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데미안>을 한번은 읽었던 것 같아요. 비록 데미안이란 이름과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문구만 기억에 남았지만요.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저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깨달았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 아마 글자만 읽었을 가능성도 커요. 성인이 되어, 한 번 더 읽고 싶어 책은 샀지만, 책꽂이에 고이 모셔만 두고 있었어요. 한참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다시 펼쳐보게 되네요.
고전을 읽을 때 작가와 시대 배경에 대해 알면 조금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1877년에 태어난 헤르만 헤세는 동양과 서양의 영향을 끊임없이 받으면서 성장했어요. 헤세는 현실 생활에서뿐만 아니라, 영혼 면에서도 끝없는 방황을 계속했어요. 수도승, 방랑아, 책방 점원으로 전전하며 어린 시절을 불안 속에서 보낸 그는 1904년 <페터 카멘친트>를 발표하면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게 되었어요. 겨우 작가로서 기반을 잡자, 세계대전이 발발함으로써, 그는 사랑과 평화를 주장하며 반전 문학 운동을 하다가 나치 정권에 쫓겨서 스위스로 망명했어요. 1916년 부친의 사망, 아들의 중병, 자신의 병, 아내의 정신병 악화 등으로,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위기에 직면하지만, 정신분석의 연구로 그 타계를 꾀하였어요.
<데미안>은 정신분석적 방법으로 자기 자신에 이르는 길을 추구한 이색적인 작품으로 후기 헤세 문학은 이 작품에서 시작된다고들 해요. 헤세는 이 작품을 통해 옛 시절에 대한 향수, 젊은이의 번민, 현대문명의 이기를 파헤치면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시사해요. <데미안>은 헤세의 젊은 시절의 초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한 영혼의 성숙 과정, 즉 자아 발견의 험난한 여정을 암시해요. 이것 or 저것 중 선택하는 양자택일이 아닌 양자 긍정의 길을 제시해요.
라틴어 학교에 다니던 열 살 싱클레어에게는 두 개의 세계가 뒤섞여 있었어요. 도덕적이고 깨끗하며, 사랑에 가득 찬 부모님과의 생활로 명확성, 질서, 청결성이 깃들여 있는 밝은 세계 vs 술에 취하고 유혹적이며 공포에 가득 찬 하녀들과 수공업 도제들의 골목으로 유령 이야기, 추문, 살인과 자살이 존재하는 어두운 세계. 이 두 개의 세계가 서로 경계를 접하고 있으며 아주 가까이에 겹쳐 있지만, 밝은 세계에 속하며 보호받으며 신실한 마음을 가지고 살던 싱클레어였어요. 하지만 사소한 거짓말 하나로 그는 어두운 세계로 자신을 몰고 들어가요. 클로머의 괴롭힘으로 거짓말, 도둑질 등을 하며 자신은 타락했으며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해요. 밝은 세계에 생긴 최초의 칼자국과 틈으로 가족에게 털어놓지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아요. 자신의 삶인데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고 끌려다니기만 하는 것이죠.
그런 혼돈 속에 있을 때 데미안을 알게 된 싱클레어. 데미안에 의해 어두운 세계에서 벗어난 싱클레어는 자기가 이전까지 알고 있던 세계가 데미안에 의해 변하고 파괴될 것 같은 두려움, 자기 내면이 변화의 물결에 조금씩 휩싸이는 것 같아 혼돈을 느끼며 데미안과 거리를 유지해요. 데미안은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 두 세계 모두 중요하다고 얘기하면서, 신을 숭배하면 악도 숭배해야 한다고 얘기해요. 카인과 아벨 이야기도 카인의 남다른 특성을 사람들이 두려워했기에 왜곡한 것이라고 했거든요.
라틴어 학교를 졸업한 후 김나지움에 진학한 싱클레어. 그는 술집을 들락거리고 독설이나 날리며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리려는 사람처럼 행동해요.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울면서 영혼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어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심해서인지 극심한 혼동을 느끼다 어느 한 소녀를 보며 다시 밝은 세계로 돌아가고자 해요. 아버지에 의해 보호받던 세계가 아닌 자기 스스로 세운 세계로 말이죠. 데미안이 그리워진 싱클레어는 그에게 꿈에서 본 새 그림을 그려 편지를 보내요.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누구나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라는 답장을 한 데미안. 아프락사스는 신인 동시에 악마이며, 남자인 동시에 여자예요. 모든 양극성을 한 몸에 지니고 모든 모순적이고 대립적인 것을 동시에 창조하는 아프락사스는 인생과 세계의 모든 대립적 다양성을 포괄하여 하나로 합일시키는 존재예요. 싱클레어는 많은 고민과 방황을 하며 자기가 진정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 아프락사스라는 것을 알게 돼요.
알을 깨고 나온다는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등 치열한 고민을 거친 후에 나다움을 찾는 과정이 아닐까 싶어요. 내 가치관이 일차적으로 정립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1단계 시작인 셈이죠. 인생을 살면서 몇 번의 고민과 변화가 있을지 모르니까요. 지금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날아갈 수 있어요. 새가 알을 깨고 주변만 두리번거리면 거기에서 끝이고, 탐색하고 더 높은 곳으로 날아간다면 한 단계 더 성숙하는 것이지 않을까요. 아프락사스는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저라는 사람만 해도 다양한 모습이 내재되어 있어요.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이길 바라지만 가끔 이런 악마 같은 모습도 내게 있다니 놀랄 때가 있거든요. 하나의 세계만 믿고 안다면 이럴 때 무너지지 않을까요. 나의 다중적인 면을 받아들여야 세상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싱클레어는 자기완성을 위한 길을 처절하리만큼 힘들게 가요. 모두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어쩜 저렇게 세상을 심플하고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사람도 있으니까요. 사람마다 다른데, 어떤 것이 옳다고 할 수는 없어요. 책을 읽으면서 싱클레어만큼 고민하고 방황하지는 않았기에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이렇게 자기를 알아가는 과정이 힘든 사람도 있구나! 알게 되었어요.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여러 질문이 나를 스쳐 가요. 나는 누구인가?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아주 넓은 우주에서 지구라는 행성에 잠깐 살다가는 나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등이요. 저는 이제 막 알을 깨고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 단계 같아요. 자기완성의 끝이 있을까 싶지만,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고 하나씩 해나가는 것이 나에게 도달하기 위한 여정이 아닐까요. 그 여정의 중간에서 주위를 둘러보고 심호흡을 크게 하고 다시 천천히 나아가야겠어요. 감사합니다. |