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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의 대표작 『인생』을 이제야 읽었다. 『허삼관 매혈기』를 처음 읽었고 이후에는 산문집을 주로 읽었다. 책은 작년에 미리 사두었다. 자고로 책은 사두고 잊어버리는 맛이 있다. 성공에 필요한 건 운이라고 밝힌 위화는 어느 날 시골 슈퍼에 갔다가 자신의 책 『인생』이 꽂혀 있는 걸 본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인생』 덕분에 위화의 인생은 다르게 펼쳐진다. 『인생』은 위화가 세계적인 작가로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책을 읽고 영화도 봤는데 영화는 원작과는 다른 결말로 끝난다. 소설 안에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 부분을 걸러 내었다. 관객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배려 같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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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책상 앞에 한 장의 문구를 붙여두었다. '살아지는대로 살 것인가, 살아갈 것인가.' 열 여덟 살, 그 나이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치열하게 공부하고, 미래를 꿈꾸는 것이 전부였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수능 성적만 잘 나오면 능동적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나는 삶을 개척해 나갈거야,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다보니 벌써 노년이 되었다는 어른들의 말이 한심하게 여겨지던 나이였다. 지금 생각해봐도 지나치게 비장한 말이지만, 나는 지금도 때때로 저 말을 떠올린다. 나는 지금 삶을 살아 가고 있을까? 살아지는 대로 살고 있을까? 위화의 소설 『인생』은 망나니 같은 부잣집 도련님에서 가난한 농부로 전락한 푸구이라는 인물이 국공내전,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 등 급변하는 중국의 역사 속에서 가족과 재산을 모두 잃고 혼자 남아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이야기다. 부유한 지주의 외아들이었던 푸구이는 전문 도박꾼 룽얼에게 걸려들어 하룻밤 만에 전 재산을 잃고, 초가집에 사는 농사꾼 신세로 전락한다. 룽얼에게 땅을 빌려 생활하던 중 어머니의 병세로 성안에 의원을 부르러 갔다가 얼떨결에 국민당군에 끌려가 전쟁터를 전전하다 돌아오고, 어려운 살림에 학교를 보낸 아들 유칭은 현장의 부인이 출산 중 과다출혈로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수혈을 자원하는데 도리어 피를 너무 많이 뽑혀 과다 수혈로 인해 사망한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되고 말 못하는 딸 펑샤를 얼시에게 시집보내지만 펑샤의 임신 소식에 기뻐하던 것도 잠시, 아이를 낳던 펑샤는 유칭이 죽은 바로 그 병실에서 죽음을 맞고 곧이어 아내 자전도 세상을 떠난다. 그렇지만 푸구이는 다시 살아갈 힘을 낸다. 착한 사위 얼시와 손자 쿠건에 의지해 괜찮은 일상을 꾸려간다. 그러나 사위 얼시도 운반 일을 하다가 시멘트 판에 끼어 끔찍한 죽음을 맞고, 하나 남은 쿠건마저도 어려운 형편에 갑자기 삶은 콩을 많이 먹어 체해 죽는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인생을 돌아본다면, 나는 내 삶을 뭐라고 회고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푸구이처럼 스스로 '괜찮게 살았다'라고 여길 수 있을까? 경제가 급격하게 성장하던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낸 나는 알게 모르게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것이 옳은 것, 수동적으로 순응적인 것을 실패한 것으로 간주하는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푸구이라는 인물은 철저하게 실패한 순응적인 인간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의 민족해방운동과 국민당과 공산당의 대내전, 토지개혁과 인민공사, 문화대혁명이라는 거대한 역사 한가운데 있지만 대다수의 평범한 중국 인민의 입장에서 하루하루를 묵묵히 살아내는 한 인물일 뿐이다. 그러나 푸구이는 뜻하지 않는 운명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음에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비록 참담한 삶이었지만 도리어 '자기 손으로 먼저 가족들을 다 땅을 파고 묻어주었으니 이제 비로소 발을 뻗고 누워도 아무 걱정이 없는 다행스러운 일'(p.278) 이라고. 어떻게 푸구이는 고통스러운 운명의 무게에도 강인하게 견뎌낼 수 있었을까? 푸구이의 인생은 두 가지 큰 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것은 숙명처럼 주어진 고된 노동과 가족이다. 『인생』에서는 삶의 어려운 고난과 역경의 순간들을 가족이라는 끈끈한 사랑으로 극복해 나간다. 아내 자전의 힘든 노동을 안쓰러워하는 푸구이의 사랑, 전쟁터에서 돌아온 푸구이를 맞이하며 다시 태어나도 푸궤이의 아내가 되겠다는 자전. 호강 한 번 못시켜주고 평생 고통 속에서 살다가지만 그들에겐 부부간의 서로를 위하는 애정이 있었다. 또한 벙어리 딸 펑샤와 그의 남편 얼시도 대물림처럼 깊은 사랑을 보여준다. 펑샤의 곤한 운명을 성대한 혼례로 벗겨주고, 임신한 아내를 위해 자신이 먼저 모기에게 물린 뒤 아내를 편안하게 잠들게 하는 가난한 남편의 사랑, 아이를 낳다가 사경을 헤맬 때 아내를 먼저 살려달라며 울부짓는 얼시의 모습을 통해 무엇이 그들의 삶을 견디게 했는지 깨닫게 한다. 이 작품은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출간되었지만, 원제는 '살아 간다는 것'이다. 위화는 '살아간다는 것'의 힘은 절규나 공격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인내. 즉, 생명이 우리에게 부여한 책임과 현실이 우리에게 준 행복과 고통, 무료함과 평범함을 견뎌내는 데서 나온다.(p.8)고 말한다. 위화는 "곁에서 보는 사람의 눈에는 푸궤이의 인생이 고생스러운 일생이었다. 하지만 푸구이 자신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그가 행복을 더 많이 느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 어쩌면 올 한 해가 누군가에게는 고통스러운 해였을지 모르겠다. 조금 더 적극적이지 못했다고, 무엇도 이룬 게 없어 보이고, 고된 노동에 지친 마음으로 삶을 바라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살아 간다는 것이 생명이 우리에게 부여한 책임과 현실, 행복과 고통, 무료함을 견뎌내는 것이라면 우리는 꽤 잘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살아지는대로 살면 어떠한가. 그때마다 가족과 친구의 사랑과 위로가 있고, 누구보다 죽을 이유가 많더라도 자신의 생명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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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작가의 책은 처음이다. 중국의 근현대사를 중국사람의 시선으로 쓴 책이 읽고 싶어서 고른 책이었다. 1월 1일 이 책을 읽다 펑펑 울었다. 푸구이의 가정에는 늘 슬픈사고가 찾아왔다. 읽다보면 참 기가막힌다. 그게 그의 운명이었고, 처한 역사적 현실이었다. 고난이 깊어질수록 가정에는 서로를 아끼는 사랑이 절절해졌다. 그 사랑으로 기쁨이 피어나기도 했고, 고난속에서도 살아간다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살아가는데 원초적으로 필요한것은 사랑이다. 특히 가족간의 사랑, 이 책을 읽고나니 아이가 있어 더없이 행복하고, 남편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 하는 것이 참 괜찮은 삶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푸구이의 삶과 함께한 역사, 궁금했다. 중국사람들은 공산주의를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소설속에 1958년 대약진운동이 인상깊었다. 토지가 국유화되고 집단으로 대열을 맞춰 농장에서 일하는 모습, 농민들은 공산주의 생산방식을 새로워했고 처음에는 마을 공동식당에서 매일 고기반찬을 받을수 있어 좋아했다. 그 와중에 농민들이 어설프게 솥을 녹이며 철을 생산하는데 착출되는 모습(생산성은 제로에 가깝다), 당장의 끼니걱정은 덜었지만 곧 굶어죽을 지경의 가난을 겪는 모습, 거기에 더해진 자연재해, 나중에 찾아보니 대약진운동은 삼천만명의 아사자를 발생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문화대혁명과 푸구이의 대사 / 우리는 평범한 백성들이었지. 나라 일에 관심이 없는게 아니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몰랐다네. 우리는 대장의 말을 들었고 대장은 상부의 말을 들었지. 상부에서 뭐라고 말을 하면 우리는 그런가 보다 하고 그렇게 행동했다네. 책을 다 읽었는데 다시 읽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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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펴면 덮기 힘들어지는 책들이 있다. 이 책도 그중에 하나. '푸구이'라는 한 사람의 인생을 들려주는 형식의 소설인데 내가 꼭 직접 듣는 듯 생생하게 다가온다. 인생이 그토록 파란만장할 수 있을까? 푸구이 노인의 인생을 쭉 따라가다 보니 내 인생은 얼마나 편안하게 흘러가고 있었나, 그리고 요즘 느꼈던 여러가지 고민과 걱정들이 생각해보면 큰 일도 아니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푸구이 노인은 젊은 시절 흥청망청 잘 살던 시간들보다 나중의 삶이 더 마음에 든다고 했다. 파란만장 했지만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며 삶을 내 손으로 힘차게 꾸려나갔기 때문이겠지. 그런게 다 인생이라고 작가는 이야기하는 것 같다. 힘들어도 진심으로 살아간다면 가치있는 것이라고.. 위화의 다른 소설들도 읽어보아야 겠다. 아무튼 재미있으니.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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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의 <인생>은 두 번째 읽는 소설이다. 사실 두 번 본 책이 많진 않은데 이 책은 조금 더 특별하다. 와이프와 함께 낭독한 책이기 때문이다.
사실 ‘낭독’은 삶에서 꼭 하고 싶은 일이었다. 관련 책도 읽어보고 교육이나 책 읽기 프로그램에 적용하고 싶은 아이템이었지만 한 번도 ‘낭독’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해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의 든든한 아군 와이프와 직접 해봤다. 처음 읽을 땐 어색하기도 하고 익숙하지 않아서 끝까지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이 책이 끝까지 독서를 마칠 수 있게 했다.
위화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어 준 <인생>의 원제는 ‘살아간다는 것’이다. 개정판을 내며 <인생>으로 바꾸었는데, 읽고 나니 ‘살아간다는 것’도 좋은 제목이란 생각이 든다. 푸구이라는 주인공의 삶을 통해 살아간다는 것이란 무엇인지 독자들에게 물어보고 있기 때문이다.
푸구이는 100묘가 넘는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마디로 부자다. 그의 태생은 그를 망나니로 만든다. 결혼했지만 도박, 기생은 기본이고 취한 상태로 기생의 등에 업혀 장인어른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는 기행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전문도박꾼 룽얼에게 걸려 자신의 모든 재산을 날리며, 초가집에 사는 농사꾼 신세로 전락한다. 모든 재산을 잃고 가족만 남는다.
아픈 어머니를 위해 성안의 의원을 부르러 갔다가 얼떨결에 국민당군에 끌려간 그는 2년 동안 전쟁터를 전전하다 해방을 맞아 집으로 돌아온다. 이미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딸 펑샤는 벙어리에 귀머거리가 되어있다. 시름시름 앓던 부인 자전은 불치병(구루병) 진단을 받고, 그의 둘째인 아들 유칭은 출산 중인 현장 부인에게 수혈을 해주다 어처구니없이 죽게 된다. 시간이 지나 문화대혁명이 시작되고, 펑샤는 머리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착한 얼시를 만나 임신도 하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지만 얼마 후 유칭이 죽었던 그 병실에서 아이(쿠건)를 낳다가 죽고 만다. 곧이어 자전도 사위 얼시, 손자 쿠건과 푸구이를 남겨놓고 죽는다.
사실 푸구이의 모습은 우리네 보통의 아버지와 닮았다. 어려운 가정 형편을 위해 일터로 나간 그들 말이다. 푸구이는 사회의 시류에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이런 삶을 통해 인생을 절실히 경험한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그에게 인생을 관조하는 시선을 갖게 한다.
63p 그러나 푸구이 노인처럼 잊히지 않는 사람은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다. 자기가 살아온 날들을 그처럼 또렷하게, 또 그처럼 멋들어지게 묘사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말고는 또 없었던 것이다. 그는 과거의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었고, 자기가 젊었을 때 살았던 방식뿐만 아니라 어떻게 늙어가는지도 정확하게 꿰뚤어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책을 다 보고 나면 저절로 제목이 생각난다. <인생: 살아간다는 것>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저자의 말이 머리에 맴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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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슬프다니! 눈물 줄줄 흘리면서도 멈출 수 없는 위화의 <인생> 왜 제목이 <인생>인 거야, 제목마저 슬픔.
<인생>을 읽기 전에 위화의 소설은 처음이라 <허삼관 매혈기>와 <제7일>을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쉬워 보이는 <허삼관 매혈기>는 잠깐 펼쳤다가 빨려 들어가 술술 읽어서 거실에 서서 끝까지 읽었다. 마지막 문장까지 기가 차서 풉 하면서 끝나는 책이었다. 감동도 충격도, 재미도 슬픔도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소설이었다. 작가 위화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쉬운 관문이지 않았을까? <허삼관 매혈기>의 허삼관도 나이 든 노인인데, <인생>도 이 부분이 비슷하다. 다만, <인생>은 옴니버스 식으로, 민요를 수집하는 '나'가 한 마을에서 노인 푸구이의 이야기를 듣는 내용이다. 총 다섯 장으로 나누어져서 장의 앞과 뒤에 '나'가 잠깐씩 등장하고, 푸구이의 이야기가 주로 전개된다. 할아버지의 과거 회상은 구전 설화를 듣는 것 같은 신명나는 맛이 있고, 한편으로는 모든 상황에 초연한 느낌이 있었다. <인생>의 머리말에서 "작가는 독자에게 고상함을 보여줘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고상함이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일체의 사물을 이해한 뒤에 오는 초연함, 선과 악을 차별하지 않는 마음, 그리고 동정의 눈으로 세상을 대하는 태도다."라고 했는데, 이와 같은 작가의 관점을 잘 드러내기에 적합한 인물이 할아버지이지 않나 싶다.
푸구이 노인의 인생은 기복이 무척 심하게 느껴졌다. 지주의 망나니 아들로 재산을 탕진하고, 전쟁을 겪고, 농민의 삶을 산다. 극단적이고 파란만장해 보이는 삶이지만, 중국 형명, 대약진, 문화대혁명과 같은 중국의 상황에서는 보편적인 삶이고, 우리나라의 현대사와도 멀지 않은 삶이다. 이러한 격변기의 삶을 대처하는 자세, 이러한 격변기의 삶을 이해하는 자세로 저자 위화가 제시하는 태도는 낙관적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굵직하게 벌어지는 일들은 엄청나게 슬프지만, 그 와중에서도 "사람은 즐겁게 살 수만 있으면 가난도 두렵지 않다"라고 하는 걸 보면,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많은 나날을 즐겁게 살 수 있는 게 인생인지도 모른다. 이 대사의 맥락은 '가난'이지만, 가난만이 두려운 게 아닌 것처럼, 여러 난관 속에서도 꿋꿋이 상황을 헤쳐나가는 푸구이의 회복력은 가히 경탄할만했다.
<인생>은 왜 이렇게 슬프게 만들었는지, 작가는 <인생>의 등장인물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을까? 눈물 쏙 뺀다는 지인들의 제보에, 나는 눈물이 말라서, 소설 보고 울지 않지, 했건만... 그래도 난 참 적게 울었다. (자랑?) <인생>에서 푸구이 영감의 이야기를 듣는 역할을 하는 '나'는 참 잘도 듣고 있다. 나라면, "아니, 뭐라고요? 그런 일이 있었다니..." 하면서 1장 중간에 가로막고, 한탄과 푸념이나 해댔을 텐데 말이다. 4장 끝에서 푸구이 영감이 불길하게 말하는 듯해서 5장에서 또 슬플 것 같아 정말이지 읽기가 싫기도 했다. 당연히, 5장도 정신없이 슬펐고, 나는 정말 탈진할 지경이었다. 1장 중간에서 어찌 그런 일이..라며 땅을 치며 한탄하고 있었으면 알 수 없었을 감정들이 5장 끝까지 읽고 넘실넘실 차올랐다. 감정의 폭은 깊어지고, (눈물샘은 고인 눈물이 흘러 원활해졌으며..), 신명 나게 이야기하는 푸구이 할아버지의 초연하고 낙관적인 모습에서 후회나 한탄이 아닌 고마움과 그리움의 감정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함께읽기 덕분에 읽어 볼 수 있었던, <인생> 정말 슬펐지만, 그러기에 <인생>에 대해 깊이, 감동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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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 복잡하고 제 삶은 무엇인가~고민이 많은 시기에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푸구이영감의 인생을 보며~"이렇게까지~"란 말이 절로 나오는데 푸구이 영감은 말합니다. "삶은 살아가는 것"이라고.. 영감이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보며 저를 반성하고 다시 열심히 살아야겠단 생각에 크게 위로 받았습니다. <인생>을 읽은것은 제 삶에 큰 행운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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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허삼관매혈기"로 유명한 작가 위화의 장편소설이다. 작가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히듯 인생의 원 제목은 활착(活着) 즉 "살아간다는 것" 이다. 1950년대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과, 대약진운동 1960년대 문화대혁명 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그리고 책의 마지막에는 책을 옮긴 백원담 교수님의 해설도 담겨져 있어서 같이 읽어보면 좋을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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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내린 이야기꾼 이야기꾼은 다 천재다 왜냐면 모든걸 다 알아야하고 모든걸 다 예측해야 하니까 위화가 그런 인물이다 그냥 읽으시라 수십년전 중국이 배경이긴 하지만 나는 오늘 우리나라 내 얘기처럼 들었다 그냥 읽으시라 그리고 눈물도 흘리시고 웃기도 하시고 아이들에게 들려주시라 집사람과 아이들에게 넉넉히 들려줄 이야기다 친구들도 직장 동료들도 우리 이웃들도 다 좋아할 최고의 이야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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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허삼관 매혈기의 작가, 위화의 대표작! 망나니 같은 부잣집 도련님에서 가난한 농부로 전락한 푸구이의 일생을 통해 사람이 어떻게 엄청난 고난을 견뎌내는가, 극한의 상황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가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소설은 농촌으로 민요를 수집하러 간 나에게 늙은 농부 푸구이가 자신의 과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