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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조영남"이라는 이름 석자는 이 책을 선택하는데 있어 주저하게 했던 요인이었다. 빨간색과 노란색의 강렬한 콘트라스트로 적힌 선정적인 제목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이 조영남에 대한 믿음을 상쇄시키지 못했다면 이런 리뷰 또한 쓰지 못했으리라. 나에게 조영남은 그저 <체험, 삶의 현장>의 오버하는 MC이거나 여색밝히고 고집스레 검은 뿔테를 고집하는, <화개장터>란 곡으로 십수년동안 무위도식하며 TV에 나오는 사람일 뿐이었으니까. 그런 사람이 현대미술에 대해 이야기한다고하니 지레 겁부터 났다. 이건 마치 "한창헌"이라는 사람이 한국 인디 연대기에 대해 씨부리는 것과 마찬가지라 생각했으니까. 거기에 조영남이 강의하는 현대미술소개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끽해야 현대미술에 대한 조영남의 단상들을 기록해놓은 에세이집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커피숍에서 모카 하나 시켜두고 쉽게 쉽게 읽을 수 있는 그런 책. 훈련소 시절 무료한 휴식시간을 때우며 읽던 <좋은 생각> 정도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좋겠다라고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왠걸, 이 책은 조영남이 소화한 현대미술에 대한 감상의 배설물을 기록한 이른바 "현대미술에 대한 입문서 내지는 개론서"에 가까웠다. 어떤 책으로 현대미술을 접한다치더라도 작가의 일방적인 관점을 통해 그것을 보게 되리라는 것은 의심하지 못할 사실이다. 미술과 예술을 대하는, 관람하는, 혹은 소화하는 방법의 정도는 없을 분더러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곧이 곧대로 왜곡 하나 없이 전달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때문에 단지 <체험, 삶의 현장>의 부산한 MC가 필터링한 관점으로 현대미술을 첫경험한다 생각하니 조금 아찔했다. 그러나 그건 기우에 불과했던 것 같다. 뿔테 아자씨는 그저 한 부분을 긁어줬을 뿐이었으니까. 일단 이 책은 쉽다. 초등학생이 읽어도 이해할 만한 수준의 문장력으로 책이 쓰여졌다. 화려한 수사로 도배되거나 "~의, ~으로써"의 번역체가 남발하는 어려운 책과는 담을 쌓는다. 읽다 보면 검은 뿔테 아자씨가 옆에서 이야기해주는 듯한 느낌이다. 이는 일반책에서 경험하기 힘든 것으로, 차라리 이글루스의 블로그에서 찾아보기 쉬운, 쉬운 글쓰기다. 애초에 완벽한 정보나 딱딱한 전개를 바라지 않았기에 쓸데없는 반복 등은 눈감아줄만 하다. "조영남은 현대미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듯 술술 써내려가면서, 미술가로서 자신의 경험을 살포시 얹어놓는다. 고갱, 세잔, 고흐, 뒤샹, 백남준 등에 자신의 이야기를 슬며시 끼워넣는다. 이런 부분이 나오면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했는데, "이 책은 조영남이 썼다!"를 외치기라도 하듯이 책의 전개와는 상관없는 부분에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와 그에 관한 사진을 실어 놓았기 때문이다. 뭐 이 정도는 애교로 봐줄만하다. 책이 보기가 쉽고, 그림에 대한 설명도 자세했으며 무엇보다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와 관심도가 이 책으로 인해 높아졌기 때문이다. "미술가 조영남"에 대한 소개는 그저 부록이라 생각하면 좋다. ps) Green Day의 성공적인 재기작 타이틀곡 "American Idiot"이 조영남이 부른 "도시여, 안녕"이란 곡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는 이미 유명해졌는데, 새삼 다시 듣고 싶어 찾아봤다. http://bloody50.egloos.com/1404706 이 분의 블로그에 음원과 함께 재미있는 합성이미지도 있으니 한번 체크해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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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조영남씨가 이전과는 다르게 보인다. 노래를 하는 사람이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리고 그것 때문에 그를 특별히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그가 쓴 글을 읽으면서 내가 갖고 있던 그에 대한 인상을 바꾸었다. 그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다.
어떤 한 분야에 대해 글을 쓸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그게 더욱이 책 한 권의 분량이 될 정도가 되려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원고지 10장의 글을 쓰려고 해도 얼마나 많은 정보와 사색과 정리하는 힘이 필요한데, 책이라니, 그것도 본인의 말처럼 독학으로 배운 미술에 관한 책이라니. 존경스럽다라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났다. (나는 글에 맹목적으로 빠지는 편이기는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현대 미술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를 알아냈다. 그것은 낱말에 있었다. 낱말을 모르니, 작가의 이름을 모르니, 낱말들의 뜻과 그들 사이의 관계를 모르니, 들어도 보아도 끝내 내 것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시인의 이름과 시의 제목, 소설가의 이름과 소설의 제목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문학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깊어질 수 있는가를 비추어 볼 때, 내가 미술에 대해 모르는 이유는 작가의 말처럼 내가 배우려고 하지 않았던 탓, 바로 그 탓밖에 없었다.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나처럼 정말 현대 미술에 대해 깜깜한 사람들에게는 눈을 뜨게 해 주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딱 눈만 뜨게 해 주는 책이다. 이 책을 다 읽는다고 현대미술에 대해 갑자기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된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술가의 이름도 좀 외우고, 그가 남긴 작품 이름도 좀 외우고, 작품이 가진 경향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배경이나 특징을 좀 외워 주고, 이왕이면 미술관에 가서 직접 그림이나 전시된 작품들을 보면서 외운 내용들을 되새겨 보기도 하고, 더러는 따라서 그려 보기도 해야지만, 그래야만 한 걸음 현대 미술 세계로 들어설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한다. 시인과 소설가의 이름만 외운다고 그들이 쓴 시와 소설을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읽고 쓰고 직접 글로 지어 보아야만 하는 것처럼.
그래도 내내 흥미있게 읽었다. 정말 조영남씨가 쓴 글일까 끝없이 의심도 해 가면서, 설마 이 글을 누가 대신 써 주었을까 그럴 리는 없겠지 혼자 중얼거리면서, 괜히 조영남씨가 가진 재능을 부러워도 했다가 질투도 했다가 하면서, 정말 인생을 풍요롭게 살고 계시는 분이라는 생각까지.
미술 전문가들이 쓴 책보다 훨씬 빠르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을 이 책의 강점으로 말하고 싶다. 글 속에서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면서 자신만만하게 보여주는 작가의 태도까지 마음에 들었다. 그는 한낱 노래하고 그림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글을 쓰는 예술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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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아저씨의 책이다. 나름 celebrity(?)의 세상에 대한 철학을 본 다는것은 재밌는 일이다. 제목도 직설적이다.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이라니. 고상하진 않다. 뭐, 조영남 아저씨는 방송중에 코도 후비니 고상한 사람은 아닌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이 더 맘에 들었는지도. 고상하지 않은 사람이 쓴 미술책이어서. 나는 고상하지 않게 똑똑한 사람이 좋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말도 안되는 오류인건 알지만, 고상함은 왠지 지루하고 재미없게 느껴진다.
어렵지 않게, 경쾌한 구어체의 문장으로 백년 남짓한 현대미술의 역사를 설명해주고 있는 책이다. 복잡하고 난해한 현대 미술을 직관적이고 감성적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부담없이 읽기에 좋았다. 이 책에 나온 많은 그림 중에 내가 가장 좋았던 것은 아래 그림이다.
만 레이의 '천문대의 시간 : 연인들'이다. 조영남 아저씨는 이 그림을 갖고 싶다고 했고 나도 이 그림이 갖고 싶다. 두툼하고 섹시한 입술이 하늘에 둥둥 떠 있다. 탐미주의자가 그린 그림 그림같다. 온 세상에 예술을 가득차게 하라는 메세지를 말하고 싶었던것일지도 모른다. 저 무섭게 섹시한 입술에서 노래가 흘러나오고, 그 노래가 온 세상을 가득 채울것 같은 기분이다. 작년,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본 마르크 샤갈의 아래 그림과 같은 느낌.
삼십년 정도 살아본 결과, 인생은 탐미주의적 세계관으로 살아 가기엔 너무 팍팍한 곳이다. 돈을 벌어야 하며, 그 돈으로 나에게 유익한 물건들을 교환해야 한다. 그리고 그 교환물의 사회적 가치가 종종 나의 경제적 위상을 설명해 준다. 따라서 예술의 아름다움으로 가득찬 세상을 둥둥 떠다니는 저 여자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그림을 보고 있는 그 순간에는, 인생을 열열하게 예찬하게 된다. 인생은 무상하게 짧고 찬란하다는 감상에(생각이라기 보다는 감상) 젖게 되는것이다.
'천문대의 시간 : 연인들'이다를 내 방이나 우리집 거실에 걸어놓고 싶다. 모사품이라도... 볼때마다 저 그림속의 산에 올라가고, 두터운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인생 예찬 song을 듣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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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이다. 우리는 그 무지함 때문에 현대미술 또는 그냥 미술에 열등감 내지는 컴플렉스까지 갖고 살았다. 어쩌다 한 번 가게 되는 미술 전시회는 호기심으로 입구에 들어가 지루함으로 중간을 지나고, 나왔다는 해방감으로 출구를 나선다. 대체 이런 것들이 무슨 의미를 가졌을까? 알아먹지 못하는 저 짓이겨진 물감 속에 어떤 해석이 담겨있을까? 꼬불꼬불한 아랍어를 몰라도 그냥 뭔 말이겠지 넘기겠지만, 미술을 풀어야 하는 對子로서 앞에선 내가 그의 언어를 모르면 너무나 난처하고 무식한 티를 감춰야 하기 급급했다.
조영남은 TV에서 보는 것처럼 그는 참 꾸밈이 없는 것 같다. 굳이 아는 체 하지 않으며 고상한 척 하지 않는다. 모르면 모른다, 알면 안다고 솔직하고 담백하게 이야기 한다. '현대미술도 결국 보이는 게 전부다' 라는 간결한 한 마디로 축약될 만큼(물론 그 역사를 살짝 안 다면 보이는 게 좀 더 많긴 하다)우리의 열등감이 현대미술에 붙여버린 허상과 허울을 싹 벗겨버렸다.
콧수염 만지작 거리면서 빵모자를 쓴 점잖은 미술씨가 사실 그도 화장실에서 똥누는 존재라고 발각된 것이다.
명품족이 가장 선호하는 L과 V가 겹쳐진 루이비통이나 통조림을 그려놓고 예술이라고 하고 팔아먹는 팝아트나 결국 우리는 기호를 소비하고, 우리의 이야기를 소비하고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이였다.
꼭 피카소와 고흐는 훌륭하고, 화가 김모씨는 별로다 라는 공식은 인간의 상대적인 가치, 지금 선호하는 가치일 뿐이다. 먼훗날 무명화가 김모씨가 인류최고의 화가가 될지 모를 일이다. 그게 예술이니까 말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덮고서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미술 열등감을 벗어서 옌장 존나 시원하다~ 허허허~" 삼각형 하나를 그려놓고 이것이 산 풍경이고, 사각형 하나를 그려놓고 이것이 집 모양이라니. 현대미술은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융통성 없는 마르크스 사상에 입각한 사실주의 예술이론가들한테 세잔은 제일 먼저 때려눕혀야 하는 놈이었다. 문학도 다를 바 없어서 이광수 식의 사실주의 문학이 판을 치던 시대에 혜성처럼 등장한 시인 이상의 괴상망측한 현대시 '오감도'는 당시만 해도 퇴폐, 방종, 사악의 샘플이었다. 그래서 몰매 맞고, 매도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세월은 무심치 않다. 세월이 약이 되어 비난은 받은 만큼 찬사를 받게 된다. 비난이 찬란한 빛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 p. 90
현대미술은 내가 그렇다면 그런것 현대미술에는 뭐하나 확정된 논리가 없다. 너무나 광범위하고 설명하기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 p. 91
현대미술로 접어들면서 아름답게 그려진 그림은 유치한 그림, 격조 낮은 그림, 싸구려 상업적인 그림으로 판정이 나버렸다. 누구도 감히 아름답게 그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림은 점점 아름답지 않게 그려졌다. 추하게 보일수록 점수를 많이 땄기 때문이다. 추한 그림을 예술적으로 포장하려니 미술 평론은 점점 억지스러워졌고 점점 알아먹을 수 없는 내용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 p. 126
뒤샹은 해명서를 제출한다. 멍청이가 그 변기통 조각을 실제로 만들었느냐 안 만들었느냐, 실제로 똥오줌이 묻어서 독한 냄새가 나느냐 안 나느냐, 똥오줌 냄새도 작품에 포함되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멍청이가 변기통을 보고 그것을 작품으로 인정했느냐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다. 멍청이의 선택, 즉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변기통을 조각으로 선택해서 예술의 자리에 올려놓는 행위가 중요한 것이다. 여기서부터 온통 역설과 해학, 패러독스, 모순의 잔치판이 벌어진다. 변기를 변기로밖에 못 보는 놈은 전부 얼간이다. 변기를 솟아오르는 샘의 긴으으로 보지 못하고 오로지 오물을 밑으로 내려보내는 것만으로만 믿는 인간들은 전부 저급한 멍청이다. 뒤샹이 말하려고 했던 것은 모든 것이 위대하고 모든 것이 위대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좋은 미술, 나쁜 미술이 따로 없고 스타가 꼭 스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런 주장을 대변시키기 위해 변기통을 자기의 조각 작품으로 출품했던 것이다. 기존의 미술계에 온통 똥오줌을 지려버린 셈이었다. 그 후 뒤샹은 변기통 하나로 일약 세잔과 피카소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는 미술 탐구생의 태반은 뒤샹을 현대미술의 창시자로 믿고 따르고 있다. - p. 170
미궁에 빠져드는 걸 자초하다보니 다다이즘이나 미래파가 도달한 곳은 아주 자연스럽게도 초현실주의라는 이름의 새로운 동네였다. 초현실주의는 다다주의나 미래파가 만취한 상태라고 보면 틀림없다. 기존의 경직된 미술을 파괴하는 데에 관심을 두었던 다다이즘이나 기존의 미술 기법을 파괴하는 데 열을 올렸던 미래파에 비해 초현실주의는 한술 더 떠서 아예 현실의 벽을 무너뜨리면서 저 너머에 있는 무의식의 세계에까지 관심을 두었다. 그들은 고흐나 피카소의 그림까지도 너무나 과학적이고 너무나 합리적이어서 최상의 예술로 인정할 수 없다며 아예 무아의 세계, 무의식의 정신세계만이 예술가가 추구할 만한 최상의 세계라고 믿었다. 고흐나 피카소의 그림만이 최고의 현대미술이라고 믿는 기존의 지성과 이성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학적인 면보다는 시적인 면을 강조한 것이다. 역사가 면면히 이어져왔듯이 초현실주의와는 아무 연관도 없어 보이는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나 팝아트 같은 새로운 유파가 속속 등장하는 한편 문학이나 철학 사조와 미술이 비빔밥처럼 섞이면서 개념미술이나 해체주의 미술 같은 최첨단 유파를 계속해서 탄생시켜 나간다. - p. 189 - 191
뉴욕 아머리 전시회는 두 가지 큰일을 해냈다. 첫째, 특수층만 상대하던 미술 전시회에 평생 미술 구경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졌던 일반 사람을 접근시켜서 미술을 보통 사람들도 사고 팔 수 있는 백화점의 물건처럼 상업화시킨 것이다. 두 번째 큰일은 소위 빵모자 쓰고 파이프 담배 피우는 폼생폼사의 아티스트들을 꿈만 꾸는 가난뱅이로 끌어내렸다는 것이다. 최소한 먹고 살기 위해서는 치고 받고 싸워야 하는, 어쨋거나 남보다 그림을 잘 그려야 한 점이라도 더 팔리는 미술의 화개장터를 만들어버린 것이다. - p. 197
"추상은 추상이되 그 추상에 역동적인 심리의 표현을 가미시키는 것이다." 추상표현주의를 더 이상 잘 표현할 수가 없다. 우선 추상은 일정한 형태가 없는 것을 말한다. 눈으로 봐서 뭐가 뭔지 알아먹을 수 없는 그림은 일단 추상화에 속한다. 프랑스 쪽에서 말하는 Informel이나 Abstarct나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럼 표현주의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림 자연주의나 눈에 보이는 광경을 작가가 본 인상대로 그려낸 인상주의에 불만을 품고 그렇게 그림이 너무 안이하고 쾌적하고 심심하다, 자연이나 인간의 성질이나 심술궂음까지도 표현해낼 수 잇어야 한다며 고흐나 뭉크가 인간과 자연의 내면을 강력하게 표현해내면서 표현주의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실제로 뭉크의 그 유명한 '절규'나 고흐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 같은 그림을 보면 인간과 자연의 포악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림이 점점 감정적이고 심리적으로 옮겨갔다는 의미다. 여기서 추상표현주의는 말 그대로 추상과 표현주의가 합쳐졌다는 얘기다. - p.
현대미술의 세 번째 꺾임. 고전미술과 단절하면서 관람객이 스스로 생각을 하게끔 그림을 그린 마네, 세잔, 피카소의 출현이 첫 번재 꺾임이었고 1900년대 초에 뒤샹이 어느 회사에서 만든 제품인지도 모르는 변기통을 떼어다가 전시장에 올려놓고 시치미를 뚝 뗀 사건을 두 번째 꺾임이라고 이야기했다. 이제 세 번째 꺾임,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영국에서 시작되어 미국으로 건너온 Pop Art다.
팝아트의 배경은 무엇인가 뉴욕 팝아트의 배후세력은 당연히 '다다'다. 다다이즘이다. 다다와 팝아트는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상 DNA구조는 독같다. 다다의 정신을 이해하면 팝아트를 이해한 것이나 다름없다. 뉴욕미술의 개업품목은 다다이즘이었고 다다이즘은 곧 팝아트로 흡수되었다. 뒤샹이나 피카비아가 변기통이나 철물점 설계도면 따위를 자신들의 작품이라고 전시한 것은 고상하지만 결국 따분하기만한 과거의 예술정신에 반기를 든 것이었다. 그들 다다는 과감하게 문제를 제시했을 분 아니라 이미 그 뱃속에 이념적 Neo-dada, 즉 Pop Art를 잉태하고 있엇다. - p. 227
1960년대 이후 다다이즘과 추상표현주의 그리고 팝아트까지, 인간의 감정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시끌벅적한 감정놀이를 한다고 난리법석을 치는 것에 질린 일군의 젊은이들 사이에 반동으로 생겨난 미술 경향이 바로 Minimalism이었다. 밑그림을 그리고 구상하고 거기다 색을 얹어서 두껍고 얇게 색을 칠하는 일련의 전통적 짓거리는 괜한 억지 감동을 끌어내려는 수작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몇몇 반항아들은 관객의 감동까지도 절제를 시켜야 한다, 작품과 관객 사이에 왜 꼭 감동이 끼어들어야만 하느냐, 감동을 구걸하지 말자는 주장을 했다. - p. 2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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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에 대해 간단히 쓰여져 있어 비전공자인 나에게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쉽게 쓴 탓일까.. 중간 중간에 넘나드는 비속어와 작가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어감은 내게 비호감이었다. 대신 대중과의 거리감을 줄이기 위한 효과라고 생각한다.
처음 현대미술을 격는 사람이라면 입문 차원에서 읽어 봄직하다.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을 찾기엔 너무 쉽게 쓰여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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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란 고등 사기꾼 노름이다 - 백남준
서두에 시작하는 저자의 문제의식은 그리 현학적이지도 않고 쉬운 언어로 씌어있지만, 나름대로 미술애호가임을 자처하는 나부터도 예전부터 품고있던 의문을 솔직하고 통쾌한 형태로 표현한 셈이다. 그리고 문체가 너무 쉽다. 그저 술술 읽혀내려간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현대미술의 흐름에 관한 명쾌하고 직관적인 해설이 돋보인다. 쉽다는 것은, 다른 예술서적과 달리 난해한 용어가 없다는 뜻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평범한 내가 읽기에 전혀 무리가 없다. 바로 이런 책이 있었으면 했던 그런 책이다. 현대미술의 시초는 마네로부터 시작되어 피카소, 뒤샹을 이어 오늘에 이르며, 우리가 배출한 백남준의 위대성을 찬양한 뒤, 파리-뉴욕을 이어 서울이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란, 대담한 예언을 끝으로 마무리하고있다. 미술이란 과학과는 다르다. 합리적 논증과 체계적 이론을 통해 사실을 규명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과학이라면, 미술은 인간의 영혼을 표현하는 세상이다. 정답이 없다. 비논리적, 비체계적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반논리적, 반합리성을 추구하는 세계가 바로 미술이다. 그럼 그게 무슨 가치가 있는가? 바로 미술은 인간의 영혼을 다루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다. 더군다나 그 세계에서도 오랜 역사와 경로를 통해 남겨진 치열한 발자취가 있고, 그 중심이 오늘날 미국 뉴욕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이 책은 보여준다. 이 책은 마치 성경과 닮은 데가 있다. 그것은 바로 초보자에 대한 태도이다. 미술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오리엔테이션 하지 않는다. 곧바로 미술 그 자체의 논리, 역사로 치닫는다. 성경도 그렇지않은가?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논증으로 시작하지않는다. 창세기 1장부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바로 달려든다. 그러나 둘 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 위대한 미술과 미술가를 막무가내로 찬양하고, 선언하고, 주장하며 독단적으로 써내려가지만, 사실을 내 마음 속에 이미 그 소리를 듣고싶어하는 필요(need) 가 있었기 때문에, 400페이지가 넘는 책을 단숨에 읽어냈다. 우리 삶에 미술이 왜 필요한가하는 문제는 책 말미에 가서야 겨우 희미하게 느껴질수 있을 정도로 언급했을 뿐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는 동안에 '재미있다', '흥미진진하다'라는 마음이 나를 채운 그것만으로 한 권 사서 읽을 만한 값어치를 다했다고 여겨진다. 아마 값비싼 현대미술 한 점 한 점 마다 그런 가치가 다~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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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낙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작가인지라, 그의 책을 읽기까지는 약간의 고민이 필요했다... 그래도 그가 이야기하는 현대 미술이란 관연 무엇인지 알고 싶었고 그 결과 이 책을 집어들게 된 것 같다... 조금은 의외라고 해야할까? 이 책에서 이런 많은 정보와 이야기를 얻을 수 있을줄은... 그렇게 어렵지 않아 일단 마음에도 들었고... 여러모로 재미있게 읽었던 책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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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책을 읽든.. 정말 잘나가시는 분들의 책들을 너무 어렵게? 종종 접할때가 있다.
미학관련 책을 읽으면서 재밌는 미술을 왜 이렇게 재미없게 어렵게 아니면 나만? 그런건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하면서 나의 짧은 지식을 한탄하곤했었다.
이번 조용남씨의 미학개념까진 아니더라도 현대미술의 전반적인 흐름을 알 수 있었던 좋은 계기가 될만한 책인듯하다..
전시회를 보곤할때 정말 - -난감한적이 한두번이 아닌지라 나름 책을 섭렵하며 전시된 그림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쉽진않았다..
좀 더 그림을 쉽게 이해하는 방법은 없을까.. 란생각에 너무 깊게 생각하는건지.하는 생각에. 전시관을 허탈하게 나오곤 했었는데....
우연히 도서관에 타이틀만 보고..딱 이거다 싶어서 기분좋게 집으로 와서 책을 자세히 펼친 순간 --조영남 아저씨의. 책이더라..;; 순간당황..;; 쩝..;;
음.. 뭐 어찌되었든간에.. 맘에 드는 책이여서 읽어내려가는 순간.. 정말 조용남이란 사람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ㅎㅎ;; 쉬운문체에 한번 더..어려움없이 읽어내려갈 수 있어서 좋았다.
미술 전공자가 아닌 나로선 전체적인 현대미술의 전체적인 흐름을 알게되었고, 조영남씨의 주관적이고 직관적인 미술세계를 접할 수 있는 재밌는 책인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