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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을 낭만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음인지 쉽게 배낭 속으로 책을 집어 넣었다. 혼자 떠나는 여행에 가벼운 수필류의 책은 좋은 동반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가볍게 읽혀질 줄 알았다. 그러나 김훈의 ‘자전거 여행’은 낭만적인 제목과는 다르게 책은 가볍지 않았다. 소설 속에서의 김훈의 문체는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았는데 에세이집인 자전거 여행도 마찬가지다. “졸다가, 보다가!”를 반복하기 때문인지 책은 자전거처럼 가볍고 경쾌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책보다는 오히려 창밖으로 눈이 더 많이 가지만 호남선은 언제나 황량한 벌판뿐이고 눈에 보이는 집들은 아직도 가난의 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훈의 눈에도 민중의 가난이 제일 먼저 눈에 보였나보다. 책을 펼치자마자 김훈은 인간이기에 짊어지고 가야 할 고단한 삶을 이렇게 묘사한다. ‘사람은 새처럼 옮겨 다니며 살 수가 없으므로 이 기진맥진한 강가에서 또 봄을 맞는다. 살아갈수록 풀리고 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은 점점 더 고단하고 쓸쓸해진다. 늙은 말이 무거운 짐을 싣고 네 발로 서지 못하고 무릎걸음으로 엉기는 것 같다. 달래와 냉이는 그렇고 쑥된 장국은 또 어떤가? 쑥은 그야말로 ‘겨우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것들은 여리고 애달프다. 이 여린 것들이 언 땅을 뚫고 가장 먼저 이 세상에 엽록소를 내민다.‘ (36-37쪽) 때론 민중들의 삶은 달래와 냉이와 같이 ‘겨우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사연은 우리를 눈물짓게 하고 분노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는 것은 그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엽록소를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쉽게 잊어버리는 것이다. ‘칼의 노래’ 첫 페이지에서 김훈은 이렇게 말한다.
![]() 젊었을 때의 여행은 빨리 가는 것이 목적이었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파워북로거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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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주는 휴식은 자전거와도 닮았다. 학교 정문 앞에서 대여한 자전거를 끌고 운동장으로 들어선 11살 소녀는 시골을 떠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촌뜨기였다. 덜컹거리는 경운기만 보다 난생 처음으로 제 손을 탄 핸들과 제 발의 리듬으로 굴러가는 바퀴가 신기하기만 했다. 중심 잡는데 꼬박 한 시간이 걸린 끝에 소녀는 위태롭게 굴러갔다. 우주만한 운동장을... 그 힘겨웠던 한 시간은 촌뜨기가 자연에서 멀어져 도시로 와, 훗날 간간히 스치는 몸의 기억 안에서 되살아나곤 했다.
나는 엎어지면 코 닿을 때도 못 찾아가는 길치다. 길 위에 버려진 순간 엄습하는 극도의 초조감과 불안감은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상실한 사람이 나서는 첫 외출의 그것과도 같다. 그러니 여행은, 특히 나 홀로 여행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그 조짐은 예닐곱 살 때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늘 길눈이 밝은 동생을 꼬드겨 마치 심 봉사가 앞서가는 딸 청이의 지팡이를 잡고 따라가듯 동생의 옷자락을 의지해야만 했으니까. 여행을 떠나고픈 해묵은 갈증도 이제 포화상태다. 답답하다. 꾸준히 굴려야만 하는 이 삶이. 누군가에게 대신 좀 굴려달라고 매달리고 의지해야하는 나이를 훨씬 지난 작금으로선 더더욱. 그럴 땐 방법이 없다. 가이드가 없인 어느 한 곳 맘 놓고 가볼 수 없다면 여행에세이라도 읽어볼밖에. 그러나 뜻밖에도 ‘-라도’ 라는 조사가 얼마나 민망하고 조악한 발탁이었는지는 [자전거 여행]의 첫 페이지를 음미하면서부터 비롯되었다. 그야말로 눈 뜬 봉사 주제에 표현까지 저렴한 절박을 토했던 것이다. 이내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의 도가니에 함몰되었다.
무등산에 자주 올랐다던 친구와 함께 소쇄원이란 곳을 가본 적이 있다. 두어 가지 이유로 담양에 담긴 남다른 추억에 더해진 소쇄원의 이미지는 조선시대 청상과부의 절개와 비슷한 거였다. 대나무가 쭉쭉 뻗은 설익은 어둠 속 풍경이 왜 그렇게도 슬퍼 보이던지, 어디선가 처연한 대금소리까지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난 우울하게 들떠 있었다. 도대체 왜 그런 느낌을 받았을까? 어쩌면 늦가을의 다소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나선 몇 개월만의 나들이 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미처 찾지 못한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귀가한 직후, 인터넷검색으로 소쇄원을 찾아보았다. 1530년(중종 25) 조광조의 제자 소쇄 양산보(梁山甫:1503∼1557)가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南面) 지곡리(芝谷里)에 건립한 원우(園宇)라고 요약된 글을 핸드폰으로 사진까지 찍어 저장해두고 생각날 때마다 들여다보곤 했는데, 이 책에서 만난 소쇄원은 왠지 조금은 다른 느낌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김훈 식 대숲은 늘 꿈속처럼 어둑어둑하다 - 대나무의 삶은 두꺼워지는 삶이 아니라 단단해지는 삶이다. 더 이상은 자라지 않고 두꺼워지지도 않고, 다만 단단해진다. 대나무는 인고의 세월을 기록하지 않고,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대나무는 나이테가 없다.(46쪽) 마침내 고매한 한 줄기 바람의 염殮을 듣고 만 기분, 그것은 번뇌의 대가이자 교훈이었다.
소통이 곧 변혁이고 쇄신이며, 소통만이 닫힌 삶의 질곡을 넘어서는 대안이라는 생각을 그는 강의 흐름을 통해서 체계화한다.(295쪽)
전북 김제 만경에 외가가 있다. 구불텅한 흙길을 사이에 두고 1년 365일 진을 치는 논밭과 노인들의 내기 장기를 묵묵히 지켜보던 정자가 있는 곳.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던 그 누런 벼들 위를 날아다니는 날것들이 부러웠던 3년을 나는 거기서 자랐다. 강은 외가에서 더 나가야 볼 수 있었는데, 그 시절 나에게 강은 냇물 이상의 의미를 벗어나지 못했다. 물과 비슷한 것들은 다 같아 보였으니까. 다만 물가라고 하는 건 많이 달랐다. 어린아이에게 강은 물가보다 먼 존재였던 것이다. 생명 있는 것들은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곳을 귀신같이 알고 잘도 모여든다. 물이 있는 곳에 그들이 있나니, 내 시선을 3년 동안 붙들어 맨 그들을 나 또한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입을 닫는 대신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아이의 말을 잘 알아듣고 이해해주는 건 그들밖엔 없었으니까. 갈대는 빈약한 풀이다. 바람 속으로 씨앗을 퍼뜨리는 풀은 화려한 꽃을 피우지 않는다. 그것들은 태어날 때부터 늙음을 간직한다. 그것들은 바람인 것처럼 바람에 포개진다. 그러나 그 뿌리는 완강하게도 땅에 들어붙어 있다.(69쪽) 갈대도 아이의 친구였다. 이미 오래 전의 일이지만, 가끔 바람으로부터 갈대의 소식을 전해 듣는다. ‘갈대가 흔들리는 건 니가 그리워서래...’ 지금 그 시절의 아이는 완강하게 늙어버렸다. 화려하게 피우지 못한 꽃이 애석하긴 해도 후회는 없다면서.
빛 속으로 들어가면 빛은 더 먼 곳으로 물러가는 것이어서 빛 속에선 빛을 만질 수 없었고, 태백산의 가을빛은 다만 먼 그리움으로만 반짝였다.(253쪽)
어떤 친구가 자기는 반짝이는 게 싫다고 한 적이 있다. 나도 그렇다. 덧붙여 튀고 아름다운 것들도 받잡기 어렵다. 인상파 화가들은 날씨와 시간에 따른 빛의 변화를 작품에 담았다. 숲은 빛의 율동을 기가 막히게 흡수했고 그것은 그대로 자신의 정기이자 장기가 되었다. 화가들은 신이 났다. 숲과 빛의 조화를 발견하는 기쁨에 넋을 놓고 붓을 놀렸다. 자작나무의 잎이 군데군데 빛을 마신 후의 교태는 이루 말로 다 못한다. 빛이 요란을 떨 땐 나조차 잠깐 맥을 못 추고 만다. 눈이 부시다는 건 잠깐의 환각상태에서 정신이 마비되는 걸 의미하므로 가볍다. 하지만 상록수는 다르다. 고고하게 곁을 두고 홀로 고고하게 서서 좀 더 멀리 보고 덜 반짝인다. 사계절 내내 둔탁한 듯 서늘한 기운으로 그저 푸르게 있을 뿐이다. 대학 시절 임모화를 그리기 위해 오랫동안 소나무를 관찰했던 적이 있다. 저 뾰족뾰족한 잎을 살리는 몸통의 수고로움이 혹 마디마디 갈라터진 껍질에 투사된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괜히 울적해졌던 기억이 난다. 상록수의 숲은 짙고 깊게 푸르러서, 그 푸르름은 봄빛에 들뜨지 않는다. 숲의 푸르름은 겨울을 어려워하지 않는 엄정함으로 봄빛에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93)라고 말한 김훈 이야말로 상록수와 같은 작가다. 그리고 침엽수니 활엽수니를 다 떠나서 잎의 운명을 갈무리한 그의 말에서 나는 또 다시 흔들려야만 했다. 잎들은 태어나서 땅에 떨어질 때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바람에 흔들리면서 반짝인다.(91쪽) 흔들리니 반짝이는 걸까, 반짝이니 흔들리는 걸까. 생명의 몸부림은 어떤 형식으로든 의문투성이다.
우려먹는 차 맛과 단번에 마시는 차 맛은 천지차이다. 누구와 어디서 어떤 차를 마시느냐에 따라 추억의 색도 달라진다. 나는 계피 향을 좋아해서 전통차 중 수정과를 좋아하지만 자주 마시지는 못한다. 수정과의 달짝지근함과 은밀하게 어우러진 깔끔한 맛은 잣 두세 개로 절정을 이룬다. 비록 지금은 거무튀튀하니 색만 비슷한 블랙커피에 심신을 적시고 있는 실정이지만, 추억은 고운 장소에서 사랑하는 친구와 마셨던 수정과를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차茶의 입수에 대한 김훈의 철학을 머리동냥 해보자니 참으로 지당한 말이다. 차는 살아 있는 목구멍을 넘어가는 실존의 국물인 동시에 살 속으로 스미는 상징이다. 그래서 찻잔 속의 자유는 오직 개인의 내면에만 살아 있는, 가난하고 외롭고 고요한 소승의 자유다 - 차는 책과 다르다. 찻잔 속에는 세상을 과장하거나 증폭시키려는 마음의 충동이 없다. 차는 술과도 다르다. 책은 술과 벗을 부르지만 차는 벗을 부르지 않는다. 혼자서 마시는 차가 가장 고귀하고 여럿이 마시는 차는 귀하지 않다([동다송]). 함께 차를 마셔도 차는 나누어지지 않는다.(104~105쪽) 그렇더라도 나와 함께 수정과를 마셨던 그 벗만큼은 이견이 끼어들 리 없는 특별한 우정이리니, 그 날의 차茶가 증인이다.
‘길을 나선다’ 라는 표현은 생의 현관문이다. 싸리문이라면 훨씬 정감 있겠으나, 우리에겐 구석구석 처닫고 은폐하며 살아갈 이유만이 산재해 있기에 ‘정’을 잊은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로 나아가야하는 이유는 생이 우리를 길 위로 떠밀기 때문이다. 부딪히고 깨지고 넘어지다 일어서보면 다시 또 같은 길 위에 서 있음을 인식해도 삶은 능청을 떨며 우리의 걸음을 재촉한다. 헌데 나는 길이 두렵다. 핑계에 불과하겠지만, 너무 복잡한 도로망에 망연자실한 나의 지리감각은 진보할 가능성조차 희박해 보인다. 길을 나설 길을 알 길이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길 위를 활보할 것만 같다. 상징의 표정이 발랄하게 살아 있는 길 위를 저어가는 일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의 행복이다.(224) 그리하여 오랜 세월 자전거를 타지 못 하고 있는 길치의 표정이 자주 비에 걸리는 모양이다.
출발 전에 장비를 하나씩 점검해서 배낭에서 빼 버릴 때, 몸이 느끼는 두려움은 정직하다. 배낭이 무거워야 살 수 있지만, 배낭이 가벼워야 갈 수 있다. 그러니 이 무거움과 가벼움은 결국 같은 것인가 - 몸이 그 가벼움과 무거움, 두려움과 기쁨을 함께 짊어지고 바퀴를 굴려 오르막을 오른다.(253쪽)
자전거는 길 위에서 생을 굴린다. 흙탕길도 잘 빠진 시멘트 길도 다 같은 길, 반듯한 것이 울퉁불퉁한 것만 못 하니 어차피 생은 어지러운 길을 덜 떨어지게 걷다 뛰기를 반복하다, 어느 순간 조금은 나은 길을 발견하는 과정인 것이다. 그래서 삶의 여정에서 불필요한 과정이란 없다. 모든 내리막은 오르막의 전초전이므로. 여수 돌산도 향일암을 시작으로 남해안 경작지, 옥구 염전에서 심포리, 만경강 하구 갯벌, 화개면 쌍계사, 강원도 고성, 도산서원과 안동 하회마을, 소백산 의풍 마을, 부석사, 진도, 섬진강 마을, 여의도에서 조강까지 많은 장소를 자전거로 달렸던 작가의 여정을 어렵사리 따라갈 수 있었던 건, 봉사가 그나마 다른 감각에 집중할 수 있었던 덕택이다. 각 지역(명소)적 배경과 잘 어우러진 작가의 감상을 형상화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때때로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미지의 능력은 소통의 무게를 일깨운다. 한 권의 책으로 겨우 10일을 투자해 전국 일주를 한다는 건 독자로선 큰 광영이 아닐 수 없다. 달갑지 않은 시간을 새롭게 넘길 수 있는 도량을 갖도록 해준 작가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곧 만나게 될 2권도 기다려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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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냄새 맡으러 다니는 "자전거 여행"
언제부턴가 주위에 자전거 붐이 일었다. 나라에서도 자전거타기를 장려하고 자전거 도로를 만든다고도 한다. 덕분에 바람도 쐴 겸 한강 변으로 명품 자전거하고는 거리가 먼, 평소 타던 접이식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다들 명품 자전거에 폼나는 유니폼들을 입고 쌩쌩달리는데 허리를 곧추 세우고 키낮은 접이식 빨간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다니려니 웬지 좀 쑥스럽기도 하다. 가을 하늘 아래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어찌 그리도 많은지. 평일 오후면 일하느라 바쁠 텐데 여기 모인 사람들은 정말로 자전거에 빠져 있는 사람들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대 목동 병원을 지나 안양천을 따라 나아가 안양천이 한강과 만나는 그 삼각지점의 갈림길에서 멀리 한강다리를 바라보니 제법 그럴 듯 했다. 선유도 공원에 가니 서울시에서 발행한 자전거 지도도 있다. 상당히 자세하게 나왔다. 그러나 요즘 자전거 붐에 따라 한번 자전거 여행이나 해야겠다 마음 먹고 자전거 여행의 길잡이를 생각해서 김훈의 "자전거 여행"이란 책을 읽으면 아마도 실망할 것이다. 김훈 작가가 쓴 자전거 여행에는 길라잡이 역할을 할 만한 것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지도와 교통로, 근처 유명한 명승지, 맛집 등등 소위 실생활에 쓸 만한 것들은 별로 없다. 하지만 김훈의 자전거 여행에는 보통 여행안내서에 볼 수 없는 것들이 담겨져 있다. 알 듯 말 듯한 그것을 나는 "삶의 냄새"라고 부르기로 했다.
전류리 어부 심상록(66)씨에 따르면 어선에 동력 부착이 허용된 것은 3년 전부터다. 17세에 뱃일을 시작한 심씨는 50년 가까이 이 하구에서 동력 없는 배에 노를 저어서 고기를 잡았다. 혼자서 노를 젓고 투망까지 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심씨는 지금도 물이 거친 날 새벽에는 더 일찍 일어나 2.5톤 배를 끌고 강으로 나아가 이제 어종이 말라가는 강에 그물을 던진다. (2권 47~48p) 이 글 앞에 나온 사진에서 김훈 작가는 전류리 선착장 끝에 멈춰 서서 강물을 바라 보고 있다. 제법 자전거 마니아 같은 모습으로 강물을 바라다 보면서 어느새 근처 어부에게 말을 건네고 어부가 그동안 그곳에서 살고 있던 모습을 삶의 냄새 진하게 글로 담아낸 것이다. 전류리 어부 심상록씨가 17세부터 고기를 잡기 시작한 이야기를 들으려 선착장에 쭈그리고 앉아 같이 회 한 접시 하고 있을 작가의 모습이 절로 떠오른다. 때로는 밭두렁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자꾸 캐물어서 농부에게 봄 서리와 봄볕과 흙과 풀싹이 시간의 리듬 속에서 어우러지는 사태에 대한 설명”(1권 31p)을 듣기도 한다. 아마도 새참때 늙은 농부의 아내가 갖고 온 막걸리 한 사발이라도 같이 했을 법한 기세다. 흡사 자전거로 달리는 것보다는 사람 속을 달리는 것에 더 흥미가 있는 것처럼 그의 자전거는 “느리고도 질긴” 도마령 고개를 무서움에 떨고, 헐떡이며 넘어가서도 “엄노인”을 만나 "입산"에 관해서 듣고, 죽음과 삶을 같이 연관짓던 엄노인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나간다. 고개 넘느라 힘들다고 해서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이처럼 그의 자전거는 바닥에 코를 박고 삶의 냄새를 맡고 다닌다. 전류리 강물앞에서 멈췄서서 그곳의 어부를 만나고 밭두렁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이 농부를 만난다. 마치 밭두렁에 앉아 막걸리 한 잔 같이 걸치고 음주 자전거 운전이라도 할 기세이다. 자전거 페달에 코라도 달린 마냥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사람 냄새를 맡으며 다니는 것이다.
시적인 문장과 은근한 웃음
처음 김훈 작가는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속으로 흘러 들어온다"고 썼다." 연필로 꾹꾹 눌러 썼다"는 책의 표지 글처럼 그의 글 속의 문장 하나 하나는 허투루 써진 것들이 없다. 마치 초등학생이 꾹꾹 연필을 눌러쓰다 공책에 구멍이 나기 직전까지 된 것처럼 그의 문장 하나하나는 그렇게 눌러쓰고 눌러쓰다 못해 구멍이 나려고 할 때서야 비로서 한 문장을 만들어 낸다. 자전거를 타고 그냥 길을 갈 것이지 “세상의 길들을 왜 몸속으로 흘러오게” 만들었을까. 그의 자전거는 세상의 길들을 받아들일 신통력이라도 있는 것일까. 참 오묘한 이치이면서 시적인 문장이다.
"고려나 조선 시대에 물론 러브호텔은 없었겠지만, 러브 외양간이나 러브마굿간, 러브물레방앗간, 러브밀밭, 러브보리밭이 있었다. 이 신도시에서는 비닐 커튼이 보리밭을 대신해 주고 있다." - 2권 59p -
시적인 풍류를 곁들인 문장과 문장 사이에 “내 자전거 핸들에 이 브래지어를 매달아 바람에 날리면서 경의선 도로를 달려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젊은 주인에게 가져다주고 싶다”(2권 78p)고 말한다. 마치 자전거 기어를 잔뜩 올리고 가다가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는 듯 한 느낌이 와 닿는다. 위에 나온 문장처럼 그의 유머는 그렇게 급브레이크를 닮았다. 진지하고 시적인 문장속에 갑자기 등장하는 심심한 유머 감각. 그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에도 "신도시의 비닐 커튼"과 "고려 조선시대의 보리밭"으로 대비되는 일산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설명해주고 있다. 발로 페달을 밟아 달리는 자전거 바퀴가 지나가는 길마다 남겨지는 작가의 문장 하나하나는 버릴 것도 놓칠 것도 없다. 그는 그렇게 “꾹꾹 눌러쓰며” 문장을 만들고 책을 만들어 나갔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자전거 여행"
경의선 도로를 잇는 공사가 진행 중인 파주 들에서는 1970년 미군이 지어준 재건학교의 유래에 대해서 설명을 해준다. 그 때 당시 미군 전용 술집을 비롯한 인근의 삶의 모습들이 그의 책에 그대로 담긴다. 남한산성을 지날 때는 병자호란 당시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역사의 현장을 조망해준다. "산성에 갇힌 47일 동안 조선 조정의 싸움은 거의 대부분 언어로 이루어졌다" 는 작가의 말은 전 작품인 "칼의 노래"에서도 보여주었듯 무능한 조선 조정의 모습과 함께 역사속의 허무함을 그대로 비춰준다.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 장군이 "죽음"으로 그의 운명을 완성한 모습을 보여준 것처럼 청에 끌려간 조선 선비 3명이 청에 끌려가 처형 당함으로써 "투항과 저항을 종합하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운명을 완성"하였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한편으로는 모란시장을 지나며 모란시장이 과거 예비역 육군 대령의 주도 아래 인위적으로 개설된 5일장에서 시작되었음을 친절히 설명해주기도 한다. 황석영의 "강남몽"후반부에도 나오는 광주대단지 이주민 들의 이야기가 이 모란시장과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그의 글은 앞서 이야기한 어부와 농부의 현실 속의 삶에서 파주의 재건학교와 모란시장의 유래에서 보는 가까운 과거에서 조선 조정의 남한산성 항전에 이르는 먼 과거에 이르기까지 시간을 초월한 삶을 넘나들며 각각의 삶의 냄새를 맡아서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설령 맛집을 알려주는 실용적인 가이드 북은 못될 지언정 삶의 지혜 같은 앎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자전거 여행의 여유를 지닌 "자전거 여행" 단순 가이드 북으로는 모자라겠지만 삶의 내음새를 맡으며 밭두렁에 앉아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킬 여유를 지니고 다닐 사람들은 김훈 작가의 "자전거 여행"이란 책이 필요할 것이다. 물통에, 간단한 수리도구에 간식까지 있어 허리에 매단 냅색이 무겁다 해도 그의 책 한 권 정도는 더 넣어두고 가야 자전거 여행의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란 소리를 들을지도 모를 일이다. 며칠 휴가를 얻는다면 김훈의 "자전거 여행"과 같은 여행을 하고 싶다. 실용적인 가이드 북처럼 쓱 지나가면서 명소만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전거 바퀴가 닿는 그 자취마다 사람을 만나고 사람 냄새를 맡으며 가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나 그런 여유가 일상속의 소시민인 나에게는 쉽게 올 것 같지는 않다.
하나 더, 김훈 작가의 글 못지 않게 이 책의 완성도를 더해 주고 있는 것은 곳곳에 등장하는 사진이다. 작가의 글에 뒤질쎄라 사진 한 장 한 장이 버릴 것 없는 예술의 경지이다. 도마령을 넘어가는 김훈 작가의 자전거 탄 뒷모습은 홀로 여행하는 외로움을 보여주기도 하고 고개를 넘는 고단함, 또는 힘차게 자전거 폐달 밟는 역동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갯벌의 사진에는 사라져가는 갯벌의 안타까움이 가득 담겨 있고 이승복 상과 함께 한 아이의 사진에는 아이의 천진한 맘이 그대로 녹아든다. 사진 한장 한장이 작가가 여행한 자전거의 발자취를 그대로 보여 주고, 동시에 마치 그 속내음까지 담아낸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작가의 시적인 글을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책속의 사진만 보아도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다 따라다니며 그 "사람 냄새"를 다 맡은 느낌이 들면서 책을 전부 읽은 듯한 뿌듯함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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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에 저자에 대해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훈님은 태생부터 타고난 문체가이지 아닌가 싶다. 그의 글은 처음 접하지만, 낯설지 않고, 푸근하며, 마음에 울림을 주는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문장 하나하나를 들여다 보면 실로 살아 숨쉬는 듯한데, 이런 표현력이 살아있네~~ 라고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된다. 그럼 책의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저자 김훈(金薰) - 출처 : YES24 그는 휘문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산악부에 들어가서 등산을 많이 다녔다. 인왕산 치마바위에서 바위타기를 처음 배웠다 한다. 대학은 처음에는 고려대 정외과에 진학했다.(1966년). 2학년 때 우연히 바이런과 셸리를 읽은 것이 너무 좋아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정외과에 뜻이 없어서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영시를 읽으며 영문과로 전과할 준비를 했다. 그래서 동기생들이 4학년 올라갈 때 그는 영문과 2학년생이 되었다. 영문과로 옮기고 나서 한 학년을 다니고 군대에 갔다. 제대하니까 여동생도 고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집안이 어려운 상태라 한 집안에 대학생 두 명이 있을 수는 없었다. 돈을 닥닥 긁어 보니까 한 사람 등록금이 겨우 나오길래 김훈은 "내가 보니 넌 대학을 안 다니면 인간이 못 될 것 같으니, 이 돈을 가지고 대학에 다녀라"라고 말하며 그 돈을 여동생에게 주고, 자신은 대학을 중퇴했다. 김훈 씨는 모 월간지의 인터뷰에서 문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피력하기도 했다. "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무슨 지순하고 지고한 가치가 있어 가지고 인간의 의식주 생활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현실을 관리하고 지도한다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어요. 나는 문학이란 걸 하찮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 문제가 참 많잖아요. 우선 나라를 지켜야죠, 국방! 또 밥을 먹어야 하고, 도시와 교통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애들 가르쳐야 하고, 집 없는 놈한테 집을 지어줘야 하고…. 또 이런 저런 공동체의 문제가 있잖아요. 이런 여러 문제 중에서 맨 하위에 있는 문제가 문학이라고 난 생각하는 겁니다. 문학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언어행위가 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펜을 쥔 사람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생각해 가지고 꼭대기에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데, 이게 다 미친 사람들이지요. 이건 참 위태롭고 어리석은 생각이거든요. 사실 칼을 잡은 사람은 칼이 펜보다 강하다고 얘기를 안 하잖아요. 왜냐하면 사실이 칼이 더 강하니까 말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펜 쥔 사람이 현실의 꼭대기에서 야단치고 호령할려고 하는데 이건 안 되죠. 문학은 뭐 초월적 존재로 인간을 구원한다, 이런 어리석은 언동을 하면 안 되죠. 문학이 현실 속에서의 자리가 어딘지를 알고, 문학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자기 자리에 가 있어야 하는 거죠" 그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나를 표현해 내기 위해서"이며 또 "우연하게도 내 생애의 훈련이 글 써먹게 돼 있으니까" 쓰는 것이라 한다. 그의 희망은 희망이 여러 가지 있는데 첫 번째가 음풍농월하는 것이라 한다. 또 음풍농월 하면서도 당대의 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훈이 언어로 붙잡고자 하는 세상과 삶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선상에서 밧줄을 잡아당기는 선원들이기도 하고,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있는 자기 자신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민망하게도 혹은 선정주의의 혐의를 지울 수 없게도 미인의 기준이기도 하다. 그는 현미경처럼 자신과 바깥 사물들을 관찰하고 이를 언어로 어떻게든 풀어내려고 하며, 무엇보다도 어떤 행위를 하고 그 행위를 하면서 변화하는 자신의 몸과 느낌을 메타적으로 보고 언어로 표현해낸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남진우는 그를 일러 '문장가라는 예스러운 명칭이 어색하지 않은 우리 세대의 몇 안되는 글쟁이 중의 하나'라고 평하고 있기도 하다. 1986년 『한국일보』 재직 당시 3년 동안 『한국일보』에 매주 연재한 것을 묶어 낸 『문학기행』(박래부 공저)으로 해박한 문학적 지식과 유려한 문체로 빼어난 여행 산문집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으며 한국일보에 연재하였던 독서 산문집 『내가 읽은 책과 세상』(1989) 등의 저서가 있으며 1999∼2000년 전국의 산천을 자전거로 여행하며 쓴 에세이 『자전거여행』(2000)도 생태·지리·역사를 횡과 종으로 연결한 수작으로 평가 받았다. 그의 대표 저서로는 『칼의 노래』를 꼽을 수 있다. 2001년 동인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책은 전략 전문가이자 순결한 영웅이었던 이순신 장군의 삶을 통해 이 시대 본받아야 할 리더십을 제시한다. 영웅 이순신의 드러나 있는 궤적을 다큐멘터리식으로 복원하여 현실성을 부여하되, 소설 특유의 상상력으로 이순신 1인칭 서술을 일관되게 유지하여 전투 전후의 심사, 혈육의 죽음, 여인과의 통정, 정치와 권력의 폭력성, 죽음에 대한 사유, 문(文)과 무(武)의 멀고 가까움, 밥과 몸에 대한 사유, 한 나라의 생사를 책임진 장군으로서의 고뇌 등을 드러내고 있다. 이외의 저서로 독서 에세이집 『선택과 옹호』, 여행 산문집 『풍경과 상처』,『자전거여행』,『원형의 섬 진도』, 시론집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에 대하여』,『밥벌이의 지겨움』, 장편소설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 등이 있다
김훈 에세이 자전거 여행 이글은 김훈님이 풍륜이라는 자전거를 타고 1999년 가을부터 2000년 여름까지 전국의 산천을 여행한 기행집이다. 강원도 태백산맥을 시작으로 소백, 노령, 차령산맥을 넘어 남쪽 해안선까지 가는 여정의 이야기를 생태,지리,역사라는 T자형으로 엮은 글이다.
좋은 문장들이 너무 많아 다 옮겨 적을 수는 없었다. 다만 기억에 남은 몇개의 문장만 옮겨 적어본다.
"설요는 7세기 신라의 젊은 여승이다. 그 여자의 몸의 아름다움과 시 한 줄만이 후세에 전해진다. 그 시 한 줄은 봄마다 새롭다. 이 젊은 여승의 몸은 꽃피는 봄 산의 관능을 견딜 수 없었다. 그 여자는 시 한 줄을 써 놓고 절을 떠나 속세로 내려왔다." "꽃피어 봄 마음 이리 설레니/아,이 젊음을 어찌할거나" 이 내용에 대한 풀이를 이렇게 하고 있다. "이것은 대책이 없는 생의 충동이다. 그 충돌은 위태롭고 무질서하다. 한문학자 손중섭은 이 시에 대해서 "아,한 젊음을 늙히기에 저리도 힘듦이여!"라고 썼다. 이 노래의 제목은 <세상으로 돌아가는 노래>이다. 절을 떠날 때 그 여자는 스물한 살이었다. 속세로 내려와서 그 여자는 시 쓰는 사내의 첩이 되었고, 당나라를 떠돌다가 통천에서 객사했다."
"된장과 인간은 치정 관계에 있다. 냉이된장국을 먹을 때, 된장 국물과 냉이 건더기와 인간은 삼각 치정관계이다..."
"대나무숲은 세상으로 나가는 전진기지이며 세상을 버리고 돌아오는 후방의 쓸쓸한 낙원이다. 대나무 숲은 전투적 이념의 절정이며 은둔의 맨 뒷전이 것이다."
5.18기념식이 몇일 전에 있었는데... 최근 일본에서의 망언과 일부 국내 언론에서의 잘못된 역사인식이 자꾸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에 앞서 우리나라부터 역사인식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5.18민중항쟁의 총상 피해자 이세영 씨는 용서와 화해에 대해서... 그게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 가해자들은 아무도 용서를 구하지 않았고 화해를 요청하지도 않았다. 개인의 심정으로는 만일 용서를 빌어온다면 부둥켜안고 통곡하고 싶다. 그러나 그런 일이란 없었다." 아직도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들은 많지만... 그 누구도 용서를 구한 자는 없었던거 같다. 아직 전 국민적인 공감대가 아닌 그들만의 기념식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평일 아침저녁으로 땅 밑 열차 속에서 비벼지던 몸이 휴일이면 산에서 비벼진다. 휴일의 북한산에서는 사람이 없는 코스를 으뜸으로 치고, 점심 먹을 자리를 찾을 때도 사람 없는 곳을 명당으로 여긴다. 사람들이 다들 저도 사람이면서 한사코 사람 없는 자리를 다투다가, 사람 없다는 코스로 너도나도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니 가엾은 일이다. 이래저래 비져지게 마련이다."
"시는 인공의 낙원이고 숲은 자연의 낙원이고 청학동은 관념의 낙원이지만, 한 모금의 차는 그 모든 낙원을 다 합친 낙원이다."
"겨울에는 찻잎을 주전자 바닥에 먼저 넣고 끓는 물을 붓는다. 여름에는 끓는 물을 먼저 붓고 물위에 찻잎을 띄운다. 봄,가을에는 끓는 물을 절반쯤 붓고 찻잎을 넣은 다음 그 위에 다시 물을 붓는다[다신전]"
"세계를 개조하려는 열망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무기의 꿈과 악기의 꿈은 다르지 않다."
"그의 칼은 칼로서 순결하고, 이 한없는 단순성이야말로 그의 칼의 무서움이고 그의 생애의 비극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은 펜을 쥔 자들의 엄살이거나 자기 기만이기가 십상디ㅏ. 그 말은 정치적이다. 칼을 쥔 자들은 칼이 펜보다 강하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문은 세계를 개조하는 수단으로서의 무를 동경한다고 말하는 편이 오히려 정직하다."
"마암분교 아이들 머리 뒤통수 가마에서는 햇볕 냄새가 난다. 마암분교 이야기는 한도 없고 끝도 없다. 전교생 17명인 이 작은 학교에서는 매일매일의 생활 속에서 매일매일의 새로운 이야기들이 샘솟아 오른다. 날마다 새로운 날의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있다. 삶 속에서 끝없이 이야기가 생겨난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신나는 일인가. 봄에는 봄의 이야기가 있고 아침에는 아침의 이야기가 있다. 없는 엇이 없이 모조리 다 있다. 사랑이 있고 죽음이 있고 가난과 슬픔이 있고 희망과 그리움이 있다. 세상의 악을 이해해가는 어린 영혼의 고뇌가 있고 세상을 향해 뻗어가는 성장의 설렘이 있다. 여기가 바로 세상이고, 삶의 현장이며, 삶과 배움이 어우러지는 터전이다."
책의 목차는 아래와 같고, 에세이 형식으로 각각 독립된 구성의 필체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꽃피는 해안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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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서점에서 자전거 여행이란 책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사실 난 자전거를 타지 못하기 때문에 학교 다닐때도 졸업하고나서도 친구들이나 동아리에서 하이킹을 가자고 하면 난 슬금슬금 빠져 혼자 다른 걸 하고 지낸 경우가 많아서 자전거 여행이란 제목을 보니 은근히 부럽기까지 했었다. 김훈이란 작가는 이책을 통해 처음 접했는데 이책을 읽고 난뒤 보니 이미 오래된 작가였고 많은 책들을 펴낸 사람이었다. 역사적인 부분을 건드리기도 하고 칼의 노래나 현의 노래, 근래에 남한산성까지 일반 소설과는 다른 관점에서 책을 많이 써서 이런 책을 썼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할수 없었다. 자전거 여행은 작가가 사는 서울을 지나 지인이 있는 섬진강부근과 완도, 그 아래를 돌아 강원도 산맥까지 자전거로 두루두루 돌아다닌 발자취를 글로서 펴낸 책이다. 그래서 비행기로 멀리 날아가 외국의 유적을 보고 느끼고 담아낸 다른 기행문과는 아무래도 편한 마음이 먼저 들었고 거부감없이 그냥 쉬엄쉬엄 편하게 읽어낼수 있었던 것 같다.
이책에 나오는 남도 어느 바닷가의 팥죽을 쑤어서 파는 할머니의 친근한 웃음과 섬진강가에서 만난 6학년 초이와 학교 아이들을 보면서 이렇게 커야하는데 우리 아이들이 사는 모습은 어떠한가 라는 비관성 섞이 한숨을 내쉬기도 했었다. 섬진강가에 살면서 그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고 그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김용택 시인의 모습에서 유유자적한 한가로움을 읽어낼수 있었는데 시골 아이들이지만 때묻지 않은 동심과 급식을 학년별로 퍼서 날라주고 설겆이하고 저학년 아이들의 밥을챙겨주는 6학년 아이들이 너무도 대견스러워보였다. 아이들이 급식을 대신 배식해주기 위해 학교에 가곤 하는 도시의 학부모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자전거 여행은 남도의 겨울이 지나간 그 따스한 숨결을 품고 아직 겨울이 채 가시지 않은 강원도 산골의 깊은 산 중턱을 자전거로 힘들게 휘휘 돌아서 그 숨소리가 들릴듯 한 모습을 사진으로 멋지게 담아내기까지 한다. 돈이 많이 들지 않아도 그저 볼수 있는 눈이 있고 걸어갈수 있는 두 다리만 있다면 누구든 해낼수 있는 자전거 여행이지만 그 따스한 사람의 모습들을 진솔하게 담아낼수 있는건 작가만이 할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었다. 책을 덮고 나니 그 경로를 따라 발자취를 따라서 내 두 발로 다시 밟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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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여행도 낭만적이지만 '자전거 여행' 도 한번은 꼭 해보고 싶은 여행이다. 하지만 난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자전거 하면 먼저 얼마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내가 초등학교때 아버지는 늘 자전거로 날 등교를 시키는가 하면 하교시에도 데리러 자주 학교에 오시곤 했다. 농사일을 하시다 오신 아버지의 뒤에서 떨어질까봐 아버지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고 바람을 느끼며 함께 미루나무길을 달리던 그 추억은 정말 잊을수가 없다. 그런 자전거가 내가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이의 출퇴근용이 되면서 자전거는 나와 좀더 친숙한 생활용품이 되었다. 내가 다칠까봐 자전거를 못배우게 했던 아버지에 비해 남편은 이제라도 자전거를 배워 함께 타고 여행을 가자고 하는 것을 보면 자전거란 꽤나 매력적인 것이면서도 산을 하나 넘어야 할 존재로 남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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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대의 대표적 문인으로 통하는 김훈 작가. 기존에 시중에 나온 김훈 작가의 책들도 무척 좋아하지만 저는 특히나 <자전거 여행>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읽을수록 글맛이 나기에 책을 들여다보면 책속에 빠져 버리게 되는 묘한 구석이 있는 책입니다. 아마도 이 책을 보면 내일이라도 당장 자전거를 타고 훌쩍 떠나고 싶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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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가기 전 뜻깊은 추억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자전거로 전국을 일주하기로 마음먹었던 적이 있다. 물론 출발한지 하루만에 돌아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가지 못했던 그 길을 책을 통해서나마 갈수 있었다. 책을 통한 대리만족이랄까... 그리고 김훈의 깊이 있는 글까지 더해져 하루동안 행복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책 첫머리에 내 고향 여수가 먼저 나와서 였을까.., 이 책에 무한한 애정이 간다.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돌산도 가보고 싶고 순천을 돌아 승주 선암사도 둘러보고 ..,10년전 내가 그리던 코스 그대로 김훈이 따라가고 내가 또 그 길을 따라가고... 책을 보는 중간 중간에 그 풍경들이 떠올라 책을 놓고 잠시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책이다.
소백산맥을 넘어 태백산맥도 가고 팔도 사람들,,, 세상 사는 이야기들...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만나는 세상살이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놓고 우린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고성에 불이 크게 났다. 사람은 인공적으로 자연숲을 다시 조성하려고 한다. 근데 그것보다 그냥 자연을 있는 그대로 놔두면 인공적으로 복원한것보다 훨씬 더 생명력이 강해진다고 한다.
난 반반씩 하면 더 좋은거 아닌가 했는데 그것도 아니란다...그냥 그대로 내버려두면 숲은 절대 죽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간곡히 부탁한다... 그냥 내버려두라고....
참 반성하게 되는 글이다... 우리가 산을 얼마나 괴롭히고 있을지 생각하니 살짝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몰랐던 사실에 다음에 산에 가면 조금 더 산과 가까워지고 친해질수 있으리라....
무더운 여름이 가고 있다.. 이제 살랑살랑 가을 바람이 불때쯤...자전거로는 못가겠지만 그래도 좋은 사찰과 좋은 숲을 찾아 한번 가볼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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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 같은 글이 있다. 다 읽고나서도 은은한 수채화의 맛을 느끼게 한다. 어찌보면 자연유산답사기를 읽는것 같다.
자전거가 굴러가는대로 가다보면 선암사 해우소의 글귀도 만나고 쌍계사 가는길에 녹차 한잔을 마시며 덧없는 일상에서의 깨닫음을 맛본다. 영일만에선 겨울바다와 떠오르는 아침해를 바라보면서 연오,세오부부의 전설을 생각하고 미천골에선 늦가을의 태백산맥을 보면서 신화의 시절을 생각한다.
전국의 산천을 - 태백,소백,노령,차령산맥을 지나 남쪽의 해안선에서 그리고 한강까지- 저자가 자전거와 함께 다니면서 보고 들은것을 저자 특유의 감각으로 써 놓았다. '칼의노래'에서 맛본 저자의 균형감각이 정확한 역사인식 위에서 쓰인것 이라면 여기에선 자연에 대한 균형감각이 또 다른 맛으로 다가온다.
서문에 써있는 저자의 생각이 인생을 다시한번 뒤돌아보게 하는것 같아 적어본다. '갈때의 오르막이 올때의 내리막이다. 모든 오르막과 모든 내리막은 땅위의 길에서 정확하게 비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비기면서 다가고나서 돌아보면 길은 결국 평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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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는데 무슨 학문이 있으며, 게다가 인문학이라니... 그런데 읽어보면 안다. 글쟁이는 자전거도 인문학적으로 탄다는 것을. 자전거로 밟고 가는 조국 강산의 인문적 상상력과 표현에 또다시 '역시 김훈'이라는 말을 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