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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사랑을 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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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감정의 대결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물론 두 요인 간의 조화가 이루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학자들 간의 다툼은 끝이 없어 보인다. 오죽했으면 서양 철학이 이 둘 중 어느 것을 중시했던가를 놓고 서로 다른 학파로 갈리었겠는가. 하지만 어느 쪽을 택할지라도 ‘사랑’이라는, 인간이 겪는 어쩌면 가장 오묘한 경험을 설명하는 게 힘든 것만은 사실이다. 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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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감정의 대결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물론 두 요인 간의 조화가 이루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학자들 간의 다툼은 끝이 없어 보인다. 오죽했으면 서양 철학이 이 둘 중 어느 것을 중시했던가를 놓고 서로 다른 학파로 갈리었겠는가.

하지만 어느 쪽을 택할지라도 ‘사랑’이라는, 인간이 겪는 어쩌면 가장 오묘한 경험을 설명하는 게 힘든 것만은 사실이다. 호르몬이 뇌를 자극해 이와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다분히 멋대가리 없는(!) 주장을 펼치거나 혹은 신이 한 인간에게 어울리는 또 다른 인간을 미리 예비해놓은 것이라는 식의 설명을 하거나, 어느 쪽이나 불완전하긴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철학자들은 이를 두고 어떠한 주장을 펼쳐왔을까?

플라톤에서부터 시작하여 카를 야스퍼스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달라 보이는 철학자들이 펼친 사랑에 관한 주장을 이 책 한 권을 통해 우리는 만날 수 있다. 이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이동을 한 것과도 같은 느낌을 나에게 가져다주었다.


어느 인간도 완벽한 존재는 되지 못한다. 남성이 여성을 그리고 여성이 남성을 필요로 하는 까닭은 홀로 완벽할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는 어느 한쪽을 완벽한 존재로 설정하고 있었으니, 이는 (다들 잘 아는 사실인) 남성이 역사의 기록주체였다는 사실로부터 비롯된 일이다. 위대한 인물은 모두 남성이고, 여성은 그 존재감이 참으로 미미하다. 혹 우리에게 익숙한 여성들이 있다 하여도 그들은 모두 현모양처나 열녀의 범주 안에 들었다.

사랑과 관련된 기록 면에 있어서도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남성이 사랑을 주도하는 완벽한 대상으로서 기술된 반면 여성이 열등하고 오로지 남성을 보조하는 존재로서만 여겨진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다. 엄정한 법칙을 구사했던 칸트마저도 이와 같은 사고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으니,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감정”이라는 식의 찬양은 다분히 인위적인 구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으로부터 나는 흥미로운 주장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성의 양극성은 생물학적으로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다르게 규정되어 있다고 과르디니는 보았지만 전제주의에서 여성을 억압하는 것을 변명하듯 나온 평등성을 잃어버린 현대의 합리적이고 기술 만능주의적인 남성화를 비판했다. 본질적인 신체의 차이점과 서로 다른 특징에도 불구하고 과르디니는 여성과 남성을 동등한 것으로 보았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절대적인 남성다운 남성도 없고 여성다운 여성도 없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가능성의정체성이 있다고 보았고 절대적인 여성 또는 남성이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부인했다. 그는 오히려 다양한 개개인이 있다고 보았다. (p 150-151 중에서)


이는 로마노 과르디니의 견해이다. 19세기 후반에 태어나 폭력으로 얼룩진 20세기 전반을 한껏 누리다(?)가 간 이 인물의 주장은 신은 모든 인간을 자신의 모습과 같게 창조했다는 기독교적 인본주의와 일맥상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제의 틀을 강조하는 쪽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게 종교의 일반적인 모습이어서인지 그의 주장은 참으로 세련되다 못해 신선하게까지 느껴진다.

또 한 가지. 사랑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꼭 명심했으면 싶은 부분이 한 곳 있었으니 아래와 같다.


“개인의 사랑은 존재하는 것에 대한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원초적이고 첫 번째 사랑이다. 사람들이 자기애로 빠져 들어가고, 다른 사람을 우상화시키는 것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은 결국 붕괴되어 더욱 결정적으로 본래의 것을 나타낸다. 즉, 모든 사랑의 원천으로서 항상 유일하고 대체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사랑을 말한다. 사랑에만 존재와 진실이 들어 있다. 사랑이 없이 존재와 진실은 몰락한다. 사랑이 없는 경우에는 사물에 대한 자기 중심주의만이 남고 형상과 사고의 허식 속에서의 공허한 존재만이 남는다. 존재와 진실은 사랑의 자극 하에 경험하고 생각하는 사람의 존재에게만 나타난다.” (p 308 중에서)


야스퍼스의 과도한 실존주의(?)는 많은 이들로 하여금 그의 철학에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성숙한 사랑은 상대를 위하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것임을 야스퍼스는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전반적으로 난해했다. 아마도 ‘사랑’이 그마만큼 어렵기 때문이리라.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친 철학자들. 그들의 주장 중 어느 것이 옳다 말할 순 없겠지만 나는, 서문에 언급되어 있는 ‘사랑은 인간에게 있어서 신(神)적인 것이다’라는 결론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래서 누군가는 사랑 후 헤어짐에 아파하는 것이 사랑치 못하는 것보다 나으며, 지금 이 순간 사랑하지 못하는 자는 모두 유죄라고 누군가가 울부짖었던 게 아닐까 한다.

q*****2 2008.03.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