 못하거나, 부모들이 놀지 못하게 한 아이였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 나라와 견주어 유난히 게임중독 증세를 많이 보이는 우리나라 현실은 거꾸로 우리 아이들에게 얼마나 놀이를 허용하지 않고 있었는가를 또렷이 보여주는 셈이다. 놀이라면 마땅히 온몸으로 노는 것이라야 한다. -나는 옛날 아이들이 했던 놀이가 좋으니 그런 놀이를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틈과 터, 다시 말해 시간과 공간과 또래를 먼저 보고 가장 뒤에 놀이를 보아야 한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하지 않은 것이 사실 놀이다. 놀이거리가 없어도 놀 틈과 놀 터와 놀 또래만 있으면 아이들은 무엇을 하든지 잘 놀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아이들이 놀지 않는 까닭은 놀이거리가 없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이제 정말 우리는 아이들에게 놀 수 있는 틈과 터를 어떻게 마련해 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흔히 사람들은 아이들이 책을 읽으면서 상상하는 힘을 기른다고 생각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많은 상상은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를 통해서 길러지는데 그 꽃은 옛날 이야기이다. 옛날 이야기가 꽃이라면 놀이는 열매라고 할 만큼 상상을 무한대로 펼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어린 아이들일수록 그렇다. 그러니 놀이를 막는 것은 아이들의 상상을 막는 일이 되고 만다. -아빠가 물건을 고치거나, 엄마가 저녁 준비하는 것을 보고 있는 것만큼 좋은 놀이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나 지금 부모들은 집 안에서의 자연스런 노동과 멀어져 있다. 이런 좋은 놀이를 놔두고 우리는 돈과 시간을 따로 들여 아이들을 놀이방으로 보내고 복잡한 놀잇감을 아이들 품에 안긴다. 나는 정말 그런 것이 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어른 세계에 함께 참여하는 놀이를 너무나 하고 싶어 한다. 너무나... -국내외 뜻있는 분들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상업화된 장난감을 모두 치웠더니 오히려 아이들의 창의적인 놀이가 활발해졌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심심해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아이들이 시간이 조금 지나자 하다못해 빗자루 하나를 가지고도 아이들이 여러 가지 놀이로 바꾸어 한참을 놀더라는 말이다. 더욱 큰 변화는 아이들끼리 서로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는 점이었다. 아이들을 심심하게 내버려두면 큰일이라도 날 듯이 온갖 교구와 장난감을 쌓아놓고 얼마나 아이들을 닦달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심심함이야말로 놀이가 시작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조건이다. 심심해야 이제 한번 놀아볼까 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 아닌다. 그런데 어른들은 아이들이 심심해 할 틈도 없이 온갖 장난감을 사서 안기기에 바쁘다. 대한민국 아이들은 지금 장난감 소화불량에 걸린 상태라고 해야 할 정도이다. 놀잇감은 아이들이 창조해내는 세계이지 어른들이 사다주고 만들어주는 세계가 아니란 것을 잊은 것 같아 안타깝다. -인도를 다니면서 동네 아이들 틈에 섞여 이런 저런 놀이를 해보면서 몸으로 느낀 것이 있다면 바로 놀이는 서로 모르는 사람을 단박에 가깝게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나 같이 밖에서 온 사람은 “어! 우리와 비슷한 놀이를 하네”하고, 나를 만난 인도 아이들은 “어!저 이상하게 생긴 사람도 우리 놀이를 곧잘 따라하네”이런 것을 서로 느끼고 가까워지는 데는 정말 말이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놀이란 가장 훌륭한 외국어였고 언어였다. -누가 내게 왜 놀아야 하는가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웃기 위해서라고 말하겠다.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웃음이 없는 놀이는 가짜 놀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놀다가 자주 울기도 한다. 그렇다, 웃음과 울음이 있어야 진짜 놀이다. -신발을 벗어놓고 한 쪽은 가져가려 하고 다른 한쪽은 이를 막아내는 놀이였는데 학교가 끝나고 난 뒤 아이들이 한참을 놀다가 돌아갔다.(나중에 수업 시간에 해 봐야지. 카드를 가져가려고 하고 다른 쪽은 막으려고 한다) -놀이보다 중요한 것은 놀이를 서로 오래도록 하다 보면 생기고 쌓이고 오고가는 따뜻한 사랑과 이해와 우정이다. 사랑은 말로 마음에 새기기 어렵다. 교사와 부모가 아이들과 놀이로 서로 부대껴야 사랑의 싹을 틔울 수 있다. 무슨 놀이를 하든 관계없다. 꼭 민속놀이나 전래놀이를 할 필요는 없다. 그때그때 상황을 놀이로 여기고 즐겁게 놀 수 있다면 그만이다. 이렇듯 놀이를 하는 시간이 바로 사랑을 나누는 시간으로 바뀔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또 아이들은 놀이를 하면서 이 세상에 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있음을 깨우친다. 가까이 있는 동무가 나와 생각이나 몸짓이 다를 수 있다는 것도 배워서가 아니라 놀면서 깨우친다. 놀다보면 서로 다르니까 조절하는 것을 배우고 조절하다 보면 자기 고집도 돌아보고 가진 것도 나눈다. 잘 알 듯이 놀이 속에는 다툼을 중재해 줄 어떤 절대적 권위자가 없다. 운동 시합처럼 심판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교사가 심판 일을 도맡아 하는 것은 놀이를 깨는 어리석은 일이 될 수 있어 늘 조심해야 한다. 이렇듯 나와 여러 가지로 다른 동무와 놀이를 하다 보면 놀이판 속에서 어른들은 다 듣지 못하지만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아이들끼리 주고받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놀이를 하면서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들은 몸과 마음이 자란다. 놀이는 관계와 관심과 사랑과 우정이 빠지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오락으로 떨어져버리고 만다. * 참고 동시집과 책 -감자꽃(권태응. 감자꽃 창비 2000) -산에는 산새 물에는 물새(이문구, 창비 2003) -산골마을 작은 학교(김은주, 박경화, 이혜영 지음, 소나무) -할머니 농사일기(이제호 지음, 소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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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보기 힘들지만 어릴 적 골목길에서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면 놀았던 놀이들 고무줄 놀이, 소꿉 놀이, 사방치기, 구슬치기, 숨바꼭질, 연날리기, 공기놀이 등등 지금은 추억이 되어 버린 이 놀이들이 우리나라 얘기만은 아니라고 한다.
놀이전문가인 편해문 저자가 인도 여행 중 보았던 아이들의 놀이를 사진과 함께 실어놓은 책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를 보면 아! 하는 탄성이 절로 흘러나온다. 어쩜 우리와 노는 모습이 이리도 똑같은지. 정말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 것이 맞는 것 같다. 국적도 다르고 피부도 다르고 생각도 다를 터인데 어찌 아이들이 노는 모습은 이리도 똑같은지. 누군가 인도로 건너가 우리네의 놀이를 그대로 전해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아이들이 많이 허약하고 병에 노출되어 있다고 말을 많이 하는 것이 현실이다. 왜 그럴까? 그 해답을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라는 책을 통해 저자는 답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놀이를 빼앗앗기 때문이다. 지금의 3-40대만 해도 골목길에서 뛰어놀았던 경험이 있으리라. 대부분의 어른들에게 있어 놀이를 하찮게 여기는 경향이 있으나 놀이의 중요성을 인도라는 나라를 통해 사진과 더불어 설명을 곁들여 놓은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 곡 한번 읽어보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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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 놀다보면 하루가 너무나 짧아 아침에 눈뜨면 마을 앞 공터에 모여 매일 만나는 친구들 비싸고 멋진 장난감 하나 없어도 하루 종일 재미있었어 좁은 골목길 나즈막한 뒷산 언덕도 매일 새로운 큰 놀이터 개울에 빠져 하나뿐인 옷을 버려도 깔깔대며 서로 웃었지 어색한 표정의 단체 사진 속에는 잊지 못할 내 어린 날 그 보물들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 놀다보면 하루가 너무나 짧아.
- 강인봉 작사 작곡, 자전거 탄 풍경 노래.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잃어버린 웃음 소리, 아이들이 어려서 놀던 힘으로 세상을 버텨나간다는 지은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가끔 생각나는 어린날의 기억에는 항상 동네 언니 오빠들이나, 학교와 학년이 달라도 한 패가 되어 고무줄 놀이를 했던 아이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우리 어렸을 때 유행했던 주산 학원이나 여자아이들이 주로 다녔던 피아노 학원에서 공부했던 기억 따위는 애써 건져올려보려 해도 도무지 잘 생각나질 않는데 말이다. 놀면서 이웃도 알고, 놀면서 친구도 알아가던 그 시절이 없었다면 십 대의 절반은 아마 별다른 기억 없는 날들로 메워지고 말았을 거다.
지은이가 찾은 인도와 네팔, 캄보디아는 빈부격차가 심하거나 아예 빈부랄 것도 없이 국민 대다수가 가난한 나라이다. 나라가 가난하면 가장 힘든 건 노인과 아이들이라고 생각해 온 선입견은 사진 속 아이들의 환한 웃음 앞에서 꼬리를 감추고 만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놀이를 꼽으라면 나는 어른들이 제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옆에서 아이들이 보거나 따라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놀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을 지금은 참 보기 어려워졌다. 왜 그럴까. 아이를 곁에 두고 일하는 부모가 적기 때문이다. 김치 담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큼 좋은 놀이가 없는데, 김치를 담는 부모가 없다. 다 사다 먹으니까 말이다.
아빠가 물건을 고치거나, 엄마가 저녁 준비하는 것을 보고 있는 것만큼 좋은 놀이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나 지금 부모들은 집 안에서의 자연스런 노동과 멀어져 있다. 이런 좋은 놀이를 놔두고 우리는 돈과 시간을 따로 들여 아이들을 놀이방으로 보내고 복잡한 놀잇감을 아이들 품에 안긴다. 나는 정말 그런 것이 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어른 세계에 함께 참여하는 놀이를 너무나 하고 싶어 한다. 너무나…(이 책 105-106 쪽)
대체로 인간은 놀이를 통해 밝아지고, 건강해진다고 믿는다. 일에 시달리거나, 공부에 압박 받는 사람들은 어딘가 모르게 힘이 없어 보이고, 어둡기 마련이다. 어른도 그럴진대 하물며 어린 아이들야 말해 무엇하나.
폐자전거 타이어 하나로도 너른 공터를 누비는 맨발의 아이들 모습에서 어떤 희망을 발견하는 것 같다면 저자의 '따뜻한 글빨'에 취한 나의 지나친 오버일까?
힘차게 뛰놀며 바퀴살 없는 빈 고무를 굴리는 흙빛 피부의 아이들 모습이 건강한 미래로 여겨진다. 게다가 무거운 가방에 눌려 어깨를 펴지 못하고 비교 당하고 경쟁에 내몰리는 우리 아이들에 비해 훨씬 행복해 보인다. 남보다 많이 갖고, 남을 이겨야 하는 경쟁사회에 내몰린 아이들에게 얼마간의 하늘과 운동장을 되돌려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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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때"라는 말은 왜 쓰는가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게 해준 책이었다. 일생을 살면서 아이다운 행동과 말을 벗어나 이치에 맞는 행동을 할 때 우리는 철들었다는 말을 사용한다. 아이다운 행동, 아이다운 놀이. 그러고 보면 딱 그만할 때만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자유는 그 시기밖에 없다는 뜻인데... 줄곧 아이들의 행복함과 자유를 때 이른 "공부공화국"에서 다 빼앗기고 있다는 생각. 공부라는 동아줄에 매달려 있는 아이를 이리 올라가야 된다 저리 올라가야 된다며 닥달하고 있는 내 모습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게도 한 책이었다.
인도란 나라에서 아이들이 하는 놀이는 참 우리나라에서 하는 놀이와 많이 닮아 있었다. 저자의 말처럼 그 나라의 놀이를 우리나라에 전파해준 것인지 우리나라 놀이를 전파해준 것도 아닐터인데, 실뜨기, 고무줄놀이, 술래잡기, 공기놀이, 재기차기, 잣치기와 비슷한 놀이등등. 생생한 사진과 함께 읽으면서 어쩌면 도구없이 바로 놀 수 있었던 내 어린시절의 여러 놀이처럼 놀 것들이 그리도 비슷한지 아주 깜짝 놀랐었다.
그 놀이들에 감탄하며 드는 생각은 내 아이가 참 갸엾다는 것이었다. 아이의 아빠도 그러했고, 내 어린 시절도 그러했고, 참 다양한 놀이로 많이 놀았기 때문이다. 저수지에서 수영하며 노는 것은 예사고 공차면서 놀고 잡기놀이야 늘 하던 놀이였다는데... 나 또한 산으로 들로 다니며 소꼽놀이에 차돌차기, 고무줄 놀이, 공기놀이를 하며 밖이 캄캄해질 때까지 동네 아이들과 놀러다녔던 개구진 여자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내 아이가 노는 곳이래야 수영장에서 수영이나 하고 합기도장에서 아이들과 피구할 수 있는 시간정도가 놀이시간의 전부이니 참 마음아프고 씁쓸하다. 친구녀석들과 만나 어디가나 보면 잘 노는 아이라도 이제는 pc방에 가고 노래방에 가고 5학년이면 벌써 하는 놀이도 틀려지는 것인지... 놀이터에서 노는 것은 아주 잠깐 놀다 오고는 만다.
"우리 아이는 밖에서 맨날 노는데, 늘 하는 말이 놀 친구가 잘 없다는 거야."라며 쓸쓸한 말을 내뱉는 가까운 언니를 보며 나같은 엄마가 많아서 학원으로, 집에서도 공부해야된다며 잡혀 있어 놀이 친구가 없다는 말이 메아리 친다. 또한 "공부 좀 그만 시키세요!"라는 저자의 말도 따갑다. 어느새 아이다움을 벗어던져야 하는 시기가 오는 내 아이를 생각하며 미안하기 그지없다. '초등3학년까지라도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이할 수 있는 시간좀 듬뿍 줄 껄.'후회해본다.
행복하게 웃는 모습이 별로 없는 내 아이를 보며 아이가 좋아하는 잡기 놀이를 산책겸 오며 가며 할 때가 있다. 친구들과 잡기 놀이를 할 때도 자지러질 듯 웃는 아이 얼굴은 뻘뻘 흘린 땀과 함께 어찌나 빛이 나는지 눈이 부실 때가 있다. 행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좋은 옷, 좋은 집,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만 행복한 것일까? 사랑한다고 따스하게 안아줄 때, 실수할 때도 있다고 등 두드려줄 때, 일어나기 힘들겠지만 일어나야 된다며 간지럼 태울 때, 그 때 아이의 해맑은 미소를 잠시 볼 수 있다. 놀이하나 제맘대로 정해서 놀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고 이미 많이 자라버린 내아이. 지금이라도 놀 궁리를 하는 아이다움을 선물할 때가 아닌가 싶다. 대한민국 엄마들. 무엇이 아이의 행복을 위한 것인지 가슴으로 물어야할 때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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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미디어 즉 신문과 지상파 TV, 케이블 TV, 인터넷망을 이용한 IP TV를 통해 ‘아워 아시아2’ 가 시작되었다며 내가 보는 신문에 아시아 아동들의 충격적인 실태을 기사화하고 그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켜 이들 아동을 지원하는 유니세프 후원을 늘이는 기사를 보다가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는 말에 동감하거나 뜨끔한 학부모들에게 추천하고 싶는 책이다. 우리 모두 반성하자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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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종하게 모여 앉아 속닥거리던 내 어릴적과는 달리 지금의 아이들은 모여 있음에도 개인적인 영역안에서 행동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마에 송글거리는 땀방울과 발그레한 볼을 만들며 온몸으로 노는 것이 아니라 조물락거리는 행동들을 일삼아서 걱정이 들기도 하고......., 장소나 여건의 할애에서 비롯된 거겠지만 무언가 손에 쥐어 주지 않으면 다시금 돌아와 우두커니 있을때의 모양새는 안타까울 뿐이다.
마음의 자리안에 무언가 불안함이 상주해서 그럴까? 자율적인 놀이의 생성을 시도하려 하지 않는 것이 요즘 아이들의 보편적인 특징 같아서 부모된 이들은 걱정에 한 짐을 또 얹게된다. 놀이를 통한 체험과 학습 그리고 치료까지 행해지는 지금의 시점에서 도서속의 인도 아이들의 모습은 자못 내 어릴적 모습과 흡사함이 묻어있다.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 그리 가깝지 않은 나라인데도 어떻게 비슷한 놀이를 하고, 맨발로 뛰고, 소꿉놀이, 구슬치기등도 하고 우리처럼 숨고, 찾고, 치는 놀이를 하네?"라고 물어봅니다. 이상하게 느껴지기는 아이와 다를 바가 없지만 감회는 새롭게 느껴집니다. 어쩌면 내가 기억하는 그 놀이들( 고무줄놀이, 연날리기, 병뚜껑 딱지를 구하기 위해 억척스런 노고도 감수했던 일, 비석치기의 질 좋은 말을 구하기 위한 나름의 안목키우기등....)을 다시금 추억하게 해서였겠지만. 그러한 것을 공감 못하는 내아이은 지금 어떤 놀이를 하고 있는가에 생각이 미치게 되니 답답하기도, 아쉽기도.......
노는 방식이 달라져서 어떤때는 내가 적응치 못하는 경우가 있듯이 아이들도 이전의 단순하고 평범한 놀이가 생뚱맞기는 같을 것이다. 놀기위해 장난감도 만들고, 보여지는 것들을 이용하는 순간 놀이들이 조금은 안일하게 느껴지겠지만 직접 참여한다면 금새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자부한다. 그래서 좀 더 역동적인 활동을 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작자처럼 해본다. 서로 부비고 협동해 어우러질 수 있다면 , 이해하는 것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중에 마음 쓰기의 조절도 가능케 될테고........
그래서 직접 놀이를 가르치기보다 그 무리안에 아이들을 놓아두고 싶다. 놀이를 하든 말든 제 의사껏 조절하고 진정한 재미를 알게끔 하고 싶다. 직접 참여해 느낄 수 있는 뿌듯함의 정도를 아이에게 듣고 싶은 부모마음이나 다 같겠지만, 여러 이유와 핑계로 그 기회를 앗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밝은 웃음과 턱까지 차오르는 숨차오름을 하면서 더 없이 뛰어 논다면 행복한 것이라고 단정짓고 싶다. 그런다면 아이들은 다시금 모여 들것이고 그들만의 공유가 생겨 날 것이다.
무지막지한 금액이 오고가는 게임보다는 순수함 그자체로 물, 흙, 바람속에서 즐길 수 있는 그런 놀이를 하면서 머리, 마음, 손과 발이 함께 하는 그런 자리를 잊지 않고 어우러짐의 장을 펼쳤으면......, 그래서 정말 이 세상에 온 이유를 깨달았으면 한다. 놀면서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에게는 밝은 미소와 꿈과 사랑, 우정과 이해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기며 아이들의 틈과 터를 위한 고민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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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터울이 조금 있는 즉 고2,초3인 두 아이가 있다. 큰 아이 9살 겨울에 동생이 생겼으니 많이 놀았을것 같은데 돌이켜 보니 직장 관계로 통근하느라 할머니집에 떨어져 살고, 학교 입학해서는 관사에서 동네의 아이들과 떨어져 살다 보니 많이 놀지는 못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어릴때 놀았던 힘으로 우리는 오늘을 산다"
이렇게 말하고 있다.
큰 아이에게 작가의 말처럼 유년시절에 신나게 놀지 못해 자신감이 조금은 없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작은 아이는 통근을 하지 않는 여건에 근무하게 되어 퇴근하면 일단 아이부터 데리고 놀이터로 향했다.또 바로 학교가 옆에 있어서 많은 아이를 만날 수 있어서 신나게 놀았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두 아이를 비교해 보면 많이 놀지 못했던 큰 아이는 학교생활도 활기차지 못해서 엄머의 신경이 많이 쓰였던 적이 많았었다.하지만 작은 아이는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다.친구 사귀기 잘하고 공부시간에 집중력도 좋고 아직까지는 걱정이 되는 부분이 별로 없다.방문 학습지를 하나도 시키지 않아도 공부도 뒤떨어지지 않고 잘하고 있다. 작은 아이를 보면 놀때는 신나게 놀 수 있도록 해 주었던 시간이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감있고 적극적인 아이로 키우는 원동력이라고 말하고 싶다.작은 아이가 놀이를 하다 보면 유난히 욕심이 많았서 다투기도 하고,샘이 나서 울기도 많이 했었다.그 과정에서 참는 법을 배우고 타협을 할 줄 아는 아이가 되었다.
일찍이 대한민국은 이미 아이도 어른도 놀 수 없는 곳인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인도행 비행기에 올랐던 것이 네 번째라 한다는 작가의 이야기처럼 요즈음의 아이들은 너무나 노는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자라고 있다. 나중에 부모가 되어서 아이들에게 어떠한 추억거리를 이야기 해줄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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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저자는 대한민국은 이미 아이도 어른도 놀수 없는곳인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인도행비행기에 네번째 오른다고 말했다.
이책은 인도의 아이들이 노는 모습들을 사진과 함께 만날수 있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는동안..난 내내 나 이거 해봤어, 어렸을때 내가 했던 놀이랑 너무 똑같아, 맞아, 맞아..하면서 내 어린시절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자치기를 할때 새끼자를 받기위해 럭비선수처럼 몸을 낯추고, 뾰족한 부분에 맞지 않으려 조심했던일, 오빠따라 했던 구슬치기도 색깔별로 구분해놓고, 왕구슬과 쇠구슬을 구분하여 보관했던것,
비석치기를 하기위해 돌멩이를 찾아 헤매이던 일, 10미터도 채 되지 않는길을 어깨위에 돌멩이를 올려놓고, 조심조심 실눈을 뜨고 걸어가던일. 똥싸기로 소개된 비석치기는 양쪽 엉덩이 사이에 돌멩이를 끼고 혹여나 빠질까봐서 조심조심, 그러나 빠른걸음으로 걸어가서 돌을 맞춰야 했던일.
이거리저거리 갓거리를 할때는 친구들과 다리사이사이로 엇갈려 끼워놓고. 손으로 장단을 맞추면서 했던일등...책에 소개된 놀이문화를 마음껏 누리면서 자란 어린시절이었던것 같다.
잊고 지냈던 어린시절을 기억함으로써 마음이 따뜻해지고, 그때의 오빠의 얼굴과 동생의 얼굴.
그리고 친구들의 모습들이 떠올라 가슴가득 감동이 일었다.
책을 읽는동안 가슴이 뜨거워져서 잠시 책을 덮어야 할때도 종종 있었다.
내아이 만했을때 내모습과. 아이의 모습을 비교하니 한없이 아이가 안스럽게 느껴졌다.
그래도 내아이만큼은 다른아이들과 달리 많이 놀게해주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던것 같다. 어쩌면 난 놀이도 가르칠수 있다고 생각했던것 같다.
저자는 말한다, " 놀이는 가르칠수 없다, 이런 저런 책을 펴놓고 배울수도 없다, 오로지 놀면서 느낄수 있고, 그 재미있고 따뜻하고 때론 흥분되는 느낌을 아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을뿐이다.
놀려면 아이들을 일상에서 붙잡고 있는 이런저런 것들에서 놓여날수 있어야 한다"
거창하게 놀이를 위해서 노는것이 아니구, 무슨놀이든 상관없이 그때 그때 상황을 놀이로 여기고 즐겁게 놀수 있다면 그만이다. 문득 전에 음성에 갔을때 아이들 달리기가 생각이 났다.
더운 여름날 수목원을 산책하고 지쳐있을 아이들이, 한명이 잔디밭을 가로질러 뛰었고, 그뒤를 다른아이들이 연달아 뛴적이 있다.
그때 난 앞에서 그아이들의 순서를 정해 이어달리기를 한적이 있었다. 더위때문에 한바퀴만 돌고오면 그만일꺼라 생각했던 아이들은 세번이나 뛰고서도 아쉬워했었다.
거창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스스로 놀줄 아는 힘을 가지고 있는것이다.
잘 놀아본 아이가 행복을 찾아나설힘이 있다고 한다. 내일은 아이들과 함께 나도 놀아야겠다.
패트병으로 자치기고 해보고, 실뜨기도 해보고, 공기놀이도 해보련다.
공원에 가서 비석치기도 해볼까..?? 갑자기 책을 덮고 나니 아이와 할일이 많아진다.
돈들이지 않고, 아이에게 힘을 싣어주고, 행복을 찾게 해주고픈 부모님들에게 적극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아이의 밝은 웃음을 느낄수 있을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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