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96)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7%
  • 리뷰 총점8 33%
  • 리뷰 총점6 7%
  • 리뷰 총점4 2%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10.0
  • 40대 8.0
  • 50대 8.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내용보기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우면 ‘열 길 사람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을까? 한 이불속에서 자는 아내도 하루에 수십 번씩 모를 때가 있으니 말 다했다. 아내도 잘 모르면서 나는 이순신을 안다고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어려서 가장 먼저 읽는 위인전이 이순신이고 또 초등 학교때 가장 많이 듣고 배운 위인도 이순신이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내용보기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우면 열 길 사람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을까?

한 이불속에서 자는 아내도 하루에 수십 번씩 모를 때가 있으니 말 다했다.

아내도 잘 모르면서 나는 이순신을 안다고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어려서 가장 먼저 읽는 위인전이 이순신이고 또 초등 학교때 가장 많이 듣고 배운 위인도 이순신이기 때문이다. 무인 선발시험인 훈련원 별과에 응시한 순신이 달리던 말에서 떨어져 왼쪽다리가 부러지자 버드나무 가지로 부러진 다리를 싸매고 끝까지 달렸다는 일화는 내 어린 마음에 큰 감동이 되었다. 이때부터 내 꿈은 이순신 장군처럼 용맹한 장군이 되는 것이었다.

임진왜란 때 일본과의 해상전에서 2323전승을 했고, 명랑해전에서는 12척의 함선과 빈약한 병력을 가지고 330척의 배를 가지고 있는 일본군과 싸워 대승을 했고, 명랑해전은 세계 3대 해전사에 들어간다는 것도 상식으로 알고 있는 이야기다 . 또 중학교 때는 항상 아산에 있는 현충사로 소풍을 가서 이순신 장군을 만나지 않았던가?

난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가지고 이순신을 안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칼의 노래를 읽으면서 이순신을 모른다는 생각에 부끄러웠다.

왜냐하면  이순신의 난중일기도 읽지 않았고, 선조실록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인으로서의 이순신은 알고 있었지만 인간 이순신은 알지 못했다.

 

칼의 노래는 작가 김훈이 난중일기선조실록’ ‘연려실기술같은 역사자료를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인간 이순신을 재조명한 역사소설이다.

칼의 노래를 읽으면서 마음이 저리고 분노가 이는 것은 전쟁에 대한 작가의 사실적인 묘사 때문이다. 마치 영화 머나먼 다리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에 나오는 참혹한 전쟁의 한 장면처럼 김훈은 전쟁을 잔인하고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묘사한다.

아직 목숨이 붙어있는 자들은 아이를 죽여 그 고기를 먹었다. 이따금씩 쑥부쟁이 덩굴 밑에 엎드린 유령들이 내 말방울 소리에 놀라 머리를 내밀 때, 퀭한 두 눈에서 눈빛이 빛났다

갯벌 안쪽 갈대숲에서 시체 몇 구가 박혀 있었다. 썩다 만 옷자락은 조선 수군이었는데 목이 잘려 있었다. 그의 목은 도원수부를 경유해서 조정으로 올라가 조선수군의 전과로 등록되었을 것이다.’ (21)

전쟁은 아이를 죽여 고기를 먹을 정도로 백성들의 삶을 비참하게 했다. 그들은 전쟁에서 가장 많은 아픔을 겪었고 가장 많이 죽었다. 살기 위하여 순결도 빼앗겼고, 살기 위하여 적군의 앞잡이가 되기도 했고 살기 위하여 동포를 밀고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백성들의 고통과 아픔을 느끼기 때문에 순간순간 책을 접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탐욕 때문에 전쟁은 비참한 것이다. 그 비참함에 일조하는 것이 추악한 사람들이다. 임금은 추악함의 대표주자다. 순신이 생각하는 임금은 장수의 용맹이 필요했지만 장수의 용맹을 두려워했다. 임금은 그래서 사직의 제단을 날마다 피에 젖게 했다. 이 임금에게 있는 무기는 오직 악어의 눈물뿐이었다.

임금은 울음과 언어로써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언어와 울음이 임금의 권력이었고 언어와 울음 사이에서 임금의 칼은 보이지 않았다. 임금의 전쟁과 나의 전쟁은 크게 달랐다. 임진년에 임금은 자주 울었고 장려한 교서를 바다로 흘려보냈으며 울음과 울음 사이에서 울음과 울음 사이에서 임금의 칼은 번뜩였다”(47)

임금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도원수 권율도, 정철도 그리고 그 밑의 신하들도 다 무능력과 추악함만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순신은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을 더 두려워했다. 이렇게 현실은 비참했고 순신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 순신도 회의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알아 왔던 성웅 이순신의 모습이 아니라 나약하고 회의하고 절망하는 이순신이 가슴에 다가오는 것은 그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 끝없는 전쟁은 결국은 무의미한 장난이며 이 세계도 마침내 무의미한 한 곳인가. 내 몸의 깊은 곳에서 아마도 내가 알 수 없는 뼛속의 심연에서, 징징징. 칼이 울어대는 울음이 들리는 듯 했다. 나는 등판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캄캄한 바다는 인광으로 뒤채였다.’(21)

 

나약한 인간은 현실의 참혹한 앞에서 회의할 수밖에 없다.

순신은 회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식은땀을 흘리며 새벽에 환청을 듣는다. 또 확실한 죽음 앞에서 자신에 대한 한없는 무기력함 때문에 죽고 싶은 유혹도 있다. 어머니의 죽음, 스물한 살 밖에 안 된 아들 면의 죽음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래서 순신은 술을 마신다. 그리고 몰래 소금창고에 들어가 부하들이 듣지 못하도록 숨죽여 울기도 한다. 순신의 표준영정을 보더라도 그는 무신 같은 모습이 없다. 오히려 순신의 모습은 여리고 감성적이다.

그런 나약한 순신이 어떻게 그 어두운 시대를 한 줄기의 빛으로 환하게 빛나게 했을까 

난 그의 죽음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순신은 언제나 자신에게 죽음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자신이 명예롭게 죽을 자리가 어디인가를 알고 있었다. 이 죽음관이 확실하기에 필사즉생(必死則生) 필생즉사(必生則死)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한다면 죽을 것이다 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순신은 자신의 죽음이 자연사라는 것에 안도함을 느낄 정도로 생사를 초월했다. 순신의 시대는 가장 절망적이었고, 순신에게 인간적인 나약함이 있었지만 이것보다 더 소중한 것을 순신은 가지고 있었다. 바로 죽기를 각오하고 모든 일에 임하는 불굴의 의지가 순신에게 있었고 이 의지가 순신을 역사에 남는 인물로 기억하게 한다.

 

김훈이 이 책을 쓸 당시의 상황을 보면 당시 세상과 불화해 집에 처박혀 이 소설을 썼고 그해 겨울은 몹시 추웠고 쌀은 떨어졌고 난방도 안 되는 지하방에서 썼다고 한다. 아마 저자 자신의 상황이나 순신의 상황이나 현실은 비슷했을 것 같다. 어쩜 작가는 자신의 현실을 순신을 통하여 투영했을 것이다. 그래서 김훈은 책머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인간에 대한 모든 연민을 버리기로 했다. 연민을 버려야지만 세상은 보일 듯 싶었다. 연민은 쉽게 버려지지 않았다. 그해 겨울에 나는 자주 아팠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한결같이 연민의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시대의 아픔에 고뇌하는 순신, 울음밖에는 없는 무기력한 왕, 그 왕의 눈을 가리는 간신들, 그리고 그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던 백성들.

작가는 이 인물들을, 그 시대를 연민으로 바라보았기에 그 아픔 때문에 시름 시름 아팠을 것이다. 그래서 김훈은 사랑과 희망을 제시하는 글을 쓰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칼의 노래를 읽은 100만 독자는 역설적으로 이 책을 통해 희망을 발견했다고 나는 믿는다. 왜냐하면 이 책의 마지막은 다시 회복되는 백성들의 삶을 통하여 희망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도 순신처럼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순신이 죽음으로 지킨 땅위에 다시 씨앗을 뿌리고,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는다. 나에게 주어진 삶을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희망이 아닐까?

그래서 칼의 노래의 첫 페이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피는 숲에 저녁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 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싶었다.”(17)

버려진 섬에 꽃을 피우 것은 추악한 임금이나 신하가 하는 것이 아니다. 내 땅, 내 나라이기에 묵묵히 하루하루 나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한 이름모를 백성들 때문에 꽃은 피고, 역사의 아픔을 끊어낼 수 있다. 이것을 믿는 것이 희망이다.

 

어렸을 때 시골의 외할머니 집에 놀러 갔다가 칠흑처럼 어두운 밤하늘을 나르는 개똥벌레를 보았다. 불과 3마리. 그런데 몇 마리의 개똥벌레로 인해 어둠이 빛이 났다. 그 빛은 경이로움이었고 자연의 신비였다.

희망은 그런 것이 아닐까?

아무리 내 주변이 어둡고 컴컴해도 난 한 마리의 개똥벌레로 살 수 있어!”. 이것이 이 책이 주는 교훈이라고 생각을 한다.

순신은 어두운 시대를 빛낸 불빛이었다. 그 불빛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리고 그 불빛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찬양한다. 순신은 어두운 현실 앞에서 나약하고 고뇌했지만 그는 자신의 죽음으로 삶의 희망을 전해준 인물이다. 그가 지금도 광화문 광장에 우뚝 서 있는 이유는 이 땅의 백성들이 어둠속에서 홀연히 빛났던 순신을 바라보면서 삶의 희망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YES마니아 : 로얄 j*****r 2010.12.11. 신고 공감 14 댓글 24
리뷰 총점 종이책
이순신의 칼이 부르는 노래
"이순신의 칼이 부르는 노래" 내용보기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할 무렵부터 장렬하게 전사하는 노량해전까지의 삶을 생생하게 다루고 있는 팩션이다. 세계 해전사에 유례가 없는 백전백승의 뛰어난 전략이나 영웅적 행동의 측면보다는 인간 이순신의 모습과 정체성을 부각시키는 데 촛점을 두고 있다.     책의 제목에서 암시하듯 무인의 상징인 칼이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무인의 칼이니 적을 베기 위한 검이다. 적을 베는
"이순신의 칼이 부르는 노래" 내용보기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할 무렵부터 장렬하게 전사하는 노량해전까지의 삶을 생생하게 다루고 있는 팩션이다. 세계 해전사에 유례가 없는 백전백승의 뛰어난 전략이나 영웅적 행동의 측면보다는 인간 이순신의 모습과 정체성을 부각시키는 데 촛점을 두고 있다.  

 

책의 제목에서 암시하듯 무인의 상징인 칼이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무인의 칼이니 적을 베기 위한 검이다. 적을 베는 장군의 칼 끝에는 어떠한 마음이 담겨 있었을까? 누가 그리고 무엇이 진정한 적이란 말인가? 나의 적이 나에게 가지고 있는 적의(敵意)의 본질은 무엇인가? 전장이나 백성의 아픔보다 정치적 입장에서 상황을 판단하는 선조와 명나라의 간교한 참전과 같은 내부적 적은 어떻게 베어야 한단 말인가? 베어지는 것과 베어지지 않는 것, 삶과 죽음의 경계는 어떻게 맞닿아 있을까?

 

저자는 백의종군에서부터 시작되는 이순신의 인간적 고뇌와 번민과 갈등의 문제를 간결한 언어와 적절한 배경묘사, 그의 처신을 통해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이라는 바탕위에 적절한 상상력을 더함으로써 이순신 장군의 감정은 곧바로 독자의 감정으로 이입시키고 있다. 자신보다 먼저 적의 공격에 희생된 셋째 아들에 대한 아버지로서 느끼는 아픔, 굶주리고 죽어가는 백성들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 데 대한 회한, 정치적 핍박에 대해 분노감, 그런 과정에서도 자신이 해야할 일을 묵묵히 찾아가는 이순신의 모습에서 우리 독자들은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인간적 존경감을 저절로 갖게 된다. 

 

결국 전쟁이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경계선이다. 이순신은 죽음을 거슬러서 삶에 닿는다. 칼의 노래는 결국 '반드시 죽으려는 자는 살고, 살려는 자는 죽는다.(必死卽生 生卽必死)'라는 그의 말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c******4 2010.11.10. 신고 공감 7 댓글 10
리뷰 총점 종이책
그나마 전두환을 찬양했던 것에 대하여 반성하는 작가라니 ...
"그나마 전두환을 찬양했던 것에 대하여 반성하는 작가라니 ..." 내용보기
이 책을 적은 작가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5공화국 시절 백성들의 피 위에서 일어선 전두환 정권을 찬양을 했던 사람이다. 일제시대에 일본을 찬양했던 지식인 나부랭이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그를 특히 미워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그것을 부끄러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젠가 인터뷰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   작가는 책머리에 이렇게
"그나마 전두환을 찬양했던 것에 대하여 반성하는 작가라니 ..." 내용보기

이 책을 적은 작가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5공화국 시절 백성들의 피 위에서 일어선 전두환 정권을 찬양을 했던 사람이다. 일제시대에 일본을 찬양했던 지식인 나부랭이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그를 특히 미워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그것을 부끄러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젠가 인터뷰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

 

작가는 책머리에 이렇게 변명아닌 변명으로 시작하고 있다.

"나는 나 자신의 절박한 오류들과 더불어 혼자서 살 것이다."

그 오류가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하게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것을 가지고 자신이 정당했음을 강변하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인간에 대한 모든 연민을 버리기로 했다 연민을 버려야만 세상은 보일 듯 싶었다. 연민은 쉽게 버려지지 않았다."

나는 그가 말하는 인간에 대한 연민이 자신에 대한 연민인지 아니면 칼의 노래에서도 나오는 잡혀서 적의 배를 끌 수 밖에 없었던 어리석은 백성들을 향한 연민을 말하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나 또한 인간에 대한 연민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부족하고 부족한 것이 인간일 수 밖에 없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

 

이제 책을 읽고 가슴에 남았던 한 구절을 적어보고자 한다. 

 

"삶은 집중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분산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르기는 하되 삶은 그 전환속에 있었을 것이다. 개별적인 살기들을 눈보라처럼 휘날리며 달려드는 적 앞에서 고착은 곧 죽음이었다. 달려드는 적 앞에서 나의 함대는 수없이 진을 바꾸어가며 펼치고 오므렸고 모이고 흩어졌다. 대장선이 후미에 있을 때 이물 너머로 바라보면 함대는 적과 마주잡고 쉴새 없이 너울거리며 춤을 추는 무도자 처럼 보였다."

 

우리네 삶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 한다. 집중도 분산도 아닌 변화에 삶이 있고 그 변화가 멀리서 보면 하나의 춤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한다.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죽음을 부르는 춤이든 불나방이 촛불을 향해 달려드는 아름다운 춤이든 삶은 춤처럼 아름다운 것이라고 여겨진다.

 

l******b 2008.04.15. 신고 공감 5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모든 무력한 영웅들의 비애
"모든 무력한 영웅들의 비애" 내용보기
영웅은 읊조린다. <칼의 노래> 속 이순신은 무언가에 가로막혀 있다. 12척 남은 전함으로 적을 격파하고, 적의 서진을 결단코 막아내는 역사적 사실이야 이 책에서라고 변할 리 없지만 그는 용맹하기 보다는 차분하고, 긍정적이기 보다는 근심이 많다. 외부의 난관을 용맹스럽게 극복할 전장의 영웅은 이 곳에 없고, 외부에서 조여오는 제약들에 대한 무력감이 지배적인 정서를 형성한
"모든 무력한 영웅들의 비애" 내용보기

영웅은 읊조린다. <칼의 노래> 속 이순신은 무언가에 가로막혀 있다. 12척 남은 전함으로 적을 격파하고, 적의 서진을 결단코 막아내는 역사적 사실이야 이 책에서라고 변할 리 없지만 그는 용맹하기 보다는 차분하고, 긍정적이기 보다는 근심이 많다. 외부의 난관을 용맹스럽게 극복할 전장의 영웅은 이 곳에 없고, 외부에서 조여오는 제약들에 대한 무력감이 지배적인 정서를 형성한다. 이 작품이 ‘임진왜란’이라는 큰 사건을 다루면서도 전쟁 전체를 우리에게 비춰주지 않는 대신, 철저히 이순신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전체’를 자신의 영역으로 삼을 힘이 없었고, 오직 ‘전체’가 자신에게 할당한 영역에서만 운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히데요시가 전 일본의 군사력을 휘몰아 직접 군을 지휘하며 바다를 건너올 것이라는 풍문 앞에 조정은 무겁게 침묵하고 있었다. 나를 죽이면 나를 살릴 수 없기 때문에 임금은 나를 풀어준 것 같았다. 그러므로 나를 살려준 것은 결국 적이었다. 살아서, 나는 다시 나를 살려준 적 앞으로 나아갔다. 세상은 뒤엉켜 있었다. 그 뒤엉킴은 말을 걸어볼 수 없이 무내용했다.

 

조정에 불복한다는 의심을 사 죽음의 문턱 앞에 갔던 이순신은 전황의 어려움으로 인해 다시 전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그가 운신할 수 있는 범위를 명확하게 인식케 해주었을 것이다. 전쟁에서 지면 적에게 죽을 것이고, 전쟁에서 이기면 임금에게 죽을 것이었다. 오랜 전쟁의 영웅은 전후의 조정에게 부담이 될 것이었다. 
 

도원수부의 행정관이 면사첩을 들고 왔다. ‘면사’ 두 글자뿐이었다. 다른 아무 문구도 없었다. 조정을 능멸하고 임금을 기만했으며 임금의 기동출격 명령에 따르지 않은 죄에 대하여 죽음을 면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면사첩을 받던 날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나는 ‘면사’ 두 글자를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죄가 없다는 것도 아니고 죄를 사면해 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다만 죽이지는 않겠다는 것이었다. 너를 죽여 마땅하지만 죽이지는 않겠다,고 임금은 멀리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는 면사첩을 자신이 머무는 토방에 걸어놓고 자주 들여다 보았다. 자신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은 명확해 보였다. 그는 적을 벨 수는 있을지언정, 자신을 가두어 놓은 이 상황을 벨 수는 없었다. 충과 무를 숭상하는 자로서, 나라에 충성을 다하되 조정에 불충한자가 되지 않기 위한 선택은 오직 한 가지였다. 승리하되 전장에서 자신을 마감하는 것. 때문에 적이 퇴각하던 노량해전에서의 이순신의 죽음은 ‘각본있는’ 드라마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이 점 때문에 이순신의 죽음은 위장된 것이라는 설도 있었다. 승리를 하고, 이순신은 살아남았으나 역적이 되어 생을 마감하지 않기 위해 죽음을 가장했다는 설이었다.

 

나는 <칼의 노래>를 SYSTEM에 대해 무력한 개별성의 비애로 읽었다. 서열화된 신분 사회를 유지하는 이데올로기였던 ‘충성’은 그 구성원들의 가슴에 깊이 스몄을 것이다. 이순신의 가슴 속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는 충성의 가치와 무인의 긍지를 가슴에 품고 바다로 나섰을 것이다. 그리고 나라를 지키기 위한 나름의 전략과 판단을 통해 전쟁을 수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불충하였다는 이유로 압송되어야 했다. 조선의 왕실은 승리를 원했으나, 임금보다 지지를 받는 영웅을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충성과 승리는 반드시 필요했지만, 반드시 현실의 SYSTEM을 뒤흔들지 않아야 했다.

 

우리 역시 자신의 꿈이나 소중한 가치들을 가족의 '상황', 국가경제의 '현실'이라는 명분 아래 놓아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다. 모든 SYSTEM은 자기 안정를 전제로 모든 가치를 허용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조선시대보다 더욱 많은 가치를 향유할 수 있는 것은 탐욕스럽고, 야만스럽긴하나 어쨌든 '자본주의'가 '봉건왕조'보다는 좀 더 많은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유연한 체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모든 개인에게 ‘운신의 폭’은 제한적이다. 무한하지 않다.

 

이순신은 자주 마음 속의 칼이 징징징 우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자신의 배만 불리는 관리도, 정치적 체면만 차리고 전장을 뜨려는 명나라 장수도 베어버리고픈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 역시 SYSTEM은 허락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칼은 밤낮으로 울어대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들의 마음도 그렇게 울어댄 밤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울음의 기록이며, 우리들의 무력함에 대한 비애이고, 무력한 와중에서도 자신의 몫을 다하고자 했던 영웅담이다.

c*****9 2009.07.06. 신고 공감 4 댓글 5
리뷰 총점 종이책
위인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노래
"위인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노래" 내용보기
광화문 충무공 동상과 어릴 적 나의 위인     충무공 동상이 수리를 위해 철거된다는 뉴스와 함께 동상에 대한 의문을 다루는 기사가 텔레비전에 스쳐갔다. 의문점의 하나는 충무공의 얼굴 형태가 너무 무사형이라는 데 있다고 한다. 실제 현충원이나 기타 다른 사료에 등장하는 충무공의 얼굴 모습은 무사형이 아닌 문인형에 가깝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에 비추는 이순신 동상을 보
"위인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노래" 내용보기

광화문 충무공 동상과 어릴 적 나의 위인

 

  충무공 동상이 수리를 위해 철거된다는 뉴스와 함께 동상에 대한 의문을 다루는 기사가 텔레비전에 스쳐갔다. 의문점의 하나는 충무공의 얼굴 형태가 너무 무사형이라는 데 있다고 한다. 실제 현충원이나 기타 다른 사료에 등장하는 충무공의 얼굴 모습은 무사형이 아닌 문인형에 가깝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에 비추는 이순신 동상을 보니 눈썹이 위로 올라간 형태로 무척 매섭게 생겼다. 광화문 앞을 지키는 수문장으로는 적당해 보이나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에 등장하는 충무공의 고뇌에 찬 문인형의 모습과는 어딘지 어긋나보였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릴 적, 이제 위인전을 읽을 줄 알게 된 나이에, 존경하는 위인을 대라면 단연 이순신 장군이 으뜸이었다. 단 12척의 배로 300여척이 넘는 명량해전의 전과를 올린 장군의 업적은 어린 마음에도 그 어떤 무장과도 견줄 바가 아니었다. 게다가 충무공은 어릴 적부터 출중했는데, 응시한 무과시험에서는 다친 다리를 싸매고 시험에 임하는 고도의 정신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충무공은 어렸던 나에게 넘지 못할 거목이었으며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의 존경하는 위인을 묻는 문제의 모범 답안이기도 했다.

  그런 충무공의 기존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다룬 책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 책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리고 이번에 동상 철거 소식을 계기로 예전의 그 위인의 모습을 곱씹으면서 다시 읽어보았다.

 

내가 알던 "위인"과는 다른 인간의 모습

 

  충무공의 난중일기는 군더더기 없이, 있을 것만 있는 간단명료한 글이었다고 한다.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에 나오는 충무공의 모습도 그렇게 간결하다. 문장 하나하나 사람의 모습을 담아내면서 최대한 줄이고 줄여 압축해 놓은 프레스 판처럼 간결하면서도 시적인 비유로 은빛을 발하고 있다.

 

  "적과 임금이 동거하는 내 몸은 새벽이면 자주 식은땀을 흘렸다. 구들에 불을 때지 않고 자는 밤에도 땀은 흘렀다. 등판과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땀은 흥건히 고였다. - 중략- 군법을 집행하던 날 저녁에는 흔히 코피가 터졌다. 보고서 쪽으로 머리를 숙일 때, 뜨거운 코피가 왈칵 쏟아져 서류를 적셨다. -중략- 나는 바닥없는 깊이로 떨어져 내렸고, 잠에서 깨어나는 새벽에는 식은땀에 젖었다. 임금의 몸과 적의 몸이 포개진 내 몸은 무거웠다. p182

 

  잠을 설치는 충무공의 모습은 어릴 적 떠오르던 내가 아는 위인의 전형적인 모습으로는 생각하기 어렵다. 더욱이 군더더기 없이 서술 된 난중일기에서는 알 수 없는 모습이다. 작가는 여기에 살을 더하고 근육을 키워서 충무공의 인간적인 고뇌를 담아낸다. 적과 임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군법을 집행하는 일을 마치고 나면 코피를 흘리는 나약하게만 보이는 그 모습을 통해서 무사보다는 문인에 가까운 공의 모습과 그의 고민을 그려내고 있다. "바닥없는 깊이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전쟁의 현실속에서, 전쟁 후의 모습은 생각하지도 못한 채 적인지 내 편인지 혹은 충성의 대상인지조차 의심스러운 임금을 대하면서 수시로 "잠에서 깨어나는 새벽"을 식은땀을 흘리면서 맞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결국 항상 죽음을 곁에 두고 지낼 수밖에 없는 공의 마음이 작가의 “칼의 노래”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 칼에 검명을 새기면서 "온세상을 피로 물들이려는" 마음을 담아냈으나 그 피에는 공의 핏물도 섞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수군이 비록 외롭다 하나 이제 신에게 오히려 전선 열두척이 있사온즉...신의 몸이 아직 살아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1권 p83 -

 

역사속에 등장하는, 어릴 적 나의 위인인 충무공은 이래야 했다. 전선은 열 두 척 밖에 없으나 - 이것으로 적선 300여척을 상대해야 하나 - "적들은 감히 나를 업신여기지 못한다"는 장계. 그러나 그의 말 뒤편에는 큰 전투를 앞두고 빈약한 군대로 적을 막아내겠다는 비장함을 떠나 죽음을 곁에 두면서 힘겹게 버티고 있는 공의 모습이 그려진다.

 

한편 명량해전이 끝난 후 그에 대한 보복으로 죽은 아들 면에 대해서는 이렇게 그려내고 있다.

 

“저녁때 나는 숙사를 나와 갯가 염전으로 갔다. 종사관과 당번 군관을 물리치고 나는 혼자서 갔다. 낡은 소금 창고들이 노을에 잠겨 있었다. 나는 소금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마니 위에 엎드려 나는 겨우 숨죽여 울었다. 적들은 오지 않았다." - 1권 140p -

 

면을 죽이고서 미안해서 적이 오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공은 외로웠을 것이다. 모든 부하들 앞에서 감정을 나타낼 수 없었고 내 편인지 아닌지 모를 임금 앞에서 어리광을 피울 수도 없었다. 그저 "소금창고"안에서 울면서도 "숨을 죽여" 감정을 삭여야 했던 것이 책에서 드러난 공이 처한 현실이었다. 그런 현실에 마주한 채 오직 그 현실만을 대상으로 싸우고 그 이후를 생각하지 않았던 공은 항상 죽음을 곁에 두고 지내고 있었다.

 

죽음을 곁에 두었던 삶

 

  "나는 내 자연사에 안도했다. 바람결에 화약 연기 냄새가 끼쳐왔다. 이길 수없는 졸음 속에서, 어린 면의 젖냄새와 내 젊은날 함경도 백두산 밑의 새벽 안개 냄새와 죽은 여진의 몸 냄새가 떠올랐다. 멀리서 임금의 해소 기침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냄새들은 화약 연기에 비벼지면서 멀어져갔다." - 2권 196p -

  

 책의 마지막은 대략 이런 식으로 마무리가 되어간다. 이 문장에 모든 것이 다 담겨있다고 볼 수 도 있다. 아들 면에 대한 그리움과 그의 죽음에 대한 애도, 한 때 지나간 여인이었던 여진, 자신의 젊은 날에 대한 향수, 그리고 공을 죽음으로 몰고 갔을지도 모를 임금의 기침 소리 등등. 전쟁 이후를 생각하지 않았던 - "칼의 노래" 란 책속의 - 공의 모습은 책의 후반부에 갈수록 짙게 드러난다.

 

“어느 날, 적들이 모두 떠나버린 빈 광양만 바다의 적막을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그 견딜 수 없는 적막보다는 임금의 칼에 죽는 편이 오히려 아늑할 듯싶었다. 적들이 홀연 빠져나간 그 빈 바다의 텅 빈 공간, 적이 안개처럼 스스로 물러가서 더 이상 아무런 조준점도 내 앞에 남아있지 않는 그 빈 바다를 상상할 수 없었다” - 2권 162p -

 

  여기에서의 적은 꼭 왜적만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다. 적들이 떠나버린 적막을 감당할 수 없었듯이 여기서의 적은 없애야하는 충무공의 삶의 목표이자 없어져버리면 공의 삶이 사라지는 삶을 지탱해주는 존재이기도 했다. 어쨌든 적과 적의 적이 서로 맞물리는 전쟁의 현실에서, 공은  "자연사 이외의 방식으로는 죽을 수 없었다." 고 자꾸 되뇌인다. 전장에서 죽는 것도 자연사의 하나로 생각했던 공은 본인이 생각했던 대로 자연사하고 만다.  

  “칼의 노래”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공은 죽음으로 전쟁을 마무리 하고자 했다. 이것은 오늘날 충무공의 죽음에 대한 분분한 여러 설 가운데 자살설 - 책에서 나온 김덕령의 죽음에 대한 공의 생각에서도 유추해볼 수 있다. - 과도 유사하지만 이 소설에서 굳이 그런 것들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저 공의 역사 속 모습이 아닌 전쟁을 맞이한 어렵고도 험난한 현실 속에서 최선을 방책을 강구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김훈 작가가 그려냈다고 보는 것이 더 마음 편한 학설이자 해석이다.

 

p.s. - 작가의 "칼의 노래"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피는 숲에 저녁 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 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 싶었다. " - 1권 17p -

 

  책은 처음에 위와 같이 생각한다. 꽃이 핀 섬이 버려졌다는 것도 역설이고 꽃피는 섬들이 바다에 결박되었다는 것도 억지스럽지만 마치 전쟁 속 죽음에 메인 충무공의 모습을 노래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첫 문장 하나에 엄청난 힘이 들어간다는 말이 있고 첫 문장을 시작하면 글을 다 썼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 작가는 첫 문장을 칼날처럼 간결하면서도 수많은 시적인 은유를 집어넣었다.

  칼이 노래한다는 말은 종종 등장하는 표현이다. 그 칼의 노래를 문학적으로 끌어올린 것이 김훈 작가의 솜씨이다. 작가의 글은 솔직히 어렵다. 접근하기 쉽지 않다. 간결한 듯 하면서도 그 시적 은유와 번뜩이는 감각은 명량의 물결처럼 수차례 변화가 오고가고 따라가기 어렵다. 그 솜씨로 그려낸 충무공의 삶은 날카로운 칼끝처럼 명확히 보이면서도 쉽사리 정의 내리기  어려운 글이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c****g 2010.11.30. 신고 공감 2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낯선 이순신과의 만남
"낯선 이순신과의 만남" 내용보기
출간 당시 엄청난 화제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명성만 기억하다가 이제사야 읽게 되었다. 사실 역사에 상상력을 보탠 저서들에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다. 객관적 사실로서의 역사만을 원한 것이었다. 그러나 객관적 사실로서의 역사라는 실체는 플라톤의 이데와와 같이 추상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곡과 날조의 수준이 아니라면, 역사의 색다른 해석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낯선 이순신과의 만남" 내용보기

 출간 당시 엄청난 화제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명성만 기억하다가 이제사야 읽게 되었다. 사실 역사에 상상력을 보탠 저서들에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다. 객관적 사실로서의 역사만을 원한 것이었다. 그러나 객관적 사실로서의 역사라는 실체는 플라톤의 이데와와 같이 추상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곡과 날조의 수준이 아니라면, 역사의 색다른 해석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더 큰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믿는다.

 

 어느 정도 위인으로서의 이순신에 대한 환상을 깨고 접근했지만 소설에서의 이순신의 모습은 조금은 평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낯설었다. 글은 이순신의 내면의 목소리로 이루어지는데, 고립됐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자주 이순신의 대외적인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그의 내면의 목소리는 일반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욕구와 정서 그런 것들이었다. 예를 들면 이순신은 약간의 분노로 인해 명의 수군 장수 진린을 벨까, 말까 고민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외에는 진린에 대한 어떠한 의도 같은 것을 찾기 어려웠다. 단지 작적 수행에 있어서 없어도 그만이지만, 있으면 도움 되는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았다.

 

 작품 속에서 이순신을 대체 어떤 기준으로 봐야할 지 갈피를 못잡던 나는, 책을 덮고 표지를 보고서야 나의 우둔함을 깨닫게 됐다. 이순신의 실체는 마음 속에서 울리는 한 자루의 '칼'이였던 것이다. 그는 무엇인지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적을 베어야 하는 한자루의 칼이다. 무엇을 베어야 하는 지 알 수 없기에 그는 운다. 그리고 그 떨림은 노래가 된다. 자신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임금, 비겁하게 도망친 배설, 오만한 진린, 그리고 실체를 알 수 없는 적, 그 어느 것 하나 벨 수가 없다. 아들을 면을 죽인 원수를 직접 벤 것은 복수가 아니었다. 알 수 없는 그 적을 베지 못하는 분노였던 것이다.

 

 피 비린내를 맡아야 하는 칼의 본능은 죽은 여진의 냄새, 아들 면의 냄새로 위안을 얻는다. 적들의 살기가 찬란한 마지막 전투에서 칼은 그 노래를 다한다. 벨 수 없는 적들을 남겨논 채...



s********g 2010.05.20. 신고 공감 2 댓글 5
리뷰 총점 종이책
한국어의 힘과 아름다움
"한국어의 힘과 아름다움" 내용보기
벌써 몇년을 계속, 외국 사는 친구들을 위한 선물로 준비하는 책이다. 읽은 지 한참 되었지만 지금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내 모국어의 힘과 아름다움에 대해 느꼈던 감동이 생생하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군더더기 없이 날씬한 모국어가 뿜어내는 피 냄새, 땀 냄새, 살 냄새와 바다 냄새. 이렇게 내 후각을 괴롭히는 책은 처음이었다.  글은 간결하고 담백했지만 감동은 거대하고
"한국어의 힘과 아름다움" 내용보기
벌써 몇년을 계속, 외국 사는 친구들을 위한 선물로 준비하는 책이다. 읽은 지 한참 되었지만 지금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내 모국어의 힘과 아름다움에 대해 느꼈던 감동이 생생하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군더더기 없이 날씬한 모국어가 뿜어내는 피 냄새, 땀 냄새, 살 냄새와 바다 냄새. 이렇게 내 후각을 괴롭히는 책은 처음이었다.  글은 간결하고 담백했지만 감동은 거대하고 화려했고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훌륭한 책도 기쁘고 감사하지만, 어린 시절 열렬히 사모한 한국 일보 서평 담당 김 훈기자가 이제는 온 국민의 열렬한 사모를 받는 작가가 되신 것 또한 몹시도 기쁘고 감사하다.  (옛날 옛날에 나온 '내가 읽은 책과 세상' 초판본도 가지고 있답니다. ㅎㅎㅎ) 
j*****k 2007.11.28.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칼의 노래
"칼의 노래" 내용보기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피는 숲에 저녁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싶었다.   나는 적의 敵意의 근거를 알 수 없었고 적 또한 내 적의의 떨림과 깊이를 알 수 없을 것이었다. 서로 알지 못하는 적의가 바다 가득히 팽팽했으나 지금 나에게는 적의만이 있고 함대는 없다. (page 21-22)
"칼의 노래" 내용보기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피는 숲에 저녁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싶었다.

 

나는 적의 敵意의 근거를 알 수 없었고 적 또한 내 적의의 떨림과

깊이를 알 수 없을 것이었다. 서로 알지 못하는 적의가 바다 가득히 팽팽했으나

지금 나에게는 적의만이 있고 함대는 없다.

(page 21-22)

 

역사소설.

역사로서 이해해야 할 부분과

소설로서 읽어야 할 부분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지만,

익히 잘 알려진 사실들을 기본 얼개로 만들어진 내용이라

쉽게 받아들여지는 면이 있었다.

 

임진왜란, 그 속에 죽어간 숱한 장졸들, 백성들, 노인들, 어린아이들..

지금도 바그다드의 어느 골목에서, 베이루트의 회벽칠한 잔해 어딘가에서,

소설같은 실화가 쓰여지고 있을지.

 

그해 겨울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격군과 사부들이 병들어 죽고 굶어 죽었다.

나는 굶어 죽지 않았다. 나는 수군통제사였다. 나는 먹었다. 부황 든 부하들이

굶어 죽어가는 수영에서 나는 끼니때마다 먹었다. 죽은 부하들의 시체를 수십 구씩

묻던 날 저녁에도 나는 먹었다.

(page 237)

 

그 공포, 가난과 원망과 살기, 적의를 아귀처럼 견뎌낼 수 있을런지.

그렇게 견뎌내는 것을 생명력이나 생활력이라 칭송할 수 있을런지.

 

세상의 끝이.... 이처럼..... 가볍고...... 또.... 고요할 수 있다는 것이.....

칼로 베어지지 않는 적들을........ 이 세상에 남겨놓고........ 내가 먼저.....,

관음포의 노을이.... 적들 쪽으로.....

(page 388)

 

작가의 필력을 느끼며 단숨에 읽어 갔다.

k*****6 2008.01.14.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차마 '칼의 울음'이라고 쓰지 못했던 이야기..
"차마 '칼의 울음'이라고 쓰지 못했던 이야기.." 내용보기
신화일까? 진정 신화일것이다.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이순신의 이야기. 들어도 들어도 가슴을 먹먹하게 할 우리의 영웅이야기. 하지만 나는 그의 이야기를 얼만큼이나 알고 있는것일까? 그냥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들을 제외하고서... 글자가 모여서 한권의 책이 되고 그 책을 읽음으로써 나에게 전이되어져오는 어떤 느낌에 전율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일까?
"차마 '칼의 울음'이라고 쓰지 못했던 이야기.." 내용보기

신화일까? 진정 신화일것이다.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이순신의 이야기. 들어도 들어도 가슴을 먹먹하게 할 우리의 영웅이야기. 하지만 나는 그의 이야기를 얼만큼이나 알고 있는것일까? 그냥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들을 제외하고서... 글자가 모여서 한권의 책이 되고 그 책을 읽음으로써 나에게 전이되어져오는 어떤 느낌에 전율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일까? 글로써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묘한 매력을 가진 작가에게 요즘 흠뻑 빠져들고 있던 탓에  김 훈이라는 이름이 주는 유혹에 강한 끌림을 느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그의 문자들이 전해주는 여운이 너무 길었던 까닭이다. 역시 그랬다. 책장을 넘기고 한 자 한 자 나의 눈속에 담아갈 때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을것만 같았다. 때로는 긴장감으로, 때로는 안타까움으로, 때로는 분노로, 그리고 때로는 눈물로 그의 문장들이 살아 꿈틀거렸다. 가끔씩 나도 모르게 꽉 쥐고 있던 조그만 주먹을 펼 때에야 내가 책을 읽고 있었다는 걸 인식할 뿐이었다. 그만큼 흡인력이 느껴졌다는 말일게다.

 

난중일기를 한번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주변사람들을 실명으로 적었다던 그 난중일기속의 인물들. 그들이 있어 이순신이 있었을 것이기에 그 이름 하나하나가 새롭게 다가왔다. 김 훈의 글은 <남한산성>에서도 그랬듯이 내가 책속 세상으로 발을 내디딘 그 순간을 잊지 못하게 한다. 그리하여 그 책속 세상에서 내가 살아가고 있는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 그래서 더 아픈 것일게다. 그래서 더 안타까운 것일게다. 그래서 더 많은 분노를 느끼게 되었을게다. 이 책 <칼의 노래>를 읽다보면 어느새 나는 이순신이 되어 있다. 임금의 교서를 받고, 그래도 임금이라고 머리 조아리며 (마음과는 다른) 장계를 올리고, 당쟁의 틈바구니에서 주리가 틀리는 모진 형벌을 받고.... 어여삐 보이는 백성들을 내치지 못하고 그들을 군선위로 끌어 올리는 아비의 마음을 버리지 않았기에, 두려움에 떠는 부하들에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강단진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호통칠 수 있었던 장군의 마음을 버리지 않았기에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백성에게, 그리고 부하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불러 일으켰을 게다. 그리하여 그가 의정부의 형틀앞으로 끌려갔을 때 아무런 힘없는 백성들이, 부하들이 임금의 문앞에서 목놓아 울었다. 그를 살려 사직을 보존하소서...

 

임금의 몸과 적의 몸이 포개진 내 몸은 무거웠다. (-196쪽)  적이 있어 모진 고문을 받았다. 하지만 그 적이 있었기에 그의 몸이 고문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임금은 나를 살릴수도, 죽일수도 없었던 것이라고 그가 생각했을 때 그는 알았다. 내 몸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임금은 그의 이름 석자를 앞세워 그의 뒤에 숨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또한 자신의 방패가 되어주는 그 이름을 두려워했다. 형식적인 명을 따르지 않았다고 그를 의정부의 형틀에 묶이게 했던 권율마저도 끝내 그에게 찾아와 이렇게 물었었다. 무슨 방책이 없겠느냐고... 정치적 상징성과 나의 군사를 바꿀 수 없었다던 이순신의 마음은 그 시대를 살아가던 말쟁이들의 싸움속에서 인정받을 수 없었던 것은 자명한 일이다. 모진 고문에서 벗어난 그에게 다가오는 운명은 어쩔 수 없이 거칠었다. 그가 머물며 상대해야 할 바다와도 같았을 것이다. 임금의 칼로써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던 그의 한가닥 소망이 내게는 붉은 노을처럼 보였다. 붉게 타오르다 사그러드는 ...

 

..... 신의 몸이 아직 살아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 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삼도수군통제사 신() 이() 올림 (-66쪽)

 

조선 역사를 많이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아는 것들속에서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고, 또한 이해하기 힘겨운 존재들 중 으뜸가는 이가 있다면 선조와 인조다. 가장 치욕드러운 과정을 겪어냈으면서도 가장 치욕스럽게 살아남으려 발버둥쳤던 존재들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그들이 원해서 그랬던 것도 아니라는 것은 안다. 내가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고 있지 않을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렇다는 말이다. 영웅은 시대가 만든다고 했던가? 그랬기에, 어쩌면 정말 그랬기에 이 순신이라는 이름이 더 찬란하게 빛날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소설로서만 읽혀지기를 바랄 뿐이라던 글쓴이의 바램과는 달리 내게는 이 소설이 단지 소설로서만 읽혀지지가 않았음이다. 장군이 아닌 한 사람으로써, 한 남자로써 겪어야 했을 수많은 감정의 기류들이 너무도 아픈 까닭이다.

 

그때 나는 세상이 견딜 수 없이 가엾고 또 무서웠다. 나는 허망한 것과 무내용한 것들이 무서웠다. (-212쪽)  어디 그 때 한번 뿐이랴. 견딜 수 없이 가엾고 무서운 것들이 어디 그것뿐이랴. 허망한 것과 무내용한 것들이 판치던 그시절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몇이나 되었던가. 말()이 살아 말()처럼 뛰어다니던 시절. 그 시절을 가엾어했고 또 무서워했던 이가 어디 이순신뿐이랴.  직접 눈으로 보려하지 않았고 제 발로 찾아나서 진위를 가려보려고조차 하지 않았던 말()의 유희들. 누구의 말이 더 찬란하게 빛났는가에 따라 순간적으로 서열이 뒤바뀌던 그 시절. 간혹 그  말()의 유희를 즐길대로 즐기면서도 살아남는 자들이 있긴 했으나 그런 시절을 버텨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는가는 묻지 말자. 굳이 묻지 않아도 우리는 알 수 있으니... 지금의 말쟁이들 또한 그 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저만 먼저 살아야겠다고 아우성인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환하게 보고 있으니... - 전하, 신들을 죽여주소서.- 툭하면 머리를 조아리며 습관처럼 내뱉던 그들을 앞에 두었다면 -그래, 내 너희를 죽여 이 나라의 사직을 바로잡고자 하니 나를 원망하지 말라.-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적어도 나였다면 그러고 싶었다는 말이다. 진정 그랬으면 싶었다는 말이다.

 

답답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빨리 이 신화의 끝을 잡고 싶었다. 하지만 책장을 덮으면서도 나는 그 이순신의 탈을 벗어버리지 못했다. 그냥 그의 아픔을 잠시 더 느껴보고 싶었다. 사실과 소설이 어울어진 이야기 하나를 떨쳐내기가 이리도 어려운가 싶을 정도로. 지금까지 두어번 아산 현충사를 찾았던 기억이 있다. 지난 겨울이었던 것 같다. 무엇인가를 한참 공사중이었다. 문득 그것이 궁금해졌다. 무엇을 찾아냈을까? 현시대속에서 다시 찾을 수 있었던 옛시절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러면서 나는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상을 생각했다. 존재의 의미는 모두 버리고서 오롯이 덩치만 부풀린 채 어딘가에서 실려와 내려놓아진... 그 생뚱맞은 자리... 왠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잠시 머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했던 그 날의 느낌이 그 곳 현충사에서는 되살아나지 않기를 빌었다. 쉽게 털어내지 못할 것 같은 이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다시 찾아가 보리라 한다. /아이비생각

 

i****9 2010.02.28.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쉽게 읽기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쉽게 읽기" 내용보기
이 책은 이순신의 전기 중에 백의 종군 후의 일을 1인칭으로 묘사하고 있다. 남에서 쳐들어 오는 일본군과 북에서 늘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임금과 사대부들에 맞서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는 한 인간의 고뇌를 잘 묘사하고 있다.     오래 전에 이순신 장군의 난중 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결국 끝까지 읽지못했다. 너무 재미없고 지루해서 읽기가 힘들었다. 너무 건조한 문체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쉽게 읽기" 내용보기

이 책은 이순신의 전기 중에 백의 종군 후의 일을 1인칭으로 묘사하고 있다.

남에서 쳐들어 오는 일본군과 북에서 늘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임금과 사대부들에 맞서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는 한 인간의 고뇌를 잘 묘사하고 있다.

 

 

오래 전에 이순신 장군의 난중 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결국 끝까지 읽지못했다. 너무 재미없고 지루해서 읽기가 힘들었다. 너무 건조한 문체로 사실적인 내용이 주로 많이 있고 '행간'을 읽을 실력이 되지 않기에 결국 포기했다.

 

 나이가 들면서 유명인들의 일기란 본인이 나중에 늙어서 읽기위해 쓰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순신 장군 정도의 위치라면 본인이 쓰는 일기가 결국에는 누군가에게 읽힐 것이고 평가 받을 것이라는 것을 일기를 쓰는 순간에도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럴 경우 독자를 의식한 (그 독자는 당시의 임금이나 사대부가 될 수도 있고 시간이 흘러 후손들이 될 수도 있다.) 일기가 될것이고 본인의 의사에 따라 그 일기는 무미건조하지만 경우에 따라서 무미건조 속에 많은 의미를 포함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그의 일기는 그당시 상황과 맞물려져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유명인들의 일기란 때로는 독자들을 속이기도 하고 따돌리기도 한다. 이순신장군이 독자들을 속였다는 의미가 아니라 무미건조의 일기 속에 글로서 나타내지 못할 자신의 생각이 있을 거라는 의미이다.

 

이 소설은 그런 의미를 많이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물론 작가의 해석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재미있다.

 

e******s 2009.11.23.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