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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삶의로의 여행 제목으로 짐작이 가겠지만 우리 모두가 온전한 삶을 추구하길원하는 파커 J. 파머의 에세이이다.
이책의 표지와 제목을 보고 든 첫 느낌은 차분하다 라는 생각이다. 사실 난 자기계발서의 하나 쯤으로 생각했다.
이책은 10장의 긴글을 실고 있으며 한장 한장 작가의 경험과 삶의 의지를 잘보여준다. 저자는 첫장부터 ‘온전함은 완전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깨어짐을 삶의 불가피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라고 말하며 독자들에게 온전한 삶을 이해시키고 설명하려고하지만
이책을 처음부터 이해하기는 쉽지않다. 사실 이책은 처음 책을 몇장 넘기다보면 "참자아" "신뢰의서클" "고독한 커뮤니티"등 쉽게 와닿지 않는 단어와 친절한 작가의 설명이 들어있지만 그뜻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차차 읽다보면 '온전한 삶' 이라는 것을 이해할수있고 나 자신을 바라볼수있게된다. 그리고 작가가 말하는 '참자아' '투명해지기'등에 귀기울이게 되고 다읽었을때 마침내 내면의 자신을 알고 온전한 삶으로 여행을 떠날수있게해준다.
이책은 작가의 삶과 생각을 글로표현하고있다. 그것은 다읽었을때도 다소 어려운 부분도있었지만 그말하고자하는것을 <목공> 이야기나 여러 경험과 요약글로 설명해서 그나마 이해를 쉽게 도와준다.
나도 온전한 삶을 살기위해 노력해야겠다.나의 '내면' 그리고 '참자아' 거짓되지않는 삶을 살고싶게해주는 .. 그런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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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삶으로의 여행/ 파커 J파머/ 해토
온전한 삶으로의 여행 ... 제목부터가 약간의 철학적 냄새가 살살 난다. 안개가 내려앉은 듯한 숲속을 사람들이 헤쳐나가는 모습이 편안하고 포근하게 다가오는 표지이다. 한마디로 표지부터가 마음에 들기도 한다. 이 책은 저자인 파머가 40년동안 추구해온 주제를 엮은 책이다. 우리의 삶을 영혼과 분리시키는 힘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분리되지 않은 삶 또는 내면의 진리와 일치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갈망에 대한 이야기다. 처음 이 책을 읽으면서 뭔가 모르게 집중이 되질 않았다. 어느 정도 읽어가도 도대체 저자는 무엇을 말하는가를 연거푸 나에게 되묻고 했다. 그렇게 녹록하지 않는 책이였지만 이 책의 절반을 넘기면서 저자의 의도와 저자가 독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철학서적이든 이념서적을 싫어하는 나는 아닌데 웬지 모르게 처음에 어렵게 느껴진 이유가 뭘까?
저자가 말한 분리된 삶을 나 또한 살고 있었다. 나보다는 나를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의식을 하며 살아온 나. 그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기 위함이라는 얄팍한 합리적 이론으로 나를 감싸 안고 있지만 내 삶의 많은 부분들이 주체인 내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산 세월이 얼만인가??? 왜 굳이 그렇게 살아야만 했는가??? 를 이 책을 통해 스스로를 다시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지금 당신의 삶이 당신이 진정 원하던 삶입니까? 라는 물음을 던져 온다면 난 NO라고 말할 수 있다. 정녕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기에 말이다. 조금 더 마음을 열고 세상과 소통하고 , 조금 더 자비롭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생기게 이 책은 만들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내가 들어보지도 못한 종교를 믿고 있지만 어떤 특정 종교나 사상에 얽매이지 않고 열린 자세로 자신의 진솔한 체험과 주변 이야기를 들려 줌으로써 이 책의 이해의 폭을 넓게 해 주었다. 그래서 조금은 불안한 나의 정서에 안식을 주었으며 내 자신의 삶 속에 감춰진 온전한 나의 삶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를 주었다. 단순히 한번의 정독으로 이 책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잠시 서재에 꽂아두고 언젠가는 다시 한번 더 정독해 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우리는 어떤 처벌을 받더라도 분리된 삶을 살면서 스스로에게 가하는 처벌보다는 가혹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분리된 삶을 자신이 한 번도 참자아로 살지 못했다는 슬픔으로 끝난다. 그러나 온전한 삶은 언제나 우리를 최후에 웃음 짓게 만든다.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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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파커 J. 파머의 교사의 교사라는 명성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저자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 책은 며칠 전에 있었던 워크숍을 방불케 할 정도로 현장감 있게 나를 감화시킬 수 있었다. 「교사와 학생을 위한 대화법」을 들으러 온 교사들은 단 이틀 15시간의 워크숍이었지만 열린 마음으로 듣고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다. 같은 직종에 종사하면서 한 가족의 아내, 부모라는 것이 마음을 열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아예 같은 내용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깊이 있게 들어가면 핵심은 유사할 것이다. 말하는 방식에는 좀 차이가 있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신뢰의 서클은 자연스럽고 말하고 싶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워크숍은 편의상 가장자리에 앉은 사람을 시작으로 발표가 시작되었다. 처음에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내 차례가 될 때까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했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 다행히 차례가 지나면서 잘 지나갔구나 생각했지만 이 책의 방법대로 행했다면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왜냐하면 내가 말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말을 깊이 있게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책의 초반부에서 분리된 내 삶에 대해서 돌아볼 수 있었다. 분리되어 살게 된 이유를 통해서 ‘분리되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집중할 수 있었다. 나는 교사이지만 퇴근 후 주변인에게는 교사가 아닌 ‘나’로 봐 주기를 바라는 반면 내 마음 속에는 나는 교사다! 라는 생각을 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 나에 대해서 생각하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춰진 나를 진정한 나의 모습이라고 믿고 싶었다. 이처럼 우리는 다른 이들 속에서 참자아를 인식하고, 그 인식을 그들의 행복을 재는 기준으로 삼는다.(p 55) 또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솔직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내 모습들을 반성한다. 무엇이 나를 그리 두려워하는지 그것을 떨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매일의 삶을 바쁘게 살고 있는 나에게 온전한 삶에 대한 자극이 되었다.
이 책에서 드는 예로 공립교사가 자주 등장한다. 그렇다고 마치 저자가 교사를 위한 책을 쓴 것이라고 오해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우리는 누구나 ‘내면의 교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를 통해서 깊이 있는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내면의 여행에서는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어느 길로 가야할 지 안내받을 수 있다.(p 44)
또한 책에서처럼 온전한 삶을 살면서 서로 돕는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신뢰의 서클에 참여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모임의 참여가 강제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침묵하고 질문할 수 있는… 책을 읽으면서 함께 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거나 선물하면 그 속뜻이 전달될까 하면서 책을 읽었다.
우리는 어떤 처벌을 받더라도 분리된 삶을 살면서 스스로에게 가하는 처벌보다는 가혹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분리된 삶은 자신이 한 번도 참자아로 살지 못했다는 슬픔으로 끝난다. 그러나 온전한 삶은 언제나 우리를 최후에 웃음 짓게 만든다.(p 219)
책을 읽고 보니 이 구절이 내가 읽으면서 느낀 감동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는 것 같다. 온전한 삶으로의 여행을 이 책을 놓음으로써 더욱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믿는다. 깊이 베인 상처가 금방 치유되지 않듯이 항상 곱씹고 생각해 볼 책이다. 잃어버린 자아를 찾고 싶은 자에게 권한다. 또한 생각에 그치지 않고 실천하는 영혼 여행의 동반자가 되어 주리라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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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정도의 차이이지 대부분 마음의 상처를 받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러한 상처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평생 살아가면서 계속 감수하여야 하는데 문제가 있다.과거 농경시대에는 가족들이 먹고 자는 것만 해결하면 그다지 큰 걱정이 없었지만 급격한 과학발전에 힘입어 사회가 다변화되면서 사람들끼리 복잡한 이해관계도 얽히게 됨에 따라 본의 아니게 남으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그러나 계속적으로 원활한 사회생활을 위하여 한번 입은 상처를 드러내기 보다는 안으로 숨기고 결국 남에게는 자신 내면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살아가는 가식적 삶을 영위하게 된다.
이 책은 자기 자신을 숨기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 않은 채 거짓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진정한 자아를 찾는 방법에 대하여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특히 신뢰의 서클을 통한 대화,영혼의 존중,참자아를 위한 커뮤니티, 진실의 추구 등을 통한 자신을 둘러싼 벽을 허무는 과정은 참으로 와닿는 점이 많다.
현대인들이 극심한 경쟁과 이해타산에 따른 얻은 마음의 상처는 더욱 더 자신의 벽을 쌓게 함므로써 거짓된 웃음과 말로써 극복하려 하지만 그것은 찰나적인 치료이지 궁극적인 치료방법은 아닌 것이다.마음의 상처는 씻을 수 없는 분노로 축적되어지며 끝내는 심각한 우울증으로 이어지면서 비참한 삶으로 결말날 수 있다.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하여 명상,침묵 또는 원활한 대화로 극복하려 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먼저 자신부터 벽을 허물고 남에게 용기있게 다가가야 서로가 진실있게 통할 수 있다.
온갖 물질적 문명의 혜택은 인간성의 파괴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 밖에 없는 현대사회에서 현대인들이 최소한의 인간성을 유지하면서 자신을 지켜나갈 수 있는 방법이 이 책속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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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삶의로의 여행을 읽고....
잘은 모르지만 교육지도라로서 꾀나 유명한 파커 J. 파머가 이 책의 저자이다. 이 저자는 책에서 온전한 삶을 살면서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본론적으로 이 책은 크게 10개의 테마 즉, 온전하게 살아간다는 것, 참자아 찾기, 함께 홀로되기, 신뢰의 서클 만들기, 물음 속에 살기, 제3의 길:일상생활에서의 비폭력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테마에 대한 소명제들이 개략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책을 읽기 전에 우리는 온전한 삶이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한번 쯤은 자세히 생각해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 책은 다분히 철학적인 의미가 담겨있는지라 아무 생각 없이 읽게 되면 내용이 이해하기도 힘들고 다소 지루할 수도 있기 때문에, 책을 읽는 도중에도 긴장을 늦추지 말고 일관된 정신하에 읽기를 충고한다. 독자인 나도 철학적인 책은 좀 낮선지라 이해하기 꾀 힘들었다. 결론적으로 저자가 의미하는 “온전한 삶”이란 진정한 영혼의 상태이며, 즉 참된 자아, 완성된 자아로서의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신분 및 직업에 구애됨이 없이 자기에게 주어진 소명에 최선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는 것이 바로 온전한 삶이고 행복으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정명정신과도 일맥상통하다고 할 수 있다. 다분히 이러한 의미는 우리에게 다분히 신선하거나 큰 감동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지만, 읽게 되면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으며, 우리는 챗바퀴와도 같은 바쁜 일상의 하루생활속에서 이러한 사소한 의미를 지나쳐버리고 가는 경우가 종종 없지 않다. 저자는 이와 같은 삶을 “온전한 삶”과 반대되는 의미로서 “분리된 삶”이라고 칭했으며, 이와 같은 삶에서 탈피하여 본래의 온전함을 되찾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 동시에 이러한 상처를 치유하고 서로를 돕기 위하여 만든 모임인 신뢰의 서클이라는 커뮤니티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일상생활에 지쳐 하루하루 반복된 생활에 지쳐가는 사람들, 파머의 정신세계를 탐독하고싶은 이들, 세상의 거센 눈보라를 해쳐나가고 싶은 분들은 이의 책을 꼼꼼히 정독하여 자신의 영혼을 다스리고 조종할 수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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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나는 한 나무 등걸에서 나비가 나오기 위해 막 구멍을 뚫어놓은 듯한 번데기를 발견했다. 나는 한참을 기다렸으나 어떠한 조짐도 보이지 않아 조바심이 났다. 나는 허리를 굽히고 그 위에 입김을 불어 번데기를 좀 더 따뜻하게 했다. 내가 열심히 입김을 불어 넣은 덕택에 기적이 내 눈 앞에서 빠르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집이 열리고, 나비가 천천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날개가 뒤로 접히고 구겨져 있는 것을 본 그 순간의 공포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 가여운 나비는 날개를 펴려고 필사적으로 버둥거렸다. 나는 또 다시 몸을 숙여 열심히 입김을 불었다. 그러나 허사였다. 그 놈은 번데기에서 천천히 나와야 할 필요가 있었고, 날개의 펼침은 햇빛 속에서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이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너무 늦었다. 내 입김 탓에 나비는 때가 되기 전에 날개가 완전히 구겨진 채 억지로 집에서 나오게 된 것이었다. 그놈은 절망으로 파닥거렸고, 몇 초 후 내 손바닥에서 죽었다.“
자연 섭리에 따르지 않고, 인위적인 수단을 통해 보다 빨리, 보다 먼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인 현대인의 모습에 경종을 울리는 글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 나비의 시체만큼 내 양심에 무거운 짐은 없다고 믿는다. 자연의 위대한 법칙을 거스르는 게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신 안에 내재한 영혼을 느끼기 위한 ‘신뢰의 모임’. 그는 이 모임에서 참석자들에게 그 곳의 규정을 말한다. “서로 고치려 하지 않고, 구하려 하지 않고, 충고하지 않고, 바로잡으려 하지 않기.”
언뜻 보기에 무척 단순한 내용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동안 상대방을 바로잡는 것이 자신의 사명처럼 생각해 온 참석자들은 그 규칙을 무척 어렵게 생각한다. 누군가 무슨 말을 하면, 그 이야기의 원인과 말한 자의 심리 상태, 더 나아가 그 내용의 문제점을 찾아 그에게 충고하며 살아 왔기 때문이다. 마치 번데기 속에서 꾸물거리는 나비에게 뜨거운 입김을 불어 넣어야만 된다고 생각했던 저자와 같은 마음인 것이다.
저자에게 모임의 규칙을 들은 참석자 한명이 이렇게 묻는다. “그러면 앞으로 (이 모임에서) 서로에게 할 수 있는 일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당신은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일한 방법을 배제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내 안의 느낌과 감정보다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갖고, 그들에게 무엇인가 영향을 주고자 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그러나 막상 자신이 괴롭고 우울해지면 우리는 그 이유를 몰라 당황한다. 항상 상대방을 보기만 했지, 자신 속은 한 번도 들여다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날씨 탓을 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은 주위사람을 원망할 뿐이다. 그리고 혼자서 마음의 불편함을 누르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괜찮아. 다 좋아질 거야."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는 게 있다. 자신의 우울함은 외부의 문제가 아닌 자기 내면의 문제였다는 것을.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이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고, 가고 싶은 길은 따로 있지만 그 길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바로 그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분리된 삶, 즉 외부세상에서의 모습과 내면의 모습이 다른 삶만큼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은 없다고 한다.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모습을 간직한 채, 그것과는 다른 이질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치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영혼, 즉 내면의 교사의 말을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내 자신이자 내 안에서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와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을 분명히 알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내면의 교사, 즉 자신 안에 내재한 영혼을 어떻게 느끼고, 이를 키울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영혼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진실한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한다. 충고나 훈계에 익숙한 현 세상과는 달리, 서로가 서로의 영혼을 느낄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조성해 주는 자발적인 모임이다.
책을 읽다 보면 남들에게 훈계하고 충고하며 으쓱했던 나의 지난 날이 떠오른다. 당시는 무엇인가 그들에게 도움을 줬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 반대일 수도 있었다는 걱정과 함께. 무언인가 충고하고 권유하는 것보다 상대방이 자신의 영혼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그의 말에 공감하는 자세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혹시 내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마음 자체도 내 생각을 남에게 권유하고 충고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은 아닌지 내 자신을 한번 되 돌아보게 해 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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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수업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 책 표지에 편안함을 느끼며 책을 펼쳤다. 내용도 이야기만 없을뿐 그런 분위기였다. 인생수업도 이야기때문에 좀더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는데, 이 책은 그러지 못해 아쉬워다. 적어도 나에겐 그리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었고, 이야기마저 없으니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온전한 삶으로의 여행이 궁금했기에 열심히 읽어 나갔고, 많은 것을 배웠다. 책을 읽는 시간이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음을..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읽고 난 후 알게되었다.
처음엔 자신의 겉과 속을 다르게 행동하지 말라는 것인줄만 알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을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처음 사회로 나와 그것 때문에 너무 힘들었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그러나 그런 뜻이 아니라 정말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며 살라는 말이었다. (정말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며 산다면 겉과 속을 다르게 행동할 이유도 없어지겠지만...) 선생님도 학생들을 사랑하는 선생님처럼 자신이 맡은 역할에 마음을 다 하는것, 그것이 온전한 삶이고 행복하게 살수있는 길이라고... 어쩌면 그것은 초심을 잃지않고 항상 생각하며 사는 삶이 아닐까 한다.
지은이는 분리되지 않은 삶을 살라고 거듭 강조한다.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이 잘 알고 있으며, 사람들이 마음의 병이들고 심지어 그것조차 알지 못하는것은 거짓된 삶 때문이라고 말한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과 두려움등 여러가지 이유로 속마음과 달리 행동하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신뢰의 서클을 통해 함께 홀로됨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찾아 여행하고 나면 자신이 정말 원하던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것을 실천하면 된다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뢰의 서클에서는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침묵과 열린 질문으로 도와주되 절대 자신의 의견이 들어간 질문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진정한 자신 내면을 여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모임이 신뢰의 서클이다.
내가 신뢰의 서클을 할 수는 없을것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 물어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스스로 묻고 물어 찾아야한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답이다. 사실 그동안 누가 결정해주길..도와주길 얼마나 바랬는지 모른다. 그것은 아마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후회하게 될까봐, 자신이 없어서, 내 탓이 아니라고 피하기 위해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은 나의 잘못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고민을 하고 있을때 그 사람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도와주지 못하고 나의 의견을 이야기하며 그 사람을 진정으로 돕지 못한것에 반성한다. 결정은 스스로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나의 의견을 이야기해 그 사람의 내면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만들었을것이 분명하다. 내가 그러했듯이... 쉽진 않겠지만 앞으로 노력해야겠다. 내가 온전한 삶으로 여행하기위해.. 다른 사람이 온전한 삶으로 여행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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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이었을까 졸업 선물로 친구가 파커의 "삶이 내게 말을 걸어 올 때"라는 책을 사주었다. 철학자적이며 온유한 그의 글이 좋아서 여러번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07년 여름 그의 책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온전한 삶으로의 여행" 제목만으로도 그의 저서라는 느낌이 풍겨져 나왔다.
온전한 삶이란 어떤 것일까? 태어날 때의 온전함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분리됨이라는 이름으로 그 형체를 잃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온전함을 잃어가면서 부터 세상 살이는 고달퍼 지고 상처를 주고 받으며 살아가게 마련이다. 그런 세파에 시들인 현대인들에게 파커는 이야기 한다. 세상에 태어날 때 가졌던 온전함을 회복하라는 메세지가 바로 그것이다.
온전함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서로의 발전을 바라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돕기 위해 만든 모임인 신뢰의 서클과 함께 있되 홀로되는 방법을 배우는 것, 그리고 관련이 없어보이는 웃음과 침묵을 통해 회복하는 것이다.
조용하고 은은하게 들려오는 그의 언어는 바쁘고 분주한 삶을 되돌아 보게 하였다. 바삐 걷고, 돌아볼 틈 없이 바쁘게 앞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삶 속에는 여기저기 상처받은 마음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치유할 시간도 없이 바쁘게 앞만 보며 달려갔다. 온전한 삶을 회복하기 위해 가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자아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해준 시간이 고맙다.
분리된 삶은 자신이 한 번도 참자아로 살지 못했다는 슬픔으로 끝난다. 그러나 온전한 삶은 언제나 우리를 최후에 웃음 짓게 만든다.(p 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